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6, No. 4

[ Article ]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6, No. 4, pp. 75-92
Abbreviation: jss
ISSN: 1976-2984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Oct 2025
Received 09 May 2025 Revised 26 Sep 2025 Accepted 15 Oct 2025
DOI: https://doi.org/10.16881/jss.2025.10.36.4.75

노동센터 조직화 경험을 통한 고령 남성 경비노동자의 ‘노동자 형성’ 과정: 충청남도 사례를 중심으로
이상표
고려대학교

The Formation of Elderly Male Apartment Security Guards into Workers through Labor Center Organizing: A Case Study of Chungcheongnam-do Guards
Sang Pyo Lee
Ph.D. Candidate, Dept. of Labor Studies, Korea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이상표, 고려대학교 노동학협동과정 박사(수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E-mail : ilvg9402@nate.com


초록

본 연구는 충청남도 지역 고령 아파트 경비원이 ‘노동자’로 형성되는 과정을 생애사적 관점에서 탐색한다. 기존의 노동자 형성 연구가 주로 청년기 산업노동자나 민주노조운동 참여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본 연구는 고령기의 노동을 단절이 아닌 연속선상에서 재구성되는 노동 경험으로 파악한다. 이를 위해 자주적 경비노동자 협의회에 참여하는 고령 남성 경비원 6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실시하고, 농촌 기반의 조기 노동화, 자영업·비공식 노동시장 경험, 경비노동 진입과정, 그리고 노동센터를 통한 조직화 경험을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노동센터의 조직화 사업은 고립된 개인에게 부당한 처우를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게 하고, 공적 발화를 가능하게 하는 언어와 관계망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E. P. 톰슨이 제시한 계급의 ‘형성’처럼 주체적 실천과 사회적 구성의 산물로, 고령 노동자의 주체 형성을 촉진하였다. 본 연구는 고령 노동자를 취약한 존재로만 보는 시선을 넘어, 말하고 조직하며 형성되는 주체로 이해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d how elderly apartment security guards in Chungcheongnam-do, South Korea, were formed into ‘workers’, employing a life-history perspective. While existing research on worker formation has primarily focused on young industrial workers or participants in democratic labor movements, this study concepyualized late-life labor not as a departure from working life, but as its continued and reconfigured trajectory. Drawing on in-depth interviews with six senior male security guards engaged in an autonomous security workers’ association, the analysis traced their early rural labor experiences, transitions through self-employment and the informal labor market, entry into security work, and participation in labor center–led organizing initiatives. The findings demonstrated that such organizing activities enabled otherwise isolated individuals to recognize unfair treatment as a structural issue and to acquire the language and networks necessary for public articulation. This process, akin to E. P. Thompson’s notion of ‘class formation’, represents both the outcome of social construction and the accumulation of subjective practice, thereby fostering the agency of elderly workers. By moving beyond the view of elderly workers solely as a vulnerable group, the article highlighted their capacity to speak, organize, and actively shape their own formation.


Keywords: Elderly Worker, Security Worker, Labor Center, Organizing, Formation of Workers
키워드: 고령 노동자, 경비원, 노동센터, 조직화, 노동자형성

1. 서 론

1990년대 이후 경제위기와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전투적인 노동운동이 약화하면서 개별 노동자의 구체적인 노동경험에 대한 구술사적 연구가 주목받게 되었다(원영미, 2013). 이러한 연구들은 노동자의 기업과 경험을 역사화 하는 것으로, 노동자를 역사의 객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주체화 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현재까지의 노동자 형성을 살펴본 연구의 대부분은 60~70년대 여성 노동자의 형성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진 경향이 있다. 당시 원풍모방(김경일, 2010), 반도상사(김귀옥, 2004)등의 사업장에 재직하며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에 관여했던 여성 노동자의 생애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서울로 상경했던 여성 노동자의 처음 또는 노동시장 진입 초기의 노동운동을 다루고 있다. 이후 중화학공업 남성 노동자 등으로 연구들이 확장해 온 경향이 있다(원영미, 2013; 허상수, 2004).

반면 고령 노동자의 노동자 형성을 포함하여 고령 노동자의 노동경험에 관한 연구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사회에서 고령 노동자란 인생 2막의 차원에서 소일거리로 일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고령 노동자를 주체적인 노동자로 설정하고 이들의 경험을 살펴보는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고령 노동자의 생계문제와 절박함이 청년 노동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대다수의 고령 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근무한다. 그러나 고령 친화일자리의 절대적 부족, 차별적 고용관행, 정보부족 등의 이유로 불리한 구직환경에 놓여 있다. 이러한 환경은 고령 노동자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생계가 절박한 고령 노동자의 자기조절을 만들었다(조예슬, 조준형, 이정원, 2024).

다른 직종도 그러하지만, 특히 아파트 경비원은 고령 노동자의 일자리에 대한 시혜적 노동이라는 인식과 일자리의 절대 수 부족으로 불이익한 처우를 마주하더라도 저항하기 어렵다. 실제로 경비원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일반화 되어있으며, 특히 야간 휴게시간이 있지만 제대로 쉴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경비원은 고령 노동자가 현실적으로 재취업이 어렵고 생계로 인해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딜레마 사이에서 불이익한 조건에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마주하였다.

현재 아파트 경비원의 경비원 이전 경험은 획일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전에 민간기업의 노동자로 살아온 노동자부터 자영업,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경로를 거쳐 인생의 마지막 직업으로 아파트 경비원을 선택하였다. 어쩌면 아파트 경비원을 선택했다고 표현할 것이 아니라 경비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들은 어떤 경로를 거쳐 아파트 경비원이 되었을까?, 이들이 처음 경험한 경비원은 어떤 노동세계인가?, 이들은 노동센터를 만나 어떤 변화를 만들어 냈는가?


2. 선행연구검토
1) 노동자 형성에 관한 논의

노동자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무엇을 노동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법적 지위나 생산관계 속 위치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조은주(2001)는 특급호텔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과 그 이후 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노동자의 형성이란 집합적 투쟁 속에서 상징과 언어를 재구성하는 문화적 실천임을 보여주었다. 이 연구에서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이 자신을 스스로 ‘종업원’이 아닌 ‘노동자’로 호명하게 되는 과정을 강조하며, 계급 형성이 단순한 구조의 산물이 아니라 상호작용과 경험, 정서적 연대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노동자의 형성이 투쟁과 조직화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의미 구성과 감정의 형성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기존 구조결정론적 접근을 넘어서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에서 진행된 노동자 형성 연구는 대부분 10대 후반 20대 초반 나이의 노동자 형성을 살펴보는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 형성과 관련하여 이촌향도, 가부장제 등의 영향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골을 떠나 도시로 취업한다는 것을 객관적 조건을 보고 있다(곽건홍, 1996; 김경일, 2010; 김귀옥, 2004; 이광욱, 2005).

