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5 , No. 2

[ Article ]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4, No. 4, pp. 133-159
Abbreviation: jss
ISSN: 1976-2984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Oct 2023
Received 20 Aug 2023 Revised 25 Sep 2023 Accepted 15 Oct 2023
DOI: https://doi.org/10.16881/jss.2023.10.34.4.133

‘취약성’의 제도화?: 인문사회 분야 IRB의 ‘취약한 대상’ 연구 심의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쟁점
권수빈 ; 김선기 ; 정성조 ; 차현재 ; 이상길
안동대학교
연세대학교
중앙대학교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Institutionalization of Vulnerability: Issues from IRB Reviews of Vulnerable Subject Research in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Subin Kwon ; Sungi Kim ; Seong-Jo Jeong ; Hyunjae Cha ; Sang-Gil Lee
Andong National Univ.
Yonsei Univ.
Chung-Ang Univ.
Yonsei Univ.
Yonsei Univ.
Correspondence to : 김선기,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수료,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 5가길 21, 4층, E-mail : fermata@culturalpolitics.kr


초록

이 연구는 인문사회 분야 IRB 심의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취약한 대상’ 연구 심의의 갈등 양상과 쟁점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취약한 대상을 연구하는 인문사회과학 연구자 27명의 IRB 심의 경험을 초점집단면접을 통해 조사하였다. 연구 결과, 취약한 대상 연구와 관련하여 연구자들은 주로 IRB와 두 가지 측면에서 갈등을 경험했다. 첫째, 취약한 대상을 다루는 연구에 대해 과도한 심의 기준이 적용되었다. 둘째, IRB가 연구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이며 형식적인 서면동의서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갈등이 지속되는 원인 중 하나로, IRB와 인문사회 연구자 간의 연구윤리와 취약성에 대한 인식 격차가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IRB에 비해 인문사회 연구의 위험성을 대체로 낮게 평가하였으며, 취약한 대상의 정의를 맥락의존적으로 인식하여 IRB의 대상특정적인 정의와 차이를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갈등 상황에서는 취약 집단에 대한 연구가 제약되고 심의 과정에서 취약한 집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개입되는 등 IRB가 오히려 취약성을 제도적으로 재생산하는 모순적인 결과가 반복되고 있다.

Abstract

This study identifies issues from IRB reviews of research on vulnerable subjects in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To this end, the IRB review experiences of 27 researchers who studied vulnerable subjects were investigated through focus group interviews. Results showed that researchers were experiencing conflicts with IRBs from two main aspects. First, excessive deliberation standards are applied when dealing with vulnerable subjects. Second, an IRB's request for formalized informed consent was recognized as a problem. A gap in the awareness of research ethics and vulnerability between the IRB and the researchers was identified as the cause of recurring conflict. Researchers generally evaluated the risks of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research as low, compared to the IRBs, and recognized the definition of a vulnerable subject in a context-dependent manner, which was different from the subject-specific definition held by IRBs. Such a conflict is problematic because it leads to institutional reproduction of the vulnerability of vulnerable subjects, restricting research on vulnerable groups and intervening with social prejudice against vulnerable groups in the review process.


Keywords: Institutional Review Board (IRB), Human Subject Research, Vulnerable Subjects, Vulnerability, Research Ethics
키워드: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인간대상연구, 취약한 연구대상, 취약성, 연구윤리

1. 서 론

인간대상연구 수행에 있어 연구자와 기관생명윤리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 이하 IRB)는 연구대상자의 안전과 권리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두어야 한다. 2012년 개정되어 2013년에 시행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이하 생명윤리법)에 따르면, 인간대상연구는 “사람을 대상으로 물리적으로 개입하거나 의사소통, 대인 접촉 등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수행하는 연구 또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하는 연구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연구”를 뜻한다. 현재 생명윤리법에 따라, 인간대상연구를 수행하는 기관, 즉 교육기관, 연구기관, 병원 등은 모두 IRB를 설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IRB는 연구의 과학적 윤리적 측면에 대한 심의, 조언, 지도, 승인을 수행하며, 연구를 감시하는 권리를 가지고 연구대상자를 보호하여야 한다. 특히, 연구대상이 취약한 개인이나 집단일 경우, 이러한 보호의 필요성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생명윤리법 제3조 5항에 따르면 “취약한 환경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은 특별히 보호되어야 한다.” 취약한 대상자들을 포함하는 연구에는 일반적으로 더 많은 보호 조치가 요구되는데, 이에 수반되는 복잡한 서류작업 및 절차는 이들이 연구에 참여하는데 하나의 장벽이 되기도 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취약한 대상자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참여를 최대한 확보해야 하는 어려운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생명윤리법 제10조 제3항 제3호 나목에서는 IRB가 취약한 연구대상자 등의 보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에서는 취약한 연구대상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범주가 제시되고 있지 않지만,1)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이하 생명윤리법 시행규칙) 제13조에서는 취약한 환경에 있는 피험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 대한 심의면제가 허용될 수 없다고 언급하며, 여기서 말하는 취약한 환경에 있는 피험자란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별표 4 제2호 더목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에 따르면, 취약한 환경에 있는 시험대상자(vulnerable subject)란 임상시험 참여와 관련한 이익에 대한 기대 혹은 참여 거부 시 상급자로부터 받게 될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자발적 참여 결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대상자( 의과대학 · 한의과대학 · 약학대학 · 치과대학 · 간호대학 학생, 의료기관 · 연구소의 근무자, 제약회사의 직원, 군인 등), 불치병 환자, 집단시설에 수용된 사람, 실업자, 빈곤층, 응급상황의 환자, 소수 인종, 부랑인, 노숙자, 난민, 미성년자 및 자유의사에 따른 동의를 할 수 없는 사람을 포함한다. 따라서 현재 IRB가 심의하는 연구에서 이른바 ‘취약한 대상’에 대한 정의는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이 유일하게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IRB의 심의가 불완전하고 불투명한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인문사회 연구자들이 IRB 심의에 불만을 품거나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취약한 대상 관련 연구는 특히 예민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RB 심의와 관련한 갈등과 쟁점들에 대해, 실제 심의를 받는 연구자들의 인식과 입장에 천착해 이를 드러내는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이 연구에서는 ‘취약한 대상’을 다룬 연구 경험이 있는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IRB 인식과 대처 방식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갈등 양상을 파악하고, IRB와 연구자 집단 사이에서 나타나는 취약성 및 연구윤리 인식의 차이를 분석하였다. 갈등 상황에 대한 기초적인 탐색과 분석이 향후 실효성 있는 개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연구는 IRB 심의 경험이 있는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 27명을 대상으로 2022년 수행된 초점집단면접(FGI) 조사에서 특히 ‘취약한 대상’ 연구 관련 응답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연구참여자 특성은 <표 1> 참조). 면접은 거주지역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Zoom을 이용한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되었다. 면접 내용은 참여자들의 IRB 심의 경험과 갈등 및 쟁점 인식을 주제로 구성되었으며, FGI의 방법론적 장점을 살려 참여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풍부한 사례 도출을 도모하였다. FGI는 반구조화된 질문지에 따라 진행하였다. 크게는 연구참여자 각각의 IRB 심의 경험을 나누고, 그 경험을 통해 생각하게 된 현행 IRB 심의 체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관해 참여자들이 골고루 발언할 수 있도록 질문하였다. 이후 취약한 대상 연구와 관련하여 취약한 대상 연구에 대한 IRB 심의가 다른 연구 심의와 차별점이 있다고 보는지, 있다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였다. 나아가 연구진이 문헌자료 등을 통해 파악한 취약한 대상에 대한 IRB 심의의 쟁점을 소개하고, 참여자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었다. 면접은 집단별로 2시간 정도 실시되었고, 모두 녹취 및 전사되었다.

<표 1> 
연구참여자 정보
기호 전공 소속/직위 심의경험(회)
R1 심리학 대학원생 1
R2 심리학 대학원생 1
R3 교육학 민간기관 재직 1
R4 가족상담학 대학원생 1
R5 사회학 대학원생 10
R6 심리학 대학원생 4
R7 심리학 대학원생 1
R8 심리학 대학 전임 4
R9 인류학 대학 비전임 1
R10 사회학 대학 비전임 2
R11 디자인학 대학원생 1
R12 사회복지학 대학원생 4
R13 사회복지학 대학원생 5
R14 심리학 대학 전임 5
R15 사회학 대학원생 1
R16 심리학 대학 비전임 3
R17 아동가족학 공공기관 재직 21
R18 사회복지학 공공기관 재직 4
R19 교육학 대학원생 1
R20 사회복지학 대학 비전임 4
R21 사회복지학 공공기관 재직 4
R22 사회학 대학원생 3
R23 사회복지학 대학원생 2
R24 사회학 대학원생 1
R25 사회복지학 대학원생 1
R26 사회학 독립연구자 1
R27 과학기술학 대학 비전임 1

참여자들의 특성을 정리하면, 소속/직위별로는 대학원생 15명, 대학 교원 7명, 공공연구기관 연구자 3명, 민간연구기관 연구자 1명, 독립연구자 1명이었고, 전공별로는 심리학 전공자 7명, 사회복지학 전공자 7명, 사회학 전공자 6명이었으며, 그 밖에 교육학 전공자 2명, 아동가족학 전공자 2명, 인류학, 디자인학, 과학기술학 전공자가 각각 1명이었다. 참여자들의 IRB 심의 경험은 최소 1회에서부터 최대 21회에 이르기까지 넓은 분포를 보였다. 초점집단면접에서 나온 발언을 본문에 인용하는 경우, 괄호 안에 R1부터 R27까지의 기호를 사용하여 발언자를 표시하였다.

