
보육의 공식화는 보육노동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보육노동 공식화의 명과 암
초록
본 연구는 역사적 제도주의를 활용하여 한국 ‘보육의 공식화(Formalization)’ 과정을 추적하고, 이것이 보육노동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였다. 한국의 보육 공식화는 국가 재정 책임과 민간 의존적 수행의 모순적 결합, 그리고 유치원-어린이집 이원화로 인해 외형적 팽창과 내적 모순이 공존하는 ‘불완전한 공식화(Incomplete Formalization)’의 경로를 밟아왔다. 본 연구는 이를 민간 의존적 구조라는 경로의존성이 제도 변화의 각 국면에서 반복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을 포착하는 분석 개념으로 제안한다. 경로의존성, 결정적 분기점, 층화, 전환 개념을 적용하여 1961년 「아동복리법」 제정부터 현재 진행중인 유보통합에 이르는 과정이 보육교사의 노동을 어떻게 재편했는지 분석한 결과, 공식화는 보육노동을 법적으로 가시화하는 진전을 이루었으나, 임금 체계의 이원화와 처우의 서열화, 관료적 통제의 강화, 젠더화된 저평가 구조를 지속시켜 처우 개선의 제한과 노동강도 강화로 귀결되었다. 이는 유보통합 과정에서 경로의존적 모순을 반복하지 않고 보육교사의 노동권과 돌봄 가치를 담보하는 통합 체제 구축에 시사점을 제공한다.
Abstract
This study traces the process of the “formalization” of childcare in Korea through the lens of historical institutionalism and examines its impact on childcare labor. Owing to the contradictory combination of state fiscal responsibility and private-sector-led provision, together with the kindergarten-daycare dualism, the formalization of childcare in Korea has followed a path of “incomplete formalization,” in which outward expansion and internal contradictions coexist. This study proposes incomplete formalization not as a description of outcomes but as an analytical concept that captures the mechanism by which the path dependence of a private-provision-dependent supply structure is repeatedly reproduced at each juncture of institutional change. Applying the concepts of path dependence, critical juncture, layering, and conversion, the study analyzes how successive phases-from the enactment of the Infant and Child Care Act in 1991 to the ongoing integration of kindergartens and daycare centers-reorganized childcare teachers’ labor. While formalization advanced the legal visibility of childcare labor, it simultaneously perpetuated a dualized wage system, a hierarchy of working conditions, intensified bureaucratic control, and the gendered undervaluation of care work, resulting in constrained improvements in working conditions and heightened labor intensity. These findings offer implications for building an integrated system that safeguards teachers’ labor rights and the value of care without repeating path-dependent contradictions.
Keywords:
Formalization of childcare, Incomplete formalization, Childcare labor, Childcare teachers, Historical institutionalism, Path dependence키워드:
보육 공식화, 불완전한 공식화, 보육노동, 보육교사, 역사적 제도주의, 경로의존성1. 서 론
현대 사회에서 돌봄(Care)은 사적 영역인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국가와 시장이 중첩되는 공적 노동의 영역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영유아 보육은 가부장적 질서 아래 여성 가구원의 헌신에 기반한 비임금·비공식 노동의 전형으로 간주되었다(안미영, 2012). 그러나 산업화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는 전통적인 가정 내 보육 모델의 한계를 가져왔고(유희정, 2004), 저출생 문제가 국가적 위기로 부각되면서 보육은 국가 책임 하에 공급되는 보편적 공공 서비스로 급격히 확장되었다(김혜인, 2012; 박경자, 황옥경, 문혁준, 2013). 이처럼 비공식 부문에 머물던 돌봄이 법적·제도적 규범이 작동하는 공적 영역이자 공교육의 한 부문으로 편입되는 역사적 경로를 본 연구에서는 ‘보육의 공식화(Formalization)’라고 정의한다(조부경, 고영미, 임수진, 2022).
이러한 보육의 공식화 및 제도 전개 과정에 대해 기존의 선행연구들은 주로 복지 확대 정책이나 보육 전달체계의 구조적 모순에 주목해 왔다. 기존 주요 논의는 한국의 보육 공식화가 ‘국가의 재정 책임’과 ‘시장 주도형 수행’이라는 독특하고도 모순적인 결합을 취하고 있음을 지적한다(김혜인, 2012). 즉, 국가가 비용을 전면 지원하면서도 정작 서비스 공급은 민간 시장에 의존하는 시장화된 보육 시스템을 공고히 해왔다는 것이다. 더욱이 교육 중심의 유치원 체제와 복지·돌봄 중심의 어린이집 체제로 이원화되어 발달한 공식화 경로는 관할 부처, 법적 근거, 교원 양성 및 처우의 격차를 낳았고, 이는 보육 정책의 공공성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으로 비판받아 왔다(김은설, 이진화, 김혜진, 배지아, 2014; 박은혜, 장민영, 2014).
그러나 기존 연구는 이러한 모순적 결합이 ‘왜’ 발생했고 ‘왜’ 지속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였다. 정책 기조의 변화를 정권 교체라는 사실 자체로 설명하거나 관료제적 통제의 강화로 환원하는 데 그친 것이다. 본 연구는 이 결합이 각 제도 변화의 국면마다 어떠한 정치·경제적 조건과 행위자 간 권력관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었는지를 추적함으로써, 보육 공식화의 불완전성이 발생하는 구조적 기제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때 국가, 기관장, 보육교사, 학부모 등 보육을 둘러싼 주요 행위자들의 관계가 공식화 과정에서 어떻게 재편되었는지 함께 살핀다.
이와 같은 제도적·행정적 차원의 공식화는 보육을 둘러싼 행위자들, 특히 현장 보육교사의 노동 환경에 복합적이고 양면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선 공식화의 긍정적 측면은 보육노동의 사회적 가시화와 법적 노동권 보장이다. 비공식 영역에 머물러 있던 돌봄이 「영유아보육법」 제도권 안으로 포섭되면서, 보육교사는 과거의 모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국가 공인 자격을 갖춘 전문적 노동자이자 교사라는 직업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조부경 외, 2022; 이정욱, 류승희, 임수진, 2018). 그러나 이러한 제도화 이면에는 부정적 그늘이 공존한다. 국가 주도의 강력한 관리·감독과 평가 체계(평가인증 등)는 교사들을 과도한 서류 행정에 매몰시켜 아동과의 실질적 상호작용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았다(강복화, 2024). 또한, 시설 내 CCTV 설치 의무화 등 감시 체계의 강화는 보육 현장을 상시적 자기 검열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이은영, 2019). 결과적으로 보육교사들은 여전히 저평가된 돌봄의 가치 속에서, 가부장적 전통이 기대하는 ‘모성적 돌봄자’로서의 헌신과 국가 제도권이 규정한 ‘전문 교육자’ 지표를 동시에 강요받는 모순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현장 교사들의 노동 강도를 가중시키는 구조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박은혜, 2003).
나아가 본 연구는 분석의 초점에서도 기존 연구와 구별된다. 선행연구가 보육 공식화를 거시적 정책 변화나 예산 확대, 전달체계의 이원화 구조를 기술하는 데 집중했다면, 본 연구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보육을 실제 수행하는 주체인 보육교사의 노동 실태와 직업 정체성에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에 주목한다. 특히, 국가 책임과 민간 의존이라는 모순적 공식화 구조와 제도적 경로가 현장 교사들의 노동을 어떻게 재편했고, 그것이 왜 처우 개선의 제한과 노동강도 강화라는 결과로 귀결되었는지를 교사의 ‘노동’을 중심축에 두고 추적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과정을 ‘불완전한 공식화(Incomplete Formalization)’ - 즉 법적 공식화의 선언이 실질적 노동권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메커니즘-로 개념화하며, 이 개념이 보육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돌봄 영역의 공식화 분석에도 적용 가능한 분석틀로서의 잠재성을 지님을 결론에서 논의한다.