사실 Thompson(1968)의 형성 연구는 이러한 나이제한 등을 두지 않는 연구였는데 한국적 연구 대부분이 대부분 경제활동 첫 시작 또는 초기의 형성을 노동자 형성으로 보고 있다. Koo(2001/2002)의 연구를 검토하더라도 현재 근무 이전의 작업장 경험에 대해 검토한 경우가 없다. 이러한 사업장 경험은 단순히 노동자로 근무한 기록 이외의 각종 경제활동 경력을 포함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 연구들은 고령 노동자가 노동자로 형성된다는 차원의 연구는 없다.

선행연구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는 이유는 산업화·민주화 시기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특징과 맞닿아 있다. 당시의 정규직-평생직장 중심 고용구조는 ‘첫 직장이 곧 마지막 직장’이라는 인식을 강화했고, 이에 따라 노동자로 된다는 것은 평생직장의 진입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노동시장에서의 재진입 가능성이나 중·고령기의 노동자 형성은 연구의 주요 관심 밖에 머물렀다.

노동조합을 통한 조직화가 아닌 노동센터를 통한 조직화 경험이라는 점도 주목해 볼 만하다. 하청업체가 주를 이루고 있는 아파트 경비업의 특성상 1년 단위 계약직이 일반적이고 1, 3, 6개월 단위의 초단기 근로계약도 발생하는 특성상 노동조합 설립이나 운영이 실질적으로 불가하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교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에 재계약 여부가 결정되기에 노동조합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간 한국에서 진행된 노동자 형성연구의 대부분은 노동조합으로 투쟁 경험을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파업 등과의 만남을 통해 노동자로 형성된다고 본다. 그러나 앞선 선행 연구들을 살펴보면 조직화가 진전되기 이전 노동자들은 동아리, 야학 등의 활동을 통해 노동자로서 계급의식을 획득했다고 보았다. 동아리, 야학은 그 내용에 있어 노동조합을 지향했을지라도 표면적으로는 친목 단체였다. 또한 이들은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중간적 성격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경비협의회는 설립 취지가 경비원의 권익보호를 위해 설립하여 그 표면과 내용 모두 준노조의 성격이 있다고 볼 수 있다(준노조에 대한 논의는 김경연과 김동원(2019); 박명준과 김이선(2016)의 연구를 참고할 것).

앞선 노동자 형성연구와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노동자로 겪는 경험이 연령에 따라 다른 가치로 측정될 수는 없다. 청년 노동자가 경험하는 불안정-고강도 노동과 고령 노동자가 경험하는 것은 다른 가치로 측정되거나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단순히 고령 노동자가 이전에 경제활동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노동자 형성을 이전의 노동자 경험의 하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남겨진 새로운 노동환경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고령노동자의 노동계급 형성은 후기 형성이나 재형성의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노동자의 개별적 경험에 따라 다르지만, 장시간 노동자로 살아온 이력이 있는 노동자의 경우 재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계급의 재형성을 통해 기존의 노동자로서의 삶을 비교하면서 현재의 노동환경에 대한 재평가가 가능하다. 다만, 노동자로 살아온 경험이 적거나 없는 경우 후기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장년 시절 노동계급을 경험하지 못하고 이후의 삶에서 노동계급을 처음으로 ‘늦게’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파트 경비원의 노동경험은 물론이고 고령 노동자의 노동경험에 대한 연구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간 학계에서는 청년, 여성 등에 대한 노동경험에 대한 연구는 많이 수행되었지만 고령-남성 노동자의 노동경험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고령 노동자의 노동자 형성 과정에 대한 검토도 부족하다. 기존 연구에서 전직이나 이직 한 노동자의 형성 과정의 한 사례로서 다루고 있지만 이는 청년노동자 시절의 경험에 한정되어 있다.

특히 고령화가 지속되고 노후소득보장의 약화되면서 고령 노동자의 수는 더욱 증가할 예정이다(경기연구원, 2022). 이러한 상황에서 고령 노동자의 노동경험을 살펴보고 현황을 이해하는 것은 향후 노동시장 구조 변화에 대응하고, 고령층의 생계·사회참여를 보장하며, 정책·제도 설계 시 실질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고령 노동자가 직면한 불안정·저임금·사회적 고립 문제를 완화하고, 지속가능한 일자리 모델과 적합한 노동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그러나 지자체 노동센터를 중심으로 경비원의 노동환경을 비롯한 실태조사는 제법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대체로 임금, 휴게시간, 입직방법, 부당대우 경험 등 근무 중 마주하는 경험만을 살펴보고 있다. 따라서 현재 노동자의 노동환경이나 현황의 차원에서 살펴보기 용이하나 경비원을 시작하기 이전의 노동세계와 생활세계, 경비원이 된 입직과정 등 노동자 형성에 관해서는 서술하고 있지 않다. 이 외에도 일부 감정노동이나 산업안전과 관련한 연구들은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재 아파트 경비원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노동자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노동자 형성 과정은 통계를 기반으로 하는 총량적 연구가 아닌 의미세계의 구성 차원에서 질적연구방법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보다 심층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충청남도의 경비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후술할 내용이지만 충청남도에서는 지자체 노동센터를 중심으로 자주적인 경비노동자 협의회를 구성 및 운영하고 있다. 활동 중 경비원의 자발적 동아리를 비롯하여 캠페인 등 인식개선 활동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이 많아 노동조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비원이 수동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본인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모든 경비원 노동자의 경험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의 경험이 현재 고령 노동자를 둘러싼 상황과 경험의 일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고령 경비노동자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심층인터뷰를 통해 분석하며, 다음과 같은 연구내용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첫째, 경비노동에 진입하기 이전 다양한 노동 경험은 이들의 노동자 정체성과 생계전략에 어떠한 축적적 의미를 형성하였는지를 고찰한다. 둘째, 경비원으로의 입직 과정과 현장 내 숙련의 획득, 임금 및 고용체계는 고령기 노동자의 ‘재형성’에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를 분석한다. 셋째, 일상적인 경비노동 수행 속에서 형성되는 노동자 의식은 어떠한 조건과 경험을 통해 나타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고령 노동자의 주체 형성 과정을 조망하고자 한다.

