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거공간의 ‘선택적 공동체’ 참여 과정 탐구: 대전광역시 B 공동체 사례를 중심으로
초록
본 연구는 도시의 대표적 주거공간인 아파트의 ‘개폐식 특징’을 기반으로 필요에 따라 거리를 두다가도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적극적으로 참여를 선택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형태인 ‘선택적 공동체’를 주목한다. 구체적으로는 대전광역시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조성된 B 공동체의 참여 행위를 분석함으로써 도시의 아파트에서 형성되는 선택적 공동체의 특징은 무엇이며, 이러한 공동체가 작동할 수 있는 원리와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했다. 연구는 B 공동체의 대표자와 실무자 등 주민 4인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수행하였으며, 기록물과 문헌 등의 자료원에서 증거를 수집하여 ‘질적 연구 방법으로써의 사례 연구’를 실시하였다. B 공동체의 참여 과정은 ‘개개인의 이익 표현’으로 규정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참여 동기와 목적, 역할과 의미 등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B 공동체의 참여는 개인의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강조했지만, 주민 참여 자체에 대한 접근성과 민감성, 반응성을 높였으며 참여적 시민 의식에 대한 경험의 출발점이 되었다. 현재 B 공동체는 장기적·지속적 운영을 위해 재정적,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 공동체는 도시의 아파트가 개폐식 공간 구조, 자치 기능 및 서비스, 기존 네트워크 등의 측면에서 선택적 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을 증명하였다. 연구는 도시 주거공간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부합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함의를 제시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the “opening and closing characteristics” of apartments, which are universal residential spaces in cities. The “Community of Choice” is a new form of community that forms voluntarily and actively chooses to participate if needed. Specifically, the study attempted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mmunity of Choice formed in apartments in the city by analyzing the participation behavior of “community B” formed around apartments in Daejeon City and the principles and conditions under which these communities can operate. The study conducted in-depth interviews with four residents, including representatives and practitioners of Community B, and conducted a ‘case study as a qualitative research method’ by collecting evidence from data sources, such as records and references. Community B’s participation process could be defined as an expression of individual interests, and it maximized the motivation, purpose, vision, and profit. On the other hand, community B’s participation emphasized the individual’s ‘right to choose’ but increased accessibility, sensitivity, and responsiveness to residents’ participation itself and became a starting point for experience in participatory citizenship. Currently, Community B must develop measures to overcome financial and institutional limitations for long-term and continuous operation. Nevertheless, Community B proved that urban apartments have optimal conditions for forming a Community of Choice in terms of open and close space structure, autonomous functions and services, and existing networks. The study is meaningful in that it has suggested implications for the necessity and possibility of a new community that conforms to the social and cultural context of urban residential spaces.
Keywords:
Community of Choice, Apartment, Opening-Closing Space Structure, Individual Choice, Resident Participation, Case Study키워드:
선택적 공동체, 아파트, 개폐식 공간 구조, 개인의 선택, 주민 참여, 사례 연구1. 서 론
우리나라 1인 가구의 비율은 2022년 2월 기준 40.4%(953만 6,087가구)로써, 전체 세대(2,354만 6,053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1) 1인 가구의 증가는 고령화, 진학과 취업을 위한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 비혼과 만혼 등의 결과이나 이러한 ‘나 홀로 가구’의 급증은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은 상태로 사망하는 ‘고독사’, ‘무연고 사망’과 같은 사회적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2) 혼자 사는 가구의 수가 전체 가구 수의 40%가 넘는 지금 ‘공동체(community)’를 말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근본적으로는 도시에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공동체를 누가, 언제, 왜 추구하는지, 나아가 도시는 어떤 공동체를 지향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전상인, 2017, 113쪽).
우리나라의 도시는 ‘동네(urban village)’의 집합이었다. 동네는 개인과 가족의 경계를 넘어 최초로 구성된 사회이며 크고 작은 동네들이 모여 하나의 도시를 이루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산업화, 도시화, 세계화 과정에서 농경시대의 생존 경제(subsistence economy)는 시장경제(market economy)로 이행되었으며, 오늘날 경제생활은 가구별로 독립적이어서 가까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사촌’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전상인, 2017, 156쪽, 114쪽). 동네는 더 이상 경제 단위로서의 핵심적 기능을 하지 않으며, 이전의 경제 공동체로서의 동네의 의미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특히 도시의 보편적 주거공간인 아파트에서는 ‘공동체적 연대감’으로서의 동네의 의미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3)
하지만 도시에서 공동체 또는 공동체적 욕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최근 자생적으로 동네의 근대적 변용으로써 ‘새로운 공동체’가 등장하며 그 지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가족과 집을 너머 최초의 사회 공동체인 동네는 근대화 과정에서 입지가 크게 약화된 것은 사실이나 아파트 거주 체제에서 사생활을 누리면서도 필요 또는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전상인, 2017, 93-94쪽, 116쪽). 실제로 공동체 형성을 위한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아파트는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황선영, 김순은, 2017, 34쪽).