다만 본 연구는 제도 변화의 거시·중범위적 경로 분석과 노동 주체가 겪는 미시적 결과를 하나의 논문 안에서 다룬다. 이는 제도의 성격이 노동의 조건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밝히려는 시도이다. 민간 의존적 공식화라는 제도적 경로가 현장 교사의 처우와 직업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해 왔는지는, 제도와 노동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살필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연결을 간과하면 제도 분석은 노동 현실과 유리된 정책사에, 노동 분석은 그 구조적 원인을 결여한 실태 기술에 머물기 쉽다. 이에 본 연구는 두 층위를 잇는 핵심 기제인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을 중심으로 그 관계를 제시하는 데 집중한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본 연구는 역사적 제도주의(Historical Institutionalism)의 이론적 틀을 적용한다. 보육 제도의 변화 역학을 복지국가 발전 및 젠더 체제를 다루는 거시적 층위, 법령·행정 체계를 다루는 중범위 층위, 그리고 국가·민간운영자·교사·학부모 간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미시적 층위로 구조화하여 분석한다(Steinmo, Thelen, & Longstreth, 1992; Thelen, 2003). 본 연구가 분석에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핵심 개념은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 결정적 분기점(Critical Juncture), 층화(Layering), 전환(Conversion)이며, 각 개념의 적용 기준은 3장(연구방법)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연구 방법으로는 선행연구자료, 정부 및 기관 생산자료 등을 활용한 역사적 문헌분석을 실시한다. 구체적으로는 비공식 영역이 법제화되는 ‘제1국면(태동기-2000년대 초반)’과 공공성 강화 흐름 속에서 노동 조건에 복합적 영향을 미치는 ‘제2국면(2000년대 중반-현재)’으로 시기를 구분하여, 경로의존성 메커니즘을 규명하고자 한다(Pierson, 2000).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통합, 즉 유보통합을 가시적으로 앞둔 현시점에서 본 연구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유보통합은 지난 수십 년간 이원화된 형태로 진행되어 온 한국 보육 공식화 역사의 가장 거대한 전환점이자 제도적 변곡점이다. 본 연구가 시도하는 보육 공식화 과정에 대한 역사적·비판적 분석은, 비공식적 영역이었던 돌봄노동이 ‘시장 의존형 제도화’ 체제 속에서 공식화될 때 노동 주체들이 어떤 구조적 한계를 겪게 되는지를 그리고 그러한 경로가 각 제도 변화의 국면에서 어떻게 반복되어 왔는지를 함께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향후 유보통합의 구체적인 실행 과정에서 과거의 경로의존적 모순을 반복하지 않고, 보육교사의 정당한 노동권 보장과 돌봄 가치의 재평가를 담보하는 진정한 의미의 통합 체제를 구축하는 데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2. 이론적 배경
1) 노동의 공식화(Formalization of Labor)
ILO의 ‘비공식 경제에서 공식 경제로의 전환에 관한 권고(제204호)’에 따르면, 비공식 경제는 법률이나 관행상 공식적인 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거나 불충분하게 적용받는 노동자 및 경제 단위의 모든 경제 활동으로 정의되고 있다(ILO, 2015).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 공식화는 비공식 경제(Informal Economy)에서 활동하는 노동자와 경제 단위를 법적·실무적 공식 장치(Formal Arrangements) 내로 통합하여 규제에 따른 혜택과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규정할 수 있다(ILO, 2025a, 2025b). 하지만, 이는 단순히 서류상의 등록을 의미하는 이분법적 변수가 아니라, 법적 선언(Legal Declaration), 법의 적용 범위(Coverage) 포함, 그리고 실질적인 보호(Effective Protection)를 모두 아우르는 다차원적이고 연속적인 프로세스로 이해되어야 한다(ILO, 2025c; Rosaldo, 2021).
국내 보육노동의 경우, 공식적 규칙의 부재로 인해 의무와 권리가 수반되지 않았던 비공식성(Informality)의 단계에서, 공식적 규칙(법률)은 형성되었지만 그 규칙의 비정합성으로 인해 부여된 권리가 부분적으로 무시되거나 제한되는 단계로 이행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노동의 공식화는 특정 서비스 노동이 비공식적인 개인적 관계 혹은 무급 가사 노동의 영역에서 벗어나 공적 법규와 공식적인 시장 체계 내로 편입되는 과정(Assaad & Krafft, 2013)이자, 노동의 수행 방식, 보상 체계, 노동자의 법적 지위, 사회적 인식이 구조적으로 재편되는 과정(ILO, 2015)으로 규정한다.
2) 보육노동의 특성과 직업 정체성 갈등
보육은 일반적인 서비스 노동과 달리 ‘관계적 노동(Relational Labor)’이라는 본질적 특수성을 지닌다(Fairchild & Mikuska, 2021). 보육 노동은 단순히 신체적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교사와 영유아 간의 정서적 유대와 상호 신뢰를 핵심 동력으로 삼는다(김희영, 2024). 그 성과는 표준화된 산출물로 계량화되기 어렵고, 신체적 돌봄과 교육적 상호작용이 분리되지 않은 채 동시에 수행되며, 교사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고 동원하는 감정노동을 필수적으로 수반한다(Hochschild, 1983). 이러한 특수성은 돌봄이 공식화되어 임금 노동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교사의 직업 정체성 갈등을 야기한다(England, 2005). 관계적이고 계량화되지 않는 노동의 성격과, 자격 요건·임금 체계·평가 지표를 통해 노동을 표준화하고 측정하려는 공식 제도의 논리가 서로 충돌하면서, 보육교사는 서로 다른 방향의 직업 정체성을 동시에 요구받는 긴장에 놓이게 된다.
첫째, ‘모성적 돌봄자’ 정체성은 여성이 가정에서 수행하던 무한한 희생과 사랑의 연장선으로 보육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공식화 이후에도 저임금을 정당화하거나 노동권 주장을 위축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Noddings, 1984). 둘째, ‘권리 주체로서의 노동자’ 정체성은 보육을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경제 활동으로 인식하며, 노동의 공식화는 이 정체성을 강화하는 법적 토대를 제공한다(안미영, 2012). 셋째, ‘전문 교육자’ 정체성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전문가로서의 자기 인식이며, 유보통합 논의에서 보육교사가 유치원 교사와 동일한 지위를 요구하는 근거가 되는 동시에, 문서화되고 평가받는 대상으로 만들기도 한다(조부경 외, 2022; Engster, 2007).
이 세 직업 정체성은 공식화 과정에서 경합하고 조율되며, 보육교사가 사회적으로 승인된 전문 교육 노동자로 안착하는 경로를 결정짓는다(Karila & Kinos, 2012). 그러나 공식화 이후에도 여성 집중 직종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노동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평가절하(Undervaluation) 현상이 지속되며(Marsh, 2014), 이는 처우 개선이 제도적 공식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3) 역사적 제도주의: 경로의존성과 결정적 분기점
역사적 제도주의(Historical Institutionalism, 이하 HI)는 제도를 ‘정치 체제나 정치 경제의 조직 구조에 내재된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절차, 관습, 규범, 관례’로 정의하며(Thelen & Steinmo, 1992), 이러한 제도가 사회적 행위와 결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의 핵심으로 삼는다(Hall & Taylor, 1996). 이 정의에 따르면 법령과 행정 체계와 같은 공식적 제도뿐만 아니라, ‘보육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젠더화된 규범이나 ‘민간이 효율적’이라는 통념과 같은 비공식적 인식 역시 제도의 범주에 포함된다. 제도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권력 관계와 갈등의 산물로 형성되며, 일단 구축된 제도는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재정의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독자적인 힘을 갖는다(Thelen, 1999).
본 연구가 보육 공식화 분석에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HI의 핵심 개념은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과 결정적 분기점(Critical Juncture) 두 가지이다. 경로의존성은 특정 시점의 제도적 선택이 이후 선택의 범위를 제약하며 제도 변화가 점진적이고 비가역적으로 진행되는 경향을 가리킨다(North, 1990; Pierson, 2000). 결정적 분기점은 기존의 경로가 해체되고 새로운 경로가 선택될 수 있는 짧은 전환적 국면을 의미하며, 이 국면에서의 선택이 이후의 제도 발전 궤적을 장기간 규정한다(Collier & Collier, 1991). 본 연구는 1991년 「영유아보육법」 제정, 2004년 전면 개정, 2009년 정책 기조 전환 등 보육 제도사의 주요 변곡점을 이 두 개념을 통해 해석함으로써, 특정 시점의 제도적 선택이 어떻게 이후 민간 의존적 공급 구조를 고착시켰는지를 추적한다. 나아가 현재 진행 중인 유보통합(2024-2026) 역시 새로운 결정적 분기점이 될 수 있는지를 이 틀에서 전망한다.
아울러 본 연구는 제도가 공식적 형태는 유지한 채 그 적용과 해석이 점진적으로 달라지는 양상에 주목한다. Mahoney와 Thelen(2010)은 급격한 단절이 아닌 점진적 제도변화를 행위자들이 변화를 저지할 수 있는 거부점(Veto Possibilities)의 강도와 제도 해석의 여지라는 두 차원에 따라 대체(Displacement), 층화(Layering), 표류(Drift), 전환(Conversion)의 네 유형으로 제시하였다. 대체는 기존 제도가 새로운 제도로 교체되는 방식을, 층화는 기존 제도 위에 새로운 규칙이나 지원 체계가 덧붙여지며 성격이 변화하는 방식을, 표류는 제도가 공식적으로는 변하지 않으나 환경 변화로 실질적 효과가 달라지는 방식을, 전환은 공식 구조는 유지되나 그 목적과 운용 방식이 달라지는 방식을 가리킨다. 본 연구는 이 가운데 한국 보육 제도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실질적으로 부합하는 층화와 전환 두 개념을 원용하며, 대체와 표류는 분석 대상 시기의 제도 변화 양상과 부합하지 않아 다루지 않는다.