2) 아파트 경비원의 노동환경

그렇다면 아파트 경비원의 노동환경은 어떠한가?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아파트 경비원은 대표적인 남성의 고령친화 직종이다. 그러나 실제 노동현장은 쉬울 것 같은 고령친화 직종과 다르게 고강도 노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경비원의 노동환경을 살펴보기 이전에 경비업과 아파트 관리의 중층적 산업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관리는 1) 주택건설사업자 등을 통한 관리, 2) 입주자대표회를 통한 자치관리, 3) 입주자대표회와 위탁 계약한 아파트 주택관리업체를 통한 위탁관리로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 주택건설업자 등을 통한 관리는 입주예정자의 과반수 입주 시까지 과도기적으로 관리한다. 따라서 과반이 넘는 입주민이 입주한 아파트는 자치관리 또는 위탁관리의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다(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2020).

이 중 자치관리는 가장 단순한 관리방식이다. 입주자대표회가 관리소장, 관리직원, 미화원, 경비원 등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다. 중간에 용역업체가 없어 용역수수료 등을 지출하지 않아 비용이 절감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아파트 입주자대표회가 직접 인력관리 등 각종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대부분 위탁관리의 형식을 띠고 있다. 위탁관리로 아파트를 관리할 경우 필연적으로 노동자에 대해 간접고용의 형태를 띄게 된다. 간접고용이란 고용관계 형성에 있어 제3자가 개입하여 노동과정 중 지위감독 역할에 대해서는 법적인 사용자와, 이에 대한 편익을 얻는 실질적 사용자가 분리된 것을 이야기하는데 일반적으로 파견, 도급, 용역 등이 이에 속한다. 대다수의 아파트는 경우 법적인 사용자인 위탁관리업체와 실질적 사용자인 입주자대표회가 존재한다. 입주자대표회와 위탁관리업체가 아파트 전반에 대한 관리를 위탁하는 도급계약의 방식을 체결하고, 경비원은 이를 수행할 노동자로 위탁관리업체가 채용하게 된다(김준우, 김용구, 전동진, 2017). 즉, 경비원에 대한 고용은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아닌 도급업체에서 체결한다는 것이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현재까지 아파트 경비원과 관련하여 노동환경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져 왔다(아산시비정규직지원센터, 2020;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2020). 대부분의 연구는 설문조사를 통한 통계적 분석과 함께 법제도의 개선 및 개정을 위한 제언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선행연구에서는 연령, 성별, 임금, 근로시간, 휴게시간, 갑질 경험 등을 조사하였다.

아파트 경비원의 노동환경과 관련한 세부적인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1) 가장 크게 드러나는 문제는 근로계약기간과 관련한 문제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 대부분의 경비원은 간접고용형태로 아파트에 근무하고 있다. 이때 위탁관리업체는 경비원에 대한 통제를 용이하기 위해 계약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근로계약 체결 과정에서 1년단위 근로계약을 체결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 들어 1,3개월 단위의 초단기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다. 우선 노동자에 대한 통제의 용이성이다. 후술할 내용이지만 경비원의 업무특성상 대민업무가 많고 그 범위를 구체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 위탁관리업체는 입주자대표회와 계속적인 위탁계약을 하기 위해 입주민 등에 대한 민원발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노동자를 통제하는 방법 중 가장 용이한 방법은 근로계약을 짧게 설정하고, 민원이 발생할 경우 근로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짧은 근로계약을 통한 통제로 인해 경비원은 입주민의 부당한 요구, 위탁업체 및 관리소장의 부당한 업무지시에도 저항하기 어렵다.

둘째, 저임금-장시간 노동이다. 경비원 대부분은 고용노동부에 감시단속적근로자로 승인받아 주휴수당, 휴게시간, 야간수당 등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을 적용받지 않는다.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하는 것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경비원의 평균 휴게시간은 15.26시간으로 점심, 저녁 등 통상적인 휴게시간도 일반적인 사업장에서 부여되는 1시간이 아닌 1.5~2시간이 부여되고, 야간 수면시간도 휴게시간으로 산입된다. 실제로는 24시간 대기하며 아파트에서 근무하지만, 실제로는 15~18시간의 근무시간만 인정되며, 이 마저도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인정되어 각종 수당을 받지 못한다.

셋째, 실효성 부족한 휴게공간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 등 노동자는 휴게시설을 반드시 갖춰야 하고, 최소면적, 냉난방기설치, 조도, 환기시설 등에 대한 규정이 있다. 현실은 법정기준에 맞춘 아파트도 많지 않고, 맞췄다고 하더라도 실제 이용하기는 어렵다. 야간 휴게시간 이러한 휴게공간에서 휴식해야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시설을 이용하면 야간에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 어렵다. 또한 실제 별도의 휴게공간을 반드시 두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어 경비실이 휴게공간 기준에 충족한다면 별도의 휴게공간을 두지 않아도 무방하다.

넷째, 모호한 업무범위도 큰 문제이다. 현재 공동주택관리법상 경비원은 경비업무 이외에 청소 및 마화보조, 재활용 분리수거 감시 및 정리, 안내문 게시 및 투입, 주차관리, 택배보관 등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대민업무 특성과 불안정한 계약기간으로 입주민의 즉각적인 요구나 관리사무소장 등 관리직원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아파트 시설보수, 풀베기 등에 동원된다.

마지막으로 입주민 및 관리사무소 직원으로부터 발생하는 부당한 처우 문제이다. 고 최희석 경비원 산재사고 등 입주민 등으로부터 인한 부당한 대우에 참기 어려워 자살하는 경우 등을 미디어로 살펴볼 수 있다. 입주민으로터 부당한 대우를 일반경비원은 전체의 22.9%에 달했다. 그 유형은 폭언폭행이 11.8%로 가장 높았으며 부당한지시(8.5%)등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당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왜 경비원은 저항하지 못하는가?

우선, 초단기근로계약에서 기인하는 문제이다. 현재 상당수의 아파트에서 경비원을 통제하는 방법 중 가장 용이한 방법은 근로계약을 짧게 설정하고, 민원이 발생할 경우 근로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짧은 근로계약을 통한 통제로 인해 경비원은 입주민의 부당한 요구, 위탁업체 및 관리소장의 부당한 업무지시에도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둘째, 고령 노동자의 절박함이다. 현재 고령 노동자의 대부분은 소일거리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경비원의 일을 하고 있다(조예슬 외, 2024). 그러나 고령 노동자가 일할 곳은 마땅치 않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하지만, 이 일이 아니라면 먹고살 수 없는 절박함이 부당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저항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3) 노동센터의 조직화사업

한국의 노동조합 중심 노동운동은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전체 노동조합 조직률은 2023년 기준 13.0% 수준이다(고용노동부, 2024). 특히 30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0.1%, 30~99명 사업장의 조직률은 1.3%로 나타났으며, 민간부문의 조직률은 9.8%로 나타나 소규모-민간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낮은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노동과 관련한 주요 의제를 처리하는 최저임금위원회·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이 기구에서 노동자 대표는 대부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의 대규모-정규직 조직에 의존한 노동운동만으로는 소규모 사업장-민간-비정규직의 권익을 충분히 대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기존 노조 체계와 병행하여, 현장의 분산성과 고립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화와 참여 방식이 요구된다.

