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서비스 | 소개 | 편집위원 및 운영위원 | 논문투고 안내 | 온라인 논문투고 |
Sorry.
You are not permitted to access the full text of articles.
If you have any questions about permissions,
please contact the Society.
죄송합니다.
회원님은 논문 이용 권한이 없습니다.
권한 관련 문의는 학회로 부탁 드립니다.
[ Article ] | |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5, No. 3, pp. 83-112 | |
Abbreviation: jss | |
ISSN: 1976-2984 (Print) | |
Print publication date 31 Jul 2024 | |
Received 01 May 2024 Revised 30 Jun 2024 Accepted 15 Jul 2024 | |
DOI: https://doi.org/10.16881/jss.2024.07.35.3.83 | |
70대 여성 노인의 다중 가족돌봄에 대한 생애사 연구 | |
최미선 ; 김서현†
| |
전북대학교 | |
Life History on Care of Multiple Family Members by Elderly Woman in Her 70s | |
Miseon Choe ; Seohyun Kim†
| |
Jeonbuk National University | |
Correspondence to : †김서현,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부교수,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567, E-mail : shkim717@jbnu.ac.kr Contributed by footnote: 최미선,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수료(제1저자) | |
본 연구의 목적은 70대 여성 노인의 다중 가족돌봄 경험에 대해 생애사 접근에 따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연구참여자로는 10년 이상 시어머니, 남편, 자녀, 손주에게 다중돌봄을 행하고 있는 70대 초반의 노인을 엄정히 선정하였고, 5개월 동안 총 20시간 이상 일대일 심층면담을 수행했다. 자료수집과 분석에서는 Schütze(1984)의 이야기식 생애사 연구방법을 적용했다. 그 결과 총 17개 하위주제 및 5개의 상위주제가 밝혀졌다. 상위주제는 ‘지금의 돌봄에 뿌리로 스며든 어린 날 기억’, ‘일하는 며느리이자 딸로 도리 다하려 아등바등 살아낸 젊음’, ‘가족 보듬으며 묵묵히 이행하는 나이 든 나의 책무’, ‘가족돌봄의 굴레 속으로 내박쳐진 나’, ‘내몰린 벼랑 끝에서 주변과 맞잡은 손’과 같았다. 끝으로, 노령 인구와 다중돌봄의 증가 상황에서 젠더와 사회복지적 접근에 따라 다중돌봄을 경험하는 여성 노인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제언했다.
This study aimed to specifically the experiences of elderly woman in her 70s caring for multiple family members based on a life history. As participants in the study, a early 70s elderly woman who has been caring for her mother-in-law, husband, children, and grandchildren for more than 10 years was strictly selected. And over 5 months, in-depth interviews totaling more than 20 hours were conducted. Data were collected and analyzed using Schütze’s (1984) life history narrative interview method. The results could be classified into 5 superordinate themes and 17 subordinate themes. The superordinate themes were ‘childhood memories that has become the root of caregiving today,’ ‘youth struggling to fulfill my responsibilities as a working daughter-in-law and daughter,’ ‘my duty in old age, quietly fulfilling it while embracing my family,’ ‘me thrown into the restraints of family care,’ and ‘holding on to others around me at the edge of a cliff.’ Finally, this article suggests measures to support elderly women experiencing care for multiple family members according to gender and social welfare approaches in a situation where the elderly population and caring for multiple family members are both increasing.
Keywords: Multiple Family Care, Family care, Care Experience, Elderly Woman, Life History 키워드: 다중 가족돌봄, 가족돌봄, 돌봄 경험, 여성 노인, 생애사 |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우리나라에서 돌봄은 중요한 사회 이슈이다. 과거부터 한국은 부모를 공경하는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으로 자녀들이 노부모를 돌보는 가족돌봄이 구성원들의 당연한 책무라고 여겨져 왔다(이지수, 조은숙, 2022). 그러나 사회변동에 따라 전통적 가치관은 변화하였으며, 핵가족화, 저출산,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 등으로 가족돌봄 역시 그 형태가 변모했다(이원준, 신성자, 2011). 현재 70대인 노령층은 청년층이나 초고령 노인층과 달리 효(孝)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적 사고와 현대사회에서의 개인주의 가치관이 혼재한 인식 체계를 보인다(김희경, 2019). 전문가들은 이들이 돌봄 측면에서 자기 부모를 공경하고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과 동시에 자신의 노후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지닌 끼인 세대라고 설명한다(이지수, 조은숙, 2022).
그중 70대 여성 노인은 가부장적인 가치관이 체화된 희생자이자 생존자이지만, 돌봄에 있어서는 아들, 딸, 며느리 구분이 희미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특징을 지닌다(박종환, 신승옥, 2018). 또한, 이들은 급격한 사회구조의 변화로 자기 부모와 손자녀에 대한 이중돌봄을 제공하기도 한다(송다영 외, 2018). 즉, 이들은 평균수명 증가로 인해 장기간 고령 부모를 돌볼 책임과 동시에, 맞벌이 가구의 증가로 손자녀를 돌보는 이중돌봄의 상황에 놓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심리적 긴장과 삶의 제약을 겪으므로(백진아, 2015; 최성문, 정순둘, 2023), 본 연구의 중요한 돌봄 집단으로 주목하고자 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과 같은 서구 사회에서도 많은 여성이 생애 과정에서 자녀와 부모에 대한 이중돌봄 책임을 지고 있다. 더불어 인구 고령화와 출산 지연으로 여성 대다수가 생애 과정 전반에서 자녀와 부모 돌봄에 노출되는 통계학적 패턴도 확인된다(Ansari-Thomas, 2024).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노년기에는 자녀와 성인 돌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부족하여 조기 은퇴 후 이중돌봄을 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중장년의 3분의 1이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부모와 손자녀를 돌보고 있다고 보도되었다(Vlachantoni, Evandrou, Falkingham, & Gomez-Leon, 2020). 해외에서는 이와 같이 고령자가 노인과 성인 자녀, 혹은 손자녀 등 두 세대 이상을 동시에 돌보아야 하는 상황을 ‘샌드위치 세대’라고 명명하였다(송다영, 2016; Spillman & Pezzin, 2000; Steiner & Fletcher, 2017).
그동안 가족돌봄 연구는 주로 배우자 돌봄, 자녀 돌봄, 부모 돌봄 등 돌봄 대상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박종환, 신승옥, 2018; 백진아, 2015; 이지수, 조은숙, 2022; 최유나, 2019). 또한, 암 환자나 치매 등 질환을 가진 가족돌봄 연구도 이루어졌다(김계숙, 김진욱, 2018; 유재언 외, 2018). 그 안에는 돌봄이 별도의 생애주기 안에서만 발생하는 행위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돌봄이 일어나는 상황 안으로 들어가 보면 다중돌봄 현실이 얽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다중돌봄 연구는 중고령자, 중장년, 30~40대 등 특정 연령에서의 이중돌봄 연구(김유경, 2019; 송다영 외, 2018; 조지민, 김문근, 2021; 최성문, 정순둘, 2023)가 주를 이루었으며, 연구참여자 중 일부가 다중돌봄을 하는 것이 언급되는 수준이었다. 이처럼 다중돌봄은 이중돌봄보다 돌봄의 부담 및 어려움이 큼에도 주목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돌봄은 특정 시기에 한정되지 않고, 일생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송다영, 2014; Kittay, 1999; Nussbaum, 2002).
최근에는 한 대상만을 돌보는 단일 돌봄이 아닌, 점차 노부모, 자녀, 손자녀 등 두 명 이상을 동시에 돌봐야 하는 다중 가족돌봄의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백경흔, 송다영, 장수정, 2018; Ansari-Thomas, 2024; Steiner & Fletcher, 2017; Vlachantoni et al., 2020). 다중 가족돌봄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이와 관련이 있다. 또한, 돌봄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이는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이 삶의 전 과정에서 상호작용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본 연구에서와 같이 긴 세월을 살아온 한 인간이 자신의 생애 전반에서 가족돌봄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존재의 역사와 더불어 긴밀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생애사 연구방법을 통해 다중 가족돌봄을 행하게 된 삶의 흐름 및 생의 전반을 관통하는 돌봄의 연속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생애 중요 사건들은 다중 가족돌봄을 행하고 있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삶의 맥락은 생애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김영천, 2013). 그러므로 가족체계 안에서의 돌봄을 다중적 관점으로 논의함으로써 여성 노인의 이중돌봄을 넘어서는 삶의 의미를 밝혀내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근거자료 제공의 필요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다중 가족돌봄 이슈는 지금까지 성별과 관련한 구조적 불평등과 가족 안에서의 관계적 특질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의 실제 삶, 그리고 성별과 나이에 따른 고유성 측면에서 다가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노인의 건강, 경제적 지위, 돌봄의 책임, 돌봄의 경험 등에 대해 성별에 따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나 가부장적 사회에서 불평등의 대상이었고 돌봄의 과중한 역할을 짊어져 온 여성 노인들에 대해서는 성별과 시대의 맥락을 접목하여 각자의 특수한 경험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명선영, 2001). 그 이유는 여성 노인은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경험뿐만 아니라 성 역할 수행, 일상적 돌봄의 누적, 그리고 관계적 변화 등으로 인해 성별 이데올로기 등에서 남성과는 다른 생애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신경아, 2011). 실제로 특정한 상황이나 장소, 관계 등에서는 젠더적 차이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우리나라 여성 노인들은 사회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가부장제와 가족 중심의 공동체성을 중요한 가치관으로 체화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백진아, 2015). 이러한 맥락에서 70대 여성의 다중 가족돌봄을 생애사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은 여성으로서 가족돌봄을 어떻게 내재화하는지를 질적 연구방법으로 확인하며, 가족돌봄이 이루어져온 과정의 다양한 경험을 살펴봄으로써 유사한 경험을 하는 이들에게 돌봄 지원책을 모색한다는 사회복지적 함의를 지닌다.
그뿐만 아니라 본 연구를 통해 연구참여자의 가족돌봄을 받는 다양한 가족과의 관계 및 주위 환경, 가용자원 등이 돌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롯한 돌봄제공자와 돌봄수혜자 간의 다양한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개별 가족에게 일어나는 돌봄이 돌봄의 대상, 돌봄의 방법, 돌봄 대상자와 관계가 어떠한지에 따라 상이한 의미로 구성될 수 있으며, 돌봄 행위에 있어서 돌봄의 주체, 돌봄 지원, 돌봄 책임 등과 같은 가족 내의 관계나 가용자원 등에 의해서도 돌봄 경험이나 어려움의 수위는 달라진다는 점을 현실에 기반을 두어 이해할 수도 있다(송다영, 2014; 신경아, 2011). 이와 같은 본 연구의 논의는 이중돌봄을 넘어 다중 가족돌봄을 행하는 여성의 삶의 경험을 심층적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시대 급변과 인구구조 변동으로 향후 당면할 문제에 대응할 사회복지적 논의를 활성화한다는 측면에서 유용성이 크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70대 여성 노인의 다중 가족돌봄의 경험에 대해 Schütze(1984)의 이야기 생애사 연구방법을 통하여 연구참여자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수집한 구술자료를 면밀하게 탐구하여 여러 가족을 돌보고 있는 여성 노인에 대한 돌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사회복지적 차원의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연구질문은 ‘70대 여성 노인의 다중 가족돌봄에 대한 경험을 생애사적 연구방법으로 살펴보면 어떠한가?’이다.
다중돌봄의 개념은 이중돌봄의 개념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그에 관한 규정을 위해서는 이중돌봄에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이중돌봄’이란 사회구조의 변화로 여성의 늦은 결혼 및 출산으로 어린 자녀 돌봄 시기와 노부모 돌봄 시기가 중첩되면서, 아동과 노인돌봄을 함께 수행해야 할 때를 의미한다(백경흔 외, 2018; 송다영, 2016). 한국에서 이중돌봄은 주로 중고령 집단에서 발견된다. 그들 중에는 노인 부모와 손자녀에게 동시에 돌봄을 제공하거나, 노인이 된 부모를 돌보는 것은 물론 성인 자녀, 나아가서는 미성년인 3세대까지 다중적으로 돌보는 사례도 있다(송다영, 2014). 이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즉, 사회구조의 변화와 여성의 만혼화, 늦은 출산의 영향으로 아동돌봄과 노인돌봄이 함께 발생하여 가족 안에서의 이중돌봄이 증가하였다(Falkingham et al., 2020; Spillman & Pezzin, 2000; Steiner & Fletcher, 2017).