3. 연구방법
1) 분석틀의 구성 원리
본 연구는 앞서 검토한 역사적 제도주의의 핵심 개념인 경로의존성, 결정적 분기점, 층화·전환을 통합하는 분석틀을 구성한다. 이 분석틀은 보육의 공식화 과정과 보육노동의 변화라는 본 연구의 구체적 분석 대상에 맞게 조정된 것이다.
분석의 기간은 크게 두 국면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시기 구분의 기준은 보육 관련 법령의 전면 개정 여부이다. 제1국면(태동기-2000년대 초반)은 비공식 영역에 머물던 보육이 법적·제도적 틀 내로 공식적으로 편입되는 과정으로, 1921년 최초의 탁아소로부터 1991년 「영유아보육법」 제정을 거쳐 2000년대 초반까지를 포함한다. 제2국면(2000년대 중반-현재)은 2004년 「영유아보육법」 전면 개정을 기점으로, 공식화된 보육 제도가 공공성 강화의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보육교사의 노동 조건에 복합적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며, 현재의 유보통합 추진까지를 포함한다. 이처럼 약 100년에 걸친 제도 변화를 두 국면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은, 특정 시점의 정책 선택이 오랜 시간에 걸쳐 후속 경로를 규정한다는 장기적 관점을 전제한다(Pierson & Skocpol, 2002). 본 연구의 핵심은 제1국면에서 형성된 민간 의존적 공급 구조가 제2국면의 정책 선택을 어떻게 제약하였고, 그 결과 각 국면에서 층화와 전환이라는 형식으로 어떻게 재생산되었는지를 규명하는 데 있다.
본 연구가 활용한 분석 자료는 세 유형으로 구성된다. 첫째, 보육 정책사 및 보육노동을 다룬 국내 학술논문과 학위논문, 둘째, 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교육부의 중장기 보육계획과 전국보육실태조사 등 정부 및 산하 기관이 발간한 정책 보고서와 통계자료, 셋째, 「아동복리법」·「유아교육진흥법」·「영유아보육법」 등 관련 법령 원문이다. 자료는 보육 정책의 제도적 변화를 1차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정부·기관 문서, 보육교사의 노동 조건에 관한 양적 실태조사, 그리고 역사적 제도주의 또는 돌봄노동 이론을 적용한 선행 학술연구로 한정하였다. 분석은 개별 법령·정책과 해당 시행 전후의 보육교사 노동조건 통계를 시기별로 대응시켜 제도 변화와 노동조건 변화 사이의 시간적 선후관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본 연구의 역사적 문헌분석은 정책 변화와 노동조건 변화 사이의 인과 관계를 통계적으로 실증하는 것보다, 제도 변화의 역사적 경로와 그 경로의존적 메커니즘을 추적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음을 밝혀둔다.
2) 분석 수준과 변수의 구조화
본 연구의 분석 수준은 거시-중범위-미시의 세 층위로 구조화된다(Fioretos, Falleti, & Sheingate, 2016). 본 연구의 분석은 중범위 층위, 즉 구체적인 보육 관련 법령과 행정 체계, 자격 인정 제도, 재정 지원 구조 등 공식적 제도와, 보육을 여성의 모성적 역할로 규정하는 젠더화된 이념 등 비공식적 제도를 핵심 대상으로 한다. 거시적 층위인 복지국가 발전 경로와 국가-시장 관계의 역사적 구조는 이러한 제도 변화를 제약하는 배경 조건으로 제한적으로 다루며, 미시적 층위인 행위자 간 상호작용은 제도 변화가 보육교사의 노동 조건에 미친 결과를 해석하는 범위에서 부분적으로 참조한다.
3) 분석틀
본 연구는 특정 정책 변화를 결정적 분기점으로 명명할 때, 해당 변화가 (1) 이전 시기의 법적·행정적 틀을 실질적으로 교체하거나 변경했는지, (2) 이후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는 새로운 제도적 경로의 출발점이 되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였다. 반면 층화(Layering)는 기존 법령이나 지원 체계의 틀이 유지된 채 그 위에 새로운 지원 제도가 추가되는 경우에 적용하였고, 전환(Conversion)은 제도의 법적·행정적 구조 자체는 유지되나 그 운용 목적이나 대상이 달라지는 경우에 한정하여 적용하였다.
<그림 1>은 분석틀을 도식화한 것이다.
분석은 역사적 맥락(T-1)-즉 보육의 비공식 영역 시기-에서 출발하여, 공식화 초기(T)와 보육의 공공화 시기(T+1)를 거치면서 각 국면에서의 사회경제적 배경, 제도적 맥락,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이 보육노동의 공식화 수준과 노동 조건에 미친 영향을 추적하는 구조를 취한다. 이때 각 시기 사이에는 정책피드백에 의한 경로의존성이 작동하며, 결정적 국면에서의 선택이 다음 국면의 제도적 출발점을 규정하는 연쇄적 인과 과정이 분석의 핵심적 관심사가 된다.
4. 보육의 공식화 경로 분석1 : 선별적 복지기반의 양적 팽창과 민간 의존 경로의 형성(태동기-2000년대초)
이 시기 보육은 빈곤 가정과 저소득층·취업모의 자녀 등 특정 대상에 한정하여 국가가 개입하는 선별적 복지(Selective Welfare)의 성격을 띠었다. 보편적 시민권이 아니라 특정 취약 계층의 결핍을 사후적으로 보완하는 잔여적(Residual) 개입이었다는 점에서, 이 국면은 이후 보편적 보육으로 이행되는 제2국면과 뚜렷이 구별된다(Esping-Andersen, 1990).
본 장에서는 보육 제도의 공식화 초기인 태동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제도적 변화와 그 역학을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본다. 첫째, 보육 제도가 어떠한 사회·경제적 배경과 제도적 맥락 속에서 공식화되었는지 살피고, 둘째, 이러한 공식화 과정이 보육교사의 노동조건(임금, 노동 환경)과 자격 및 지위 인정 체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한다. 이를 통해 보육 현장의 노동 환경 문제가 지닌 역사적 연원을 규명할 것이다.
1) 제도적 맥락: 보육 정책 및 제도 변화
한국 보육의 역사적 뿌리는 1921년 서울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에서 시작된 탁아 프로그램에서 발견된다(유희정, 2004). 일제강점기 당시의 탁아는 빈곤 가정이나 취업모의 자녀들이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구빈적 차원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했다(박경자 외, 2013; 김은설 외, 2009). 이는 국가의 공적 책임보다는 종교 단체나 자선가들의 헌신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보육을 가정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임시로 보완하는 ‘잔여적 복지(Residual Welfare)’로 정의하는 역사적 유산을 남겼다(김혜인, 2012).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구호령(1944년) 하의 ‘보육원’ 설치를 거쳐, 해방 후 6.25 전쟁으로 발생한 전쟁고아와 빈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임시 구호적 성격이 강했다. 국가의 역할은 1952년 ‘후생시설 운영 요강’ 시달을 통해 민간 시설을 행정적으로 지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강영욱, 2002; 유희정, 2004). 이 시기의 보육은 일부 예외적 상황에 한정된 비공식적 구호 중심의 시기로 보육은 여전히 가정에서 사적차원으로 이뤄졌다.
1961년 제정된 「아동복리법」은 법정시설로서 탁아소의 설치 기준과 종사자 배치 기준을 명문화했다(조복희, 강희경, 김양은, 한유미, 2013)는 점에서 제도적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1960년대 국가는 경제 성장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고, 재정 부담을 회피하려는 정책적 선택의 결과로 1968년 ‘미인가 탁아시설 임시조치령’을 통해 「아동복리법」상 민간 개인의 탁아시설 설치 제한을 낮춰 민간의 참여를 대폭 유도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미비가 아니라, 복지 지출보다 산업 자본 축적을 우선시한 당시 국가 발전 전략 하에서 보육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강영욱, 2002). 이는 한국 보육 제도가 ‘민간 중심의 저비용 공급 구조’라는 경로를 밟게 된 계기가 되었다(김혜인, 2012).
「유아교육진흥법」 시기(1982년)는 보육이 교육의 틀 내로 강제 통합된 시기이다. 1980년대 정통성이 취약했던 신군부 정부는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복지국가 건설과 교육개혁을 국정 지표로 내세웠고, 유아교육을 역사상 처음으로 주요 정책 과제로 채택했다(나은경, 오경희, 2016).