노동센터는 앞서 서술한 한국의 노동조합의 현황에 따라 취약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각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하고 이에 근거하여 설립하였다. 노동센터는 각 지자체별로 명칭이 조금씩 상이한데, 대체로 OO노동권익센터, OOO비정규직지원센터 등으로 불리고 있다. 주된 사업으로 법률상담, 법률교육, 정책연구 등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노동센터에서는 경비원의 권리보호와 증진을 위해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캠페인 등 인식개선사업, 공동주택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생상협약, 아파트 경비원을 대상으로 노동법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노성철, 정흥준, 이철, 2018).

아파트 경비 노동자의 형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충남지역 아파트 경비원의 사례를 선정하였다. 충남지역은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충남센터), 아산시비정규직지원센터(아산센터), 서산시비정규직지원센터(서산센터), 당진시비정규직지원센터(당진센터)가 중심으로 2022년 충남 공동주택 노동자 지원사업단(지원사업단)을 구성하였다. 2022년 당사자 조직의 필요성을 느낀 지원사업단은 충남 공동주택 경비노동자 협의회(경비협의회)를 설립을 지원하였다. 이는 지자체 민간위탁 노동센터의 전국적 흐름을 반영한 사업 추진이라고 할 수 있다.

충남지역 노동센터의 경비원 조직화 사업의 시작은 2019년에서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아산센터의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경비원 모임을 시작하였다. 이때 노동센터는 협의회, 협회, 노동조합 등의 전환을 고려하였지만 뚜렷한 방향성을 설정하고 진행하지 않았다. 이후 충남센터에서 실태조사를 진행하였고, 사업의 필요성에 공감하여 아산센터, 서산센터, 당진센터와 공동사업을 추진하였다. 초기 4개 센터는 느슨한 연대체를 유지하며 서로 사업을 지원하는 형식을 보였다. 이후 4개 센터는 공동으로 사업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문제인식을 시작으로 2022년 ‘충남 공동주택 노동자 지원사업단’(이하 지원사업단)을 구성하였다. 이후 기존에 조직화한 노동자-당사자를 중심으로 ‘충남 공동주택 경비노동자 협의회’(이하 경비협의회) 설립하도록 지원하였다.

이 4개 센터가 지원사업단을 구성하고 조직화사업에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이유는 1) 지역 내 공동주택 노동자의 노동현안에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2) 수탁기관이 모두 민주노총이라 서로 연대의 공동체가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공동사업의 추진을 통해 지역 공동의 의제를 설정하고, 각종 현안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연대고리는 2025년 현재 희미해졌다. 서산센터와 당진센터의 민간위탁이 종료되고 시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이 되어 직접적 사업교류를 하고 있지 않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충남센터의 위탁법인이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에서 사단법인 내 일의 내일로 변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전과 동일하게 아산센터와 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병권(2022)은 이러한 노동센터에 대해 조직화의 실험실로 표현했다. 노동센터는 기존의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벗어나 지역을 기준으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해대변을 모색한다. 이해대변의 방안으로 기존의 노동조합 중심이 아닌 노동환경을 대중에게 알리고 이를 통해 지자체 및 중앙정부의 변화를 이끌어 낸 점은 높게 평가했다. 다만 이러한 활동들이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이병권(2022)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한계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분석하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를 두가지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우선 지자체 수탁사업에서 기인한 한계성이다. 국내 노동센터의 대부분은 지방자치단체가 조례에 따라 노동조합 또는 노동관련 비영리법인에 위탁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위탁이라는 특성상 대부분 3년 계약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성향, 의회의 구성에 따라 예산상의 제약, 위탁기관 변경, 센터 존폐가 결정된다. 센터 위탁기관이 변경되거나 폐쇄할 경우 조직화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이는 법률적 근거와 중앙정부의 예산적 지원 없이 조례와 지자체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지자체사업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민간위탁이 아닌 지자체가 직업 운영하는 직영방식으로 노동센터를 운영할 수 있지만2) 행정공무원이 직접 운영하는 특성상 사업내용의 전문성을 답보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노동센터의 설치 및 운영에 대한 법률적 근거 마련 등이 논의되고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은 실정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조직의 자립가능성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는 노동센터의 딜레마로도 볼 수 있다. Koo(2001/2002)의 연구를 검토하면 노동자 조직화의 주체는 노동자이고 야학, 교회, 동아리 등은 조직화를 지원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현재 노동센터는 조직화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노동센터가 주체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경비원의 노동환경과 고령이라는 특성에서 기인한다.

경비협의회는 노동조합이 아니기에 실질적인 교섭이나 고용안정을 쟁취하기 어렵다. 도리어 경비협의회 활동이 회사나 아파트에 알려질 경우 계약직이라는 특성상 재계약이 거부될 우려가 있다. 실업상황을 마주하면 고령이라는 특성으로 재취업에 한계를 갖게 된다. 이러한 특성으로 경비협의회의 실제 운영과정에 있어서 센터가 협의회 운영 전반을 이끌어가는 구조를 띠고 있다. 그러나 노동센터는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폐쇄되거나 운영주체가 변경될 수 있다. 이러한 외부적 변화에 경비협의회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운영주체가 변경되지 않더라도 노동자 조직화의 핵심은 노동자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전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계급의식과 집단적 힘이다. 따라서 센터가 지속적으로 주도한다면 경비협의회는 지원받는 집단에 머물러 주체적인 의사결정경험과 역량축척의 한계를 갖는다. 따라서 센터가 주체가 되어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센터는 조직운영을 지원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현재 센터는 경비협의회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3. 연구방법

본 연구는 앞서 제기한 문제의식에 따라, 아파트 경비원들이 어떻게 ‘노동자’로 형성되어 왔는지를 탐색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는 경비원을 단지 고령의 일자리를 수행하는 ‘노인’이 아닌, 특정한 생애궤적과 구조적 조건 속에서 노동자로 구성되어 온 주체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노동자의 형성 과정을 총체적·정량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구체적 삶의 경험과 그 안에서 구성되는 의미세계에 주목하는 질적 연구 방법을 채택하였다. 이는 김귀옥(2004)이 강조한 바와 같이, 노동자의 형성은 통계적 수치의 집합이 아닌, 의미의 구성과 해석의 과정으로 접근되어야 한다는 관점에 기반한다.

