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드라마를 통해 본 중국 사회의 감정구조
초록
이 논문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제작된 중국 TV 드라마를 통해 중국 사회의 감정 구조의 변화를 탐구한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겪은 급속한 사회·경제적 전환은 제도적 체계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가치관, 생활양식, 그리고 감정적 지향에도 심대한 변화를 초래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변화가 동시대 드라마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분석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감정 구조’ 개념을 이론적 토대로 삼아, 「갈망」, 「뉴욕의 북경인」, 「분투」, 「달팽이 집」, 「겨우, 서른」, 「나쁜 아이들」 등 각 시기를 대표하는 여섯 편의 드라마를 분석했다. 1990년대 드라마는 전환기 사회의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 억압과 적응의 윤리를 표현하고 있다. 2000년대에 이르면 감정 구조는 개인적 열망과 자기계발 이데올로기 사이의 긴장 속에서 형성된다. 2010년대에는 실패, 유예, 단절의 서사를 통해 감정이 재현되며, 이는 주체성의 파편화와 공동체적 유대의 불안정을 드러낸다. 이러한 중국의 30년 동안의 격변기 속 TV 드라마들은 개인의 심리 변화뿐만 아니라, 집단적 윤리와 정치적 감수성, 그리고 헤게모니적 협상의 과정을 매개하는 특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Abstract
This study evaluated the transformation of emotional structures in Chinese society through the lens of television dramas produced from the 1990s to the 2010s. Amid China’s rapid socio-economic transitions following the Reform and Opening-Up policy, profound shifts in institutional systems, values, lifestyles, and emotional orientations occured. This study examined how such changes are reflected and refracted in the narrative and affective dimensions of contemporary TV dramas.
Grounded in Raymond Williams’ concept of the “structure of feeling,” this research analyzed six representative dramas, Yearning, Beijingers in New York, Struggle, Dwelling Narrowness, Nothing But Thirty, and The Bad Kids. Through integrative and paradigmatic analysis, including the application of Greimas’ actantial model, this study explored how emotions are narratively structured and ethically mobilized across different periods.
Dramas from the 1990s express the ethics of suppression and adjustment, managing social anxiety during the transitional era. In the 2000s, emotional structures were marked by the tension between individual aspiration and the ideology of self-development. By the 2010s, emotions were narrated through failure, deferral, and rupture, revealing the fragmentation of subjectivity and the instability of communal bonds.
This research argues that emotions in TV dramas are not merely expressive or psychological but act as social scripts that mediate collective ethics, political sensibilities, and hegemonic negotiations. As cultural texts, dramas function as affective sensors of their timescapturing and organizing the shifting structures of feeling within Chinese society. Through the emotional narratives of drama, this dissertation offers a critical lens to map the ethical and political textures of China’s contemporary transformation.
Keywords:
Structure of Feeling, Chinese TV Dramas, Social Transformation, Cultural Politics키워드:
감정 구조, 중국 TV 드라마, 중국 사회 변화, 문화 정치1. 서 론
1990년대 이후 중국 사회는 개혁개방의 심화와 함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급격한 변화를 경험해 왔다. 시장경제 체제의 확립, 개인화의 진전, 소비문화의 확산은 사회 구조뿐 아니라 개인의 삶의 방식과 감정 경험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변화는 제도와 담론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어떤 방식으로 삶을 감내하고 선택하는지라는 감정의 차원에서 포착될 필요가 있다.