「유아교육진흥법」은 당시 유치원, 어린이집, 탁아소 등으로 파편화되어 있던 영유아 관련 시설을 ‘유아교육기관’이라는 단일 범주로 묶어 개념적 일원화를 시도하였다(나은경, 오경희, 2016). 특히 기존의 탁아 시설을 ‘새마을유아원’으로 개칭하여 교육적 기능을 부여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이정욱 외, 2018). 새마을유아원은 짧은 기간에 수천 개가 설립되며 양적 팽창에는 성공했으나, 운영의 질적 수준은 담보되지 못했다.
특히 새마을유아원은 유치원과 마찬가지로 반일제 위주로 운영되었기에, 실제 보육 수요자인 맞벌이 부부와 저소득층의 종일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모순을 드러냈다(김혜인, 2012; 박경자 외, 2013). 이로 인해 탁아 본래의 기능이 왜곡되었고, 저소득층 아동들은 다시금 보육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나은경, 오경희, 2016). 이는 이후 민간의 자생적인 ‘지역사회 탁아소 운동’을 촉발하는 원인이 되었다(강영욱, 2002).
한편 유치원은 이 시기 이전부터 「교육법」(1949) 체계 아래 문교부(현 교육부) 소관의 학교 기관으로 제도화되어 있었다. 따라서 「유아교육진흥법」이 새마을유아원을 신설하여 보육 기능을 흡수하려 했음에도, 실제로는 이미 학교로 자리 잡은 유치원과 복지 시설로 편성된 유아원이 관할 부처·법적 근거·교사 자격을 달리한 채 병존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처럼 이 시기 형성된 학교 체제(유치원)와 복지 시설 체제(유아원)의 분리가 강력한 경로의존성을 형성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사 자격, 시설 기준, 행정 전달체계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경로가 병행 발전하면서,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될 유치원과 보육시설 그리고 부처 간 갈등의 토대가 마련되었다(나은경, 오경희, 2016; 유희정, 2004).
1980년대 후반, 산업화의 진전에 따른 여성의 사회 참여 급증과 핵가족화는 탁아 문제를 심각한 사회적 위기로 격상시켰고,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는 보육의 사회화 담론을 형성하며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다(박경자 외, 2013). 기존의 새마을유아원 체제로는 이러한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비판이 거세졌으며,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을 통해 직장 탁아 제도가 도입되는 등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박경자 외, 2013). 특히, 1990년 서울 망원동 지하 셋방 아동 질식사 사건은 보육 입법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강현구, 이순영, 2014).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91년 1월 「영유아보육법」의 제정은 보육의 공식화에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다. 이 법은 ‘탁아’라는 잔여적 구호 개념을 보호와 교육이 결합된 ‘보육’이라는 권리 기반 개념으로 법적으로 교체하였고, 이후 30여 년간 지속된 보육 법체계의 기본 골격을 형성하였다. 이는 기존 경로의 실질적 교체와 새로운 경로의 장기 지속이라는 결정적 분기점의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이영수, 2004; 박경자 외, 2013).
이 법은 ‘새마을유아원’을 ‘어린이집’으로 명칭을 환원하고 주무 부처를 보건사회부로 일원화하였으며, 0세부터 5세까지 모든 취학 전 영유아를 대상으로 설정하고 중앙 및 지방보육위원회와 보육정보센터를 설치하는 등 체계적인 전달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김혜인, 2012; 박경자 외, 2013). 이로써 보편적 보육 서비스로 나아갈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법 제정은 교육부와의 완전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보육을 유아교육 체계에서 분리한 결과였고, 유치원은 「교육법」 체계 하에,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 체계 하에 머물게 됨으로써 제도적 분절성은 더욱 심화되었다(김혜인, 2012; 나은경, 오경희, 2016; 박경자 외, 2013).
한편 이 법을 통해 보육 인력의 자격 체계가 법제화되었으며, 보육교사는 비로소 국가 시스템 내에서 직업으로서의 행정적 가시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또한 보육 시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보육교사’라는 직종은 본격적으로 대규모 임금 노동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 정부는 법 제정 이후 급증하는 보육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양적 확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에 따라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보육시설 확충 3개년 계획’을 수립·추진하였는데, 재정 부담 완화를 위해 장기저리 대출 등 민간 설립 유인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 결과 국·공립 시설 확충은 계획 대비 미흡했던 반면 민간보육시설은 목표의 237%를 초과 달성하며, 보육 서비스 공급체계의 거대한 민간 비중을 형성하게 되었다(유희정, 1999).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IMF) 이후에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생존의 문제로 직결되면서 보육은 국가 경쟁력을 지탱하는 필수적인 사회적 인프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 보육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민간 어린이집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였으며, 국가 재정 지원이 확대되면서 민간 어린이집은 운영에서 국가 예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게 되었고, 이에 따라 그동안 민간의 자율에 맡겨져 있던 보육 운영과 노동이 국가의 관리·감독 체계 안으로 한층 깊숙이 편입되었다(안미영, 2012).
1991년 「영유아보육법」의 제정을 통한 보육의 재정의 과정은 기존의 시장 공급기반의 시스템을 공공성에 기반하여 대체(Displacement)할 수 있는 기회였으나, 결과적으로는 기존 시스템에 층화의 수준을 넘지 못하였다(<표 1> 참조).
2) 노동환경 및 노동조건의 변화
보육의 공식화 과정은 보육교사의 노동을 ‘전문적 노동’으로 규정하기 시작했으나, 실제 노동조건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에 머물렀다. 1991년 「영유아보육법」 제정 이후 정부는 매년 ‘보육사업지침’을 통해 인건비 기준을 제시했으나, 이는 국공립 및 법인 시설에만 적용되는 권고 사항에 불과했다(유희정, 2004).
임금 측면에서 보육교사는 유사 직종인 유치원 교사나 사회복지사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았다. 보육 관련 국가 차원의 첫 실태조사인 2004년 ‘전국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보육교사의 월평균 보수는 112.6만 원이었으며, 특히 시설 유형별로 큰 편차를 보였다. 국공립 시설 교사가 평균 126.4만 원을 수령하는 동안 가정보육시설(놀이방) 교사는 72.3만 원에 불과했다(유희정, 이미화, 2004). 이러한 임금 격차는 국가가 인건비를 지원하는 국·공립 시설과 보호자 보육료에 의존하는 민간 시설 간의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 환경 또한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업무로 특징지어진다. 보육교사의 평일 평균 근무 시간은 10.2시간에 달했으며, 토요일 근무도 6시간 이상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받는 교사는 20.7%에 불과했다. 보육 업무 외에도 청소, 배식, 차량 지도, 각종 행정 공문 처리 등 지원 업무에 할애하는 시간이 길어 정작 영유아와의 상호작용이라는 본질적 전문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였다(유희정, 이미화, 2004). 특히 점심시간조차 아이들과 함께 식사하며 지도해야 하므로 실질적인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았다(<표 2> 참조).
물리적 환경 또한 열악하여, 보육시설 내 교사 전용 휴식 공간이나 사물함이 구비된 곳은 각각 28.2%, 59.4%에 불과했다(유희정, 이미화, 2004). 이러한 환경은 보육교사를 전문적 교육자가 아닌 기능적·보조적 인력으로 위치 지었으며, 이는 높은 이직률과 소진(Burnout)의 원인이 되었다.
보육 인력의 자격 체계는 보육의 성격을 규정하는 상징적 지표이다. 한국 보육 인력의 명칭은 ‘보모’에서 ‘보육사’, 그리고 ‘보육교사’로 진화하며 사회적 지위 인정의 역사를 반영해 왔다.
1960-70년대 보모(Nursemaid)라는 명칭은 보육을 가사 노동의 연장이나 여성 특유의 모성 본능에 기반한 돌봄으로 간주하던 인식을 반영한다. 이 시기에는 명시적인 자격 기준이 없었으며, 사회사업적 차원의 봉사자로 취급되었다(강영욱, 2002). 1982년 「유아교육진흥법」 시기에 접어들어 ‘새마을유아원 교사’ 명칭이 도입되고 유치원 정교사 자격 소지자를 우선 채용하도록 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전문 인력 부족으로 인해 자격 미달자가 양산되는 등 형식적 공식화에 그쳤다(서문희, 박지혜, 최진원, 2005).
1991년 「영유아보육법」 제정은 보육교사 명칭과 자격인정제도를 법제화함으로써 보육 인력의 지위를 처음으로 국가적으로 규정하였다. 국가는 보육의 전문성을 인정하기 위해 보육교사 1급과 2급으로 등급을 나누고, 전문대 이상의 관련 학과 졸업자나 보육교사교육원(1년 과정) 수료자에게 자격을 부여했다(서문희 외, 2005).