본 연구는 특정 이론을 생성하거나 검증하는 것보다, 다층적인 경험과 그 안에서 구성되는 의미세계를 기술·해석하는 데 초점을 둔다. 여기서 의미의 구성과 해석의 과정이란, 참여자가 자신의 경험을 서사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노동자성의 형성 요인(사회경제적 배경, 노동경험의 축적, 조직화 참여 등)을 탐구하고, 이를 경험적 맥락 속에서 상호 연결시키는 분석을 의미한다.

연구방법으로는 일반적 질적연구(general qualitative inquiry) 설계를 활용하였다. 이는 근거이론이나 현상학처럼 특정한 분석 모델을 전제하지 않고, 참여자의 경험과 인식에서 출발하여 의미를 도출하는 데 유연한 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연구참여자는 충청남도 내 자주적인 경비원 모임인 ‘충남 공동주택 경비노동자 협의회’의 임원을 중심으로 편의표집(convenience sampling) 방식으로 모집하였다. 연구참여자 선정은 경비노동에 종사한 경험이 있으며, 자발적으로 자신의 노동경험을 서사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들을 기준으로 하였다. 연구자는 수년간 경비협의회 활동을 지원하면서 대부분의 연구참여자와 2~5년간 라포를 쌓아왔다. 따라서 연구참여자들의 현장에서의 다툼, 가정사 등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짧은 시간 심층적인 인터뷰가 가능했다. 최종적으로 6명의 경비원이 연구참여에 응하였으며, 연구참여자의 주요 특성은 <표 1>과 같다.

<표 1> 
연구참여자의 특징
구분 나이 이전경력 경비경력 비고
1 65 시청 공무직 1년 현)관리직
2 78 공무원, 목사 등 5년 지역대표
3 65 건설, 공장 7년 지역대표
4 68 석유화학 5년 지역대표
5 65 공장 9년
6 68 시민단체 10년 활동X

자료 수집은 반구조화된 면접지(semi-structured interview guide)를 활용한 심층면접(in-depth interview)을 통해 진행되었다. 면접은 2025년 4~7월 중, 연구참여자가 지정한 장소에서 1:1 대면 방식으로 실시되었으며, 인터뷰 시간은 1인당 약 50~70분 정도 소요되었다. 인터뷰의 전 과정은 참여자의 사전 동의를 얻어 녹음하였으며, 녹음 자료는 연구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외부에 공개되지 않음을 분명히 고지하였다.

또한 참여자의 익명성과 비밀보장을 철저히 준수하였다. 연구참여자의 실명이나 특정 지리정보는 모두 익명 처리되었으며, 녹음자료 역시 연구자 외 외부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저장장치에 보관하는 등 질적연구의 윤리적 기준을 충실히 준수하였다.


4. 연구결과
1) 기존 노동경험과 경비원 입직과정

본 연구의 연구참여자들은 모두 농촌 출신 60~70대 남성으로, 1950~60년대의 산업화 이전 시기를 유년기로 경험한 세대이다. 이들이 자라난 시기는 국가의 체계적 복지제도가 부재하던 시기였으며, 농촌은 도시와의 격차가 극심했던 지역이었다.

연구참여자들의 경제활동 출발점은 출신 지역, 가정 배경, 교육 수준에 따라 뚜렷하게 갈라졌다. 다수는 농촌에서 성장하며 학업을 조기에 마치고 10대 후반부터 생계 노동에 나섰다. 한 참여자는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읍내 나가서 공장에 들어갔죠. 돈 벌어야 하니까, 선택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생계로 인해 체계적인 직업교육이나 고등교육이 부재한 상황에서 노동시장에 진입함으로 인해 연구참여자들은 건설, 제조, 운송, 일용직 등 다양한 직종을 오가게 했고, 직업 경력의 단절과 전환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다양한 직종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넘어, 한국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생애 전반에 걸쳐 개인을 어떻게 반복적으로 포획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특히 연구참여자 1은 하청을 받아 운영하던 소규모 사업의 실패와 가족의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반복적인 재기와 몰락을 경험하였으며,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성공의 기회’보다는 ‘다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생존 전략의 연속성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모든 참여자가 불안정 노동 경로만을 밟은 것은 아니다. 일부는 장기간의 정규직 근무를 통해 안정적인 시기를 경험했다. 연구참여자 2는 가난한 어린시절을 이야기 했지만 개인사업을 통해 쌓은 경력을 통해 공무원으로 입사해 15년간 근무하였으며, 40대 목사로 안수하여 지역교회를 성장시키는 등 생활 안정과 사회적 지위를 확보했다. 연구참여자 4도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고교졸업 후 지역 내 대기업 생산직에서 정년까지 근무한 뒤, “집에만 있으니 몸이 더 아픈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경비직을 선택했다. 이들은 조직문화 이해, 보고 체계, 대인 응대 능력 등에서 비교우위를 보였고, 이는 경비 업무 적응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경비원 입직의 계기는 경제적 필요와 연령 제한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직종이라는 특성이 맞물린 결과였다. 은퇴 이후 연금이나 퇴직금만으로 생활이 빠듯한 경우가 많았고, 자녀 학자금 지원, 부채 상환, 예기치 못한 의료비 등 구체적인 재정 압박이 재취업을 촉발했다. 한 참여자는 “연금이 있긴 한데 그걸로는 안 돼요. 관리비만 해도 몇 십만 원이니까”라고 말했다. 입직 경로는 일자리센터, 생활정보지, 지인 추천 등이었으며, 채용 과정에서의 서류심사나 면접은 형식적인 경우가 많았다.