중국 사회의 이러한 변화는 문화 텍스트, 특히 TV 드라마를 통해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TV 드라마는 국가 주도의 문화 생산 체제 속에서 제작되면서도, 동시에 대중의 일상적 경험과 감정에 밀착된 서사를 구성해 왔다. 드라마는 정치적 사건이나 제도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개인의 관계와 삶의 선택, 갈등과 화해의 감정을 통해 사회 변화가 체감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존의 중국 드라마 연구는 드라마를 주로 이데올로기적 재현, 서사 구조, 산업 정책, 혹은 장르 변동의 차원에서 분석해 왔으며, 사회 변화가 개인의 감정 경험에 어떻게 각인되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였다. 특히 사회 전환기 이후 중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불안, 성취 욕망, 피로, 체념과 같은 감정들이 어떠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장기적 시계열 속에서 분석한 연구는 많지 않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중국 사회 변화의 핵심을 제도나 담론이 아니라, 감정 경험의 구조적 변화에서 포착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회 변화는 사람들의 감정을 통해 체험되고 의미화되며, 감정은 개인의 내면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관계와 문화 텍스트를 통해 공유된다. 따라서 중국 TV 드라마에 재현된 감정을 분석하는 것은, 사회 전환기 중국 사회의 내면적 변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2. 중국 드라마와 사회변화
1) 기존 연구에 대한 검토
중국 드라마에 대한 연구는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드라마를 국가 이데올로기와 통치 담론의 재현물로 분석하는 연구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주선율 드라마를 중심으로, 드라마가 사회주의 가치와 국가 정체성을 어떻게 서사화하고 정당화하는지를 검토해 왔다. 이 접근은 중국 드라마의 제도적 성격과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둘째는 산업과 제도 변화에 주목한 연구들이다. 방송 제도의 개편, 시장화 이후 제작 환경의 변화, 민간 자본의 유입, 시청률 경쟁과 장르 다양화 등의 측면에서 중국 드라마 산업의 변동을 분석하는 연구가 축적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들은 드라마가 국가 통제와 시장 논리 사이에서 형성되는 복합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셋째는 서사와 장르를 중심으로 한 텍스트 분석 연구이다. 가족 드라마, 청춘 드라마, 도시 드라마, 범죄 서사 등 다양한 장르를 중심으로 인물 유형, 플롯 구성, 가치관의 변화를 분석하는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이 연구들은 중국 드라마가 시대별로 어떤 삶의 모델과 사회적 규범을 제시해 왔는지를 밝히고 있다(장빙줸, 2004; 장빈, 2008; 리우이홍, 2011; 샤웨이보, 2012; 백문영, 2014; 제우, 2013; 강명구, 2014; 김미란, 2003; 니웨이, 2013; 저우쉬린, 2014).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대체로 드라마의 메시지, 가치, 서사 유형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했으며, 드라마에 재현된 감정이 사회 변화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분석은 부차적으로 다루어졌다. 감정은 종종 인물 성격이나 서사 장치의 일부로 취급되었을 뿐, 분석의 중심 개념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감정을 사회적 분석의 중심에 놓은 연구들은 주로 문화연구와 문화사회학의 맥락에서 발전해 왔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감정 구조(structure of feeling) 개념은 사회 변화 과정에서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지만 집단적으로 공유되는 정서적 경험을 포착하는 데 유용한 이론적 틀로 제시되어 왔다. 이 개념은 문학과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와 같은 문화 텍스트를 통해 사회의 내면적 변화를 읽어내는 분석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김숙현 외, 2013; 김수아, 2014; 오창학, 2018; 무송평, 2024; 치스위, 2024).
드라마 연구에서 감정 구조 개념은 특정 시대의 정서적 분위기,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의 유형, 감정이 서사 속에서 조직되는 방식을 분석하는 데 활용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들은 감정이 개인의 심리 상태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공유되는 경험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TV 드라마는 감정 구조를 분석하는 데 적합한 문화 텍스트이다. 드라마는 개인의 일상과 관계, 갈등과 선택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하며, 사회 변화가 개인의 삶에 어떤 감정적 형태로 침투하는지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특히 드라마는 명시적인 정치 담론보다 더 유연한 방식으로 감정을 조직하고,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적 언어를 제공한다.
드라마에 재현된 감정은 단순히 인물의 성격이나 서사 장치의 일부가 아니라, 특정 시대의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감정 구조의 표현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감정 유형, 감정의 억제와 표출 방식, 감정이 윤리적 선택과 연결되는 방식은 해당 시기의 감정 구조를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정영희, 2005). 이러한 점에서 TV 드라마는 사회 변화의 결과를 감정의 차원에서 기록하는 문화적 매체로 기능한다. 드라마를 통해 감정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제도나 담론 분석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사회 변화의 내면적 층위를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감정구조 개념을 중국 드라마 연구에 체계적으로 적용한 연구는 아직 제한적이다. 일부 연구가 특정 작품이나 시기를 중심으로 감정 표현을 논의하였으나, 사회 전환기 이후 중국 드라마를 장기적 흐름 속에서 분석하며 감정구조의 변화를 추적한 연구는 드물다. 특히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를 관통하는 감정 변화의 연속성과 축적 과정을 종합적으로 다룬 연구는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다. 이러한 연구사적 공백은 중국 드라마를 사회 변화의 감정적 기록으로 읽어낼 필요성을 제기한다. 감정 구조에 대한 분석은 기존의 이데올로기 중심 혹은 산업 중심 연구를 보완하며, 중국 사회 전환기의 경험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2) 사회 변화에 대한 중국에서의 논의
개인화는 전통적 공동체와 집단의 구속이 약화되고, 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기획하고 책임지는 주체로 전환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중국 사회에서의 개인화는 서구 사회의 개인화와 유사한 측면을 지니면서도, 국가 주도의 제도 변화와 밀접하게 결합된 특수한 양상을 보인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에서 개인화는 시장경제 도입과 함께 가속화되었다. 단위(单位) 체제의 약화, 평생 고용의 해체, 주거·교육·의료의 시장화는 개인을 집단의 보호로부터 분리시키고, 스스로 선택하고 경쟁해야 하는 주체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는 확대되었지만, 동시에 위험과 불확실성 역시 개인에게 귀속되었다.
