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피해자 1, 2, 3세대들의 삶의 경험과 원폭피해 인식에 관한 질적 연구
초록
본 연구는 1945년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해 발생한 한국인 원폭피해자 1세와 후손들의 삶을 이해하고 생활실태를 파악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원폭피해자 1세 5명, 원폭피해자 1세의 후손인 2세와 3세 8명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주제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원폭피해자 1세와 그 후손들 모두 피해자로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건강과 경제적 측면에서 피해가 대물림 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에 인권과 명예회복차원에서의 1세 지원의 시급성과 2세와 3세 후손과 관련한 명확한 진상규명의 필요성이 논의되었다. 원폭피해자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응과 사회적 관심이 요구되는 가운데 본 결과를 토대로 이들의 권리와 복지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understand the lives and the actual conditions of the first generation and their descendants of Korean atomic bomb victims caused by the atomic bombs dropped on Japan in 1945. In-depth interviews were conducted with 13 atomic bomb survivors in total (five first-generation atomic bomb survivors and eight descendants of atomic bomb survivors). Through qualitative analysis, the experiences and meanings of the first generation and their descendants of the atomic bomb survivors were derived. Both the first generation of atomic bomb victims and their descendants recognized themselves as victims, which confirmed that the damage was passed down through generations in terms of health and economics. Accordingly, this paper discusses the urgency of supporting the first generation in terms of human rights and the restoration of honor, as well as the need for a clear investigation of the facts related to the descendants of the second and third generations. It is necessary to respond to the atomic bomb victims at the national level and take a social interest. This paper suggests a way to guarantee their rights and welfare.
Keywords:
Korean Atomic Bomb Survivors, The First-generation Atomic Bomb Survivors, The Second-generation Atomic Bomb Survivors, The Third-generation Atomic Bomb Survivors, Qualitative Analysis키워드:
한국인 원폭피해자, 원폭피해자 1세, 원폭피해자 2세, 원폭피해자 3세, 질적연구1. 서 론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지역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2차 세계대전이 종식과 함께 수십만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낳았다. 이들 가운데에는 우리나라 희생자 약 10만 명(일본 내무성, 1945)도 있었다. 당시 일본은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징병제’, ‘국민징용령’, ‘여자정신근로령’ 등을 통해 수많은 조선인들을 침략전쟁의 도구로 착취하고 있었다(이치바 준코, 2003). 억압적이고 잔혹했던 식민정책으로 고향 땅에서 살 수 없게 된 조선인들은 일본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등으로 건너갔고 1945년 8월 원자폭탄의 희생자가 되었다.
원폭 피해가 발생한 지 77년, 그리고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77년을 맞은 현재, 이들의 피해는 여전히 조선의 해방 신화에 가려져 역사적 피해자로 인식되지 못한 채(정미향, 2017; 이은정, 2019), 역사와 사회로부터 방치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정미향, 2017). 이들 원폭 피해자들은 대조군(일반국민)에 비해 암, 희귀 난치성 질환,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이 더 많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고, 의료이용과 의료비 부담 수준 역시 일반인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정연 외, 2018). 또한 피폭의 영향은 피해 당사자인 1세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피폭 영향이 유전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나 막연한 두려움으로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한 경우도 있으며, 이들의 후손인 2세 역시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높고 피해 사실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정연 외, 2018).
일본에서는 원폭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원폭의료법(1957년)과 원폭특별조치법(1968년)을 제정하여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는 자국민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으며 원폭피해를 입은 재한 한국인은 그 대상이 되지 않았다.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일본정부의 원폭 피해 구제로부터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조차 이들의 존재에 관심이 없었다. 국내에도 원폭피해자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 것은 1965년 일본민단(재일본 대한민국민단) 조사단이 재한 원폭피해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국에 파견하여 실시한다는 기사가 보도됨으로써 처음 시작되었다.1)
원폭피해자들은 한국정부에 재한피폭자 실태조사와 지원대책을 요구하며 1967년 합천지역에 처음으로 협회를 만들어 본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재한 원폭피해자들은 한국정부의 무관심 속에 일본 정부에 끊임없이 피해구제를 요구하였고, 그 결과 일본으로부터 일부 수당과 의료비 지원을 지급 받을 수 있게 되었으나, 여전히 자격을 얻지 못해 피폭자 인정소송을 벌이고 있는 이도 있으며, 이 지원조차 일본 정부의 차별로 일본 내 원호시책의 지원 수준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들에 대한 진상조사와 지원대책을 위한 법률 제정이 계속해서 무산되다 피폭피해가 발생한 지 70여년이 지난 2017년에야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17.7월 시행)」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조차 피해자 범위2)를 1세에 한정하여 후손들이 제외된 반쪽짜리 법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강승우, 2016.05.26.)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주로 정부지원 연구소나 시민단체에 의해 수행된 실태조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문경희, 2018). 국내에서 최초로 실시된 조사는 1974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에서 실시된 합천지역 피폭자 실태조사이다. 이후 1979년 민간단체인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전국단위의 재한피폭인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공공기관에서 최초로 실시된 조사는 199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실태조사로, 원폭피해자 2세의 수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처음 있었고,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하여 1, 2세의 실태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실태파악을 위한 예비조사를 실시하였으며,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분석 및 복지욕구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들에 대한 유전체 분석연구가 2020년에 착수되었다.
학계의 관심은 2000년대에 들어서야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조사연구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주로 1세의 구술증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진주, 2004; 정근식, 2005; 문경희, 2018; 석희정, 2020), 2세대 환우가 겪는 사회적 고통과 낙인의 문제를 다룬 연구(박성실, 2015), 2세와 관련해서는 2세의 구술사와 재판 관련 운동의 어려움(전진성, 2008) 등이 다루어졌으며, 재판 분석을 통해 피폭자 지원정책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위한 연구(오은정, 2018; 정용하, 2019)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 연구들은 1세대와 2세대 삶의 어려움과 국내 원폭피해자들의 정책 부재 등을 강조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원폭피해자에 대한 생생한 경험과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기 위하여 원폭피해자들과의 심층인터뷰와 자료를 중심으로 질적 연구 접근 중 하나인 주제 분석을 통한 질적 연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한 명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기존 원폭피해자 관련 연구에서 나아가 1세뿐만 아니라 2세, 3세 그 후손들의 피폭 관련 삶의 경험과 의미들을 함께 분석함으로써 원폭피해자인 1세와 이들의 후손들의 삶을 조망하고 이들의 복지를 증진할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2. 이론적 배경
1) 국내 원폭피해자 현황 및 지원 제도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될 당시 일본의 식민정책으로 인해 상당수의 한국인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다(히로시마 약 42만명, 나가사키 약 27만명).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 가운데 원폭피해를 입은 한국인에 대한 정확한 피해규모를 확인하기 위한 한일 정부차원에서의 공식적인 실증조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피폭의 범위나 시기적 기준이 불분명하게 적용되어 관련 현황 조사들의 현황 파악 내용은 매우 상이하다. 일본 내무성 통계(1945년)에서는 한국인 피폭자를 약 1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고 이중 5만명이 사망, 5만명이 생존하였으며, 4만 3천여명이 귀국하고 7천명이 일본에 잔류했다고 보고하고 있다(한계레, 2017.1.17.) 현재는 약 2018년 기준 2,283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보건복지부 보도자료, 2019.4.24.).