본문에서는 우선 연구의 주제와 관련한 선행 논의를 탐색한 후(2장), 먼저 FGI 결과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인문사회연구자와 IRB 간의 갈등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3장). 특히 취약한 대상 연구 과정에서 IRB의 과도한 심의 기준 적용 및 형식화된 서면동의의 문제로 인한 연구의 제약 사항을 탐색하고자 한다. 이어서 IRB와 인문사회 연구자 간의 인식 격차를 조명하고(4장), 이러한 격차가 어떻게 ‘취약성’의 제도적 재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분석할 것이다(5장). 이를 통해 인문사회 연구에서 취약한 대상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윤리적 고려와 제도적 갈등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2. 논의의 배경: IRB와 연구윤리, 그리고 ‘취약한 대상’

이 장에서는 먼저 IRB가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윤리와 어떠한 면에서 충돌을 일으킬 수 있으며, 특히 ‘취약한 대상’의 연구에는 어떤 문제점들을 야기할 수 있는지 국내외의 기존 논의를 중심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우선 인문사회 분야에서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가 초래하는 부정적 영향을 다룬 몇몇 선행연구가 존재한다. 이들 연구는 인문사회과학 연구에 대해 IRB가 행사하는 제약 및 검열을 중점적으로 고발하며, 연구의 진행 과정에 부과되는 과도한 제약과 그에 따른 연구자의 자유 제한을 지적한다. Noue와 Bush(2010)는 미국 대학 IRB의 인문사회 연구에 대한 지나친 검열을 비판하였다. IRB는 사회과학 및 인문학 연구를 생의학적, 심리학적 관점으로 판단하며 인문학, 사회과학, 저널리즘 분야 연구자들에게 잠재적인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Noue & Bush, 2010). 비슷한 맥락에서 Dingwall(2008, pp. 8-9)은 IRB의 사회과학 연구물에 대한 검열은 미국 수정헌법 제1초를 위반하는 것이며 표현의 자유, 논평의 자유, 질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 비판하였다.

Schrag(2010)는 저서 <윤리적 제국주의>(Ethical Imperialism)에서 미국 사회과학 연구 영역에서 이루어진 IRB의 역사적 발전과 그 영향력에 대해 비판적으로 탐구하였다. 저자는 인터뷰와 다양한 문헌 고찰 등을 토대로, 본래 의학 연구를 위해 고안된 IRB 규정이 사회과학에 적용되면서 사회과학자들을 부당하게 제약하고 심지어 침묵시키는 ‘윤리적 제국주의’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IRB는 보통 연구의 초기 단계부터 학자들을 통제하는 경향이 있다(Schrag, 2010, p. 2). 특히 구술사 연구나 인류학의 연구들은 대부분 연구를 시작할 때 특정 인물을 정해서 만나거나 어떤 질문을 할지 미리 결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에 IRB의 규제는 과도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저자는 인문사회과학 연구의 IRB 심의위원 중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연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위원이 반드시 포함되지 않을 수 있기에 문제적이라고 주장한다.

인문사회 분야의 IRB 심의와 이를 통해 강제되는 연구윤리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취약한 대상 연구와 관련해서 특히 첨예하게 나타난다. 취약한 대상의 정의 및 연구윤리의 규범적 문제의 충돌은 의학 및 임상시험 분야에서 부각되었으며(Leavitt, 2006; Park & Grayson, 2008; Rhodes, 2005), 이후 인문사회분야로도 확장되었다. 의학 분야에서도 취약한 인구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강압이나 지식 또는 이해 부족으로 의학 연구 과정에서 오용될 위험이 있는 인구”(Park & Grayson, 2008), “연구와 관련하여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된 인구”(Leavitt, 2006) 등으로 정의되며 이에는 어린이, 수감자, 임산부 등 다양한 집단이 포함된다. 이들의 보호 필요성은 역사적으로 피험자가 착취되었던 사례, 예를 들면 나치의 잔혹한 실험, 미국의 터스키기 매독 실험 등으로 인해 대두되었다. 뉘른베르크 강령의 탄생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나치 실험에 대한 반응이었고, 이는 후에 헬싱키 선언의 기반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벨몬트 보고서는 취약 집단의 보호 원칙을 제시하였으나, 현재의 방식은 취약한 집단을 연구에서 배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의 취약성을 더 높일 수 있다는 비판 또한 제기되었다(Andrews & Davies, 2022).

Levine 등(2004)의 연구는 연구참여자의 취약성(vulnerability)에 대한 이해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Levine et al., 2004, pp. 46-47). 이에 따르면, ① 취약성이 너무 넓게 해석되어 모든 사람이 취약한 집단으로 분류된다면 이 개념은 너무 모호해져 의미가 없어질 수 있고, IRB는 제한된 주의와 자원을 적절한 곳에 쓰지 못할 수 있다. ② 집단의 특성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제도적 환경 혹은 참여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맥락에 부주의하게 되고 일률적으로 취약한 집단을 설정하는 것은 부적절한 일반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연구 참여 기회를 제안할 수 있다. ③ 취약한 집단 설정은 실제로 고려할 필요가 있는 특수한 특성을 가진 집단 내 개인과 그렇지 않은 개인을 구분하지 않고 전체 범주의 개인을 대상으로 삼는다. 집단의 구성원은 취약한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취약한 것은 아니며, 특정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국내 IRB에서 인식하는 취약한 대상은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의 기준에 따른다는 점에서 주로 임상시험에서 도출된 취약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임상시험 연구보다 상위 개념에 해당하는 인간대상연구 전반에 걸쳐 이러한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취약성의 개념을 무분별하게 확장할 수 있다(유수정, 최슬비, 김은애, 2020). 이처럼 IRB의 엄격한 보호 조치로 인해 취약한 대상에 대한 연구가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결국 취약한 대상을 위한 사회적 필요성과 가치가 인정될 수 있는 연구물들의 생산이 억제될 수 있다. 주류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와는 달리, ‘주변화된 인구 집단(marginalized population)’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수행할 때 연구자에게 주어지는 IRB의 끝없는 질문 세례는 연구자들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Castañeda & Smith, 2023). 또한 취약한 대상 집단에 대한 과도한 심의는 종종 이같이 접근하기 어려운 인구 집단에 대한 사회과학 연구의 이점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의 크기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최근에는 IRB가 취약한 대상을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소 대표된 집단(under-represented groups)의 포함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Friesen et al., 2023; Gelinas et al., 2023). 관련하여 국내 연구에서도 연구의 목적과 특성을 고려하여 연구의 위험 수준이 최소위험 이하인 연구에 대해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판단 하에 보호대상아동의 찬성만으로도 연구 수행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최현이, 유수정, 2023, 62쪽), 연구대상이 지적장애인일 필요가 있는 연구에서, 이들을 연구대상자로서 배제하는 대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여 연구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유수정 외, 2020, 20쪽) 등이 논의되고 있다.

특정 집단을 일괄적으로 ‘취약하다’고 분류하는 것은 해당 집단의 자발적 연구 참여를 억제하고 그들의 공헌을 제한하는 한편, 부정적인 선입견을 강화하고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게 된다. 이러한 정의는 특정 집단을 나열하고 강조하는 동시에, 그들이 왜 취약한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방법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유수정 외, 2020, 3쪽). 이는 결국 그러한 기준이 취약한 집단을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유수정 외, 2020, 7쪽). Schrems (2014)는 같은 맥락에서 취약성의 정의를 개인이 속한 사회집단에 기인하는 방식이 아닌 맥락과 상황 안에서 개인이 연구자와 연구 맥락에 의존하는 정도에 따르는 관계적 윤리의 개념으로부터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관련된 연구들이 진행된 바 있다. 특정 집단을 본질적으로 취약한 집단으로 분류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김은애, 2022, 213쪽), 연구대상자의 취약성에 대한 정의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유수정 외, 2020, 10쪽) 등이 있었다.

한편 충분한 정보에 기초한 동의(informed consent)를 받는 것은 IRB가 연구자가 연구를 윤리적으로 수행했는지 판단하기 위한 절차에서 핵심이 되는 사항이다. 생명윤리법에 따르면, ‘동의 능력이 없거나 불완전한 사람’이 연구대상자인 경우, 대리인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제16조 제2항). 서면동의 면제 요건을 갖춘 특수한 경우에는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동의를 면제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대리인의 서면동의는 면제되지 않는다(제16조 제3항). 예를 들어, 연구대상자가 18세 미만인 아동인 경우, 부모 등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이를 받지 못하면 연구 수행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러 연구자는 취약한 대상을 포함한 연구에서 충분한 정보에 기초한 동의를 얻기 위한 서면동의서가 때로 연구의 진행과정에 해를 끼치기도 하고,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우선 서면동의서는 실제로 더 많은 연구되어야 할 집단의 연구 참여를 저해할 수 있다. 사전동의 원칙이 예컨대, 소수집단 및 범죄화된 집단에 대한 연구, 미등록 이민자, 성노동자, 비행 청소년 등에 대한 연구를 방해한다는 것이다(Heimer & Petty, 2010; Musoba et al., 2014). 서면동의서가 필요한 이유는 참여자들이 연구에 관한 모든 사항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약한 대상이나 특정 소수집단의 경우,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법적 상황으로 인해 서면동의서를 통한 공식 절차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그들이 불법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활동에 관련되어 있을 경우, 공식 문서에 서명하는 것은 그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연구자가 참여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추가적 노력이 필요하며, 때로는 기존의 서면동의서 절차를 수정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사전동의 절차와 관련해 또 다른 난점을 제기한다. 현재 국내의 연구윤리 규정에 따르면, 특정 연령 이하의 아동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경우 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생명윤리법 제16조 제2항). 하지만 아동이라 할지라도 성숙도와 이해도, 의사소통 능력에 개별적인 차이가 있으며, 특히 성인의 나이에 다다른 아동의 경우 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 생명윤리법은 특정 연령에 도달하지 못한 아동을 모두 동일하게 취급하여 대리인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18세라는 기준 연령 자체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따라서 단순히 연령 뿐만 아니라 성숙도와 이해력 등을 고려하여 연구 참여 동의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최슬비, 김은애, 2019, 7쪽). 더욱이 특정 연구주제에 따라서는 법정대리인으로부터 동의를 받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할 때, 연구대상자는 자신의 성적 지향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연구 참여를 거부할 수도 있다(최현이, 유수정, 2023, 56-57쪽). 이외에도 약물 남용, 가정 폭력, 성적 학대 등의 민감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할 때,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는 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된다. 이 경우 대리동의의 획득은 아동 연구대상자를 보호하기보다, 도리어 사생활 침해라는 이슈를 야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최슬비, 김은애, 2019, 5쪽). 이같은 맥락에서 성소수자 청소년에 대한 부모 동의의 면제를 허용할 것을 요청하는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Smith & Schwartz, 2019).

