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호조무사의 노동 경험과 감정노동: 대전광역시 간호조무사 사례를 중심으로
초록
본 연구는 보건의료현장에서 간호조무사가 경험하는 감정노동의 양상과 원인 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대전광역시 소재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조무사 50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자료를 분석했으며, 의료기관의 성격에 따라 모집한 5개의 그룹당 4명씩, 총 20명을 대상으로 FGI를 진행하였다. 분석 결과 1년 단위 쪼개기 계약, 저임금, 고강도 노동, 노동의 격하(degradation)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으나, 의료기관 종별 상이한 노동환경과 낮은 조직화 수준과 같은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노동조건 개선이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이러한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간호조무사는 환자 및 보호자와의 관계에서 높은 수준의 감정 관리를 요구받았으며, 이는 이들의 감정노동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었다.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과 그로 인한 정서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간호조무사들은 조직 내 공식적 지원제도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결국 간호조무사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터의 근본적인 구조개선과 함께 노동자들 간 지속적 교류를 통해 서로의 문제를 공유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조직 구성이 필요하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patterns and structural determinants of emotional labor experienced by nursing assistants in healthcare settings. It analyzes survey data from 509 nursing assistants employed in hospitals in Daejeon Metropolitan City and complements the survey with focus group interviews with 20 participants organized into five groups by type of medical institution. The analysis shows that nursing assistants commonly face serial one-year contracts, low wages, high work intensity, and the degradation of labor. Yet improvements in working conditions remain difficult due to structural factors, including heterogeneous labor environments across institution types and low levels of worker organization. Under these conditions, nursing assistants are required to perform high levels of emotional regulation in interactions with patients and caregivers, thereby intensifying emotional labor. Despite substantial emotional demands and related psychological harms, they have limited access to formal support systems within their organizations. Addressing these problems requires fundamental structural reforms in the workplace, alongside the development of worker organizations that enable sustained interaction, collective problem-sharing, and effective representation of nursing assistants’ voices.
Keywords:
Nursing Assistants, Emotional Labor, Conditions of Work, Representation of Workers’ Interests, Labor Union키워드:
간호조무사, 감정노동, 노동환경, 노동자 이해대변, 노동조합1. 서 론
한국사회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의료 수요의 증가 및 의료 서비스 형태의 변화는 더욱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의료수요의 증가에 따른 의료산업 종사자들의 수요도 높아질 전망인데, 이에 따라 간호조무사 직종의 규모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보호자들의 간병이 불가능한 환자들을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요구가 많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간호조무사 직종에 대한 노동시장의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간호조무사는 2023년 235,000명에서 2028년에는 257,000명, 2033년에는 275,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정순기 외, 2024). 보건복지부에서 3년 주기로 제공하는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1)에 따르면 전국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의 수는 256,382명(남성 10,711명, 여성 245,671명)이며,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 요양병원, 의원, 기타(조산원, 치과병의원, 한방병의원 등)에 분포되어 있다. 전체 간호조무사 중 여성의 비율은 약 96%를 차지하고 있어, 전형적인 여성집중형 직무라고 볼 수 있다.
간호조무사들은 의료산업에서 필수적인 간호서비스 업무를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보조적인 업무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간호조무사들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경력에 대한 불인정을 정당화하는 기반으로 작용해 왔다. 현재 대전시 간호조무사들의 연평균 임금은 27,055,312원으로 전국 평균(28,037,925원)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며, 이직률 또한 30.1%로 나타나 전국 평균 28.7%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 2020). 따라서 대전시 간호조무사들의 노동조건은 타 지역에 비해 더욱 열악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더하여, 최근 증가하고 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요양병원 등에 투입되는 주요 인력으로서 간호조무사가 겪게 되는 감정노동과 폭언·폭행 상황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전 지역의 간호조무사 약 38%가 근무하고 있는 의원급, 그리고 15%가 근무하고 있는 요양병원의 경우 노사관계 및 인사관리 등이 제도화되지 않았고, 5인 미만 사업장이 많아서 근로기준법 적용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 간호조무사들의 경우, 최저임금에 기반한 근로계약서를 매년 작성하고 있으며 이직 시 기존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등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지만 노동조합 접근성이 낮아 기본적인 노동권 및 처우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기도 하다.
또한 간호조무사를 선택하는 여성들 중 다수가 경력단절을 겪은 이후 자격증 취득을 통해 신규진입한 경우로 볼 수 있어, 간호조무사들이 직면하고 있는 노동현실은 한국사회에서 경력단절 여성들이 겪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노동경험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간호조무사들은 의원에서 환자들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수행하기도 하고, 큰 규모의 병원에서 입원환자들을 돌보기도 하므로 환자 및 보호자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감정관리 및 절제를 요구받으며, 병원 조직 내에서 의사, 간호사들과의 위계관계, 그리고 동료와의 관계 속에서 감정적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는 선행연구들에 기반하여 본 연구는 대전지역의 간호조무사들이 경험하고 있는 노동 현실을 실태조사와 FGI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간호조무사들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기 위한 정책 및 지원제도를 제안해 보고자 한다.
2. 선행연구 검토 및 분석의 초점
1) 감정노동에 관한 선행 연구 검토
감정을 사적 정서가 아닌, 노동과정에서 조직적으로 관리 및 통제되는 대상으로 파악한 논의는 혹실드(Hochschild, 1979; 1983)의 작업에서 본격화되었다. 혹실드(1983)는 승무원과 추심원의 사례를 통해, 이들이 조직에서 요구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고, 특정한 감정을 표현하는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혹실드(1983)는 감정노동을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시키는 노동”으로 정의했으며, 이러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하는 과정”을 ‘감정관리(emotion management)’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혹실드(1979; 1983)는 조직에서 효율적인 감정노동의 관리 및 통제를 위해 노동자가 어떠한 감정을 표현하고, 어떻게 감정을 관리해야 하는지를 정한 ‘감정규칙(feeling rules)’을 만들고, 노동자는 감정규칙에 따라 특정한 감정을 연기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감정규칙은 사회적 지위나 계급에 따라 달랐고, 특히, 성(gender)에 따라 기대되는 감정이 다르게 반영된다(Hochschild, 1979, 1983). 혹실드(1983)는 돌봄과 배려, 상냥함과 같이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기대되는 성 역할이 감정규칙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직장에서 여성 노동자는 ‘타인을 감정적으로 배려하는 존재’로 역할이 규정되고, 여성 노동자들은 이러한 감정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친절함과 상냥함을 연기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같은 감정노동은 노동자가 실제 느끼는 감정과 관리된 감정 간의 괴리로 이어지고, 이는 자아정체성의 혼란과 함께 자기소외(self-alienation)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Hochschild, 1983). 결국 혹실드(1983)의 감정노동에 대한 분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감정이 상품화되며, 이 과정에서 착취와 자기소외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혹실드(1983)의 감정노동에 대한 분석 이후, 감정노동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혹실드(1983)가 지적한 감정노동의 젠더화 문제는 서비스 직종뿐만 아니라,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이나 남성성이 강조되는 경찰관 같은 업무에서도 나타났다(Pierce, 1995; Martin, 1999; Taylor & Tyler, 2000). 여성 노동자는 남성 노동자에 비해 친절함, 상냥함이 요구되는 직무에 배정되는 경향이 있었으며, 업무 수행에 있어서도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요구받았다(Pierce, 1995; Martin, 1999; Taylor & Tyler, 2000). 이는 감정노동이 단지 직무의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성 역할 규범에 의해 분배되는 노동임을 시사한다. 스테인버그와 피가트(Steinberg & Figart, 1999)는 이러한 기존 연구 결과를 정리하면서, 젠더화된 감정노동이 저평가받고 있는 구조를 비판하였다. 이들은 감정노동을 관계지향적인 노동이면서, 노동집약적인 노동이고, 숙련을 요하는 생산적인 노동으로 정의했으며, 간호, 교육, 사회복지, 콜센터, 접객·판매 등 여성 집중 직종 대부분이 강한 수준의 감정노동을 포함한다고 보았다(Steinberg & Figart, 1999). 그러나 감정노동이 가치 있는 생산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직무평가나 임금체계에서는 감정적 기술이나 정서적 요구가 거의 반영되지 않거나, 낮게 평가되어 감정노동의 온전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고, 이는 감정노동 수준이 높은 여성 집중 직종 전체에 대한 구조적 저평가로 이어진다(Steinberg & Figart, 1999).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테인버그와 피가트(1999)는 인간관계 기술, 의사소통 기술, 정서적 노력, 이용자와 환자에 대한 책임을 포함한 새로운 직무평가 척도를 제시하였다.
트레이시(Tracy, 2000)는 감정규칙이 가진 강제성과 통제성을 강조하며, 업무 부적응과 소진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사유화되는 것을 비판한다. 그녀는 소진을 개인의 심리적 실패나 부적응 문제가 아닌, 조직이 설정한 감정규칙이 노동자에게 내면화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자기통제와 자기감시를 요구하는 권력적 구조의 산물로 해석한다(Tracy, 2000). 즉, 감정규칙은 조직 담론 속에서 구성된 규범적 산물이며, 조직이 노동자의 감정과 정체성을 통제하는 규율로 이해할 수 있다(Tracy, 2000).
감정노동에 대한 비판적 연구 외에도 감정노동의 영향과 조절 요인을 분석한 연구도 진행되었다. 워튼(Wharton, 1993)은 감정노동이 소외와 소진으로 이어진다는 혹실드(1983)의 분석을 비판하였다. 그녀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결과는 직무 자율성, 직무몰입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Wharton, 1993). 자율성과 직무 몰입이 높을수록 소진 위험과 직무 스트레스가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는 자율성과 직무몰입이 감정노동의 부정적 효과를 완충하는 요소임을 보여준다(Wharton, 1993). 에쉬포스와 험프리(Ashforth & Humphrey, 1993)는 노동자의 정체성이 감정노동과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감정노동으로 인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다. 자기 정체성과 직무 정체성이 일치하는 경우 ‘자발적 감정표현(display of genuine emotion)’이 나타나게 되고, 이는 직무 만족도 향상, 자기 정체성 강화, 자긍심 고취, 조직의 성과 향상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Ashforth & Humphrey, 1993). 이러한 요소들과 함께, 상사나 동료 집단 간의 사회적 관계, 공감과 지지와 같은 조직 내 지지체계 역시 감정노동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조절하는 중요한 요소이다(Zapf, 2002; Lewig & Dollard, 2003).
초기의 감정노동 연구가 최전선 서비스 직무(frontline service jobs)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 감정노동에 대한 연구는 상호작용 노동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Wharton, 2009). 여기에는 전문직 노동자들의 고객 및 동료와의 상호작용, 돌봄과 가족노동에서의 상호작용 등이 포함된다. 감정노동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지는 노동이며, 감정노동의 양상은 권력이나 지위, 성별 역학 등이 관련되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Wharton, 2009).
혹실드(1983)의 감정노동에 대한 논의 이후, 감정노동에 대한 다양한 주제의 연구가 축적되었다. 감정노동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은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감정노동의 수준이나 피해 정도를 측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간호조무사가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환경과 조직 및 현장에서 구성되고 부과되는 감정규칙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간호조무사가 갖는 여성 집중 직종, 저임금, 보조 인력 등과 같은 직업적 특징을 고려할 때, 이들이 처한 노동환경과 노동과정 속에서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 경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감정노동 수행 과정에서 직업 정체성과 업무 자율성, 조직 내 지지체계가 어떠한 영향을 주고, 이러한 요인들이 감정노동과 어떻게 매개되고 조절되는지 분석해야 한다.
2) 보건의료노동의 특성과 감정노동
보건의료노동은 생명을 다루는 업무 특성상 높은 윤리적 책임과 헌신이 요구되는 노동이며, 보건의료 노동자는 지속적으로 환자와 보호자를 대면하기 때문에 감정노동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이정훈 외, 2017). 그리고 의료기관의 경우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의료기사 등 다양한 직종이 협업하여 근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환자·보호자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상사나 동료 간의 관계 속에서도 직무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 있으며,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 구조와 문화 또한 정서적 소진에 영향을 줄 수 있다(이정훈 외, 2017). 이러한 보건의료노동의 특성으로 인해, 보건의료노동자는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직무스트레스나 소진이 나타난다(한상근, 2016).