본 연구는 도시의 대표적 주거공간인 아파트에서 ‘개폐식 공동체’, 즉 필요에 따라 거리를 두다가도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적극적으로 참여를 선택하는 새로운 공동체 형태인 ‘선택적 공동체’의 참여 행위에 주목한다. 구체적으로는 대전광역시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조성된 B 공동체의 참여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도시의 아파트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공동체의 특징은 무엇이며, 이러한 공동체가 작동할 수 있는 원리와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한다. B 공동체는 어떤 형태로 구성되고 발전하였는지, B 공동체의 활동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민 참여의 특징과 참여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지, 참여의 한계는 무엇인지 탐색함으로써 도시 주거공간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부합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주는 함의를 제시한다.
2. 이론적 고찰 및 선행 연구 검토
1) ‘지역공동체’ 및 ‘아파트 공동체’의 발달
공동체란,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하는 집단’4)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며, 사회적 관계 측면, 공간적 혹은 지역적 토대를 바탕으로 구성원 간에 결속감이 형성되어 사회경제적 기능을 수행하는 결사체로서 그 개념이 구체화되어 ‘지역공동체’ 또는 ‘마을공동체’ 등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이재열, 2006, 25-27쪽; 김영정, 2007, 4-9쪽; 최근열, 장영두, 2002, 151-152쪽; 김찬동, 서윤정, 2012, 9-10쪽; 행정안전부, 2017, 15-17쪽).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써 커뮤니티(community)는 지역 주민이 경제·사회·문화적인 연대 의식 속에서 공통적인 가치와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하는 공동체를 가리킨다(오용준, 윤갑식, 2013, 163쪽; 윤용석, 2014, 34쪽; 이은지, 최현선, 2015, 78-79쪽). 미국 농촌사회학자 힐러리(George A. Hillery)는 공동체의 세 가지 구성요소를 지역성(locality), 사회적 상호작용(social interaction), 공동의 유대(common bonds)로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지역성은 지리적 영역·경계·장소(geographic area) 등 제한된 공간 안에서 활동하는 것을 강조하며, 사회적 활동이 전개되는 구체적인 장소,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상황 조건을 의미한다. 둘째, 사회적 상호작용 요소는 공동체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과정, 잠정적인 구조로써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와 조직, 사회 체계 및 제도를 포괄하는 일반적 개념이다. 셋째, 공동의 유대는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심리적, 상징적, 문화적 현상으로 구성원 간의 일체감과 협동 정신 등을 말한다. 이외에도 지역공동체의 요소로써 플로린(Florin)과 원더스먼(Wandersman)은 자발성(volunteer-driven), 구성원의 직접적 참여(direct participation of members), 문제 해결성(defined by problem-solving) 등을 들기도 한다(최근열, 장영두, 2002, 152쪽).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는 지방 분권 그 자체로 간주되며 주민의 자치적 역량을 배양하고 시민사회의 토대가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최근열, 장영두, 2002, 148쪽; 김찬동, 서윤정, 2012, 28-32쪽). 즉 지역공동체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은 지역 친화적, 주민 밀착적으로 ‘분권’과 ‘자치’를 경험하게 하며, 시민 의식의 성숙을 도모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 인구의 91.8%(4,759만 명, 2020년 기준)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지역공동체는 도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기본적인 단위이며, 도시재생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오용준, 윤갑식, 2013, 162쪽).5) 특히 ‘아파트’가 도시의 보편적인 주거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아파트 공동체’에 대한 담론이 떠오른다. 과거에 도시의 아파트는 사생활이 중시되는 비공동체적 주거 환경 또는 이웃과 단절된 폐쇄적 가족주의의 온상 등으로 인식되거나 심지어 자족성을 특징으로 공동체적 생활을 해체하고 사회적 관계를 분절시키는 주범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파트 주거 문화의 특성에는 공동체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오히려 아파트는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동질적인 구성원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공동체의 필요성과 형성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심지어 아파트 공동체는 다른 도시공동체와는 달리 ‘가정’이라는 구성 공간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최병두, 2000, 6쪽; 임석회, 이철우, 전형수, 2003, 315-317쪽). 읍·면·동보다 더 작은 규모의 뚜렷한 경계가 존재하는 아파트는 주민에게 강한 소속감을 부여할 수 있으며 밀도 있는 네트워크를 결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기존의 아파트 공간 내 인간성의 상실 혹은 공동체 부재라는 비판은 반드시 아파트라는 거주 형태의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전통적 지역공동체가 촌락을 중심으로 촌회(村會)를 형성했듯이 이제 지방정부는 아파트 공동체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정책적 대상으로 고려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최근열, 장영두, 2002, 156쪽).