원폭피해자에 대한 지원 제도는 일본의 핵병기금지 평화건설 국민회의의 도움으로 1973년 원폭진료소(합천 보건소)를 설치하였고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이 시작되었다(경남발전연구원, 2013). 그 후 1981년 12월 1일 한국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와 일본 후생성(현재 후생노동성)은 1986년 11월 말까지 5년간 유효하다는 내용으로 ‘재한 피폭자 도일치료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여 도일 치료가 시작되었다(류제원, 조용혁, 지상현, 2020). 도일치료를 받은 원폭피해자는 5년간 349명으로 매우 제한적으로 운영되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방일시 한일 정부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위한 양국 정부 간 40억엔(당시 한화로 약 248억 원) 지원금 출연에 합의하여 본격적으로 국내 원폭피해자를 지원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경남발전연구원, 2013). 그러나 이는 일본이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하는 차원이 아닌 인도주의적 차원으로 정부가 아닌 대한적십자사에 지원금을 지불하고 집행을 위탁하는 형태로 사업이 계획되고 현재까지 이러한 사업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즉, 원폭피해자 복지사업의 주체는 정부가 아닌 대한적십자사이며(정연 외, 2018), 이 과정에서 후손에 대한 지원책은 마련되지 못했고, 한국 정부는 일본의 국가차원의 배상은 물론 보상도 요구하지 못했다.
현재 국내 원폭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지원 제도는 1세대에 국한하여 피폭자 건강수첩 소지자에 한해 진료비, 건강검진비, 장례비, 원호 수당 등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피폭자 건강수첩 미소지자 중에서는 원폭피해가 인정되는 사람에게 국민건강보험법이 정하는 요양급여중 일부 본인 부담금의 진료비 지원, 건강검진비, 장례비, 진료보조비가 지급되고 있다(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 2022.10.09. 접근). 이 외에 국내에서는 원폭피해자와 그 후손들의 복지향상을 도모하고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원폭피해자 협회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가장 많은 원폭피해자가 거주하고 있는 합천을 중심으로 1997년에는 피폭자가 거주할 수 있는 피폭자 전용생활시설(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개소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이후 한국 원폭피해자 쉼터인 합천 평화의 집, 합천원폭자료관이 개관하는 등,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복지와 권익 증진, 비핵 평화운동을 위한 노력들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2) 국내 원폭피해자 관련 선행연구
원폭피해자와 관련된 선행연구는 크게 실태조사와 이들의 삶의 심층적으로 조망해 낸 연구, 그리고 지원제도를 분석한 연구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실태조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1945년 원자폭탄으로 피해를 입은 한국인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는 가운데, 최초로 1974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에서 합천지역 피폭자 실태조사가(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 1972) 실시되었다. 이 조사는 합천지역이라는 한정된 지역에 거주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한계를 갖고 있으나 국내에서 실시된 최초의 원폭피해자 실태조사라는 측면과 피폭자의 호적부와 증언자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후 조사는 민간단체인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전국단위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1979년 재한피폭인 실태조사이다(한국교회여성연합회, 1979). 이 조사는 전국을 크게 4개지역(서울 143명, 경기 101명, 부산 106명, 합천 720명)으로 구분하여 실시한 전국 최초의 조사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한편, 공공기간에서 최초로 실시된 조사는 199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송건영, 김영임, 김태정, 1991)가 실시되었는데 1991년 당시 원폭피해자협회에 피해자로 등록된 2,307명 중에 1,982명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 전국단위의 대규모 조사가 이루어진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를 통하여 조사가 이루어졌는데(국가인권위원회, 2004), 이전까지의 조사가 1세대에 국한하여 진행되었다면 이 조사에서는 1세대(1,256명)와 2세대(1,226명)를 포함한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원폭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과 실태를 조사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리고 이후 원자폭탄 피해자 특별법 제정 움직임과 맞물리며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실태파악을 위한 예비조사를 실시하였으며(정연 외, 2018),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분석 및 복지욕구 조사를 실시하고(정연 외, 2020), 의과대학을 통해 이들에 대한 유전체 분석연구가 2020년에 착수되었다(한국원폭피해자협회, 2020).
또한,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원폭피해자들의 요구와 조례 제정이 맞물리면서 지자체 차원의 원폭피해자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경상남도에서도 ‘경상남도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 조례[시행 2014. 10. 10. 경상남도조례 제3930호, 2014. 10. 10., 일부개정]’ 제정에 앞서 2013년에 경상남도에 거주하는 원폭피해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 조사는 1세(666명)를 비롯한 2세(370명), 3세(120명)까지 조사를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경남발전연구원, 2013). 또한 경기도에서도 ‘경기도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 조례[시행 2019. 7. 16., 경기도조례 제6255호, 2019. 7. 16., 제정]’가 제정되면서 조례에 근거한 원폭피해자 실태조사를 2021년 실시하였으며(유병선 외, 2021), 원폭피해자 1세, 2세, 3세를 모두 포함한 양적조사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인터뷰도 병행하여 조사한 점에서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학계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주로 인터뷰를 통하여 그들의 삶을 드러내고자 한 연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선행연구로는 원폭 당시 상황에서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증언자료집을 분석하는 연구(장성환, 2017)가 있으며, 한국원폭피해자 1세대들의 자녀인 2세대 환우 가족이 겪는 사회적 고통과 낙인의 문제를 다룬 연구(박성실, 2015), 삼중고(‘식민지 지배’, ‘원폭 피해’, ‘방치’)를 겪어 온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삶을 다룬 연구(이치바 준코, 1999), 원폭피해자 개인의 생애사를 통해 건강치료의 도구이자 원폭피해자라는 낙인을 갖게 한 피폭자건강수첩을 가진 한 원폭피해자 1세대 개인의 삶을 생애사로 분석한 연구(석희정, 2020) 등이 수행되고 있다. 또한, 원폭피해자들을 억압하는 지정학적 거대권력에 대항하는 극복전략을 분석한 연구(류제원, 조용혁, 지상현, 2020)도 보이고 있다.
또한, 원폭피해자 지원제도에 대해 분석한 연구들도 존재한다. 우선 주목할 만한 연구로는 일본인 학자인 이치바 준코가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경남 합천의 1세대들의 역사적 자료들을 검토한 연구로 피폭당한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보상이 지닌 당위성을 입증해낸 연구가 있다(이치바 준코, 1999). 또한, 일본의 원폭 피해자 지원책 제도화의 과정을 분석하고, 새로운 자격범주로서 원폭피해자의 의미구성을 다룬 연구(오은정, 2018)가 있다. 원폭피해자 지원제도에 대해 전반적으로 분석하여 재한 원폭피해자 지원정책의 문제점을 분석한 연구(손종민, 2005)도 있다.