에릭슨과 그로브(Erickson & Grove, 2008)는 의료현장에서 나타나는 감정노동을 의사나 간호사가 경험하는 스트레스가 아닌, 조직의 권력 구조, 전문직 윤리, 시장 논리가 복합적으로 연결되는 결과물로 확장하여 해석한다. 특히, 에릭슨과 그로브(2008)는 기존 감정노동 연구가 경제적 합리화라는 시장 논리가 감정노동을 어떻게 심화시키는 지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경제적 합리화로 인해 의료 현장의 감정노동 성격이 변화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의료기관이 효율성과 수익성을 중시할수록, 환자는 케어받아야 할 존재에서 ‘고객’으로 다뤄지게 되고, 보건의료노동자의 공감과 친절 같은 감정표현은 환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수익을 창출하는 서비스의 요소’로 간주된다(Erickson & Grove, 2008). 그 결과, 환자에 대한 정서적 돌봄이나 배려가 표준화되며, 감시되는 감정노동으로 전환되게 되고, 보건의료노동자의 감정은 조직의 시장 전략과 밀접하게 결합된다(Erickson & Grove, 2008). 이러한 에릭슨과 그로브(2008)의 논의는 의료현장의 경제적 합리화가 심화될수록, 보건의료노동자는 진료량, 회전율, 서비스 평가 지표 등과 같은 성과 평가 체계에 의해 자신의 노동을 지속적으로 관리·감독받게 되며, 이는 이들의 감정노동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돌봄노동은 언제나 감정노동을 심화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로페즈(2006)는 조직이 감정 규칙을 강제하는 것보다, 돌봄 제공자와 돌봄 대상자 간의 관계 형성을 위한 조직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여건이 마련된 경우, 돌봄의 상호작용은 규칙에 의해 연기된 감정표현으로 환원되기보다, 관계 속에서 능동적으로 형성되는 상호작용으로 수행될 수 있다(Lopez, 2006).
후인, 앨더슨, 톰프슨(Huynh, Alderson, & Thompson, 2008)도 돌봄 과정에서 이뤄지는 감정 관리가 반드시 감정 소진과 같은 부정적 결과로 이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간호사는 간호 과정에서 환자와의 만남을 위해 업무용 페르소나(work persona)를 채택하여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며, 어떠한 업무용 페르소나를 선택하는지는 조직 요인, 개인적 요인, 직무 요인 등에 따라 결정된다(Huynh et al., 2008)고 지적한다. 따라서 간호사는 환자와의 정서적 연결과 관계 맺기 속에서 직무 만족을 얻기도 하며, 성공적인 돌봄 서비스의 제공은 성취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돌봄 노동이 단순히 조직에 의해 관리되고 강제되는 노동이 아닌, 환자와의 관계에서 감정노동이 어떻게 구성되고 의미화되는지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보건의료노동의 일반적 특성 외에 환자의 죽음과 같이 환자와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관계를 맺는 간호·간병 업무가 갖는 특수성도 감정노동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Sorensen & Iedema, 2009; Brighton et al., 2019; Umubyeyi, Leboul, & Bagaragaza, 2024; 김희진, 김혜영, 2017). 임종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의사나 간호사의 죽음에 대한 태도에 따라 감정노동의 수준은 달라지며(Sorensen & Iedema, 2009), 잦은 환자의 죽음을 경험하면서는 ‘이제 아무 느낌이 없다’, ‘무뎌졌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거나, 무감각화함으로써 죽음을 ‘일상적 사건’으로 평범화시키는 감정관리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Umubyeyi et al., 2024). 이러한 감정 억압은 죄책감, 무력감, 소진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Umubyeyi et al., 2024). 환자의 죽음을 가족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의료인들은 ‘너무 냉정하지도, 너무 무너지지도 않는’ 인간적인 모습과 전문적인 모습 사이에서의 균형을 요구받으며, 이들은 상황에 맞는 감정관리 전략을 선택하여 환자의 죽음을 가족에게 전달한다(Brighton et al., 2019). 이처럼 보건의료노동자는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부터 그들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감정노동을 경험한다.
이와 같은 보건의료노동의 특성으로 인해 보건의료노동자는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이 요구된다.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정노동이 어떠한 보건의료노동의 구조적 특성 및 맥락 속에서 구성되고, 요구되는지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3) 간호조무사의 노동환경과 노동과정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어떠한 노동환경에서 어떤 지위와 역할을 가지고 일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즉, 간호조무사의 구체적인 노동환경과 노동과정을 함께 분석하는 것은 이들의 감정노동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간호조무사의 노동환경, 노동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수행되지 않았으며, 이들의 감정노동에 대한 연구는 제한적인 영역에서만 이뤄졌다.
양갑석, 조성제(2014)는 직무영역별로 간호조무사의 직무 만족도와 직무스트레스를 교차 분석하였다. 치과 병의원은 다른 직무에 비해 직무 만족도가 높은 반면, 특수간호업무에 종사하는 간호조무사들은 환자와의 접촉 빈도가 많고, 환자를 직접 간호하거나 보조하는 특성상 다른 직무에 비해 직무 스트레스가 높았다(양갑석, 조성제, 2014). 그리고 노인요양보호시설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들은 다른 기관 간호조무사에 비해 시각적, 언어적, 육체적 성희롱 피해를 더 많이 경험하였다(양갑석, 조성제, 2014). 양갑석, 조성제(2014)가 간호조무사 간 업무 차이에 따른 직무 스트레스와 직무 만족도를 분석한 것과 달리, 정경은(2023)은 간호조무사가 경험하는 체계적 불평등에 대해 분석하였다. 정경은(2023)은 상급종합병원과 전문병원에서는 정규직 간호사와 달리, 간호조무사는 기간제 노동자로서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문제를 경험한다고 분석했으며,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는 간호학원에서 배웠던 전문적 간호업무가 아닌 과거 간병인들이 했던 배변관리나 체위관리 등과 같은 간병업무를 수행한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중소병원 간호조무사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근로기준법과 노동법 위반, 숙련노동에서의 배제 등을 경험하였다(정경은, 2023). 결국 이러한 간호조무사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차별 및 배제는 자격시험을 통과한 후 보건의료현장에 진입한 간호조무사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정경은, 2023).
이문재, 최만규(2011)는 의사와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수직적 관계에서 겪는 갈등과 직무 스트레스에 대해 분석하였다. 간호사가 의사와의 모호한 역할 구분에서 주된 갈등을 경험하는 것에 반해, 간호조무사는 의사의 권위적인 태도나 무시하는 표현으로 스트레스를 경험하였다(이문재, 최만규, 2011). 이러한 수직적 관계에서의 간호조무사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정경은(2023)의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정경은(2023)은 간호조무사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의사를 정점으로 하는 병원 내 직업별 위계 구조와 결합하여 나타난다고 보았다.
선행연구를 종합하면,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은 이들이 처한 노동환경과 노동과정, 그리고 병원 내 위계적 관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직무영역과 근무시설에 따라 직무 만족과 스트레스, 성희롱 피해 수준이 달라지고(양갑석, 조성제, 2014), 중소병원과 요양시설에서 간호조무사는 저임금·고용불안·장시간 노동, 숙련노동에서의 배제와 같은 구조적 불평등을 경험한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된다(정경은,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연구는 간호조무사 개개인의 경험을 직무만족이나 직무스트레스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했다. 정경은(2023)의 연구는 간호조무사가 경험하는 차별과 배제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지만, 이러한 노동환경과 위계 구조, 차별 경험이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고 심화시키는지를 체계적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하지 못했다. 본 논문은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을 개인적 경험이 아닌, 노동환경과 노동과정과 결부된 구조적 경험으로 바라보고 분석하고자 한다.
3.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
본 연구는 대전광역시 소재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를 대상으로 하며, 간호조무사 자격을 갖고 있으나 현재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지 않은 간호조무사는 연구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2020년 기준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전시 전체 간호조무사 수는 9,331명이고, 의료기관 유형별로는 의원이 3,563명(38.2%)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기타(치과병의원, 한방병의원 등) 2,022명(21.7%), 요양병원 1,416명(15.2%), 병원 1,123명(12.0%) 순이다. 그리고 전체 간호조무사 중 여성 간호조무사가 96.6%(9,018명)로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표 1> 참조).
본 연구는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 경험이 이들이 놓여 있는 노동환경과 어떻게 결합되어 나타나는지를 분석하고자 설문조사와 집단심층면접(Focus Group Interview: FGI)을 병행하였다. 특히 의료기관 유형에 따라 노동환경이 상이하다(양갑석, 조성제, 2014; 정경은, 2023)는 점을 고려하여 의료기관의 규모(병상수, 평균 종사자 수), 직무 성격에 따라 의원급 의료기관(치과·한의원 포함), 병원급 의료기관,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상급종합병원 포함), 요양병원으로 구분하여 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는 대전충남간호조무사회의 협조를 받아, 간호조무사 보수교육에 참석한 간호조무사를 대상으로 대면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보수교육 시작 전 설문조사의 목적과 내용을 설명하고, 참여 동의를 얻어 응답률과 응답자의 성실도를 높이고자 하였다. 그리고 사전 설문지를 숙지한 연구원과 조사원이 현장에 상주하여, 설문 응답 과정에서 발생한 질의에 응답함으로써 응답 오류를 최소화하도록 하였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특성상 대면 보수교육의 참여율이 낮아, 의원급 종사자에 한해 대전충남간호조무사회의 협조를 받아 온라인 및 오프라인 추가 조사를 진행하였다.
본 설문조사는 2025년 4월 26일에서 6월 18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전체 응답자 553명 중 불성실 응답자 34명과, 의원, 병원, 종합병원, 요양병원 등 주요 의료기관에 종사하지 않는 응답자 10명을 제외하고 총 509명의 설문응답을 최종 분석에 활용했다. 설문 응답결과는 별도의 코딩 작업을 거친 후, 통계패키지 프로그램 SPSS 26.0을 사용하여 분석했으며, 간호조무사의 노동환경에 대한 객관적 여건과 이들의 감정노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분석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되었다. 설문에 참여한 간호조무사 509명 중 501명(98.4%)이 여성이고, 평균 연령은 47.5세였으며, 50대의 응답비율이 44.8%로 가장 높았다. 그리고 응답자의 간호조무사 전체 경력은 10.9년이었고, 현재 기관의 평균 근속기간은 6.3년이었다. 소속 기관은 의원(치과, 한의원 포함) 213명(41.8%)이며, 병원(요양병원 제외) 종사자는 72명(14.1%),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포함) 종사자는 107명(21.0%), 요양병원(요양원 포함) 종사자는 117명(23.0%)이었다(<표 2> 참조).
본 연구에서는 양적 자료와 질적 자료를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하여, 기존 연구에서 간과되어 온 간호조무사의 노동과정에 대한 심층적 분석과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심층적으로 시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양적 자료로 파악하기 어려운 실제 현장에서의 간호조무사의 노동환경과 감정노동 경험을 파악하기 위해서 FGI를 진행하였다.
간호조무사의 소속 기관에 따라 노동환경과 감정노동 경험에 차이를 보인다는 선행연구의 결과를 반영하여(양갑석, 조성제, 2014; 정경은, 2023), 기관별로 FGI 면접 대상자를 선정하였다. 먼저 간호조무사의 전반적 노동환경과 감정노동 경험을 정리하기 위해 ① 대전충남간호조무사회 임원들을 대상으로 가장 먼저 FGI를 진행하였다. 다음으로, ②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③ 일반병원, ④ 요양병원, ⑤ 의원으로 구분하여 2025년 5월 15일부터 6월 12일까지 FGI를 진행하였다. 그룹별 참여자 수는 4명이었으며, 근무부서(진료 분야)별 노동환경과 감정노동 경험을 파악하기 위해 이를 고려하여 FGI 참여자를 선정하였다.2) 간호조무사의 전반적인 노동환경과 노동과정, 감정노동 실태, 보호 제도 등을 주요 질문으로 FGI를 실시했다(<표 3> 참조).