중국식 개인화는 자율적인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제도 변화로 촉발된 측면이 강하다. 개인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장 경쟁의 장으로 편입되었으며, 생존과 성공을 위해 감정적으로도 자기관리와 조정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조건은 개인화가 감정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중국 사회의 개인화 과정은 새로운 사회 집단의 형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농민공과 ‘80후’ 세대이다.
농민공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여 노동시장에 편입된 집단으로, 전통적 농촌 공동체와 도시 시민 사회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중간적 위치에 놓인다. 농민공은 제도적 보호가 약한 상태에서 노동시장 경쟁에 노출되었으며, 생존과 이동을 반복하는 삶 속에서 불안정한 감정 경험을 축적하게 되었다. 이들의 감정은 집단적 저항보다는 개인적 적응과 인내의 방향으로 조직되는 경향을 보인다(Yan, 2010).
80후 세대는 개혁개방 이후 성장한 첫 세대로, 개인화와 시장화의 조건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한 집단이다. 이들은 교육과 소비, 취업 경쟁을 통해 개인의 성취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형성하였으며, 동시에 구조적 제약 속에서 좌절과 피로를 경험한다. 이 세대의 감정 경험은 이후 중국 사회 전반의 감정 구조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3) 드라마 산업과 ‘주선율’ 드라마
중국 TV 드라마 산업은 국가 주도의 문화 생산 체제 속에서 발전해 왔다. 초기에는 정치적 선전과 교육 기능이 강조되었으며, 드라마는 사회주의 가치와 집단 윤리를 전달하는 매체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방송 산업의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드라마 제작 환경은 점차 상업성과 대중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1990년대 이후 민간 자본의 유입과 제작 주체의 다양화는 드라마 장르의 확장을 가져왔고, 가족 드라마, 도시 드라마, 청춘 드라마 등 다양한 서사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드라마가 국가 담론뿐 아니라 대중의 일상적 경험과 감정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조건을 형성하였다.
‘주선율’ 드라마는 중국 사회에서 국가의 핵심 가치와 이데올로기를 중심 서사로 삼는 드라마를 가리킨다. 애국주의, 집단주의, 사회주의 가치 등을 강조하며, 국가 정체성과 사회 질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주선율 드라마는 단일한 형식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시대적 조건에 따라 내용과 표현 방식이 변화해 왔다. 특히 사회 전환기 이후 주선율 드라마는 대중의 감정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을 경우 공감과 수용을 얻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주선율 드라마는 점차 감정 중심 서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국가 담론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개인의 삶과 감정,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함으로써 이데올로기를 감정적으로 매개하는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주선율 드라마는 국가 가치와 대중의 일상적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며, 감정을 통해 사회적 동의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 구조는 국가 담론을 자연화하는 수단이자, 동시에 사회 변화의 긴장을 드러내는 매개로 기능한다.
3. 분석 대상과 방법
중국 사회 전환기 이후 TV 드라마는 사회 구조의 변화가 개인의 삶과 감정에 어떠한 방식으로 작용했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문화 텍스트이다. 정치·경제 제도의 변화, 사회문화적 가치의 전환, 개인화의 심화는 제도적 차원뿐 아니라 감정 경험의 차원에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체감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 TV 드라마에 재현된 감정은 단순한 서사적 장치가 아니라, 사회 변화가 개인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의미화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분석 대상이 된다.
이 연구는 중국 사회 전환기 이후 드라마에 재현된 감정을 개인의 심리나 정서 표현으로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구조화된 감정 경험, 즉 감정 구조의 차원에서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를 통해 사회 변화와 감정 경험 사이의 관계를 장기적 흐름 속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연구 문제를 설정하였다. 첫째, 1990년대 이후 중국 TV 드라마에는 각 시기별로 어떠한 감정 구조가 재현되고 있는가. 둘째, 이러한 감정 구조는 중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형성되었는가. 셋째, 국가 주도의 문화 생산 체제 속에서 드라마는 개인의 감정 경험을 어떠한 방식으로 조직하고 조정해 왔는가. 이러한 연구문제는 중국 사회 전환기의 내면적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질문으로 기능한다.