앞서 설명한 이중돌봄 이슈를 국외문헌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일례로, Pashazade과 동료들(2023)의 최근 연구에서는 샌드위치 세대를 돌보는 대상과 수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유형화했음이 확인된다. 첫째로 클럽 샌드위치 세대(club sandwich generation)는 부모, 자녀, 손주를 돌보는 50~60대와 노부모, 조부모를 돌보는 30~40대를 말한다. 두 번째, 오픈 샌드위치 세대(open sandwich generation)는 나이 든 친척 등을 포함한 지인을 돌보는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세 번째로, 파니니 샌드위치 세대(panini sandwich generation)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자녀, 나이 든 배우자, 형제자매 또는 손주를 돌보는 동시에 노년의 어려움에 스스로 대처하는 개인을 말한다. 이처럼 해외에서 샌드위치 세대를 각각 돌보는 대상과 인원에 따라 종류별로 구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이중돌봄의 개념을 세부화할 수 있을 것인데, 부모와 손자녀를 돌보는 경우는 이중돌봄으로, 부모와 손자녀를 비롯하여 성인 자녀나 배우자까지 돌보는 경우를 다중돌봄으로 구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다중돌봄은 이중돌봄에 포함되기는 하나, 그 유형 및 특성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중돌봄을 이중돌봄과 구분하여 살펴본 국외 연구에서는 미국의 샌드위치 세대의 돌봄 제공과 노동시장 참여 사이의 관계를 조사하고 그에 따른 사회정책의 변화를 제언하였거나(Ansari-Thomas, 2024), 점차 확대되고 있는 샌드위치 돌봄세대의 긍정적인 역할에 초점을 맞춘 연구(Alburez-Gutierrez et al., 2021), 다중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의 어려움에 대해 내러티브 방법을 사용하여 정책을 제언한 연구(Pashazade et al., 2023) 등 다양한 관점에 따라 논의가 수반되었다. 이들 연구에서 공통되게 지적하는 바는 다중돌봄 제공자들이 대개 자신이 도맡은 역할에 대한 갈등(Zangenehpour et al., 2021) 및 감정적인 소진을 경험한다는 사실이다(Jang et al., 2021; Pashazade et al., 2023). 특히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돌봄의 대상자의 수가 많을수록 더 심한 스트레스 및 돌봄에 대한 부담감을 느낀다. 이는 사회적으로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였다(Falkingham, Evandrou, Qin, & Vlachantoni, 2020).
이에 본 연구에서는 다수의 선행연구(김유경, 2019; 백경흔 외, 2018; 송다영, 2016; 송다영 외, 2018; 조지민, 김문근, 2021; 최성문, 정순둘, 2023; Ansari-Thomas, 2024; Pashazade et al., 2023; Rubin & White-Means, 2009)를 참고하여, ‘이중돌봄’에 이어 ‘다중돌봄’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자 한다. 다중돌봄이란 ‘돌봄이 필요한 손자녀와 노부모, 성인 자녀, 나이 든 배우자 등 2인 이상을 돌보면서 동시에 노년의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단, 이를 가족체계 안에서의 행위이자 행동양식이라고 보아, 본 연구에서는 ‘다중 가족돌봄’으로 명명화하고자 한다. 아직 국내 연구에서는 이중돌봄과 다중돌봄이 명확히 개념화되지 않았으며 주로 이중돌봄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연구 동향은 다중 가족돌봄을 초점화한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할 시점임을 보여준다.
다중 가족돌봄 주제와 관련한 국내 연구를 살펴보면, 그간에는 이중돌봄의 현황을 진단하고 그에 관한 개선점을 제시한 연구(김유경 외, 2018; 백경흔 외, 2018; 조지민, 김문근, 2021), 가족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중고령자 삶의 질에 이중돌봄 부담과 스트레스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논한 연구(이지수, 조은숙, 2022; 최성문, 정순둘, 2023) 등이 대표적인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이중돌봄에 따른 소진(송다영, 2016) 및 그에 대한 보완책 모색(김유경 외, 2018), 이중돌봄의 문제에 초점 맞춘 연구(송다영, 2018; 최성문, 정순둘, 2023) 등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문헌고찰 결과, 지금까지는 손자녀와 노부모를 동시에 돌보는 이중돌봄을 넘어선 손자녀, 노부모, 배우자, 자녀 등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보살피는 다중돌봄에 대한 개념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족 안에서의 다중돌봄 문제, 이른바 학자들의 다중 가족돌봄에 대한 심화된 관심은 부족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에 반해, 국외 연구에서의 다중 가족돌봄에 대한 접근은 중고령 세대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및 손자녀 세대를 포함한 3세대 이상에 경제적, 정서적 지원 및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 샌드위치 세대의 경험(Alburez et al., 2021; Pashazade et al., 2023; Zangenehpour et al., 2021)과 같다는 데에 학자들의 유사한 인식이 확인된다. 다만, 사회적 특성이나 국가별 사적·공적 돌봄 현실 등의 맥락에 따라 그 성질은 다른 것으로 분석된다(Ronald & Lisa, 2017). 일례로, 영국의 경우에는 손자녀에게 돌봄을 제공할 경우, 역으로 그 자녀가 노부모를 돌볼 가능성이 높으며, 노부모 돌봄 시점에서 손자녀 돌봄을 병행하는 사례가 증가(Vlachantoni et al., 2020)하여 세대 간 유대가 강한 가족일수록 다중돌봄이 높다고 할 수 있다(Ansari-Thomas, 2024; Spillman & Pezzin, 2000; Steiner & Fletcher, 2017). 이와 달리, 우리나라 여성 노인의 다중 가족돌봄 경험의 의미는 성별에 따른 사회의 다른 기대치, 돌봄 역할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지원책의 변화 등에 따라 외국과 다른 결의 한국적 특수성과 연관될 것으로 사료된다.
한편, 노년기의 가족돌봄은 시기상 본인의 부모가 생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돌봄 제공자마저 조부모가 되거나 손자녀에 대한 양육제공자, 배우자에 대한 노노(老老)케어 제공자 등 새롭거나 다중적인 역할과 결부되어 발생할 있다(김유경 외, 2018; 백진아, 2015). 단순히 이중돌봄이 아닌 다중 가족돌봄의 형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노년기에는 자신이 돌봄의 제공자이자 받는 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다중 가족돌봄을 유지하고 이행하는 주체로서 삶의 만족도가 낮아지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돌봄을 지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Ansari-Thomas, 2024; Steiner & Fletcher, 2017). 노년기는 개인이 노후를 준비하면서 가족의 돌봄과 자녀의 독립 혹은 분가한 자녀의 손자녀 양육으로 대표되는 돌봄을 지원해야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김유경 외, 2018). 더 나아가 노년기 가족돌봄은 전통적 가치관의 유지와 산업 구조의 변화 속에서 노부모와 자녀 및 손자녀에 대한 책임을 다중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사회 정책적 안전망에서 배제되는 어려움이 존재하여 문제로 여겨지기도 한다(백경흔 외, 2018; Steiner & Fletcher, 2017). 그와 관련하여, 여러 연구자(김유경 외, 2018; Rubin & White-Means, 2009)는 오늘날 다중 가족돌봄 문제는 고령화로 인한 노인 돌봄과 손자녀 돌봄이 동시에 요구되는 사례와 빈번히 관련되므로 더욱 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가족구성원을 다중으로 돌볼 경우, 돌봄 책임은 단일 혹은 이중돌봄 수행보다 과중하다는 점에도 문제가 있다(Pashazade et al., 2023). 더욱이 다중 가족돌봄에서 파생되는 돌봄제공자의 스트레스, 일상생활 및 시간 빈곤 상태(Jang et al., 2019) 등은 결국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지원방안 모색이 중요함을 시사한다(김유경 외, 2018; 백경흔 외, 2018; Rubin & White-Means, 2009; Vlachantoni et al., 2020).
인간의 생애는 돌봄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봄 속에서 태어나고 발달하는 인간은 자기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성인이 되면 독립적인 자기돌봄과 함께 새로운 가족돌봄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누군가의 돌봄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Ansari-Thomas, 2024). 이렇듯 상호의존적이고 순환적인 속성을 지닌 돌봄을 경험하는 일은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과정이고, 개인과 가족,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원천이자 동시에 안녕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적 지표이다(최성문, 정순둘, 2023). 특히나 인간은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존재적 특성으로 가지고 있으므로 가족 내 상호 돌봄은 인류사에 항상 존재해 왔다. 통상 가족돌봄은 자녀 양육, 부모 간병 등으로 대표되는데, 그 주요 담당자가 여성이었던 경우가 많아서 돌봄은 흔히 여성의 일로 여겨졌다(Steiner & Fletcher, 2017). 역사적으로 남자들은 다른 사람을 돌보고 자신의 의존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덜 남성적인 것으로 폄하한 것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Vlachantoni et al., 2020). 이에 따라 돌봄은 여성의 일로 간주하는 예가 대부분이었고, 현대사회에서도 돌봄 노동은 저임금, 낮은 사회적 지위에 머물러 있다(송다영, 2014).
그렇지만 학자들은 가족돌봄의 역할이 성별로 다른 비중으로 부여되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였다. 일례로, Nussbaum(2002)은 돌봄제공자와 돌봄수혜자가 사회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고 바람직한 대우를 받는 것이 이상적인 돌봄 사회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돌봄의 사회화 정책이 진행되고 돌봄에 관한 정책들이 마련되었음에도, 여전히 돌봄은 사적인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Fraser, 2016). 이에 따라 여성은 여전히 돌봄의 일차적 책임자로 자리한다. 최근까지도 많은 여성 노인이 노부모, 배우자, 손자녀 등 가족의 주된 돌봄자 역할을 도맡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Ansari-Thomas, 2024; Steiner & Fletcher, 2017; Falkingham et al., 2020). 이 때문에 일부 노인은 본인이 돌봄을 제공받아야 할 나이지만, 가정 내에서 가사일 및 돌봄노동의 일차적인 담당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예도 종종 발견된다(이현주, 2015). 여성 노인은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노부모, 남편을 포함한 성인 자녀와 손자녀의 돌봄 제공자 역할을 감당해 왔다. 그에 반해, 발달학적 측면에서 보면 여성 노인은 모든 인간이 나이 듦에 따라 겪게 되는 신체적 쇠약과 질병으로 인해 돌봄이 필요하므로 의존자의 위치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Greenwood & Smith, 2016; Zangenehpour et al., 2021). 하지만 강력한 성 역할 이념과 돌봄에 대한 신념으로 인해 많은 여성 노인은 생애 과정 전반에서 수행해 왔던 가족돌봄 제공 역할을 노년기에도 계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인돌봄 서비스 정책은 돌봄제공자이자 돌봄수혜자인 여성 노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 및 운영된다는 한계가 있다(최인희, 2014).