마지막으로, 취약한 대상에 대한 IRB 기준의 기계적인 적용으로 연구윤리에 대한 고민이 축소될 때, 연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긴장과 변화를 통해 연구자의 주관성과 연구의 지평이 생산적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Slovin & Semenec, 2019). 특히 질적 연구 과정은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순간들이 교차하며, 연구자 자신도 연구 과정을 통해 변화하는 존재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문사회 연구에서는 연구 계획 자체보다 연구의 분석과 연구 결과의 보고 단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은 참고할 만하다(Nelson, 2004).

종합해보자면, 국내외 선행연구들은 IRB의 과도한 연구 검열 및 제약 부과로 인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인문사회과학 연구에서는 IRB의 규제가 연구자의 연구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여, 결국 필요한 연구를 부당하게 억제하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 연구의 핵심 주제인 ‘취약한 대상’과 관련해서도 여러 연구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취약성 개념이 지닌 이론적·실질적 한계, 연구 현실과 상충하는 부분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기존 논의와 연구성과들을 바탕으로 이 연구는 ‘취약한 대상’ 연구를 둘러싸고 인문사회과학 연구자와 IRB 간의 어떠한 갈등이 발생하는지, 그 구체적인 양상과 함의는 무엇인지, 향후 어떤 개선 방안이 가능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취약 집단(아동·청소년, 장애인, 성소수자, 탈북민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여러 위치의 연구자들(대학원생, 대학교수, 민간연구기관과 공공연구기관 연구원, 독립연구자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내 현실과 연구 상황에 맞게 관련 문제들을 조명하고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취약한 대상에 대한 연구와 IRB 심의에 어떠한 문제와 도전이 있는지를 깊게 탐구하고자 한다.


3. 취약한 대상 연구 심의에서의 갈등 양상

연구자들이 IRB에서 취약한 대상 연구와 관련해 경험하는 갈등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과도한 심의 기준 적용이다. 심의 기간이 장기화되고 연구자 개인으로서는 무리한 위험 대책 마련, 연구자 자격 검증 등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로 인해 갈등이 빚어졌다. 둘째, 서면동의서 문제다. 서면동의서의 일률적 양식 적용 및 형식화를 비롯해, 법정대리인 동의서 제출과 같이 연구 내용을 고려하지 않은 IRB의 무리한 서면동의서 제출 요구가 주된 갈등 요인으로 드러났다.

1) 과도한 심의 기준 적용

연구자들에게 취약한 대상을 연구한다는 것은 IRB 심의에 있어 “허들”(R12, R22)을 만드는 일로 여겨진다. IRB가 취약한 대상 연구의 위험성을 과도하게 높게 평가할 뿐 아니라 다른 기준의 전문성을 요구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취약한 대상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은 “형식적이고 까다로운 수정 요구”(R21)를 받았거나 “편파적으로 심의가 진행”(R14)됨을 경험했다. IRB가 “공통적인 기준 없이”(R15), “차별적”(R14)으로 “과도한 심의 기준을 적용”(R18)하고 일종의 “취약한 대상 프레임”(R21)을 씌운 채로 심의를 진행한다고 느꼈다. 연구자들은 취약한 대상을 다루고 있다는 자체가 IRB 심의에서 문제가 됨을 지적했다.

구체적인 기준을 근거로 해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때 심사를 맡은 사람의 개인의 의견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의 자격 유무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편파적으로 진행된다라고 느끼게 되거나 어떤 주제에 대해 되게 차별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심정이 되다 보니 더 막막한 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R14)

‘왜 이렇게 이거를 승인 안 해주는 거냐, 그러니까 우리 학교에서 성소수자로 석사 논문을 쓸 수 없다라고 하는 거 진짜 심각한 문제 아니냐’ (R15)

이 때문에 심의 기간이 장기화되었다. “한 학기 이상”(R14) 심의를 진행한 경험에 다수였다. 자살을 주제로 한 연구를 진행한 R16은 학과 내에서 “한 번 정도 리젝되는 건 다 감수하는 문화”가 형성될 만큼 심의가 어렵게 진행된다고 술회했다. 퀴어 장애인 생애사 연구를 심의받은 R12는 소속기관에서 취약한 대상 연구의 심의가 더욱 지연되는 사례를 많이 접했다. 꼼꼼하게 준비해 심의 통과를 하기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제출 후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한 분이 심사를 안 하고 있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심의가 지연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코멘트도 못 받고 그냥 보류 상태로 계속 남아”야 하는 건지 불안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심의가 지연되고 있기에 연구자 입장에서 IRB가 취약한 대상 연구에 대해 과도한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R14는 심의 “기간 자체도 굉장히 오래 걸렸지만, 피드백을 받았을 때 수용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부분들은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뉘앙스”를 띄고 있는 경우가 상당하다.

과도한 심의 기준의 적용은 연구자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무리한 위험 대책을 마련하라거나 연구 이력과 연구자 신분을 이유로 심의를 지연시키는 등의 문제와 동반하여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심리적 문제를 호소할 경우 상담 비용을 지불하거나”(R12) “관련 기관을 연계해주는”(R11) 수준의 위험 대책을 기술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로 인한 위험 발생 여지가 없다는 점을 충분히 기술해도 IRB에서 “이익과 불이익을 찾아내라”(R17)고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IRB는 연구자가 기술한 내용보다 높은 수준, 예컨대 연구자가 연구대상자를 “직접 치료”(R16)하는 수준의 대책을 요구했다. R16은 “자살 교육 훈련을 따로 받아서 수료증을 구비하고 슈퍼비전(supervision)을 받으면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비혼모, 비혼부 청소년 연구를 하는 R17은 위험 발생 시 지역사회 내 사회복지기관과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를 연계하겠다고 수정해 제출했으나, 사실 이런 방식의 위험 대책을 적는 것은 “형식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연구대상자들이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큼에도 IRB는 전문기관에 연계해주겠다는 식의 형식적인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IRB가 연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 관련 문제를 고려한다기보다 사전 연구 준비에 대한 규제와 심의에만 초점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고민경, 2020, 122쪽).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조치를 요구하지만 정작 IRB는 취약한 대상 연구에서 어떤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지, 어떻게 대책 마련해야 하는지 등을 안내해주거나 방안을 제시해주고 있지 않다. 연구자들은 “더 구체적으로 작성하라” (R13)는 요구만을 받았을 뿐 IRB로부터 관련 피드백을 받은 경험이 적었다. 위험에 관한 사전, 사후 대책 마련과 실행 모두를 연구자에게 맡긴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은 연구윤리를 검토하고 승인해주는 기구로서 IRB의 역할을 의심스럽게 느꼈다. 이는 IRB가 “책임져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연구자에게 요청하는 수준의 윤리 규정은 굉장히 빡빡하다”(R9)는 생각으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 연구자들은 IRB를 납득시킬 만한 관련 기관의 목록 제시나 별도의 자격 및 훈련이 불가피했다.

‘저와 공동 연구자 둘 다 트랜스젠더를 연구해본 경험이 없다’라는 것을 계속해서 문제를 지적했거든요. 근데 사실 이거는 어떻게 수정을 할 수가 없는 건 거예요. 그러면은 트랜스젠더 연구를 하기 위해서 트랜스 젠더 연구 경험이 필요하고, 그러면은 그것은 약간 무한 굴레잖아요. 영원히 이걸 받을 수 없다면 그러면은 영원히 트랜스젠더 연구 경험이 없게 되는 것인데 (R15)

연구자 자격을 평가하고 검증하려는 IRB의 심의 사례도 보고되었다. 연구자들은 “네가 그럴 자격이 돼?”(R14)라고 묻는 IRB에 자신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IRB 심의 기준으로는, ‘전문적인 자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취약한 대상 연구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IRB가 요구하는 연구자의 자격은 얼마나 연구윤리 관련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가가 중점이라기보다 연구 실적 및 전문 자격증 취득 여부, 학위, 지위와 신분에 관련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R15는 연구대상자가 자기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비청소년 당사자임을 강조하고 연구대상자의 개인정보 보호와 위험 감소를 위한 대안을 추가하는 등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쳤다. 그러나 IRB가 “끝까지 문제로 걸었던 것”은 연구자 자신이 수정할 수 없는 연구 이력이었다고 지적했다. IRB가 연구계획서, 연구대상자 동의 및 설명서, 연구자가 마련한 위험 대책 등을 기준으로 연구윤리를 검토하기보다 논문 실적으로만 대표되는 연구자의 이력을 심의할 때, 연구자들은 ‘무엇으로 더 증명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IRB 승인을 받지 못한다면 관련 연구 경험을 쌓을 수 없고 연구 경험 없이 IRB 승인을 받을 수 없다면, 취약한 대상 연구는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학생 혼자서 할 수 있는 연구의 범위가 아니지 않냐’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받았었고. 이게 딱히 범위가 넓은 게 아니라 사회운동 단체에 가서 거기 활동가들을 인터뷰를 하는 거였어서, 저와 제 주변 연구자분들이 판단할 수 있는 게 무리가 있는 범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뭔가 심리학을 배웠다거나 아니면 그쪽으로 전문적으로 자격증이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닌데 ‘네가 가서 학생이 감수를 할 수 있느냐’ ‘어떻게 책임질 거냐’라는…. 참여관찰이라거나 직접적으로 대화 이외의 것을 하지 않는 연구였음에도 불구하고. (R24)