다만, 연구참여자마다 상이한 이전 경제활동경험은 고령기에 이르러 ‘퇴직 이후의 일자리’로 간주되는 경비노동을 단절 이후의 노동현장으로의 복귀 볼지 여부에 대해서 상이하게 느끼게 한다. 지속적으로 입퇴직을 반복하며 불안정노동을 수행해온 노동자에게 경비원으로서 노동경험은 고령이라는 생애주기에 맞춰 변형되었을 뿐, 일하지 않은 시기 없이 지속된 노동 연속체의 일환으로 해석해야 한다. 즉, 이들이 고령 경비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산업적 은퇴 이후 우연히 선택한 ‘노인의 일자리’라기보다, 도시 하층 노동구조 속에서 중단 없이 이어진 노동자의 삶이 고령기라는 사회적 시기 속에서 재구성된 결과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정규직으로 근무한 이력이 긴 노동자들은 이들의 경험과 상이하게 이전 경력과 분절된 노동경험으로 해석되게 한다. 이들에게 경비원은 ‘퇴직 이후’의 일자리라 인식이 강하다. 따라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자기 자신을 비참하게 생각하거나, 이 일을 본인의 소일거리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이 일하게 된 계기는 경제적 문제로 인한 노후 노동시장 재진입이다.

또한, 연구참여자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된 생각은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마지막’이라는 인식이다. 노후의 ‘마지막 직장’이다. 기존 노동시장에 편입이 불가하지만, 은퇴 이후의 경제적 필요가 중첩된 결과였다. 결국 이들의 경로는 ‘누적적 노동 주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고단한 노동의 연속이 아니라, 서로 다른 노동 환경과 지위를 오가며 끊임없이 적응·재편을 거듭한 주체를 의미한다. 반복적 입직과 퇴직, 안정과 불안정의 교차 경험은 경비직이라는 현재의 노동 위치를 형성한 토대이자, 이후 노동 주체성 변화의 전제 조건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본 연구참여자들의 기존 노동경험과 경비원으로 입직은 고령 노동자 형성의 기초 조건을 구성한다. 이들은 중년기까지 노동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일해왔으며, 노년에 이르러 선택 가능한 직종이 축소된 상황에서 경비노동이라는 특정한 위치로 수렴되었다. 따라서 고령 경비원은 단지 고령친화형 직종에 우연히 배치된 주체가 아니라, 경제적 요구와 노동시장의 배제를 통해 형성된 누적적 노동 주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분석은 ‘고령 노동자’라는 범주가 단일하고 정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축적과 불안정성의 결과로 형성된 것임을 보여준다.

2) 노년기 노동주체성의 내적 재구성

노년기 노동주체성은 고령기에 접어든 개인이 자신의 노동 경험을 해석하고,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노동자로 위치 짓는 총체적 인식과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노동시장 참여 여부에 그치지 않고, 노동을 바라보는 가치관, 노동을 통해 형성·유지되는 사회적 관계, 그리고 직무 수행을 통한 자기 정체성의 확인과 재배치를 포함한다. ‘재구성’은 이러한 주체성이 생애 후반부에 변화·전환하는 과정을 뜻하며, 이는 특정한 정치적 계기나 제도 변화뿐 아니라 누적된 생애 경험, 나이듦의 신체적·사회적 조건, 일상 속 반성적 실천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

연구참여자들의 서사는 나이듦을 정체성의 소극화가 아니라 재해석의 기회로 경험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연구참여자 모두 정치적 동원이나 집합적 사건이 전무하거나 미미했음에도, 경비노동이라는 특정 직무 환경 속에서 점차 자신의 노동 위치와 의미를 재배치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자신의 노동위치와 의미를 재배치 할 수 있던 이유는 ‘고령’이라는 절박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일부 연구참여자의 경우 재산이 많아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를 유지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다수의 연구참여자는 경비원 업무를 하지 않을 경우 당장의 생계에 큰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이와 체력적 한계로 인해 경비원 이외에 할 수 있는 업무는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조건 속에서 앞서 살펴본 부당한 대우를 거절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더 이상 다른 길을 생각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절박함이 노동자 정체성의 재해석 기회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모두가 노동조합과 같은 전통적인 정치사회적 조직에 소속된 경험이 전무하거나 미미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듦과 함께 노동에 대한 감각을 ‘단지 일한다’는 차원을 넘어 ‘노동자로서 존재한다’는 층위로 전환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는 나이듦 그 자체가 비정치적이거나 탈의미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오히려 일정한 시점에서는 자신의 노동을 해석할 언어와 감각이 변화하면서, 기존의 수용적 태도에서 비판적 인식으로 이동하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또한 이들 모두 경비노동이라는 직무 특성을 통해 자신이 처한 노동조건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감정노동의 강도, 업무의 모호성, 초단기 계약과 같은 요소들은 이들이 과거의 노동경험에서는 직접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고령기의 몸, 낮은 사회적 위상, 반복되는 부당한 대우를 경험하며, 이들은 노동을 단지 ‘해야만 하는 것’에서 ‘말해야 할 것’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러한 전환은 비록 서서히 진행되었지만, 노동자 정체성의 재구성이라는 점에서 매우 본질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결국 고령 노동자에게 있어 ‘나이듦’은 생물학적 쇠퇴의 지표가 아니라, 자신의 노동과 삶을 성찰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사회적 계기이자 형성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이처럼 ‘고령 노동자의 형성’은 청년기의 계급형성과 다른 층위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생애적 시간성과 축적의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3) 조직화 경험과 사회적 발화의 조건

고령 경비원의 일상은 매우 고립적이며, 자율성과 통제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요구받는 구조 안에 위치한다. 좁은 경비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외형적으로는 공동주택의 일원인 것처럼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사적 공간을 관리하는 비가시적 노동자로 존재한다. 이처럼 ‘공공성을 수행하되 사적 권력에 예속된 위치’는 경비원 특유의 이중성을 낳고 있으며, 이는 노동자의 자기 인식 형성과 조직화 가능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구조적 고립성에도 불구하고, 연구참여자들은 노동센터들이 주도한 경비원 조직화 과정과 접촉하면서 노동자로서의 자기 인식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연구참여자 3은 노동센터 활동가의 방문을 계기로 협의회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초기에는 단순히 “경비원들끼리 모여 이야기 나누는 자리”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반복적인 참여를 통해 그는 자신이 겪어온 부당한 대우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반복되는 조건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후 노동자 협의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대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는 이를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도 되는 자리”라고 표현했다.