이와 같은 현실에서, 전문가들은 여성 노인이 사회 구조적인 제약, 차별에서 벗어나,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에 주목해야 하며, 개인적으로 행해진 가족 안에서의 돌봄이 사회화되도록 공적 돌봄 정책을 체계화 및 확대하는 일이 시급함을 주장하였다(이현주, 2015). 실제로 다수의 선행연구에서는 가족돌봄을 행하는 많은 수 여성 노인이 돌봄 이행의 전 과정에 극심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고했으며(김은정, 2021; 최인희, 2014; 최성문, 정순둘, 2023; Ansari-Thomas, 2024), 이는 여성이 생애 전반에 걸쳐 양육자, 돌봄제공자로 사회화되고 학습되었던 과거 사회적 실상과 깊이 관련된다(이현주, 2015). 일례로 최인희 외(2014) 연구에 따르면 여성 노인 중에는 돌봄을 그만둘지, 지속할지 선택할 수 있다면 그만두고 싶다고 절반 이상이 응답하였고, 이들에게 가족돌봄 부담감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급격한 현대화 과정에서 여성 노인의 가족돌봄의 경험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도 있는데, 이는 여성 노인의 삶이 젠더불평등 사회 및 시대적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은정(2021)은 가족돌봄 책임이 그 안의 모든 구성원에게 배분되지 못하고, 암묵적으로 여성의 전유물로 여겼던 과거의 경향성이 현재를 만들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그에 더 나아가, 가족돌봄자의 나이에 주목한 페미니스트 연구들은 주로 한국의 협소한 돌봄 정책과 저출산 및 고령화, 만혼화 등 인구 사회학적 변화 사이의 간극으로 30~40대나 50~60대 여성에게 독박으로 돌봄 책임이 돌아가는 사례에 주목하였다(송다영, 2014; 백경흔 외, 2018). 또한, 송다영(2022)은 여성 노인의 이중돌봄 경험을 돌봄 윤리의 정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돌봄자 중심의 정책으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여성 노인은 ‘세대 독박’ 형태로 과도한 돌봄 부담을 안고 있으며, 돌봄 정책의 사각지대가 이들의 돌봄을 통해 해결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이시은, 2024). 그뿐만 아니라, Tronto(2013)는 어떻게 사회적 제도가 일부 사람들에게 돌봄 책임을 전가했는지 밝히는 데 중점을 둠으로써 돌봄 책임의 공정한 분배를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논의에 토대하여, 돌봄 관계에서 나타나는 불평등한 권력과 지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돌봄수혜자와 돌봄제공자 양자 간 관계를 넘어서서 사회적 맥락으로까지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여성 노인이 그동안 개별화된 방식으로 돌봄을 해온 행위성을 돌봄에 대한 공적 책임과 의무 부재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70대 여성 노인의 다중 가족돌봄 경험이 어떠한지 질적 탐구하기 위해 Schütze(1984)의 이야기식 생애사 연구방법을 활용하였다. 생애사 연구는 개별적이고 고유한 삶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적합하다. 더 나아가 생애사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삶을 되새겨 보며 이야기를 구성하기 때문에 자기 성찰과 살아온 삶에 대한 의미 부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김영천, 2013). 그러므로 생애사 연구는 70대 여성 노인의 다중 가족돌봄에 대해 개인적인 삶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경험을 융합하여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탐구할 수 있는 방법이다(김영천, 2013; Szczepanik & Siebert, 2016). 또한,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생애사 연구의 여러 방법 중 Schütze(1984)의 접근법을 적용하고자 했다. 이는 연구참여자가 편안한 상태에서 연구자와 즉흥적으로 대화하면서 회상에 기반을 두어 연구주제에 관련한 성찰과 지각을 끌어내는 방식으로써(이효선, 김혜진, 2014), 70대 여성 노인이 경험한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는 생애 전반을 관통하는 다중 가족돌봄의 경험을 연속성을 가지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에 더해 70대 여성 노인이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맺는 가족관계와 삶의 단계에 따른 변화, 갈등 및 성장 등 다양한 측면을 연구주제에 결부해 논하기 위해 생애사 연구 중에서도 단독사례 접근을 채택했다. 이는 연구참여자의 다면적 가족돌봄의 경험을 한 인물의 적응과 발달의 맥락 속에서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접근은 여러 사례의 공통점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여타의 질적 접근과 달리, 개별 인간의 생애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연구참여자를 선정하기 위해 먼저 법적으로 노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가운데 70대를 대상으로 선정하려고 했다. 이 연령대는 노인 부모, 배우자, 자녀, 손자녀 등 3세대를 중첩되게 부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송다영, 2014; Spillman & Pezzin, 2000). 둘째, 성별은 여성이다. 다중 가족돌봄의 경험은 가족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이나 관계적 특성뿐만 아니라 성별을 둘러싼 사회 구조적 불평등의 맥락 등도 고려해야 하므로(김여진, 박선영, 2013), 본 연구에서도 다중 가족돌봄과 관련한 성별 조건에서 남성보다는 여성 고유의 경험에 집중하고자 했다. 셋째, 연구참여자는 부모, 자녀, 손자녀 등 다양한 세대에 걸친 3명 이상의 가족을 돌보는 자이다. 이는 세대마다 돌봄의 특성이 다르므로 여러 세대의 가족을 돌보는 여성의 다중 가족돌봄 경험을 담기 위함이었다. 넷째, 최소 5년 이상의 가족돌봄 경험이 있는 자와 만나고자 하였다. 이 기준은 돌봄 기간이 5년 이상 되어야 가족을 돌보는 경험을 풍성하게 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다중 가족돌봄이라는 현상을 자신 삶 속에 응축해 경험한 여성 노인과 대화하는 것이 초점이므로, 의도적 표집을 활용하여 연구참여자를 선정하려고 했다. 먼저, 노인복지관과 장기요양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사회복지사에 접촉하여 모집공고문 을 전달하였으며, 위 선정 기준에 맞는 가족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70대 여성 노인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예비 연구참여자 목록을 만들고, 한 사람씩 사전 접촉하여 연구를 소개하고 조건에 부합한 이들의 명단을 확보했다. 연구참여자에게는 연구목적에 관해 설명하고 간단한 일반적 특성 파악 및 연구주제와 관련한 경험이 어떠한지 상황을 공유한 뒤 참여의 적합성을 판단했다. 이때 자발적 참여 동의 여부를 확인하였다. 위의 과정으로 모집된 참여자는 다시 정식으로 만나 연구목적과 개인정보 관리 방침을 다시 한번 설명했고, 연구 기간과 방법, 사례 제공 계획 등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며 서면과 구두로 최종 연구참여 동의를 얻었다.
이러한 절차에 근거해 선택한 연구참여자는 다음과 같다. 연구참여자는 10년 이상 다중 가족돌봄을 수행한 70대 초반 여성 노인이다. 그녀는 본인이 노인기에 접어든 시점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8년째 동시에 돌본 경험이 있다. 그와 동시에, 자녀의 식구들도 돌본 것으로 확인된다. 예컨대, 큰딸은 결혼해서 11살 딸 1명, 9살 아들 1명을 두고 있으며, 직장을 다니는 상황으로 연구참여자가 딸의 출산 후부터 지금까지 손주들을 돌보고 있다. 둘째 딸은 10년 전 암이 발병하여 투병 중이며 현재까지 세 차례 재발했다. 둘째 딸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치료받을 때 연구참여자는 전적으로 수발했다. 이처럼 연구참여자는 10년 이상 시어머니, 남편, 둘째 딸, 손주를 돌보고 있어서 대표적인 다중 가족돌봄자로 판단되어 연구참여자로 선정하였다.
2023년 12월부터 2024년 4월까지 연구자와 연구참여자가 직접 만나서 다중 가족돌봄 경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심층면담으로 약 5개월에 걸쳐 연구자료를 수집했다. 전체 소요 시간은 약 20시간 정도였으며, 총 10회기 회당 60~180분간 대화했다. 심층면담 장소는 연구참여자의 거주지였다. 자료수집 과정에서 연구자는 Schütze(1984)의 방법론을 기반으로 면담을 구조화한 질문보다는 연구참여자가 특별히 기억하거나 중요하게 여기는 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이야기 요청 단계에서는 연구참여자에게 자신의 다중 가족돌봄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단, 사생활에 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사전에 전화 통화, 연구 설명을 위한 만남, 연구참여자의 집을 방문하는 등 라포형성을 위해 노력했으며, 이를 통해 연구참여자와 신뢰 관계에 기반을 둔 심층면담이 가능하였다. 두 번째는 중요 설명 단계로, 연구참여자가 다중 가족돌봄 경험을 즉흥적인 이야기로 구술하도록 했다. 연구자는 연구참여자가 자신의 돌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중단하지 않고 잘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면담을 진행할 때 일상적 언어로 질문하고 용어 선택을 신중히 하였고, 의도가 모호하거나 중의적 의미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조언이나 충고 등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가족구성원을 돌볼 때 감정은 어땠나요? 그에 대해 더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등의 발언과 함께 추임새, 고개 끄덕임, 공감이나 동의 등을 표현해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였다. 셋째, 후 질문 단계에서는 연구참여자가 하나의 이슈에 관해 대화를 종료한 시점에서 그에 관해 경청하면서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나 혼재된 내용을 명확히 하기 위해 질문했다. 단답형이나 폐쇄형 질문보다는 풍부하고 자연스러운 답변을 듣기 위해서 개방형 질문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자녀가 아픈 뒤에 시어머니와 남편의 돌봄은 어떻게 하셨나요?”, “돌봄 행위가 발생한 순서는 어떠한가요?”, “그 상황에서 그 행동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와 같은 질문이었다. 이처럼 이야기식 생애사 연구에 적합한 자료수집을 수행하였으며, 이후 대화가 충분히 진행되어 이론적 포화가 이루어졌다고 판단된 시점에 이르러 인터뷰를 종결하였다.
본 연구는 Schütze(1984)의 생애사 연구의 틀에 착안하여 총 4단계 분석방법을 토대로 자료분석하였다. 첫째, 수집된 자료에 대해 생애사적으로 분석하고자 심층면담을 통해서 확보한 녹취록을 정독하고, 인터뷰 텍스트의 연속적인 형태에 따라 각 단어와 줄 단위로 연속적으로 분석하였다. 이어서 인터뷰 텍스트를 문단으로 나누어서 연구참여자의 발달 시기별 경험을 유목화하면서 주제분석하였다. 또한, 연구자가 작성한 연구노트를 참고하여 연구참여자의 감정 변화와 비언어적인 메시지도 주의 깊게 관찰하려고 노력하였다. 둘째, 생애사적 구조를 분석하는 단계에서는 연구참여자가 자신의 지난 삶의 흐름을 구술한 내용에서 시대나 사건으로 구별되는 지점을 찾고자 했으며, 시간상으로 진행되는 생애사적 발달과 결부해 드러나는 고유한 경험의 구조를 재구성하였다. 이는 연구참여자가 구술한 내용 중 가족돌봄과 관련해 겪은 대표적 생애 사건들이 인생 전체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찾고 기술하는 작업과 관련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70대 여성 노인이라는 연구참여자의 상황에 대해 성장기부터 성인기 전반에서 돌봄과 관련한 주요 사건을 기점으로 설정한 후, 그 안에서 한 인물이 살아온 삶의 어떠한 면면이 시기별로 응집되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셋째, 분석적 추론 단계에서는 연구참여자 삶의 각 단계에서 한 진술들을 체계적으로 연결하여 전체적인 생애사적 틀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이때 연구참여자가 자기성찰 및 이해를 통하여 드러내는 생애사성에 주목하고자 노력했다. 넷째, 분석적 추론 과정에서는 연구참여자의 다중 가족돌봄 경험과 관련된 구술을 이론 및 선행연구를 토대로 다면적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여성 노인의 다중 가족돌봄의 의미를 외부 이론이나 지식과 관련지으며 그 의미를 끌어내려고 하였다.
본 연구는 네 가지의 구체적인 전략을 채택하여 연구의 타당성을 강화하고자 했다(Lincoln & Guba, 1985). 우선 연구참여자와 5개월 이상 연락을 주고 받으며 최대한 누락과 왜곡 없이 그의 생애에 다가갔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또한, 정식 면담이 끝난 후에도 연구참여자와 전화, 문자 및 이메일을 나누며 면담 때 생각나지 않았던 추가 질문을 던지거나 분석 내용을 보완 및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둘째, 자료수집의 방법을 다양화하고자 했다. 연구의 맥락 밖에서 연구참여자의 특성과 생활 적응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참여자와 함께 집 근처에서 산책하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또한, 연구참여자가 제공한 가족 편지와 사진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회고 기반 자료수집의 한계를 보완하였다. 셋째, 본 연구참여자와 여성 노인 연구를 수차례 수행한 교수 1인, 박사 2인 등에 분석결과에 대한 조언을 구하였으며, 연구자의 자의적인 해석을 경계하고자 했다. 넷째, 1차 분석결과가 완성된 후 연구참여자와 대면하여 연구자가 재구성한 내용을 공유하며 보여주고 잘못 기술된 부분들이 있는지 점검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연구자의 해석에서의 왜곡을 최소화하였고 자료분석 시의 편향성을 주의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모든 과정은 주저자가 소속된 기관에서 정식으로 연구 허락을 받은 후 진행했다(IRB No. 2023-08-023-002). 구체적으로 다음의 윤리적 고려 전략을 따라 행했다. 첫째, 연구참여자 모집 과정에서 예비 연구참여자의 정보는 연구참여자가 선정된 즉시 완전히 파기하였다. 둘째, 연구를 시작하기 전 연구참여자와 대면하여 연구주제와 목적, 연구방법 및 일정, 자료수집 및 분석과 관련 사항, 연구결과 활용 방안, 자료 보관 및 폐기 방법 등을 자세하게 안내하였다. 모든 연구참여자에게는 연구참여 철회 및 중단 절차와 이로 인한 불이익이 없음을 안내하였다. 셋째, 연구자는 연구참여자의 안전이 보장된 편안한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면담 후 정서적인 어려움 및 트라우마를 겪지 않았는지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여 관리했다. 그리고 회기마다 연구참여에 대한 감사 표현과 답례를 제공하여 보상했다.
정영자는 A시에서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유복한 집안의 첫째 손녀로 집안의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했으며, 지방에서는 일자리가 부족하여 제주도, 군산, 서울 등 여러 곳에서 생활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업으로 인해 가정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부모님의 다툼이 잦았고, 이로 인한 불안감이 컸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영자는 시골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할머니는 그녀를 소중한 손녀로 생각하고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하며 양육했다. 정영자는 비록 부모와 떨어져 지냈지만, 가정이 해체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안정감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타지에서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사업을 벌였고, 그때마다 그녀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심지어 알코올 중독으로 온 가족이 아버지에게 신경을 쓰느라 정영자는 제때 중학교 진학하지 못했다. 그녀는 10대 시절을 회상하면서 할머니와 고모와 함께 두 명의 남동생을 돌보던 여아로서의 기억이 선명했다고 말했다. 남동생은 자신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그 당시 돌봄은 항상 여성들이 맡아야 했던 일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치료 후 인근 A시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녔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정영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어린 시절 때문에 직장생활을 꾸준히 하여 동생들과 부모님께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20대에 처음 들어갔던 직장은 직급이 낮고 월급이 적어서 자존심마저 흔들렸다. 그녀는 지인이 기술직에 합격한 것을 보고, 유리천장에 맞서 자신도 도전하였다. 그리고 합격하여 근무 환경과 급여 모두 만족스러운 직장에 다닐 수 있었다. 당시 정영자는 남녀 불평등한 처우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기회를 찾아 변화를 경험하였다. 이는 여성도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고, 집안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한 계기였다고 분석된다. 다만, 그 과정에서도 돌봄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있다고 믿었다.