아파트 공동체에 관한 연구는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가치에 근거하여 아파트 공동체 형성 및 영향요인에 대해 논의하며, 공동체 의식의 회복과 사회자본 관계에 대한 규범적인 분석으로 확장된다. 아울러 아파트 공동체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며 공동체의 성과와 결과적인 내용을 강조하는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조명래, 2003; 임석회 외, 2003; 천현숙, 2004; 이재열, 2006; 서종녀, 하성규, 2009; 황선영, 김순은, 2017 참고). 그러나 도시 내 새로운 공동체의 등장에 관해 주목한 연구는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현재 도시에서 아파트 공동체가 어떤 형태로 변환되어 나타나고 있는지, 새로운 공동체가 활성화되어가는 구체적 참여 과정에 대한 탐구를 시도함으로써 지역공동체 형성에 대한 방법론적 전략을 제시하고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2) ‘선택적 공동체’의 등장과 개념적 특성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에스(Tönnies, Ferdinand Julius)가 19세기 말 사회(Gesellschaft, society, 이익사회)와 공동체(Gemeinschaft, community, 공동사회)의 구분을 시도한 이래로, 공동체는 근대사회와 대비되는 전통적인 것, 근대적 합리성과 대비되는 인간적인 것, 그리고 도시적인 생활 양식과 대비되는 농촌적인 것 등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지역공동체의 담론들은 이상화, 낭만화되어 대중에게 공동체가 단순히 ‘가치 있는 것’ 또는 ‘좋은 것’으로 상상하게 한다(박주형, 2013, 6쪽). 그러나 긍정적인 인간관계에서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원하지 않는 교류를 억지로 강요하는 일이라는 말처럼, 공동체의 관계에서도 갈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른바 ‘나쁜 이웃’과 같이 이웃이 개인에게 주는 영향은 제각각이다. 더구나 이웃과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공공장소를 많이 만드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지만,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느끼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부로 그곳을 찾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도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지나친 공동체 담론은 오히려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주장이며 이에 따라 필수적 공동체(community of requirement)가 아닌 선택적 공동체(community of choice)와 같은 새로운 공동체의 유형이 등장하고 있다(전상인, 2017, 114-117쪽). “좋은 동네란 필수적인 사생활과 주변과의 교류 및 접촉 사이의 놀라운 균형이 있는 곳”이라고 말한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주장처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Jane Jacobs, 1992/2010, 93-94쪽).
웰만(Barry Wellman)은 현대 도시인은 동질적이고 비교적 규모가 큰 지역공동체에 참여하기보다 한정된 개인과의 관계를 선호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긴밀한 관계를 ‘개인적 공동체(personal community)’라고 지칭했다. 그는 개인적 공동체를 정보, 사교, 소속감 그리고 사회적 정체성을 제공해주는 사람들 간의 유대 네트워크라 규정한다(김영정, 2007, 8쪽). 레이 팔(Ray Pahl)은 ‘우정 공동체’를 주목하였는데, 친구 관계는 사회 속에서 의미심장한 추가적인 인격적 자원을 제공하며 환경에 의존해 쉽게 동원될 수 있는 탈영토화된 유연한 공동체로서 두껍고 얇은 수준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페졸리(Maffesoli)는 현대사회의 문화적 변형의 맥락에서 ‘정서적 공동체(emotional community)’의 출현을 언급한다. 이것은 공통의 취미에 기반한 취향 공동체로 일시적으로만 유지되나 오컬트나 팬덤 같은 것에서 보이는 “세상을 재-미혹화”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정서적 공동체는 선택적 사교 집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연대와 헌신을 가진 ‘친화성에 기반한 정치집단(affinity-based political group)’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김미영, 2015, 207쪽).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전통적인 공간적, 사회·문화적 차원에서의 통일체를 구상했던 지역공동체는 점차 그 의미가 변화되고 있으며, 개인에게 이득이 되는 일 예를 들면 웰빙라이프의 향유, 정보의 습득, 사회·경제적 이익 창출과 같은 측면에서 이웃과 만나기 위해 필요 또는 취향에 따라 공동체를 형성하고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역공동체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공동체는 주거지의 불편한 공동의 문제 또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조직되는 지역공동체의 형태와는 다르며, 도농 공동체 운동, 소비자 생협 운동 등 외부 기관과의 연계를 통한 시민 참여형 공동체의 모습과도 달라 기존의 규범적 공동체 운동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개인적 취미 또는 정서적 유대와 친밀함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동호회 활동과도 분명하게 대비된다. 본 연구는 개인적 선호와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는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아파트라는 도시의 보편적 주거공간에서 개폐식 공간 구조, 자치 기능 및 서비스, 기존의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적극적으로 참여를 결정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유형을 ‘선택적 공동체(community of choice)’로 개념화한다.6)