그러나 1년이라는 단기 양성 과정은 보육교사의 전문성을 유치원 교사와 차별화하는 동시에, ‘낮은 전문성’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하여 사회적 인정을 저해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했다(유희정, 2004).
3) 공식화에 따른 보육 노동의 변화
한국 보육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보육 서비스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공급의 90% 이상을 민간에 의존하는 ‘공공적 목적-민간적 수단’의 괴리이다.1) 1968년 ‘미인가 시설 임시조치령’과 1990년대 ‘보육시설 확충 3개년 계획’을 통해 고착화된 민간 중심의 공급 구조는 경로의존적 성격을 지닌다(김혜인, 2012). 한번 형성된 민간 시설 중심의 시장은 강력한 기득권을 형성하여, 이후 공보육 확대를 시도할 때마다 시장 경쟁 논리와 운영 손실 보전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의 개입을 제약해 왔다.
이러한 구조적 맥락은 보육교사의 노동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민간 운영자들은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건비를 최소화하고 교사의 노동 강도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국가는 이를 ‘민간의 자율성’이라는 정책적 기조 하에 제도적으로 방임하거나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이영수, 2004). 결국 보육교사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은 공식화 초기 단계에서 국가가 선택한 저비용 확장 경로의 결과물인 것이다.
보육 정책이 ‘보호’와 ‘교육’ 사이에서 직업 정체성 갈등을 겪어온 역사 또한 보육교사의 지위에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유아교육으로의 강제 통합과 1991년 복지 체계로의 분리 귀속은 보육교사의 업무를 가사 노동의 연장 혹은 단순 보호로 보는 시각과 전문 교육으로 보는 시각을 혼재하게 만들었다(안미영, 2012).
특히 보육 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돌봄과 감정노동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의 자연스러운 본성으로 간주되어 경제적 가치가 저평가되었다(유희정, 2004). 이러한 인식은 보육교사가 수행하는 전문적 판단과 정서적 지원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기게 하였고, 자격 인정 체계가 국가 자격으로 공식화된 이후에도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다.
태동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보육 제도의 공식화 과정은 외부의 사회·경제적 압력(핵가족화, 저출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책임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초기 형성 단계에서 고착화된 민간 중심의 보육 공급 구조라는 ‘민간 의존적 확장 경로’는 이후 보육제도의 고도화 과정에서도 여전히 보육교사 열악한 노동환경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5. 보육의 공식화 경로 분석2 : 보편적 복지로의 이행과 민간 의존 경로의 고착화(2000년대 중반-현재)
200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한국 보육의 공식화 국면은 초저출산 위기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라는 거시적 사회 변동 속에서 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이 전례 없이 강화된 시기이다. 이 시기는 2004년 「영유아보육법」 전면 개정과 2012년 ‘누리과정’ 도입을 거치며 보육 정책의 경로가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보육/보편적 복지’로 이행된 시기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팽창 이면에는 초기 형성 단계에서 국가 자원의 부족으로 채택했던 ‘민간 의존적 공급 구조’가 지닌 강력한 경로의존성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본 장에서는 이 시기의 제도적 맥락을 사회·경제적 배경과 함께 1절에서 통합적으로 살피고, 2절에서 보육교사의 노동환경 및 조건의 실태를, 3절에서 공식화 구조가 보육 노동에 미친 구조적 영향을 분석한다.
1) 제도적 맥락: 사회·경제적 배경과 보육 정책 및 제도 변화
200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은 초저출산(Ultra-low-fertility) 사회의 기준선인 1.3명을 하회하는 1.178명으로 급감하였다(통계청 ‘인구동향조사’). 이는 단순한 인구 감소를 넘어 노동력의 급격한 축소와 노령 인구 부양비의 폭발적 증가를 의미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보육을 더 이상 가계의 문제가 아닌 미래 인적 자원에 대한 국가적 투자로 재정의하고 본격적인 저출산 대책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또한 3세대 이상 가구는 급감한 반면 1세대 및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가정 내 돌봄 공백을 개별 가정이 감당하기 힘들게 되면서 이것이 사회적·국가적 책임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되었다(여성가족부, 2006; 보건복지부, 2013).
여성의 교육 수준 향상과 함께 경제활동 참여가 꾸준히 증가한 점도 공보육 확대에 중요한 배경이 된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1970년 39.3%에서 2010년 49.4%로 지속 상승해 왔으나, 주 출산 연령대인 30대 여성들이 육아 부담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이탈했다가 나중에 재진입하는 M-Curve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취업 중단 경험이 있는 어머니의 64.9%가 그 사유로 자녀 양육을 꼽을 만큼 독박 육아는 여성의 경력 단절을 야기하는 주요한 요인이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보육 인프라 확충은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보건복지부, 2022).
OECD 등 국제기구의 권고와 선진국들의 보육 정책 동향 역시 한국 정부에 큰 압박으로 작용했다. OECD는 영유아 교육과 보육을 ECEC(Early Childhood Education and Care)로 통합하고 공공 투자를 확대할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교육부·보건복지부, 2023). 2012년 누리과정 도입 당시 한국의 유아교육비 공공 부담 비율은 49.7%로 OECD 평균인 79.7%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보건복지부, 교육과학기술부, 2013). 이러한 인구학적 압력, 젠더화된 돌봄 구조의 한계, 국제 규범의 압박이 중첩되면서 정부는 정책 패러다임을 선별적 복지에서 보편적 공보육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보육을 국정과제로 삼아 「영유아보육법」을 전면 개정하고, 보육 사무를 보건복지부에서 여성부로 이관하며 공보육 정책 기조를 강력히 추진하였다(이은영, 2019). 이 시기 수립된 제1차 중장기 보육 기본계획(2006-2010) ‘새싹플랜’은 보육의 공공성 강화와 양질의 보육 서비스 제공을 정책 목표로 삼았으며,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지원을 위한 보육 서비스 공급을 강조하였다(윤정향, 마경희, 노대영, 2021). 민간 보육시설에 대한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던 상황에서, 국·공립 어린이집의 확충과 기본보조금 지원(민간 어린이집이 인가된 정원이 미달되어도 인건비와 운영비의 일부를 시설에 지원) 등 시설에 대한 직접 지원은 국가가 공급자에게 재정을 투입하여 서비스의 질을 관리하려는 공공성 강화의 지향을 담고 있었다(이미화, 여종일, 엄지원, 2012).
다만 이러한 공공성 강화는 이미 고착된 민간 중심 공급 구조를 해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구조를 유지한 채 국가의 재정 지원 체계를 위에 덧붙이는 층화의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 정책의 지향은 공공성 강화에 있었음에도, 1968년 이래 형성된 민간 의존 경로 자체는 전환되지 못한 채 유지되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보육 업무를 다시 보건복지가족부(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였고, 제1차 기본계획(새싹플랜)이 진행 중이던 시기에 이를 보완·수정하여 ‘아이사랑플랜(2009-2012)’을 발표하였다. 아이사랑플랜은 보육 재정을 어디에 투입하는가라는 정책 수단의 차원에서 새싹플랜과 구별되는 지향을 보였다. 새싹플랜이 시설, 곧 ‘공급자(시설)’에 대한 직접 지원을 통해 공급 자체의 공공성을 높이고자 했다면, 아이사랑플랜은 지원의 초점을 수요자인 학부모로 옮겨, 학부모의 선택권과 시장의 경쟁 기제를 통해 보육의 질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중산층까지 보육 서비스 혜택을 확대하는 ‘수요자 중심’ 정책을 내세웠으며, 이를 실현하는 핵심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 보육 바우처(아이사랑카드)이다(이은영, 2019; 박은미, 김소라, 2016).
이러한 지원 방식의 전환은 개별 정권의 이념적 성격으로 환원되기보다, 보육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경로에 관한 상이한 정책적 선택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결정적 분기점이자 전환(Conversion)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영유아보육법」이라는 법적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지원 방식이 시설 보조금에서 학부모 바우처로 바뀌면서 보육 정책의 운용 목적과 수혜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공립 시설의 양적 확충보다는 민간 보육 시설의 질을 국공립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공공형 어린이집’ 모델이 도입되어, 공공성의 확대마저 민간 시설을 매개로 추구하는 민간 의존적 성격을 띠었다(박은미, 김소라, 2016). 결과적으로 아이사랑플랜은 공보육 정책이 새로운 경로로 나아갈 수 있었던 분기점에서 민간 의존적 공공화를 선택한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학부모를 소비자로 위치시키는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어린이집과 교사에 대한 평가가 강화되면서 행정적·관료적 통제 체계가 자리 잡게 되었다(<표 3> 참조).