연구참여자 5, 6은 같은 아파트에서 근무하였고, 연구참여자 5는 그 중 경비협의회 활동을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다. 2025년 초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관리비 절약을 위해 경비원을 감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비협의회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경비협의회와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 지원으로 경비원 감원에 대한 주민투표에서 부결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협의회 활동이 무의미한 활동이 아님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조직화 경험은 단순히 외부에서 주입된 정치적 실천이 아니며, 경비원이 마주하는 일상적 모순과 불합리를 공통의 언어로 바꾸어내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다. 특히 협의회라는 조직은 전통적인 노동조합 모델과 달리, 강한 투쟁 중심보다는 공감과 공유를 기반으로 형성되었고, 이는 고령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진입장벽과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조직화의 형태는 고령 노동자에 적합한 새로운 방식의 집합적 실천 모델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 경비원의 업무 특성상, 이들이 수행하는 노동은 법적으로는 ‘경비’로 한정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안내, 청소, 주차관리, 재활용 정리, 입주민 민원 처리 등 다양한 잡무를 포함한다. 이러한 업무의 모호성은 노동조건의 불명확성을 초래하며, 노동자의 권리 주장을 어렵게 만든다. 또한 계약 구조 역시 이들의 발화를 억제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특히 1~3개월 단위의 초단기 근로계약은 입주민 또는 관리소장과의 갈등이 발생할 경우 계약 연장이 거부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는 자기검열과 감정노동을 내면화하며,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도 침묵하게 된다.

그러므로 조직화의 의미는 단순한 권익 향상을 넘어, 고립된 개인이 공통의 언어를 갖게 되는 과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연구참여자들이 협의회 활동을 통해 가장 먼저 경험한 것은 ‘내가 겪은 일이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인식이다. 이는 노동자 형성의 핵심 국면으로, 사적 고통의 사회화를 통해 자기 정체성이 구성되는 지점이다. 특히 이들은 처음으로 자신이 경비원으로서 발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고, 그것이 곧 노동자로서의 재구성과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발화가 더욱 촉진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조직화의 진전이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경비협의회가 주체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주체적 운영이 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참여율이 부진하다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연구참여자4는 노동센터에서 주최한 서예동아리에서 본인만 혼자 참여하다시피 한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경비원이 서로 모이지 않아 더 나은 무언가를 이루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연구참여자 6은 본인이 협의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사실 떳떳한 일은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지역사람이라 후배들이 시청 과장이고 그런데 경비원이다 하고 나서기가 창피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러한 한계는 스스로 노동조건 개선과 같은 현실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동자로 하여금 참여의 동력을 잃게 만든다.

결국 경비노동자 협의회와의 만남은 고령 노동자가 경험한 사회적 배제와 침묵의 조건을 균열내는 실천적 계기로 작동하였다. 노동센터와 협의회는 이들에게 노동의 권리를 언어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이는 경비노동이라는 낮은 위치의 일자리가 가지는 사회적 위계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기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비원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이에 대한 의식으로 인해 조직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하며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발화가 촉진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4) 조직화를 통한 감각 형성과 계급 주체성의 가능성

고령 경비원에게 있어 조직화 경험은 단지 권리 향상이나 법률 교육을 넘어, 자신의 삶을 구성하고 해석하는 언어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이들은 과거에는 경험했지만 명명할 수 없었던 부당한 조건을 협의회 활동을 통해 공통된 언어로 환원하며 노동자 정체성을 감각적으로 내면화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단지 개인적 성장이나 계몽에 그치지 않으며, 오히려 일상적 침묵과 억압을 통과해 집단적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경로로 해석되어야 한다.

특히나 연구참여자 5, 6의 인원감축 반대집회 등을 통해 자신의 노동 조건이 단지 ‘참아야 하는 현실’이 아니라, 공적 담론으로 발화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습득해 나갔다. 경비원으로서의 위치는 더 이상 감내해야 할 고통이 아닌, 저항해 볼 수 있는 ‘조건’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변화는 Thompson(1968)에서 주장한 계급 형성 개념과 연결된다. 톰슨은 계급을 단순한 경제적 위치나 구조로 설명하지 않고, 공통된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 자기 언어를 획득하고, 스스로를 역사적 주체로 정립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 관점에서 고령 경비원은 감정노동, 초단기 계약, 업무 모호성이라는 공통된 구조적 조건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집합적 경험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침묵해 왔다. 그러나 협의회라는 공간은 이들이 개별화된 고통을 집합적 언어로 번역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계급 형성의 초기 조건이라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조직화는 감정적 고립을 해체하고, ‘말해도 되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제공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한 저항이 성공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참여자 2의 경우 아파트 인원감축 사례가 발생하였고, 노동센터 직원이 아파트에 방문하여 관리사무소장을 설득하였으나 위탁관리업체로부터 “일하려면 협의회 한다고 하지 말아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혼자 피켓시위라도 하려고 했던 노동자에서 일자리의 위기가 오면 위탁관리업체 등을 통해 다른 일자리를 어떻게든 알선하려는 타협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참여자2는 조직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회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현하고, 말할 권리를 인식하며, 자신이 노동자로서 존재한다는 감각을 회복하게 되었다. 특히 협의회라는 집합적 공간에서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단지 개인적 연대감을 넘어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노동자’를 구성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는 노동조합이 없는 상황에서도, 조직화의 실천이 노동자 정체성 형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같은 형성은 아직 형성 중인 상태, 곧 ‘계급이 되어가는(in the making)’ 과정에 있다. 초단기 계약과 고용의 불안정성, 고립된 작업환경은 여전히 조직화의 확산과 자기 인식의 형성을 제약하고 있다. 여전히 다수의 고령 경비원은 자신의 권리를 언어화하지 못하며, 침묵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연구참여자들의 사례는 고령 경비원 역시 특정한 조건 하에서 계급적 감각을 획득할 수 있으며, 이는 조직화의 언어, 감정, 실천을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형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조건 속에서 열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계급이 되어가는(in the making)’ 과정은 여기서도 갈등·피로·좌절을 동반했고, 바로 그 복잡성과 불완전성이 주체 형성의 실제 조건이었다. 하소연으로 인해 회의가 지나치게 길어지거나 뒤풀이 자리에서 술취하는 회원으로 고생하기도 하였고, 인원감축 등의 문제로 고용위기가 발생하더라도 단체카톡방에서 위로의 인사만 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노년기 경비원들이 경험한 조직화는 현실적인 노동조건을 위해 항상 싸워주는 존재로 위치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다만, 고령기 노동의 사회적 지위를 재정의하고, ‘존재하지만 말하지 못했던 노동자’의 말하기를 가능케 하는 실천적 기반으로 기능한 수준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5) 논의

지금까지 살펴본 고령 경비원의 노동 경험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형성 과정이 단지 청년기 또는 산업 성장기의 일부로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경로는 노동자의 형성이 생애 전반에 걸쳐 반복되고, 재조정되며, 특정 구조적 조건과 긴밀히 상호작용함을 드러낸다. 특히 고령기에 접어든 이들의 경비노동 경험은, 후기 생애가 결코 노동으로부터 이탈된 시간이 아님을 입증한다. 오히려 이는 노동과 불가분의 방식으로 삶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국면이다.