이들 연구들은 원폭피해자들의 몸과 삶으로 기억해 낸 살아있는 자료가 할 수 있으며, 원폭 당시와 현재까지 이어지는 삶은 물론 원자폭탄과 핵문제, 한국원폭피해자들의 보상운동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정근식, 2005).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원폭피해자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것은 몇 가지 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정미향, 2017). 첫째, 원폭을 둘러싼 한국적인 이유 내지 정서 문제가 있다. 원폭은 조국의 해방을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만행을 징계한 천벌의 상징의 의미도 있었다. 따라서 원폭피해자의 의미가 왜곡되어 버렸다. 둘째, 원폭피해자 문제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인 피폭자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고 비록 알고 있더라도 전쟁의 희생자 정도이다. 셋째, 원폭피해에 대한 인식 부족과 편견이 원폭 피해자 스스로의 실상 은폐를 낳은 문제이다. 원폭 후유증이 전염병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 특히 자식의 취직이나 결혼 등을 생각해서 피폭한 사실을 숨기는 사람이 많았다. 넷째, 기초 자료가 매우 부족한 문제이다. 원폭 피해자 실태에 관해서는, 피폭피해가 있었던 1945년 이후 25년 뒤인 1979년 전국단위의 최초 조사가 실시되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에 본 연구는 원폭피해자들의 후손까지 포함한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원폭피해자들과 그 후손들의 삶을 조망하고 그동안 이들이 겪어 왔던 사회적 무관심과 차별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원폭피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대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3. 연구방법
1) 질적연구 접근
본 연구는 원폭피해 당사자와 그 후손들의 원폭피해로 인한 삶의 경험과 원폭피해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지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질적 연구 접근을 통해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참여자들의 특수성과 희소성뿐만 아니라 본 연구의 목적이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연구참여자들의 경험의 의미에 관심을 두고 있기에 질적 연구 접근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2) 자료수집 및 분석방법
본 연구는 원폭피해 당사자와 그 후손들의 삶의 경험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심층인터뷰를 진행하였다. 2020년 7월 피해자 1세를 대상으로 사전 인터뷰를 한차례 진행했으며, 이후의 본격적인 연구는 기관생명윤리위원회로부터 연구승인(P01-202009-22-015)을 받은 후 실행됐으며 인터뷰는 2020년 10월 15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되었다. 인터뷰 대상자는 경기도의 거주 중인 성인 원폭피해자 1, 2, 3세로 모집은 (사)한국원폭피해자협회 서울 및 경기지부, 경기도 원폭피해자 협의회의 협조에 따라 지부와 협의회 측에서 협회 가입 시 사전 연락처 제공에 동의했던 원폭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모집공고를 송부한 후, 연구 참여 의사를 밝힌 대상자에 한해 진행하였다. 사전 인터뷰 참여자는 협회를 통한 개별 안내 이후 참여자의 자발적인 참여 의사를 확인 후 진행하였다. 심층인터뷰는 1인당 1-3시간 정도 참여자가 원하는 장소에서 진행되었고, 코로나-19 유행시기임을 감안해 예방 방역대책을 준수하여 실시하였다. 인터뷰 참여자는 모두 자발적인 의사로 참여하였으며, 연구진은 참여자에게 인터뷰 실시 이전에 연구목적과 사용 용도, 인터뷰 내용에 대한 비밀보장, 희망할 경우의 중단 가능성, 인터뷰 진행에 따른 위험과 이익에 대해 충분히 안내하였다. 참여자는 이에 대한 내용을 숙지하고 정보수집을 위한 녹음에 대해 사전 동의 및 연구참여 동의에 직접 사인한 후 인터뷰에 참여하였다.
인터뷰는 반구조화된 인터뷰로 진행되었다. 1세대의 경우 원폭피해 당시의 경험, 피해 이후의 삶, 원폭피해와 관련한 지원, 가정 내 원폭피해에 대한 인식 등을 폭넓게 다루었다. 후손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는 원폭피해 후손임을 알게 된 당시의 경험, 성장과정 및 현재의 어려움, 원폭피해에 대한 인식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분석 자료로는 심층인터뷰를 전사한 자료인 녹취록을 활용하였으며, 연구의 엄격성을 높이기 위하여 원폭피해 1세들의 사례집과 관련 자료 등을 참고하였다. 수집된 자료는 질적 연구 접근의 하나인 주제분석을 통하여 분석하였다. 주제분석(Thematic Analysis)은 질적 연구의 하나로 순수한 귀납적인 방법을 적용하여 이론이나 모델을 사용하지 않고 적용 가능하여 연구참여자들의 경험과 생각, 인식 등 주요 특징을 강조하거나 해설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며 참여자를 이해하고자 할 때 적용할 수 있는 연구방법이다(Braun & Clarke, 2006; Kiger & Varpio, 2020). 본 연구의 주요 대상인 원폭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그 후손들의 삶의 경험과 인식을 살피는데 본 연구방법이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Braun과 Clarke(2006)의 주제분석 6단계 과정에 맞추어 분석을 실시하였다. 1단계는 데이터와 친숙해지는 단계로 연구진들은 수집 자료를 반복적으로 읽으며 자료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고, 2단계로 초기 코드를 도출하였다. 연구진은 참여자들의 경험과 생각을 잘 드러내는 초기 코드를 도출하고 상호검토를 통해 중복되는 내용은 삭제하고 새로운 주요 코드는 추가하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3단계로 코드들의 유목화 과정을 통해 주제를 도출하였고, 4단계는 주제를 검토하기 위하여 코드와 분석자료가 주제를 잘 드러내는지를 검토하였다. 5단계로 최종 도출된 주제에 이름을 지정하고 6단계는 작성하는 단계로 주제별 주요 내용과 활용 인용문을 선별하였다. 전 과정은 연구자 간의 상호논의를 통해 분석의 타당성을 높이고자 노력했으며, 질적 연구를 공부하는 석·박사과정생 8인의 동료검증의 과정을 거쳤다.
3) 연구참여자
인터뷰에 최종적으로 참여한 이들은 13명으로 피해자 1세는 5명, 2세 6명, 3세 2명이 참여하였다.
피해자 1세의 일반적 특성과 개별 특이사항은 <표 1>과 같다. 현재 생존하고 있는 피해자 1세는 매우 드물다. 해방 후 귀국한 피폭자(약 5만명 추정)의 대부분은 사망하였고, 2019년 기준 약 2천여명이 생존해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원폭피해자협회, 2019). 그 중 경기도에는 약 180여명이 생존해 있다. 심층인터뷰를 통한 연구 진행방법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가능한 참여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한계가 있으나, 최종 인터뷰 참여자에는 당시에 대한 기억이 있는 초등학생이었던 참여자부터 태아였던 참여자, 그리고 성별이 고루 반영되었다.
피해자 2세는 6명, 3세는 2명이 참여했으며 연령대와 소속된 지부가 갖는 특이성을 고려하여 참여신청자 중 최종 인터뷰 참여자가 결정되었다(<표 2> 참조). 기호지부 소속의 참여자의 경우, 피해자 1세가 강제징용을 통패 피폭 피해를 입은 자로 징용과 피폭피해 관련 1세의 재판 등을 경험한 바 있다.
참여자 내에는 가족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참여자 1세의 b와 c는 남매지간이여, 참여자 1세 c의 자녀는 참여자 i, 그의 자녀이자 피해자 3세인 m으로 일가족 삼대가 포함되어있다. 이들에 대한 인터뷰와 분석은 가족의 특성이 아닌 피해자 1세와 2세, 3세 각각의 경험과 의미를 도출해낼 수 있도록 철저히 개별로 진행되었다.
4. 연구결과
1) 피해자 1세대의 경험과 인식
주제분석을 통해 최종 도출된 피해자 1세대의 주제분석 결과는 <표 3>과 같다.
① 일본 거주 배경과 피폭 당시 상황
∙ 식민지 역사의 희생자
원자폭탄 사건 발생 이전, 참여자들이 일본으로 가게 된 배경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와 관련 있었다. 참여자들의 가정은 당시 식민지 정책으로 인한 농촌 경제파탄으로 대부분 먹고 살기 힘들어서 일본으로 갔으며, 인터뷰에 참여한 2세의 부모는 강제 징용으로 일본으로 가서 피폭의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이들의 피해 배경은 식민지 조선 통치라는 역사적 배경과 맞물려 있는 역사적 산물이다.
- (a) 식민지 생활이니 전부다 못살겠어서 일본으로 들어가기 시작한거야. (중략) 먹고 살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많지.