보편적 보육체제로의 이행은 아이사랑플랜 시기 후반부인 2012년 3월, 부모의 소득과 관계없이 정부가 보육료와 유아학비를 전액 지원하는 전 계층 무상보육제도인 누리과정의 도입을 통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1년 간의 5세 대상 시범사업 이후, 2013년 3월에는 3-4세까지 전면 확대 적용되면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모든 3-5세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 수준 공통 교육과정’이 실질적으로 수립되었다(보건복지부, 2013).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 복지체제로의 이행 선언은 인프라 확충 없는 비용 지원 방식이 지닌 구조적 모순을 드러냈다. 국가는 국·공립 시설의 직접 구축에 수반되는 거대한 재정 투입과 공급자 단체의 반발이라는 정치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민간 시장 구조를 온존한 채 재정 바우처를 제공하는 우회적 전략을 지속하였다. 이러한 정책적 선택은 역설적으로 민간 공급자들에게 안정적인 원아 수요와 운영 수익을 보증해 주는 결과를 낳았고, 결과적으로 민간 중심의 공급 인프라를 강력한 고착화 상태로 이끌어 국가의 공적 통제권 행사를 제약하는 경로의존적 장벽을 형성하였다(김근진, 문무경, 조혜주, 2018; 하연섭, 유영미, 2017).
이 시기 정부는 보육 인력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보육 교사 자격 요건을 상향 조정하였다. 이는 보육 교사를 단순 돌봄에서 영유아 보육 전문가로 재규정하려는 시도이나, 국가가 민간 기관 내부의 고용 및 임금 배분 구조까지 규제하지는 못하면서 시장적 수익성 논리와 충돌을 일으켰다. 정부는 처우 개선 요구에 대해 기존 틀을 유지한 채 수당만을 얹어주는 방식을 반복하였고(백선희, 2015; 양미선, 김동훈, 최윤경, 2018), 이는 여전히 처우와 사회적 지위가 낮아 보육 노동자에게 사회적 압력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유치원(교육)과 어린이집(보육)의 법적, 행정적 체계를 통합하는 ‘유보통합’이 2026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오랫동안 교육부 소관의 유치원과 보건복지부 소관의 어린이집으로 분리·운영된 이원적 체제는 영유아기 발달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아이들이 어떤 기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서비스의 질적 차이를 경험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유보통합은 이러한 분절된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여 모든 영유아에게 표준화된 품질의 교육과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부모의 양육 부담을 경감하며, 행정 및 재정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공식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교육부, 2024).
한국 사회에서 유보통합 논의는 1990년대 초반부터 영유아 교육과 보육의 질적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나, 부처 간의 주도권 다툼과 각 진영의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장기간 표류해 왔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통합이 지연된 원인이 단순히 행정적 조율의 어려움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치원 진영(교육부·사립유치원 단체)과 어린이집 진영(보건복지부·민간보육시설 단체)은 각자의 제도적 기반과 재정 지원을 유지·확대하고자 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각 진영의 조직화된 반대는 통합 시도가 있을 때마다 정책 동력을 약화시켰다(이정욱 외, 2018; 조부경 외, 2022). 이는 4장에서 확인한 민간 의존적 공급 구조가 형성한 기득권 구조의 정치적 산물로 볼 수 있다. 1997년 김영삼 정부 당시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는 3세 이상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유아학교’ 체제를 제안하며 통합의 초석을 다지려 했으나, 보육계가 기관 존립 기반 약화를 우려하며 강력히 반대하여 무산되었다. 이어지는 김대중 정부에서도 유아학교 체제 도입을 위한 법안 발의와 정책 연구가 추진되었으나, 여성계와 보육계의 반대 및 임기 말 동력 상실로 실질적 결실을 보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영유아보육법」 전부개정을 통해 보육 업무를 여성가족부로 이관하고 보편적 보육의 기틀과 공공성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보육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환원함으로써 2024년 6월 교육부로 이관되기 전까지의 ‘교육부(유치원)-보건복지부(어린이집)’ 이원화된 경로 의존성이 지속되게 되었다(송치숙, 박종배, 2019; 이정욱 외, 2018).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3-5세 공통 교육과정인 ‘누리과정’ 도입을 통해 내용적 통합은 일부 진전되었으나, 관리 부처와 재정 지원 방식의 이원화로 인한 행정적 혼란과 교사 처우 격차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았다. 최종적으로 윤석열 정부는 유보통합을 핵심 교육개혁 과제로 선포하고, 2023년 말 「정부조직법」 개정을 거쳐 2024년 6월 27일, 보건복지부의 보육 업무를 교육부로 완전히 이관함으로써 중앙 부처 차원의 관리 체계 일원화를 실현하였다(교육부, 2024; 송치숙, 박종배, 2019).
이처럼 현재 진행 중인 유보통합은 관리 부처를 교육부로 일원화하며 역사적인 제도적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도적 변화가 보육교사의 실질적인 노동권 보장과 처우 개선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제1차 중장기 계획의 한계가 보여주듯, 유보통합 역시 과거의 경로의존적 모순을 반복하는 외형적 공식화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점은 향후 극복해야 할 핵심 과제이다(<표 4> 참조).
2) 노동환경 및 노동조건의 변화
보육 공식화에 따른 노동 조건 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시설 유형 및 법적 지위에 따른 임금 체계의 이원화이다. 이는 어린이집 내부의 설립 유형 간 격차와 유치원-어린이집 간 지위 격차라는 두 층위에서 나타난다.
유치원 교사는 「유아교육법」에 근거하여 교육부 관할의 ‘교원’으로 인정받으며 안정적인 호봉제 급여를 보장받는다. 반면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영유아보육법」상 보건복지부 관할 하에 놓여왔으며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신분으로 분류되어 왔다(서영미, 2023). 이러한 신분적 차이는 보육교사의 노동을 공적 가치가 아닌 민간 시장의 임금 논리에 종속시키는 구조적 원인이 되었다. 나아가 국공립 유치원 교사는 「교육공무원법」에 의거하여 교육공무원 신분을 보장받는 반면(김경숙, 이성희, 2025), 국·공립 어린이집은 대개 지자체가 개인이나 법인에게 위탁 운영하므로 보육교사는 민간 근로자의 지위를 갖는다(김은영, 권미경, 조혜주, 2012; 송선이, 2020).
어린이집 내부의 임금 격차 또한 크다.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는 보건복지부의 인건비 지급 기준(호봉제)을 적용받아 경력에 따른 임금 상승이 보장된다. 그러나 전체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간 및 가정 어린이집 교사는 정부 가이드라인보다 「최저임금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거나 시설장의 재량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불안정한 구조에 놓여 있다. 2021년 ‘전국보육실태조사’(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300.7만 원)와 민간(257.2만 원)·가정어린이집 교사(249.2만 원)의 월평균 근로소득 격차는 여전히 뚜렷하다.
이러한 임금 체계의 분절은 현장에서 ‘경력의 역설’이라는 비합리적 관행을 고착화시켰다. 민간 및 가정 어린이집은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고호봉 교사의 채용을 기피하거나, 채용 시 의도적으로 경력 삭감을 요구하는 등 숙련된 노동력을 외면하는 경향을 보인다(김영, 김수정, 2021). 정부는 처우개선비 지급, 기본보조금 제도 도입 등의 정책을 시행해 왔으나, 이는 민간 의존적 공급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은 채 기존 구조 위에 새로운 지원 제도를 덧붙이는 층화의 형태를 반복함으로써 시설 유형 간 임금 격차를 구조적으로 해소하지 못했다. 2015년 기준 국공립 유치원 교사(233.4만 원), 사립 유치원(201.3만 원), 국공립 어린이집(210.4만 원), 민간 어린이집(163.4만 원)으로 나타나, 동일한 교육·보육 과정을 수행함에도 소속 기관의 법적 지위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차등 평가되는 구조가 지속되었다(보건복지부, 2017).
보육 공식화의 가장 두드러진 역설은 전문성 담론의 강화와 노동 자율성의 침해가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2004년 「영유아보육법」 전면 개정은 보육교사 자격 제도를 국가 자격 체계로 격상시킨 사건이다. 과거 민간 단체(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등)에 위탁되어 발행되던 자격증을 2005년부터 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의 국가 자격증으로 변경하여 정부가 직접 발급·관리하게 되었고, 1·2·3급의 승급 체계와 보수교육을 제도적으로 정교화하였다(서문희 외, 2005). 이는 보육교사를 ‘시설 종사자’에서 법적 전문성을 갖춘 ‘교육자’로 공인한 조치였으나, 현장에서는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확대하기보다는 관료적 관리 체계가 심화되는 기제로 작동하였다(김혜인, 2012).