결혼 적령기가 되자 그녀는 지인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렇지만, 부모와 동생들을 떠나 타지에 사는 것이 마음에 걸려 거절하였고, 같은 직장에 다니던 남편의 적극적인 구애로 27세에 결혼을 하였다. 그때 그녀의 우선순위는 친정 식구 부양이었는데, 어떻게든 자신이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고 회고한다. 결혼 후 남편은 그녀가 기대했던 배우자의 모습, 즉 진취적이고 가정의 중심을 지키는 성향과는 크게 달랐다. 돌봄의 책임을 나눈 적도 없었다. 남편을 변화시키기 위해 싸웠고 고치려고 큰 노력을 했지만, 그는 변하지 않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그런 중에 첫아이를 임신했다. 정영자는 남편에 대한 실망과 기대의 반복 속에 28세 첫째를 출산하고 육아를 비롯하여 끊임없는 양가의 대소사를 처리했다. 곧이어 둘째를 낳았는데, 그녀는 산후 45일 만에 복직하여 무리하게 일을 재기했다. 그렇다고 가족돌봄이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가정에서 육아는 물론 각종 가사, 경제적인 보조까지 모든 부분을 책임졌다.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어 이웃에게 부탁하거나, 여동생의 도움을 받거나, 도우미를 고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쓰며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타는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잠시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으나, 시어머니도 아이를 못 봐주신다고 하여 혼자 가족을 돌보며 매 순간 전전긍긍하였다.
정영자의 30대는 이렇게 가족돌봄이라는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서러운 상황을 겪으면서 ‘내 자녀들의 아이들을 돌봐줘야지’, ‘내 딸 눈에서는 눈물 나지 않게 도와줘야지’라고 결심했다. 그녀가 돌봄으로 고군분투하던 시기에 남편은 중간 역할을 하지 못했고, 그녀는 가족돌봄에 따른 무게를 혼자만의 투쟁으로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장녀이고 동생이 네 명이나 있었는데, 가정을 잘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며 다른 형제자매에게 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돌봄 책임을 나눌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가족 내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은 그녀의 돌봄이 필요했다. 친정아버지는 알코올 중독과 간경화로 투병 중이었고, 친정어머니는 뇌출혈로 그녀가 수시로 가서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친정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고, 가족들이 먹을 반찬을 챙기고, 친정 동생들을 챙기는 것 등은 모두 그녀 몫이었다.
정영자는 35세가 되던 해 월세방에서 탈출하여 자신의 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을 지을 비용도 부족하고 시부모님의 생활비도 대드려야 되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따로 살고 있었던 시부모님과 합가하기로 했다. 다행히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봐주면서 그녀는 출장도 다니고 장기 교육도 이수하며 직장에서 조금씩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살던 집 안에서는 여전히 이방인처럼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지냈다. 일과 동시에 돌봄을 행하고 있었음에도 인정받지 못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유독 친밀하여 그녀의 자리는 없었고, 남편은 자신의 배우자이기에 앞서 시어머니의 아들일 뿐인 것처럼 느꼈다. 그나마 직장은 그녀의 숨통이었다. 책임감이 강한 정영자는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경제력을 갖춘 여성으로서 수월히 생활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45세가 되던 해, 1997년 IMF가 터졌고, 같은 회사 부부 사원이었던 그녀와 남편 중 한 명은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사회적인 통념으로 여자가 사직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직장에서는 그녀가 그만두지 않으면 남편의 직급을 없애고 평사원으로 만들겠다고 겁박하였고, 결국 일주일 만에 20년 넘게 일했던 직장을 아무 준비 없이 퇴직하게 되었다. 그 후 정영자는 더 큰 시련을 겪었다. 퇴사로 일상 환경이 변해버렸으나, 그녀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또한, 당시 시누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고사로 그녀의 생애 변화는 가족의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퇴직 후 집에서 살림하며 자녀 양육에 매진하고자 했었으나, 시어머니는 그녀가 집에서 주도권을 갖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돌봄에서도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가족구성원으로서도 포용 되지 못했다. 결국, 가족 안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그녀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정영자는 60대 이후 또 다른 다중 가족돌봄의 굴곡을 살아가게 된다. 그녀가 61세가 되던 해, 딸이 뇌암 진단을 받고 수술하게 되었다. 딸이 있는 지역으로 가서 수술하고 회복할 때까지 5개월 동안 곁에서 돌봤다. 딸이 아픈 건 그녀 자신이 아픈 그것보다 더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 남편은 퇴직했고, 외출도 하지 않고 집에서 시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신이 딸을 돌보는 동안 남편과 시어머니는 조금씩 이상행동을 보였다. 치매 진단을 받은 시어머니를 더 잘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교육, 노인 심리학 공부 등 돌봄과 관련하여 지식과 기술을 쌓았다.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도 공부했다. 남편은 뇌 허혈, 치매 진단을 받으며 점점 인지기능이 떨어져 갔다. 다중 가족돌봄의 늪에 자꾸만 빠져드는 중이었다. 그녀는 부랴부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신청을 해서 시어머니와 남편이 장기요양등급을 받고 주간보호센터에 다닐 수 있도록 조치했다. 또한, 자신은 그 시간에 큰딸이 낳은 손자를 돌보러 큰딸 집을 방문해 돌봄을 실천했다. 주간에는 손자를 돌보고, 야간에는 시어머니와 남편을 돌보며, 그녀의 삶 전반은 다중 가족돌봄에 따른 의무와 책임, 압박과 긴장으로 가득 차버렸다.
다중 가족돌봄이 계속되던 중, 그녀는 지속적인 두통으로 검사한 결과 암 진단을 받았고, 바로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그녀는 67세였다. 눈앞이 깜깜했다. 자기가 수술받는 동안 아픈 가족들을 돌볼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시어머니와 남편은 계속 주간보호센터에 나갈 수 있었고, 큰딸이 휴직하여 잠시나마 자신의 빈자리를 채우기로 했다. 그녀가 수술받으러 갈 때도 남편은 힘이 되어주기는커녕 화를 냈다. 시어머니는 자기 한약만 지어올 뿐이었다. 오랫동안 가족돌봄에 충실하였음에도 아무도 그녀의 건강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정영자는 설움이 북받치고 마음이 무너졌다. 지금까지 그녀가 시어머니를 모셨음에도, 시댁 식구들은 수술 잘 받고 오라는 말은커녕 괜찮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1년 뒤 내 건강을 조금 추스르니 둘째 딸의 병이 또 재발했다. 남편은 치매 문제행동이 심해져서 주간보호센터를 그만두게 되었고, 큰딸은 지방으로 이사 가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는 작은딸을 돌보러 S시로 가야 하지만 남편과 시어머니 돌봄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장고 끝에, 정영자는 어쩔 수 없이 남편은 요양원에 입소시켰고 시어머니는 시댁 식구들에게 맡기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시누이 집으로는 가지 않겠다고 버텼고, 결국 현재 거주하는 집에서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고 주말에 시댁 식구들이 와서 돌보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정영자 자신도 노년기 각종 질환을 겪으며 건강 문제가 심화하였다. 부비동염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자신이 돌보는 딸의 수술 일정과 조율되지 않아 가족돌봄의 일상을 처연히 견뎌내었다. 그녀는 언제나 본인보다 가족돌봄이 우선이었다. 친정 식구의 도움으로 딸이 수술받고 회복하는 동안 정영자가 둘째 딸을 돌봤다. 그 후 정영자가 수술받고, 여동생이 간병해 회복하는 등 가족돌봄과 생애 사건은 정면으로 대치하면서도 가까스로 틈을 만들어 삶을 지속했다.
칠십 평생을 지나도록 다중 가족돌봄에 치여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영자는 이제는 그녀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아프니 도미노처럼 모든 가족의 삶이 무너졌고, 자기돌봄의 의지가 꺾이면 세상사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는 그녀의 가족뿐만 아니라 시댁과 친정 식구가 모두 동원되었다. 이를 계기로 자기가 다른 사람들을 돌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받을 수도 있는 대상임을 직시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돌봄은 나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다른 가족들과 함께 감당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정영자는 자신이 집으로 돌아오니 시댁 식구들이 시어머니를 돌보고 있었고, 이웃들도 오며 가며 시어머니를 챙겨줬다고 했다. 정영자는 살면서 뿌렸던 돌봄의 씨앗들이 조금씩 거둬지는 것 같다고 느끼며, 다중 가족돌봄의 굴레 한 귀퉁이를 조금씩 접어 압박으로부터 생을 확보해 나갔다. 더는 혼자 견디지 않겠다면서, 다양한 제도의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돌봄 부담을 덜어내고자 했다. 정영자는 앞으로 다양한 지원책이 가족의 돌봄 문제를 향해 초점화하며 엮어져야만 다중 가족돌봄의 상황이 해소될 수 있으리라고 여긴다.
연구참여자의 생애 이야기를 재구성한 결과 70대 여성 노인의 다중 가족돌봄은 <표 1>처럼 17개 하위주제 및 5개의 상위주제와 함께 밝혀졌다. 연구참여자의 구술자료와 경험을 재해석한 상위주제는 ‘지금의 돌봄에 뿌리로 스며든 어린 날 기억’, ‘일하는 며느리이자 딸로 도리 다하려 아등바등 살아낸 젊음’, ‘가족 보듬으며 묵묵히 이행하는 나이 든 나의 책무’, ‘가족돌봄의 굴레 속으로 내박쳐진 나’, ‘내몰린 벼랑 끝에서 주변과 맞잡은 손’과 같았다.
상위주제 | 하위주제 |
---|---|
지금의 돌봄에 뿌리로 스며든 어린 날 기억 | 조모의 보살핌 통해 공급받은 돌봄의 자양분 부모의 결핍 가운데 피어난 장녀의 책임감 식구들의 든든한 나무 되고자 나를 성장시킴 |
일하는 며느리이자 딸로 도리 다하려 아등바등 살아낸 젊음 | 아이 맡길 곳 찾아 헤매는 일하는 엄마의 설움 바쁜 시간 쪼개 아픈 친정어머니 보호자 되기 나에게 버텨낼 힘을 주는 안식처 같은 직장 |
가족 보듬으며 묵묵히 이행하는 나이 든 나의 책무 | 미운 세월 뒤로 평생 돌보는 병든 내 남편 일생 바쳐서라도 낫게 하고픈 둘째 딸 마지막까지 집에서 보살피고픈 시어머니 직장인 큰딸 대신 정성으로 돌보는 손주 |
가족돌봄의 굴레 속으로 내박쳐진 나 | 가족들 일상 휘몰아쳐도 굴하지 않는 해결사 짓눌리는 삶의 무게를 버텨내느라 무너져 가는 몸과 마음 식구들 문제가 다 내 탓 같아 자처한 고립 차곡차곡 쌓여온 설움이 봇물 터지듯 폭발함 |
내몰린 벼랑 끝에서 주변과 맞잡은 손 | 쪼그라들고 지친 나 보듬어 집 밖 향해 일으킴 무거운 돌봄의 짐 친지와 맞들며 분담하기 전문적인 제도 이용해 삶 옥죄던 돌봄 부담 덜어내기 |
분석을 토대로 찾아낸 상위주제에 대해 살펴보면, 첫째로 ‘지금의 돌봄에 뿌리로 스며든 어린 날 기억’은 연구참여자가 돌봄을 받아왔던 경험을 가족돌봄과 결부하여 재해석하여 회고함을 뜻한다. 즉, 연구참여자에게 과거는 돌봄에 대한 기본 틀을 구축하게 한 경험으로 재해석되었다. 둘째로 ‘일하는 며느리이자 딸로 도리 다하려 아등바등 살아낸 젊음’은 연구참여자가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며느리로, 딸로, 아내로, 엄마로 정체화하며, 그러한 역할 안에서 책임감 있게 각 도리를 수행하며 생애를 살아왔음을 드러낸다. 셋째로 ‘가족 보듬으며 묵묵히 이행하는 나이 든 나의 책무’는 주로 노인이 된 여성 연구참여자가 가족 체계 안에서 남편, 둘째 딸, 시어머니, 손주를 어떠한 마음과 부담감으로 보살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넷째로 ‘가족돌봄의 굴레 속으로 내박쳐진 나’라는 범주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며느리, 아내, 엄마, 할머니로서의 다중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자신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돌봄 과업에만 애써왔던 시간을 주되게 함축한다. 다섯째로 ‘내몰린 벼랑 끝에서 주변과 맞잡은 손’은 그녀가 모든 돌봄을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려 했으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으며 자신과 가족돌봄 간의 균형을 잡으며 다중 가족돌봄을 재인식하게 된다는 변화의 상태를 담고 있다.