자격 검증의 문제는 대학원생 연구자들이 주로 경험했다. 사회학 석사 과정이었던 R24는 학위논문으로 정신장애인 연구를 계획했다. IRB는 연구자가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전문 자격증이 없으며 특히 학생이라는 이유로 시정을 요구했다. 주로 사회운동 단체 내 활동가를 인터뷰하고자 했던 R24는 예상되는 위험이 적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해당 기관의 IRB는 “학생이 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니라는” 답변을 해왔다고 술회했다. 학생 신분의 연구자 자신을 조현장애가 있는 연구대상자로부터 스스로 보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R16도 마찬가지로 변인의 수를 이유로 “석사 수준에서 수행할 수 없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연구 이력이 있음을 강조하고, IRB가 요구한 전문적인 훈련을 통해 자격을 보완해도 심의를 통과할 수 없었다. 그런데 R16이 지도교수가 인정한 연구계획서라고 대처하자 해당 기관 IRB는 “지도교수가 된다고 하면 통과시켜주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IRB 심의를 승인받기 위해서는 “공인된 심리학자 자격을 가진 지도교수의 권위”를 빌려야만 했다.

연구자들은 심의 기준이나 요구가 “납득하거나 설득될 만한 어떠한 수준으로”(R14) 생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연구자의 자격을 불필요하게 검증함으로써 연구윤리를 넘어서는 영역까지 관여한다는 점에서 과잉 규제적이라는 것이다. IRB는 연구자에게 “당위성을 증명하라”(R21)고 말하지만, 연구자들은 IRB가 실제로 보는 것은 취약한 대상 연구에서 제기될 수 있는 연구윤리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연구자들이 경험한 IRB는 연구자의 소속, 학위, 경력, 지위, 신분, 자격증 등만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 형식화된 서면동의로 인한 연구의 제약

서면동의서는 충분한 정보에 의한 동의를 통해 연구에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항목으로 연구대상자의 연구 참여에 관한 자발적 선택과 권리의 보장을 바탕으로 한다. 의학 분야에서 사용되어온 서면동의 원칙은 인간대상연구에도 적용되고 있으며, 인문사회분야 연구자들도 IRB로부터 연구를 승인받기 위해 서면동의서 양식을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연구자들은 일견 서면동의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연구대상자에게 공인된 관계와 공식적인 절차 속에서 연구가 이루어진다는 안정감을 제공하고, 연구에 참여했다는 사실과 연구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위험 등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측면에서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서면동의서라는 형식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 IRB에서 요구하는 서면동의서는 “윤리적이고 안전한 연구를 위해 필요한 서식이라기에 형식적이고 행정적인 서류”(R14)에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서면동의서가 연구 맥락에 따라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동의받는 ‘행위’보다 연구대상자의 권리를 ‘고려’하고 ‘고지’하는 목적에서 서면동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IRB는 대체로 일괄 제공된 기관의 동의서 양식을 연구 제목 정도만 수정하여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었다. 이에 연구자들은 IRB가 서면동의서를 행정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집단도 있고 굉장히 연령이 높은 집단을 연구했을 때 문맹률이 높으셔서. 사실은 거의 읽지 못하고 그래서 그럴 때는 진짜 최소한의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로 구성해서 만든다든지, 아니면 그냥 진짜 말로 다 설명을 해드린다든지 이런 방식으로 사실 연구참여자에 따라서 연구 동의서가 달라져야 하는 것은 사실 너무 당연한 일이고, 그거는 당연히 그걸 IRB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일괄적인 양식을 요구한다라는 것 자체가 인문사회과학 연구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인 것 같아요. (R15)

연구자들은 연구대상자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서면동의서 제출 요구를 부당하다고 느꼈다. 연구자들에게 있어 “연구참여자에 따라서 연구 동의서가 달려져야 한다는 건 사실 너무 당연한 일” (R15)이다. 하지만 IRB는 “대상의 특성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하는 것만이 답인 것처럼”(R14) 대응하고 있다고 느꼈다. 취약한 대상 연구의 경우 연구대상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동의서의 언어 표현과 동의 방식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연구자들이 가능한 동의서를 쉽게 작성하고자 했지만 IRB는 “전문적인 표현을 요구”(R14)했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취약계층을 위한 동의서인지 알 수 없는 문구들로 동의서를 작성”(R22)하게 된다. 그러나 연구대상자의 연령, 교육 수준, 문장의 이해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무적이고 형식적인 느낌”(R22)의 동의서는 취약한 연구대상자의 이해를 방해할 여지가 크다.

더욱이 “요구하는 양식을 다 채우면 4장 정도” (R13)의 긴 문서로 작성되는데, 법적 언어를 비롯해 주로 학계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이루어진 긴 분량의 동의서는 취약한 연구대상자뿐만 아니라 학계에 속하지 않은 연구대상자들의 이해를 돕는 데 “큰 의미가 없다”(R9)고도 보았다. 연구자들은 IRB가 서면동의서에 대한 특별한 피드백을 제공하지 않으며 서면동의서를 적절하게 바꾸는 과정에 “크게 관심이 없다”(R15)고 지적했다. 서면동의서가 윤리적으로 안전한 연구를 수행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에 대해 IRB가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일한 방식의 서면동의서를 심의마다 제출하면서 이것이 “정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R22)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형식화된 서면동의서는 연구대상자의 동의가 “연구자의 구술에 의존”(R9)하게 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취약한 연구대상자는 동의서를 꼼꼼히 읽기 어렵고, 연구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상세히 설명하는 과정이 생략되면서 충분한 정보에 의한 동의의 성격과 의미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기도 한다. 동의 획득의 중요성에 대한 지나친 절차적 강조는 서면동의서를 ‘영혼 없는 하나의 서류’에 불과하도록 만든다(백수진, 2015, 35쪽). 동의는 관료화된 방식의 서명 절차로 축소되고 있고, 형식으로만 남은 서면동의가 실질적으로 연구대상자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비판 또한 제기된다(Heimer & Petty, 2010, p. 613).

예를 들면 난민 연구를 진행하면 난민들은 사실 서류 자체에 엄청나게 민감하잖아요. 그리고 내가 정말 그 글을 제대로 읽었나 하는 거에 대한, 내가 그걸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 경험적으로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굉장히 테크니컬하게 연구를 하고 나중에 동의서를 받는, 내(연구자)가 그렇게 위험한 사람이 아님을 이 사람에게 관계 안에서 충분히 입증하고 사후에 IRB 동의서를 받는 거죠. 순서는 완전 안 되는 거지만, 상황에 따라서 동의서가 가지고 있는 의미, 사람들한테 만들어지는 안정감이라는 것이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R9)

한편, 형식적인 서면동의서는 마치 “법적인 계약서를 작성한다는 느낌”(R10)이 들게 해 연구대상자에게 긴장감과 불편함을 유발한다. 이는 연구 참여에 대한 거부감을 증대시키는 등 연구 이행에 어려움을 초래한다. 서류에 민감한 취약한 대상일수록 연구 참여만으로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되고, 절차중심적 동의 과정으로 인해 “취조받는다는 느낌”(R21)을 받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난민, 탈북민 연구대상자들에게 서면동의서에 실명으로 서명하는 행위는 민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연구에서도 서면동의서는 연구대상자가 두려움과 부담을 느끼게 해 연구 참여 의사 번복을 초래하기도 하는 등 연구 참여를 저해할 수 있다고 보고되어왔다(고민경, 2020; Nelson, 2004).

이에 연구자들은 서면동의서의 적절한 수정, 사후 동의서와 구두 설명 대체 등 서면동의 면제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생명윤리법상 ‘① 연구대상자의 동의를 받는 것이 연구 진행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연구의 타당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는 경우 ② 연구대상자의 동의 거부를 추정할 만한 사유가 없고, 동의를 면제하여도 연구대상자에게 미치는 위험이 극히 낮은 경우’(생명윤리법 제16조 3항)에는 서면동의의 면제가 가능하다. 연구자는 이를 IRB 심의위원에게 입증하여야 하며 최종적인 면제 여부의 판정 권한은 IRB에 있다. R12는 성소수자 연구에서 연구대상자의 익명성을 중요하게 여겨 면제 사유서를 제출했고 “동의 면제가 오히려 연구에 합당하다”는 심의 결과를 받아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심의에서는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연구대상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위험을 이유로 동의서를 닉네임으로 받겠다는 심의서류를 제출해 통과된 경험이 있다.