분석 대상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각 시기 사회 변화의 특징이 명확하게 반영되어, 방영 당시 사회적 반향과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드라마들로 선정하였다. 1990년대 분석 대상으로는 <갈망>과 <뉴욕의 북경인>을 선정하였다. 이 두 작품은 문화대혁명 이후의 상처와 사회 전환기 초기 개인이 느낀 불안과 정체성 혼란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드라마로 평가된다. 2000년대 분석 대상은 <분투>와 <달팽이 집>을 선정했는데, 이 작품들은 중산층의 부상과 소비문화 확산 속에서 개인의 성공 욕망과 구조적 제약이 감정적으로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2010년대는 <겨우, 서른>과 <나쁜 아이들>을 선정했는데, 이 작품들은 성취 담론에 대한 피로감, 불안과 체념의 정서를 중심으로 현대 중국 사회의 감정 구조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작품 선정은 특정 장르나 형식에 국한되기보다는, 각 시기의 대표적인 사회적 감정 경험을 비교·분석하기 위한 기준에 따른 것이다. 이를 통해 드라마 텍스트에 재현된 감정 구조의 변화 양상을 시기별로 검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이 연구는 질적 텍스트 분석을 중심으로 중국 TV 드라마에 재현된 감정 구조를 분석한다. 서사와 인물 관계, 감정의 억제와 표출 방식 속에서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의 유형, 감정이 서사 전개 속에서 배치되는 방식, 감정이 윤리적 선택이나 사회적 관계와 연결되는 양상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또한 개별 작품에 대한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시기별 비교를 통해 감정 구조의 변화와 연속성을 검토하였다. 동일한 사회 조건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감정 양상과 시기 변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거나 강화되는 감정 유형을 함께 분석함으로써, 중국 사회 전환기 이후 감정 구조의 장기적 변화를 조망하고자 하였다.
4. 분석 결과
1) 1990년대의 감정 구조
1990년대는 중국 사회 전환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기로, 정치·경제 제도의 변화가 사회 전반에 깊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1989년 이후 중국 사회는 정치적 안정과 통제를 우선하는 국면에 놓였으며, 이로 인해 정치적 표현은 위축되고 사회 전반에는 조심스러움과 긴장감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는 개혁개방 노선을 재확인하고 시장 중심 경제 운영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공식 노선으로 채택되면서, 시장 논리는 제도적 차원에서 정당성을 획득하였다. 국유기업 개혁과 민간·외자 기업의 확대는 경제 구조를 빠르게 변화시켰고, 성과와 효율을 중시하는 경제 운영 방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제성장은 중요한 국가 목표이자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로 작용했고, 이념은 중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변화는 개인에게 새로운 기회와 함께 불확실성과 불안을 동반하였다. 국유기업 구조조정과 고용 체계 변화는 안정적 생계를 위협하였고, 개인은 점차 자신의 생존과 삶의 방향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정치·경제적 변화는 이후 사회문화적 차원의 변화와 감정 구조 형성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정치·경제 제도의 변화는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의 전환을 초래하였다. 계획경제 체제 속에서 집단과 단위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사회 질서는 점차 해체되었으며, 개인의 선택과 경쟁이 강조되는 사회 환경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일상생활, 가족 관계, 인간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개인의 감정 경험을 변화시켰다. 1990년대 중국 사회에서는 소비문화의 확산과 도시화의 가속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서구적 소비문화와 새로운 생활 양식이 빠르게 유입되었고, 이는 기존 가치 체계와의 충돌을 야기하였다. 동시에 대규모 인구 이동과 도시 집중 현상은 개인의 사회적 소속감을 약화시키고, 삶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 시기 개인은 집단의 보호 속에서 역할을 수행하던 존재에서, 스스로 삶의 경로를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주체로 변화하였다. 가족과 공동체의 의미 역시 재편되었으며, 결혼과 이혼, 성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는 감정 갈등과 긴장을 심화시켰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변화는 개인화의 진전을 의미하는 동시에, 감정적으로는 불안, 혼란, 상실감이 누적되는 조건을 형성하였다.
