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이윤율 위기와 신자유주의적 대응: 4차 산업혁명론의 비판적 해석
초록
본 논문은 4차 산업혁명론을 신자유주의 전략의 일환으로 설명한다. 전후 케인스주의에 기반해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세계 자본주의는 1970년대 이윤율 하락에 직면하였다. 신자유주의는 이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대응이었다. 신자유주의 전략은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에 반대하고 복지 축소나 노동유연성 강화 등을 통해 이윤율 저하를 만회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보통신 기술은 신자유주의 전략을 작동케 하고 물리적 토대가 되었다. 정보통신 기술은 금융자본의 글로벌화를 가능케했으며, 산업자본의 지리적 제약을 완화시켰다. 동시에 정보통신 기술은 자본으로 하여금 부불노동을 활용해 막대한 잉여가치를 확보하게 하였다. 4차 산업혁명론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전략과 밀접하게 결착되어 있는 기술 담론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전략은 빈부격차 심화 및 금융위기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대응은 신자유주의의 종결과 케인스주의로의 복귀가 아니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기술 담론을 활용해 보다 세련된 형태로 신자유주의 전략을 정당화하고 있다.
Abstract
This paperargues that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is a political discourse throughwhich neoliberal states attempt to overcome the crisis of capitalism. In response to the falling rate of profit in the 1970s, neoliberal states, such as the Thatcher and Reagan governments, actively pursued privatization, deregulation, and free trade to maximize the power of the markets. Information-communication technology(ICT) played a critical role in realizing these neoliberal strategies. ICT has enabled capitalists, financial or industrial, to overcome the geographical limitations and exploit a large amount of free labor. On the other hand, the neoliberal strategy could not avoid economic instabilities, such as the 2008 financial crisis. Moreover, vehement social resistance against neoliberalism has taken place, as shown in the Occupy Wall Street movement. Neoliberal states have responded to these problems by relying on new technology discourses, such as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With theseutopian technologies, neoliberal states have attempted to justify the necessity of labor flexibility to securetheir stable profit.
Keywords: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Neoliberalism, The Falling Rate of Profit, Information-Communication Technology, Cognitive Capitalism키워드:
4차 산업혁명론, 신자유주의, 이윤율 저하, 정보통신, 인지자본주의1. 서 론
본 논문의 목적은 4차 산업혁명론의 발생 배경과 그 정치적 기능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4차 산업혁명론을 신자유주의가 전략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기술 담론이라고 설명한다. 본 논문은 국가와 자본이 4차 산업혁명론을 활용해 노동유연성 강화를 정당화함으로써 이윤율 제고를 시도한다고 주장한다.
4차 산업혁명 개념은 2016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회장인 Schwab(2016)이 최초로 제기하였다. 슈밥은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각각 증기기관, 전자·화학, 정보통신 등을 예시하고 4차 산업의 핵심 기술로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등을 거론하였다. 슈밥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은 인류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혁신적 기술사회의 도래를 의미하였다. 물론, 슈밥의 개념어인 4차 산업혁명과 명칭만 다를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유사한 개념들이 이미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제조업 혁신 국가네트워크(National Network for Manufacturing Innovation; NNMI),’ 독일의 ‘인더스트리 4.0(Industry 4.0),’ 일본의 ‘소사이어티 5.0(Society 5.0),’ 중국의 ‘중국제조 2025(中國製造 2025),’ 인도의 ‘디지털 인디아(Digital India),’ 그리고 싱가포르의 ‘정보통신미디어 2025(Incom Media 2025)’ 등이 그것이다. 한국에서도 2016년 초 이세돌-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이에 따라,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후보 모두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을 발표하기도 하였다(홍성욱, 2017).