이주민 집단이면 이주민이 들어오는 국가마다의 동의서, 그게 안 되면 국가마다의 통역자, 장애 같은 경우도 청각장애인용, 시각장애인용, 발달장애인용, 그리고 아동용, 이렇게 모든 대상자별로 동의서부터해서 관련된 자료들, 통역자분들 이런 분들을 모두 다 인프라가 완료된 상태에서 진행을 하라고 요구받아서 (...) 계획서 상에서만 컨택하려고 했던 국가가 7개에서 8개 정도 국가였는데, 국가별로 국가에 해당하는 언어별로 동의서를 다 제출하라는 거예요. (...) 성소수자 관련돼서도 동의서에 꼭 실제 이름을 넣어야 된다라고 하는데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시는 분들은 가명을 쓰거나 이러고 싶어 하시는 분들 되게 많았는데, ‘그러면 안 된다’ ‘주민등록번호까지 다 기재를 해야 된다’고. (R23)

그러나 R12의 사례는 예외적이다. 연구자들이 제출한 동의 면제 사유서는 IRB가 대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R12와 같은 사유로 성소수자 연구대상자에게 가명을 활용한 서면동의서를 받겠다고 했던 R23은 IRB로부터 연구대상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모두 기재할 것을 요구받았다.2) 익명성을 보장받아야 할 위치에 있는 취약한 연구대상자가 동의서로 인해 특정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치 않는 개인정보까지 기재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IRB가 동의 획득 자체에만 중심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형식적인 동의로는 실질적인 취약성을 완화하지 못한다. 연구대상자가 연구 내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은 단순하게 동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대상자가 처해 있는 구조적 불평등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IRB의 사전 심의 원칙에 따른 서면동의서의 사전 준비 요구는 취약한 대상 연구를 제약하는 역설적인 효과를 낳기도 했다. R23은 영어로 된 서면동의서를 준비하여 인터뷰 현장에서 전문 통역자가 구두로 통역한 뒤 서면동의서를 받겠다고 했지만, IRB로부터 수정요구를 받았다. 연구참여자가 이해할 수 있는 각각의 언어로 번역된 서면동의서를 미리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연구 비용 문제로, 결국 영어를 사용하고 이해하는 이주민만으로 연구대상자를 축소했다. 그러나 “영어를 이해하면 이미 소외계층 중에서도 굉장히 주류”이기에 더욱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연구대상자의 연구 참여는 사실상 저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설에 있는 엄마들, 그리고 청소년 미혼모, 그리고 미혼부. 그분들에 대한 법적 동의를 받으라고 하는데, 물론 법적동의 중요하죠. 그런데 대부분 아시겠지만 원가족과의 연락을 하면서 지내시는 분이 극히 없어요. (...) 양육비를 받는데 상대방 비양육자 아버지한테 폭력을 당해서 그런 경우까지를 제가 다 얘기를 했어요, 그 담당자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을 건 받아야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R17)

이와 관련한 중요한 사례로 아동 연구에서 법정대리인 동의에 관한 갈등을 들 수 있다. 생명윤리법 제16조 2항에 따르면 ‘동의 능력이 없거나 불완전한 사람으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연구대상자’의 경우 법정대리인로부터 추가 동의를 획득하도록 되어 있다. 이때 아동복지법에 따른 18세 미만의 아동은 자유의사에 따른 동의가 불가능한 취약한 대상에 포함된다. 연구자들은 보호제도의 필요성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법정대리인 동의 원칙이 아동을 자기결정권 없는 존재로 가정하는 효과, 연구대상자의 참여 의사에도 불구하고 참여가 제한되는 등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연구대상자의 경우 법정대리인 동의가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언급하였다. “성폭력, 성학대 경험이 있거나 가출 청소년”(R20), “비혼부, 비혼모 청소년”(R17, R13)인 경우 “원가족과 분리 조치”(R20)되었거나 “완전히 단절되어 주소지를 알 수 없고, 연락되지 않는 경우”(R17)가 많고 시설 거주 아동의 경우 부모의 대리 동의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R13)기 때문이다. 그러나 IRB는 “꼭 받아야 한다, 받을 건 받아야 한다”(R17)고 대응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생명윤리법에는 서면동의 면제가 인정될 수 있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대리인의 서면동의는 면제될 수 없다는 규정(제16조 3항의 추가조항)이 있다(도경연, 유수정, 김은애, 2019). 때문에 법정대리인 동의는 원칙적으로 면제될 수 없게 되어 있다.

부모님 모르게 그런 청소년들이 문제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거고. 어떻게 보면 그런 환경에 있어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런 문제들이 엮여 있는데, 무조건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애초에 그 대상 자체가 부모 동의를 받은 비자살적 자해를 하는 친구들로 제한되면 결국 그것도 편향이 일어나는 문제고. (R7)

그러나 연구자들은 법정대리인 동의 요구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부모”(R20)와의 관계에서 연구대상자가 경험하게 될 위험 문제를 간과하고 연구대상자를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IRB에서 요구하는 서면동의서는 연구 제목을 변경하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원칙적이고, 연구의 지나치게 세세한 정보까지도 포함한다. 이로 인해 연구대상자가 성소수자인지, 비혼모인지와 같은 민감한 정보가 드러나기 쉬워지며, 원치 않는 상황이 공개되어 연구대상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원가족과 분리된 아동·청소년의 경우 “연구대상자가 경험하고 있는 문제가 부모로부터 기인하는 경우”(R20)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대상자를 문제 상황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R7은 비자살적 자해를 경험한 청소년 연구에서 그러한 경험의 심각한 원인이 부모인 경우, 동의 과정에서 연구대상자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앞서 R23의 경우처럼, 부모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연구대상자에 한정하여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정말로 취약한 위치에 놓인 연구대상자를 배제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처럼 실질적인 문제로 부모로부터 동의 획득이 어려운 경우, 연구자들은 소속 기관의 대표책임자가 동의해주는 것으로 법정대리인 서면동의서를 제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를 대리인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은 IRB마다 비일관적이다. 또한 어떤 심의에서는 학부모에게 공문을 발송하기를 요청하고, 어떤 심의에서는 기관 동의를 첨부하라고 요구하는 등 “건건마다 너무 달라져서”(R23)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 연구자는 IRB가 연구대상자가 충분하게 이해하고 동의했는지, 아동 연구에서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적절하게 이루어졌는지, 서면동의서를 잘 보관했는지에 대한 사후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면동의서의 절차적 강조로 인해, 실제 연구 상황에서의 연구윤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서면동의서를 받는 행위가 동의만으로 마치 연구자가 연구윤리를 지켰다는 증명처럼 악용될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는데, 연구를 고려하지 않은 형식화된 서면동의서 양식의 요구도 마찬가지로 연구윤리에 관한 기관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면피용 도구에 불과하지는 않은가”(R19)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4. 취약성과 연구윤리에 대한 IRB와 인문사회 연구자 간의 인식 격차

취약한 대상 연구를 둘러싸고 이상 살펴본 갈등 상황은 왜 반복되는 것일까. 우리는 이러한 갈등의 기저 원인으로 인문사회 연구에서의 취약성에 대해 IRB와 인문사회 연구자 간의 근본적인 이해 격차가 존재함을 확인하였다. 개별 IRB마다 취약한 대상 연구를 심의하는 구체적인 경향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연구자들은 대부분 IRB가 취약성을 너무 관료적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나아가 IRB와 심의위원들이 인문사회 연구에 대한 과도한 몰이해 상태에 있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이 인식하는 인문사회 연구자들과 IRB 사이의 연구윤리에 관한 이해 격차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로 두 집단은 인문사회 연구의 위험성에 관한 판단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IRB는 인문사회 연구에서도 연구라는 행위 그 자체가 연구대상에 대한 위험을 유발하는 것으로 본다. 생명윤리법 제15조에 따라 모든 인간대상연구가 IRB의 심의를 받도록 되어 있는 현재의 법률은 그러한 이해를 반영한다. 근본적으로 취약할 수 있는 연구대상자로부터 서면동의(생명윤리법 제16조)를 받아야 하며, 연구자가 연구대상자에 대한 안전대책을 마련하여야(생명윤리법 제17조) 하는 것은 연구의 위험성에 대한 전제에서 이어지는 결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인문사회 연구자는 대체로 인문사회 연구에서 진행되는 연구의 위험성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152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관련 온라인 설문조사(이상길, 김선기, 권수빈, 정성조, 차현재, 2022)에서 응답자의 84.2%는 자신의 연구가 최소한의 위험을 상회하지 않는 연구라고 응답했으며, 이를 근거로 IRB가 자신의 연구를 신속심의나 심의면제로 분류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문사회 연구자들도 인간대상연구를 수행하는 경우 대체로 정규심의를 받게 된다.3) 심의가 기본적으로 정규심의를 원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기대와 현실의 이러한 격차는 ‘IRB는 연구의 위험성을 과대평가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56.6%의 긍정 응답, 3.54/5.0점). 인문사회 연구는 상대적으로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은 FGI에 참여한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언급에서도 드러난다.