1990년대 중국 TV 드라마는 이러한 사회 전환기의 변화가 개인의 삶과 감정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적 장으로 기능하였다. 이 시기 드라마는 정치적 사건이나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개인의 일상과 가족 관계, 사랑과 희생의 감정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함으로써 사회 변화가 감정의 차원에서 경험되는 방식을 드러낸다. 1990년대 드라마에 나타난 감정은 급격한 변화에 대한 분노나 저항보다는, 고통을 감내하고 관계를 유지하려는 인내와 수용의 정서로 조직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사회 전환기 초기 중국 사회에서 개인이 변화된 조건에 적응하며 감정적으로 균형을 찾으려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드라마 <갈망(渴望)>
<갈망>은 문화대혁명 시기와 그 이후를 배경으로, 정치적 격변이 개인의 삶과 가족 관계에 남긴 상처를 일상적 감정의 차원에서 재현한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고발하기보다는, 개인의 관계와 선택을 중심으로 고통과 갈등을 서사화한다. <갈망>에서 인물들은 반복적으로 개인적 욕망과 가족 및 공동체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며, 감정의 즉각적인 표출보다는 이를 억제하고 절제하는 선택을 한다. 희생, 인내, 책임과 같은 감정은 개인의 고통을 숨기기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관계를 유지하고 삶을 지속하기 위한 감정적 전략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감정 수행은 문화대혁명 이후 불안정한 사회 환경 속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윤리적 태도를 반영한다.
작품 속에서 감정은 인물의 내면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가족 관계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고통은 분노나 저항으로 전환되기보다는, 감내와 수용의 정서로 조직되며, 이를 통해 과거의 상처는 감정적으로 조정되고 봉합된다.
■드라마 <뉴욕의 북경인(北京人在纽约)>
<뉴욕의 북경인>은 개혁개방 이후 해외로 이주한 중국인의 삶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감정적 불안과 정체성 혼란을 다룬다. 작품은 중국 사회를 떠나 미국이라는 낯선 공간에 놓인 개인이 경험하는 소외, 좌절, 향수의 감정을 주요 서사 요소로 제시한다.
이 드라마에서 감정은 안정된 소속감의 상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인물들은 경제적 성공과 자율성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기존 가치 체계와의 단절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한다. 감정은 개인의 선택을 통해 해결되기보다는, 반복적인 실패와 갈등 속에서 누적되며, 관계와 자아를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뉴욕의 북경인>에 나타난 감정 구조는 가족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윤리적 감정이 더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보여준다. 감정은 더 이상 회복과 봉합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의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지점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갈망>과 대비된다.
1990년대 중국 사회는 문화대혁명 이후의 상처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경제와 개인화가 급속히 진행된 전환기였다. 이 시기의 감정 구조는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불안이 중첩된 조건 속에서, 개인이 새로운 사회 질서에 적응하며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재구성하려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990년대 드라마에 재현된 감정은 분노나 저항보다는 인내, 수용, 도덕적 책임의 정서로 조직되었으며, 이는 사회 전환기 초기 개인들이 선택한 감정적 대응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감정 구조는 이후 2000년대의 성공과 욕망 중심의 감정 구조로 이행하는 출발점으로서, 중국 사회 감정 변화의 중요한 기준점을 형성한다.
2) 2000년대의 감정 구조
2000년대 중국은 고속 성장 국면이 안정 단계로 진입하면서, 정치·경제적 운영의 핵심 목표가 단순한 성장 확대에서 사회적 안정과 지속 가능성으로 이동한 시기이다. 개혁개방 이후 누적된 지역 격차, 계층 분화, 빈부 격차, 도시와 농촌 간 불균형은 사회적 긴장을 심화시켰으며, 이러한 문제는 성장 중심 발전 전략의 한계를 드러내는 요인으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중국 정부는 ‘조화로운 사회(和谐社会)’와 ‘과학발전관’이라는 새로운 통치 담론을 제시하였다. 조화로운 사회는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안정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하였으며, 과학발전관은 양적 성장보다는 균형과 지속 가능성을 강조하는 발전 노선으로 제시되었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지속되어 온 효율과 경쟁 중심의 논리를 일정 부분 조정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기조는 시장경제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수정하기보다는, 이미 심화된 시장 논리 위에서 사회적 부작용을 관리하려는 성격을 띠었다. 개인은 여전히 경쟁과 성취의 주체로 호명되었으며, 성공 여부는 개인의 능력과 선택의 결과로 귀속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이로 인해 2000년대 중국 사회는 제도적으로는 안정과 조화를 강조하면서도, 개인 차원에서는 성취에 대한 압박과 경쟁이 지속되는 이중적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2000년대 중국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중산층의 본격적인 부상과 소비문화의 확산이다. 도시를 중심으로 소득 수준이 상승하면서 주택 소유, 자동차 구매, 해외여행, 교육 투자 등이 중요한 삶의 목표로 자리 잡았고, 소비는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사회적 지위와 성공을 가시화하는 지표로 기능하게 되었다.