2006년 본격 시행된 어린이집 평가인증제(현, 평가제)는 보육 환경과 운영 전반을 표준화하여 서비스 질을 상향 평준화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되었다(보건복지부, 2017). 그러나 평가인증제는 실질적 운용 방식이 현장 교사의 자율적 보육 실천에서 지표 달성을 위한 서류 관리 중심으로 변경되었다는 점에서, 공식화가 노동 과정을 재편하는 구체적 기제가 되었다. 보육 계획안, 관찰 기록, 안전 점검표 등 수십 종에 달하는 서류 작업은 일상적인 초과 근무를 유발하며 노동 강도를 비약적으로 높였고, 결국 전문성 담론을 매개로 한 공식화는 교사가 실질적인 교육 활동보다 ‘보여주기식’ 기록 활동에 매몰되게 하는 모순적 결과를 낳았다(이은영, 2019).
3) 공식화에 따른 보육 노동의 변화
2000년대 중반 이후의 보육 공식화는 민간 의존적 경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지 못한 채, 보편적 복지체제로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보육 노동의 서열화는 단순한 임금 격차의 문제를 넘어, 보육교사의 법적 신분, 직업 정체성, 사회적 인정이 복합적으로 위계화되는 방식으로 심화되었다.
특히 아이사랑플랜을 통한 전환(Conversion)은 보육 노동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재규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부모가 보육 서비스의 ‘소비자’로 위치 지어지면서, 어린이집의 존립과 교사의 고용 안정은 학부모의 만족도에 직결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이은영, 2019). 이는 보육교사를 전문적 교육 노동자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로 위치 지우는 권력관계의 재편을 수반하였다. 민간 및 가정 어린이집 교사는 원아 모집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학부모의 부당한 요구에도 전문적 권위를 행사하기보다 수동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며(이은영, 2019), ‘스마트 알림장’인 키즈노트는 실시간 소통이라는 편리함 이면에 학부모에게 보여줄 사진을 찍고 게시글을 작성해야 하는 ‘디지털 노동’을 부가하였다(박으뜸, 최인이, 2023).
이러한 시장화된 공식화의 구조는 보육노동의 서열화를 두 방향에서 심화시켰다. 첫째, 국공립-민간-가정 어린이집 간 임금 위계는 단순한 재정 지원의 차이가 아니라, ‘어떤 기관이 국가의 공적 보호를 받는가’라는 제도적 인정의 위계를 반영한다. 둘째, 어린이집과 유치원 간의 지위 격차는 ‘교원’과 ‘근로자’라는 법적 신분의 차이로 고착되어, 동일한 교육과정을 수행하면서도 다른 노동 가치를 부여받는 구조적 불평등을 낳았다. 결국 민간 의존적 경로 위에 시장화 기제가 덧씌워지는 층화의 반복은, 보육 노동의 공식화가 노동 조건의 실질적 상향 표준화로 이어지지 않는 ‘불완전한 공식화’의 핵심 메커니즘을 구성한다.
보육 공식화의 또 다른 구조적 모순은 전문성 담론의 강화가 역설적으로 과도한 보육 노동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국가는 보육교사를 ‘전문 교육자’로 공인하면서도, 그 전문성을 자율적 교육 실천이 아닌 표준화된 지표 달성과 행정 서류로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모순적 구조를 형성하였다.
이 역설은 세 가지 차원에서 작동한다. 첫째, 행정 노동의 과잉화이다. 조사에 따르면 보육교사는 하루 평균 3시간 21분을 행정 업무에 할애하고 있으며, 이는 보육 준비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높다(김영, 김수정, 2021). 특히 평가 기간에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서류 작업으로 인해 사직을 고민하는 사례가 빈번하며, 이는 제도의 본질인 보육의 질 개선보다는 행정에 매몰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윤정향 외, 2021).
둘째, 교육 노동의 인지적 과부하이다. 2019 개정 누리과정은 ‘유아 중심·놀이 중심’을 표방하며 교사에게 자율성을 부여했으나, 이는 역설적으로 교사의 인지적 노동 부하를 가중시켰다(민현지, 2021). 과거의 정형화된 지도서에서 벗어나 유아의 놀이 맥락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며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 하는 역할은 교사에게 고도의 전문적 역량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요구한다(이진선, 2023). 그러나 이 요구는 행정 노동의 경감 없이 추가된 것으로, 교사는 영유아의 생리적 욕구를 돌보는 업무에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놀이 주제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이중적 책무성에 시달리고 있다(정연주, 최지영, 2021; 민현지, 2021).
셋째, 감정 노동의 심화와 CCTV 통제에 따른 소진이다. Hochschild(1983)가 감정 관리(Emotional Management)의 상품화로 정의한 감정 노동의 심화와 결합하여, 보육교사들은 공적 사명감과 시장적 서비스 노동자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만성적인 직업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이은영, 2019). 또한 아동학대 예방을 명분으로 의무화된 CCTV는 보육교사를 잠재적 가해자로 상정하는 사회적 불신을 고착시켜, 교사들은 아이와의 신체 접촉을 피하거나 훈육 시에도 카메라를 의식하는 ‘방어적 돌봄’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시적 감시는 전문가로서의 자율적 판단을 침식하는 동시에, 보육교사가 스스로를 교육 전문가보다 ‘감시받는 노동자’로 인식하게 만드는 혼란을 낳는다(이은영, 2019).
요컨대 전문성 담론의 역설은, 국가가 보육교사를 전문 교육자로 호명하면서도 그 전문성의 내용을 행정 서류와 지표 달성으로 채움으로써, 보육 노동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노동과 소진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귀결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결국 돌봄노동의 공식화가 노동 주체의 전문성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기보다, 제도적 관리의 대상으로 위치시키는 ‘불완전한 공식화’의 또 다른 양상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보육 공식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돌봄과 교육의 이분화 구조는 오히려 제도적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이는 보육노동의 사회적 저평가(Undervaluation) 구조를 재생산하는 동시에, 보육교사의 직업 정체성 갈등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우선 제도적 차원에서 돌봄·교육 이분화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법적 신분 차이를 통해 구조화되었다. 동일한 누리과정을 수행하면서도 제도적으로 교육 노동과 돌봄 노동으로 분리되는 구조가 고착되었다(서영미, 2023). 이러한 법적 구분은 보육을 교육보다 하위에 위치시키는 전문성의 위계화를 초래하였으며(조부경 외, 2022), 어린이집 교사 스스로를 교육 전문가보다 ‘복지 서비스 종사자’ 혹은 ‘돌봄 노동자’로 인식하게 만드는 구조적 압박이 되었다(김길숙, 2016).
이러한 구조 속에서 보육교사는 2장에서 제시한 세 가지 직업 정체성-모성적 돌봄자, 권리 주체로서의 노동자, 전문 교육자-이 경합하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특히 이 시기에는 누리과정 도입으로 ‘전문 교육자’ 정체성이 제도적으로 강화되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모성적 돌봄자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열악한 노동 조건이 맞물리면서 ‘권리 주체로서의 노동자’ 정체성마저 온전히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보육교사는 자신의 권리를 주로 임금이나 노동 환경 같은 생존권적 근로 조건 측면에서 인식하는 반면, 유치원 교사는 교육권이나 교사 인권 같은 전문직적 권리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보이는데(구은미, 정혜영, 2016), 이는 보육교사가 교육의 질을 고민하기에 앞서 열악한 노동 환경을 견뎌내야 하는 환경에 놓여있음을 시사한다(이진선, 2023).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저평가 구조 역시 공식화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영아(0-2세)를 돌보는 과정에서 수유, 기저귀 갈기, 낮잠 지도 등 밀도 높은 돌봄 업무는 교육적 가치보다 단순한 신체적 수발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며(김은영 외, 2012), 이는 보육교사의 노동 가치를 저평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England, Budig, & Folbre(2002)가 지적하듯, 돌봄 노동은 여성 집중 직종이라는 이유로 시장에서 구조적으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으며, 자격 체계의 공식화만으로는 이러한 젠더화된 저평가 구조를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다. 실제로 영아교사는 아이의 비언어적 표현을 읽어내고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개별 발달 단계에 맞는 환경을 제공하는 고도의 전문적 역량을 발휘하지만, 이러한 역량은 제도적으로 보육이 교육과 분리되어 복지 영역에 머물러 있는 한 ‘전문성’이 아닌 ‘상냥함’이나 ‘인내심’ 같은 개인적 성품의 영역으로 환원되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다(손난희, 2017).
Tronto(1993)가 ‘돌봄의 정치(Politics of Care)’에서 주장한 바처럼, 돌봄 노동의 가치 재평가는 단순한 제도적 조정을 넘어 사회적 가치 인식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과제이다. 보육의 공식화가 보육교사를 ‘전문 교육자’로 호명하면서도 실질적인 처우와 사회적 인정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간극은, 결국 젠더화된 돌봄 노동의 저평가 구조가 공식화 과정에 내재화됨으로써 발생하는 ‘불완전한 공식화’의 핵심 증거이다.