최근 이러한 선택적 공동체에 대한 요구는 도시의 아파트 주거공간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 즉 공동체성이 결여된 완전한 ‘개별성’에 회의를 느끼며 공공의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조율된 새로운 집합성을 추구하고 필요에 따라 거리를 두다가도 능동적으로 참여를 선택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파트의 ‘개폐식 특징’은 평소에 고립된 섬처럼 지내다가 필요에 의해 섬을 연결시킬 수 있는 ‘선택의 가능성’이 있어 주민의 공동체 참여의 필요성에 공간적으로 부합하고 있다(전상인, 2007, 22쪽). 그뿐만 아니라 아파트의 ‘자치 기능 및 서비스’, ‘주민 네트워크’는 선택적 공동체가 ‘동네’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파트 공간은 사생활 영역의 확보와 동시에 강한 유대(strong tie)가 아닌 ‘약한 유대(weak tie)’로서의 선택적인 공동체 생활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이중적 태도에 적합한 셈이다.7)
3. 연구 설계
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연구 방법으로 질적 연구 방법 가운데 하나인 ‘사례 연구’를 선정한다(Robert K.Yin, 2003/2021, 44쪽).8) ‘개별적 기술연구(idiographic approach)’라고도 불리는 사례 연구를 통해 대전광역시 아파트를 중심으로 조성된 B 공동체의 주민 참여에 관한 실증적 연구를 수행하여 현대사회의 새로운 공동체인 선택적 공동체의 가치를 탐구하고자 한다. B 공동체의 형성은 기존의 전통적 공동체가 추구해왔던 단편적 지역 문제 해결, 사회 가치에 기반한 공공의 이익 실현 등의 목적성과는 대비되며, 취미나 친목을 위해 모인 단순한 동호회 활동과도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B 공동체는 전통적인 필수적 공동체 담론을 넘어 개인적 선호와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며 비교적 약한 유대와 가벼운 관계를 좇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아파트라는 공간적 특성을 활용하여 평소에 프라이버시 영역을 유지하다가도 개인의 목적에 따라 선별적으로 참여를 결정하게 하는 선택의 가능성을 높이는 측면이 두드러진다. 더 나아가 이러한 공동체의 자발적 형성과 적극적 참여의 과정에서 ‘동네’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선택적 공동체의 실험적 형태를 갖추고 있어 사례 연구의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사례 연구를 위한 증거는 심층 면담, 기록물(활동보고서 및 결과보고서, 내부 설문조사, 언론 보도, 전시 도록, 사진 및 영상 자료 등), 문헌(국내외 정책 및 연구 자료)의 세 가지 자료원에서 수집한다. 연구자는 사례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특정 역할을 수행했던 대표자와 실무자(운영자 및 강사) 등 주민 4인을 대상으로 연구 참여에 대한 동의를 얻고 익명으로 심층 면담(in-depth interview)을 수행하였으며 반 구조화(semi-structured) 질문 과정을 통하여 왜, 어떻게 참여의 행위가 나타났는지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였다. 연구자는 면담 내용의 일부를 선택하여 직접 인용하거나 면담을 통해 나눈 이야기들을 요약하여 예시적으로 표현하였다.
연구는 B 공동체의 사례 분석을 통해 선택적 공동체에 참여한 주민의 동기와 목적, 역할과 의미, 참여에 대한 인식, 참여의 한계에 대해 탐색하며, 도시 주거공간 내 새로운 공동체 형성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첫째, 대전광역시의 B 공동체는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쳤는가? 둘째, B 공동체의 활성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민의 참여 특징, 참여에 대한 인식, 참여의 한계는 무엇인가? 라는 연구 질문을 설정하였다.
4. 대전광역시 B 공동체의 발전 과정
1) 선택적 공동체로서 B 공동체의 형태
B 공동체9)는 대전광역시 신성동, 신대동, 둔산동, 월평동 등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청년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어린이부터 청소년, 청년, 주부, 노인까지 전 세대를 대상으로 ‘아파트를 주제’로 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함으로써 공동체를 이루었다.
도시의 주거 환경은 이웃과 공생해야 할 동기가 과거의 농촌 사회와 비교하여 많지 않으며 도리어 사생활 안전 혹은 보호를 위한 ‘방어적 공간’ 개념이 우세하다(전상인, 2007, 21-22쪽). 아파트에서는 골목과 같은 매개 공간이 사라지면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만나는 ‘개폐식 삶’이 생겨났다. 아파트 현관문을 닫으면 내부는 나만의 사적인 공간이 되고, 동시에 그 문만 열고 나오면 많은 이웃과 교류가 가능한 것이다(전상인, 2009, 95쪽). B 공동체의 주민은 이러한 내부로 지향된 형태의 아파트에서 사생활을 유지하며, 개인의 비전과 가치 실현, 경제적 목적 추구, 자녀 교육의 필요, 이웃과의 관계 형성 등을 위해 B 공동체의 참여를 선택한다는 의미에서 선택적 공동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B 공동체는 아파트 단지의 공간, 자치 기능과 서비스, 기존의 네트워크 등을 활용하여 주민의 참여를 증폭시켰다. 예컨대 아파트의 노인정과 상가 내 교회 공간, 놀이터와 주차장 등을 전시와 무대 공간으로 이용하였는데 이는 아파트 안에서 노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학부모의 지지와 지나가는 주민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아파트 게시판과 안내 방송을 활용하여 B 공동체의 활동을 홍보하고 관리소장, 부녀회장, 노인회장, 상가 운영자 등 기존의 주민 대표들과 소통하며 주민 참여에 필요한 지원을 받았다.
B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민간 주도형으로써 주민이 직접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모든 활동을 추진하였으나 공모사업을 통해 정부 예산을 일부 지원받아 ‘주민-정부 협력체’ 유형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10) 농·산·어촌을 중심으로 낙후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대부분의 지역공동체와는 달리 B 공동체는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조성된 ‘도시형 지역공동체’의 모습을 띠고 있다(행정안전부, 2017, 26쪽). 연구는 대전시가 지역공동체의 주민 참여 수준에 따라 ‘모이자-해보자-가꾸자’의 단계로 발전 과정을 분류(박재목, 김도균, 민병기, 임현정, 2014, 13-15쪽)한 것에 의거하여 B 공동체의 주민 참여 과정을 분석한다.