- (d) 그 당시만해도 먹고살기가 어려우니까 거기 가서 현장 막노동을 하신 것 같아요.
∙ 시간이 흘러도 생생한 피폭 당시의 기억
현재 인터뷰에 참여한 1세들이 당시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피폭 당시의 상황을 너무나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의 비참하고 심각했던 상황은 시간이 오래 흐른 지금도 이들에게는 현재 진행형이다.
- (b) 유치원 다닐 땐데 학교 정문에 딱 들어서니까 아침 8시쯤이었는데 햇빛보다 더 빛이 번쩍였어요. 학교 갔더니 돌아가라고. 오늘 공부 안한다고. 그래서 집에 왔죠. (중략) 집에 오니까 지붕이 막 날라가고. 또 어머님이 머리도 다치시고.
- (e) 아침에 일어날 때가 됐는데 콱 집이 흔들리면서 소리가 요란하게 났어요. 그래서 이렇게 내다보니까 훤하게 막 빛이 빨갛게 올라왔었어. 그래서 나는 무서워서 안으로 들어가서 숨었고.
- (a) 난 너무나 생생해. 너무나 비참하게 겪어서 (중략)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가 없어. 너무 생생하게 남아있어.
원폭 투하로 인해, 당시 가족을 잃는 등 이들도 당시 다른 피폭 피해자와 다름없는 피해를 입었다.
- (a) 우리 누나가 강 저쪽에 살고 있었는데 멀쩡하게 집으로 넘어왔어. 얼굴에 빨간 점이 생겨 그러더니 죽어 (중략) (우리 가족의) 여섯인가 다섯이 피폭으로 다죽었어.
② 피폭 이후의 삶
∙ 외상과 알 수 없는 질병
참여자들은 피폭 피해로 인한 외상과 후유증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었으며,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고통도 목격해왔다.
- (d) 집이 무너지면서 다리를 많이 다쳤대요. 지금도 흉터가 있어요. (중략) 어릴 때는 상당히 그 머리도 다 빠지고 지금도 없지만. 그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피폭하고 관계가 100프로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성장력도 좀 안좋았어요.
- (a) 내가 하도 저기 해서 어딘지 모르게 나도 상처가 있어. 귀도 나가고 안보여 (중략) 방사능에 의해 가지고 가려움증, 전립선이다 뭐다 굉장히 고생을......
참여자들은 병명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건강적 어려움을 계속해서 겪어 왔으며, 이 과정에서 피폭 피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혹은 병명도 알지 못한 채 가족을 떠나보내기도 하였다.
- (e) 언니가 그냥 병명도 모르고 아프고 하다가 딸 셋을 두고 (일찍)돌아가신거야. (중략) (조카도 언니처럼) 애가 새카매요. 새카맣고 (중략) 내가 슬퍼가지고.. 죽었는데 애가 다 까매. 근데 왜 그런지를 몰랐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원폭 피해 때문에 언니도 그러고 애들까지.. 조카까지 그렇게 죽고.. 내가 그거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파.
∙ 경제적 어려움
피폭의 피해로 인해 당시 일본에서의 삶 역시 굉장히 열악해졌다.
- (d) 그 때는 우리 가정이 완전 파산지경이죠.
- (a) 더 이상 일본에서 살 수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없으니까 불에 타가지고 없고 재산도 없고...... (중략) 가족이 전부 다 재산 전부 탕진하고 뭐 아무것도 없이 연락선을 탄거야.
∙ 사회적 차별
피폭으로 인해 입게 된 외상은 또 다른 사회의 차별을 불러일으켰으며, 또한 일본에서 왔다는 사실, 원폭피해자라는 사실만으로 지역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시선을 느끼며 성장하였다.
- (a) 한국에 나와서 쪽바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일본사람이라는 소리야.
- (d) 그때는 원폭피해라는 걸 몰랐는데 동네나 학교가면 날 피했어요. 머리도 빠지고 비정상적이니까.
∙ 귀국 후 원점이 된 삶
한국인 피폭자의 78%는 조국의 광복과 함께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경남발전연구원, 2013). 인터뷰 참여자들 역시 피폭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국으로 돌아왔으며 아무런 재산 없이, 피폭 피해를 입은 채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의 가정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 (a) 그간에 살았던 게 전부 다 제로가 되어가지고(중략) 제로부터 다시 나가야 해. 한국말, 한국 실정 배워야지. 어떻게 따라가. 참 힘들었어.
- (d) 그 때 우리 왔을 땐 먹을게 없었어요. 간식같은 것도 없어요. 밥 한 끼 먹는 것도 어려웠고. 우리 시골이 그랬어요. 전부 배가 고파가지고. 칡뿌리 캐다 그런거 해가지고 먹은 기억이 나요.
어려웠던 삶, 그리고 피폭 피해로부터 방치되었던 지난 삶을 돌아보며 이들은 차라리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았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 (c) 오빠가 하는말이 그때 일본에 계속 있었으면 여기보다 낫게 살았을 텐데 하더라고.
- (d) 그 당시에 하여튼 지금도 부모님들을 원망하는게 그 당시 일본에 있었으면 훨씬 고생 안했을 것 같아요.
① 후손에 대한 죄의식
∙ 대물림되는 피폭의 피해
참여자들의 대부분은 경험적으로 피폭으로 인한 건강 문제가 후손에게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가족이 아프고, 자신과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기도 밝혔다.
- (c) 형제들(피폭 1, 2세 모두) 다 건강이 안좋아요. 다 유전이에요. 핵은 대대로 100년, 200년 가는 것 같아 (중략) 그것들(자식과 손자, 손녀들)도 지금 아파서 제가 약 사다주고 있어요.
- (b) 우리 자녀들이 내가 지금 이야기한 그 증세를 있더라고. 아빠 나도 그 증세 있다고 그러더라고.
∙ 내 탓 같은 후손의 아픔
자녀나 손자녀가 아플 때마다, 그리고 자녀의 비혼 의사에도 피폭피해 때문인 것만 같아 참여자들은 계속해서 걱정이 되고 내 탓인 것만 같은 미안함과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 (b) 내가 맘이 아픈 게 이것들이 그런 것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 건가,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 할 때도 있어.
- (c) 애들이 아프면 나 때문에 그러는 걸로 생각이... (중략) 내가 죄의식을 느끼는거야. 나로 인해서 대대로.
② 원폭피해 사실의 노출
∙ 원폭피해를 알리게 된 배경
원폭피해를 인식하게 된 시점과 계기에 따라서 참여자들의 차별 인식에 차이가 있기도 하였다. 피폭 피해 사실을 인식하며 자란 참여자는 사회적 차별을 경험하거나 이를 의식한 데 비해 피폭으로 인한 피해자임을 상대적으로 늦게 인식하게 된 경우 사회적 차별 경험이나 결혼 과정에 있어 큰 문제를 경험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후자의 경우 도일치료 시점이나 협회에 가입하게 되는 시점에 피폭 피해자임을 인식하고 이때 가족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리게 되었다.
∙ 숨길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참여자들은 피폭피해 사실을 숨겨야 하는 현실에 놓여있었으며, 일부 가족에게는 피폭피해자라는 사실을 여전히 숨기고 있었다. 특히 여성 피해자의 경우, 원폭피해로 인한 2세, 3세로의 영향을 고려하여 자신의 원폭 피해 사실 노출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자신 역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말하지 못하고, 원폭피해에 대해 사회에 알리고 싶어도 자식을 생각하면 뒤로 숨겨야 하는 현실에 마음 아파하였다.