설문조사 같은 경우에는 설문조사에 참여함으로써 생기는 위험이나 불편이나 이런 것들이 보통은 별로 없거든요. 그냥 약간 지루하거나 귀찮거나 좀 이럴 수 있고, 일부 설문 같은 경우에는 조금 응답하기 곤란해 하는 항목이 있을 수는 있는데 대체로는 그렇게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으로 큰 위해를 가하는 내용은 사실 거의 없단 말이에요. (R5)

사실 저는 그러니까 되게 다양한 연구자들이 인터뷰를 어떻게 하는지를 봤을 때 정말 제 삶이 흔들릴 정도로, 혹은 진짜 위험하다라고 느껴본 경험은 사실 없었거든요. (R15)

연구자들이 언급하듯, 대체로 인문사회 연구에서의 연구방법은 설문조사나 인터뷰 등으로 인체에 물리적인 영향을 가하는 연구와는 거리가 멀다. 인간대상연구 과정에서 유발될 수 있는 심리적 위험, 시간 손실에 대한 불편함 등이 IRB에서 심의하는 위험에 해당한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연구 경험 속에서 인문사회 연구에 ‘위험’이라는 범주를 붙이는 것을 어색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위험 개념에 대한 인식 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괄적으로 인문사회 연구에 IRB 심의를 실시하는 것 자체에 대한 의아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둘째로 두 집단은 인문사회 연구에 수반되는 위험에 대해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견을 보였다. IRB는 대체로 위험 요소를 일별하고 이에 대한 세세한 대책을 연구 시작 전에 마련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는 실제 IRB 심의에서는 연구계획서상에 연구대상자의 위험 및 이득, 연구대상자 안전대책, 연구대상자 개인정보보호대책, 연구의 안전성 평가 기준 및 평가 방법 등을 적시하도록 연구자들에게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IRB가 요구하는 위험요인에 대한 일별과 대책 마련을 대체로 관료주의적인 행정 절차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은영(2017, 462쪽)에 따르면 현재 IRB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윤리는 “합의된 과정과 의무화된 절차를 준수해야 하는 절차적 윤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아래의 인용문이 드러내고 있듯, 연구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위험성은 그것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할 악이나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연구자와 연구참여자가 함께 겪어나가야 할 과정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사람이 좀 상처받고 살 수도 있지. 이렇게 말하니까 좀 이상하네요. 사람이라는 건 다 자신의 어떤 회복 탄력성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R9)

연구자와 연구참여자 사이에서 상호적인 영향이 나타나야 한다는 이러한 입장에는 또 하나의 (세 번째) 인문사회 연구에 대한 연구자들과 IRB 간의 이해 차이가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IRB는 연구 과정을 연구자가 연구대상(피험자)에게 연구라는 이름의 일방적인 행위를 시행함으로써 위해를 가할 소지가 있는 위계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 특히 질적 연구를 수행하는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대체로 연구자와 연구참여자 사이의 관계는 참여적이고 협력적이라는 혹은 그래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한다. 이와 관련해 고민경(2020, 117쪽)은 질적연구에서는 “연구자와 연구대상자가 함께 만드는 간주관적 지식을 생산”하며, “연구자와 연구대상자와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고 변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넷째로 두 집단은 ‘취약한 대상’을 정의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우선 IRB의 경우 대체로 그 운영이 생명윤리법 및 시행령, 시행규칙을 참조하고 있으며, 취약한 대상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생명윤리법 제3조 5항에서는 “취약한 환경에 있는 집단은 특별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으며, 취약한 환경에 있는 피험자는 앞서 언급하였듯 의약품 등의 안전에 대한 규칙 별표4 제2호 더목을 참조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 집단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 실업자, 빈곤자, 응급상황에 처한 환자, 소수 인종, 부랑인, 노숙자, 난민, 미성년자 및 자유의사에 따른 동의를 할 수 없는 대상자” 등을 나열하고 있다.

이같이 IRB가 근거로 삼고 있는 생명윤리법이 취약성을 정의하는 방식은 대상 특정적으로, 특정한 상황에 놓인 대상의 존재 그 자체에 취약성이 근본적으로 내장된 것으로 여긴다. 덧붙일 점은, 성소수자나 장애인, 난민, 북한이탈주민 등은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에서 취약한 대상으로 정의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IRB의 실제 운영 과정에서 취약한 대상군으로 여겨져 심의 과정에서 특별한 케이스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반면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취약성은 완전히 “맥락의존적”이며(최경석, 2018, 274쪽), 따라서 생명윤리법이 취약한 환경에 있는 집단군으로 규정해 놓은 연구대상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손쉽게 취약하기만 한 대상으로 낙인찍을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한다.

저는 트랜스젠더 연구 참여자들의 연애 경험에 대한 연구를, 연애 경험을 통한 정체성 재구성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했을 때 제가 느낀 인상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을 굉장히 심신 미약한 존재로 본다는 인상이 진짜 강했거든요. (중략) 성인이 돼서 본인이 선택해서 트랜스젠더 수술까지 선택하고 자기 의사로 자발적으로 연구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사람들을 심신미약한 존재로 보는지 저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R15)

인용한 예시를 포함하여 우리 연구에 참여한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생명윤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취약한 환경에 있는 피험자(미성년자, 환자 등) 혹은 현재 IRB에서 “사회적 편견을 답습”(R24)하여 취약한 대상으로 처리하고 있는 연구대상(성소수자, 장애인 등)을 자신의 연구참여자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IRB의 대상특정적인 취약성 판단이 이들 집단의 취약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편견과 취약성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예컨대, 유수정(2022, 84쪽)은 기관위원회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 인해 과잉보호적인 태도를 취”할 경우, “오히려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권리보호를 위해 필요한 연구 참여의 기회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그들을 위한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적절히 제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섯째로, 연구자들은 대체로 본인은 자신의 연구주제가 되는 집단군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일부 IRB 심의위원들이 해당 집단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IRB 위원회 중에 연구자가 아니신 분들이 계셔서 좀 비합리적인 근거로 제 연구를 좀 논박하셨던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요. 이런 것들 때문에 IRB 심의 과정이 많이 소요가 되어서 어려웠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중략) 연구 위원회 구성 위원들 중에 연구 지식이나 학력이 전혀 충족이 안 되신 분들도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다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중략) ‘자살 연구한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위험하다’ 이렇게 되게 터부시하는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R16)

정신장애인, 자살 위험군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실제 연구 과정에서 만나는 연구참여자들의 상태와 동떨어져 있는 부정적 편견을 IRB 심의위원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시하게 되는 경험을 겪기도 했다. 위의 인용문과 같이 심하게는, IRB 심의위원이 일반적인 연구윤리 심의를 넘어서 본인의 도덕적, 윤리적 잣대를 심의에 투영하는 것은 아닌지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성소수자를 연구참여자로 하여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들은 호모포비아적인 성향을 가진 심의위원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연구계획서가 제대로 심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겪은 경우도 있었다.

여섯째로, 서면동의 그리고 취약한 집단군의 경우 대리인의 서면동의 절차와 관련해 두 집단은 큰 의견 차를 보인다. 실제 IRB 심의 운영에서 서면동의 면제가 승인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생명윤리법 제16조 제2항에서는 18세 미만인 아동 전체를 포함하여 동의 능력이 없거나 불완전한 사람의 경우 대리인의 서면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 대리인의 서면동의 의무는 면제되지 않는다. 반면 연구자들은 IRB가 서면동의를 상당히 엄격하게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것과 달리, 이러한 의무가 연구를 위해 어느 정도 유연화되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최경석(2018, 275쪽)은 물론 자기결정권 존중의 원칙이 우선적이기는 하지만, “공리주의적 윤리 원칙”이 “동의 면제를 정당화하는 윤리 원칙으로 기능”할 수도 있음을 논한 바 있다.

취약한 대상의 경우에도 사전동의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연구자들의 의견에 전제된 것은 취약한 대상이 완전히 취약하고 수동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연구에 참여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자발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이다. 일곱째로,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IRB의 서면동의 및 대리인 동의에 관한 원칙이 이러한 연구참여자들의 자발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 있었다. 연구자들이 보기에 대체로 자신들이 수행하는 연구의 참여자들은 IRB가 범주화 하듯 단순히 취약한 대상으로만 볼 수 없다. 그에 대한 근거를 명확하게 정량화하여 나타내기는 어렵지만, 연구자와 연구참여자 간의 교류 속에서 연구자는 이를 분명히 인지할 수 있다. 이은영(2017, 446쪽)은 “연구대상자가 자율적인 상태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주체는 “연구대상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상황과 상태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연구자임을 지적한 바 있다.

아동이 취약하다고 해서 자기 결정권이 없다고 보는 것 자체가 아동 청소년을 너무 무능력한 시야로 보는 거기 때문에, 그건 좀 아니라고 봐요. 아무리 4살, 5살 아이들에게 제가 과제 수행 연구를 했을 때, ‘너가 오늘부터 나랑 무슨 노래를 부를 거야, 어려우면 알려줘’ 할 때 그 아이들이 충분히 ‘저 그만할래요’, ‘더 하고 싶어요’ 분명히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어요. (R20)

앞서 말씀해 주신 대로 대상 청소년들도 충분히 설문지나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요. 오히려 저희가 이런 ‘자유롭게 드랍해도 상관없습니다’라고 충분히 고지를 하면, 정말로 제 경험상은 10%, 20% 정도의 참여자 청소년들은 안 합니다. (R18)

위의 인용과 같이 생명윤리법이 아예 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연구대상자로 규정해 놓은 아동의 경우에도, 생각보다 취약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인식하며 대리인 동의 원칙의 개선을 요청하는 연구자들의 의견도 있었다.