참여자의 동의를 얻어 FGI 내용을 녹음했으며, 녹음된 파일을 전사하여 분석에 활용하였다. 전사된 자료는 질적 내용분석(Qualitative Content Analysis) 방법으로 분석하였다. 전사본을 반복하여 읽어 개별적인 발화에서 의미를 도출해 유사한 의미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고 재구성하여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해석했다. 예를 들어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 부담 증가, 불분명한 업무 분장 등은 ‘고강도 노동’으로 범주화하여 이러한 요인들이 간호조무사의 노동 강도를 어떻게 형성하고 강화하는지를 분석하였다.
4. 대전시 간호조무사의 노동환경
1) 불안정한 고용관계
<표 4>는 의료기관별 간호조무사의 고용조건을 보여준다. 먼저 고용형태를 살펴보면, 의료기관별 고용형태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모든 의료기관에서 정규직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의 비율이 의원급 의료기관은 70.3%, 병원급 의료기관은 84.7%,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은 72.9%, 요양병원은 82.0%로 모든 의료기관에서 70.0% 이상이었다. 그리고 근로계약서 작성과 관련해서는 의원, 병원, 종합병원은 2부 작성하고 교부받는다는 비율이 70% 이상으로 높았고, 요양병원은 70% 이하로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낮았다. 다만, 이러한 고용형태에 대한 응답과 달리, 간호조무사 평균 경력 기간과 소속기관 근속년수 간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응답비율이 가장 높았던 병원급 의료기관의 평균 근속년수는 5.2년으로 전체 경력기간(9.7년)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의원과 요양병원 모두 평균 근속년수가 6년 미만으로 전체 경력 기간에 비해 짧았다. 이는 대부분 간호조무사가 경력 기간 동안 이직을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설문에서 응답한 결과와 달리, 실제 현장의 고용형태는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의료기관별 FGI 결과는 설문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간호조무사들의 불안정한 고용관계를 명백히 보여준다.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상급종합 C와 D 등 일부 참여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계약직 근무자였으며,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었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계약직으로 채용되더라도, 1년 이후 정규직으로 지원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 달리, 다른 의료기관은 모두 1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뤄졌다. 특히, 상급종합 A는 문재인 정부에서 실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 이후, 1년 단위 쪼개기 계약이 성행하는 것 같다고 말했으며, 일부 병원에서는 직접 고용이 아닌, 업체를 통해 들어오는 간호조무사도 많아지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요즘은 우리 병원도 100% 계약직으로 들어오는 거 같던데. 내가 들어갈 때, 한 20년 정도 전만 해도 무조건 2년, 2년 지나면 무기 계약직으로 해주는 시스템이었는데, 어느날 부터 무기계약이 아예 없대요. 그래서 일부(다른 병원)는 나갔다 다시 들어와서 계약 맺는 거 같기도 해요…(중략)… 그래도 우리 병원은 1년 지나면, 정규직 지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도 몇 번, 3번 떨어지고, 4번이었나에 정규직이 되었죠. (상급종합 D)
(설문조사 할 때) 정규직이라고 응답했는데, 병원에서 12월인가, 11월 말쯤에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기는 해요. 재계약을 하면서, 계약을 연장하는 거라고 볼 수 있죠. 그러면서 시급 얼마나 올랐는지, 또 다른 건 뭐 있는 지 이야기 해주죠. (병원 B)
요즘 업체 끼고 들어오시는 분들도 좀 있는 거 같던데요. 간호부에 아웃소싱으로 오신 분들 있다고 그런 거 같아요. (불법 아닌가요-상급종합 C) 불법인가요? 저는 그런 건 잘 모르는데... 요즘은 업체 끼고 오시는 분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계약기간) 2년으로 고용한다고 해도, 2년 한 번에 하는 게 아니라, 1년 단위에요. 다른 병원 이야기인데, 그 병원은 2년 계약이 끝나니깐, 다시 뽑아준다고 퇴사하고 다시 지원하라고 했다고, 그래서 2년 계약, 퇴사, 신규로 재입사, 퇴사의 악순환이라고…(중략)…. 저희 병원은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그 정책 있잖아요. 계약직 바꿔주는 정책, 그 정책 이후에 이렇게 분위기가 바뀐 거 같기도. (상급종합 A)
FGI에 참여한 대부분 간호조무사는 이러한 1년 단위 쪼개기 계약이 일반적 관행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결국 1년 단위 재계약이 반복됨에 따라 간호조무사는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고용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불안정한 고용관계로 인해 일부 간호조무사는 원장의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고 이야기했으며, 일부는 병원에서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인력이라고 압박을 받는다고 말하였다. 또한 1년 단위 쪼개기 계약은 고용불안정뿐만 아니라, 간호조무사의 경력에 있어서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1년 단위로 쪼개기 계약이 이뤄지다 보니, 기존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신규 입사로 처리되는 사례도 존재했다.
갱신은 원장 맘. 원장에 따라 다른 거 같아. 저기는 계속 해주고, 저기는 갱신 안 해주고…(중략)… 우리 병원에서도 불러서, “넌 대체 가능한 인력”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압박 주려고, 이게 안정적인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지. (상급종합 A)
의원급 의료기관은 불안정한 고용관계와 함께,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의원급 FGI 참여자 중 의원 D를 제외한 모두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경험이 없었다. 의원 B는 구두로 계약이 연장된다고 원장에게 통보받았으며, 의원 A는 30년간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으나 단 한 번도 고용 관련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의원 A, B, C 모두 자신의 세부적인 근로조건을 모르고 있었다.
근로계약서요? 써본 적 없어요. 여기 80년대에 들어왔는데, 그런 게 있어요? 그냥 환자 비밀 유지 서약은 쓴 적 있는데, 근로계약은 써본 적도 없고, (원장이) 뭘 설명해 준 적도 없고, 근데 원장님도 뭘 모르지 않을까 싶어요. (의원 A)
아 저도 비밀 유지 서약은 썼는데, 근로 계약은 구두로만, 연장된다고, 갱신한다고 말해줬어요. 근데 3년 정도 지나니깐 말도 따로 안 해주시고, 알아서 올리시지, 별 말 없으세요. (의원 B)
이처럼 설문조사만 보면 간호조무사의 고용관계는 비교적 안정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평균 경력 기간과 현 소속기관 근속 기간 사이에는 뚜렷한 괴리가 존재하였다. FGI에서는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 이후 오히려 1년 단위 ‘쪼개기 계약’이 관행처럼 자리 잡으면서 이들의 고용불안정이 심화된 현실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1년 단위 재계약과 재입사 요구는 경력의 연속성을 훼손하여, 20년 이상 종사하더라도 서류상 ‘신입’으로 남게 만드는 등 경력 관리에도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근로계약서 작성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사례가 확인되었다. 설문조사와 FGI 결과 간의 이러한 괴리는 간호조무사가 자신의 고용형태와 고용관계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매우 열악하고 취약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2) 저임금 고강도 노동, 그리고 노동의 격하
저임금은 간호조무사들이 직면한 가장 핵심적 문제 중 하나이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간호조무사의 월평균 세전 임금은 의원 235.9만 원, 병원 237.7만 원, 종합병원 278.8만 원, 요양병원 217.6만 원이다. 이는 일 8시간, 주 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한 최저임금 209.6만 원보다는 많지만, 종합병원을 제외하곤 최저임금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야간 근무, 주말 근무 등을 하는 간호조무사의 업무 특성을 고려했을 때,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근로자의 인간적·문화적 생활을 가능하게 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목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인 2025년 대전시 생활임금 243.2만 원(대전광역시, 2024.10.4.)과 비교했을 때, 종합병원을 제외한 모든 의료기관의 임금이 이 기준에 미달하였다. 나아가 간호조무사의 저임금 문제는 단순한 금액 수준을 넘어, 이들의 경력이 임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를 드러낸다. 설문조사 결과, 종합병원을 제외한 의료기관에서 근속기간이 길어져도 유의미한 임금 상승이 나타나고 있지 않았으며, 이는 경력축적과 무관하게 간호조무사가 저임금 상태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표 5> 참조).
FGI에 참여한 간호조무사들 대부분은 저임금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이야기하였다. 이들은 아무리 경력을 쌓아도 자신들의 임금은 ‘신입’ 딱지를 떼지 못한다고 말했으며, 자조적으로 ‘평생 신입’, ‘말년 신입’과 같이 표현하였다. 이들의 저임금 원인은 1년 단위로 반복되는 쪼개기 계약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계약 방식으로 인해 경력에 따른 호봉제가 적용되지 않고, 시급 중심으로 임금이 책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1년 단위의 쪼개기 계약은 고용불안의 주된 원인이자 간호조무사의 저임금을 구조적으로 재생산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저는 이직을 해서 지금은 정규직입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병원에서 계약직으로 일했습니다. 뭐 경력에 따라 5만 원 더 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저희는 그런 거 없었습니다. 무조건 시급으로 줬습니다. 경력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면 됩니다. 저희 뿐만 아니라, 다 계약직은 시급으로만 받습니다. 시급제에는 경력이 인정되지도, 포함되지도 않습니다. 제가 10년의 경력이 있든, 20년의 경력이 있는, 그냥 저는 시급제에서는 신입입니다. (병원 D)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제가 여기가 되어서 거기 가진 않았는데, 집 근처에 모 요양병원이 있어서 면접을 봤는데, 거기는 AN(Assistant Nurse, 간호조무사)은 무조건 시급제라고 했어요. 시급제니깐 기존에 일했던 경력은 의미 없다고, 그냥 거기서 정한 시급만 줄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데, 그냥 면접을 보면서도 어이가 없는 느낌이었는데, 시급제로 계약하는 곳은 그런 곳이 많다고 (병원 B)
노동에 대한 충분한 보상은 직무 만족도를 높이고(Lee, 2015; Jun, 2025), 정체성을 강화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Ren et al., 2021; Hult, Lappalainen, & Kangasniemi, 2021). 간호조무사들은 만성적인 저임금 구조로 인해, 자신의 전문성이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다고 인식하였다(병원 D). 특히, 병원 C의 사례처럼 자녀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임금이 지나치게 낮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창피함과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저임금은 단순히 금액의 많고 적음의 문제를 떠나, 간호조무사의 직무 만족도와 전문직 정체성을 저하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고용관계로 인해 간호조무사들은 저임금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
딸이 성인이 된 후 알바를 했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딸한테 얼마 받냐고 물어 보니깐, 저랑 별로 차이가 안 나는 거에요. 근데 또 딸이 제가 얼마 받냐고 물어보는데, 제가 대답을 할 수 없었어요. 딸은 제가 경력이 있으니깐 500만 원 정도 받는 걸로 알고 있더라고요. 제가 정말 이 때는 창피하면서도 자존심이 정말 상했어요. (병원 C)
임금 협상을 해서, 임금에 불만이 있어도 이야기를 못하는 분위기. 불만 이야기하면 “네가 하는 일은 아무나 데려다 앉혀놔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불만 있으면 나가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니깐, 뭐 실적이 있고 그래도 그냥 동결되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처럼 내가 떠나는 거, 스스로 나가는 거 밖에 없고, 계속 일하려면 불만 있어도 그냥 일 해야죠(협회 D)
이처럼 간호조무사는 만성적 저임금 구조하에서 자신의 전문성이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꼈으며, 이는 직무 만족과 전문직 정체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의원급 의료기관을 제외한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조무사 50% 이상이 교대제로 근무하고 있다. 교대제 근무는 주간 근무에 비해 신체적, 정신적 부담이 큰 근무 방식이며, 장기간의 교대제 근무는 다양한 질환을 가져온다(Vyas et al., 2012; Wang et al., 2014; Torquati, Mielke, Brown, & Kolbe-Alexander, 2019). 즉, 교대제 근무 자체가 노동자에게 큰 부담을 지우는 노동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van der Grinten et al., 2025).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지난 1주일간 숙면의 어려움과 충분히 자도 지친 느낌이 들었는지 물어본 질문에 대해, 36.7%의 간호조무사는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고 응답했으며, 64.0%의 간호조무사는 충분히 쉬어도 지친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하였다. 간호조무사의 평균 근무시간은 8시간 내외로 1일 법정 근로시간 범위 내에서 노동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1일 노동 시간이 8시간 이상인 경우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이 주어져야 함에도 의원급을 제외한 의료기관의 휴게시간은 1시간 미만이었다. 이는 과중한 업무로 인해, 근무시간 내 간호조무사들이 충분한 휴게시간을 보장받고 있지 못한 현실을 보여준다.
