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 경험: 돌봄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초록
본 연구는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국동포 이주민의 일 경험을 감정노동에 초점을 두고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하여 돌봄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동포 5인을 대상으로 질적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개인 선택과 함께 체류자격 제한이라는 한국 사회의 제도적 배경 하에서 돌봄영역으로 진입하였으며, 돌봄노동 진입 초기에는 업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였다. 둘째, 중국동포들의 감정노동은 이주 후의 재사회화 과정에서 습득한 감정규범의 영향을 받았으며, 심층연기나 정서적 몰입을 통하여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관리하지만, 감정부조화로 인한 스트레스로 몸 아픔 경험을 하였다. 셋째,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은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서적 어려움을 개인적으로 해소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정서적 지지를 얻는 것에만 머문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기 어렵다. 이 논문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돌봄노동의 행위적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간과되어온 돌봄서비스 영역에서의 감정노동을 조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고자 한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analyze the work experiences of Korean-Chinese migrants who provide care services, focusing on emotional labor. To this end, a qualitative study was conducted targeting five Korean-Chinese working in the care sector. The research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Korean-Chinese migrant workers entered the care sector under the institutional background of Korean society, which includes personal choice and restrictions on residency status, and there was a lack of information about work at the beginning of entering care work. Second, the emotional labor of Korean-Chinese was influenced by the emotional norms acquired during the resocialization process after immigration, and although they managed their negative emotions through deep acting or emotional immersion, they experienced physical pain due to stress caused by emotional dissonance. Third, Korean-Chinese migrant workers personally resolved the emotional difficulties caused by emotional labor. However, this method is difficult to view as a fundamental solution in that it only focuses on obtaining emotional support. The significance of this paper is that it seeks to shed light on emotional labor in the area of care services, which has been overlooked in Korean society by emphasizing only the behavioral aspects of care work.
Keywords:
Migrant Worker, Care Labor, Emotional Labor, Discrimination, Korean Chinese키워드:
이주노동자, 돌봄노동, 감정노동, 차별, 중국동포1. 서 론
본 논문은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이 돌봄 영역에서 경험하는 1) 감정노동의 양상과 2)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서적 어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하는 대응 방식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감정노동에 관하여 많은 연구가 수행되어왔지만, 이주노동자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특히 가정이나 병원에서 제공되는 돌봄서비스에는 다수의 중국동포1) 이주노동자가 분포하고 있지만, 이들이 수행하고 있는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전무하였다. 따라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 대응 방식도 사회적 관심 주제가 되지 못하였다.
개인과 고용관계를 맺는 돌봄 영역에서의 감정노동은 기업에서 수행하는 일반적인 감정노동과 구별되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돌봄 영역 속 사적 고용의 감정노동은 고객이면서 동시에 고용주가 될 수 있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장시간 동안 가정과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수행된다. 이는 일반적인 기업 서비스직의 감정노동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개방적이고 공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종료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사적 고용의 감정노동자는 작업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 기업이나 조직으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나아가 노동자가 이주민일 경우 이들은 병원이나 가정과 같은 공간을 특정 선주민 고객과 공유하며 지속적인 감정노동을 하게 되고, 이주민에 대한 차별 또한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감정노동자들과는 ‘다른 양상’의 감정노동을 수행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취하고 있는 대응 방식도 기업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반적인 감정노동자의 대응 방식과 다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본 연구는 중국동포 이주민이 경험하는 감정노동을 돌봄 사례를 통하여 분석하고, 감정노동에 대한 어려움을 어떻게 해소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지구화(globalization)와 함께 인구의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는 국제이주노동을 증가하게 하는 하나의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에 의하면 국제이주노동자의 수가 1억 6,800만 명에 이르며 이들의 노동력은 전 세계 노동력의 약 5%를 형성한다(ILO, 2022). 이주와 정착은 이출국과 이입국의 서로 다른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측면과의 연계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나타나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Castles and Miller, 2003/2013). 한국 사회에서는 1991년 외국인기술연수제도를 통하여 산업연수생들인 이주노동력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말부터 친척 방문을 시작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중국동포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입국이 크게 증가하면서, 경제적 목적을 위한 노동이주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이혜경, 정기선, 유명기, 김민정, 2006). 이를 계기로 1990년대부터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 수입국으로 변화하게 되었다(설동훈, 2000).
한국 사회의 고령인구비율은 2021년도 16.8%에서 2023년도 18.5%로, 합계출산율은 2021년도 0.808명에서 2022년도는 0.778명으로 나타나고 있다(KOSIS, 2024). 이처럼 고령인구 증가와 출생인구 감소는 한국 사회의 노동력 감소로 이어져 이주노동력 수입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구 고령화는 노인을 위한 돌봄 인력의 수요를 증가시켜 왔으며, 그에 따라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도 증가하고 있다. 2020년 3월을 기준으로 외국인등록번호 여부로 확인된 요양병원의 외국인 간병인 수는 전체 간병인 수의 46%로 확인되고 있다(김유휘, 이정은, 2022). 또한 2010년에서 2013년 사이에 실시한 통계청과 같은 정부 기관 등의 다양한 조사 자료에 의하면 국내에 고용된 이주가사노동자는 약 6천 명에서 최대 6만 명으로 추산된다(박민아, 2019, 76-77쪽).2) 이들은 1980년대 말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주가사노동자의 90% 이상은 중국동포로 나타나고 있다(박홍주, 2009).
이와 같은 돌봄 영역의 이주노동 증가는 사회학, 여성학, 노동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로 이어졌다. 그러나 기존 연구는 사회적응과 관련한 이주민의 지위(이해응, 2014)나 젠더·인종에 기반한 불평등 구조(손인서, 2020a), 이주노동력에 대한 고용과 실태(김유휘, 이정은, 2022; 이혜경, 2004)를 분석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또한 중국동포 이주민이 수행하는 돌봄노동 연구는 육체적 노동이라는 관점에 매몰되면서 감정노동에 대한 경험이 간과되었다. 돌봄노동(Care Work)을 감정노동(Emotional Labor)과 연계하여 분석한 선행연구(김송이, 2012; 박기남, 2009; 조윤득, 신현석, 박은앙, 2009; 최희경, 2011)들은 돌봄의 영역에 감정노동이 수반된다는 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연구대상이 국내 노동자에 한정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주노동에 대한 다각적인 해석의 필요성이라는 차원에서 이주민의 감정노동에 대한 경험적인 연구가 요청되고 있으며, 이들이 감정노동을 하면서 겪게 되는 정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방법을 구조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사적 고용으로 돌봄 영역에 종사하고 있는 내국인 노동자는 물론 이주노동자에게도 감정노동으로 인한 어려움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있어 다양성에 기반한 열린 시각을 제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본 논문은 먼저 중국동포 이주노동자가 돌봄 영역으로 진입한 배경과 진입 직후의 경험을 살펴보고자 한다. 돌봄 영역 진입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반되는 감정노동을 경험하게 되는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이들의 돌봄 영역에서의 일 경험을 감정노동에 초점을 두고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주노동자로서의 경험과 돌봄 노동이 이루어지는 특수한 노동환경이 감정노동과 연결되면서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분석해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감정노동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대응 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논문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2절에서는 이주의 증가에 따른 돌봄의 변화와 감정노동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고, 선행연구를 통해 이주민의 감정노동 관점에서 돌봄노동을 논의한다. 3절에서는 연구대상과 방법론, 4절에서는 이주민이 돌봄 영역으로 진입하는 배경을, 그리고 5절과 6절에서는 이주민의 감정노동 경험과 이에 대한 대응 방식을 분석한다.
2. 이론적 자원 및 선행연구
1) 이주의 증가에 따른 재생산노동과 돌봄의 변화
지구화로 인한 불평등의 확산 및 재생산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Giddens and Sutton, 2017/2018, 43-49쪽)되어 오는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지구화와 함께 재생산노동에서의 젠더적 노동 분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유급 여성의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사노동은 여성이 책임지고 있다. 여성은 전문 직업 활동과 가사일 병행이라는 이중노동을 하거나, 다른 여성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을 통해 가사노동을 책임지게 되는데, 이는 가부장제에 의한 젠더 불평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Parreñas, 2009). 이주여성노동자는 모국에서의 경제적인 빈곤이나 가족, 노동시장에서의 젠더 불평등으로 인해 국제이주를 선택한다. 노동력을 송출하는 국가와 수입하는 국가 간에는 세계화라는 거시구조와 가부장제가 함께 작동하면서 여전히 여성에게 재생산노동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김영란, 2007). 국제적 노동 분업은 젠더 불평등과 글로벌 자본주의 과정에서 이입국과 이출국 간에 동시적으로 형성된다. 노동 분업으로 이주가 결정된 노동자는 선진국의 중위계층 가사서비스 영역으로 진출한다. 가사노동을 하는 이주여성노동자는 모국에 두고 온 자신의 자녀 돌봄을 위하여 또 다른 가사노동자나 친척을 고용하게 된다. 재생산노동의 국제이주는 경제적인 발전에 이바지하면서도 한 국가 내에서 가사노동자 간에는 임금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사적 영역에서의 생산노동을 뒷받침하는 재생산노동(reproductive labor)에서 돌봄(care)은 어린아이나 환자 혹은 고령의 노인과 같이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타인 대상의 돌보기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이러한 돌봄은 개인적 유대와 함께 사랑으로 행해지는 무급노동으로 인식되어 왔다(류임량, 2016). 업무 수행을 위한 훈련과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유급화된 돌봄노동의 숙련됨을 인정하지 않게 되고, 이는 결국 돌봄노동의 저임금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환자나 노인 대상의 돌봄은 세계적으로 출생률 감소와 고령인구 증가, 자국민의 돌봄노동 기피 현상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이주노동력을 이용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스위스나 독일의 경우 플랫폼을 이용하여 이주노동 인력을 활용하는 것을 통해 돌봄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홍찬숙, 2021), 대만과 일본은 정책적으로 돌봄 영역에서 이주노동자의 취업을 허용한다(김유휘, 2020). 김유휘(2020)에 따르면 대만은 취업서비스법을 통하여 이주돌봄 노동력을 수입하고 있는데, 2020년 기준 25만 명이 넘었으며 그중 99%가 여성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개호보험제도를 통하여 자격을 갖춘 이주노동자를 내국인과 동일한 근로조건 하에 고용하여 노인 돌봄을 허용한다. 다양한 체류자격으로 개호 영역에 유입된 이주인력은 2020년 기준 165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향후 지속적인 증가가 전망된다. 한국 사회는 2007년부터 방문취업제가 시행되면서 가사도우미 등 법무부장관이 정하고 고시한 국민 생활과 밀착된 분야의 직종에서 재외동포(F-4)나 혹은 방문취업(H-2) 체류자격의 이주민이 취업할 수 있게 되었다(조성혜, 2020). 따라서 환자와 노인 돌봄 영역의 경우 이주 인력이 꾸준히 증가하여 2020년 3월을 기준으로 외국인등록번호로 확인된 간병인은 1만 6,080명으로 전체 간병인의 46%를 차지한다(김유휘, 이정은, 2022).
돌봄은 숙련 정도를 인정받지 못한 노동영역(류임량, 2016)이요, 공공부문과 비공식적 부문 시장 간의 임금 격차가 거의 없는 저임금 노동이다(김경희, 2009). 자의적인 고용관계와 직무 측정의 어려움, 인력 공급의 과잉 현상, 그리고 관계지향의 대면적 감정노동이 돌봄노동자로 하여금 저임금을 수용하도록 작용한다. 또한 한국 사회의 노인 돌봄과 같은 저임금의 돌봄 영역은 경력 단절이나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중·고령 여성들이 찾는 노동시장(윤정향, 2013)이라는 점에서 중국동포를 비롯한 이주노동자의 고용률이 점점 증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주노동자는 재생산노동의 국제적 분업과 돌봄노동의 특성 속에서 업무를 수행하게 되며, 특히 돌봄 영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는 이주국의 취업제도의 영향을 받게 된다.