5. ‘취약성’의 제도적인 재생산

앞서 살펴본 것처럼 IRB 심의 과정에서 인문사회 연구자들이 취약한 연구대상에 관해 겪는 갈등 양상은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된다. 요컨대 취약한 대상을 다루는 연구에 있어서 연구의 주제와 방법, 연구자의 자격 등 심의 기준이 과도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편견에 근거하고 있으며, 서면동의서는 매우 형식화된 채로 실제 연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고민이나 유연하고 효과적인 연구 수행, 연구자와 연구참여자와의 원활한 상호작용의 촉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취약한 연구대상에 관한 인문사회 연구가 IRB 심의 과정에서 겪는 반복되는 갈등 양상은 단순히 개별 연구의 차원이 아니라 전반적인 인문사회 연구에 있어서 불평등이 재생산되고 강화되는 경향을 제도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먼저 IRB 심의 과정은 취약하다고 인식되는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허들을 높임으로써 특정한 종류의 지식 생산을 가로막는다. 많은 인문사회 연구자는 연구에 대한 IRB 심의위원의 평가와 피드백이 심의 과정에서 결정적인 권위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IRB 심의를 통과하지 않으면 연구를 수행하지 못하므로 부당한 수정 요구로 느껴지더라도 웬만하면 이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취약한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IRB 심의를 신청한 연구자들은 IRB가 취약성에 대해 지나치게 경직된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막연한 부정적 피드백을 IRB 심의위원으로부터 받은 한 연구자는 “그냥 이 연구를 하지 말라는 거구나”(R14) 하는 막막한 심정을 갖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성소수자나 정신질환자 대상 연구는 그 자체로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것처럼 평가되는데, 그러한 평가의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절차는 중요할 수 있긴 한데 연구 자체를 못 하게 하는 것, IRB 승인을 안 해줘서 연구를 못 하게 하는 일들이 생기면 이거는 정말 IRB가 취약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취약한 사람을 연구하지 못하게 하는 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좀 생각도 있고. (R12)

우리 연구의 인터뷰에 참여한 상당수의 인문사회 연구자는 IRB가 취약한 대상에 대한 과도한 심의 기준을 적용해 연구 수행을 포기하거나 상당 부분을 수정해야 했다는 경험을 공유했다. 이러한 경향은 인문사회 분야에서 이러한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많은 경우 이들의 경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그들이 처한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불평등의 원인과 결과 등을 분석하거나, 그러한 가운데 이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최근 사회과학 연구가 단순히 ‘객관적’으로 사회적 현상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에 참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Burawoy, 2005; Prasad, 2018), 취약한 대상을 보호한다는 단일한 목적에 치중하면서 연구를 통해 그러한 취약성을 사회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 지식 생산을 가로막는 IRB 심의의 모순적인 역할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제도적인 장치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성소수자와 같이 사회적으로 혐오와 편견의 대상이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집단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경우 IRB가 불필요한 제한을 가함으로써 기관을 외부로부터 방어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제도적인 장벽에 해당한다(Adams et al., 2017).

저희가 사실 연구를 하는 목적이 취약계층이라고 하면 정말 이런 경우가 아니면 접하기 어렵거나, 아니면 이렇게 만나지 않으면 지면상에 드러나지 않은 분들을 만나야 되기 때문에 이런 연구를 하는 거잖아요. 근데 이제 IRB가 물론 좋은 점이 되게 많지만 이거를 하면 어쩔 수 없이 주류의 양식을 타야 되니까. 실제로 들어와야 되는 분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 그분들이 어쨌든 이런 법제도적인 틀 때문에 배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되게 많이 발생을 할 수밖에 없고. (R23)

둘째, 취약한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 대한 IRB 심의 과정은 연구대상뿐만 아니라 연구 방법 또한 제한한다. 질적 연구 방법을 사용하는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이 연구의 인터뷰에서 취약성에 관한 IRB의 심의 기준과 관점이 질적 연구의 방법론과 인식론과 대립한다고 주장했다.

질적 연구라는 연구 방식을 생각할 때 핵심은 ‘연구 참여자’라는 용어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절대 ‘피험자’가 아니라 “당신이랑 나랑 결과물을 같이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내가 제출하는 논문일지라도 엄청난 개입의 방점을 참여자에게 주는 연구 방식이라는 게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연구 심의를 받는 세팅에서는 “나는 매우 객관적이고 전지전능한 연구자이고, 너(‘피험자’)는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엄청난 영향을 받아서 트라우마를 받을 사람.” 그러한 어떤 위계적인 세팅이 된 채로 ‘그럴 것이다’라고 전제하는 것 같아요. (R9)

위의 인용문은 질적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가 IRB 심의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불일치를 단적으로 표현한다. “질적 연구자로 훈련받는 사람으로서 ‘피험자’라는 생각을 가져야만 연구 심의를 통과할 수 있는”(R9) 현행 IRB 심의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일차적으로는 연구 능력을 저해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실제 연구 수행과 일치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용어상의 차이가 아니라 연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취약성의 성격 및 연구자와 연구대상자 사이의 위계적인 관계를 인문사회 연구자와 IRB 각각이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달려있다. IRB는 연구자가 연구 수행 과정에서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인터뷰와 같은 질적 연구에서 그러한 위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연구 과정에서 연구자가 연구대상자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며, 이는 유무형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취약하다는 것은 연구의 영향력으로부터 어떤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더욱 쉽고 크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속성을 지녔다는 의미를 지닌다. 반면 한 연구자는 취약성을 이처럼 고정된 속성으로 보는 대신 “무엇이 취약성을 만드는지”(R9) 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간관계를 한다는 걸 전제로 하고 들어갔을 때, 영향을 안 받는다는 것만큼 연구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없는 것 같거든요. 예를 들면 저희가 그냥 이거(인터뷰)를 단순히 2시간만 해도, 이거 끄고 나면 “누가 어떤 말 했다더라.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하지?”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대화가 어떤 대화일지. (중략) 말 한마디로 모두가 죽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면 사실 저희는 질적 연구를 할 수 없어요. (R9)

이러한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비판이 곧 인터뷰와 같은 질적 연구 방법에서는 어떠한 위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연구자는 “인터뷰 연구가 쉽고 단순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R15)고 여기고 있다. 문제는 IRB 심의 과정에서 IRB가 질적 연구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많은 경우 IRB가 질적 연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나 취약한 대상의 성격을 단순화할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안전을 보장할 방법을 특정한 질문의 금지, 연구자에 대한 과도한 자격 검증, 그리고 형식화된 서면동의서 등 서류상의 절차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차는 인문사회 연구자들에게, 연구 방법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규제’ 정도로 인식된다. 질적 연구 과정에서 부딪힐 수 있는 실질적인 어려움과 연구윤리상의 쟁점은 IRB 심의 과정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은 채로 “IRB는 그냥 날 귀찮게 하는 존재, 그냥 서류상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사실은 진짜 문제”(R15)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셋째, IRB는 취약한 대상과 관련하여 연구대상과 방법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에 결부된 것으로 여겨지는 취약성 자체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취약성은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관계적인 것이며, 그것이 만들어지는 사회적 조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IRB의 심의 기준이나 형식화된 서면동의서는 이러한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로 취약성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조건이나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저는 오히려 청소년 연구를 할 때 IRB 받는 건 되게 이상한 의미에서 쉬웠는데요. “담임교사의 서명을 받겠다”고 하니까 일사천리로 빨리 됐어요. 근데 저는 이게 되게 문제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중략) 저는 왜 청소년의 권리를 담임교사한테 주는지 진짜 이해할 수 없단 말이에요. 담임교사가 누군 줄 알고. 오히려 담임교사도, 청소년들도 랜덤으로 배정된 거잖아요. 얼마나 이상한 교사가 많은데 담임교사가 승인해준다고 IRB도 승인이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데, 오히려 성인이 돼서 본인이 선택해서 트랜스젠더 수술까지 선택하고 자기 의사로 자발적으로 연구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사람들을 심신미약한 존재로 보는지 저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R15)

아동청소년에 대한 연구는 연구 참여에 대한 서면동의서를 법정대리인인 부모에게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생명윤리법 규정에는 어긋나지만, R15가 언급한 사례에서와 같이 교사 등의 서명을 대리인 서명으로 보는 IRB 운영 사례도 발견된다. 그런데 아동청소년에 대한 연구 중 어떤 연구는 바로 그러한 부모나 교사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거나, 부모나 교사에게 밝히기 어려운 내밀한 경험에 관해 다룰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예컨대 청소년 성소수자가 관련 연구에 참여할 때, 연구대상자가 부모에게 정체성을 밝히지 않은 경우라면 서면동의서가 연구 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이때 취약성은 단순히 연구대상자의 ‘나이가 어린 것’에만 근거한다. 이처럼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가족에게 공개하라는 압력을 가하거나 이들을 연구에서 배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안적인 동의 방식이나 대리인을 활용하는 방안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Adams et al., 2017, p. 171).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온 한 연구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굉장히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부모님인데 그 부모님한테 “아빠 나 이거 동의서 해주세요.” 정말 어렵거든요. 그래서 유아기, 영유아기나 학령기 정도 빼놓고는, 중학생 이상이나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라도 본인이 본인의 목소리를 내려면 부모님의 법적 동의가 없고, 물론 학교장이 허락을 하잖아요. 그럼 학교장도 보호자의 개념이기 때문에 그거 좀 수정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R20)

이처럼 아동이나 청소년이 연구에 참여하는 데 ‘자발성’을 의심하거나 연구 과정에서 특히 더 취약하다고 일률적으로 전제하는 것은 이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추정에 근거한다. 이처럼 특정 집단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IRB 심의위원들의 편견이 연구 수행을 가로막는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또 다른 사례는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나타난다.