6. 결 론
본 연구는 역사적 제도주의의 분석틀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비공식 영역에 머물렀던 보육이 공적 제도 내로 편입되어 온 과정을 추적하고, 보육의 공식화 과정이 보육노동의 성격과 조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분석의 결과를 종합하면, 한국 보육의 공식화는 급속한 산업화·근대화 속에서 외형적 팽창과 내적 모순이 공존하는 ‘불완전한 공식화(Incomplete Formalization)’의 경로를 밟아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때 ‘불완전한 공식화’는 법적 공식화의 선언이 실질적 노동권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메커니즘-즉 민간 의존적 공급 구조라는 경로의존성이 공식화의 각 국면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과정-을 포착하는 분석 개념으로 제안된다. 이 개념은 보육에 국한되지 않고, 요양보호사·장애인활동지원사·가사노동자 등 광범위한 돌봄 영역에서 진행 중인 비공식 노동의 공식화 과정을 분석하는 데도 적용 가능하다.
본 연구가 분석한 두 국면의 제도 변화는 하나의 공통된 인과 구조로 종합된다. 각 국면은 결정적 분기점에서의 선택이 층화(Layering) 또는 전환(Conversion)이라는 점진적 변화의 양식을 취하고, 그 결과가 경로의존성을 통해 다음 국면으로 고착·전달되는 구조를 공유한다.
제1국면(태동기-2000년대 초반)에서 1991년 「영유아보육법」 제정은 ‘탁아’라는 구호적(救護的) 개념을 ‘보육’이라는 권리 기반 개념으로 재정의하고, 보육교사를 국가 공인 자격을 갖춘 전문 노동자로 공인한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래 산업 자본 축적을 우선시한 국가 발전 전략 속에서 형성된 민간 중심 공급 구조를 해체하지 못한 채 그 위에 공적 자격·전달체계를 덧붙이는 층화에 그쳤다(김혜인, 2012). 국가가 보육의 공공성을 선언하면서도 서비스 공급은 여전히 민간에 위임하는 잔여적(residual) 복지 패러다임(Esping-Andersen, 1990)은, 보육교사의 노동환경을 시장 논리에 종속시키는 구조적 조건으로 다음 국면에 전달되었다.
제2국면(2000년대 중반-현재)은 저출산 위기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라는 사회적 압력에 대응하여 보편적 복지로서의 보편적 보육을 전면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영유아보육법」을 전면 개정하고 ‘새싹플랜’을 통해 국공립 확충과 기본보조금 등 공급자에 대한 직접 지원을 추진하였으나, 이는 이미 고착된 민간 중심 공급 구조를 해체하지 못한 채 그 위에 재정 지원을 덧붙이는 층화에 머물렀다. 이어 2009년 ‘아이사랑플랜’은 지원의 초점을 공급자에서 수요자로 옮겨, 학부모 바우처를 통해 시장의 선택 기제에 보육의 질 관리를 위임하는 전환의 형식을 취하였다. 이 변화는 개별 정권의 이념적 성격으로 환원되기보다, 보육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경로에 관한 상이한 정책적 선택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두 선택 모두 공급의 대부분을 민간에 맡기는 기존 구조 자체는 바꾸지 못하였고, 그 결과 민간 의존 경로는 해체되지 않은 채 층화와 전환이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되었다. 2012년 누리과정을 통한 보편적 보육으로의 이행 역시 이 경로를 넘어서지 못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학부모를 소비자로 위치시키는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어린이집과 교사에 대한 관료적 통제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공식화는 명(明)과 암(暗)의 양면을 지닌다. 긍정적 측면에서 공식화는 보육노동을 역사적으로 가시화하고 법적 보호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보모’에서 ‘보육교사’로의 명칭 변경과 국가 자격 체계의 수립은 보육을 단순한 모성적 봉사가 아닌 전문적 교육 노동으로 사회적으로 공인하는 계기가 되었다(이정욱 외, 2018). 인건비 국고 지원의 확대와 처우개선비 지급, 그리고 보수교육 강화를 통한 전문성 관리 체계의 정비는 보육교사의 직업적 지위를 제도적으로 격상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의 한계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첫째, 임금 체계의 이원화와 처우의 서열화가 구조적으로 고착되었다.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와 민간·가정 어린이집 교사 간의 소득 격차는 여전히 지속되며, 이러한 격차는 처우개선비 지급과 같은 층화 방식의 정책 개입이 민간 의존적 공급 구조를 바꾸지 못하는 한 구조적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둘째, 평가제와 CCTV 의무화로 대표되는 관료적 감시·통제 체계가 강화되었다. 보육일지, 관찰기록, 안전점검표 등 수십 종의 서류 작성 의무는 보육의 본질적 가치인 아동과의 관계적 상호작용을 침식하는 소외된 노동을 낳았다. 이는 관리 체계가 강제한 감정 노동의 심화와 결합하여, 보육교사들이 전문성과 복지서비스 노동자의 역할 사이에서 만성적인 직업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게 만드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셋째, 돌봄노동의 사회적 저평가(undervaluation)가 공식화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본 연구가 5장에서 확인하였듯이, 돌봄과 교육의 제도적 이분화는 보육교사의 직업 정체성 갈등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돌봄 노동을 개인적 성품의 영역으로 환원함으로써 저평가 구조를 재생산하였다. England 외(2002)가 지적하듯, 돌봄 노동은 여성 집중 직종이라는 이유로 시장에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으며, 자격 체계의 공식화만으로는 이러한 젠더화된 저평가를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다. 이는 돌봄 노동의 가치 재평가가 자격 체계의 정비와 같은 제도적 조정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돌봄을 여성의 자연적 역할로 간주해 온 사회적 가치 인식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과제임을 보여준다.
현재 추진 중인 유보통합은 40여 년에 걸친 이원화된 보육 제도의 분절을 종식하고, 모든 영유아에게 보편적이고 균등한 교육·보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조부경 외, 2022). 그러나 본 연구의 분석이 시사하듯, 행정 체계의 통합이 보육노동 조건의 실질적 개선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앞서 확인한 경로의존성의 논리에 따르면, 행정 통합이라는 분기점에서 민간 의존적 공급 구조와 이원화된 임금 체계를 실질적으로 해소하는 선택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유보통합은 과거의 변형을 반복하는 또 하나의 불완전한 공식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Daly & Lewis(2000)가 사회적 돌봄(social care) 개혁에서 강조하였듯, 돌봄 제도의 지속 가능성은 서비스 수요자뿐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 조건 개선을 제도의 중심에 두는 것을 전제로 한다. 유보통합이 보육교사의 직업 정체성을 ‘복지 서비스 종사자’가 아닌 ‘전문 교육자’로 실질적으로 재구조화하기 위해서는, 처우의 상향 표준화와 노동 과정의 자율성 확대, 그리고 보육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위한 구조적 개입이 통합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가 한국 보육 공식화 과정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것은 보육에 국한된 함의를 넘어선다. 돌봄의 공식화는 누가 돌봄을 수행하는가, 그 노동에 어떤 가치가 부여되는가, 그리고 그 가치를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권력과 정의의 문제이다(Tronto, 1993). 이는 여성에게 집중되어 온 돌봄이 공적 제도로 편입되는 과정이 곧 젠더화된 노동의 가치가 국가·시장·가족의 권력관계 속에서 재배치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다만 본 연구는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첫째, 거시·중범위적 제도 분석과 노동 주체가 겪는 미시적 결과를 하나의 논문 안에서 다루면서, 각 층위 간의 정합성을 모든 국면에서 동일한 밀도로 규명하지는 못하였다. 둘째, 행위자의 전략적 선택과 권력관계를 분석에 포함하면서도, 각 시기 보육 정책의 방향을 좌우한 행위자 집단, 곧 각 정부 부처, 시설장 및 교사 단체, 학부모 등의 협상과 갈등, 전략 등을 미시적으로 실증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계는 두 방향의 후속 연구를 통해 보완될 수 있다. 첫째, 민간 의존적 공식화가 개별 보육교사의 노동 경험과 직업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규명하는 질적 연구이다. 둘째, 각 제도 변화의 국면에서 각 정부 부처, 시설장 및 교사 단체, 학부모 등 행위자 집단의 조직화와 권력관계가 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좌우했는지를 실증하는 행위자 중심의 연구이다. 이 두 과제는 본 연구가 밝힌 제도적 경로의존성의 메커니즘을, 그것을 실제로 살아내고 또 형성해 온 노동 주체와 행위자의 관점에서 재조명함으로써 돌봄노동 공식화 연구를 심화할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유보통합과 돌봄 영역의 폭넓은 제도적 재편이 보육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돌봄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을 중심에 두는 방향으로 설계되기를 기대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3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3S1A5B5A17090013).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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