본 논문은 이와 같이 ‘유행’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한다. 본 논문의 핵심 분석 대상은 4차 산업혁명의 내용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담론이 대량으로 생산·확산되는 정치경제적 배경이다. 푸코에 따르면, 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지식 담론은 권력의 효과이기도 하며 동시에 권력을 정당화시켜주기도 한다. “지식과 권력은 순환적(circular)인 것이다”(Faubion, 2000, p. 132). 이러한 맥락에서, 4차 산업혁명 관련 방대한 담론의 배후에도 모종의 정치경제적 권력 의지가 작동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본 논문은 그 주체를 신자유주의 국가(Neoliberal state)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신자유주의 국가가 4차 산업혁명론을 활용해 노동유연성 강화를 정당화한다고 주장한다.1)
4차 산업혁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대부분의 주류 시각과 달리 비판적인 논의들도 소수 존재한다. 이들 논의는 4차 산업혁명론이 주장하는 기술유토피아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그것이 지배 권력의 이익에 봉사하는 담론으로서 작동할 가능성을 비판한다(서동진, 2017; 손화철 외, 2017; 정완규, 2017; 홍성욱 외, 2017). 본 논문은 기존 연구에 비해 신자유주의와 4차 산업혁명론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론을 마르크스가 설명한 이윤율 저하 경향에 대한 대응으로 설명한다는 측면에서 기존 논의들과 차별성을 가진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2장에서 권력과 기술 담론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며, 1차 산업혁명 이후 현재까지 기술 담론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3장에서는 마르크스의 분석을 토대로 자본주의의 이윤율 하락 경향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신자유주의의 출현과 전개를 설명한다. 특히, 정보통신 기술과 신자유주의 전략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며, 이 맥락에서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어떻게 노동유연성 강화를 정당화해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지 설명할 것이다. 결론에서는 4차 산업혁명론을 활용한 신자유주의적 전략에 대한 저항의 문제를 다루고 그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2. 권력과 기술 담론
과학기술 자체와 과학기술 담론은 별개의 것으로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이 물리적 실재물이라면, 담론은 그 실재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기술 자체가 몰가치적이라면 그 담론은 사회 권력 관계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과학철학자 Kuhn(1970)에 따르면, 과학 담론은 패러다임(paradigm)에 의해 규정된다. 패러다임은 과학적 문제나 방법론뿐만 아니라 심지어 답안까지도 설정한다. 따라서 패러다임 안에서 훈육되고 양성된 과학자들은 그러한 규칙들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소위 ‘정상과학자(normal scientist)’의 출현이다. 만약 어떠한 과학자라도 패러다임이 설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정상과학으로부터 추방된다.
지식 패러다임은 누가 설정하는가? 그 설정 주체는 정치사회 권력과 동떨어져 사고할 수 없다. 푸코에 따르면, 지식과 권력의 관계는 상호 순환적이다. 지식이 권력을 정당화한다면, 권력은 지식을 창출하고 관리한다. 따라서, 지식은 합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순수한 의미에서 참 혹은 거짓으로 이분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마다 지식의 참과 거짓을 규정하는 각각의 진리체계(regime of truth)가 존재한다. 즉, 동일한 지식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 진리값이 유동적일 수 있다(Foucault, 2003). 예를 들어, 고대 이래로 과학적 진리로 인정받던 천동설이 17세기 뉴턴혁명을 통해 거짓으로 판별되었던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방법론적 무정부주의자를 자처하는 Feyerabend(1978)는 현재의 과학지식 역시 정치적 담론에 불과하며 점성술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까지 주장한다.
푸코는 이와 같이 결착되어 있는 지식과 권력의 내밀한 상호관계를 해체한다. 푸코의 연구대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지식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라 할 수 있다. 푸코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제도적 규칙성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배치와 개인이나 집단을 구성하는 권력형태의 특징적인 연결망·흐름·중계·거점·잠재적 차이”이다(Foucualt, 2007/2011, p. 170). 푸코는 제도나 현상, 그리고 지식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의 정치적 배후를 ‘문제화’하는 것이다(Foucault, 2008). 예를 들어, 18세기 정신병리학의 대두는 자본주의 발전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즉, 원활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는 사회 개체를 정당하게 솎아내려는 권력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Foucault, 1961/2003).
이러한 비판적 접근 방법은 산업혁명을 분석하는데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산업혁명이라는 기술변혁은 사회·정치적 권력관계의 변화와 밀접하게 결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기술 자체와 그 담론은 별개의 것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1차 산업혁명기 증기기관, 2차 산업혁명기 전기, 화학, 내연기관, 3차 산업혁명기 정보통신 기술, 그리고 4차 산업혁명기 인공지능 등은 그 자체로는 몰가치적인 기술이다. 반면, 이러한 기술변혁을 전후로 하여 출현하는 사회담론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18-19세기 유럽에서 확산된 자유주의 이념은 1차 산업혁명과 동떨어져 이해될 수 없다. Hobsbawm(1962/2005)이 ‘이중혁명’이라고 명명한 바와 같이, 당시 유럽에서는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혁명이 조응해 이후 자본주의 시대의 토대를 구축하였다. 자유주의는 산업혁명으로 출현한 부르조아 계급의 정치 담론으로 작동하였다. 자유주의는 부르조아 계급이 봉건 군주체제를 타파하고 정치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이념적 토대가 되었으며, 노동력 확보라는 경제적 목표 달성에 봉사하였다. 마르크스의 지적대로, 자본의 이윤이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가치로부터 나온다면, 안정적인 노동력 확보는 부르조아 계급에게 사활적 목표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부르조아에게는 당시 농촌 토지에 묶여 있던 노동력을 해방시켜 도시노동자로 변화시켜야 할 시급성이 있었다.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인간 해방의 이면에는 부르조아 계급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었던 것이다(Marx, 1867/2005).