2)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와 돌봄노동
중국동포의 뿌리는 명말청초의 조선인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들의 중국 이주는 1945년까지 이어졌다(조성혜, 2020). 이들은 조선의 재해로 스스로 이주를 선택하기도 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강제 이주의 역사를 안고 있다. 40여 년 전부터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역이동(return migration) 했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이주라는 기준으로 인하여 한때 외국국적동포에서 제외되기도 하였다. 중국동포들의 한국 사회 이주 배경에는 중국의 개혁개방이나 일자리 부족 그리고 한·중 수교와 같은 경제적·정치적 배경과 맞물려 있다. 친척 방문으로 시작된 이들의 이주는 브로커나 한국인과의 위장 혼인이 이용되면서까지 노동이주로 변하게 되었다. 중국동포의 일자리는 주로 제조업이나 건설업 그리고 음식점이 주를 이루는데, 이러한 제한된 취업 분야는 동질적인 민족이라는 동포 이미지에서 가난한 나라에서 돈 벌러 온 불쌍한 일꾼으로 변질된다(이정은, 2012). 한국 노동시장에서 방문취업(H-2)과 같은 중국동포의 지위는 신분적 상승이 어려워 다른 이주노동자와 처우가 비슷하거나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하게 된다. 같은 동포라 하더라도 유럽이나 북미와 같은 선진국 출신의 동포는 외국인고용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또한 같은 이주노동자라도 전문직 또한 외국인고용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따라서 방문취업(H-2) 중국동포는 동포이지만 한국인과 비교되는 외국인으로 차별받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선진국 출신의 동포와 전문직 이주노동자와 비교하여 차별을 받는다(조성혜, 2020).
한국 사회의 가사도우미 고용은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입주가정부가 감소하고 시간제 파출부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입주가사도우미를 원하는 가정이 늘었으며 이와 함께 간병을 희망하는 경우도 증가하면서 한국어 구사 능력과 유사한 외모, 중·장년이라는 탈여성성으로 중국동포 이주여성의 고용이 크게 증가하였다(이혜경, 2004). 중국동포 여성들은 적극적인 삶의 주체자로서 이주를 결정하여 여성화에 기여하지만, 중국에 두고 온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자녀의 탈선과 결혼생활의 위기를 마주하기도 한다(이혜경 외, 2006). 또한 미등록체류에 대한 두려움과 음식점의 고된 육체노동은 사적인 공간으로 인한 노출 위험의 감소와 가사일에 대한 견딜만한 노동 강도 인식으로 돌봄노동시장을 찾게 된다. 이들의 입주 돌봄 선호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고(이해응, 2014),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자리로 인식된다(손인서, 2020b). 이에 따라 한국 사회의 중국동포 이주가사노동자는 6만 명이 넘으며(한정우, 2017, 3쪽), 장기요양기관에 근무하는 중국동포 요양보호사는 외국인 전체 요양보호사의 64%를 차지하고 있다(김유휘, 이정은, 2022).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돌봄 영역에서 일 시작할 때, 한국 사회의 낯섬과 두려움으로 인해 열악한 노동조건을 인내하게 만든다(이주영, 2005). 또한 이주노동으로 몸 아픔을 경험하게 하지만, 이들은 가정부 일이 힘든 일이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자신들의 몸 아픔 현실을 비가시화하게 만든다(이해응, 2014). 게다가 이주노동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인식함으로써, 노동력 재생산 비용과 신체 손상에 대한 부담을 개인적으로 지게 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된다. 중국동포들은 돌봄이 개인적 적성에 맞거나 중국동포로서의 우수한 성향을 강조하면서 불평등에 맞서기도 한다. 그러나 자격 있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지만, 직무에 있어 실질적인 처우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중국인’이나 ‘조선족’과 같이 외국인으로 취급하여 열등하고 잠재적인 범죄자라는 시선으로 타자화한다(손인서, 2020a). 노동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제일 먼저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를 의심(조성혜, 2020)하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 경찰이 시위 참가자 중에서 유독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집중적으로 지켜보는 것(Silva, 2003/2020)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주와 함께 생애과정에 변화를 경험하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의 노동을 현재 시점에서만 행해지는 것으로 한정하고, 중국으로 돌아가 좀 더 나은 삶을 실현하는 미래를 위해 힘든 일을 견디게 된다(우명숙, 이나영, 2013). 또한 재생산노동의 낮은 지위에 대한 문제를 노동자라는 정체화에 따른 원인으로 인식하면서 내면화하지 않는다(이미애, 2020). 한국 사회 노동 현장에서의 이러한 중국동포 위치는 복합적인 차원에서 정의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중국동포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이나 기대는 이들이 수행하는 감정노동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주영(2005)의 연구는 중국동포 이주가사노동자가 고용주 가정의 생활문화나 고용주의 비합리적인 화냄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모두 맞춰야 하고, 이러한 태도가 노동의 일부로 간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동포들은 보살핌을 받는 이들의 원하는 바를 미리 알아차려야 하는 업무상의 특성으로 일터에서 늘 눈치를 보게 된다. 또한 고용주의 어린 자녀에 대한 할머니 역할과 같은 기대는 그 친밀감으로 노동조건이 나쁘더라도 이직을 하지 못하거나 장시간의 일을 견디며 수행하게 한다. 그러나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 수행하는 자신들의 가사노동을 열등한 위치로 간주하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한 기회구조와 세계화 속 자신들의 위치에 대한 직관적” 간파로 자존감을 형성한다(한정우, 2017, 14쪽). 또한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삶이 직업과 분리되어 독립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은 고용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연기를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정우(2017)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는 무식하고 복종하는 연기를 통해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이러한 전략이 이들의 위치를 계속해서 하위계층으로 예속한다고 보았다. 그의 연구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감정관리를 사회적 지위와 연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으나 깊이 있는 감정노동 연구로 나아가지 못한 아쉬움이 따른다고 하겠다.
이상에서 살펴본 선행연구들은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경험을 통하여 가정 내 수행되는 다양한 노동 경험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젠더적 노동분업과 이주의 여성화라는 관점에서 한국 사회에 높은 고용률을 나타내고 있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삶을 조명하고자 했다는 데 연구의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는 작업장에서 관리되는 노동자의 감정을 간과하고 있다. 고용주 가정의 생활문화를 일방적으로 따르고 비합리적인 화냄 앞에서도 기분을 맞춰주며 초과근무와 이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표현하는 감정에도 학문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하겠다. 나아가 이주라는 특수한 상황이나 노동시장에서의 위치 등이 중국동포 이주민의 감정노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다차원적인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3) 감정노동의 개념과 돌봄 영역의 감정노동
감정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며 사회구조와 사회적 행위 간에 관여하여 구조와 행위를 연결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사회적 규범처럼 규칙을 갖는다(Harris, 2015/2017). 즉 특정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화적 기대처럼 감정 또한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와 관련한 문화적 기대가 요구된다. 감정규범은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으로부터 크고 작은 제재를 통해 강요되기도 하며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사회화를 통하여 학습된다(Harris, 2015/2017). 이러한 감정규범에 따라 사회가 기대하는 감정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이 노력이 노동과 결합할 때 감정노동으로 정의한다(함인희, 2014). 이로써 기존에 단순한 인간의 본능적 측면이나 사회문화적인 구성물로 인식되었던 감정은 재화와 교환되는 하나의 노동 단위로 정의된다(Hochschild, 2003/2009). 이때 감정관리는 사적 영역에서 사회적 영역으로 조직될 뿐만 아니라 임금을 위한 감정노동으로 변형된다.
감정규범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때는 “연기”라는 가면을 쓴다(Harris, 2015/2017, 67쪽). 상호작용 전략으로 사용되는 연기는 두 가지 차원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 하나는 표면 연기로 자신의 감정과 다르게 연기하기 위해 목소리 톤을 다르게 하거나 주의 깊게 단어를 선택하거나 얼굴 표정, 신체적 제스처, 옷 입기 등의 전략을 사용한다. 다른 하나는 심층 연기로 여기에는 숨을 깊게 들이쉬거나 주먹을 펴고 숫자를 세는 신체적인 연기와 생각이나 이미지를 조작하는 인지적 연기가 있다. 감정노동자는 작업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 사회적 기대에 부합하도록 감정을 통제하며, 이때 자신의 감정을 관리할 때는 표면 연기와 심층 연기를 사용한다(Harris, 2015/2017, 120쪽).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작하거나 연기를 통하여 감정을 관리하고 이렇게 관리된 감정은 판매를 위한 노동 형태가 된다(Hochschild, 2003/2009). 이에 따라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은 노동 과정에서 이주국의 적응이나 일자리를 유지하는 등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며, 이때 감정노동을 지배하는 감정규범은 이주국 사회가 기대하는 감정으로 표현하기 위해 연기라는 전략을 통하여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결국 기업이나 조직에 속하지 않는 사적 고용관계 안의 이주노동자는 기업이나 조직의 통제가 아닌 이주 후의 재사회화를 통하여 학습된 감정규범의 제재에 따라 연기라는 가면을 쓰고 감정노동을 수행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감정노동자는 과도한 감정관리로 신체적, 정서적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혹실드(Hochschild, 2003/2009)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감정부조화(emotive dissonance)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와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고 보고 있다. 감정노동자가 지어야 하는 표정과 생각이 서로 달라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감정에서 소외될 수 있다. 고객 감동이 매출이 되고 매출이 인격이 되는 유통업계의 노동자나 익명성으로 고객 불만을 처리하는 콜센터 노동자, 각종 평가에 시달리는 금융 노동자 그리고 환자 감정을 우선시하는 병원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감정과 겉으로 표출하는 감정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정서적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감정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감정노동 측정 도구를 개발하고 산업재해로 보상하며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정진주 외, 2017). 그러나 감정노동자를 위한 이러한 대안들은 기업이나 기관에 속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제안된 것이어서 사적 노동관계에 있는 감정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제도를 이용함에 있어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또한 노동자가 이주민인 경우, 제도적 제약이나 정보 부족으로 공적인 치유프로그램 이용에 있어 더욱 소외될 수 있다. 따라서 감정부조화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개인과 고용관계를 맺는 감정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상술한 바와 같이 돌봄은 타인 대상의 돌보기 활동이다. 따라서 돌봄 제공자는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어린아이나 환자 혹은 고령의 노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또한 돌봄 영역은 돌봄 수혜자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직무상의 특징으로 긍정적 관계를 위하여 노동자 자신의 감정을 관리해야 하는 감정노동환경 속에 처하게 된다(김송이, 2012). 돌봄 수혜자와 돌봄 제공자 간의 친밀성이나 관심, 인간적 관계와 같은 정서적 관계를 포함하게 되는 것이다. 관계적 맥락에서의 돌봄 노동은 감정적인 차원의 부각으로 “돌봄받는 사람이 편안하고 즐거운 기분이 들 수 있도록 돌봄 제공자가 자신의 감정과 외양을 조절, 억압하는 일”이 된다(박기남, 2009, 77쪽). 이에 따라 돌봄노동은 서비스 수혜자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하여 혹은 서비스 수혜자의 마음을 맞추기 위하여 돌봄 노동자의 노력이 필요한 감정노동이 된다. 김송이와 박기남의 연구는 돌봄 영역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는 감정노동에 초점을 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돌봄노동을 육체적 노동에서 감정노동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해석함으로써 돌봄 노동자의 정서적 측면을 들여다보았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는 사적 영역에서의 선주민이 행하는 감정노동과 이주민이 행하는 감정노동의 양상이 사뭇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다루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이주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사회적 제도나 인식 등, 이주민이 처한 다양한 상황적 특성은 노동자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반되는 감정노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돌봄 영역에서의 감정노동을 단순히 돌봄 수혜자와의 관계 차원이 아닌 노동자가 처한 다양한 환경을 고려하여 해석의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게 된다.