간호조무사들은 고강도 노동의 주원인으로 인력 부족, 불분명한 업무분장을 지적하였다. 의료현장에서 인력 부족 문제는 고강도 노동을 초래하는 핵심 요인이다. 사회적으로 간호인력에 대한 수요는 크게 증가하고 있으나, 병원은 ‘경영상’을 이유로 충분한 간호인력을 채용하지 않고 있으며, 늘어난 업무는 고스란히 기존 간호 인력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3) 이러한 간호인력의 부족 문제로 인해 간호조무사들은 현장에서 더 많은 업무를 떠맡게 되었고, 근무시간 중 잠시라도 쉬게 되면 야근으로 그만큼의 일을 메워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끼니를 거르거나 앉아서 쉬지 못한 채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업무를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 결과 상당수 간호조무사들은 고강도 노동으로 인해 고강도 노동으로 인해 높은 수준의 직무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었다.
통합병동에 환자는, 어, 계속 입원은 되잖아요, 계속 들어오는데, 사람이 인력이 없는 거예요. 이게 누가 그만두면은, 그만둔 만큼 그냥 사람을 뽑아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지금은 오히려 인원을 더 줄였어요. 예전에는 거기서 14명이 일했거든요, 14명이었는데, 지금은 8명이에요, 8명. 병원에서는 맨날, 뭐 돈이 없다, 적자다 이런 얘기만 하고, 그래서 인원을 줄이는 거고요. 그러니까 제가 이제 혼자서, 한 40명? 40명 정도를 케어를 하는데, 거기 고관절 환자도 있고 그러니까, 똥 싸고, 오줌 싸고 하면 그거를 다, 제가 혼자 치워야 돼요, 전부를. 그러니까 이게 진짜, 되게 짜증도 나고, 스트레스도 받고 (병원 A)
지금 요양병원에서, 어 제일 문제라고 해야 되나, 그게 인력이거든요, 인력이. 사람이 자꾸, 계속 부족해요. 환자분은 계속 들어오고, 입원은 많아지고 있는데, 간호 인력은 뭐 늘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이고 있는 느낌? 그런 식이라서요.. 그러다 보니까 간호조무사 한 명이 봐야 되는 환자가, 이제 점점, 계속 많아지는 거예요. 원래는, 일이 좀 익숙해지면은, 음, 좀 편해져야 되잖아요, 보통은. 근데 그게 아니라, 돌봐야 되는 사람이 자꾸 늘어나니까, 이게 몸은 음, 오히려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고 (요양병원 D)
불분명하고 불합리한 업무분장 역시 간호조무사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이러한 업무분장 문제는 간호조무사 1~3명만 근무하고 있는 소규모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주로 발생한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간호조무사는 접수부터 수납, 진료 준비, 진료 보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1인이 근무하는 의원에서는 화장실 청소와 같이 간호조무사의 직무 범위를 벗어나는 업무들이 간호조무사에게 배정되기도 하였다. 의원급 의료기관과 달리 비교적 업무분장이 체계적인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는 업무분장 자체로 인한 문제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의료인력과의 역할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또한, 다른 의료인력이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않으면, 그 업무가 간호조무사에게 전가되는 사례도 있었다.
전화 문의도 많이 하고요, 어... 청소도 제가 하고, 환자 접수도 하고, 뭐, 그런 거 다 해야 해요, 제가. 예전에, 예전에는 입원 환자도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없어져서 그게 좀, 뭐라 해야 되지, 나아진 편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그래도 많이 바빠요. 특히 코로나 이후로는, 정신적으로 좀 힘들어하시는 분들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더 많아져가지고, 병원 오시는 환자분들도 더 많아진 느낌이라, 좀, 많이 힘들어요, 요즘은…(중략)… 저 화장실 청소도 해요. 화장실 청소는 사실, 그게 저희 일이 아니거든요, 아닌데 저밖에 없으니까, 그냥 제가 하는 거죠, 뭐. (의원 B)
병원에서 지정한 업무가 있는데, 저기(상급종합 D의 병원)처럼 소통을 하는 구조면 모르겠는데, 그런 게 없어요. 그래서 업무는 있지만, 현장에서는 경계가 없는 그런 경우가 있는데, 파트장은 매뉴얼 대로 하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요…(중략)… 의무원들한테 매뉴얼을 달라고는 못해서, 제가 일지를 빼서 봤는데, 의무원 일인데 우리한테 오는 일도 있었고, 이게 문제를 제기해도 그 때 뿐이고, 제대로 해결은 안되고, 어느 날에는 그냥 우리 일로 되어 있고 그래요. (상급종합 B)
과중한 업무를 완화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은 현장 수요에 맞는 간호인력의 충원이다. 그러나 병원은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현장에 필요한 수준의 간호인력을 충분히 채용하고 있지 않다. 이는 에릭슨과 그로브(2008)가 지적하듯, 병원이 경제적 합리화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보다,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결국 병원에서 이러한 경제적 합리화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의료 현장에서 간호조무사의 고강도 노동과 업무 부담은 구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간호조무사의 주요 담당업무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외래사무가 55.2%로 가장 많았고, 병원급 의료기관과 요양병원은 병동환자 간호가 36.2%, 78.6%로 가장 많았다.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은 외래진료보조(25.2%)와 병동환자 간호(24.3%)가 다른 업무에 비해 많았다. 정경은(2023)은 간호조무사의 업무가 간호학원에서 배웠던 전문적 간호업무가 아닌, 과거 간병인들이 했던 배변관리나 체위관리 등과 같은 간병업무로 격하되는 숙련 노동의 배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설문조사에서도 병동환자가 없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제외하면, 모든 의료기관에서 간호조무사의 주 업무는 병동환자 간호로 나타났다. 다만, 본 연구의 설문조사는 종단 자료가 아니라 한 시점에서 수집된 단면 자료이므로, 간호조무사의 업무가 시간 경과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정경은(2023)이 지적한 숙련노동의 배제와 노동의 격하 문제는 본 연구의 간호조무사 FGI에서도 부분적으로 확인되었다. 과거에는 간호조무사가 다양한 영역에서 간호업무를 수행했으나, 점차 전문적인 간호업무는 간호사에게로 대체되고 간호조무사는 단순 외래업무로 전환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업무 전환과 더불어, 병원 A 사례에서는 자신이 병동에서 주로 수행하는 일이 간호업무가 아니라 배변·체위 관리 등 간병 업무에 가깝다는 점에서 회의감을 느낀다는 진술도 제기되었다.
저희는 이 일(간호조무사 일)이 점점 외래 쪽으로만 빠지게 된 케이스인데. 예전은 안에서 이것 저것 같이 했는데, 인원 규제니 수가니 이런 얘기 나오고 나서, 병원에서 앞자리는 간호사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외래로만 돌리는 식으로 가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주로 외래 업무만 보게 됐고, 요즘은 외래조차도 간호사들이 내려와서, 그런 식으로 또 대체 인력처럼 들어오는 상황이에요. (상급종합 D)
제가 경력이 짧긴 한데, 원래 이런 건지, 실습에서는 간호 업무도 배웠는데, 여기서는 간호업무보다는 간병 쪽만 신경 쓰고, 실제로도 환자 간병이나 린넨 업무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거 같고. (병원 A)
간호조무사의 업무와 관련된 설문조사와 FGI 결과는 정경은(2023)이 지적한 간호조무사의 숙련노동 배제와 노동의 격하가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간호조무사의 기존 간호업무는 간호사로 대체되고, 간호조무사는 외래업무로 재배치되는 한편, 병동에서는 간병업무에 노동이 집중되는 양상이 관찰된다. 결국 숙련노동에서의 배제와 노동의 격하는 정경은(2023)이 지적한 보건의료현장에 진입한 간호조무사가 정착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주요 원인 만큼,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3) 낮은 조직화 수준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경험하는 문제를 집단적으로 제기하고 조정할 수 있게 해주는 ‘목소리(voice)의 제도적 장치’이며,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Freeman & Medoff, 1984). 또한 노조의 존재 여부는 일자리 만족도와 고용안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된다(최낙혁, 2017).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간호조무사가 처한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간호조무사 개인의 고립된 대응이 아니라, 조직화에 기반한 집단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의원 D의 사례는 조직화를 통해 열악한 노동환경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환경이 열악하며, 이는 의원 D가 근무하고 있는 기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의원 D가 근무하는 기관은 의사 4명과 간호사, 간호조무사, 병리사, 행정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의원으로 의원 내 간호 업무와 치료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했으며, 노조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연봉 협상을 실시하는 한편, 그동안 불이익을 받았던 잘못된 관행들을 해결했다.
저희는 의사 빼고, 그냥 전문직 의료 파트만 따로 모여서 노조를 만들었어요. 간호사, 간호조무사, 병리사, 이렇게 셋이서요. 이게, 노조가 없으니까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연가도 못 쓰게 하고, 임금 협상도 뭐 협상이라고 말은 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안 되니까. 그래서 아, 이건 안 되겠다, 해서 노조를 만든 거고요. 노조 만들고 나서는, 지금은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중략)… 간호조무사를 기능직으로 묶어놓은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우리는 전문직인데, 왜 기능직으로 해놨냐’고 따졌죠. 다 같이 가서 도와주고, 계속 얘기하고, 그렇게 하니까 이제는 기능직이 아니라, 간호조무직으로 바꿔놨어요. (의원 D)
하지만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간호조무사의 조직화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보건의료노조에 일부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만 가입해 있을 뿐, 대부분의 의원, 병원, 종합병원은 노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간호조무사의 60.6%가 의원급 의료기관에 종사하고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치과병원의원, 한방병의원 포함)의 규모와 구조를 고려했을 때, 노조 결성과 가입 자체가 매우 어려운 상태이다.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한 상급종합병원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조직적인 대응은 있으나, 보건의료노조의 지부장이 간호사이기 때문에 간호조무사의 목소리를 완전히 대변할 수 없다고 인식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최근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서도 간호조무사가 계약직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아, 신규 간호조무사들이 노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조건도 형성되고 있었다.
노조에서 뭐, 도움을 아예 못 받는 건 아니에요. 많이, 받기는 해요 사실은. 근데 또 아쉬운 게 좀 있죠, 이게. 지금 노조 지부장이다 뭐다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간호사들이거든요. 간호사 쪽 사람들이다 보니까, 이게 지부장이라고 해서 전체를 딱 이렇게 아우른다기보다는, 자기 동료들, 후배나 선배들, 그쪽 얘기 위주로 조금 더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이제, 간호부 상대로 얘기할 때는 ‘전체 의견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말해주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요. 막상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이 사람들이 우리 간호조무사 문제까지, 진짜 제대로 해결해줄 거다. 그런 기대는, 솔직히 그렇게 크지는 않아요, 네. (상급종합 D)
정규직들은 뭐, 노조에 많이 가입하죠. 정규직이면, 들어가요, 노조에. 근데 요즘에는, 아까도 말했지만, 다 계약직으로 뽑는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계약직들은 노조에, 글쎄요, 그렇게까지 가입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은, 계약직이 이렇게 늘어나면서, 결속력이라고 하나요, 그런 게 좀, 많이 약해졌다고 볼 수 있죠. (상급종합 C)
간호조무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기존 보건의료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간호조무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조직인 ‘전국간호조무사노동조합’이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주도로 2022년 5월 15일 설립되었지만, 낮은 노조 가입률로 인해 현재까지는 노동조합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조직화를 통해 간호조무사가 직면한 문제들의 해결 가능성을 보여준 의원 D의 사례처럼, 간호조무사의 조직화는 이들의 문제 해결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필요성에도 의료기관 종별로 상이한 노동환경과 영세한 의원급 의료기관에 다수의 간호조무사가 종사하고 있는 구조적 현실로 인해, 간호조무사의 조직화는 매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는 현실이다.