물론, 1차 산업혁명기 노동력 공급이 온전히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작품일 수만은 없다. 자유주의 확산이라는 외형 속에서는 자본 친화적인 법·제도 역시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799년 영국에서 국가와 부르조아 계급이 주도해 만든 ‘단결금지법(Combination Act)’은 폭증하는 노동계급의 단체행동을 억압해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였다. 또한, 19세기 전반 마무리된 인클로저 운동은 토지 사유화를 법제화함으로써 토지로부터 유리된 농민들을 대거 도시 노동자로 전환시켰다.
한편, 19세기말부터 진행된 2차 산업혁명기에도 기술과 담론은 밀접하게 결착되었다. 2차 산업혁명기 전기, 화학 기술 및 내연기관의 발전은 1차 산업혁명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대량 생산체제를 가능케 하였다. 전동기로 구동되는 컨베이어벨트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배치되면서 단위 시간당 생산량은 극대화되었다. 아울러 내연기관과 전기통신의 발전에 따른 교통과 통신의 발전으로 인간 사회는 획기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 소위 포드주의(Fordism)는 이러한 사회변혁과 연결되는 정치적 담론이었다.
포드주의는 글자 그대로 포드자동차 공장에서 유래한 생산 및 관리 체계를 의미한다. 그 내용은 대량생산, 제품의 표준화, 기계화, 노동에 대한 규율적 관리(테일러 주의)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포드주의는 경영 분야를 넘어 사회 전 영역에 걸쳐 대량소비, 표준화(집단화), 경쟁, 수직적 위계관계 및 중앙명령식 계획 등의 문화를 창출하고 정당화하였다. 포드주의는 “진보와 시간의 경제라는 이름으로 행한 파괴성”이며 따라서 근대성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담론으로 기능하였다. 소련이 포드주의의 가장 전형적 사례라는 사실은 포드주의가 국가체제를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Piore & Sabel, 1993/2010, pp. 92-96).
1970년대 이후 출현한 포스트 포드주의(post-Fordism) 역시 컴퓨터 기술 발전에 따른 디지털 혁명과 결착관계를 이루었다. 포스트 포드주의는 소수품목의 대량생산체제를 강조하는 포드주의와는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 이나 ‘적소시장(틈새시장: niche market)’ 공략, 그리고 ‘적기주문생산체제(just-in-time system of ordering)’을 정당화하였다. 포스트 포드주의는 포드주의의 획일화된 생산을 지양하고 ‘생산의 유연화’를 강조한다. 컴퓨터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이러한 포스트 포드주의의 실행을 가능케하는 토대가 되었다. 컴퓨터는 차별화된 상품에 대한 소비패턴을 정밀하게 추산할 수 있게 했으며, 아울러 그에 맞추어 생산라인을 손쉽게 변화시킬 수 있었다. 생산 품목 변경을 위해 공장 설비 전체를 교체해야 했던 이전과 달리 이제 컴퓨터 프로그램의 단순한 재입력으로 생산라인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Piore & Sabel, 1993/2010).
포스트 포드주의 역시 경영부문을 넘어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1970년대 후반 이후 영국의 대처 정권과 미국의 레이건 정권이 추구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는 포스트 포드주의와 결착한 이데올로기였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개입 약화, 시장역할 강조, 복지축소, 개인 능력 강화(인적 자본화)와 경쟁 극대화, 초국적 지구화 등을 강조하고 정당화하였다. 또한, 획일성 및 전체성을 강조한 포드주의와 달리 개인의 능력 강화를 통한 경쟁을 강조하였다. 신자유주의는 심지어 개인들로 하여금 1인 기업이 될 것을 강요하고 무한 경쟁으로 내몰기도 하였다. 그에 따라 수동적이고 반숙련공적인 특성을 띠던 포드주의적 인간형은 그 유용성을 상실하게 된다(Foucault, 2010/2012; 佐藤嘉幸, 2009/2014).