최희경(2011)은 요양보호사의 감정노동을 연구하면서 기업 서비스직에서 수행되는 감정노동과의 일반적 특징과 차별성을 분석한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돌봄 관계의 특수성은 차별적 특징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돌봄 수혜자가 서비스 업무에 있어 무소불위의 존재인 고객과 달리 돌봄을 받는 약자로 돌봄 노동자를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돌봄 노동의 감정노동이 기업서비스직의 감정노동과 구별되는 배경에는 돌봄 수혜자를 중심으로 가족과도 친밀해야 하는 유사가족 관계라는 특징 속에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최희경은 더 나아가서 친밀과 사적 관심을 통하여 돌봄 노동자가 노인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행동을 통제하는 감정 권력을 작동시키는 것으로 분석한다. 즉 돌봄 노동자가 감정 권력을 이용하여 환자의 “부정적인 행위를 통제하거나, 적극적으로 관계를 주도”하는 것이다(최희경, 2011, 131쪽). 그의 연구는 조직에 의하여 강제되는 노동자의 바람직한 감정표현(강현아, 2002; 김종우, 김왕배, 2016; 류숙진, 2015; 신경아, 2009)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돌봄 영역에서 수행되는 노동자의 자발적인 감정표현을 분석한다. 그러나 감정노동이 감정규범의 제재를 받고 감정규범이 사회적 학습의 영향을 받는다(Harris, 2015/2017, 42쪽)는 점에서 감정노동은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작업장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노동자가 학습한 사회화의 결과로 사회가 기대하는 감정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이주국의 노동 현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이주노동자는 이주국이 기대하는 감정표현 규범에 지배를 받게 되며, 여기에는 좀 더 순응해야 한다는 감정규범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해리스(Harris, 2015/2017, 185쪽)가 주장한 바와 같이 “자발적이거나 솔직한 감정 상태에 대한 진술”도 결국 “사회화의 결과”가 되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선행연구들이 제기한 이론적 개념들을 배경으로 돌봄 영역에서의 감정노동을 선주민이 아닌 이주민의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은 이주라는 특성을 안고 한국의 돌봄 영역으로 진입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한국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스스로의 제재를 통하여 감정을 표현하고, 이때 연기는 감정을 관리하는 전략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는 이입국의 문화적 적응과 함께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도 모색하게 된다. 따라서 돌봄 영역의 사적 고용으로 사회적 보호제도로부터 소외된 이주노동자가 선택하는 대응 방식은 한국 사회 안에서 형성되는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 대응 문화로 확산되고 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연구대상과 방법
본 연구는 돌봄 영역의 요양보호사나 간병사, 보모와 가사도우미3)로 활동하면서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 5인을 연구대상으로 한다. 중국동포는 다양한 배경으로 한국 사회의 돌봄 영역에서 높은 고용 비율4)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이 다른 나라 출신의 이주노동자에 비하여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혹은 사회적 등에서 좀 더 높은 지위를 형성하지만, 이주민에 대한 차별은 유사하게 경험한다. 이러한 점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의 근원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한다. 결국 한국 사회의 이주돌봄노동자들 중에서 가장 많은 분포를 형성하고 있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에 대한 분석은 한국 사회에서의 이주민에 대한 차별의 양상이 매우 정교한 형태로 구조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하에서 수행되는 감정노동은 그 양상과 강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맥락 안에서 형성되는 감정노동을 조명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연구대상자 선정은 눈덩이 표집 방법(snowball sampling)을 활용하여 이주노동자 개인을 면접하고 그로부터 소개를 받아 다음 연구대상자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첫 번째로 인터뷰에 참여했던 이주노동자는 가사도우미와 요양보호사 일 경험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였다. 따라서 이후의 면접자는 간병 경험을 했거나 가사도우미로 일한 경험이 있는 중국동포 이주민으로 구성되었다. 연구에 참여한 중국동포 이주노동자 5명은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한 60대의 기혼여성으로 가내 상주의 돌봄 경험이 있다. 최영순과 윤미란은 시누이와 친정 고모의 초청으로 한국에 처음으로 입국하였으며, 김화영과 임정금은 관광과 의료로, 신명선은 연수생으로 입국하였다. 한국 최초 입국 시의 연령대로는 신명선과 윤미란이 30대에, 김화영과 최영순이 40대에, 임정금이 50대였다. 현재의 체류자격은 최영순이 귀화, 신명선이 F-5, 나머지 3명은 F-4이며, 임정금의 딸만 중국에 거주하고 있고 나머지 4명의 연구참여자 자녀들은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본 논문의 자료 수집 방법은 구술 생애사적 접근방식을 이용한 열린 심층 면접을 활용하였다. 생애사 연구는 특히 여성이나 소수민족과 같은 비특권 계층의 “목소리와 경험”을 드러낼 수 있다(윤택림, 2013, 165쪽)는 장점이 있다. 이주 배경과 이주노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측면이나 이주민의 사회적·정치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따라서 생애사적 접근방식을 이용한 심층 면접은 한국 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삶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한다(이희영, 2005). 또한 이러한 연구 방법은 연구대상자 삶의 사회적 환경을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감정노동과 연결 지어 이주민의 노동 경험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연구 안내문에는 이주노동에 관심이 있으며 이주노동자의 일 경험 중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 달라고 설명하였다. 연구참여자의 에피소드 중에 연구와 관련된 사례가 짧게 나오면 구술이 한 단락 끝난 후에 프로빙(probing)을 통하여 좀 더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면접이 시작되기 전에 연구대상자에 대한 개인 정보를 간단한 질문지를 통하여 확인하고, 연구 목적과 안내문을 통하여 연구 참여와 녹음에 대한 동의서를 작성하도록 하였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의 사적인 고용관계라는 특성에 따라 익명성과 비밀보장을 약속했음에도 혹시라도 신문 기사로 활용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고용주와의 관계성에 따른 조심성과 경계함이 강하였다. 이에 대한 보완으로 참여관찰을 통하여 노동자가 감정을 관리하는 연기를 살펴보거나 노동자와 고용주 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살펴볼 수 있겠으나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실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의 구술에 의지하여 돌봄 영역에서의 일 경험을 감정노동에 초점을 두고 맥락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모든 인터뷰 내용은 녹음한 후 전사(transcribed)하고 여러 회에 걸쳐 읽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 경험을 노동자의 생애와 연결 지으면서 심층적인 분석과 해석에 있어 감정노동과 연결하여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 면접은 2022년 12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진행하였으며, 소요 시간은 연구대상자 1인당 5∼6시간 정도 진행하였다. 분석 과정에서 좀 더 필요한 자료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질문을 통하여 보충하였다. 면접은 연구대상자가 주로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집중적으로 하였으며 장소는 연구대상자가 선정한 카페에서 진행하였다.
본 연구에 참여한 연구대상자의 일반적 특성은 <표 1>과 같다.
4. 돌봄 영역으로의 진입
본 장에서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이 돌봄 영역으로 진입하는 배경을 연구참여자의 구술을 통하여 알아보고, 이들이 돌봄노동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서 돌봄 영역 진입 직후 이주국의 새로운 작업장에 적응해야 하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가 업무 수행 초기에 마주하는 어려움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주어진 환경에서의 최선의 개인적 선택
윤미란은 한국은 일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의 조언을 듣고 한국으로 이주하였다.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아줌마 구함”이라는 말이 창문에 붙어 있다는 말을 듣고 구인 광고를 보고 식당에 취업하였다. 그러나 4년 동안의 김밥 말기와 샤브샤브 음식점에서의 냉동된 식자재 손질은 손가락 관절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손이 막 저리니까 뭐 식당 일 못 하겠어, 이제는 안 되겠어! 누가 가정집에는 따뜻하고 좋다 하길래 가정집에 갔지. (윤미란)
윤미란은 오랫동안의 음식점 일로 계속해서 일할 수 없을 즈음에 지인으로부터 가정집은 따뜻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돌봄 영역으로 진입하였다. 이주노동자에게 있어서 가사도우미 같은 돌봄노동은 노동 강도 면에서 식당보다 견딜만한 여성 일로 생각하게 된다(이해응, 2014). 또한 윤미란이 돌봄서비스를 50대 이후에 시작하면서 더이상 이직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경력의 마지막 단계로 인식된다(손인서, 2020b).
한국에 나올 때는 별 능력도 없이 나와가지고요, 한번은 거리 나가니까 전봇대에 그 천사라는 간병협회에 광고문이 붙었어요. 그래서 그걸 떼가 와서 나섰는데 그 일이 17년을 하게 됐습니다. (임정금)
임정금은 결혼 이후, 무역회사에서 일하였지만 전문 직종이 아니었으며 한국에서 홀로 머물며 일자리를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환자 돌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어렸을 때의 꿈도 영향을 주었지만, 한국에서의 간병 일은 특별한 자격이나 경력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임정금은 길가의 전봇대에 붙어 있는 간병인 모집 광고를 우연한 계기로 마주하면서 협회에 직접 전화하여 실버타운에서 간병인으로서 이주노동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17년 동안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가사도우미로 활동한 최영순은 가정집에서 일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였다.