첫째, 고령 경비원의 형성은 ‘노동의 이후’가 아닌 ‘노동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노동자 형성론과 구별된다. 기존 연구에서 노동자의 형성은 주로 청년기 산업노동자의 계급의식 형성 과정이나, 민주노조운동 참여 경험을 통해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본 연구의 연구참여자들은 청장년기의 노동 경험을 지나, 다시 고령기에 이르러 노동자로 ‘다시 형성’되었다. 이 같은 반복적 형성 과정은, ‘노동자’라는 정체성이 일회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삶의 교차점에서 계속해서 새롭게 조립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둘째, 이들의 형성 과정은 고령이라는 생애 주기, 즉 ‘노년’이라는 조건과 밀접히 연관된다. 고령자는 종종 노동에서 이탈한 존재, 또는 노동시장 바깥에 위치한 수혜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실제로 고령 경비원은 한국의 미비한 연금제도와 취약한 노후보장 체계 속에서 생계 유지와 존엄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선택 가능한 직종의 폭은 제한적이며, 이로 인해 경비노동은 고령 남성의 대표적 생존 노동으로 자리잡는다. 이러한 조건은 고령자의 노동을 구조적 필연으로 만든다.

셋째, 노동을 단지 소득 창출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삶의 지속성과 사회적 연결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특히 고령기 노동자의 경우, 일은 단순한 생계유지 수단을 넘어, 일상의 리듬을 부여하고 사회적 역할을 지속하게 하는 구조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직무 수행 과정에서 형성되는 동료와의 관계, 고객·주민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직업적 정체성의 유지와 결합하여, 개인이 ‘사회 속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강화한다. 다시 말해, 노동은 생물학적 나이듦과 사회적 퇴장을 연결시키는 경향에 맞서, 여전히 자신이 유효한 사회적 주체임을 확인하는 장이 된다.

넷째, 조직화 경험은 고령 노동자의 형성 과정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앞선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노동센터를 중심으로 한 조직화 활동은 경비원에게 단순히 권리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특히 노동조합의 전통적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지역 기반의 협의회나 캠페인 활동은 상대적으로 낮은 진입장벽을 제공하며, 일상적 실천 속에서 정체성을 전환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준다. 다만, 이러한 활동들이 노동조합과 다르게 현실노동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제한적이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참여율이 적다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낮은 진입장벽은 분명한 강점으로 존재하지만 보호장벽이 낮고, 노동센터의 정치적 환경으로 인해 언제든지 이 보호장벽은 제거될 위기가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고령 경비노동자의 형성은 구조적 조건과 생애 경험, 조직화 실천이 교차하는 복합적 과정이다. 이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일하는 ‘노인 노동자’가 아니라, 삶의 후반부에서 다시 ‘노동자’로 구성되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형성 과정은 기존의 노동자 형성론이 간과해온 생애 후반부의 노동 주체성, 그리고 고령 친화 일자리 담론이 은폐하는 노동현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논의는 향후 고령사회에서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이론적·정책적 함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5. 결 론

본 연구는 아파트 경비원라는 특수한 고령 노동자 집단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이들의 생애사와 노동 경험, 조직화 참여를 중심으로 탐색하였다. 이를 통해 고령 경비원은 단지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놓인 ‘취약한 노동자’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삶의 궤적 속에서 노동자로 재구성되고 있는 주체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의 생애경로는 각기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퇴직 이후의 노동’이 단절이 아닌 연속선 위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반복된 노동과 생계의 압박 속에서 경비노동에 진입하였고, 비록 노동의 조건은 열악했으나, 그 안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과 의미를 재구성해 나가고 있었다. 특히 지역 노동센터를 중심으로 한 조직화 경험은 이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자각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는 단지 개인의 인식 변화에 그치지 않고 집단적 실천의 기반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이러한 분석은 기존의 노동자 형성론이 주로 청년기 산업노동자에 국한되어 있는 한계를 보완하면서, 고령기 노동의 사회학적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한다. 고령 경비노동자의 형성은 생애사, 구조적 조건, 조직적 실천이 교차하는 복합적 과정이며, 이들의 존재는 단순히 ‘일을 하는 노인’이 아니라, 여전히 노동을 통해 삶을 구성하는 ‘노동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정책적 함의 또한 분명하다. 고령 노동자를 단지 취약계층으로 간주하는 시혜적 접근은 그들이 실제로 마주한 노동의 조건과 존엄의 문제를 포착하지 못한다. 노동시장 내에서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조직화를 통한 자발적 참여를 지원하는 체계적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노동센터와 같은 조직의 지속 가능성과 제도화를 통해, 경비원과 같은 고령 노동자들의 자기표현과 집단적 발화를 위한 공간이 안정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고령 경비노동자의 형성 과정은 한국 사회 고령노동의 현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자, 미래 고령사회를 준비하는 데 있어 우리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질문을 제기한다. 최종적으로 이 연구는 “고령자는 어떻게 일하는가?”가 아니라, “고령자는 어떻게 노동자가 되어왔는가?”를 질문하였고, 살아온 생애 궤적을 통해 고령 경비노동자의 ‘노동자됨’은 단절된 두 과정이 아니라, 과거의 형성과 현재의 실천이 맞물려 순환하는 과정이다. 전직·은퇴 경험, 경제적 압박, 사회관계망을 통한 진입은 단순히 노동시장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 아니라, 다시금 노동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강화하고, 이는 곧 일하는 방식의 선택과 행동에 반영된다. 이렇게 형성된 경험과 규범은 다음 계약, 현장 이동, 조직화 과정에서 재조정되며, ‘노동자가 되어온 과정’과 ‘노동하는 현재’가 서로를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구조를 이룬다.


Notes
1)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비원의 노동환경과 관련한 문제점을 살펴본 연구는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2020)아산시비정규직지원센터(2020)가 있으며 세부적인 내용 및 결론도 유사하다. 다만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2020)의 연구의 조사시점이 상대적으로 최근에 이루어졌으며, 표본의 수도 많아 후술한 내용은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2020)의 연구내용을 요약한 것임을 밝힌다.
2) 현재 충청남도에는 서산시, 당진시가 직영으로 노동센터(서산시비정규직지원센터, 당진시노동권익센터)를 운영하고 있음.

Acknowledgments

논문발전을 위해 좋은 논평을 해주신 이찬우 선생님(충남대 사회학과 박사수료)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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