① 조모의 보살핌 통해 공급받은 돌봄의 자양분
연구참여자는 어린 시절 따뜻하게 자신을 보살펴 주던 할머니를 통해서 가족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몸소 체득했다. 이러한 경험은 전 생애 동안 돌봄의 자양분처럼 작용하였다. 실제로 정영자는 자신의 돌봄과 관련된 기억을 회상하며, 따뜻한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던 어린 시절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긍정적인 모습과 결부되었다. 그녀는 집안의 어른이었고, 직계가족 외에도 친정어머니의 가족까지 살뜰하게 챙길 정도로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가족 간의 관계를 중요시하였고, 항상 따뜻하게 연구참여자를 대해주었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현명했으며, 연구참여자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 안 여성으로서의 역할모델이기도 했다. 정영자는 할머니의 행동전략에서 돌봄 수행의 틀을 갖추어 나갔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갑작스러운 큰아버지, 큰고모의 사망으로 연구참여자는 할머니, 연구참여자, 여동생, 고모 세 명과 함께 여성들만 남겨졌는데, 당시 할머니는 큰 굴곡 없이 가정을 이끌어갔다. 가족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보살폈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연구참여자는 평생 가족돌봄을 묵묵히 감당할 수 있는 여성 성 역할을 체화하였고 평생 다중 가족돌봄을 실천한 토대를 만들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할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할머니는 모든 일에, 그냥 막 가볍게, 우리를 애라고 생각하고 대하지 않았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손자 손녀들을 좀 편안하게 해주려고 해서, 불안하지 않았어. 할머니의 돌봄이, 아주 좋았어. 행복했어.
② 부모의 결핍 가운데 피어난 장녀의 책임감
연구참여자는 부모와 떨어져 사는 시간을 통해서 동생들이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장녀라는 책임감으로 부모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했다. 연구참여자 아버지는 음악을 했었는데, 알코올 중독이 있어서 주기적으로 병원 입원을 해야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자녀들과 떨어져 생활하였다. 그 때문에 연구참여자는 9살부터 14살까지 부모님과 떨어져서 장녀 된 자신이 동생을 돌보아야 한다고 인식했다. 할머니, 여동생 두 명, 고모 세 명, 남동생 두 명과 함께 살면서, 특히 할머니가 남동생들을 집안의 기둥처럼 생각하고 아끼는 것을 보면서 남자가 중요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남동생들을 챙겨야 하겠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녀는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관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형제 순위에 따른 돌봄과 부양 압박감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장녀란 단지 첫째 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수행하는 역할로서의 의미가 있다. 여기서 ‘장녀’ 역할이란 주로 맏이로서 책임감을 지며 여성으로서 가족들과의 정서적인 교류까지 담당하는 모습으로 재현된다(이시은, 2024). ‘K-장녀’ 담론에서처럼 여성들이 장녀로서의 위치를 직시하는 경험은 연구참여자의 사례에서 유사한 맥락에서 확인되었다. 즉, 장녀라는 위치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집안의 남아 선호 분위기와 나이에 따라 정해진 서열이 작동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 있어서 집안 형편이 안 좋았지. 내가 동생들에게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나서 결혼해야겠다. (중략) 어릴 때는 남자가 집안의 뿌리다. 그때는 남자가 집의 모든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③ 식구들의 든든한 나무 되고자 나를 성장시킴
연구참여자는 식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을 잘 벌기를 바라는 식으로 자신을 성장시켰다. 연구참여자의 어린 시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결핍은 부모님을 보살피고 동생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야만 한다는 자립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한 당위감으로 연구참여자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했고, 취업 후에도 좀 더 전문적인 직렬, 급여가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연구참여자는 동생들보다 나이가 더 많기에 노동시장에 먼저 진입하였는데, 그렇게 얻은 소득으로 동생들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면서 돌봄을 이행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즉, 본 연구참여자에게 장녀라는 위치는 형제 중 순서상 첫째라는 의미였을 뿐만 아니라, 돌봄 역할이 강조됨으로써 가족을 당연히 책임져야만 하는 자리로 모든 가족구성원에게 여겨졌음이 드러났다. 더욱이 연구참여자는 친정 식구들을 돌보기 위해 결혼을 미루기도 했다. 이는 결혼이 여성의 분가로 직결되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해석된다. 정영자는 여성이 결혼하면 새로운 가족을 만들게 되므로 원가족을 전적으로 돌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고 보고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 가족의 결합으로 간주하는 반면, 결혼 적령기에 있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의 가족돌봄은 결혼이 그것의 장애물로 작동할 수도 있는 모습을 반영한다. 실제로 본 연구참여자도 가족돌봄의 족쇄로 인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어도 적극적으로 만나기 어려웠고, 자신이 원하는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데 제한을 받는 결과마저 겪었다.
돈이 중요하다는 것을, 저는 어릴 때 알았잖아요. 아버지가 경제력이 없어서⋯. 내가 어떻게든지 스스로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었어요. 그리고 내가 동생들까지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결혼하고도, 일을 그만둘 생각은 하질 않았죠.
① 아이 맡길 곳 찾아 헤매는 일하는 엄마의 설움
연구참여자는 자녀가 어렸을 때는 맡길 곳이 없어서 힘들었고, 그 와중에도 일하는 엄마로 버둥거리며 서럽게 지냈다. 경제적 부양의 압박감 때문에 그녀는 출산하고 2주 만에 회사에 출근했다. 자녀를 맡길 곳이 없어서 이웃집에 간곡히 부탁한다든지, 회사에서는 점심시간이면 나가서 젖을 먹이고 동분서주하며 아이를 돌봐야 했다. 돌볼 사람을 구해도 3개월 이상 지속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곤 했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댁 근처로 이사했는데, 약속과 달리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줄 수 없다고 하여 눈밭에 아이를 업고 걸려서 친정에 데려다줬던 기억은 한스럽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시어머니에게 불만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못하고, 같은 직장에 다니는 남편은 불이익이 있을까 먼저 회사에 보내며 가사를 처리한 후 뒤늦게 출근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연구참여자의 경우처럼 남녀가 사내 부부로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실적 처우는 여성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사회 불평등적 잣대를 확인할 수 있다(김은정, 2021). 본 연구참여자의 사례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희생적 역할을 맡는 것이 더 나은 선택으로 여겨지는 내재화된 성차별적인 기제가 드러났다고 분석된다. 본 연구참여자가 살아온 성차별적인 문화의 맥락에서 볼 때, 일하는 여성은 아이를 안정적으로 돌볼 사적, 공적 자원을 보유해야만 성별 불평등하지 않은 상태로 인생을 영위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김희경, 2019).
애기 봐 줄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어요. 이웃집에 맡기고, 방학 때는 여동생이 봐주고⋯. 그러다 잠깐 시어머니가 아기를 봐줬는데, 갑자기 애를 더는 못 봐주겠다고, 나 출근하는데 일어나서 나가버리는 거예요. 남편은 회사 늦을까 봐, 먼저 출근하라고 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친정으로 갔지. 눈밭에 애 하나는 업고, 하나는 걸리고⋯. 1월 첫 출근인데, 지각했어. 그날은 울고, 또 울고⋯.
② 바쁜 시간 쪼개 아픈 친정어머니 보호자 되기
연구참여자는 회사도 다니고, 집안일도 하고, 시댁 식구도 돌보고, 살림도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살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친정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연구참여자는 주 보호자로서 또 다른 차원의 돌봄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연구참여자는 가족 안에서는 엄마이자 아내라서, 시댁에서는 며느리라서, 그리고 친정에서는 딸이라서 돌봄의 책무는 당연히 자기 몫으로 여겼다. 실제로 당시를 회상하며 정영자는 동생들이 군에 있거나, 멀리서 살거나, 너무 어려서 보호자의 역할을 할 수 없음을 인지하였으며, 자신이 큰딸로서 친정어머니의 경제적, 정서적, 신체적 돌봄 등을 주로 담당해야만 한다고 믿었음을 이야기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돌봄 영역에 있어서 장녀의 역할에 주목했던 최유나(2019)는 부모를 돌보는 기혼의 중장년 장녀들이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본 연구참여자는 관습적으로 내재된 장녀의 역할로 인해 다중 가족돌봄에 따른 일상을 살아내야 했고, 결혼하여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원가정 안팎에서의 헌신과 책임을 요구받음을 알 수 있다.
친정엄마도 돌봤었죠. 그때는 동생들도 다 어리고, 보호자가 아무도 없었어. 그때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시간적으로도 힘들었는데⋯. 그래도 엄마 대학병원 수술하고, 그런 과정들을 전부 내가 했잖아. 아주 힘들었지.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③ 나에게 버텨낼 힘을 주는 안식처 같은 직장
연구참여자는 직장에서는 자신이 일한 만큼 인정을 받을 수 있어서 그나마 그 힘으로 버텨냈다고 털어놓았다. 그마저 없었다면 다중 가족돌봄의 상황에서 모두 포기해 버릴 수도 있었다고 했다. 집에서는 노력해도 시어머니께 인정받지 못했으며, 남편에게는 기대해도 충족되지 못하고 실망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연구참여자는 가족 체계 안에서 돌봄의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과는 달리 직장에서는 일한 만큼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더욱 다중 가족돌봄을 지속하기 버거웠음에도 직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연구참여자는 시부모님과 합가한 이후에는 출장도 교육도 더 많이 가능하여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인정받았으며 자신감도 함께 높아졌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다중 가족돌봄의 굴레 속에서도 개인의 역량을 발휘하고 능력을 인정받는 경험은 과중한 돌봄 과업으로부터 버텨내고 다른 차원의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근간일 수 있음이 확인된다.
남편한테는 뭔가 기대를 하고 있으면 항상 와르르 항상 와르르⋯. 그래서 더 일을 열심히 했는지도 몰라요. 일은, 회사 일은, 내가 한 만큼 그리고 주인이 될 수 있잖아. 인정도 받고. 다른 사람들이, 일 잘한다고 평가해 주고, 나도 자신감이 붙고, 이런 것들 때문에, 인정도 받고 일하는 것이 좋았어요.
① 미운 세월 뒤로 평생 돌보는 병든 내 남편
남편은 평생 연구참여자의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어머니 편이었고, 빚을 지고 도박하는 등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쳤던 것으로 기억했다. 연구참여자는 한순간도 남편을 의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치매가 발병하고 아프기 시작하면서 도리어 남편이 연구참여자에게 의지하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미우나 고우나 내 남편이니 돌봐야 한다는 생각, 그래도 내 아이들의 아빠이니 잘해줘야지 하는 의무감으로 돌보고는 있지만 과거의 억울함과 힘겨움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자신을 힘들게 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울컥한 감정들이 올라와서 감정적으로 힘들다. 갑작스러운 둘째 딸의 재발로 돌봐줄 사람이 없어 현재는 요양원에 가 있는 남편을 생각하면 잠시나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현재로서는 가능한 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해서 요양원에 면회하며 돌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참여자의 사례는 일반적인 노노케어와 같이 나이 든 아내가 남편을 돌보는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남편을 돌보는 동시에 다른 가족구성원도 돌보고 부양해야 하는 현실이 반영되었다.
남편한테, 뭔가 정신적으로도, 조금 도움을 받고 싶고, 경제적인 것도, 좀 같이 하고 싶고, 그랬는데 그런 기대들이 자꾸 허물어지니까⋯. 내가 의지할 수도 없었고, 기댈 수도 없었고⋯. 그래도 요새는, 이 사람이 환자니까, 이렇게 생각해. 남편이 이제 나를 더 의지해. 지금이라도 내 이야기에 그렇게 들어주니까, 내가 그 사람을 돌볼 수가 있지. 묵은 감정들이 문득 올라와도, 미우나 고우나, 이렇게 같이 살다 본 게, 어떻게 하겠어. 해야지.
② 일생 바쳐서라도 낫게 하고픈 둘째 딸
연구참여자의 다중 가족돌봄 생애는 남편뿐만 아니라 자녀의 건강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기 전부를 바쳐서라도 둘째 딸의 병을 낫게 하고 싶었다. 연구참여자는 자랑이었던 딸의 갑작스러운 암 발병으로 마음이 무너졌다. 자녀가 투병하고 치료받는 동안 오롯이 곁에서 돌봐주고 지극정성으로 애썼지만, 계속되는 재발을 바라보며 기대하고 실망만 반복했다. 때로는 딸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바꿔보지만,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고 싶을 만큼 마음 힘든 감정이 들었다. 이미 성인이 된 딸이지만 헌신적으로 돌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여겼다. 독립한 자녀를 돌보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느끼지도 않았다. 다만, 연구참여자가 딸을 돌보면서 가장 힘든 점은 육체적인 피로도 정서적인 어려움도 아닌 응급 상황에서 자신의 역량만으로 잘 대처하기 힘들다는 것, 그리고 딸이 아픈 모습을 곁에서 오롯이 지켜봐야 하는 것이었다.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잠도 못 자고, 오랫동안 힘들어했었죠. 걱정도, 불안도, 다 놓아야지 하면서도 잘 안돼. (울먹거리며) 내 딸을 보살피는 것은, 내 마음 내 병까지 얻을 만큼, 그렇게 많이 아프고⋯. 음식 못 먹고 그럴 때 마음이 미어지고⋯.