도대체 대한민국에 할 게 뭐 있나? 없어! 뭐 있어? 일거리가 내가 아는 게 없더라고요. 아는 게 이제 모텔 청소하면 해봤으니 알고 그다음에 이제 식당일 하고 그다음에 이제 가정집 일밖에 없더라고요. 이 세 가지 중에서 내가 놓고 보면은 식당 일은 제가 못 한다고 안 가고, 모텔 청소는 내가 한 번 해봤으니까 못 하고, 그러면 오히려 천성 가정집에 가야 되겠구나! 다른 데는 갈 데가 없구나 하고! 그래서 가정집을 선택한 거예요. (최영순)
한국에서 어떤 일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몰랐던 최영순은 지인으로부터 어떤 일이든 원하는 대로 일자리를 알선해 준다는 직업소개소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중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서빙”이나 “모텔”이라는 단어는 이주노동자에게는 낯선 단어였다. 처음으로 소개받아 모텔 청소를 시작할 때는 모텔이 “뭐하는 곳인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출근하였다. 최영순은 직업소개소에서 알선하는 일자리는 많았으나 모텔 청소와 음식점 서빙 그리고 가정집 일이 전부였다고 구술한다. 중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모텔 청소의 노동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5개월 만에 그만둔 최영순은 가사도우미로 이직을 하였다. 이는 “대한민국에 할 게 없고”, “갈 데가 없어”, “가정집을 선택”함으로써 중국동포 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업종에 있어 제한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최영순의 경우처럼 이주여성노동자는 경제적 목적으로 한국 땅을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주 초기에는 일자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연구대상자의 경우, 가까운 지인이 알려준 한국의 직업소개소를 방문하면서 중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입주 가사도우미와 같은 돌봄노동을 제안받는다. 이러한 배경으로 연구참여자들은 스스로 돌봄서비스를 선택했다고 구술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국 사회의 배경도 맞물려 있다. 한국인 돌봄노동자가 출퇴근이나 시간제를 선호하는 반면,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입주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전문직 증가와 여성에게 강제된 돌봄 영역의 시장화는 사적 영역 노동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낮은 보수로 열악한 노동조건이 되면서 자국민보다는 이주 인력으로 눈을 돌리는 노동시장의 특성도 영향을 미친다(홍찬숙, 2021). 또한 한국의 사회적 제도 배경으로는 2007년 시행된 방문취업제에 따라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16개국 출신의 고용허가제에 의한 비전문취업의 이주노동자와 달리 사회복지서비스업, 개인 간병 및 유사 서비스업, 가구 내 고용 활동 영역에서 H-2 비자인 방문취업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중국동포는 2008년 체류자격 발급이 확대되면서 취업 활동 제한 범위에 속하지 않는 돌봄 영역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손인서, 2020a). 또한 중국동포는 국가자격증 취득으로 체류자격을 변경하여 이전보다 더 넓은 노동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 최영순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의 연구참여자는 취득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자격증 취득은 방문취업이나 재외동포, 영주나 혹은 귀화, 결혼이민으로 체류자격을 획득한 경우로 제한되므로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이러한 제도적 영향 아래에서 직업소개소나 다른 네트워크를 통해 돌봄 영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7) 따라서 연구참여자들은 돌봄 영역으로 진입한 배경을 개인의 선택으로 구술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한정된 일자리라는 주어진 환경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돌봄노동 진입 직후, 업무에 대한 정보 부족
중국동포는 자신들의 이주라는 특수한 배경으로 일자리에 대한 정보가 취약하여 취업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일자리를 얻은 직후에도 수행하고 있는 업무와 관련된 특성에 대해서 정보가 부족한 노동환경을 마주한다. 이러한 정보 부족은 낯선 일자리에 대한 적응과 함께 일하는 동안 어려움을 마주하면서 감정노동에 영향을 주게 된다. 입주 요양보호사로 활동했던 임정금의 경우, 돌봄 수혜자에 대한 정보를 전임자나 협회로부터 얻지 못하면서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거는 돈 문제가 아니라는 거! 이렇게 되면 이 할머니가 이렇게 엉터리였어! 이마에 쓸데없는 생각하고 그 고집을 써! 제가 나오면, 제 뒤에 사람이 또 이거 고통받고! (임정금)
임정금의 고용주는 새로운 간병사가 배정되면 자신의 돈을 훔쳤다고 누명을 씌우는 돌봄 수혜자였다. 임정금은 가정에 입주하여 환자를 돌보면서 이주국의 노동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에 고용주로부터 도둑으로 몰리게 되었다. 협회에서는 고용주 집안에 설치된 CCTV를 통하여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임정금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건이 잘 마무리된 이후에도 간병사를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임정금은 자신의 뒤에 오는 간병사가 또 “고통”을 받을 거라고 구술하였다. 이는 자기처럼 중국동포 이주노동자가 간병사로 오게 되면 자기가 느끼는 “고통”만큼 후임도 똑같이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영순의 돌봄 영역 진입 초기에도 취약한 정보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나는 할 수 없다면서 나도 정말로 지금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은데 나는 이 50만 원 못 물어주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없이 눈치 봐 가면서도 버텨야 된다고!...(중략)... 사람 들어온다고 하길래 나는 그 인수인계 간단하게 이제 어떻게 어떻게 한다 알려만 주고 다 할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래!. 오늘 하고 내일 하고 더 있어야 된다는 거야! (최영순)
최영순은 입주 가사도우미로 직업소개소에 수수료 25만 원을 주고 아이가 있는 가정을 소개받았다. 그러나 노동환경이 매우 열악하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만두기로 하였다. 그런데 직업소개소로부터 한 달 이내로 고용관계를 해지하게 되면 위약금 5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최영순에게는 50만 원이 큰돈이었기 때문에 이를 지불하지 않기 위하여 직업소개소의 요구대로 한 달을 일하였다. 최영순은 1주일 이내에 고용이 깨지면 직업소개소로부터 알선 수수료 전액을 환불받을 수 있었지만 이를 알지 못하였다. 또한 한 달을 채우고 바로 그만두고 싶었으나 자신이 생각하는 인수인계와 고용주가 요구하는 인수인계가 다르면서 고용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임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고용주의 요구대로 이틀을 더 일하였다. 최영순은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눈치” 보면서 한 달을 버텼으며 인수인계를 위하여 이틀이나 무급으로 연장근무를 하였다.
임정금과 최영순의 사례는 돌봄 업무 초기에 이주국의 낯선 작업장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중에 업무에 대한 정보 취약이 이들로 하여금 “고통”과 “눈치”로 “버텨야”하는 감정노동을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떻게 돌봄노동에 참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진입 배경으로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개인이 선택한 것으로 구술하지만, 상술한 바와 같이 여기에는 사회적 배경이 맞물려 있다. 이들의 돌봄 영역 선택은 지구화에 따른 국제적 노동 분업 하에서 강제되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여성들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50대가 되면 퇴직하는 중국의 사회적 구조, 그리고 중국과 한국의 경제적 차이는 여성노동자가 이주를 결심하게 하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경제적 약자로 이주한 이들은 선주민 여성들보다 가부장적 문화에 더욱 수동적으로 편입된다(이수자, 2004). 돌봄 영역의 시장화는 사적 영역에서의 노동과 낮은 보수라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할 이주여성노동자에게 눈을 돌리고, 이들이 동조건과 낮은 임금뿐만 아니라 여성적인 유순함과 복종 그리고 개인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가부장적 고정관념에 직면하게 된다(Castles and Miller, 2003/2013). 또한 연구참여자들의 구술처럼 이주국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정보 취약은 낯선 노동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노력과 함께 돌봄 영역에서의 일을 더욱 힘들게 한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이러한 노동환경은 선주민의 감정노동과 비교하여 좀 더 많은 감정노동을 수행하게 한다(Harris, 2015/2017).
5.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의 감정노동 경험
본 장에서는 중국동포 이주민이 감정노동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감정노동은 돌봄을 수행하는 한국인 노동자와 비교하여 기본적으로 동질적인 부분을 공유한다. 즉 돌봄 영역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노동이 수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동포는 한국인 노동자와 비교하여, 이주라는 노동자의 특성으로 인해 양상이 다른 감정노동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기업이나 조직에 소속하지 않은 돌봄 영역의 이주노동자는 이주 후의 재사회화 과정에서 학습한 감정규범을 통해 새로운 감정노동을 경험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1) 차별
아버지가 의사였던 신명선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동안 공부하여 아버지가 근무하는 병원에 간호사로 취업했다. 결혼 이후에도 직장생활을 유지하였으나,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경기도 용인에 있는 제조공장에 취업하였다. 이후 비자가 만료되었으나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자리를 옮겨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였다. 이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여 자진 신고하고 중국으로 돌아가 전에 다니던 병원에 재취업하여 1년을 일하였다. 다시 비자를 받은 신명선은 한국으로 와서 시간제 청소와 배달, 음식점 서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을 하였다. 돌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청소 서비스로 알게 된 노부부의 추천으로 보모를 시작하게 된 것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환자를 돌보는 데까지 이르렀다.
신명선은 노동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와의 차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해야 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제 코로나 때문에 딱 이제 (요양병원 밖으로: 저자주) 못 가게 된 거예요! 못 가게 됐는데 한국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제 보내줘요! 말 없이 보내주는데...(중략)... 그거 완전 차별이지! (신명선)
억양이나 외모 등 한국인에 완벽했던 신명선이 노동 현장에서 차별을 받는 이유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외국인등록증을 소유한 중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출신국은 “사회적 특성을 예측하는 변수로 간주”됨에 따라, 중국 출신 또한 한국 사회로부터 중국동포를 소외시키는 지표로 형성된다(Shin, 2016, p.192). 게다가 병원 규칙을 따르지 않아 코로나19를 확산시킨다는 중국동포에 대한 사회적 묘사는 이들에 대해 어떠한 경우에도 병원 규칙을 지켜야 하는 기대로 자리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인 돌봄노동자에게 허락되는 병원 외출은 코로나19 확산과 무관했던 신명선에게는 허락되지 않게 된다. 신명선의 사례는 병원 내 코로나19 감염을 중국동포가 퍼뜨린다는 사회적 인식에 따른 차별이며, 이는 사회구조 속에 내재한 중국동포에 대한 차별로 나타난다. 따라서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사회적 구조 속에 틀 지원진 부정적 이미지로부터 생산된 노동 통제로 해석할 수 있다.
신명선의 감정노동은 외출 금지라는 노동 통제에 이어 차별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표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명선은 임플란트 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치과를 가야 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로 외출이 금지되면서 한 달을 가지 못하였다. 외출 금지 규칙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인지하면서 불편함을 감내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규칙이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으면서 “차별”을 느껴야 했다. 이로 인한 감정표현에도 신명선에게는 평등하지 않은 규칙이 적용된다. 즉 외출 금지에 대한 욕구불만 표출금지에 적용되는 규범은 한국인 돌봄노동자에게는 너그럽게 예외를 인정하여 외출을 허락하지만 중국동포였던 신명선에 대한 감정규범은 보다 강하게 적용되어 외출 금지에 대한 욕구불만을 일탈로 간주하게 된다(Harris, 2015/2017). 따라서 한국인 돌봄노동자의 태도는 신뢰를 기반한 성실함으로 인식되지만 신명선의 태도는 부적절하고 직업 규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불만 표시에 대한 한국인과 중국동포에 대한 감정표현 규범이 서로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이에 따른 감정노동 양상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신명선은 중국동포라는 이유로 외출을 허락받지 못하는 차별을 받게 되고, 이에 대하여 “왜 누구는 보내주고 누구는 보내주지 않느냐”고 물어 볼 수 있지만, 차별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게 된다.
김화영은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하여 한국에 처음으로 입국하였다. 3개월 단기 비자로 머무는 동안 9개월 된 아기가 있는 가정에서 입주가사도우미로 지냈다. 집안 청소와 육아, 음식 준비와 함께 밤에 잠에서 깨어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는 일까지 아픈 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동안 숙식이 해결되었고 일도 하면서 병원비도 벌 수 있었다. 이 경험은 김화영이 수술 후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3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일자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돌봄서비스 대상 가정은 지인의 소개로 대림동에 위치한 직업소개소를 통하여 알선받았다. 두 번째로 입주한 가정집에는 두 명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김화영은 아이들과 잘 지냈으나,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 친구들로부터 중국에서 온 이모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태도에 변화가 왔다. 큰아이는 김화영에게 중국 이모가 맞냐고 확인하고는 놀이나 대화에서 김화영을 조금씩 배제하기 시작했다. 김화영은 이미 한국인 지인으로부터 “중국아!”라는 호칭을 통한 차별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김화영은 중국에서 온 동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유튜브를 보면서 한국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게 된다. 특히 아이들로부터 잘 모르는 단어나 은어를 듣게 되면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그 뜻을 이해하고 아이들과 원만한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또한 자신의 아이를 키울 때 요리했던 음식이 아닌 고용주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유튜브를 통하여 다양한 메뉴를 배우고 식탁을 차리기도 한다.
간병인 임정금은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병실에서 차별을 경험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하게 된다.