4) 의료기관 종별 상이한 노동환경
간호조무사는 의원, 일반병원, 종합병원, 요양병원 등 다양한 유형의 의료기관에서 일하고 있으며, 근무기관에 따라 노동환경이 크게 달라진다. 이러한 의료기관 종별 차이는 간호조무사가 직면한 고용불안·저임금·고강도 노동 등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의료기관 가운데 노동환경이 가장 열악한 곳은 의원급 의료기관이다. 의원급에서는 간호조무사 1명이 접수·수납부터 진료 준비와 진료 보조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여기에 더해 화장실 청소와 같은 직무 범위를 벗어나는 잡무까지 맡는 일이 빈번했다. 근로계약서 작성, 임금명세서 교부 등 노동자가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사례도 자주 확인되었다. 휴가 사용 역시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구조였다. 다수의 의원급 간호조무사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휴가를 계획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원장이 쉬는 날에 함께 쉬는 방식으로 사실상 ‘휴가를 대체’하고 있었다. 그 결과 아들의 입학식과 졸업식에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는 의원 A 사례에서처럼 일·가정 양립에 어려움을 겪거나, 본인이 아픈 상황에서도 병원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문제(의원 B)도 나타났다. 다만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점은 휴게시간이 비교적 잘 보장된다는 점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원장이 식사나 휴식을 취하면 진료·진찰이 중단되기 때문에, 간호조무사도 동시에 쉴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러나 휴게시간이 형식적으로는 보장되더라도, 실제로는 별도의 휴게공간이 없어 편안하게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한계가 있었다.
병원급 의료기관과 종합병원, 요양병원에서는 근로계약서 작성과 임금명세서 교부와 같은 기본적인 사항은 대체로 잘 준수되고 있었다. 교대제 근무 특성상 완전히 자유로운 휴가 사용은 어려웠지만, 대부분의 경우 간호조무사가 동료와의 일정 조율을 통해 본인의 필요에 맞게 휴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업무 분장 역시 비교적 체계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편이었다. 다만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과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인해 실질적인 휴게시간은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는 구조였다. 다수의 의료기관이 휴게공간을 구비하고 있고, 규정상으로도 휴게시간이 보장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휴식을 취하면 근무 시간 내에 할당된 업무를 마치기 어려워, 간호조무사들이 스스로 휴식을 포기하고 계속 일하도록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상급종합 B, 병원 A)도 나타났다.
의료기관 유형에 따라 노동 통제 방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조직 내 규정이나 시스템을 통한 통제보다는 원장과 간호조무사 간 개인적 관계에 기반한 인격적 통제가 이루어진다. 특히, 원장과 간호조무사로만 구성된 소규모 의원에서는 원장이 간호조무사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하고 업무 수행을 감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의원급 의료기관 간호조무사들은 원장의 성격이 노동환경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봤으며(의원 A, 의원 B, 의원 C, 협회 A), 원장의 ‘눈치를 보면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이야기하였다(의원 B, 의원 C). 그 결과 원장과의 관계나 친밀도에 따라 직무만족도와 직무스트레스 수준이 달라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실제로 원장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례(의원 A, 협회 A)는 노동환경 전반에 대해 대체로 만족을 보인 반면, “원장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한 사례(의원 C)는 노동환경 전반에 대한 강한 불만을 보였다.
병원급 의료기관부터는 원장과 간호조무사 간의 개인적 관계에 의한 통제보다는 조직 내 관리 규정과 업무 지침 등 공식적인 규범이나 제도를 통한 관료제적 통제가 이루어졌다.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는 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와 책임이 병원 규정과 지침을 통해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고, 일부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서는 간호조무사에 대한 인사·평가 제도를 통해 노동을 통제하는 사례(상급종합 B, C)가 확인되었다.
이처럼 간호조무사는 다양한 의료기관에 분산되어 있고, 소속 의료기관에 따라 노동환경이 크게 달라지는 구조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인격적 통제와 포괄적 업무 부담, 상급종합병원, 병원, 요양병원의 관료제적 통제와 인력 부족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용불안,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이라는 문제를 재생산하고 있다. 결국 간호조무사의 노동조건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전반적인 간호조무사의 노동조건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의료기관 종별 간호조무사의 노동조건이 어떠한 차이와 특수성을 갖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5. 대전시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 경험
1) 감정노동의 대상
보건의료조직은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보조 인력)로 이어지는 수직적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그 속에서 간호조무사는 의사와 간호사를 대할 때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여 표출해야 한다. 이번 설문에서도 “상사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질문에 간호조무사 84.7%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대부분 간호조무사가 조직 내에서 상사를 대할 때 자신의 감정을 의식적으로 관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사에 대한 감정표출 관리가 곧바로 감정노동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감정노동은 일반적으로 조직의 감정규칙에 따라 환자나 보호자 등과 같은 서비스 수혜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을 의미하며, 관리된 감정과 실제 감정 사이의 괴리로 인한 긴장과 소진 경험을 핵심으로 한다. 상사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감정관리는 노동보다는 조직 내부 위계관계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감정관리의 성격이 강하므로,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감정노동과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 때 의료 현장에서 간호조무사는 의사와 간호사,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감정표출을 관리하지만, 주 감정노동 대상은 환자와 보호자라고 볼 수 있다.
“환자나 보호자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와 “공격적이거나 까다로운 환자나 보호자를 상대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각각 90.8%, 72.4%로 매우 높았으며, 이는 간호조무사가 환자나 보호자를 대할 때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몸이 피곤해도 환자나 보호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므로 감정적으로 힘들다”라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68.2%로 많은 간호조무사가 감정노동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감정노동을 수행하면서 느끼는 부담감과 스트레스의 정도는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간호조무사들은 공격적인 환자를 대할 때 스트레스를 받았으나, 한편으로는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와 같은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함께 느꼈으며, 환자를 자신의 전문적 간호지식을 바탕으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는 대상으로 인식하여 이들의 짜증과 욕설 등은 어느 정도는 수용해야 하는 범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환자의 공격적인 행동은 짜증과 연민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으로 이어졌으나, 양가적 감정은 간호조무사로서의 책임감과 결합하여 환자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이해 과정은 감정노동으로 인한 소진을 일정 부분 경감하고 직업정체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는 후인 외(Huynh et al., 2008)의 분석처럼 간호 과정에서 이뤄지는 돌봄 노동은 돌봄제공자와 돌봄 대상자 간의 관계를 맺는 과정이며, 성공적인 돌봄 서비스의 제공은 성취감이나 직무 만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건을 집어 던지고, 폭력적인 분도 있는데, 막 만지거나 껴안기도 하고, 근데 이게 또 치매 환자니깐 이해하려고 하고, 그래요. 심하면 힘들긴 하지만. (요양병원 A)
그러나 병동 업무의 특성상 공격적인 환자를 반복적으로 대면해야 한다는 점은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자신을 무시하거나 폭언을 했던 환자를 출근할 때마다 다시 만나야 하는 상황에서, 간호조무사들은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려고 노력하지만, 환자와의 대면 과정에서 유사한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감정적 소모가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모습을 보였다.
병원이 좀 음 힘든 게, 입원 환자가 있잖아요. 이게 그냥 한 번 보고 마는 사람이 뭐라고 하면, 그건 뭐 아니, 그래도 괜찮은데요. 다음 날 출근하면 그 환자가 또 있는 거예요. 또 보는 거죠. 그러면 어제 짜증 났던 게 음, 그냥 또 올라와요. 그래서 좀 많이 불편해요. 이게. 퇴근해서 집에 가서도 ‘아, 내일 또 그 환자 봐야 되는데’ 이런 생각이 자꾸 나요. 그러면 그것도 조금 아니 좀 많이 짜증날 때가 있어요. (병원 B)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들은 환자의 죽음에서 소진을 경험하기도 했다. 다른 의료기관과 달리, 요양병원의 특성상 고령의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많아, 요양병원 간호조무사들은 빈번하게 환자의 죽음을 경험하였다. 이들이 처음 환자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는, 당혹감과 슬픔을 함께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점차 경력이 쌓임에 따라 ‘죽음에 익숙해졌다’고 이야기했다. 죽음이 익숙해 짐에 따라, 요양병원 A는 환자뿐만 아니라 지인의 죽음에도 큰 슬픔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FGI에 참여한 요양병원 간호조무사들은 이렇게 감정이 마모되는 현상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하고, 나아가서는 요양병원 간호조무사가 갖춰야 할 하나의 자질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의 마모는 자연스러운 현상보다는, 전문적인 간호·간병 업무 수행을 위해 죽음을 일상적 사건으로 평범화시키는 감정 관리 전략 중 하나이며, 이러한 감정 관리는 죄책감, 무력감, 소진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Umubyeyi et al., 2024).
제가 처음 여기 왔을 때요, 그때 제가 간병하던 분이 먼저 돌아가신 거예요, 그분이. 그래서 처음 그런 걸 본 거라 너무 놀라고, 좀 그렇고 무섭고 그랬던 것 같아요. 여기 요양병원은 돌아가시면 옆에다 뉘어 놓는데, 근데 그때는 제가 뭘 해야 되는지 잘 몰라서 손을 그냥 쪼물딱쪼물딱 만지고, 괜히 주무르고 그렇게 앉아 있었어요. 지금은 또 그런 게 조금 무뎌졌다고 해야 되나, 보호자분들이 멀리 사는 데도 많고, 익스파이어(expire) 환자 그냥 모셔두고 (요양병원 C)
경력이 좀 쌓이니깐, 오래 봤던 분들이 돌아가시면 정들어서 아쉬운 느낌은 있는데, 그냥 덤덤한 거 같아요…(중략)… 좋은 건지, 나쁜건지 이제는 가족들이 돌아가셔도 막 많이 슬프지 않아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할까? (상급종합 A)
환자와의 관계에서는 짜증과 연민, 전문가로서의 정체성 등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것과 달리, 보호자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무리한 요구나 공격적인 언사는 연민이나 이해로 완충되지 못하고, 직접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특히, 입원환자가 있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간호조무사가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경험하였다. 간호조무사를 간병인처럼 다루거나, 간호조무사를 대놓고 무시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환자를 돌보고 있음에도, ‘왜 우리만 제대로 관리해주지 않냐’와 같은 발언을 하면서, 업무를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반복해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은 보호자에 의한 무시와 과도한 요구, 지속적인 감시와 민원 제기는 간호조무사에게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과 정서적 부담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호자 분들 그러니까는, 욕창 같은 경우에요. 입원할 때는 요만했는데, 갑자기 와가지고는 막, 이만큼 커졌다 이러시는 거예요. 오래간만에 와서는, 막 그렇게 따지세요. 욕창이 왜 이렇게 커졌냐고. 설명을 해도 음, 그래도 따지세요…(중략)… 그냥 다 우리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하세요. “너희는 안 보고 뭐 했냐” 이렇게 소리 치시는 거죠. 그러면 그냥, 욕을 듣고만 있어요, 저희는 (요양병원 A)
간암 말기 환자들은요. 계속, 막 빨간 거를 토해요. 그래서 막 위, 아래로 피가 다 나오는 거죠. 그러면 저희가 베드를 갈아줘요. 갈아주고, 또 이 라인 했다가 저 라인으로 막 뛰어가고, 그러다가 또 다른 라인 갔을 때, 침상이 다시 또 빨갛게 되는 거예요. 거기서 또 피를 토하시면. 근데 딱 그 타이밍에 보호자가 와서 그걸 본 거예요. 마치 저희가 안 치우고, 그냥 뭐, 놀고 있었던 것처럼요…(중략)… 정말 방금 치웠거든요. 진짜로. 근데도 안 치웠다고, 온 병동이 떠내려가라 소리를 지르시니까... 그때는 좀 많이, 힘들었죠. (병원 D)
이처럼 간호조무사는 보건의료현장에서 다양한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특히 환자와 보호자와의 관계에서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FGI에 참여한 다수의 간호조무사가 현장에서 무리한 요구가 나타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간호조무사의 업무에 대한 이해 부족’을 지적했다(병원 A, 상급종합 B). 이들은 간호조무사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와 역할을 병동에 입소하기 전 환자나 보호자에게 체계적으로 교육 및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병원 A, 상급종합 B).