③ 마지막까지 집에서 보살피고픈 시어머니
연구참여자의 다중 가족돌봄은 시부모와의 관계에서도 드러났다. 그녀는 결혼 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쌓인 서운함이 많았음에도 마지막까지 책임감을 깊이 느끼며 집에서 모시고자 했다. 시어머니가 불편함을 느끼기 전에 미리 움직여서 식사와 잠자리 준비를 도와드렸지만, 아직도 연구참여자가 제공하는 돌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해 서운한 마음이 든다. 치매로 정신이 온전치 않아도 뭐든 자기가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거나 어린 아이처럼 우기는 것은 시어머니를 돌보면서 가장 힘든점이라고 말한다. 단, 그녀는 시어머니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돌봄 행위의 전략이 전과 달라졌다고도 이야기했다. 이전에는 시어머니의 요구사항에 본인이 다 맞췄다면, 지금은 해줄 수 있는 것은 해드리지만 못하는 것은 설득하거나 조정하며 돌봄을 지속하는 중이다. 연구참여자는 시어머니만큼은 가족이라는 책임감으로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끝까지 돌보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이는 가부장적 사회문화 속에서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관습적으로 대물림된 성 역할의 기반이 그녀에게 역시 체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로 인해, 시댁 식구에게 돌봄을 요구하기보다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끝까지 돌보는 것이 책임감이자 미덕으로 여기면서 돌봄의 주된 책임을 자신이 짊어지려고 하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시어머니는 치매 때문에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자꾸 혼자 하시는 거예요. 혹시라도 넘어져서 뼈가 부러질까봐. 다칠까봐 걱정되었죠. 그래도 가족은 같이 가야죠. 끝까지, 시어머니는 내가 못 한다. 요양원 보내자는 말이, 안 나올 것 같아. 내가 힘들더라도, 이렇게라도 집에서 계신 것이, 어머니한테 더 행복할 것 같아.
④ 직장인 큰딸 대신 정성으로 돌보는 손주
연구참여자는 젊은 날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서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더욱 다중 가족돌봄을 완수하겠다고 여긴 것으로 분석된다. 그녀는 자기 자식들은 지난날 일하는 엄마로서 겪었던 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 손주를 돌봤다. 그리고 딸이 결혼한 후 자식을 대신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책을 읽고 아동 심리 및 보육 관련 교육도 받으며 준비했다. 이렇듯 손주를 돌보는 것은 연구참여자가 20대부터 결심한 여성으로서의 생애 과업 중의 일부로 여겼음이 드러났다. 다만, 이 과정에서 돌봄에 대한 정서는 다른 가족구성원을 향한 것과는 다소 구별된다. 그녀는 큰딸 출산 직후부터 손자녀를 봐주고 있는데, 자식을 위한 돌봄을 행할 때는 희망이 보이고 소통이 된다는 식으로 반기는 모습이다. 그에 관해 정영자는 손자녀는 돌봄의 기간이 정해져 있고, 부모가 있으니 온전히 연구참여자가 책임지지 않아도 돼서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돌봄에 임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손자녀를 돌보는 심정과 달리 집에 가면 남편과 시어머니를 돌봐야 해서 하루가 48시간 같이 느껴지고 힘들었다고도 말한다. 이러한 상반된 구술을 통해 돌봄의 대상에 따라 돌봄의 감정은 물론 책임감의 무게도 다를 수 있음이 밝혀졌다.
나는 내 딸들 새끼 낳아서 키울 때, 절대 딸들 눈에 눈물 안 빼야지, 손주는 꼭 봐줘야지, 결심했어요. 손주 돌볼 때는 (미소를 띠며) 정말 다 행복했어요⋯. 손주 잘 돌보고 싶어서, 아이 돌보미 교육도 받고, 책 놀이 동화책 읽기도 배웠어요. 희망, 기대감, 꿈, 이런 것들이 있으니 좋아요. 손주 돌보는 것도, 기간이 정해져 있고, 자기 부모도 있으니, 다 책임 안 져도 되고 하는 장점들이 있어요.
① 가족들 일상 휘몰아쳐도 굴하지 않는 해결사
연구참여자는 4명의 가족을 돌보면서 시어머니와 남편의 치매로 인한 문제행동을 해결해야만 했고, 동시에 둘째 딸의 갑작스러운 재발이나 수술,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등 휘몰아치는 가족들의 일상에 압도되었음을 확인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가족돌봄의 굴레 안에서도 항상 자신이 해결사처럼 버텨왔음을 묘사했다. 그와 관련된 일화로, 본 연구참여자는 돌봄의 초기에 일상적이고 소소하며 평범한 돌봄의 사적 경험을 전문적인 지식으로 변환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이에 손주를 키울 때는 전래놀이, 유아 심리, 보육 등을 배우고자 노력했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회복지 공부를 하는 등의 전문적인 돌봄을 행하고자 개인적으로 분투했다. 즉, 다중 가족돌봄 이행을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해결사로 지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돌봄 제공자는 돌봄대상자를 돌보는 경험을 통해 돌봄 중심적으로 삶의 의미를 구성하거나, 앞으로 예상되는 돌봄에 대비하여 돌봄자로서 역할을 확립하게 된다(이시은, 2024). 그런데 정영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돌봄대상자가 4명으로 늘어나면서, 연구참여자의 일상은 하루하루 정신없이 버텨나가는 날들로 구성되었다.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수시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처한 상황들이 변했고, 그에 따라 대처해야 하는 생활이 일상처럼 펼쳐졌다. 남편은 치매 증상 악화로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고, 입소를 기다렸던 요양원도 인원이 다 차서 다른 곳을 알아봐야만 했다. 딸은 재발해서 간병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급기야 노년기에 접어든 연구참여자마저 암 발병이라는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다. 이 모든 일이 동시에 벌어져 연구참여자는 당황스럽고 참담한 심정이었다. 결국 남편은 요양원에 입소하게 되었고, 시어머니는 시댁 식구들이 돌아가며 돌보기로 했다. 자녀와의 수술 일정을 조율하여 자녀가 먼저 수술을 받고 회복한 후 연구참여자가 수술받았다. 이 모든 상황은 한꺼번에 몰아닥쳤으며, 연구참여자를 포함한 가족의 일상은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이처럼 연구참여자는 한꺼번에 몰려오는 일들을 온몸으로 버텨내며, 다중 가족돌봄의 사명을 지켜나갔다.
닥친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래서 뭔가 닥치는 것 해결하기에 급급하고⋯. 한 명씩만 돌보는 것은 좀 나은데, 둘이 같이 있을 때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딸도 재발한 거예요. 내가 간병하러 딸한테 가야 하는데, 남편을 맡길 사람이 없는 거예요. 남편을, 누가 맡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② 짓눌리는 삶의 무게를 버텨내느라 무너져 가는 몸과 마음
연구참여자는 짓눌리는 삶의 무게를 오롯이 버텨왔지만, 한계를 넘어선 다중 가족돌봄의 무게로 인해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린 적도 많았음을 이야기했다. 가장 심각하게는 4명이나 되는 가족의 필요를 채워주느라, 정작 자기 몸은 돌보지를 못했다. 연구참여자는 급기야 암 진단과 수술로 지금까지 가족들 돌보느라 자신은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진균증, 유방액화증 등 계속되는 신체적 어려움 속에서 소진되었다. 점차 기억력도 떨어지고 정신건강의 변화까지 겪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러한 풍파 속에서도 연구참여자는 다중 가족돌봄에 대한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아플수록 자꾸 다른 가족들을 먼저 돌보려고 했고, 돌봄 과정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시댁 식구들이나 자녀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삭이기만 했다. 자신의 헌신으로 다른 가족구성원이 편안해진다면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구참여자는 스스로 회복할 시간 없이 계속 가족들을 돌보면서 결국 자신의 건강 악화로 암 투병에 이르렀다. 이는 치매나 암 등 만성질환자 가족이 의존적인 가족구성원의 끊임없는 요구에 오롯이 혼자 돌봄을 감당하거나 외부 자원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송다영, 2014; Greenwood & Smith, 2016)을 다중 가족돌봄자의 생애에서 확인한 결과이다. 다중 가족돌봄자의 경우 피로감, 스트레스, 예상치 못한 상황의 발생에 대한 두려움, 가족들의 건강 변화에 대한 염려가 더해져 우울 등 정신적인 어려움을 경험하기도 한다(Jang et al., 2021; Pashazade et al., 2023). 실제로 70대 다중 가족돌봄 제공자인 연구참여자는 노화로 인해 건강이 점차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돌봄으로 자기돌봄이 거의 불가능했으며, 이는 타인에 대한 지속적인 돌봄의 위기는 물론 극심한 건강상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두통이 심해져서 MRI를 찍었는데, 청신경초종이라네요. 나까정 아프다고 하니까 덜컥 겁이 났는데, 어찌저찌 수술하고 치료받았지요. 그러다 안면 진균증도 발견해서 또 수술받았어요. 요즘은 기억력도 좀 떨어지고, 감정 조절도 안 되는 것 같아요.
③ 식구들 문제가 다 내 탓 같아 자처한 고립
연구참여자는 식구들에게 벌어지는 문제들이 다 자기 탓으로 여겨져서 고립을 자처했다. 우리는 노년에도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 내 중요한 타자들은 물론 다양한 체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본 연구참여자는 다중 가족돌봄의 압박 속에서 자신 밖 체계와의 연결을 단절하고자 했다. 이는 자발적 결정으로 보이더라도, 연구참여자의 상황에서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연구참여자는 남편이 있을 때는 바깥 활동을 했는데 남편이 요양원에 간 뒤로 바깥 활동을 하지 않고 고립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이는 아내로서 남편을 요양원에 보냈다는 죄책감과 주변 시선을 의식함으로써 자신을 고립시킨 결과였다. 연구참여자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치매, 딸의 질환이 자신에게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너무 극심했다고 보고하였다. 이처럼 다중 가족돌봄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가족의 안녕을 확보하지 못한 자신을 저평가하여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우울감을 느끼거나 사회적 역량을 스스로 부정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사람을 만날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대인관계도,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요. 남편이 요양원 가고, 딸이 아프고 한 게, 다 내 탓도 아닌데⋯. 남편은 자기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내가 어떻게 나가겠어요. 외모도 꾸미고 싶지 않고, 우울증에 걸릴까봐 걱정되기도 해요.
④ 차곡차곡 쌓여온 설움이 봇물 터지듯 폭발함
연구참여자는 그동안 묵묵히 가족돌봄을 감당하였지만, 다중 가족돌봄의 주된 역할수행 과정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설움이 결국 봇물 터지듯 폭발하는 경험을 한 것으로 확인했다. 정영자는 긴 생애에 자신을 희생하며 최선을 다해 가족을 돌봤다. 하지만 정작 연구참여자 본인이 수술받게 되는 상황에서 남편도 시어머니도 자신을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만 챙기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시어머니 본인을 위한 한약을 지어오고, 남편은 많은 것을 부탁한다고 욕을 하기도 했다. 그런 가족의 반응을 지켜보며, 긴 다중 가족돌봄의 세월 동안 켜켜이 쌓여왔던 억울함과 분노가 폭발했던 것 같다고 인식했다. 평생 처음으로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큰소리를 내고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 이후 도리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중 가족돌봄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고, 어쩌면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은 듯하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을 통해 연구참여자에게는 그간의 가족 갈등과 시집살이의 오래된 감정들이 불쑥 올라왔으며, 그동안 미해결된 자신의 감정에 직면하면서 다중 가족돌봄 속에서 꾹꾹 눌러 온 자신의 욕구, 억울함과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자각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그녀가 무조건 자신을 희생하며 다중 가족돌봄을 실천했던 지난날과 다른 일상이 펼쳐질 기폭제로서 작용했음을 확인하였다.
그날, 아무튼 굉장히, 마음이 상했어. 내가 병원에 가려고 하는데, 그때 큰소리 한번 내봤네. 어머니한테 처음으로⋯. 내가 이렇게 아픈데, 어머니 보약만 지어오고 싶었냐고 이렇게까지 이야기해 본 건 처음 일이에요. 처음 일. 내가 아픈 게 되더만요.