한 병실이래요. 한방병원인데 경상도 그분은 할아버지야! 70 넘었으니까. 그때 교포를 얼마나 무시하는지, 그 한 역사의 배경이 있는지 진짜 저도 상상도 하기 싫어! 제가 지나가다가요, 이래 이제 머리를 빗으로 이렇게 빗잖아요, 어이, 저 아줌마 머리를 왜 빗어! 제 곁에서 머리 빗는다고 소리치는 거예요! 저희는 머리 빗을 자유도 없고 또 이게 또 거울 같은 거 보는 거는 더 아니꼬운 거예요! 옆자리는 한국분이 있고 그런데 이분도 저랑 동갑인데 일을 하는 거를 봐서는 꾀나 부리고 그러는데 좋다고 그러는데, 저는 솔직히 정말 최선을 다 해도 그저 시비할려고 그러고, 싸울려고 그러고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러는 거예요! (임정금)
임정금은 돌보던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입원한 경상도 할아버지로부터 머리를 빗고 거울을 보는 일상적인 행위에 대하여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무시를 당하였다. 임정금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여 일하지만 “잘못한 것도 없이” 시비 걸고 싸우려 한다고 진술함으로써 중국동포에 대한 한국인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무시”의 고정관념을 구술한다. 임정금은 ‘조선족 간병인’이라는 이유로 한국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지만, “양심이 있고 도덕이 있어” 한국인을 똑같이 “무시”하지 않고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며 대한다.
김화영과 임정금은 “중국 이모”나 “중국아” 혹은 “조선족 간병인”이라는 칭호를 통해 한국 사회로부터 출신국에 따른 구별짓기를 경험하면서 소외와 차별의 감정노동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주국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중국동포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고용주와의 신뢰를 쌓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면서 감정노동도 강화된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한국인 노동자와 비교하여 동일한 업무에서 임금차이를 경험한다.
한국 사람하고 우리가 월급 차이가 4∼50만 원 차이가 나요. 한국 사람 월급 더 주고 그래서 왜 이렇게 월급, 일은 우리가 더 하는데 더 많이 하고 이러는데 왜 월급 차이가 이렇게 나냐 가끔씩 이러면, 뭐 근데 애기 엄마한테는 직접 이런 얘기는 못하죠. 우리는 그런데 이렇게 그 사람들하고 가끔씩 아파트 단지에서 이렇게 나가서 보면 아줌마들이 얘기를 하는 거 듣잖아요. 우리도 그러면 한국분들은 우리가 친해지면 그 얘기를 해요. 월급 얼마냐 이러면 우리는 얼마, 언니 얼마 받아? 우리는 더 받지, 한국 사람이니까! 얼마 얼마 받냐고 이래 하면 한 50만 원씩 차이 나요! (김화영)
이주국에서의 노동 대가는 김화영의 구술과 같이 한국인 노동자와 비교하여 공평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동포에게는 동일한 업무를 수행해도 돈을 더 적게 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적 기대가 있다. 이들은 지위가 낮은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동포들은 한국인 노동자와 비교하여 일을 “더 많이” 하지만, 4∼50만 원 차이가 생기는 노동의 대가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적 기대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을 추가로 하게 된다. 김화영은 고용주한테 자신의 임금이 한국인과 비교하여 왜 낮냐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임금 책정에 대한 부당함을 말하고자 하는 이주노동자는 해고에 대한 각오와 용기가 필요하게 된다. 한국 노동시장에서의 중국동포 위치는 방문취업(H-2)에서 재외동포(F-4)로 비자를 변경할 수 있는 정책8)이 시행되면서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재외동포(F-4)나 영주권을 취득한 중국동포는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상승이 관찰되지 않으며 오히려 방문취업(H-2) 중국동포 보다 급여가 더 낮거나 더 많은 노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Shin, 2016).
한국 사람들은 가정집에 하는 거 적어요! 한국 사람들은 적어!...(중략)... 근데 그분도 지 할 거만 딱 하고, 때 되면 딱 가고, 정말 그분은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시간 되면 가! 집에 가자, 가자, 가자, 그 사람은 딱 그래요! 그분은 그래!...(중략)... 청소기 빙 돌리고는 아! 난 좀 허리 아파 누워 있어야 되겠다, 하고 좀 누워 있고 이래! (윤미란)
그동안 윤미란은 차 마실 시간이나 휴식 시간도 없이 일하고 근무시간이 끝났어도 퇴근하지 못하고 무급의 추가 노동을 하였으며 몸이 아파도 표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노동자가 자기 할 일만 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지체 없이 퇴근할 수 있으며 일하면서 허리가 아프면 소파에 쉴 수 있다는 것을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를 보면서 알게 된다. 윤미란은 한국인 노동자의 일하는 모습이 자신과 너무도 달라 차별을 느끼면서 “생각해 보니까 힘들다”고 하지만, 한국인 노동자와 똑같이 행동하지는 못한다. 윤미란은 직업소개소로부터 돌봄서비스 가정을 알선받을 때 고용주한테 “대들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직업소개소는 “무조건 네!”하고, “이거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이렇게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따라서 윤미란은 돌봄노동을 수행하면서 정해진 업무 이외의 일을 시키거나 근무시간 이외에 호출을 하거나 휴식 시간을 주지 않거나 차를 마시라고 말해놓고 끊임없이 할 일을 주문하는 고용주를 향해 대들거나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게 된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직업소개소로부터 일자리를 알선받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 직업소개소는 매우 중요한 취업 통로가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하여 중국동포는 이주국의 재사회화 과정에서 직업소개소를 중요한 역할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소개소의 조언을 일하는 태도로 내면화한다고 볼 수 있다.
이주국에서의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근로자에 대한 다양한 차별 경험은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을 더욱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석션하고 치매 있고 없는 것이 다 있는 거는 교포 몫이고, 그다음에 독거하고 할머니 거동하고 좋고 하기 좋은 일은 한국인입니다! 한국 여사님 씁니다. 교포 씁니다 하는 데는 큰 불편 있는 환자들이라... 화상 환자, 특급 환자, 치매가 심해가 정신병 환자 비슷한 거, 여기 지금 내가 지금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내 지금 보여드릴 거예!. 매일 들어와요 매일...(중략)... 우리 교포는 그런 건 없어요...(중략)... 처음에는 무작정 한 번 토요일 날에 쉬러 가면은 갈 때 꼭 용돈 주더라구. 차비 해가 잘 다녀오라고. 근데 한국분은 지금 우리는 아예 안 주는 걸로 돼 있어. 거기 차비 우리는 안 줘요! 아예 한국 분이 가면 아예 그걸 준다 하고 각오를 하고 쓰더라고! (임정금)
임정금은 “돌보기 쉬운 환자”는 한국인에게 먼저 배정하고 “치매가 있거나 석션으로 캐어하기 힘든 환자”는 이주노동자에게 배정한다고 진술한다. 이는 사회적 지위가 더 낮은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에게 돌보기 힘든 환자를 배정하는 것이 더 적합다는 사회적 차별과 마주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차별은 한국인 돌봄노동자에게는 쉬는 날 집에 갈 때 1만 원 이상의 교통비 지급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중국동포일 경우에는 지급하지 않는 관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임정금은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 노동자와 비교하여 “정말 힘든 일”을 한다고 구술하고 있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에게 중증 환자를 배정하면서 더 어려운 일을 하게 되고 이에 따른 감정노동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러나 임정금은 이주노동자라는 위치로 이러한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단지 “개선”되기만을 희망하게 된다. 차별이 존재하는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중국동포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어떻게 표출할 것인가에 대한 감정규범에는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은 이들에게 훨씬 불리하게 적용되어 보다 더 “순응”하도록 함으로써(Harris, 2015/2017, 138쪽) 불만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환자를 돌본다는 감정규범을 더욱 강화한다. 따라서 감정규범의 제재를 받는 감정노동도 더욱 강화된다.
2) 이주 후의 재사회화와 감정노동 과정
감정규범은 해리스(Harris, 2015/2017)가 주장한 바와 같이 사회적으로 학습된다. 이주노동자는 이주국의 노동시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이주국이 기대하는 감정규범을 학습하게 된다.
근데 그것도 한 번 말하고 두 번 말하고 세 번째 말하고 자꾸만 막 하고 성질 내며 막 말하는데, 그러면 내가 여 들어오기 전에 말하는 게 있었잖아요! 그래서 무슨 말을 해도 말은 대꾸질하지 말고 그럼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래서 무조건 예,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러고!” (최영순)
한국에서 입주돌봄을 처음 시작하는 최영순은 직업소개소로부터 감정규범을 내재화하게 된다. 직업소개소는 주인이 뭐라고 해도 대꾸하지 말고 무조건 알았다고 말할 것을 요구했다. 중국동포 입주돌봄 채용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대로 무조건적인 순응이 묘사된다. 이는 직업소개소에서 “대한민국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중국동포에 대한 대한민국의 기대로 자리한다고 볼 수 있다. 최영순은 “한국문화를 잘 몰랐기 때문에 직업소개소에서 한 말을 따랐다”고 구술하고 있다. 따라서 일하는 동안 고용주가 비합리적인 말과 요구를 하여도 대꾸하지 않고 “예, 알았습니다”로 복종하였다. 이는 고용주의 기대에 마땅히 따르는 것으로 내면화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적극적인 저항이나 대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강현아, 2002). 여기에는 최영순이 중국동포이기 때문에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라고 직업소개소에서 그렇게 말한 것”으로 인식하면서 이주국의 적응을 위한 학습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점은 감정노동을 수행할 때 이주 경험이 없는 한국인 노동자와 비교하여 다른 양상의 감정노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최영순은 자신 스스로를 “중국동포” 이주민이라고 인지한다는 점에서 중국 사회의 감정규범이 아닌 이주국인 한국에서의 재사회화를 통하여 학습된 감정규범의 제재를 받게 되고, 이에 따라 직업소개소의 말대로 “예, 알았습니다”하면서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직업소개소의 말을 내면화하는 최영순의 사례는 이주국인 한국에서의 노동 현장 적응을 위한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직업소개소로부터 “대들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윤미란의 사례는 “주인하고 싸워봤자 좋은 일도 하나도 없고 나가는 일밖에 없고 다시 일자리 찾아야 한다”고 구술함으로써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영순과 윤미란의 사례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가 직업소개소를 통한 학습된 감정규범의 제재에 따라 이주국의 적응과 일자리 유지를 위하여 한국 사회의 기대에 부합하도록 감정노동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학습한 감정규범은 고용주에게 대꾸하지 않고 무조건 알았다고 순종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이들은 수수료를 착취하는 직업소개소를 만나도 혹은 자기가 입주하기 전부터 텔레비전을 많이 본 아이의 시력 나쁨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고용주로부터 말을 들어도, 추운 겨울을 난방 없이 전기요에 의지한 채 지내면서 무릎에 찬바람 불고 일하는 동안 콧물을 질질 흘려도, 하늘이 안 보일 만큼 일이 많아 힘들어도, 밤 10시 퇴근 시간에 일거리가 가득 주어져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 없이 인내하는 감정노동을 하게 된다.
혹실드(Hochild, 2003/2009)는 감정노동 수행 시,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기 위하여 연기라는 가면을 쓴다고 주장하였다. 즉 자신의 감정을 연기로 통제하여 사회가 기대하는 감정에 부합(Harris, 2015/2017)하도록 노력을 하고, 이러한 노력이 노동 현장에서 수행된다.