2) B 공동체의 형성 및 발전 과정
‘B 공동체’는 대전문화재단의 ‘문화예술교육 키움 아카데미’ 수료자였던 청년 예술가의 고민에서부터 시작된다. 둔산동 아파트에 20년 넘게 거주했던 청년은 자신의 아파트 놀이터가 주차장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은 것을 발견한 후 ‘이곳에 사는 아이들에게 고향이라는 개념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7년 9월 대전광역시에 거주하는 5명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 주민의 생활 예술 참여를 매개로 아파트 문화를 만드는 ‘B 공동체’를 구상한다.
주민 P: “(...) 아파트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이 생활 예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청년 예술가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목표도 있었다. (...)”
첫 프로그램은 유성구 H 아파트에 거주하는 미취학 아동과 초등생을 대상으로 ‘아파트 고향 추억 쌓기’로 시작했다. 아파트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자신의 지도 만들기, 아파트 안에서 핫 플레이스를 정한 후 팻말 만들어 달기, 아파트 소통 우체국 만들기, 아파트 둘레길에서 텐트 치고 하루 캠핑하기, 아파트 나무에 이름 짓기, 아파트 로고송 만들기 등 2개월 동안 60여 명의 아이들이 아파트를 새로운 장소, 관심과 애착의 공간, 나의 고향으로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당시 아파트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만든 소통 우체국은 실제로 주민자치회 역할을 수행했다. 벤치 주변에 쌓인 담배꽁초는 주민 그 누구도 나서서 해결하지 않았던 일이었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동네의 문제로 인식하고 직접 청소한 후 화단으로 만들었다. 놀이터를 향해 있었던 에어컨 실외기 문제도 아이들의 소통 우체국을 통해 해결되었다.
5명의 청년 중 한 사람이 H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부녀회장님과의 친분으로 주차장 공간의 일부를 아이들 활동 장소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 아파트 주민자치회는 방공호 지하 공간을 수리하여 B 공동체가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다음 해 5명의 청년은 대전에서 문화예술 활동이 가장 필요한 아이들이 어디에 있을까를 고민한 후, ‘대전의 섬’이라고 불리는 대덕구 S 아파트에서 B 공동체를 운영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유성구와는 달리 대덕구에서는 주민들이 공동체 활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귀찮은 짓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는 주민부터 아파트 주민을 위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노인정 공간 등을 활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와동 또바기 도서관’에서 총 20회로 구성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고, 상반기에 40명, 하반기에 40명 정도의 어린이가 B 공동체에 참여했다. 그리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했던 B 공동체는 학부모의 참여로 이어졌다.
2019년 상반기부터는 어린이, 청년, 주부, 노인 등 B 공동체에 대한 주민의 관심과 참여가 확대되어 총 28명의 청년 예술가와 약 80여 명의 주민의 참여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다. 서구 G 아파트에서는 ‘주민의 인생이 아파트의 역사’라는 생각에서 “찬란히 빛나는 my life, 나의 인생 그림이 되다”라는 주제로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11)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이 B 공동체에 참여했으나 처음에는 서로 데면데면하였다. 하지만 ‘희로애락’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서 30대 청년이 취직하지 못하는 자신을 절벽에 매달린 모습으로 표현하자 80대 할머니가 위로를 건넸고, 인사를 나누기도 어려웠던 아파트에서 공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B 공동체 참여를 통해 진짜 ‘이웃사촌’이 되었다고 표현하였으며 대표자는 2019년도의 B 공동체 모임을 “처음 시작은 나의 인생을 그리기 위해 오셨지만, 나의 인생을 넘어 우리의 모든 인생을 격려하고 공감하며 함께 웃고 울어주셨다.”라고 기억했다.
B 공동체의 활동은 같은 해 가을 월평동 도서관을 기점으로 월평 실버 합창단(60명)과 아파트 오케스트라(48명)로 확장되었다. 주민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에 참여하며 서로의 악기 소리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소통을 시작하였고,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은 정자, 놀이터를 무대 삼아 창작곡으로 발표회를 가졌다. 아파트 정자와 놀이터는 주민이 모여 문화예술을 누리고 공론의 장이 형성되는 거점이 되었다.
2020년에는 ‘아! 파티(A-Party)’라는 이름으로 둔산동에서 아파트 축제를 개최하기까지 이른다. 아파트 축제는 그동안 주민들이 연습했던 음악(첼로, 피아노, 성악, 합창 등) 공연과 미술 작품 전시, 어린이 인형극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주민이 직접 준비하는 플리마켓(flea market), 부녀회와 상가 구성원의 음식 나눔도 있었다. 아파트 축제 당일에는 화재 등과 같은 위급상황을 알리는 데만 사용되었던 관리소의 스피커를 차량 이동 요청 및 플리마켓 오픈, 연주회와 전시 안내 등을 홍보하는 데 이용했다. 아! 파티(A-Party)에는 B 공동체에 참여했던 주민들과 더불어 관리사무소, 부녀회, 노인회, 상가번영회 구성원들이 봉사자로 참여했고, 실무자들이 전공별로 부스를 개설하여 ‘지나가는’ 주민들도 축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무대에서 이웃이 공연하고 전시하는 것을 보면서 B 공동체의 참여는 극대화되었다.