① 쪼그라들고 지친 나 보듬어 집 밖 향해 일으킴
연구참여자는 가족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지냈다. 그렇지만 극도로 지치고 병든 자신을 발견하고 이내 그러한 자신을 스스로 보듬어 밖을 향해 일으켰다. 혼자서 감당했던 다중 가족돌봄을 가정체계 밖으로 연결하며 지원책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예컨대, 연구참여자는 남편 등급을 위해 방문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의 권유로 가족 상담을 받게 되었다. 칠십 평생 처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자기를 위하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큰 변화였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은 남편,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정영자는 먹고 싶은 음식을 산다든지, 집 2층에 자신을 위한 공간도 꾸미는 등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다. 길고 고되었던 다중 가족돌봄의 끝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본 연구참여자가 자기를 돌볼 수 있었던 것은 돌봄의 의미 자체를 적극적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연구참여자는 남편이나 시어머니 등 자신의 돌봄대상자보다 돌봄을 제공하는 자신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변화가 시작됨을 알게 되었다. 과거에는 가족관계 유지를 위해 무조건 헌신했으나, 이제는 의식적으로 스스로 보호하고 자신을 보듬어 일으키려는 모습을 갖추어 나가면서 다른 차원의 인생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인식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내가 중요하다, 이런 생각은 했지만, 내가 없으면, 아무리 돌보고 싶어도 못 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있어야, 우리 가족도 있겠다는 생각이, 딱 정리가 됐어. 내가 상담을 통해서, 회복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나에 대한 생각이 좀 변했어요. 약간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나를 조금 알게 되는⋯.
② 무거운 돌봄의 짐 친지와 맞들며 분담하기
연구참여자는 다중 가족돌봄이라는 무거운 짐을 친지들과 맞들며 역할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가족에게 돌봄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구조는 과중한 돌봄 부담으로 인해 돌봄을 고생으로 인식시킨다. 연구참여자 역시 변화가 촉발하기 이전에는 여성으로서 가족을 돌보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돌봄의 어려움을 다른 가족에게 말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때문에 그녀를 포함한 가족구성원 돌봄은 자신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사는 물론 남편, 자녀, 손주까지 돌보는 상황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돌봄의 책임을 오롯이 견뎌왔다. 하지만 자신의 힘듦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시어머니의 돌봄을 시누이, 시동생과 분담하게 되고. 조금씩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하면서 일상의 변화를 겪게 된다. 연구참여자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동생들과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부양해 왔다. 하지만 암으로 투병하며 자신이 동생들과 상호 연결되어 있고, 의존적인 가족관계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또한, 연구참여자는 동생들에게는 장녀로서 자신이 보살펴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암 투병을 계기로 서로의 역할이 달라지면서 동생들이 자신을 돌봐주고 그들에게서 위로받으며, 상호존립 가능한 긍정적인 가족 의존성을 발견했다고도 해석된다.
이제 각자 자기 자리에 놓아진 거죠. 내가 끌어안고 있었을 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어머니는 시댁 식구들이 도와주고, 얘네 아빠도, 요양원으로 가게 돼서, 좀 덜 부담이 되고. 나는 내 가족에게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데, 나를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었네요.
③ 전문적인 제도 이용해 삶 옥죄던 돌봄 부담 덜어내기
연구참여자는 제도를 하나씩 알아보면서 적극적으로 외부체계의 도움을 받아 힘든 다중 가족돌봄의 무게를 덜어내고자 하였다. 연구참여자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병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감당했던 때였다. 남편이 치매인 줄 모른 채 단순히 성격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싸웠던 일, 치매가 고정적 증상이 아니라 변화가 잦다는 사실을 모르던 일 등을 언급하며, 돌봄 부담은 정보 부족과도 결부되었음을 이야기했다. 이 때문에 정영자는 능동적으로 주변 자원을 살펴보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예컨대, 남편이 장기요양등급을 받고 가족상담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장기요양서비스, 치매에 대한 지식, 돌봄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들을 얻어 돌봄에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를 통해 주간보호센터, 방문요양, 방문목욕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한 적도 있었다. 더욱이 연구참여자는 남편이 국가유공자여서 보훈청에 관련된 서비스를 이용했다든지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의 혜택을 누리며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을 완화할 수 있었다고 안도하였다.
나에게 필요한 제도를, 알아보고 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가족상담 받으면서, 정보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제는 정부에서 하는 것도 잘 활용하게 되고, 또 이렇게 잘 챙겨서 조금이라도 윤택하게 되고⋯. 경제적인 지원도 받게 되고, 연금도 받고, 장기요양 혜택도 받으니 한결 도움 돼요.
본 연구의 목적은 70대 여성 노인의 다중 가족돌봄 경험을 생애사 접근에 따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연구참여자로는 10년 이상 시어머니, 남편, 자녀, 손주에게 다중돌봄을 행하고 있는 70대 초반 여성 노인을 엄정히 선정하였고, 5개월 동안 총 20시간 이상 일대일 심층면담을 수행했다. 자료수집과 분석에서는 Schütze(1984)의 이야기식 생애사 연구방법을 적용했으며, 그 결과에 총 17개 하위주제 및 5개의 상위주제가 밝혀졌다. 상위주제는 ‘지금의 돌봄에 뿌리로 스며든 어린 날 기억’, ‘일하는 며느리이자 딸로 도리 다하려 아등바등 살아낸 젊음’, ‘가족 보듬으며 묵묵히 이행하는 나이 든 나의 책무’, ‘가족돌봄의 굴레 속으로 내박쳐진 나’, ‘내몰린 벼랑 끝에서 주변과 맞잡은 손’과 같았다. 먼저 이 연구에서 발견한 점들을 정리하고, 다중돌봄을 경험하는 여성 노인을 위한 지원책 모색과 관련해 제언하도록 한다.
첫째, ‘지금의 돌봄에 뿌리로 스며든 어린 날 기억’은 연구참여자가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따뜻하고 현명한 보살핌으로 돌봄의 표상을 경험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참여자는 장녀의 지위에서 남동생을 돌보며 가족돌봄의 특별한 책임감을 경험했고, 생애사적 위기를 겪는 중에도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사명감으로 더 열심히 본인을 성장시키고자 했다. 주된 시간을 할머니와 보냈던 어린 시절, 연구참여자는 가족체계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여성으로서 감내해야만 하며, 상황을 바꾸거나 거스르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묵묵히 감당해야 한다고 여기며 컸다. 이같은 환경적 맥락은 관습적으로 대물림된 가부장적 성 역할이 체화되어 연구참여자가 긴 인생사 동안 다중 가족돌봄을 유지 해가는 근본으로 자리하였다고 해석된다.
둘째, ‘일하는 며느리이자 딸로 도리 다하려 아등바등 살아낸 젊음’에서는 연구참여자가 남녀평등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를 살아간다고 해도 돌봄에 대해서는 유독 여성의 전유물인 것처럼 불리하게 적용하는 이중잣대를 오롯이 경험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남편과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경제적인 뒷받침, 아이 양육,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 부양 등을 혼자서 해결해야만 했던 70대 여성으로서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연구참여자는 자기 뜻과는 다른 일상에서도 시댁 식구를 돌보고 아이를 양육하며, 친정어머니까지 돌보고자 다중 가족돌봄 역할을 수행했다. 그와 같이 버거운 상황에서 직장이라는 비상구로부터 간신히 버틸 힘을 공급받으며 버텼지만, 가족과 사회에서 다중적 역할을 행하느라 항상 힘에 부쳤던 것으로도 밝혀졌다.
셋째, ‘가족 보듬으며 묵묵히 이행하는 나이 든 나의 책무’는 연구참여자가 가족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의 방식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다중 가족돌봄 중 그 대상자와의 관계가 어떤지에 따라 양상이 조금씩 다를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일례로, 본 연구참여자는 배우자, 자녀, 시부모, 손자녀 등 돌보는 대상에 따라 느껴지는 부담감이나 감정에 차이가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본 연구참여자의 경우 돌봄대상자가 누구인지에 따른 의무감과 관련 감정이 모두 달랐는데, 감정은 손자녀는 기쁨, 자녀는 안쓰러움, 남편은 의무감, 시어머니는 책임감과 결부되어 있었으며, 돌봄에 대한 의무감과 부담감은 자녀, 남편, 시어머니, 손자녀 순으로 강했다고 호소했다. 특이했던 점으로, 이 연구참여자는 가족구성원을 돌보면서 발생하는 어려움이나 무게감 속에서도 더 나은 돌봄 방법을 모색하며, 변함없는 노력과 인내를 감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송다영(2014)의 연구와 같이 돌봄이 돌봄제공자와 돌봄수혜자의 관계 속에서 긍정 또는 부정적 감정과 엮이며 수행된다는 점을 다른 맥락에서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본 연구참여자의 경험을 통해 돌봄대상자에 대한 부담감과 감정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자신 외에 피돌봄자를 돌볼 수 있는 다른 돌봄자가 있을 때 그러한 부담감은 현저하게 완화될 수도 있음을 발견했다. 즉, 본 연구참여자의 생애에서 가족돌봄은 마냥 부담스럽고 힘든 것은 아니며, 매번 즐겁고 보람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연구참여자의 경우 시어머니에 대한 돌봄은 부담감이 적지만 감정이 반드시 긍정적이지는 않았고, 손주 돌봄은 부담감 자체는 적어도 감정은 부정적이지 않았으며, 남편은 부담감은 크지만 감정은 부정적이고, 딸은 부담감은 크지만 감정은 긍정적인 측면이 강한 면을 확인했다. 이러한 결과는 가족에 대한 동시적 돌봄이 보편성과 특수성의 교차로 발생하는 행위임과 동시에(송다영, 2014), 특히 다중 가족돌봄 상황에서는 그 대상에 따라 다양한 돌봄의 행위와 감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가족돌봄의 굴레 속으로 내박쳐진 나’에서는 연구참여자기가 가족돌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자신을 돌보지 못해, 신체, 사회,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연구참여자는 돌봄의 초기에는 아이 돌봄, 노인 돌봄 관련된 교육을 받으며 돌봄의 사적 경험을 전문적인 지식으로 변환하고자 하는 등 능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돌봄의 대상이 4명으로 늘어나면서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다중 가족돌봄의 현실에 직면하였고, 가족들의 일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긴장하며 정신없이 버텨가는 하루하루를 살게 되었다. 이는 연구참여자의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사회로부터 고립되게 했다. 결국, 연구참여자는 자신의 힘듦으로 건강을 잃고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러한 발견점은 노년기 다중 가족돌봄자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과도한 돌봄 행위를 지속한다면 돌봄자의 소진, 건강악화 등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는 연구결과들(김유경 외, 2018; 백경흔 외, 2018)과도 무관하지 않다. 더 나아가 극단적인 돌봄 부담 상황이 계속되면 돌봄의 주체는 가족체계 안에서만 책임을 다하며 스스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현실도 그러한 점과 더불어 밝혀졌다. 다만,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자원이 연계된다든지 돌봄 부담이 감소했을 때, 돌봄의 주체가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돌봄과 자기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다섯째, ‘내몰린 벼랑 끝에서 주변과 맞잡은 손’은 연구참여자가 오랫동안 인생 전반에서 다중 가족돌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후 더는 혼자의 힘으로 이 사태를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변화를 모색함을 보여준다. 특히 외부와 소통하여 돌봄의 부담감을 나누고 세상과 나아가는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예컨대, 연구참여자는 상담을 통해 가족돌봄을 위해 애쓴 자신의 노력을 인정하고, 그동안 정작 자기돌봄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아 자기를 먼저 일으키는 노력을 한다. 이후 시댁, 친정 식구들과 돌봄의 역할과 책임을 분담하고,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친지들을 통해 가족의 상호의존성을 발견하게 된다. 마을 주민들과 교류하고자 한다든지 시어머니 돌봄에 다른 가족과 친지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현재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 및 지역사회에 돌봄과 관련한 영역을 확장해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경험을 한 것으로도 확인했다. 특히 본 연구참여자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국민연금, 보훈청 등에서 제공하는 사회서비스와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돌봄의 과중한 상황이 완화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돌봄과 관련된 사회서비스 이용을 통해 가족돌봄 부담을 완화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김계숙, 김진욱, 2018)가 실제로 연구참여자의 삶 속에서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된다. 그와 함께, 본 연구에서는 사적 영역의 가족이나 친지의 도움이 실제적인 부담을 완화하는 것으로도 확인되어 돌봄 상황에서 가족 간의 돌봄 분담의 중요성이 밝혀졌다.