표현 안 해요. 표현은 절대로 안 하고 혼자 삭혀요. 없는 일처럼. 그렇게 다 하는 거죠. 여시처럼 그렇게 하는 거죠...(중략)... 그러니까 이제 정말로 내가 못 견디겠다, 이러면 이제 그만두는 거 겠죠. (신명선)
그때도 제가 얼마나 스트레스 받았겠어요...(중략)... 안 좋은 생각만 하다 보면 무슨 일이든 못하죠. 자꾸 자꾸 좋았던 일을 자꾸 되새기면서 그렇게 해야 일이라는 걸 하지, 안 좋은 생각을 하면 끝이 없고. (김화영)
신명선은 보모나 간병사로 일하는 동안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겉으로 “절대” 표현하지 않는다고 구술한다.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여 일을 그만두더라도 업무 중에 경험한 안 좋았던 일은 없었던 거처럼 생각하면서 혼자 삭히며 감정노동을 수행한다. 김화영 또한 업무 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감정노동을 한다. 이때 이주노동자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없었던 일로 치부하거나, 자신의 감정이 실제로는 좋지 않지만 좋은 것으로 생각하여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관념, 이미지를 조작하거나 조정”(Harris, 2015/2017, 80쪽)하는 인지적 심층연기를 통하여 감정을 관리한다. 이러한 감정관리 방법은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전략 중의 하나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르게 느끼기 위하여 관점을 변화시키게 된다. 그러나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이 이주라는 자신들의 특별한 상황으로 좀 더 강화되면서 이에 따른 심층 연기도 표현을 “절대”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돌봄 영역에서 수행되는 감정노동의 또 다른 특징은 감정노동의 대상에 고용주 가족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나는 빨리하기 위해서 내가 이제 이렇게 큰 데로 이제 솥에 먹거리 넣고 이래 잘 했어요. 그런데 외할머니가 어디 이런 데 이래하면 있잖아 전기세가 엄청 많이 나온다 하면서리 이런 데 하지 말라 하면서리 여기다 놓고 하면 얼마든지 하는데 왜 이리 큰 솥 놓고 하는가 하면서 그러더라고요!...(중략)... 그래도 저는 우리 식구 왔다고 내가 또 이래 인사 다 하고 정말 한 번도 인상 이렇게 그거 안 했어요. 언제나 잘 대해주고, 뭐 정말 내 성의껏 대해주고 그랬어요. (최영순)
최영순의 경우, 고용주는 물론 손주를 보기 위해 방문하는 고용주 가족으로부터도 전기레인지 사용이나 아기 옷 빨래 방법, 청소에 이르기까지 노동 통제를 받는다. 이때 고용주와 그의 가족은 중국동포인 최영순이 경제적·문화적으로 후진 나라에서 왔다는 편견이 자리할 수 있다. 즉 가사업무에 대한 서툼을 음식문화나 생활 습관의 차이로 보지 않고 중국동포 이주노동자 출신 지역의 낙후성으로 간주하면서 빈곤계층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한정우, 2017, 9쪽). 연구대상자들은 고용주나 한국인 지인으로부터 전기레인지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했다거나 심지어는 수박조차 먹어보지 못했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하였다. 이는 중국동포가 사는 연변이나 길림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취약할 것이라는 편견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동포 전체에 대한 이러한 편견은 중국동포 개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면서 노동 현장에서 차별을 경험하지만, 연구에 참여한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주와의 관계를 의식하여 면담 중에 ‘차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차별이라고 느낄 수 있는 비합리적 상황을 마주했을 때 최영순은 “정말 사람을 너무 무시한다 들고, 가치가 하나도, 우리가 여기서 일하는 가치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정말 속상”하다고 구술한다. 한국 사회에서 마주하는 차별을 차별로 의식하지 않고 ‘무시’나 ‘가치 없음’으로 인식하여 ‘속상’함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작업장에서는 겉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고용주의 방문 가족을 자신의 가족이 방문했다고 생각하고 대함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관리한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형성된 부정적인 감정을 가족이라는 소속감으로 감내하여 자신의 감정을 관리함으로써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과 같이 생각하는 정서적 몰입은 고용주와의 종속적 관계를 더욱 강화(손인서, 2020a, 121쪽)시키면서 불평등이 되풀이되는 기제로 작용한다. 고용주는 “가족과 같은 관계”를 통하여 오히려 권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협상을 차단하고 무급노동이라는 가족 이데올로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Parreñas, 2005/2009, 285쪽).
3) 감정부조화로 인한 신체적 건강의 상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정신적으로는 물론 신체적으로도 문제를 발생시킨다. 자신이 느끼는 것과 표현되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감정 사이에 부조화가 발생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경우, 감정불일치로 인한 긴장을 풀고 안정을 취하며 자기회복의 시간을 가져야 하지만 불가능하고, 반복되는 업무로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몸 아픔 경험을 하게 된다. 노동자가 이주민인 경우에는 보다 더 순응하는 방식의 감정규범의 제재를 받으면서 더 높은 강도의 감정노동을 수행하게 되고 이로 인한 압박과 우울, 피로감이 커지게 된다. 일례로 김화영은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동안 망막폐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병했으며 정기적인 치료가 필요했다. 신명선은 가사도우미로 일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뇌출혈을 경험했고, 후유증으로 여전히 오른쪽 몸이 저리다고 한다. 또한 허혈성뇌질환이 발생하여 다시 입원하기도 했다.
제가 많이 힘들었어요. 막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병도 걸렸어요. 사실 아파가지고 뭐라 눈에 망막폐쇄라는 병도 왔어요. 그래 지금도 계속 지금 치료를 하고 있어요. 정기적으로. 스트레스로 오는 병이다 보니까 또 스트레스 받으면 재발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김화영)
힘들죠! 매 힘이 없죠, 그때는 벌써 힘이 없고, 그리고 이제 오른쪽 마비가 왔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이제 저리고 지금도 이제 후유증으로 계속 저려요. 이제 저리고 그런 일이 계속 있어요. (신명선)
연구에 참여한 이주노동자들은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동안 얻은 질병의 원인을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한국 사회의 낯섬과 두려움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인내(이주영, 2005)하게 만들고 차별을 인내해야 하는 것으로 내면화(이해응, 2005)하며 노동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재사회화를 통하여 학습(Harris, 2015/2017)되는 규범에 부합하고자 노력을 하게 된다. 이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가 이주국의 노동 현장에 적응하거나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고 이러한 노력이 감정노동의 강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강한 감정노동에 따른 감정부조화는 긴장을 부르고 이러한 긴장의 누적은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과도한 스트레스가 몸 아픔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6.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의 감정노동 대응 방식
혹실드(Hochschild, 2003/2009)는 감정관리를 위한 노동자의 대응 양식으로 자신의 직무를 진심으로 내재화하거나 직무로부터 역할을 분리하거나 직무에서만 요구되는 행위라는 되뇌임을 계속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대응 방법은 감정이 과용되거나 과소평가되면서 상처받는 노동자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지위 보호막이 없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와 함께 동일한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면서 반복적인 고강도의 감정노동을 수행하면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대응 방식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이들은 공적인 제도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적으로 행하는 감정노동 대응 방식을 노동 현장 안과 노동 현장 밖으로 분류하여 이주노동자 개개인이 선택하는 방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노동 현장 내에서의 대응 방식
일부 이주노동자는 일하면서 자신만의 능력이나 기술을 개발하기도 한다. 업무 중에 감정을 관리하는 기술을 익힘으로써 대인관계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이다(Harris, 2015/2017). 숙련된 표면 연기와 심층 연기는 고용주를 비롯한 고용주 가족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일하는 곳을 보다 유쾌한 분위기로 조성하면서 이익이나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감정노동은 잠재적으로 의미와 보람을 유발하기도 하며 이전과 비교되는 좋은 성과가 나타났을 때, 만족스러운 결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이는 혹실드(Hochschild, 2003/2009)가 제시한 감정관리를 위한 노동자의 대응 방식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직무를 진심으로 내재화한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나오고 내가 나오고 그때 한 2년 나왔잖아요. 그다음에, 굴러떨어지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막 사고가 많이 났어, 남자 애들이라. 그날부터 그래 그다음에는 이모님 고맙다고 그러더라고. 사고 안 나고 잘 있었다고. (윤미란)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고맙다는 인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윤미란은 보모 계약이 종료된 후에 고용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아이들의 안전을 항상 먼저 생각하며 자상하고 평온한 감정을 표출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했던 감정노동에 대한 결과였다. 고용주는 고용관계를 해지한 이후에 윤미란이 얼마나 강한 감정노동을 수행했는지 비로소 알게 되면서 그에 상응하는 감사 표현을 하게 된다. 윤미란은 시간제로 가사서비스를 제공했던 시기에도 고용주로부터 일상적으로 선물을 받았다. 상자로 구입한 감자 등과 같은 식재료를 절반 나눠 받기도 하고, 핸드백이나 옷 등을 선물로 받기도 하였다.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언제나 온화한 표정으로 고용주를 대하고 일을 함으로써 이에 대한 호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윤미란은 고용주로부터 받는 칭찬과 일상의 선물을 통하여 자신이 수행한 감정노동에 대한 보람과 보상을 받게 된다.