- (c) (남편에게 피폭사실을)말은 안했고 눈치는 있는 것 같아서 어디가서 말할까봐 걱정이에요. (중략) 내가 도둑질을 했나 살인을 했나 아무 죄도 없고 우리 엄마 뱃속에만 있었을 뿐인데도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는 것처럼 내가 숨기고 살아야하나.
- (e) 나부터도 원폭피해자라고 저기를 못하고 있었던거야. 말을. 왜? 애들한테 피해갈까봐. 애들 자녀들도 결혼시켜야하잖아. 내 자식들은 그래도 정상으로 결혼도 시키고 싶은 건 부모 마음이잖아.
① 현 지원정책에 대한 비판
∙ 사라지는 피해자 1세, 턱없이 부족한 지원
생존하고 있는 피해자 1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이들은 지원책이 시급하며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 피폭이 발생한 지 수년이 지난 후에야 시작되었고, 참여자들의 가족들은 그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경우가 많았다. 또한 현재 의료비 지출을 고려하면 현재 받고 있는 지원내역이 턱없이 부족해 자부담이 많거나 병원에서 처방이 안되는 약을 사먹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일본에서 자국 피폭 피해자들에 대해 피폭으로 인한 인정 질병 이외에도 피폭자가 질병이나 부상에 걸리기 쉬운 점을 고려해 일반 질병에 대해서도 의료급여를 지원하는 현실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 (a) 원폭피해자 1세에 대해서도 지원이 안되고 있잖아요. (중략) 우리 큰형이 돌아가셨지만 죽기 전에는 일본정부에게 보상받고 죽는다 하실 정도였어요. 근데 아무것도 못받으셨어. 수당도.
- (d) 여기 뭐 병원지원금 준다 해봐야 너무 적고. 그래서 우리 정부에서도 조금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c) 받고 있는 액수가 너무 적어요. 병원비도 초과해서 또 보내고. 병원비도 좀 올려줬으면 좋겠고, 30이 적어요. 아픈 데가 많다 보니 (중략) 우리가 자부담 많이 하죠. 병원에서 약이 처방 안되는 것들이 있어요. 약국가서 제가 찾아 먹고. 그럴 때는 좀 다됐으면 좋겠다 싶죠. 적십자도 한 번도 올린 적이 없다고 해요.
∙ 지원정책에서 느끼는 차별과 소외
한국에 거주 중인 원폭피해자들은 한일 양국으로부터 소외되어 왔다. 일본은 피폭자 원호법을 통해 일본에 거주 중인 원폭 피해자들에게 건강검진과 의료급여, 각종 수당을 지원하고 있으나, 동일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거주 중인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이에 상응하는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본인들이 피해자로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며, 일부 참여자는 앞서 살펴봤듯이 피폭 이후 귀국을 한 당시에 대한 후회나 원망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국내 유사 피해에 대한 지원대책과 비교해서도 차이를 보여 이로 인해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 (a) 일본 피해자들한테 지원하는 3분의 1정도만 올라가도 더 이상 불만없다 이거야. (중략) 일본 국내 피폭자들한테는 굉장히 지원이 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별을 해. (중략) 피폭자는 어딜가나 똑같다 이거야. 한국사람도 똑같이 대우를 하자 이거야. 너무 차별한다 이거야.
- (e)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고생을 하시고 물론 우리보다도 더 했지. 하지만 세계적으로 인정을 하는데 우리는 인정도 못받아.
∙ 후손(2세, 3세)도 피해자
원폭피해자 2세와 3세의 지원 필요성과 관련하여, 원폭피해의 대물림을 몸소 경험하고 있는 참여자들은 이들도 당연히 피해자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으며, 의료혜택이라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 (e) 조금이라도 의료혜택이라도 좀 봐주면 좋겠어요.
- (b) 2세들도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중략) 2세들도 피해자들이니까. (중략) (2세가)내가 갖고 있는 병을 갖고 있으니까 피해자잖아요.
- (e) 아이들은 알지도 못하고 피해자가 되고 있어.
② 국가 차원 논의의 필요
∙ 일본에 대한 원망
일본정부는 1965년 한일조약 체결로 공식적으로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끝났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이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지 못하였고,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외국 원폭 피해자에 대해서도 일본의 피폭자원호법과 동일하게 지원하라는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질적인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피폭자 원호시책의 내외인불평등 태도는 한국인 피해자들의 한과 원망을 더 깊게 하고 있다.
- (a) 일본정부라는 나라는 우리 죄없는 피폭자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껴야해.
- (d) 책임은 일본서 해야죠. 근데 그렇게 안되잖아요. (중략) 지원은 지금 여기서.. 어떻게든 일본사람들이 지원금 주는 거 1/3만 줘도 나는 좋을 것 같아. 그게 아주 원망스럽지.
- (e) 일본은 지금 하는 거 보면은 배상을 했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 그렇게 하니까 더 무관심한 것 같아.
∙ 한국정부의 무관심
이에 대해 참여자들은 한국 정부의 지속적인 무관심한 태도에 많이 지쳐있는 상태로 더이상 기대를 하지 않거나, 자국민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그 어떤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국에 화를 느끼거나 원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피폭자 원호와 관련하여 한국의 정부차원에서의 대응을 요구하였다.
- (a) 한국 정부한테 기대하지 말아라. (중략) 한국 정부 무슨 책임이 있냐 이런 식으로도 나온다고. 실질적으로 책임은 우리 정부가 왜 일본의 속국이 됐냐 이거야. 나라에 대해서 원망하자면은. 속국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거 아니냐. 그러니까 우리 정부도 피폭자들의 고통과 보상 관계 진짜 책임을 느껴져야해. 너무나 무관해. 하나도 지원되는 게 없어.
- (b) 한국 정부도 해줘야지요. 자기 나라 국민이 일본가서 피해를 봤으니까.
- (e) 경기도 조례니 서울 조례니 한다고 해서 몇 번 나가보고 인터뷰도 해보고 TV도 나가고 했었는데 너무 등한시해요. 솔직하게. 너무 하는거야. 어떨 때는 화딱지가 나. 너무 화딱지가 나. 너무해요. 무관심해요.
∙ 미국에 대한 생각
원폭 피해에 대한 책임소재 관련 의견은 일본과 한국에 대한 논의가 가장 많았으나 미국에 대한 언급 역시 존재했으며, 미국도 원자폭탄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참여자들의 인식은 원폭피해의 국제적 문제로서 논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 (b) 미국이 원폭을 했으니 미국이 도와줘야 하는거 아니에요?
① 사회적 관심의 필요성
∙ 오랜 고군분투, 지쳐버린 1세들
원폭 피해자 1세들은 마음의 원한과 의욕만큼 피폭피해 사실을 알리고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기엔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버린 상태였다. 고령의 나이가 되었으며, 그동안 피폭자보상요구운동이나 관련 법과 조례 제정을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책임자들의 무관심에 차일피일 미뤄지는 현실에 상처받았으며, 원폭피해와 관련한 차별적인 사회 시선에 직접 나서지 못하기도 하였다.
- (a) 지쳐서......너무오래되어서......1990년부터 1997년까지 소송일지를 보면은 한국 피폭자들이 소송 제기한 게 수백 건이야 전부 다 기각이고 패소고 뭐고.... 우리 선배들이 그렇게 날뛰었어.. (중략) 난 이젠 나이를 먹다 보니까 의욕은 있어도 실천하기가 힘들어져..