2) 감정노동 통제 체계
조직이 설정해 운영하는 감정규칙은 노동자의 감정노동 수준과 내용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실시하는 “밝은 표정으로 조용히 말합니다”, “천천히 또박또박 응대합니다”와 같은 캠페인은 의료 인력이 환자를 대할 때 어떤 표정과 말투,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규범화한 것으로, 조직이 요구하는 감정관리의 내용을 잘 드러낸다. 이번 설문에서도 “기관으로부터 환자나 보호자에게 항상 친절하도록 요구받는다”는 질문에 78.2%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대부분의 간호조무사가 기관으로부터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요구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FGI 결과,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을 관리하기 위해 공식적 통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감정노동을 통제하는 방식도 의료기관 종별 차이를 보였는데, 의원급 의료기관은 공식적인 통제 장치를 별도로 두지 않고 고객 관리나 응대 방식을 대체로 간호조무사 개인의 자율과 재량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문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중재하거나 뒷받침해 줄 공식 창구가 없어, 간호조무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는 감정노동을 관리하기 위한 공식적인 통제 체계를 비교적 갖추고 있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은 별도의 민원실을 운영하는 사례가 있었으며, 반복적인 민원이 들어올 경우 경위서나 사유서를 작성하도록 하거나, 민원을 인사고과에 반영하여 문제를 관리하기도 하였다. 일부 병원에서는 ‘친절 사원’과 같은 상벌제도를 통해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 수행을 독려하고 통제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CS(Customer Service)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여, 간호조무사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보다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었다.
저희는 CS교육을 꾸준히 받아요,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이에요, 이게…(중략)… 상벌을 주는데, 저희는 친절직원과 불친절 직원을 나눠서 상벌을 줘요. 매달 뽑아서 상품권 같은 걸 주는 사람이 친절사원이고요. 불만이나 민원이 많이 접수되는 사람이죠. 그런 사람이 불친절사원이고요. (병원 C)
민원을 받으면, 그냥 불려가는 거예요. 왜 민원이 발생했냐고, 팀장님이랑 면담을 하고 오는 건데요. 저도 답답하니까, 거기서 팀장님한테 “제가 여기에서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다시 물어보게 되는 거죠. 뭐 팀장님도 뾰족한 수는 없으시니까, 쭉 얘기 듣다가 다음부터는 주의해 달라고만 말씀하시고 끝난 경우가 있었어요…(중략)… 근데 저희는, 인사고과에요, 이런 민원들이 계속해서 개인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게 다 반영이 되는 거예요, 이게. 그래서 인사고과에 한 번 그렇게 올라가 버리면, 나중에 급수 올라갈 때 그게 또 치명타를 받을 수 있고요. (상급종합 D)
감정노동 통제를 위한 공식적 체계 외에도, 인터넷 카페·밴드·카카오톡 등 소셜 미디어를 매개로 한 비공식적 노동 통제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일부 환자나 보호자는 간호조무사가 불친절하다고 느낄 경우 인터넷 카페나 밴드 등에 글을 게시하였고, 다수의 병원은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사건 당사자의 무조건적인 사과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이 과정에서 간호조무사 당사자에게는 추가적인 친절 교육 이수를 지시하거나, ‘친절함’을 거듭 강조하는 조치가 뒤따르기도 했다.
어떤 병원에서 환자랑 간호조무사랑 트러블이 있었나봐요. 근데 간호조무사 분이 무릎 꿇고 빌었데요. 환자가 간호조무사 실명을 거론하면서 비방하는 글을 계속해서 네이버 카페나 이런 곳에 올리니깐, 병원에서는 간호조무사한테 계속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압박을 줬나봐요. (상급종합 B)
불만이나 민원이 있으면 네이버 같은 데 글을 올려요. 그럼 저희는 행정실 끌려가는 거죠. 행정실로 끌려가서 잘못 안 했는데도 잘못했다고 해야하고, 뭐 친절 교육 같은 것도 받아야 해요. (병원 C)
간호조무사들은 고객에게 무조건적인 친절을 제공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받았으며, 자신의 잘못이 아닌 상황에서도 사과를 해야 했다. 그 결과, 모욕적인 언사에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사과까지 해야 했던 사례도 있었다(상급종합 B). 이러한 감정노동에 대한 지속적 관리 압박과 통제는 간호조무사들이 친절함을 연기하도록 만들었으며, 간호조무사들은 민원이나 문제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건조한 친절’을 연기하였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려고 노력하죠. 친절해 보이려고 많이 노력해요. 근데 뭐랄까 저는 이런 친절을 영혼 없는 친절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깐 굉장히 건조한 친절이라고나 할까요. 친절하지만 마음 속 친절이 아닌, 아무런 생각 없는 그냥 눈에만 보이는 친절요. (상급종합 D)
건조한 친절은 트레이시(2000)가 지적한 바와 같이, 조직이 설정한 감정규칙이 노동자에게 내면화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과도한 자기 통제와 자기 감시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자기 통제와 자기 감시, 그리고 감정 관리는 자아 정체성의 혼란과 자기 소외로 이어질 수 있다(Hochschild, 1983; Tracy, 2000). ‘건조한 친절’을 연기한다고 응답한 상급종합 D는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업무”와 “솔직하지 못한 감정표현과 웃음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정서적 부조화와 소외, 소진을 경험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처럼 의료기관의 공식적인 감정노동 통제체계와 환자·보호자의 비공식적 통제가 결합되면서, 간호조무사들은 점점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숨기게 되고, 기관이나 환자가 요구하는 ‘건조한 친절’을 연기하게 된다. 이는 감정 규칙 내 표정과 말투만을 조정하는 표면 행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며, 그 과정에서 내면의 감정과 외현적 표현 사이의 괴리가 심화된다. 이러한 괴리는 장기적으로 정서적 부조화와 소외, 소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간호조무사의 ‘건조한 친절’은 감정노동을 통제하는 과정속에서 구성된 결과로 볼 수 있다.
3) 간호조무사의 직업 정체성과 감정노동
간호조무사는 의료현장에 필요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인력이다.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 교육 과정(이론 740시간, 실습 교육 780시간, 총 1,520시간)을 이수하고 국가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실제 FGI에 참여한 간호조무사들도 스스로 전문인력이라고 인식했으며, 기관에서 자신들을 단순 기능직으로 처우했을 때,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기도 하였다(의원 D). 이처럼 간호조무사들은 보건의료 전문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정체성은 이들이 열악한 현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이다. 그리고 경력이 쌓임에 따라 자신들의 전문가로서의 역량도 강화된다고 인식했다. 환자나 보호자와의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능력 역시 개인의 노하우이자 전문성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자신의 역량을 활용한 갈등 상황의 효과적인 해결은 직무 만족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좀 무시하는 것도 있고요, 저희를 인정 안 해주는 그런 상황이 또 자꾸 있으니까, 그럴 때는 좀 마음이 상할 때도 있죠, 사실은. 근데 저희는, 저희가 진짜로 필요한 인력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안 쓰려고 하고, 그냥 제가, 저희가 당당하게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의원 D)
우리 원장이 나이가 좀 있어 가지고 그런가, 환자들이랑 소통이 잘 이렇게 막 되는 편은 아니야. 근데 나는 환자들 대하는 방법을 또 알잖아, 나는. 그러니까 그냥 나는 눈을 딱 마주 보고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 거야. 그러면 잘 안 먹히던 것도 원장이 말할 때는, 또 그게 내가 말하면 먹히고, 환자들이 제 말을 또 따라줄 때가 있거든. 나는 그럴 때 약간, 희열 같은 걸 좀 느껴. (의원 A)
전문가로서의 정체성과 함께 간호조무사로서의 소명의식과 책임감은 이들의 노동을 지탱하는 핵심이다. 간호조무사들은 의료현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자신들의 노동이 가치 있고, 반드시 필요한 노동이라고 인식하였다. 이러한 소명의식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간호조무사들은 환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무리한 부탁을 하는 환자들도 있고, 욕하는 환자도 있고, 공격적인 환자도 있긴 한데요, 저는 간호조무사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환자 어려움을 좀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환자를 대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어려움이 있죠, 많이. 근데 저는 이걸 그냥, 뭐랄까. 단순하게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만은 잘 안 느껴져요. 이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협회 C)
이처럼 간호조무사의 직업정체성과 높은 소명 의식은 조직이 요구하는 감정 규칙을 단순히 ‘따르는 것’과는 명백한 차이를 보인다. 간호조무사는 조직의 감정 규칙을 ‘강제’로 따르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가 내면화한 직업 정체성과 소명 의식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존재이다. 즉, 현장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어려움과 갈등 상황 속에서도 간호조무사들은 자신이 가진 전문가로서의 역량과 직업 정체성, 소명 의식으로 이를 해결하며, 이러한 과정은 성취감과 직무만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는 에쉬포스와 험프리(Ashforth & Humphrey, 1993)가 논의한 것처럼, 개인의 자기 정체성과 직무 정체성이 높은 수준으로 일치할 때 감정표현이 외부 규칙에 따른 연기가 아닌, 역할 수행에 내재된 ‘자발적 표현’으로 경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간호조무사가 직업정체성과 소명의식을 내면화하는 것은 전문성 함양 외에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요구와 갈등을 조정하여, 이들의 업무를 지속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국민건강증진에 헌신, 자기계발 노력, 환자 중심 간호, 전문가로서의 책무 등을 강조한 「대한민국 간호조무사 윤리강령」을 제정하였으며, 2022년에는 간호조무사의 책임과 의무, 역할을 강조한 「대한민국 간호조무사 윤리선언」을 작성하여 간호조무사로서의 직업 정체성과 소명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간호조무사들은 스스로를 일정 수준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의료 현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근무 과정에서 축적되는 경험과 기술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숙련노동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이들의 노동은 종종 ‘고졸 출신의 저숙련 노동’으로 간주되었으며, 전문성보다는 낮은 학력과 대체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강했다. 협회 D가 의사로부터 “지금 네가 하는 일은 아무나 데려다 앉혀 놓아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는데, 이는 간호조무사를 언제라도 손쉽게 대체 가능한 주변적 인력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 역시 간호조무사를 간병 업무나 잡무를 담당하는 인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간호조무사가 할 수 있는 일임에도 간호사로 대체를 요구하는 태도 역시 간호조무사의 전문성을 낮게 인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간호조무사에 대한 인식은 의료기관 내부에만 한정되지 않고, 외부 사회에서도 ‘고졸 출신의 저숙련 노동자’라는 이미지와 결합하여 재생산되었으며, 언론에서 비춰지는 일부 간호조무사의 일탈이 전체 간호조무사의 일탈과 문제로 확대 재생산되기도 하였다. 그 결과, 간호조무사들은 자신의 처지를 “알바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존재”, “고졸 출신 직업 중 가장 대우를 받지 못하는 직업” 등으로 자조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법이 바뀌면서, 지금은 저희가 명찰을 달고 있거든요, 이제. 명찰에 보면 ‘간호조무사 000’ 이렇게 써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환자가 먼저 딱 하는 말이, “너는 됐고, 간호사 데리고 와” 이거예요. 제가 그냥 간단한 과정을 안내를 드리려고 하는 건데도, 간호조무사는 싫다는 거예요, 자기는. 이게 원래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예전에는 오히려 간호사보다 저희가 더 많이 했던 일이기도 한데, 그냥 거기에 ‘간호조무사’라고 적힌 그 명찰 하나 때문에 그런 식으로 무시를 딱 받으면… 진짜 그때는, 뭔가 제가 이렇게 그냥 확 무너지는 느낌, 그런 걸 받을 때가 있어요. (병원 A)
방송에서도 간호조무사를 소개를 하면, 꼭 그래요.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고졸 출신이라는 말을 제일 먼저 꺼내요, 꼭. 고졸 출신… 그걸 그렇게 먼저 강조를 하잖아요. 근데 또 웃긴 건, 그 고졸 출신이라는 이 타이틀 가지고 제일 차별 받는 직종이, 저는 또 저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진짜요, 공장에 들어가도 이러진 않을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는…(중략)…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뭘 해도, 그냥 ‘고졸 출신 간호조무사’ 이 이미지에서, 이거를 벗어날 수가 없어요, 도무지. 그건 우리가 만든 게 아니고, 사회에서 먼저 그렇게 프레임을 딱 씌워놓은 거예요, 우리한테 (상급종합 D)
이러한 낮은 사회적 인식과 함께, 최근에는 조무사라는 표현 자체가 부정적으로 사용4)되면서, 간호조무사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었다. 특히, 간호조무사는 <2025년 한국고용직업분류>에서 유일하게 직업명에 ‘조무사’가 들어간 직종인 만큼, ‘조무사’ 표현의 부정적 전환이 이들에게 더욱 집중적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의원 A의 간호조무사는 누군가 자신들을 ‘조무사스럽다’고 표현한 경험을 언급하며, 이러한 표현이 자신의 노동과 직업이 무시되고 멸시받는다는 인식을 더욱 강화했다고 진술하였다.