중산층의 확산은 생활 방식과 가치관의 변화를 동반하였다. 안정적인 직업과 핵가족 중심의 생활, 자녀 교육에 대한 집중적 투자, 주거공간에 대한 강한 집착은 2000년대 도시 중산층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에게 이전보다 명확한 삶의 목표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좌절과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소비문화의 확산은 개인의 감정 경험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소비는 욕망의 충족이자 성취의 증표로 기능하였지만, 동시에 지속적인 비교와 경쟁을 낳았다. 개인은 더 나은 주거 환경,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도록 요구받았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감정은 만족과 불안, 희망과 좌절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조직되었다. 2000년대의 사회문화적 변화는 감정이 성공의 지표와 밀접하게 결합되는 조건을 형성하였다.
2000년대 중국 TV 드라마는 중산층의 부상과 소비문화의 확산이라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개인의 성공 욕망과 그에 수반되는 감정적 긴장을 집중적으로 재현한다. 이 시기 드라마는 더 이상 과거의 상처나 회복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삶 속에서 성취와 실패가 감정적으로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중심 서사로 삼는다. 2000년대 드라마에 나타난 감정은 적극적이고 전진적인 성격을 띠는 동시에, 구조적 제약 속에서 반복적으로 좌절되는 양상을 보인다. 감정은 개인의 노력과 선택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그 한계를 체감하게 만드는 지점에서 불안과 피로로 전환된다.
■드라마 <분투(奋斗)>
<분투>는 개혁개방 이후 성장한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도시에서의 성공과 자아실현을 향한 열망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통해 더 나은 삶을 획득할 수 있다는 신념을 공유하며, 직업 선택, 연애, 결혼, 주거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도전에 직면한다. 이 드라마에서 감정은 희망, 열정, 자신감과 같은 적극적 정서로 출발한다. 인물들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더라도 이를 일시적인 과정으로 인식하며, 끊임없이 재도전을 시도한다. 이러한 감정 구조는 2000년대 중국 사회에서 개인에게 요구된 자기계발과 성공 지향적 태도를 반영한다.
그러나 <분투>에 재현된 감정은 낙관적 서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성공을 향한 열망은 지속적인 경쟁과 비교 속에서 불안을 동반하며, 개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소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가 감정적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근본적인 체제 비판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개인의 선택과 태도 변화를 통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감정을 조직한다. 이로써 <분투>는 성공에 대한 열망을 정당화하면서도, 그 부담을 개인의 감정 관리 영역으로 귀속시키는 특징을 보인다.
■드라마 <달팽이 집(蜗居)>
<달팽이 집>은 2000년대 중국 사회에서 주거 문제와 계층 격차가 개인의 삶과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다룬 드라마이다. 작품은 주택 구매를 둘러싼 경쟁과 압박이 개인의 관계, 도덕성, 정체성에 어떠한 균열을 가져오는지를 감정의 차원에서 보여준다. 이 드라마에서 감정은 희망과 열망으로 시작되지만, 점차 불안, 좌절, 체념의 정서로 전환된다. 인물들은 안정된 삶을 위해 주택 소유를 목표로 삼지만, 급등하는 집값과 제한된 기회 속에서 반복적인 좌절을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은 더 이상 성취를 향한 동력이 아니라, 구조적 제약을 체감하게 만드는 매개로 작동한다.
<달팽이 집>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 조건을 감정적으로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분투>와 대비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윤리적 갈등과 현실적 선택 사이에서 감정을 소모하며, 성공과 안정이 제한된 자원으로 배분되는 사회 구조 속에 귀속되어 있음을 경험한다. 이로써 감정은 개인의 실패를 넘어, 사회적 조건의 압력을 드러내는 지점으로 기능한다.
2000년대 중국 사회의 감정 구조는 성공을 향한 강한 열망과 그 열망이 구조적 조건에 의해 제약되는 현실 사이의 긴장 속에서 형성되었다. 정치·경제적으로는 안정과 조화를 강조하는 담론이 제시되었으나, 개인의 삶에서는 경쟁과 성취 압박이 지속되었고, 이는 감정적으로 불안과 피로를 누적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2000년대 드라마에 재현된 감정은 개인의 노력과 선택을 강조하면서도, 그 한계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킨다. <분투>는 성공에 대한 열망과 자기계발의 감정을 전면에 배치한 반면, <달팽이 집>은 그러한 열망이 구조적 제약 속에서 좌절되는 과정을 감정적으로 드러낸다. 이 두 작품은 2000년대 중국 사회에서 감정이 성공의 동력이자 동시에 구조적 귀속을 인식하게 만드는 매개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감정 구조는 이후 2010년대에 나타나는 불안, 피로, 체념의 정서로 이행하는 중요한 전 단계로 기능한다.