IRB 기관에서 이분들을 취약계층이라고 정의를 할 때 그게 어떤 연구자와 연구대상자 간의 동의가 예를 들어 강압될 수 있다거나 그런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뭔가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생각을 좀 생각이 좀 들었는데. 예컨대 흔히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합리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를 되게 자의적으로 판단한다는 생각이 들었었고요. 사실 동의를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를 조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 그대로 동의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애초에 전제를 한다거나, 그 부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라고 하는데 사실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 명확히 알기 때문에. (R24)

이처럼 특정 집단은 ‘이미’ 취약한 존재로 가정되어 있기에 이들의 ‘자발적’ 참여는 그 진정성을 항상 의심받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특정 집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즉, IRB 심의는 연구윤리를 제고하고 취약한 이들을 연구 과정에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사회적 편견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고, 나아가 사회적 편견을 깨트리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연구의 생산을 가로막는다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등장하게 된다. 많은 인문사회 연구자는 IRB 심의위원들의 심의 의견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몰이해나 차별의 흔적을 발견한다. 가령 한 연구자는 심의위원으로부터 “인터뷰 과정에서 조현 에피소드가 발현을 해서 당신을 공격하면 어떡하냐는 식의 질문”(R24)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나아가 이처럼 IRB가 제도적인 권위를 바탕으로 특정한 편견과 차별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문제에 대해 IRB는 어떠한 자기조절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IRB 심의에서 말하는 취약성이 일정 부분 사회적 편견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관된 기준 없이 사실상 자의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넷째, 취약한 대상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살펴본 IRB 심의의 여러 한계가 결과적으로는 안전하고 윤리적인 연구 자체를 저해할 수 있다. 특히 어떤 집단에 덧씌워진 이미지나 사회적 편견에 주목하다 보면 (그러한 우려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여도) 그 밖의 특성이나 차이를 고려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최근 사회과학 연구에서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섬세하게 고려하는 것이 특히 불평등 연구에서 핵심적인 고려사항이라는 강조가 이어지고 있다(Al-Faham, Davis, & Ernst, 2019). 그러나 연구자들은 IRB가 특정 집단에 대하여 ‘취약성’을 매우 좁고 선험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있으며 실제 다양한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들을 고려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한다. 즉, IRB 심의가 지나치게 형식화되면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을 것으로 가정되는 하나의 특성이 실제로 존재하는 교차적이고 다층적인 사회적 위치와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안전하고 윤리적인 연구를 증진한다는 IRB의 도입 취지에 반대되는 것임에도 ‘취약성’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와 지나치게 형식화된 심의 및 서류 절차가 의도치 않게 그러한 모순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많은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IRB가 연구윤리 그 자체를 형식에 가둠으로써, IRB가 목표로 했던 연구윤리 증진 효과가 저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령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IRB의 잇따른 형식적 서류 수정 요청, 일단 연구계획서가 통과될 수 있도록 서류를 일부 거짓으로 작성하는 대응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재심의를 받고 또 재심의를 받느니, 그냥 그들이 원하는 대로 문구를 고치는 게 사실은 연구자 입장에서는 연구가 빠르게 수행되는 데 더 수월”(R21)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류 중심의 연구윤리 심의가 계속될 경우,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이에 적응하여 ‘서류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 현장에서의 연구윤리는 여전히 연구자 개인의 양심에 맡겨진 채로 남아있게 된다. 연구윤리 증진을 위해 형식적 절차를 강조한 결과, 연구윤리 그 자체가 형식화 되어버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6. 결론 및 제언

이 연구는 취약한 대상을 연구하는 인문사회 연구자의 IRB 심의 경험을 조사한 FGI 결과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갈등의 양상을 포괄적으로 파악하고, IRB와 연구자들 사이의 취약성 및 연구윤리 인식의 차이를 분석하였다. 이러한 결과, 단순히 연구자의 개별 차원을 넘어 전반적인 연구 과정에서 취약성과 불평등이 제도적으로 재생산되고 강화되는 경향을 드러내었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취약한 대상 연구와 관련한 갈등은 주로 IRB의 과도한 심의 기준의 적용으로 인해 발생한다. 연구자들은 IRB 심의 과정에서 취약한 대상 연구의 위험성이 과장되어 평가됨과 동시에 연구를 위해 과도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으로 느낀다. 이로 인해 형식적이고 까다로운 수정 요구나 편파적인 심의 진행에 직면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심의 기간은 장기화되어 연구 수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외에도 IRB가 잠재적 위험에 대하여 달성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대책을 요구하거나 연구자에 대한 과도한 자격 검증을 한다고 느끼기도 했다.

한편, 연구자들에게 서면동의서는 취약한 연구대상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는 중요한 절차로 여겨지지만, IRB의 형식적인 접근 방식이 지나치다고 여기고 있었다. 특히 연구자들은 취약한 대상자들에게는 서면동의서가 연구의 이해를 방해하거나 실제 동의를 얻기 어렵게 할 수 있으며, 서면동의의 형식적인 접근은 연구대상자에게 불필요한 긴장과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취약한 연구대상자의 정체성이나 민감한 정보 등이 노출될 수 있고, 특히 아동 연구에서 법정대리인의 추가 동의 요구는 연구대상자의 자기결정권을 간과하거나 그들을 위험 상황에 노출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어서 취약한 대상 연구와 관련된 갈등의 원인으로 IRB와 인문사회 연구자 간의 인식 격차를 확인하였다. IRB는 연구의 위험성을 높게 평가하고 관련하여 세부 대책을 강조하는 반면,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연구의 위험성을 낮게 보고 위험요인에 대한 대책 마련을 관료주의적 행정 절차의 하나로 인식하고 연구대상자와의 참여와 협력을 중시하였다. 또한 두 집단은 ‘취약한 대상’의 정의와 관련한 의견 차이를 보였는데 IRB는 생명윤리법을 기반으로 이들을 정의하고 대상특정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대상 자체에 취약성이 근본적으로 내장된 것으로 여기는 반면,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취약성을 맥락의존적인 것으로 본다. 서면동의 및 대리인의 서면동의 절차에 대해 IRB는 생명윤리법에 따라 동의가 면제될 수 없음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함을 강조하는 반면, 연구자들은 연구 상황에 따른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아동 대상자의 경우 무조건 취약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그들의 자발적 의사 표현 능력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문사회 분야에서 취약한 연구대상에 대한 IRB의 심의는 일정한 패턴의 갈등과 모순을 지니며 다음과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특정 취약 집단에 대한 연구 제약이 제도적 장애물을 형성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IRB 심의 절차는 취약한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장벽을 높임으로써 해당 집단들의 취약성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의 형성을 제한할 수 있다. 둘째, 연구자와 IRB 간의 연구 방법과 취약성에 대한 해석 불일치로 인해 질적 연구 과정에서의 복잡성이 단순화되고 무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IRB의 심의는 연구자와 연구대상자의 관계 및 잠재적 위험을 단순히 절차적 문제로 환원하여 정작 실질적인 어려움과 연구윤리상의 문제는 심도있게 논의되지 않고 있다. 셋째, 특정 집단에 대한 연구에서의 보호 명목 하의 제약은 사회적 편견의 반영과 취약성의 재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정 집단을 ‘이미’ 취약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며, 이는 편견과 차별을 재생산하고 연구 지식의 생산을 방해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넷째, 해당 집단의 선험적 취약성에 과도한 검증은 다층적인 사회적 위치와 교차적 관계의 고려를 저해하며 이는 안전하고 윤리적인 연구의 증진을 목표로 하는 IRB의 본래 취지와 모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연구의 한계로는 IRB 심의 과정의 또 다른 주체인 심의위원, 전문간사, 행정간사 등의 경험을 담지 못해 IRB 측의 입장에 대해 대체로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입장과 해석에 기대어 논의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IRB 심의위원이 인문사회 분야에 대해 몰이해를 드러낸다는 연구자들의 인식과는 달리, 실제 많은 개별 기관 IRB에서 인문사회 분야 연구윤리를 심의하고 있는 심의위원은 그들 자신이 인문사회 연구자이기도 하다. 심의위원 등 IRB 내부자들의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과 심의 방식을 조사하는 것은 IRB에 대해 인문사회 연구자들이 가지고 있는 광범위한 불신이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추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기로 한다.

또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연구에 참여한 인문사회 연구자들이 드러내는 연구윤리 및 IRB에 대한 인식과 입장을 연구진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으려 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본문에 인용한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발언 중 예컨대, 설문조사나 인터뷰 등에 따르는 위험이 거의 없다는 발언이나 네다섯 살 아이들도 자발적인 연구 참여가 필요하다는 발언 등에 대해서는 독자나 연구자의 가치관에 따라 이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IRB 및 연구윤리와 관련한 인문사회 연구자들에 대한 경험 연구가 거의 없는 실정에서, 이들의 실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러한 작업이야말로 IRB의 공식 담론과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인식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공론장에서 연구윤리에 관한 후속 논의를 촉진하려는 시도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연구의 주된 의의는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경험과 인식을 심층적으로 조사하여 IRB와의 인식 차이, 갈등 상황 그리고 ‘취약성’이 제도적으로 재생산되는 양상을 확인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 문제와 관련한 논의가 학계에서 더욱 활성화될 수 있길 기대한다.


Notes
1) 국가생명윤리정책원 공용기관생명윤리위원회에서 발행한 <취약한 연구대상자 보호지침>에 따르면 취약한 연구대상자란 “연구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을 온전히 보호할 수 없는 개인이나 그룹”, “대상자의 고유한 속성이나 심리적, 물리적 상황, 그리고 해당 연구의 연구자와의 관계 등으로 인하여 자발적 연구 참여 결정에 부당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국가생명윤리정책원, 2019, 10쪽)을 말한다. 이는 생명윤리법에 비해 취약성의 속성과 구성요소를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발전이라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에 그친다.
2) 연구대상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일은 생명윤리법에서 규정하고 있거나, 대다수의 IRB에서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R23의 사례는 해당 기관 IRB의 개별 심의에서 나타난 예외적인 사례인 것으로 여겨진다.
3) 다만 서울대학교 IRB와 같이 인간대상연구 심의의 90% 가량을 신속심의로 진행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Acknowledgments

본 연구는 2022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수행한 인문정책연구과제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의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갈등 경험 및 개선 방안 연구>에서 수집한 자료 중 일부를 전면 재분석하여 활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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