회사 다니는데 아기 엄마가 일을 잘 해가지고 또 한 번은 상장을 또 타가지고 왔더라고요. 그러면서 저한테 먼저 갖다주는 거예요. 아기 엄마가 이모님, 이모님 제가 오늘 이런 상장 받았어요. 이모님이 우리 애들 잘 봐주셔서 제가 이렇게 일을 잘할 수 있어서 이모님, 너무 고마워요, 그러면서 저한테 봉투도 그때 주시고 그랬어요. 또 그럴 때는 또 저도 또 마음이 또 좋더라고요. 기분도 좋고 아이들도 힘들게 봐준 보람도 있고. (김화영)
김화영 역시 고용주로부터 칭찬과 함께 돈 봉투를 선물로 받았다. 아이들과 친밀한 상호작용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였으며, 이에 대한 노력의 결과로 아이들이 편안하고 행복하였다. 이로 인하여 고용주는 김화영을 신뢰하고 만족감을 느끼면서 보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보상은 김화영이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편안한 감정을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한 것에 대한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감정관리를 잘하는 직원에게 주어지는 팁과 같은 의미로 감정노동에 대한 평가와 연결 지을 수 있다(Harris, 2015/2017). 김화영의 대인관계 기술은 중국에서 경험한 16년 동안의 백화점 근무와 6년 동안의 교회 유치부 교사 활동이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백화점에서는 손님들한테 친절하라는 교육을 정기적으로 받았으며 복무 태도가 좋아 우수 사원으로 표창을 받았다. 또한 교회에서는 유치부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마다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아이들을 잘 돌보았고 공연 지도도 잘하여 무대가 끝나면 큰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개인과 고용을 맺는 돌봄노동은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형성하며, 이러한 불평등은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협상에서 더욱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만든다. 이주민이라는 신분적 차별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경제적 보상으로 감내하지만, 때에 따라서 고용주의 권위에 대한 전복적 행위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는 복종과 통제 속에 업무를 수행하면서 매우 드물게 자신의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효력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노동자가 이주민일 경우, 이들이 수행하는 감정노동은 많지만, 고용주를 향한 전복적 행위는 자국민 노동자에 비하여 강도나 횟수에서 두드러지게 낮게 나타난다.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을 노동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표출하여 고용주의 지시를 거부하는 전략은 사적 영역의 돌봄 노동이 개인과 개인 간의 서비스 제공이라는 업무상의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북어 코가 한 묶음 열 마리 딱 들어왔는데 그거에 벌레가 잘 생기잖아요. 여름에 한철 내가 밖에 베란다 가면 썩는 냄새가 자꾸 나. 그래가 여기에 자꾸 썩는 냄새가 나 어디서 썩을까 이거 뒤져 보니까 북어 북어에서 막 썩는 냄새가 나더라고. 그래 보니까 안에 벌레가 막 기다녀...(중략)...나는 벌레 무서워요... 내 몸에 기오를까봐 난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그랬어. (신명선)
고용주의 집에 선물로 들어 온 북어에서 벌레가 생기고 심지어는 썩어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썩은 북어를 치우는 일은 신명선의 몫이었다. 그러나 신명선은 벌레를 무서워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였다. 나약한 감정적 호소는 고용주의 과도한 복종에서 벗어나서 돌봄노동에 대한 감정적 일탈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적 호소가 환자를 돌보는 동안 단 한 번 있었다는 점은 이주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말해준다. 신명선의 노동시장에서의 낮은 지위는 고용주에 대한 감정적 호소 전략을 최소화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최영순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데 있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부정적인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아주지 않았던 고용주에게 섭섭함을 이야기한다. 이는 최영순이 입주 노동을 수년 동안 하면서 고용주로부터 신뢰를 받았기에 가능하였다. 노동자는 자신의 감정노동을 알아달라고 요구함으로써 고용주로부터 미안한 마음이나 죄의식을 유도하게 된다(Parreñas, 2005/2009). 그뿐만 아니라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자신만의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뭐를 바꿔서 한번 바꿔야되겠다 하면서 그러면서 내가 사모님 만나고 얘기했어. 오늘 저 이제부터 티비 좀 보겠다, 낮으로. 이렇게 하루 종일 혼자 이렇게, 이렇게 집안에 있고 나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있으니까 티비도 못 보고 있으니까 내가 막 우울증이 오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 저 이제 티비 좀 보면 안 되는가 하면서. (최영순)
최영순은 하루 종일 고용주 집에서 머물러야 했고 편한 마음으로 함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텔레비전은 고용주 아이의 눈 건강 때문에 시청할 수 없었다. 감정노동을 수행하게 되면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겉으로 표현되는 감정이 서로 다르게 되어 감정부조화가 발생하고 이러한 감정부조화는 긴장을 불러온다(Hochschild, 2003/2009). 노동자는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사회적 고립감으로 인한 외로움과 감정노동으로 인한 긴장감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최영순은 아이가 커서 유치원에 가게 되자, 아이가 없는 오전 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것과 운동을 위해 규칙적으로 외출할 수 있도록 요구하였다. 이러한 대응 방식은 이주노동자가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전략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이주노동자가 이주의 목적인 경제활동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감정노동에 따른 정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때 신체적 건강은 이주노동자가 소유한 유일한 자본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이주노동자는 신체적 각성을 통하여 강한 감정노동에 대응하게 된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게 되면, 업무 중에 경험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인내하는 노동자의 감정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아침 자고 나면 제가 순서가 있어요. 말초 신경부터 해가 그다음에는 이 몸 타는 거 해서 그다음에 대장 내장 이거 저기 그거 자극 주는 거 해서 그다음에는 이거 우리 고관절 부러지면은 죽을 때까지 이 고관절로 한 10%는 고관절로 많이 돌아가요. 고관절 다친 환자 중에 고관절하고...(중략)... 내가 밥을 안 먹어도 이거는 해야 된다는 이거 있어서. 그래서 이 몸은 아직도 막 이렇게 좀 유연해요. (임정금)
임정금은 환자를 보살피는 돌봄은 자신을 희생하고 순종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라고 구술하였다.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연약한 환자를 위하여 요양보호사9) 자신의 몸과 정신을 희생하지만, 요양보호사를 위하여 힘든 일을 대신해 주거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사람은 없다”(임정금). 따라서 임정금은 희생하고 순종하는 업종에서 일하는 만큼 자신의 몸을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밥은 안 먹어도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약 1시간 정도 스트레칭을 한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고 대장을 비롯한 내장을 자극하고 가장 중요한 고관절도 관리한다. 임정금의 신체 각성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는 고등학교 때부터 축적된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건강을 위해 몸을 관리함으로써 환자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위한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임정금의 또 다른 감정노동 해소 전략은 복종을 강하게 요구하는 고용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다른 데 가서는 다 참고 내가 최선을 해가 표현을 안 했어요. 근데 제가 이 OOO 어머니 상대할 때는 제가 하루라도 도와드리고 이 할머니와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 할머니를 다스려야 되겠다는 걸 머리에 딱 썼어요. 다스린다는 게 뭔가 하면 이 할머니를 제압하는 거. 압박을 해야 돼. 안 하면 절대,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니야. 그래서 제가 처음 이런 방법을 써봤는데 너무 효과적이었어요. (임정금)
임정금의 고용주는 복종을 매우 강하게 요구하는 환자로 감정노동이 심해질수록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게 되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대화 방법은 고용주와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로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Parreñas, 2005/2009). 임정금은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감정 권력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고용주가 긴장감을 조성하여도 관심을 주지 않거나 고용주의 특정한 행동에 대하여 친밀함을 표시함으로써 고용주의 부정적인 행위를 통제하거나, 적극적으로 관계를 주도하였다. 그는 이러한 방법으로 고용주를 압박하면 긍정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환자를 도울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감정을 권력으로 활용함으로써 복종을 강하게 요구하는 고용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으며 이는 곧 감정노동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전략이 될 수 있었다.
2) 노동 현장 밖에서 행하는 대응 방식
윤미란은 우연한 계기로 교회에서 전도 활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수업이 많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복지관에서는 이주민을 위하여 ITQ10)는 물론 블로그 만들기, 인스타 꾸미기, 영어 회화 등 다양한 강좌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었다. 윤미란은 주말을 이용하여 강좌를 들으면서 주중에 쌓였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완화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배우고 있는 학습 내용을 기억하다 보면 감정노동을 수행하면서 억눌렀던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고 감정부조화로 인한 긴장이 풀리게 되면서 다른 강좌들도 계속해서 신청하여 듣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배움을 통한 감정노동 대응 방식은 돌봄 영역에서 수반되는 감정노동 직무로부터 역할을 분리할 수 있는 혹실드(Hochschild, 2003/2009)의 전략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도 그때 그 컴퓨터 배우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풀렸어요. 딴 거는 왜냐하면 컴퓨터를 한 번 딱 배우고 오잖아요. 그러면 내가 엑셀이 뭔지 단어를 하나도 몰랐잖아요. 그러면 이제 그래서 일 끝나고는 집에 오면 그걸 생각하는 거야. 엑셀이 뭐지? 이게 공부에 대한 생각을 해야 되잖아요. 한 주일 동안 또 내가 이거 배운 거 생각해야 다음 날 가면 또 연이어 강의가 들어가니까 내가 모르니까 그동안은 계속 이걸 생각해야 돼요...(중략)... 그 돈의 흐름을 읽어라! 투자, 투자는 위험한 거, 리스크가 있다, 이렇게 해서 강의를 하잖아요. 근데 너네 경제 악화되면 어떻게? 경제가 돌아가면 어떻게 알아야 돼? 책 다 읽어야 해. 책도 읽어야 경제도 알고. 책도 읽어...(중략)... 그러면 그건 신문에 가 읽어야 돼. 신문을 꼭 읽어야 돼. 신문을 읽어. 이렇게 신문 내일부터 신문 읽어. (윤미란)
윤미란은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많았다. 윤미란은 이러한 시간을 통하여 한국의 문화를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구술한다. 이러한 생활 습관으로 인하여 윤미란은 이주국에서 공부를 통한 배움에 관심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인 전문가로부터 수강한 경제 수업을 통하여 책을 읽고 신문을 보며 주식을 사는 행위로까지 이어졌다. 게다가 윤미란은 인터넷을 통하여 중국 현지에 있는 동포들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하여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활발한 경제활동과 이에 따른 자산축적으로 이주국에서의 타자성을 극복한다. 윤미란의 이러한 전략은 스무 살부터 살아온 적극적인 경제활동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돌봄을 통한 감정노동은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인내하며 참아내게 된다.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문제를 지인들과의 만남이나 민간기관이라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해결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은 비슷한 일을 하는 지인들과의 만남을 갖거나 친한 지인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짜증이 났거나 억울했던 상황들을 공유한다. 또한 가까운 지인들과의 소통을 통하여 자신들이 처한 노동환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급여나 업무 등에 있어 공통의 노동기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전략은 감정노동으로 인한 문제를 약화한다는 점에서는 정서적 지지(emotional support)로 볼 수 있겠으나, 근본적인 해소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근데 저는 이제 해소하는 게 친구들하고 이제 전화하면서 이래 오늘 무슨 무슨 일이 생겼는데 막 이래가지고 내가 너무 속상해서 스트레스 받는다 어쩌나, 그러면 상대방이 저를 위로해 줘요. 아야 니가 그런 거 가지고 스트레스 쌓이지 마, 그러면 니만 손해다...(중략)... 저는 한국 분하고는 항상 조심스럽더라고. 말하는 게 안 되더라고. 안 맞아요! 안 맞아요! 또 말해도 서로 말귀를 못 알아듣고 이렇더라고요. (최영순)
진짜 그래서 제가 우리 또 친구들 또 여기 모였을 때 친구들도 가정집에서 일하는 친구들끼리 또 대화가 또 되거든요. 가끔씩 그래 모여 앉아서 얘기하면 우리 친구 한 애가 욕 잘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 XX는 일 다 안 하고 맨날 그 시시티만 쳐다본다냐 하면서. (김화영)
최영순의 가까운 친구는 자신과 고향이 같거나 마음이 서로 잘 맞는 중국동포들이다. 그러나 이들과의 전화 통화는 CCTV나 녹음을 통하여 고용주가 통화 내용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고용주의 집에서는 하지 않는다. 시장에 갈 때나 퇴근 이후 자신의 집에서 쉴 때 통화를 주로 하고, 통화 대상은 자신이 한 말을 다른 사람한테 전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놀이터 같은 곳에서 만난 가사도우미들과 인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데, 만약 가사도우미가 한국 사람이면 대화를 하지 않는다. 문화적 차이에 따른 소통의 어려움으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서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서적 불편함을 위로받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는 업무로 인한 과중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잃고 경제적인 손실을 초래한다는 일깨움을 받는다. CCTV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김화영의 경우에는 친구가 속마음을 대신 표현해주면서 정서적 위로를 받게 된다. 김화영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공적인 제도”를 이용해 본 적이 없다고 구술한다. 이는 중국에서 백화점 다닐 때도 비슷하였다. 따라서 그의 대응 방법은 중국에서처럼 지인들과의 사적인 만남을 통해 해소했던 습관이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임정금과 윤미란은 동포들로 구성된 단체를 통하여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였다.
문인협회 나가는 거 내가 뭐 능력이 있고 뭐 업적이 있어 가는 게 아니고 한 번 나가면 엄청 내가 살 것 같아요. 제가 친정집에 왔다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거 가면은 처음에는 내가 너무 수준도 없고 쓸 줄도 모르는 게 내 여와 뭐 해 하는 걸로 제가 저절로 꿀리가지고 내 자리도 못 찾고 정말 쥐구멍을 찾았어. (임정금)
시를 써 본 경험이 없었던 임정금은 우연한 계기로 다양한 문학협회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시를 쓸 줄 몰라서 부끄러웠으나 회원으로 가입하여 8년째 활동하면서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간단한 시를 쓰는 디카시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학 작품을 쓰기도 하고 자작시를 낭독하는 기회를 얻기도 하였다. 중국동포들로 구성된 문인협회는 서로 아끼고 존중해주며 반찬도 나누어 먹는 등, 마치 친정집에 온 듯한 느낌이다. 정기적인 문학 활동은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어, 환자가 잠든 시간에는 휴식 대신 병원 화장실의 세면대에서 시를 지을 만큼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중국동포들이 주체가 되어 조직된 문화단체에서는 한국인을 비롯한 다양한 전문 강사를 초빙하여 강의를 듣게 하거나 경복궁과 같은 고궁, 혹은 경주를 비롯한 전국의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도록 운영한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무료로 참여할 수 있어 경제적인 부담도 없다. 윤미란은 이러한 문화단체를 통하여 지인들과 강의를 듣거나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지식을 얻기도 하고 이야기 나눔을 통해 감정노동으로 쌓였던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거나 불만스러운 감정을 겉으로 표출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인내하고 일을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서비스 대상을 바꾸는 데 있어 감내해야 하는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수입이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직업소개소 등과 같은 중간 연결 업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나 가입비 등도 만만치 않다. 또한 일을 시작하는 곳의 고용주를 비롯하여 고용주의 가족이나 환경에 처음부터 다시 적응하고, 새로이 맺어야 하는 정서적 관계나 적응도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들이 서비스의 대상을 바꾸는 것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Parreñas, 2005/2009).