3. 신자유주의 전략과 4차 산업혁명론
4차 산업혁명 역시 기술 자체와 그 담론은 별개의 것이다. 인공지능 그 자체는 몰가치적이지만, 인공지능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은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은 그 개발이 완결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이고 더 나아가 미래를 규정하는 자기희망적 성격을 가진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이 과연 실재하는지도 논란중이다. 4차 산업혁명 개념은 이미 1940년대 말부터 전자, 컴퓨터, 핵에너지 기술 등을 포괄하면서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언급돼 왔기 때문이다(홍성욱, 2017). 이와 같다면, 4차 산업혁명 기술은 현존했었던 것에 대한 ‘규정적(regulatory)’ 개념이 아니라 ‘발견적(heuristic)’ 개념이라 할 수 있다(정완규, 2017). 따라서, 인공지능, 가상현실, 인터넷 초연결과 같은 신기술이 현재 예상되는 것과 같은 방향으로 발전할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그만큼 4차 산업혁명이 담론으로서 작동할 공간이 큰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1970-80년대 컴퓨터·정보 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예상과 달리 생산성 및 생활수준의 향상에는 기여하지 못했다는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 기술에 기반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기술 역시 현재의 ‘열풍’이 예상하는 바와는 달리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없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고든에 따르면, 정보통신 혁명은 예상하는 바와는 달리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지 못했다. 20세기 초반 2차 산업혁명이 초래한 의식주 전반에 걸친 발전이 70년대 이후 정보통신 혁명 시기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21세기 인간 생활은 여전히 2차 산업혁명 기술들인 전자, 모터, 유기화학, 합성, 그리고 내연기관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Godon 2016/2017; Reynolds & Szerszynski, 2012).
솔로우 역시 디지털 혁명이 실제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소위 ‘솔로우의 역설(Solow’s paradox)’이다(Solow, 1978). 물론, 신기술 발전이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반론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솔로우의 주장 이후 3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정보통신 혁명과 생산성 향상 사이의 유의미한 통계적 근거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Acemoglu, Autor, Dorn, Hanson & Price, 2014). 브레너 역시 1980, 90년대 이후 자본의 이윤율 상승은 정보통신 기술 덕분이 아니라, 임금상승의 정체, 달러 가치의 하락, 기업재무구조 개선 등의 결과라 주장하고 있다(Brenner, 2002/2007).
이와 같다면, 정보통신기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4차 산업혁명의 미래 역시 반드시 장밋빛 일 수만은 없다. 더군다나 4차 산업혁명론이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을 이전의 기술혁명 담론들처럼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20세기 초중반 전기·전자 기술혁명은 인간의 삶이 더욱 행복해질 것이란 ‘기술 유토피아’ 담론을 산출했다. 인간이 노동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자동차나 비행기와 같은 혁신적 운송수단의 발전과 가전제품의 일상화는 인간의 삶을 개선하였다. 또한, 달 탐사와 같은 우주개발 역시 순수 과학기술에 대한 인류의 희망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그러한 희망을 뚜렷이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정보통신 기술은 신자유주의 담론과 밀착되면서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하는 커녕 더욱더 취약한 노동 환경으로 내몰고 있다. 정보통신혁명기 인간은 “일이 사라진 세계의 문명을 꿈꾸는 대신 일자리가 사라질 때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지 대비하라는 기술유토피아의 협박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서동진, 2017, 292-293쪽). 이러한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론 열풍 이면에는 모종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국가는 일자리가 사라진 세계에 대비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그러한 권력주체이며, 개인들은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주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론에 내재된 신자유주의 국가의 정치경제적 목표는 무엇인가? 아래에서는 이윤율 저하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그 목표를 설명한다.
1) 이윤율 저하 경향과 그 대응
자본의 이윤율 저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존재하나, 마르크스가 시론적이면서도 정밀한 분석을 수행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주지하듯,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이윤을 노동이 산출하는 ‘잉여가치(surplus-value)’에 대한 자본의 착취라고 규정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은 불변(constant) 자본과 가변(variable) 자본으로 구성된다. 불변자본이 생산과정에서 기계와 원료와 같은 물적 요소라면, 가변자본은 노동과 같은 인적요소이다(Marx, 1867/1995).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변자본이 그 자체로서는 이윤을 창출할 수 없는 ‘죽은 노동’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기계는 마멸에 의해 평균적으로 상실하는 가치 이상으로는 결코 생산물에 가치를 첨가하지 않기” 때문이다(Marx, 1887/2005, p. 519). 만약 자체적으로 가치를 증식하는 기계가 있다면 그것은 물리법칙을 위배하는 꿈의 기계이거나, 아니면 돌로 금을 만들 수 있다는 연금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불변자본에 가변자본인 산 노동(노동자의 노동력)을 투여해야만 한다. “자본가는 노동력의 구매를 통해 노동 그 자체를 살아 있는 효모로서 죽어 있는 생산물 형성요소에 합체”시키는 것이다(Marx, 1867/1995, p. 235).