요즘 뭐, ○○스럽다 이런 말 많잖아요, 요즘. 혜자스럽다 하면 뭐, 많이 준다 이런 뜻이고, 창렬스럽다 하면 또 좀 비어 보인다, 별로다, 그런 거고요. 근데 저희한테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요. 조무사스럽다고. 그냥, 우리가 하는 일들이 다 조무사스러운 일들이다, 이렇게요. 조무사스럽다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그게. 간호사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다, 그 말이죠, 사실은. 그래서 하찮은 일이나 하는 사람,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일, 그런 쪽으로 보는 거예요, 그냥. (의원 C)
결국 이러한 낮은 사회적 인식 속에서 간호조무사들은 “국민이 아플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간호인력, 간호조무사!”라는 슬로건을 실제 현실과 동떨어진, 보여주기식 구호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필수 인력’으로 호명되면서도, 일상적인 근로 현장과 사회적 대우에서는 여전히 ‘언제든 대체 가능한 저숙련 인력’으로 취급받는 현실에서 이들은 무기력감과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즉, 간호조무사는 스스로의 강한 직업 정체성과 소명의식이 낮은 사회적 인식과 충돌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4) 간호·간병통합서비스와 감정노동
2016년 시작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보호자 등이 상주하지 아니하고, 간호사, 간호조무사 및 그 밖에 간병지원인력에 의하여 포괄적으로 제공되는 입원 서비스”를 의미한다(「의료법」 제42조의2). 간호조무사는 간호·간병통합병동의 핵심 인력으로 진료 및 간호 보조, 간병 업무를 수행한다. 통합병동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통합병동을 운영하는 병원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수요의 증가와 달리, 통합병동은 다른 근무 부서와 비교했을 때 매우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다. 통합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들 역시 과중한 업무 부담과 열악한 처우,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 등으로 인해 직무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실정이다(<표 6> 참조).
간호·간병통합병동과 그 외 부서를 교차 분석한 결과, 간호·간병통합병동 근무자의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 수준이 다른 부서에 비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간병통합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들은 병원 치료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았으며,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하는 감정노동 수준 또한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과중한 업무와 신체적·정신적 손상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다수의 간호조무사가 자신의 근로조건을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통합병동 간호조무사는 병동에 상주하면서 간호·간병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근무 특성으로 인해, 소속 기관으로부터의 감시를 경험했다는 응답 비율이 기타 부서에 비해 매우 높았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간호·간병통합병동 근무자들이 다른 부서에 비해 더욱 열악한 노동환경과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 그리고 강한 통제·감시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통합병동을 운영하는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급 의료기관의 간호조무사들은 공통적으로 통합병동 근무의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통합병동 간호조무사는 중증도가 높은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간호·간병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므로, 다른 부서 간호조무사에 비해 업무 강도가 높고, 간병 업무 수행 과정에서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받는 경우도 잦았다. 특히 통합병동의 운영 방식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일부 환자와 보호자는 간호조무사를 사실상 개인 간병인처럼 여기며 1:1 수준의 서비스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 명의 간호조무사가 최소 12명에서 최대 30명의 환자를 담당해야 하는 통합병동의 구조상 이러한 요구는 현실적으로 수용이 불가능하며, 이와 같은 과도한 요구는 간호조무사의 업무 부담과 정서적 피로를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간간통(간호·간병통합병동)에서 근무하다 보면요. 무리한 부탁을 좀 받기도 해요. 저희는 개인 간병인이 아니고, 수십 명을 상대로 통합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의료 인력이잖아요. 저희가. 근데 그런 저희한테, 그냥 개인 간병인한테 시킬만한 부탁을 또 그렇게 하기도 하고 그래요. (상급종합 B)
저는 통합 간호·간병의 맹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조무사 업무와 요양사, 간병인 업무가 서로 다른데, 통합병동에서는 이게 분업되어 있지 않고 다 포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무사의 업무만 많아지는 상황입니다. 조무사가 해야할 일도 아닌데, 저희한테 일을 시킵니다…(중략)… 환자나 보호자들도 저희에게 간병인처럼 대해주길 원합니다. 단순 간호조무 업무 외 간병인 업무까지 저희가 해주길 원하는 겁니다. 이런 점이 통합 간호 간병의 문제인 겁니다. (병원 D)
정부는 병원의 실정에 맞게 간호·간병통합병동을 운영할 수 있도록 통합병동 입원 대상에 대한 세부 기준을 별도로 두지 않고 주치의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입원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병원의 자율성은 상급종합병원과 일반병원 간 노동환경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통합병동 입원을 위한 최소한의 중증도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일부 일반병원들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입원이 거절된 환자를 재정적 이유로 입원시키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는 돌봄 부담이 점차 상급종합병원에서 일반병원으로 전가되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경제적 합리화라는 시장 논리가 통합병동 입원 결정에 적용되면서 어떻게 노동환경이 변화되는지를 보여준다. 병원은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병원에서 다 해준다’와 같이 통합병동 서비스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설명을 하고 있으며, ‘다 해주는 업무’의 부담은 고스란히 간호조무사에게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병원마다 통합병동에 입원할 수 있는 기준이요. 이게 다 좀씩 병원마다 다 다른 거 같아요. 느낌이. 제가 듣기로는 충남대병원 같은 데는요. 간호·간병 통합병실에 들어가고 싶다고 환자가 먼저 그렇게 요청을 하면 그때 이제 병원에서 또 조건을 단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거동이 가능하셔야 된다, 이렇게요. 그래서 거동을 하면은 통합병동에 들어가는 거고, 또 그게 안 되면은 그냥 못 들어가는 거고요. 그렇게 되는 거죠, 뭐. 그러니까 거기에서 한 번 퇴짜를 맞은 환자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또 다시 다 우리 병원으로 오는 거예요. 그냥. 우리가 다 받는 병원처럼, 그렇게요. (병원 A)
업무팀에서도 상담을 할 때 보면, 통합병동에 입원하면 보호자는 필요 없고 병원에서 다 해준다, 뭐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니까요, 저희 입장에서는 그게, 저희들 업무 부담이 더 커진다고,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병원 D)
이처럼 간호·간병통합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들은 환자와의 대면 빈도가 높고, 직접적인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다른 부서 간호조무사들에 비해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명확한 기준 없이 의사의 판단으로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현행 제도로 인해 상급종합병원에서 탈락한 환자가 일반병원 통합병동으로 유입되는 경향을 낳고 있으며, 이는 위험과 돌봄 책임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의료기관과 그곳의 간호조무사에게 구조적으로 전가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결국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가족의 돌봄 부담을 줄이고, 환자에게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으로 추진되었지만, 현장에서는 가족과 병원이 떠넘긴 돌봄과 감정노동이 간호조무사에게 집중되는 또 하나의 공간으로 작동하고 있다.
6. 간호조무사 감정노동 보호 및 지지체계
1) 공식적 보호제도
감정노동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감정노동 보호제도의 마련이 중요하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서적 부조화와 소진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2018년 감정노동자 보호를 골자로 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고, 이를 계기로 감정노동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제도가 도입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소속 기관에서 시행 중인 감정노동자 보호제도를 7가지 유형5)으로 분류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현재 가장 많이 시행되고 있는 제도는 ‘업무 중단 또는 담당자 변경(44.9%)’이었으며, ‘심리상담 지원(9.1%)’은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한편, 기관에서 감정노동 보호제도를 운영하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직장에서 감정노동 보호제도가 시행되고 있는지 모른다고 응답한 비율이 약 30%에 이르러, 상당수 간호조무사가 감정노동 보호제도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노동 보호제도의 이용 경험을 묻는 문항에서 감정노동 보호제도를 이용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해, 제도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감정노동 보호제도의 접근성과 활용 여건이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FGI 결과, 의료기관 종별로 보호제도 운영 수준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상급종합병원은 상대적으로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보호제도가 잘 구비되어 있었으며, 문제 상황 발생 시 간호조무사 개인이 대처하는 것이 아닌, 원무과 같은 공식적 부서에서 문제에 대처하였다. 그리고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해 있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상급종합 C, D, 의원 D)는 다른 기관에 비해, 조직적 도움과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의원급 의료기관은 공식적 보호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간호조무사 개인이 문제 상황에 대처해야 했다. 의원 B, C는 “원장이 나오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일임에도, 원장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오롯이 너의 책임이다”와 같은 말을 하면서, 문제 상황에서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원장이 잘못한 경우에도 간호조무사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어 대신 사과하는 사례도 있었다(의원 C).
이처럼 감정노동 보호제도는 제도적·형식적 차원에서는 일정 부분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 간 격차와 낮은 인지도, 극히 저조한 이용률로 인해 간호조무사의 실질적 보호 장치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의료기관 종별에 따라 공식적 보호제도의 도입과 운영 수준에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간호조무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과중한 업무 부담에서 비롯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근무하는 의료기관의 유형이나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간호조무사가 손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노동 보호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 사적 지지체계
공식적 보호제도가 부실하거나 이용이 어려운 경우 사적 지지체계는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직무 스트레스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이다(Viswesvaran, Sanchez, & Fisher, 1999; 정순옥, 김성재, 2013; 박으뜸, 최인이, 2023). 상급종합병원이나 일부 병원을 제외한 대부분 의료기관에서 공식적 보호제도가 부실한 만큼, 동료 집단 간의 공감과 지지는 문제 해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간호조무사들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동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어려움을 나누며 정서적 지지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정신적 긴장을 완화하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동료들의 위로와 격려가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사적 지지체계를 지원하기 위해 병원 내에서 소모임을 지원하는 사례도 있었다(병원 B).
동료들이 도움이 많이 되죠, 진짜. 힘든 일이 있었을 때는, 먼저 와서 “괜찮냐”고 이렇게 또 물어봐주기도 하고 그래요. 그리고 또 일이 갑자기 생겨서 근무 좀 바꿔야 될 때 있잖아요, 그럴 때도 동료들이 또 편의를 봐주는 편이고요. 이렇게 동료들이 도와주고 그러면, 그래도 좀 힘이 나고 힘든 일들 있던 것도, 좀 이렇게 잊혀지는 거 같아요. (병원 C)
이러한 사적 지지체계는 공식적 보호제도가 부재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간호조무사들이 현장에서 경험하는 문제를 부분적으로나마 완충해 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간호조무사들이 직면한 다수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이며,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사적 지지체계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적 지지체계를 동료들 사이의 관계 형성 차원에만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한 조직화가 필요하며, 이와 함께 공식적 보호제도 확충을 통해 간호조무사의 직접적인 권리 보장과 노동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7. 결 론
본 연구는 대전시 간호조무사들의 고용형태, 노동과정, 노동환경 등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간호조무사들이 수행하는 감정노동의 양상 및 감정노동으로부터 발생하는 피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감정노동으로부터 발생하는 피해들이 만들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을 노동과정 및 노동환경이라는 구조적 맥락을 통해 분석해 보고자 하였다. 설문조사 및 FGI를 분석한 결과, 간호조무사들은 전반적으로 낮은 임금, 고용불안정, 경력 불인정 등을 경험하고 있었고, 이러한 점들은 이들의 업무상 경험하는 감정적 스트레스와 소진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종사하는 기관별 특성에 따라서 노동환경 및 그에 따른 감정노동의 양상에 있어서도 다소간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본 연구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간호조무사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책임감과 사명감, 전문성을 바탕으로 필수 의료인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환자 및 보호자의 욕설 및 폭언, 무리한 요구는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었다. 그리고 낮은 사회적 인식과 편견은 노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더 심한 감정의 손상을 경험하게 하고 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둘째, 열악한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은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었다. 특히 노사관계의 형식이 잘 정비되지 않은 소규모 의원들은 5인 미만 사업장으로서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하고 있어서 간호조무사들의 노동권 보호가 쉽지 않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병원 및 종합병원 등에서는 경력불인정과 더불어 고용불안정이 공고화되어 있어 임금 및 노동환경의 열악함이 지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노동조합 설립 또한 쉽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불구하고, 간호조무사를 보호하고 지지해주는 공식적인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아 대부분의 간호조무사가 직장 내 사적 연결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공식적인 제도의 부재는 간호조무사의 낮은 노동조합 가입률과 함께 이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 해결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간호조무사가 경험하는 감정노동과 이로 인한 감정부조화와 소진이 개인 차원의 심리적 문제가 아닌, 과중한 업무 및 열악한 노동환경과 연결되어 있음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인권침해, 노동권 침해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있어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결국, 간호조무사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터의 근본적인 구조개선을 통한 전반적인 노동환경 향상과 함께, 노동자들 간 지속적 교류를 통해 서로의 문제를 공유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는 점을 본 연구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고 하겠다.