윤미란은 심화된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 때, 비자 만료로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서비스를 중단했던 가정으로부터 다시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윤미란은 감정노동이 심한 가정보다 육체노동이 심하더라도 감정노동의 강도가 약한 가정이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되어 서비스 대상 가정을 바꾸게 되었다.
근데 이 집에 출퇴근하다가 쌍둥이네 집에서 쌍둥이 엄마가 오라고, 오라고 문자 왔길래, 이 집에 지금 막 마음도 안 들고 막 스트레스도 스트레스 천지고 하니까 아이고 차라리 저런 집이 더 낫겠다. 힘들어도 마음은 편찮아요. 그 집에는 쌍둥이네 집에는 마음은 편해. 아기 엄마가 말은 잘 안 해. 잔소리 안 하고. (윤미란)
김화영은 가사도우미로 아기가 있는 집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 2시까지 일하였다. 하루는 일이 다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에 5분 일찍 퇴근하였다. 그러나 CCTV로 이를 확인한 고용주가 자신의 방으로 불러 앉게 하고는 왜 일찍 퇴근했는지를 따져 물었다. 고용주로부터 CCTV를 통하여 일상으로 노동 통제를 받았던 김화영은 그때의 기분을 교무실에 불려가 혼나는 학생 같았다고 하였다. 김화영은 월요일부터 근무를 시작하게 되어 있었지만 일요일 저녁에 출근하였다. 김화영이 없는 주말과 휴일 동안 설거지가 많이 쌓이게 되면서 월요일 아침 식사를 준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무시간이 아닌 일요일 저녁의 무임 추가 노동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이, 5분 일찍 퇴근했다고 나무라는 고용주의 태도에 인내의 한계가 오면서 서비스 대상을 바꾸게 되었다.
cctv를 보니까 5분 나갔다고 이모님 일로 오세요 하면서 자기 방에다 딱 앉혀놓고 하는데, 무슨 일 있어요? 얘기하세요, 하니까 말이 퇴근 시간이 몇 시에요? 딱 두신 거 알면서도 저보고 또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2시에요. 근데 왜 이모님 어저께 저기 2시 전에 나왔어요, 하는데 이게 기분이 참 그때부터 그렇게 기분 나빠가지고 정 떨어지더라고요, 너무 너무 그렇게 놓으니까... (중략)... 여기서 빨리 나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나오길 잘 했지 뭐. 거기서 계속하면 내가 병 걸리지. (김화영)
이렇게 서비스의 대상을 바꾸는 방식은 이주노동자가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므로, 자신들이 겪는 신체적 정서적 어려움이 정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사용되어 진다. 이후 김화영이 바꾼 서비스 대상은 10개월 아기가 있는 친절한 가정이었다. 돌봄노동자의 서비스 대상 바꾸기 전략에는 노동조건이 개선된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의 다문화 정책이 한국인과의 결혼을 전제로 하고 있어 제도의 혜택에서도 배제되고 있다(이해응, 2010). 가정 내의 비공식적인 사적 고용이라는 점도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데 있어 부담으로 작용 된다. 재외동포(F-4) 자격으로 자율적인 구직과 작업장 이동, 구직 업종의 넓은 폭은 다른 자격의 이주노동자와 비교하여 취업에 있어 장점이 있지만, 이들의 사적 고용관계는 산재보험은 물론 의료보험이나 고용보험제도를 이용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취업에 대한 신고의 부재를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신고하지 않는 이유가 노동자에게도 있을 수 있지만, 비용 부담으로 고용주도 이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공식적이고 치료적인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부재하게 된다. 따라서 공적인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이주민들은 개인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약화하는 방법을 모색하여 감정노동에 대응한다. 여기에는 노동 현장을 기준으로 대응 방식을 분류하여 해석할 수 있다. 노동 현장 내에서는 자신의 직무를 진실로 내면화하고 자신만의 감정관리 기술을 향상함으로써 보상을 받기도 하고, 고용주를 대상으로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기도 하며 스트레칭을 통하여 감정노동에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을 키운다. 노동 현장 안에서의 감정노동 대응 방식에서는 고용주를 대상으로 직접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노동자가 동일한 공간에서 계속해서 고용주와 시간을 공유하는 돌봄 영역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 현장 밖에서는 배움에 몰입하면서 직무로부터 역할을 분리하거나 사회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한다. 이러한 방법들이 모두 소용이 없게 되면 서비스 대상을 바꿈으로써 기존의 노동 현장을 완전히 벗어난다고 볼 수 있다.
7. 결 론
본 연구는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에 대한 다각적인 해석의 필요성으로 그동안 미진하게 연구되어 온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을 경험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돌봄 경험에 대한 심층면접을 통하여 돌봄노동으로의 진입 배경과 감정노동 경험 그리고 감정노동에 대한 대응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사회적 맥락 안에서 형성되는 이주민에 의한 감정노동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식당이나 모텔 청소에서 돌봄서비스로 이직하면서 자신 스스로 돌봄노동에 참여한 것으로 구술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도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적 제도는 돌봄 영역에서 종사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제한함으로써 중국동포 이주노동자가 돌봄 영역 진입에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돌봄이 나이를 먹어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되면서 이들을 감정노동자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하겠다. 또한 입주가 가능한 저임금 이주노동력에 대한 노동시장의 선호와 지구화와 함께 돌봄 영역에 강제되는 이주여성노동자에 대한 국제적 노동분업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겠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돌봄노동 초기, 이주국의 적응과 함께 업무에 대한 정보에 취약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감정노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둘째,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마주한다. 이들에 대한 노동 통제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중국동포에 대한 통제 이미지로부터 기인하게 되어 한국인 간병사에게는 허락되는 병원 외출이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동일한 업무에서 한국인 노동자와 비교되는 임금이나 휴게시간, 노동 중의 자율성, 환자 배정 등과 같은 노동조건의 차이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 강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입주 가정을 알선받으면서 접하게 되는 직업소개소의 대꾸하지 말고 무조건 “알겠습니다”라는 순종은 중국동포들이 이주국에서 재사회화에 따른 학습으로 내면화하면서 차별을 감내하고 노동을 하면서 한국 사회에 적응하거나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인내로 자리하게 된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은 인지적 심층연기나 고용주를 가족처럼 생각하며 자신의 감정을 조작하거나 관리하는 것으로 귀결되나, 감정부조화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로 인하여 신체적 질병을 앓게 되기도 한다.
셋째, 심화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이주노동자의 대응 방식은 공적인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개인 스스로 스트레스를 약화하는 방법들을 모색하며 극복하려고 한다. 노동 현장 내에서 이주노동자는 혹실드의 제언처럼 자신의 직무를 진실로 내면화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들은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순종하는 연기로 고용관계를 유지하는데 자신만의 감정관리 기술을 향상하면서 고용주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이끌어낸다. 또한 고용주를 대상으로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감정노동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도록 스트레칭을 통해 체력을 키우기도 한다.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은 감정관리를 잘하면서 선물이나 칭찬을 통해 보상을 받음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하지만, 복종하는 연기는 이들의 위치를 계속해서 하위지위에 구속하게 한다(한정우, 2017). 노동 현장 밖에서는 배움에 몰입하면서 직무로부터의 역할을 분리하는 전략을 사용하거나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하여 스트레스를 약화한다. 그러나 감정노동에 대한 대응 방식이 더이상 소용이 없다고 느끼게 되면 서비스 대상을 바꾸는 전략을 통해 이전의 노동 현장을 떠나게 된다.
감정노동은 육체적·인지적 노동에 이어 새롭게 정의된 노동의 한 단위이다(Harris, 2015/2017). 그동안 한국 사회의 다양한 학문적 분야에서는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의식과 사회적 이슈를 다루어왔으나 이주민이 수행하는 감정노동에 대한 관심은 매우 미비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육체노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기존의 이주노동 연구를 보완하고 보다 다각적인 해석의 필요성으로 이주노동자의 일 경험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의의는 다음 세 가지 차원에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감정노동의 주체가 선주민이 아닌 이주민을 대상으로 살펴보았다. 감정노동은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한 양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특히 이주에 의한 노동자의 지위는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행해지는 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Harris, 2015/2017). 즉 이주노동자는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로 인하여 보호막이 약하며 생각이나 감정이 덜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의 말이나 느낌에 주의를 덜 기울여도 된다는 선주민들의 사회적 태도는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을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노동 과정에서 이주국에 대한 적응과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이주노동자의 감정노동에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이주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선주민과 비교하여 다른 양상의 감정노동을 수행하게 된다. 이는 그동안 한국 사회의 감정노동 연구가 선주민의 직업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면 본 논문은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라는 감정노동 주체자에 초점을 두어 감정노동을 조명했다는 데 차이가 있다.
둘째, 한국 사회의 이주돌봄노동자 중에서 가장 많은 분포를 형성하고 있는 중국동포 이주민의 감정노동 대응 방식을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았다. 연구에 참여한 중국동포는 한국인과 동일한 조상을 공유하면서 다른 나라 이주노동자 보다 좀 더 높은 지위를 형성하지만, 이주노동자라는 특성으로 사회적으로 이미지화된 고정관념에 따른 차별을 경험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더 노력을 하게 되고 고용주와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이들은 돌봄 영역의 사적 고용 특성으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어려움을 공적인 제도를 통하여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해소 방법을 모색하여 대응하는 이주노동자의 사례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는 저출생·고령화 시대로 접어드는 한국 사회의 이주인력 공급이 더욱 다양11)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주노동자들의 감정노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환기하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사적 고용에 의한 돌봄노동을 감정노동에 초점을 두고 분석하였다. 돌봄은 서비스 제공자가 고용주나 고용주 가족과의 친밀한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면대면으로 상호작용하는 돌봄은 사회적이며 이에 따라 돌봄 영역에서 수반되는 감정노동도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나, 환자 혹은 움직임이 불편한 고령층을 돌보는 일은 단순히 육체적 노동만을 요구하지 않으며 이들을 대면하는 과정에는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감정이 존재한다. 노동자는 이러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연기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면서 사회화에 따른 감정규범에 부합하도록 노력을 하게 된다. 노동자가 이주민일 경우에는 이주 후의 재사회화를 통한 감정규범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겠다. 이로써 기업이나 조직에 속하지 않은 돌봄 영역의 사적 고용 노동자는 고객의 기분을 어떻게 맞출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노동자의 사회화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관리한다고 해석함으로써 기존의 기업이나 조직에 의하여 통제되는 감정노동 연구와 차이가 있다.
돌봄 영역에서의 감정노동은 외부에서 강제하지 않는다(최희경, 2011)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노동의 또 다른 양식인 감정노동은 향후 사적인 고용관계를 통해 노동자를 통제하는 미시적 차원을 넘어 사회, 경제적 맥락의 거시적 권력관계의 지형 속에서 분석하는 연구로 그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를 둘러싼 사회구조적 맥락을 통해 이들의 노동을 통제하고 복종하게 만드는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식을 분석해 보는 것은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감정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주저자의 석사학위논문을 대폭 수정, 보완하여 재작성되었습니다. 논문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신 세 분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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