2020년 가꾸자 단계에서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모든 세대가 연결되고 동시에 세대별로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는 활동을 구성했으며 개인의 인생이 담긴 미술 작품을 아파트 곳곳에 전시하여 자신을 표현하도록 격려했다. COVID-19는 B 공동체의 참여 방식에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실무자는 아파트 집집이 문화예술 도구를 배달하고, 유튜브(youtube) 서비스를 활용하여 ‘가정 회복’이라는 주제로 각자의 방에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하여 B 공동체 활동에 참여한 주민들의 작품 개수가 많아지면서 2020년 10월 B 공동체는 대전 동구에 주민 미술관을 설립한다.
5. ‘선택적 공동체’ 활동에서 주민 참여의 특징과 참여에 대한 인식
1) B 공동체 참여의 특징
B 공동체의 활성화 과정에서 주민은 개인적 필요와 흥미가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참여를 선택하게 된 동기와 목적, 공동체에서의 역할이 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활동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참여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대표자는 둔산동 아파트 거주자로서 B 공동체 설립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아파티스트12)를 조직하여 주도적으로 공동체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B 공동체의 공간적,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또한 실무자들에게는 참여 동기를 부여했고 아파트의 기존 네트워크인 관리사무소, 부녀회, 노인회, 상가번영회 등 주민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지원을 요청했다.
주민 P: “(...) 초기에는 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기보다 활동을 이해시키고... 주민을 섭외하는데 바빴다. 매일 부녀회장님, 노인회장님을 찾아가 설득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
대표자는 공동체의 리더로서 전체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조정하고 홍보, 회계·관리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필요할 때 외부에서 자원을 획득하는 일을 하였다.
주민 P: “(...) 아파트만큼 공동체를 형성하기 좋은 곳이 있을까? 홍보 게시판부터 안내 방송까지, 게다가 멀리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안에서 노는 것이니까 엄마들이 정말 좋아했다. (...)”
실무자는 대전 신성동, 신대동, 둔산동, 월평동 등의 아파트에 거주하며 대전 지역의 대학에서 미술과 음악을 전공한 청년 예술가들로 구성되었으며, 처음 5명에서 시작하여 최대 28명까지 참여하였다.
주민 L: “(...) 미술 팀장으로서 앞으로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기획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팀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는데, 팀워크(teamwork)가 정말 좋았다. 다들 하고자 하는 열정이 엄청났고 함께 있을 때 시너지가 났다. (...)”
주민 CH: “(...) 개성이 다르고... 다른 장르의 청년 예술가들과 만나서 활동하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
실무자로 B 공동체에 참여한 청년 예술가들은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였으며 수강자인 주민들과 접촉하며 깊은 관계와 신뢰를 쌓은 당사자였다. “여러 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삶을 나누고, 그 삶을 예술로 표현할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화폭에 담으며 각 개인의 인생의 선율을 아크릴 물감으로 아름답게 표현하셨다. 눈을 감으면 한분 한분의 얼굴과 작품이 떠오르며 미소 짓게 한다.”라고 한 실무자는 당시의 활동을 기억했다. 실무자의 B 공동체 참여는 아파트의 근린 생활성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이들의 활동은 주민 간 사회적 상호작용을 증대시켰으며 자발적인 참여를 확대시켰다.
주민 K: “(...) 음악은 앙상블(Ensemble)이다. 처음에 서로 경계하고 낯을 가렸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내가 없을 때도 서로 알려주고 그랬다. (...)”
주민 P: “(...) 정부(주민센터 등)에서 운영하는 모임의 경우, 예산은 충분하지만, 담당자는 1년마다 바뀐다. 그 담당자가 모임과 주민에 대한 무슨 애정이 있겠는가? (...)”
수강자는 B 공동체에 개인의 필요에 따라 지속적으로 또는 간헐적으로 참여하는 아파트 주민이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B 공동체의 대표자 및 실무자와 협력하고 소통하며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참여하였으며 주어진 역할 수행에 있어서 적극적이고 필요한 경우 실무자를 보조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수동적으로 혹은 일회적으로 아파트 축제에 참여하는 주민도 포함된다. 수강자 주민은 기존에 정부에서 마련한 주민센터의 문화예술 프로그램 대신 B 공동체를 선택한 이유로 아파트 단지 안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이들이 내 집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것을 언제든지 볼 수 있어서 좋았고 향후 일정 수준의 회비를 납부하더라도 아이들을 참여시키고 싶다고 덧붙였다.
주민 P: “(...) 토요일에 아이들이 젊은 선생님과 노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덕분에 나는 토요일 오전에 쉴 수 있었다. (...) 00가 팔 부러져도 깁스하고서 나갔다. 학교는 못 가도 여기 모임은 나갔다. (...)”
주민 P: “(...) 공동체 활동으로 민원이 사라졌다. 모임 때 같이 상의해서 일을 해결하게 되니까. (...)”