이번에는 본 연구에서 발견한 점을 중심으로 몇 가지 논의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다중 가족돌봄의 대안책으로 여성이나 사적 영역 중심의 돌봄 정책에서 나아가 가족,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계된 생태체계적 돌봄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돌봄은 사적 영역 중에서도 여성이 하는 것이라고 당연시 되어왔고, 실제로 가족 내에서 많은 여성이 관습을 이행하며 묵묵히 돌봄을 수행해 왔다. 그러다 보니 현재 여성 노인의 다수가 다중돌봄의 상황에 부닥쳐 있음에도, 이를 가족체계 외부로 표출하거나 문제시하지 않는 경향도 크다. 여성이라면 당연히 인고해야 할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성도 잔존한다. 그렇지만, 돌봄은 모든 구성원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어서 일부가 감당하는 돌봄으로는 온전한 돌봄을 이루기 어렵다(송다영 외, 2018). 더군다나 이중돌봄을 넘어 다중 가족돌봄의 사례가 빈번하게 보고되는 현실에서, 이에 대한 해법을 단순히 가족체계 내의 각 요소 강화로만 꾀해서는 부족하다. 가족구성원은 물론 지역사회 전체가 돌봄에 연결될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돌봄 자원의 보충과 보강을 위해서는 돌봄을 가족 내 여성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과 함께 하는 것임을 사회적 공론화로서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이중돌봄뿐만 아니라 다중 가족돌봄에 관한 인식개선 사업과 교육 확충은 물론이고, 그러한 문제에 직면한 가족 대상의 다체계적 지원책을 확대 및 강화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성 역할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접근과 함께, 가족 안에서의 돌봄이 성별에 따라 차등적이거나 치우쳐지지 않도록 지속적 환기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개선을 통해 가족과 친지 간에 돌봄의 구체적인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둘째, 다중 가족돌봄 대상을 위해 현재는 집단별로 분절된 정책에 대해 종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돌봄 정책은 아동, 노인 등 대상별로 분리되어 있어서, 다중 가족돌봄을 제공하는 노인들은 각각에 필요한 돌봄 제도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예컨대, 노인 돌봄 및 손자녀 돌봄을 수행하는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사례관리, 가족돌봄 휴가제도, 치매 노인 가족 지원사업, 돌봄대상자의 특성에 맞는 돌봄 기술 교육 등 돌봄 대상을 위주로 단편적인 개입은 이루어지고 있으나(유재언 외, 2018; 최인희, 2014), 이는 다중 가족돌봄이라는 특수한 맥락의 클라이언트에게는 충분하지 못하다. 이러한 정책 사업만으로는 다중돌봄을 수행하는 노인의 스트레스 완화, 가족관계 개선, 일상생활 관리와 보조 등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크다. 따라서 다중돌봄을 제공하는 노인을 대상으로 노인 돌봄 및 손자녀 돌봄과 관련된 기관이 연계하여 다중돌봄 가족을 따로 파악하고 통합사례관리를 제공하거나(최성문, 정순둘, 2023), 이들을 위한 맞춤형 상담 서비스 개발이 시급하다. 위와 같이 포괄적인 접근 방식으로서 다중 가족돌봄자에 대한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위기를 겪거나 어려움이 중첩된 클라이언트들을 현실적으로 도울 방편이리라 사료된다.
셋째, 돌봄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돌봄제공자에게 질환에 대한 정보 및 제도 이용을 위한 정보제공이 필요하다. 이 연구에서 확인하였듯 다중 가족돌봄의 상황에 있는 노인들은 돌봄에 필요한 정보를 취득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즉, 돌봄 초기에 질환에 대한 이해, 유용한 제도에 대한 접근성 향상을 통해 다중 가족돌봄에 따른 부담감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돌봄의 초기진입 시점에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여, 한 사람의 인생에서 과중한 책무를 공적 체계 속에서 배분하며 지원받을 수 있도록 토대를 갖추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서 처음으로 등급 받는 사람에게 장기요양서비스 내용을 자세히 고지하고 치매를 비롯한 노인성 질환에 대해 반복해서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서 현재는 급여 제공 설명회를 통해 서비스 이용 방법 등을 안내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지만, 다수를 대상으로 한 정보 전달 방식은 돌봄 주체가 필요한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 개선을 위해 일대일로 맞춤형 교육을 시행하는 형태가 도입되어야 할 것이며, 그와 더불어 제도에 진입한 대상에게 가족상담을 제공한다면 효과성이 더욱 높으리라고 판단된다. 실제로 본 연구참여자도 등급 판정을 위해 방문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을 통해 가족상담에 연계되었으며, 서비스를 제공받는 과정에서 자기이해, 돌봄 정보 획득, 제도의 원활한 이용 등이 가능해졌음을 보고했다. 다중돌봄을 제공하는 가족돌봄자는 다른 유형의 돌봄 맥락과 비교해서도 부담감이 극심한 현실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진입단계에서부터 발굴하고 우선하여 가족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의미 및 후속 연구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는 70대 여성 노인의 다중 가족돌봄의 경험을 일대일 심층 면담을 토대로 깊이 있게 이해하였다. 그 결과 단일 돌봄이나 이중돌봄에 비해 논의가 미흡했던 다중 가족돌봄을 제공하는 70대 여성 노인의 사례에 집중적으로 다가가서 돌봄과 관련된 삶의 전반적 맥락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다중 가족돌봄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 노인과 가족구성원의 복지 증진은 물론 이러한 사회적 욕구에 대비할 사회복지적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논하였다는 데에 연구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본 연구는 취업 경험이 있는 70대 여성 노인을 대상으로 하여, 취업 경험이 없는 여성 노인과는 돌봄의 경험이 다를 수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를 고려하여 후속 연구에서는 취업 경험 여부, 연령, 성별, 경제적 지위, 가족구성원의 조건 등에 따라 다양한 다중 가족돌봄의 경험을 탐구해 돌봄 문제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이해를 구해야 하며, 이를 통해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현실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1. | 김계숙ㆍ김진욱 (2018). 암환자 가족의 돌봄 경험, 돌봄 시간, 만성질환 여부가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한국보건사회연구>, 38(4), 57-97. |
2. | 김여진ㆍ박선영 (2013). 은퇴여성노인의 우울에 관한 연구: 성별 비교분석. <사회과학연구>, 24(3), 309-332. |
3. | 김영천 (2013). <질적연구방법론: Methods>. 파주: 아카데미프레스. |
4. | 김유경 (2019). 중ㆍ장년층의 이중부양부담과 정책 과제. <보건복지포럼>, 271, 74-92. |
5. | 김유경ㆍ이진숙ㆍ손서희ㆍ조성호ㆍ박신아 (2018). 중ㆍ장년층 가족의 이중부양 부담 구조변화와 대응방안 연구. 세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6. | 김은정 (2021). 돌봄은 ‘덫’인가 ‘피난처’인가? <여성연구>, 110(3), 93-128. |
7. | 김희경 (2019). 할마쇼크: 한국 가족주의의 그림자와 할머니-모성의 사회문화적 구성. <한국문화인류학회>, 52(2), 101-143. |
8. | 명선영 (2001). 여성노인문제에 관한 여성주의적 일고찰. <복지행정농촌>, 11(2), 281-295. |
9. | 박종환ㆍ신승옥 (2018). 중년기 여성의 친부모 부양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8(12), 611-623. |
10. | 백경흔ㆍ송다영ㆍ장수정 (2018). 이중돌봄 맥락에서 본 부정의한 세대 간 돌봄책임 재분배. <한국여성학>, 34(2), 33-69. |
11. | 백진아 (2015). 여성 노인의 배우자 돌봄 경험. <현상과 인식>, 39(4), 93-121. |
12. | 송다영 (2014). 한국 30대~40대 여성의 이중돌봄 현실과 돌봄경험의 다중성에 관한 연구. <한국사회복지학>, 66(3), 209-230. |
13. | 송다영 (2016). 돌봄자 관점에서 본 이중 돌봄의 현실과 일상성에 관한 연구. <여성학연구>, 26(2), 127-161. |
14. | 송다영 (2022). 돌봄정책의 새판짜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돌봄윤리 관점에서의 돌봄정책에 관한 비판적 고찰. <비판사회정책>, 77, 197-226. |
15. | 송다영ㆍ백경흔ㆍ장수정 (2018). 중고령 이중돌봄자의 소진에 관한 연구. <가족과 문화>, 30(1), 58-85. |
16. | 신경아 (2011). 여성노인의 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돌봄 윤리의 재구성. <젠더와 문화>, 4(2), 197-226. |
17. | 유재언ㆍ배혜원ㆍ이윤경ㆍ임정미ㆍ김수진ㆍ정경희ㆍ이선희 (2018). 치매노인과 돌봄제공자를 위한 맞춤형 정책 방안 모색. 세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18. | 이시은 (2024). 취업-결혼 중심 ‘생애과업’과 젠더화된 돌봄의 경합.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19. | 이원준ㆍ신성자 (2011). 중년남성들의 노부모와의 친밀성과 수발효능감이 노부모 수발헌신에 미치는 영향: 부모건강집단과 부모병약집단 간의 다집단분석을 중심으로. <대한가정학회지>, 49(10), 15-27. |
20. | 이지수ㆍ조은숙 (2022). 신중년 기혼여성의 만성질환 친정모 돌봄 경험에 대한 내러티브 연구. <가족과 가족치료>, 30(1), 93-117. |
21. | 이현주 (2015). 여성 노인의 가사ㆍ돌봄 노동의 젠더불평등에 관한 연구. <여성학연구>, 25(3), 141-177. |
22. | 이효선ㆍ김혜진 (2014). 생애사 연구를 통한 이주여성노동자의 삶의 재구성: 파독간호사 단일사례 연구. <한국여성학>, 30(1), 253-288. |
23. | 조지민ㆍ김문근 (2021). 베이비붐세대의 이중부양부담이 노후준비도에 미치는 영향.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14(2), 49-75. |
24. | 최성문ㆍ정순둘 (2023). 중ㆍ고령자의 이중돌봄 책임 및 이중돌봄 스트레스와 주관적 웰빙. <사회복지 실천과 연구>, 20(2), 145-188. |
25. | 최유나 (2019). 장녀인 중장년 기혼여성이 만성질환 친정어머니를 돌본 경험에 대한 질적 사례연구. 연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26. | 최인희 (2014). 노년기 가족 돌봄의 위기: 한국의 현황과 지원방안. <젠더리뷰>, 35, 14-21. |
27. | Alburez-Gutierrez, D., Mason, C., & Zagheni, E. (2021). The sandwich generation revisited: Global demographic drivers of care time demands. Population and Development Review, 47(4), 997-1023. |
28. | Ansari-Thomas, Z. (2024). Sandwich caregiving and paid work: Differences by caregiving intensity and women’s life stage. Population Research and Policy Review, 43(1), 8. |
29. | Falkingham, J., Evandrou, M., Qin, M., & Vlachantoni, A. (2020). Informal care provision across multiple generations in China. Ageing and Society, 40(9), 1978-2005. |
30. | Fraser, N. (2016). Contradictions of capital and care. New Left Review, 100, 99-117. |
31. | Greenwood, N., & Smith, R. (2016). The oldest carers: A narrative review and synthesis of the experiences of carers aged over 75 years. Maturitas, 94, 161-172. |
32. | Jang, S. J., Song, D., Baek, K., & Zippay, A. (2021). Double child and elder care responsibilities and emotional exhaustion of an older sandwiched generation: The mediating effect of self-care. International Social Work, 64(4), 611-624. |
33. | Kittay, E. (1999). Lover’s labor: Essays in women, equality and dependency. New York, NY: Routledge. |
34. | Lincoln, Y. S., & Guba, E. G. (1985). Naturalistic Inquiry. Thousand Oaks, CA: Sage. |
35. | Nussbaum, M. (2002). Capabilities and social justice. International Studies Review, 4(2), 123-135. |
36. | Pashazade, H., Abolfathi Momtaz, Y., Abdi, K., & Maarefvand, M. (2023). Sandwich generation caregivers’ problems: A narrative review. Educational Gerontology, 50(5), 353-366. |
37. | Ronald J. B., & Lisa M. C. (2017). The sandwich generation: Caring for oneself and others at home and at work. Northampton: Edward Elgar. |
38. | Rubin, R. M., & White-Means, S. I. (2009). Informal caregiving: Dilemmas of sandwiched caregivers. Journal of Family and Economic Issues, 30, 252-267. |
39. | Schütze, F. (1984). Kognitive figuren des autobiographischen stegreiferzählens. In, Kohli, M. & Robert, G. (Eds.). Biographie und Soziale Wirklichkeit, Stuttgart, Land Baden-Württemberg: Metzler. |
40. | Spillman, B., & Pezzin, L. (2000). Potential and active family caregivers: Changing networks and the sandwich generation. The Milbank Quarterly, 78(3), 347-373. |
41. | Steiner, A. M., & Fletcher, P. C. (2017). Sandwich generation caregiving: A complex and dynamic role. Journal of Adult Development, 24, 133-143. |
42. | Szczepanik, R., & S. Siebert (2016). The triple bind of narration: Fritz Schütze’s biographical interview in prison research and beyond. Sociology, 50(2), 285-300. |
43. | Tronto, J. C. (2013). Caring democracy: Markets, equality, and justice. 김희강ㆍ나상원 역 (2024). <돌봄민주주의(제3판)>. 서울: 박영사. |
44. | Vlachantoni, A., Evandrou, M., Falkingham, J., & Gomez-Leon, M. (2020). Caught in the middle in mid-life: Provision of care across multiple generations. Ageing and Society, 40(7), 1490-1510. |
45. | Zangenehpour, A., Abedi, P., Javadnoori, M., & Malehi, A. S. (2021). Health-related quality of life in sandwich generation Iranian women. Family Medicine and Primary Care Review, 23(2), 239-2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