- (e) 까놓고 내놓고 우리도 나가야 하는데. (중략) 광화문이라도 나가서 ‘우린 원폭피해자다’, ‘자식들이 이렇게 피해를 본다’ 해야 하는데 못해 줄줄이 피해 볼까봐. 이게 내가 가슴이 아파요. 나부터도.
이에 사회적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피해자들만의 고군분투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의 산물로써 한국인 원자폭탄피해자들의 상처를 함께 감싸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사회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모아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 비핵평화운동의 상징
참여자들은 자신들을 역사의 산물로 인식하고 있으며, 원폭의 처참함을 직접 경험한 경험자로서 앞으로 후세에는 이런 일을 경험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 (e) 우리는 이미 당해서 피해보는 식구들이 많이 있지만 앞으로는 없어야 하니까. 그런거에 대해서 뭐 진짜 표현을 해야 한다든지 해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 후세들은 그런 거 당하지 말아야 하잖아. (중략) 전 세계 전국민이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 알아야 이만큼 원폭피해가 무섭다는 것. 누구나 다. 어느 지역 누구가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할 것 같아.
2) 2, 3세대 후손들의 경험과 인식
최종 도출된 피해자 2, 3세대의 삶의 경험과 원폭피해 인식에 대한 주제분석 결과는 <표 4>와 같다.
① 원폭피해 후손임을 알게 된 배경
∙ 우연히 알게 된 비밀
원폭 피해자 2세와 3세들은 1세들로부터 원폭과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듣기보다 피해자 등록(부모, 2세 등록)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보통 1세가 원폭과 관련된 활동을 하게 되며 일을 도와주거나 참여하며 알게 되었고, 당시 상황에 관한 이야기 등도 부모로부터 직접 듣는 경우는 드물었다.
- (f) 자식들에게 말한 거는 한번도 없었어요. 2세 회원들 얘기 들어보니 95%가 자식들한테 말은 안했더라고. 그리고 제가 일을 보면서 1세분들한테 자식들한테 이야기 안한거를 저희한테 이야기를 해줘서......
- (g) 본격적으로 알기 시작한 거는 40대부터 알았어요. 일본에서 처음 재판할 때. (중략) 징용과 원폭에 대한 재판하며 아버지와 같이 있던 동료들한테 들었죠.
- (i) 올 봄에 (어머니가) 2세 등록할 때 그때 서류를 주셔가지고 설명을 해주시더라고요.
② 원폭피해 후손임을 알게 된 당시의 감정
∙ 내 삶으로 받아들인 생소한 역사
이들에게도 한국인 원폭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은 생소한 일이고, 자신과는 거리가 먼 역사 속의 이야기였다.
- (h) 2차 세계대전때 미국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중략) 일본이 항복하고 나서 그런 단계로만 나오지 그 다음에 피해자들에 대한 내용은 안나오니까. 크게 관심을 가지지는......(않았죠).
- (m/3세)저는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 딱 거기까지만. 원폭이 터졌다 이정도. 교과서적으로. 딱 그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부모 혹은 조부모의 원폭피해 사실을 알게 되며, 이들은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던 일이 자신의 삶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참여자들은 이를 놀라면서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 (m/3세)조금 생소한 부분이니까 저한테는 그냥 그 정도. 생소하고 할머니가 피해를 당하셨구나. (중략) 좀 새롭고 좀 놀랍기도 하고 그렇죠. 할머니가 되게 가깝잖아요. 근데 갑자기 할머니가 원폭피해자라고 하시니까. 먼 이야기가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게 놀라움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 부모에 대한 원망 대신 걱정
참여자들은 원폭피해자 후손임을 인식하게 되며 부모나 조부모에 대한 원망보다는 오히려 원폭 피해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어렵게 살아오신 부모와 조부모의 고됐을 지난 삶에 대해 함께 마음 아파하였으며, 원폭의 영향과 관련하여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관련 이야기를 안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 (j) (원망이나) 화는 안나죠. 아버지는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엄마도 멀쩡한 사람이 아버지 간호하다가 병이 들고..아프셔가지고..
- (i)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국민으로서 그때 당시 많이 힘드셨겠구나. 외할아버지뿐만 아니라 힘드셨겠구나 그런 생각은 좀 많이 했죠.
- (h) 어머니한테는 (제가 아프다는 사실을) 섣불리 이야기를 못했어요. 왜냐면 또 미안해하실까봐. 오히려 그렇게 아픈부분들에 대해서는 혹시나해서 의심가는 부분들은......
① 대물림되고 있는 경제적, 신체적 어려움
∙ 아프셨던 부모님과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참여자들의 부모인 1세대들 역시 피폭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오랜 시간 겪어왔다. 피폭 당시에 입은 외상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질병으로 고생하였고, 이로인해 가족들이 함께 고생하기도 하였다.
- (g) 많이 다쳐서 온 사람도 있고 우리 아버지는 파편에 맞아서 (큰 상처가 생김) (중략) 팔다리가 쪼글어 든 양반들도 있고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보면 그래요.
- (j) (원폭피해자 1세인 아버지는) 돌아가실 무렵에 파킨슨 병인가? 그것도 있으셨고.. 엄마가 고생이 많으셨죠.. 엄마는 병 그런 게 없는데 아버지가 술드시고 파킨슨 병 돌아가시기 전에 뭐였더라, 치매는 아니고 지금 사람으로 말하면 우울증 마냥 술드시고......엄마가 아팠어요 나중에는 힘들어서.
1세들의 장애나 외상은 1세들이 성장하여 가정을 꾸린 이후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이는 원폭피해 후손들의 어려움으로 연결되었다.
- (k) 아버지가 일을 못하시는거야. 다른 아버지들은 돈 벌어오고 하는데 (중략) 일을 못하고 벌질 못하니 어머니가 땅을 다 팔아없앤거야. 그때 (아버지의 원폭피해 사실을) 안거야 (중략) (아버지가) 일을 못해. 동네사람들이 불러가지를 않아.
∙ 유난히 아픈 나, 피폭의 영향?
2세들은 참여자들은 신체장애, 순환기계, 근골격계, 호흡기계, 신경·감각계, 내분비 대사성 질환 등 다양한 건강 문제를 앓고 있었다. 이로 인해 빈번히 병원을 드나들고 있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들이 다른 일반인들에 비해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거나 몸이 아프다고 느껴왔으며, 부모와 유사한 질병이 있거나 형제들의 질환에 피폭의 영향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언급하였다.
- (h) 척추가 가운데 있으면 뼈가 이렇게 올라가잖아요. 이게 하나가 없어요. MRI를 찍었는데 의사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 마지막 척추가 기형이라고. 허리가 많이 약할 거라고.
- (i) 잔병치레를 많이 했어요. 병원도 좀 들락날락 많이 하고. 전립선도 몇 년 전부터 안 좋고. 허리 같은 경우도 꽤 됐죠. 한 10년? 무릎도 안좋고 그래서 연골주사도 맞고
- (j) 병원에서 조울증 진단을 내려줬는데(중략)(이 때) 내가 좀 느꼈어요. 멀쩡하다가 아버지 후유증으로(아버지와 같은 증세로)......
사례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참여자들은 3세들이 겪고 있는 정신 및 신체적 건강문제를 보고하였으며, 이로 인해 병원을 다니며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 (f) 대게 3세들이 힘이 없는 것 같아. 막내 여동생 애(3세)는 대학가고 군대까지 갔는데 중사 5~6년까지 갔는데, 힘이 없어서 군대생활을 더 못하고. 밑에 애는 태어날 때부터 아주 (중략) 금방 죽을 줄 알았어.. 30살 가까이 됐는데 삐쩍 말라서 지능은 4~5살 지능을 가지고 있고.