본 연구의 결과는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이 일반적인 서비스직의 감정노동과는 동일 선상에서 이해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먼저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돌봄 노동으로서, 단순히 친절한 것을 넘어 높은 수준의 윤리적 압력과 책임감이 수반된다. 그리고 간호조무사는 환자와 보호자뿐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기타 의료인력 등 조직 내 다양한 구성원과의 관계에서 감정 관리를 요구받는다. 또한 같은 간호조무사라도 어떤 의료기관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상이한 노동환경과 노동통제 방식에 놓여 있어, 이들의 감정노동을 단일한 경험으로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결국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성향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닌 이들이 처한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이 감정노동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고 심화시키는지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 연구는 감정규칙과 감정관리, 감정통제 등 감정노동에 대한 다양한 개념을 활용하여,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을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기존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에 대한 연구가 이들의 개인적 직무 만족이나 스트레스에 초점을 맞춘 것에 반해, 본 연구는 감정노동의 다양한 개념을 활용하여, 간호조무사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이 어떻게 감정노동을 심화시키는지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을 실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다만, 본 연구의 설문조사는 보수교육 참여자를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며, 보수교육 참여율이 낮은 의원급 종사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추가로 진행하였으나, 확률표집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표본의 대표성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본 연구는 의료기관 종별 FGI를 실시하여, 설문에서 포착하기 어려운 현장의 구체적인 경험과 맥락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간호조무사의 감정노동 경험을 노동환경과 연결하여 분석함으로써, 고용불안과 저임금, 고강도 노동, 노동 통제 방식 등이 감정노동을 어떤 방식으로 심화시키는지 밝혔다. 향후에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의료기관 유형별 조건 차이를 고려한 보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정책 연구가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대전광역시 노동권익센터에서 2025년도에 실시한 『대전광역시 간호조무사 감정노동 실태조사』의 조사결과 자료를 이용하여 간호조무사의 노동조건 및 감정노동을 분석하였다. 논문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주신 세 분의 심사자에게 감사드린다.
References
- 강은미·배진교·심상정·이은주·장혜영·류호정·윤미향·한정애·강민정·정춘숙·윤영덕 (2023.5.10). 의료법 일부 개정법률안(의안번호 21907).
- 국가통계포털 (2022.8.25). 성별, 시도별, 의료기관 유형별 간호조무사 수. https://kosis.kr/
- 김희진·김혜영 (2017). 요양병원 간호사의 감정노동, 직무 스트레스 및 전문직 삶의 질. <성인간호학회지>, 29(3), 290-301.
- 대전광역시 (2024.10.4). 대전시 내년 생활임금 1만 1,636원 결정. 대전광역시 보도자료, 1.
- 대한간호조무사협회 (2022.3.17). 대한민국 간호조무사 윤리선언. https://klpnacademy.or.kr
- 대한간호조무사협회 (2025.11.16). 대한민국 간호조무사 윤리강령. https://klpnacademy.or.kr
- 박으뜸·최인이 (2023). 보육교사의 노동경험과 감정노동: 대전시 어린이 집 보육교사의 사례를 중심으로. <사회과학연구>, 34(1), 195-224.
- 양갑석·조성제 (2014). 간호조무사의 직무영역별특성이 직무만족도와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 서울시 의료기관 근무자 중심으로. <Journal of the Korea Academia-Industrial Cooperation Society>, 15(5), 2859-869.
- 이문재·최만규 (2011). 의사와의 관계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갈등수준 비교. <Journal of the Korea Academia-Industrial Cooperation Society>, 12(11), 4844-4851.
- 이정훈·공선영·김향수·나영명·김정우·김남수·박두진 (2017). <보건의료산업 감정노동 연구>. 서울노동권익센터.
- 정경은 (2023). 경력단절 중장년 여성의 간호조무사 진입과 이탈, 정착의 서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슈페이퍼>, 2023권 12호, 1-23.
- 정순기·이시균·정재현·박세정·홍현균·김새봄·이혜연·박승훈·박미화·박비곤·김진성·이선호·공에림·김정현·윤자영·전병유 (2024).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 2023-2033>. 음성군: 한국고용정보원.
- 정순옥·김성재 (2013). 임상간호사의 감정노동과 사회적 지지가 소진에 미치는 영향. <간호행정학회지>, 19(5), 555-566.
- 최낙현 (2017). 노동조합의 기능: 일자리 만족도와 고용안정에 미치는 영향. <사회과학연구>, 28(2), 281-298.
- 한상근 (2016). 감정노동의 직업적 특성에 관한 연구. <노동연구>, 32, 5-27.
-
Ashforth, B. E., & Humphrey, R. H. (1993). Emotional labor in service roles: The influence of identity.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18(1), 88-115.
[https://doi.org/10.2307/258824]
-
Brighton, L. J., Selman, L. E., Bristowe, K., Edwards, B., Koffman, J., & Evans, C. J. (2019). Emotional labour in palliative and end-of-life care communication: A qualitative study with generalist palliative care providers. Patient Education and Counseling, 102(3), 494-502.
[https://doi.org/10.1016/j.pec.2018.10.013]
-
Erickson, R. J., & Grove, W. J. (2008). Emotional labor and health care. Sociology Compass, 2(2), 704-733.
[https://doi.org/10.1111/j.1751-9020.2007.00084.x]
- Freeman, R. B., & Medoff, J. L. (1984). What do unions do? New York, NY: Basic Books.
-
Hochschild, A. R. (1979). Emotion work, feeling rules, and social structure.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85(3), 551-575.
[https://doi.org/10.1086/227049]
- Hochschild, A. R. (1983). The managed heart: Commercialization of human feeling.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Hult, M., Lappalainen, K., & Kangasniemi, M. (2021). Living a calling in precarious employment: An integrative review of consequences on professional and personal lives. European 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 Nursing, 2(1), 39-53.
-
Huynh, T., Alderson, M., & Thompson, M. (2008). Emotional labour underlying caring: An evolutionary concept analysis. Journal of Advanced Nursing, 64(2), 195-208.
[https://doi.org/10.1111/j.1365-2648.2008.04780.x]
-
Jun, S. (2025). The moderating effect of reward satisfaction between job overload and emotional labor among nurses in small and medium-sized hospitals. International Journal of Innovative Research and Scientific Studies, 8(9), 257-265.
[https://doi.org/10.53894/ijirss.v8i9.10662]
-
Lee, G. (2015). Korean emotional laborers’ job stressors and relievers: Focus on work conditions and emotional labor properties. Safety and Health at Work, 6(4), 338-344.
[https://doi.org/10.1016/j.shaw.2015.08.003]
-
Lewig, K. A., & Dollard, M. F. (2003). Emotional dissonance, emotional exhaustion and job satisfaction in call centre workers. European Journal of Work and Organizational Psychology, 12(4), 366-392.
[https://doi.org/10.1080/13594320344000200]
-
Lopez, S. H. (2006). Emotional labor and organized emotional care: Conceptualizing nursing home care work. Work and Occupations, 33(2), 133-160.
[https://doi.org/10.1177/0730888405284567]
-
Martin, S. E. (1999). Police force or police service? Gender and emotional labor. The 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 561(1), 111-126.
[https://doi.org/10.1177/000271629956100108]
-
Pierce, J. L. (1995). Gender trials: Emotional lives in contemporary law firms.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https://doi.org/10.1525/9780520916401]
-
Ren, Z., Zhang, X., Sun, Y., Li, X., He, M., Shi, H., Zhao, H., Zha, S., Qiao, S., Li, Y., Pu, Y., Fan, X., Guo, X., & Liu, H. (2021). Relationships of professional identity and psychological reward satisfaction with subjective well-being among Chinese nurses. Journal of Nursing Management, 29(6), 1508-1516.
[https://doi.org/10.1111/jonm.13276]
-
Sorensen, R., & Iedema, R. (2009). Emotional labour: Clinicians’ attitudes to death and dying. Journal of Health Organization and Management, 23(1), 5-22.
[https://doi.org/10.1108/14777260910942524]
-
Steinberg, R. J. (1999). Emotional labor since The Managed Heart. The 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 561(1), 8-26.
[https://doi.org/10.1177/00027162995610010]
- Steinberg, R. J., & Figart, D. M. (Eds.). (1999). Emotional labor in the service economy. The 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 561.
-
Taylor, S., & Tyler, M. (2000). Emotional labour and sexual difference in the airline industry. Work, Employment and Society, 14(1), 77-95.
[https://doi.org/10.1177/09500170022118275]
-
Torquati, L., Mielke, G. I., Brown, W. J., & Kolbe-Alexander, T. (2018). Shift work and the risk of cardiovascular disease: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including dose-response relationship. Scandinavian Journal of Work, Environment & Health, 44(3), 229-238.
[https://doi.org/10.5271/sjweh.3700]
-
Tracy, S. J. (2000). Becoming a character for commerce: Emotion labor, self-subordination, and discursive construction of identity in a total institution. Management Communication Quarterly, 14(1), 90-128.
[https://doi.org/10.1177/0893318900141004]
-
Umubyeyi, B., Leboul, D., & Bagaragaza, E. (2024). “You close the door, wipe your sadness and put on a smiling face”: A qualitative study of the emotional labour of healthcare professionals providing palliative care in nursing homes in France. BMC Health Services Research, 24(1), 1070.
[https://doi.org/10.1186/s12913-024-11550-7]
-
van der Grinten, T., van de Langenberg, D., van Kerkhof, L., Harding, B. N., Garde, A. H., Laurell, C., Vermeulen, R., Peters, S., & Vlaanderen, J. (2025). Detailed assessment of night shift work aspects and potential mediators of its health effects: The contribution of field studies. Frontiers in Public Health, 13, 1578128.
[https://doi.org/10.3389/fpubh.2025.1578128]
-
Viswesvaran, C., Sanchez, J. I., & Fisher, J. (1999). The role of social support in the process of work stress: A meta-analysis.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54(2), 314-334.
[https://doi.org/10.1006/jvbe.1998.1661]
-
Vyas, M. V., Garg, A. X., Iansavichus, A. V., Costella, J., Donner, A., Laugsand, L. E., Janszky, I., Mrkobrada, M., Parraga, G., & Hackam, D. G. (2012). Shift work and vascular events: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BMJ, 345, e4800.
[https://doi.org/10.1136/bmj.e4800]
-
Wang, F., Zhang, L., Zhang, Y., Zhang, B., He, Y., Xie, S., Li, M., Miao, X., Chan, E. Y. Y., Tang, J. L., Wong, M. C. S., Li, Z., Yu, I. T. S., & Tse, L. A. (2014). Meta-analysis on night shift work and risk of metabolic syndrome. Obesity Reviews, 15(9), 709-720.
[https://doi.org/10.1111/obr.12194]
-
Wharton, A. S. (1993). The affective consequences of service work: Managing emotions on the job. Work and Occupations, 20(2), 205-232.
[https://doi.org/10.1177/0730888493020002004]
-
Wharton, A. S. (2009). The sociology of emotional labor. Annual Review of Sociology, 35, 147-165.
[https://doi.org/10.1146/annurev-soc-070308-115944]
-
Zapf, D. (2002). Emotion work and psychological well-being: A review of the literature and some conceptual considerations. Human Resource Management Review, 12(2), 237-268.
[https://doi.org/10.1016/S1053-4822(02)0004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