3) 2010년대의 감정 구조
2010년대 중국 사회는 고속 성장 국면 이후 나타난 구조적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된 시기이다. 경제 성장의 둔화, 계층 간 격차의 고착, 청년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 전반에 누적된 불안을 증폭시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 정부는 ‘중국몽’과 ‘공동부유’라는 새로운 정치·경제 담론을 제시하며 사회적 통합과 장기적 안정의 비전을 강조하였다. ‘중국몽’은 국가 차원의 부흥과 개인의 삶의 향상을 결합한 담론으로 제시되었으며, 개인의 노력과 헌신이 국가 발전과 연결된다는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동시에 ‘공동부유’는 과도한 격차를 완화하고 균형 잡힌 분배를 실현하려는 정책적 목표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담론은 사회적 불안을 관리하고 체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이미 심화된 경쟁 구조와 성취 압박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보다는 개인에게 여전히 자기관리와 성취를 요구하는 조건 위에서 작동하였다. 그 결과 2010년대 중국 사회는 제도적으로는 안정과 희망을 강조하면서도, 개인의 삶에서는 불안과 피로가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양상을 보였다.
2010년대 중국 사회의 감정 구조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는 소비문화의 심화와 그에 따른 감정적 압박이다. 소비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정상성의 기준으로 기능하였고, 개인은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성취를 통해 소비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감정은 성취의 동력이기보다는 과도한 압박을 견디기 위한 조절 대상이 되었다.
① 996 노동체계와 피로한 성취 담론
2010년대 중국 사회에서는 ‘996’으로 대표되는 장시간 노동 체계가 확산되며, 노동과 삶의 경계가 급격히 흐려졌다. 성공은 헌신과 희생의 결과로 제시되었고, 개인은 성취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지속적으로 소모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성취 담론은 점차 피로와 무력감으로 전환되었으며, 감정은 열정이나 희망보다는 소진과 탈진의 정서로 조직되었다.
② ‘탕핑(躺平)’과 감정적 비순응
이러한 성취 압박에 대한 반응으로 등장한 것이 ‘탕핑’ 담론이다. 탕핑은 경쟁과 성취의 논리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삶을 선택하려는 태도로, 적극적인 저항보다는 감정적 거리두기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는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아니라, 감정적 에너지를 더 이상 투입하지 않겠다는 비순응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③ ‘네이쥐안(内卷)’과 자기소모의 문화
‘네이쥐안’은 경쟁이 과잉된 상태에서 성과가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상황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2010년대 중국 사회에서 개인의 감정 경험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개인은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 결과가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자기소모를 경험하며, 감정은 좌절과 냉소의 방향으로 축적된다.
④ ‘런(润)’과 생존의 정동 탈경계화
‘런’은 기존의 사회적 경로를 이탈하여 새로운 공간이나 삶의 조건을 모색하려는 감정적 선택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이주나 도피가 아니라, 생존 가능성을 찾기 위한 감정적 탈경계의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감정은 더 이상 특정 사회 질서 안에서 안정적으로 정착되지 않고, 이동과 유예의 상태로 남는다.
2010년대 중국 TV 드라마는 이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불안, 피로, 체념의 감정을 전면에 배치한다. 이 시기 드라마는 성공과 성취의 서사보다는 성취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는 불안과 삶의 불확실성을 감정적으로 재현하는 데 초점을 둔다.
■드라마 <겨우, 서른(三十而已)>
<겨우, 서른>은 30대 여성들의 삶을 중심으로, 경력, 결혼, 가족, 자기실현을 둘러싼 감정적 갈등을 다룬 드라마이다. 작품은 안정된 삶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개인이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받는 조건을 감정의 차원에서 보여준다. 이 드라마에서 감정은 성취를 향한 희망과 실패에 대한 불안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조직된다. 인물들은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정적 소진을 경험하며,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균형을 모색한다. 감정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확신을 제공하지 않으며, 현재를 버티기 위한 도구로 기능한다.