- (h) 큰애도 그렇고 작은애도 그렇고 발달장애하고 집중력 장애 ADHD가 있어가지고. 솔직히 저는 이제 좀 정말 그것(피폭) 때문인가. 아니면 내 유전자가 그래서 거기에 따라서 나온건가 단정 짓기에는 애매한 부분도 있고.
- (l/3세)형도 알레르기 비염은 다 갖고 있고, 그리고 가끔씩 저같은 경우는 두드러기 같은 게 자주 나요. 왜 나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만 나더라고요. 종기같은게 나요. (중략) 허리도 수술했는데 보형물 집어넣었는데 낫진 않더라고요. 약먹고요.
∙ 2세에도 계속되는 경제적 어려움
2세들은 자신의 건강 문제로 인해 직업을 선택하는 데에도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1세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생활고를 겪거나 어려운 형편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 (h) 체력적으로 약하거나 신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약하니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부분은 있죠. (중략) (허리가 아파서) 그래서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프리랜서 식으로 잠깐 잠깐씩 일을 하고 있어요. (중략) 많이 아플 때는 안나가고.
- (k) 남 세끼 먹을 때 두끼 먹고 그러는 거지.
② 원폭피해에 대한 감정적 대처
∙ 불안, 걱정, 두려움, 회피, 미안함
2세와 3세들은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걱정을 느끼고 있으며, 자신의 현재 어려운 상황(건강, 경제 등)과 관련하여 원폭의 영향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자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자식들에게 또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 (h) (지금의 생활고가) 제가 몸이 이래서 직업을 이렇게 돼서 역으로 또 올라가 보면 ‘원폭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 하지도 않으려고 해요.
- (i) 염려는 있어요. 제가 잔병치레를 많이 하다 보니까 그래서 혹시 (자녀가) 그런 거 아닐까. 예전에는 연관성을 모르고 있다가. 혹시 그래서 몸이 약한가 그런.......
∙ 사회적 차별에 대한 염려
성장과정에서 원폭피해와 관련하여 쉬쉬했던 가정 내 분위기를 경험하기도 하고, 혹시 모를 사회적 차별로 인해 주위에 굳이 원폭피해와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언급하였다.
- (k) 동네에서 알게 모르게 손가락질하니까, 모르는 동네에서 며느리 셋 다 데려오고, 또 딸 시집도 다 먼데 사람들한테 보내고 (중략) 근데 동네에서는 알게 모르게 손가락질하고 그런게 있었죠.
- (m/3세)상황에 따라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나 그냥 ‘피폭하면 피폭된 사람한테 옮는다’ 이렇게 생각이 있잖아요. 좀 잘 모르는 거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으니까.. 여기저기 무턱대고 이야기하고 다니진 않을 것 같아요.
① 지원이 갖는 의미와 필요성
∙ 부모님의 권리 회복으로서의 1세 지원
1세들의 피해를 보며 성장해온 후손들은 1세에 대한 확실한 지원이 중요하다고 밝혔으며 이 과정은 책임 국가의 제대로 된 사과나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부모의 권리회복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 (m/3세)확실히 피폭피해자 분들에게 확실하게 의료지원이라던지.
- (j) 나보다도 우리 (돌아가신) 아버지. 나도 2세 후유증으로 멀쩡했던 사람도 이렇게 정신병 약을 먹고 있잖아요.. 아버지도 멀쩡하시던 분이 그렇게 아파서 누워있고...
∙ 피해자로서의 2세, 3세에 대한 지원
참여자들의 건강문제들은 실제로 빈번한 병원 이용으로 이어졌고, 이에 의료 관련 지출비가 많이 소요되고 있었다.
- (g) 저의 경우 병원비가 많이 나가요. 무릎이 연골이 다 닳아서 수술해버리고 말면 되는데 병원에서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 하고 그래서 3년째 걸음을 제대로 못 걸어요. 목돈이 드는 건 아닌데 한달에 돈 10만원 정도 나가더라고요. 그리고 귀, 고혈압 이런 거 나가고 혈압약이 한 6만원 나가고 다 합하면 나 혼자 20만원정도 나가요.
이에 2세와 3세는 지원이 된다면 특히 의료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건강 문제가 생활의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 부분들을 보완해줄 수 있는 맞춤 케어도 필요하다는 의사를 밝혔다.
- (g) 재판 잘 끝내서 배상금이랑 의료혜택 받고 싶어요. 배상도 배상인데 2세들이 반도 더 죽었어요. 남아있는 사람들이라도 해주고 3세들까지만이라도 혜택을 줬으면 좋겠어요. 2, 3세도 지장 있으니까 의료 혜택을 좀 줬으면 좋겠는 거죠.
- (h) 앞으로 실태조사 등을 해서 (지원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서 정부하고 이야기해서 2세, 3세까지 좀 의료비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게끔. 규정을 만들어서 (기준에) 합당하다면 지원을 해주면 싶죠. (중략) 정상적인 삶 자체가 어려워지는 분들이 있다면 그에 따른 생활비 지원도 고려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 (l/3세)기본적으로 집이 없으신 분들도 있을 거고 후유증이 더 크신 분들도 계실 거고, 기본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맟춤케어로 해줬으면. (중략) 기본적으로 치료부터.
② 국가적, 사회적 관심의 필요성
∙ 반드시 이뤄줘야 할 일본의 책임과 반성
참여자들은 한일조약 체결로 보상을 모두 했다는 일본의 태도에 대해 지적하였다. 2세, 3세까지도 이어오고 있는 영향에 대해 언급하며, 일본 측의 사과와 보상을 통해 합당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 (k) 일본이 책임져야지 어떻게든 이걸 저거에 넣어서 다 해결했다 그건 아닌 것 같아.
- (j) 보상도 보상이지만 일본놈이라고 해야 하나, 일본놈이 그렇게 해서 2세까지 이렇게 고통을 받는데 반성을 하고 보탬을 줬으면 좋겠지.
∙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할 때
일본 상대의 소송이나 관련 사회운동을 진행해본 경험이 있는 참여자는 그 과정에서 느낀 정부의 미온적 태도에 지쳤다고 말하였다. 보상을 해줬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는 일본을 상대로 피해자 개인이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정부가 나서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 (f) 실질적으로 우리는 개인청구권 보상이야. 그거(한일조약)는 국가적 보상을 해준거지. 그러나 우리가 재판을 하는 것은 개인적 재판이야. (중략) 여기에 대해서 한마디도 없어. 우리가 볼 때 이건 아니야. (중략) 지금 일본에서는 현재 보상을 다해줬는데 왜 한국에서는 거짓말하냐. 이렇게 이야기하면 국회의원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할 거 아니야.
- (h) 자국민이 피해를 받았으면 원해서 갔든 어떻게 갔든 간에 거기서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피해를 받았으니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어쨌든 자국민 보호차원에서 계속 이렇게 요구를 해야되지 않을까.
- (k) 한국에서는 뒤늦게 하기 시작해가지고 광화문, 청와대 앞에 대통령한테 이렇게 해달라고 했고 국회도 가봤고 (그러나) 아무 반응 없어요.
- (l/3세)일본정부만 바로 보고 있기에는 이게 벌써 몇십년인데 진행이 안되잖아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략) 개인이 할 순 없잖아요. 일본을 상대로.
∙ 명확한 진상규명의 필요성
참여자들은 원폭의 유전적 영향성, 후손에게 나타날 수 있는 질병과 관련해 명확한 진상규명을 통해 밝히고 그에 맞는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 (h) 이게 진짜 원폭 때문인지 부모님 세대의 유전으로 인한건지. 거기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나......