주민 L: “시골에 사시는 어르신과는 달리 아파트의 어르신은 집에서 하실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아 보였다. 미술은 어르신들께 새로운 도전이었다. (...)”
주민의 B 공동체에 대한 참여는 주민 간 관계 형성을 통해 관심, 기쁨과 슬픔의 나눔, 신뢰 등을 경험하도록 했고, 이는 주거에 대한 만족도를 높인 것으로 확인된다. B 공동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의 문화예술 교육 그 이상의 ‘동네 효과’를 발휘하는 지역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2) B 공동체 참여에 대한 인식
B 공동체 활동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른 참여에 대한 인식은 대표자, 실무자, 수강자 등 주민 모두가 상이했다. 대표자는 B 공동체가 ‘자신의 꿈’이었으며 공동체의 성취가 곧 자신의 성취로 이어졌고 실무자도 일정 부분 그 의미를 공유했다. 실무자의 경우 가치와 경험의 추구, 경제적 목적 등으로 공동체에 참여했으며, 수강자와 직접적 관계를 통해 참여의 의미가 부가되기도 했다. 수강자는 개인적 필요 또는 흥미가 참여의 동기가 되었고 이웃 간 상호 교류 과정에서 참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기기도 하였다. 대표자는 B 공동체에 오랜 기간 참여하고 있는 20% 정도의 수강자 주민은 특별한 의미와 진정성을 갖고 활동한다고 말했다.
대표자는 B 공동체를 자발적으로 형성한 5인의 청년 예술가 중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B 공동체 참여로 인해 수반되는 비용을 개인의 선택에 따른 당연한 것으로 간주했다. 대표자는 때때로 B 공동체 운영을 ‘희생’이라고 표현했지만, “내가 배운 예술을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꿈 때문에 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민 P: “(...) 대전에서 나고 자란 청년인데, 대전에서 설 곳이 없다. 우리 동네에서 이런 공동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서 사회 구성원으로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주민 P: “(...) B 공동체에 참여하는 10명 중 2명은 삶을 얻어 간다. 우울증 때문에 집 밖에 못 나가던 어머니를 딸이 모시고 왔다. 그냥 우리 아파트 안에서 하니까. 아줌마는 그림 그리면서 늘 우셨다. (...)”
실무자의 참여는 대표자 또는 수강자와는 확실히 다른 의미를 지니었는데, B 공동체 활동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며, 내적 경험과 성장을 바탕으로 참여를 이어오고 있었다.
주민 K: “(...) 무대에서 박수받는 연주자로서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B 공동체 현장에서 주민들은 나를 사람으로 대한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마음이 채워졌다.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들께 열정 같은 것 배웠다. (...)”
주민 CH: “(...) 스킬이나 결과 중심적인 익숙한 방법 말고 창의적인 미술 교육에 대해 고민했었다. 아파트를 주제로 활동하는 것도 참신하고... 단지 안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이 예술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구나 (...)”
한편, 경제적인 목적도 실무자 참여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주민 P: “(...) 지금 시대가 예술가에게 너무 가혹하다. 음대 졸업해서 갈 곳이 없고 레슨도 하기 어렵다. 학원을 차리자니 주민센터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는데 누가 돈을 주고 배우겠나! 그런데 B 공동체 활동을 통해 용돈을 벌 수 있었고, 레슨하는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 (...)”
수강자는 최초의 B 공동체 참여에 대한 의미로써 생활의 필요 특히 자녀의 교육과 자신의 취미 등의 목적이 있었으나, 이후 활동 과정에서 이웃 간 상호 교류와 유대 관계를 구축하게 됨으로써 참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다. 수강자들은 B 공동체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넘어 삶의 고민에 대해 나누고 도움을 준 것, 아파트 축제를 준비하며 각자 성향에 맞는 역할을 분담하고 정기적인 소통을 한 것, B 공동체 모임 때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살림에 필요한 물건을 공동 구매·교환한 것 등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 아파트 축제를 준비하여 놀이터 또는 정자 무대에 설 때 그 감격과 뿌듯함에 대해 표현했다.
주민 P: “(...) 나는 한 번도 미술을 해보지 않았고... 그림 그리는 것이 로망이었다. 그래서 B 공동체가 아파트를 옮겨 다닐 때 모두 따라갔다... 나는 B 공동체 팬이다. (...)”
주민 P: “(...) 취준생 때 B 공동체 하면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
그리고 B 공동체 활동 중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파트 내부의 문제가 공론화되고 의제화되어 주민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소통 과정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되었다. 주민들은 반상회는 참석 못 할지라도 B 공동체 활동은 꼭 나간다고 말했다.