■드라마 <나쁜 아이들(隐秘的角落)>
<나쁜 아이들>은 표면적으로는 범죄 서사를 취하지만, 중국 사회의 불안과 불신이 일상생활 속에 어떻게 침투했는지를 감정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드라마는 가족, 보호, 도덕성이라는 가치가 더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조건 속에서, 인물들이 경험하는 공포와 불안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에서 감정은 선과 악의 구분보다는, 불확실성과 위기의 감각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인물들은 신뢰할 수 있는 보호 장치를 상실한 상태에서 감정적으로 고립되며, 감정은 안전을 회복하기보다는 위협을 인식하는 감각으로 기능한다. 이는 2010년대 사회 전반에 확산된 불안 정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010년대 중국 사회의 감정 구조는 지속적인 성취 압박과 구조적 한계 속에서 형성된 불안과 피로의 정서가 핵심을 이룬다. 개인은 여전히 자기실현을 추구하지만 그 과정은 희망보다는 체념과 조정의 감정으로 채워진다. 감정은 미래를 향한 동력이 아니라 현재를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자원으로 전환된다. 2010년대 드라마에 재현된 감정은 성공이나 회복보다는 불확실성과 위기를 전면에 드러내며, 개인이 감정적으로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감정 구조는 1990년대의 회복, 2000년대의 성취와 대비되며, 중국 사회 감정 변화의 최신 국면을 형성한다.
5. 결 론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중국 TV 드라마는 각 시기 중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화가 개인의 삶과 감정 경험에 어떠한 방식으로 각인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세 시기에 걸쳐 나타난 감정 구조는 단절적으로 변화하기보다는, 이전 시기의 감정이 다음 시기의 감정으로 이행·축적되는 연속적 흐름 속에서 형성되었다.
1990년대의 감정 구조는 문화대혁명 이후의 상처와 사회 전환기 초기의 불안이 중첩된 상태에서, 인내와 수용, 도덕적 책임의 감정으로 조직되었다. 이 시기 드라마는 과거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고발하기보다는 가족과 개인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감정적으로 조정하고 회복하려는 정서를 중심에 놓았다. 감정은 사회 변화에 대한 저항보다는 변화된 조건 속에서 삶을 지속하기 위한 정서적 기반으로 기능하였다.
2000년대에 이르러 감정구조는 성공과 성취를 향한 열망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중산층의 부상과 소비문화의 확산 속에서 개인은 자기계발과 성취를 통해 사회적 위치를 확보해야 하는 주체로 호명되었으며, 감정은 희망과 자신감, 불안과 좌절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조직되었다. 드라마는 개인의 노력과 선택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러한 노력이 구조적 조건에 의해 제한되는 현실을 감정적으로 가시화하였다.
2010년대의 감정구조는 성취 담론의 피로와 불안, 체념의 정서가 전면화되는 국면으로 나타난다. 장시간 노동, 과잉 경쟁, 불안정한 미래 전망 속에서 감정은 더 이상 상승의 동력이 아니라 현재를 견디기 위한 최소한의 자원으로 전환된다. 이 시기 드라마는 성공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는 불안과 삶의 불확실성을 중심으로 개인이 감정적으로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모습을 재현한다.
세 시기를 종합해 보면, 중국 사회 전환기 이후 TV 드라마에 재현된 감정구조는 ‘회복 → 성취 → 불안과 체념’이라는 방향성을 띠며 변화해 왔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정서의 교체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변화가 개인의 감정 경험에 누적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1990년대의 감정이 과거의 상처를 감내하고 도덕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정서였다면, 2000년대의 감정은 현재의 삶에서 성공을 획득하고자 하는 적극적 열망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은 2010년대에 이르러 구조적 한계와 반복적 실패를 경험하면서 불안과 피로, 체념의 정서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은 사회 변화에 대한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개인이 사회 구조와 관계 맺는 방식 그 자체로 기능한다.
TV 드라마는 이러한 감정 구조의 변화를 가장 밀도 있게 포착하는 문화 텍스트로 작동한다. 드라마는 국가의 통치 담론이나 공식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반복하기보다는, 개인의 일상과 관계, 감정 수행을 통해 사회 변화의 정서적 결과를 가시화한다. 이를 통해 드라마는 사회 구조와 개인의 삶 사이를 매개하는 감정의 장으로 기능하며, 사회 변화가 어떻게 ‘느껴졌는가’를 드러내는 중요한 문화적 기록이 된다. 종합적으로 볼 때, 중국 사회 전환기 이후의 감정 구조는 개인화와 시장화가 심화되는 과정 속에서 점차 내면화되고 사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감정은 집단적 저항이나 공적 언어로 전환되기보다는, 개인의 삶을 관리하고 조정하는 방식으로 조직되며, 이는 현대 중국 사회의 감정적 조건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단서가 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3 충남대 자체연구비의 지원을 받았음.
이 논문은 제1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축약, 수정 및 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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