- (m/3세)피폭된 분들에게 일어나는 증세 같은 것, 유사증세라도 후손들한테 나타나는 것을 밝히고 그 후에는 그거에 대한 확실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알려져야 할 존재, ‘재한 원폭피해자’
참여자들은 후손인 자신들조차 ‘재한 원폭피해자’의 존재를 잘 몰랐던 것처럼 많은 국민들이 이에 대해서 잘 모르기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서 사회적 관심을 모아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말하였다. 예로 위안부처럼 이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면 관련 지원들도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 (i) 원폭피해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되게 많이 모르시고 계신 것 같아요. 위안부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 (m/3세)아는 사람만 아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거에 대해서 조금 국민들이 다는 아니더라도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정도를 알았으면 좋겠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에 대해서 지원들이라든지 사람들의 이해가 높아지면 확실히 더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또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해 사회적으로 알리고 이와 관련한 국가의 적절한 지원과 대응이 도출될 수 있도록 이를 위한 목소리를 계속해서 낼 수 있는 구심점의 역할이 중요하기에 참여자들은 젊은 후손과 시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언급하였다.
지금까지 전개된 관련 재판 등은 일본 측 시민단체의 도움이 컸으며, 일본에서의 지속적인 활동이 중요하기에 일본 관련 시민단체와도 지속적인 관계 역시 매우 중요하며 우리나라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도 요구된다.
- (g) 자체적으로 하는거죠 일본가면 시민단체가 있고 지원단체가 있고. 우리 재판 하는 것도 거기서 많이 도와주고 시만단체에서 도와주고 해서 재판이 시작된거지. 어떻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게 없어요 . 변호사들이 있었는데. 수익료도 돈이 나왔어야 주지. (우리나라) 시민단체는 지금 도와 주는 것이 없어요..
- (f) 일본에서 솔직히 원폭회 우리 지부를 많이 도와주기는 해(중략) 그 사람 앞에서는 일본사람 나쁘다고 못하겠더라고
또한 협회/지부와 같이 원폭피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모인 이들의 관계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협회/지부는 1세들이 제대로 된 지원도 못받았지만 후세를 위해 만들어준 공간이며, 이곳에서 피해자 1세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2세들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의지하기도 하였다. 아직 2세들로 구성된 조직을 경험해보지 못한 참여자는 다른 2세들이 궁금하고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만난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협회/지부가 안정적인 운영을 통해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끝으로 세대를 통해 이어져 온 피폭의 부정적 영향을 실감한 참여자는 핵으로 인해 고통받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 (i) 핵폭탄에 의해서 일본 어디든 전세계 사람들이 고통받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5. 논 의
국가 해방의 역사에 가려져 피해자로서 인식되어오지 못한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그들의 생생한 기억과 삶의 외상이 증명하듯 피해자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러나 원폭 피해를 입은 이후 7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들은 한일 양국가와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아 왔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사회와 학계에서 관심을 받아온 것과 달리 이들의 존재와 경험은 많이 다뤄지지 않았으며, 이들에 대한 지원 역시 일본의 피폭자 원호시책에 상응하는 지원을 받지 못해 왔고, 피해자 1세들은 이러한 현실에 더 큰 차별과 소외를 느낀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이러한 일본의 국외 피폭자를 제외한 지원 행위에 대해 위법이라는 판정과 손해배상을 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사과와 보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사이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 1세 생존자는 계속해서 줄어가고 있으며, 이들의 후손들은 그 고통을 이어받아 피폭의 영향 아래 또 다른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
본 연구는 원폭피해자 1세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과 보상은 그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피해자 1세와 2, 3세 모두 자신들의 경험 속에서 원폭의 피해가 대물림되고 있음을 느끼고 목격하며 후손들 역시도 피해자라고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인터뷰에 참여한 2, 3세들 역시 개인차가 있지만 다양한 질병과 장애를 겪으며 의료비 지출에 대한 부담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본 연구는 1세는 물론 2세와 3세로 이어지는 경험적 원폭피해의 대물림을 확인했으며, 피해자로서의 1세와 그 후손들이 보다 나은 복지와 권리 함양을 위한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연구결과에서 도출된 내용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한국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책임이 요구된다. 정용하(2019)는 한국정부의 자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적하며, 피폭 당시는 식민지 지배라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가 있었지만, 국가 자율성을 회복한 지 수십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자국민의 피해를 외면하는 것은 국가로서의 정통성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본 연구의 인터뷰에 참여한 피해자 1세와 2세는 자신들은 무고한 희생자임에도 국가 차원의 제대로 된 지원과 보호를 받지 못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간의 오랜 재판과정에서 외면해 온 국가의 모습에 실망하며 이제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한 피해자 1세는 지원금을 주는 일본이 오히려 더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물론, 원폭피해에 대한 가장 1차적인 책임은 일본에 있다는 것이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그러나 1965년 한일조약 체결로 모두 보상했다는 입장을 취하는 일본을 상대로 더이상 개인의 투쟁만으로 권리를 회복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책임을 물어야 할 국가에 당당히 요구하며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실시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진상규명과 함께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지원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원폭피해자 1세와 2, 3세 모두 원폭 피해의 영향성을 실감하여 불안과 두려움, 걱정을 느끼고 있으며 후손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폭피해로 인한 유전적 영향성과 질병에 대한 명확한 규명과 함께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에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진행중인 피폭 1, 2, 3세 코호트 구축과 유전체 분석 연구는 매우 중요하며, 차후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체계적 지원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 사료된다. 또한 이들이 원폭 방사능의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기적인 암검진, 원폭 피해자에 대한 전문병원과 시설 등의 설치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사회적 관심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선 역사교육과정에서 한국이 원폭피해자에 대해 충분히 다루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터뷰에서 확인했듯이 원폭피해자 1세들 조차 원폭피해자임을 뒤늦게 인식하기도 하였고, 그 후손들 역시도 가족의 피폭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전혀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인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교육과정에서, 또 역사자료관이나 교육관을 통해 원폭피해의 참상을 알리는 것은 자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원폭피해자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원폭피해자와 관련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시킬 수 있다. 또한 합천에서 진행된 바 있는 ‘비핵평화대회’나 기념관 조성사업이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데 기여했던 점을 고려해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 조성 등의 활동은 이들의 인권과 자존감을 높이는 데에 일조할 것이라 기대된다.
또한 국내 시민단체와 학계의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되는 바이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원폭피해자들의 활동에는 일본 원폭피해 관련 단체와 시민단체의 도움이 컸다. 실제로 일본에서 재판을 진행한 바 있는 피해자 2세들은 일본 관계자에 대한 고마움을 여러 번 표하기도 하였다. 일본과의 지속적인 협력과 연대 역시 중요하지만, 국내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운동에 힘이 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원폭피해자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이들이 활동하는 협회나 시민단체 등을 지원하여 지속적, 체계적으로 원폭피해자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뒤늦게 제정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17.7월 시행)」에서조차 피해자를 1세로 한정하고 있고, 실질적인 지원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부 지방에서는 조례가 제정되며 원폭피해자들에게 보다 직접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역 차원의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더욱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경기도에 거주 중인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는 한계를 지니나,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함으로써, 원폭피해자들의 삶을 지원하는 정책마련에 근거가 되기를 기대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0년도 경기복지재단의 연구용역보고서 『경기도 원폭피해자 지원 방향 연구』(경기복지재단 정책연구보고 2020-18)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활용하였음.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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