3) B 공동체 참여의 한계
B 공동체는 현재 공동체의 자발성이 자립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정비 기간을 갖고 있다. B 공동체 역시 다른 지역공동체와 같이 정부의 예산 지원이 없을 경우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재정적, 제도적 한계가 드러났다. 처음 5명의 청년 예술가들이 스스로 자원을 동원하여 공동체를 형성했고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일부분의 재정과 시간을 ‘희생’했다. 그러나 B 공동체에 참여하는 수강자 주민의 수가 일주일에 수백 명이 넘었을 때는 실무자들이 계속 봉사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며 사업비에만 의존할 수도 없었다. 대표자와 실무자, 수강자 주민은 B 공동체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아파트의 공금 및 개인의 회비와 더불어 공동체 자체적으로 수익을 낼 방안을 간구하여 참여를 중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민 P: “(...) 아파트 공동체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꼭 필요하다. 주민들끼리 화합하고 나누면서 치유 받는다. 할머니는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도 해보고... 그런데 공동체에는 짊어지는 사람이 필요하다.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
더구나 B 공동체의 활동에 무료로 참여했던 수강자 주민의 입장에서는 비용을 지불하고 참여할 것인가에 대해 다시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 대표자와 실무자들은 아파트 공동체 및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민 P: “(...) 그동안 주민들이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체험했다. 공짜로 받다가 갑자기 돈을 내고 참여하는 것은 어렵다. 나는 생활 예술의 가치를 주민들이 알기를 바랬으나 이것의 가치를 아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
아울러 B 공동체의 참여 행위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실무자로 참여했던 청년 예술가들은 공통으로 아파트에 공동체 활동을 위한 공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파트에는 놀이터, 운동 시설, 주차장, 어린이집, 노인정 등과 같은 기본 부대 시설은 있으나 주민들이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회의실 등의 공유 공간은 상당히 미흡한 실정이다. 사실상 주민들이 자체적인 모임에 자유롭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간 활용에 대한 유연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민 CH: “(...) 함께 모여서 이것저것 취미 활동을 하고 싶은 주민들이 있지만, 모일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없다. 공동체를 키워나가는데 공간적 제약이 있다. 아파트에 편안한 공간이 있다면, 여러 가지 공동체 활동이 일어날 거다. (...)”
주민 CH: “(...) 아파트 단지에서 어디까지 활용, 활동이 가능한지가 늘 고민이었다. (...)”
주민 P: “(...) 어떤 아파트도 흔쾌히 공간을 내주는 곳은 없었다. 동사무소에서는 한 단체만 손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이 동네 공동체가 얼마나 많은데, B 공동체에 공간 내주면 다른 곳 난리 난다고 했다. (...)”
마지막으로 선택적 공동체의 활성화에는 B 공동체의 대표자와 실무자 등과 같은 매개자의 역할이 핵심이며 부녀회와 노인회 등 주민자치회의 지원과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6. 결론 및 시사점
본 연구는 도시의 ‘아파트 공동체’가 소극적 근린 활동 위주 혹은 권익 보호 차원의 공동체를 넘어 자발적인 선택적 참여형 공동체로 전환되고 있는 것을 주목하고, 대전광역시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B 공동체의 사례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선택적 공동체’의 형성과 발전 과정, 그리고 주민 참여의 특징과 참여에 대한 인식, 참여의 한계에 관해 탐구하였으며, 현대 도시의 새로운 공동체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밝히고자 하였다. B 공동체의 참여 과정은 ‘개개인의 이익 표현’으로 규정할 수 있으며, 자신의 참여 동기와 목적, 역할과 의미 등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수강자 주민은 참여 과정에서 소요한 시간과 비용 대비 효과가 클 경우에 B 공동체에 참여하였으며, 대표자와 실무자 주민의 경우 공동체 참여에 대한 책임감, 성취감 등을 지니고 있었다. 참여 기간이 오래된 몇몇 수강자 주민은 개인적 회복, 정서적 유대 등과 같은 새로운 참여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기도 했다. B 공동체는 선택적 공동체의 초기적인 발달 단계에 지나지 않지만, 도시 주거공간인 아파트가 개폐식 공간 구조, 자치 기능 및 서비스, 기존의 네트워크 등의 측면에서 선택적 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을 증명하였다. 특히 “각자 자신의 고치 속에서 살아가기를 택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와 개인적 가치를 중시하는 현대 도시인들의 경향성은 선택적 공동체 형성의 잠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전상인, 2007, 22쪽).
B 공동체는 개인의 ‘선택할 수 있는 권리(right to choose)’를 강조했지만, 주민 참여 자체에 대한 접근성과 민감성, 반응성을 높였으며(이재열, 2006, 47쪽), 이는 지역사회 발전의 전제인 참여적 시민 의식, 시민사회(civil society)에 대한 경험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를테면 B 공동체 모임 중에 아파트 공동의 문제- 환경 정화 문제, 공동 시설 문제, 교육 문제 등이 자주 거론되었으며, 이를 통해 주민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의사결정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적 공동체의 실천적 성과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지속적 운영을 위한 매개자 역량 강화 및 안정적, 자립적 조직 구축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는 B 공동체의 사례를 통해 주민의 참여가 지극히 저조한 명목상 혹은 형식적인 마을만들기 사업에 시사점을 제공하고 도시 주거공간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부합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함의를 제시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연구는 심층 면담, 기록물, 문헌 자료 등의 ‘삼각 검증법’을 바탕으로 사례 분석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 개인의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대전광역시라는 지역의 특수성을 포함하는 연구 결과를 우리나라 도시에 일반화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향후 다른 도시의 선택적 공동체 사례에 대한 심도 있는 후속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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