산 노동이 자본의 가치를 증식시킬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기계가 갖지 못하는 독특한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은 자본가가 그 대가로 노동자에게 지불한 것 이상의 가치(잉여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C=c+v+s로 정리하였다. 여기서 C는 총자본이고, c는 불변자본이며, s는 잉여가치다. 잉여가치(s)는 지불된 노동(v)이 그 지불가격 이상으로 생산해낸 가치다. 즉, 가변자본의 증감분(v∆)이다(Marx, 1867/1995).
노동력은 하루종일 활동하고 노동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력을 하루동안 유지하는 데는 1/2 노동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정, 따라서 노동력의 하루 사용에 의해 창조되는 가치가 노동력의 하루 가치의 2배가 된다는 사정은... (중략)... 우리의 자본가는 이 사정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쾌활하게 웃은 것이다(Marx, 1867/1995, p. 246).
이와 같다면, 자본가가 획득하는 이윤의 비밀은 노동이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확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가는 지불된 가치 이상으로 노동력이 잉여가치를 생산하도록 할 합리적 동인을 가진다. 그러나, 문제는 자본가가 이윤율(s/c) 하락이라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총이윤이 잉여가치의 수준에 따라서만 결정된다면, 따라서 잉여가치율 (s/v)이 일정한 상황에서 불변자본(c)이 증가할수록 이윤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기계를 도입할수록 이윤율은 그에 반비례해 감소하는 것이다(Marx, 1894/2018).
사실 이윤율 저하의 원인분석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다양한 논의들이 존재한다. 마르크스와 그를 따르는 소위 근본주의자들은 이윤율 저하의 원인을 상술한 바와 같이 총자본에서 불변자본의 증가(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에서 찾는다. 반면, 신리카도주의 공황론과 조절이론은 이윤율 저하를 임금인상과 생산성 감소로 설명한다. 한편, Brenner는 자본간 국제경쟁의 심화로 인해 과잉생산이 초래되고 그로 인한 상품가격 인하가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Brenner, 1998/2001). 그러나 이들 설명은 상호간 시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윤율 저하가 자본주의의 보편적 현상이며, 주기적인 경제공황은 이윤율 저하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진다는데 동의한다.
이와 같다면, 자본의 입장에서는 이윤율 저하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할 합리적 동인을 가진다. 따라서, 자본이 불변자본의 증가로 인해 초래되는 이윤율 감소를 단위당 잉여가치를 증가시킴으로써 상쇄하려 하는 것은 합리적인 대응일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는 이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자본은 기계제 확대와 더불어 이전의 숙련공을 반숙련공으로 대체하고 여성과 아동 노동을 대량으로 고용한다. 아울러 노동일(시간)을 늘리고, 만약 노동일이 법적으로 제약받는다면 노동강도와 밀도를 강화한다. 또한, 대외무역을 통해 값싼 기계를 수입해 불변자본 비용을 감소시키거나, 값싼 물건을 수입해 노동자들의 생계유지 비용을 낮춰 잉여가치율을 증가시키려 한다(Marx, 1867/1995; Marx, 1894/2018). 결국, “기계에 의한 자본의 가치증식(valorisation)은 기계에 의해 생존조건이 파괴당하는 노동자의 수에 정비례”하는 것이다(Marx, 1867/1995, p. 277).
실제로 마르크스의 분석 이후 자본주의는 노동관리 및 통제를 통해 끊임없이 잉여가치율을 강화하려 했다. 포드주의의 과학적 노동관리 전략이 대표적이다. 20세기 초 출현한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대량의 기계설비를 활용한 대량생산 체제였다. 그러나 잉여가치율이 일정한 상태에서 대규모 기계만을 확충하게 된다면 마르크스의 설명대로 이윤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는 기계설비의 확충과 동시에 노동에 대한 엄격한 관리를 수행해야할 합리적 동인이 생긴다. 즉, 포드주의적 대량생산은 이전의 숙련공(장인)들을 컨베이어벨트에 따라 파편화된 대량의 단순노동자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 결과 상품 생산과정에서 주체적 역할을 하였던 노동자들은 점차 기계에 종속되어 객체화되어 버렸다. 동시에 노동자들은 소위 테일러주의(Taylorism)로 불리는 과학적인 노동 관리법에 따라 생산기계로 규율화되었다(Piore & Sabel, 1993/2010). Taylor(1911/2010)가 요약하듯, 과학적 관리법의 핵심 목표는 단위시간당 노동효율성의 극대화이다. 구체적으로 과학적 관리법은 경영시스템을 체계화하고 노동자들의 근무 태만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노동자 개개인의 작업량과 능률을 정밀하게 기록하고 그에 근거해 임금과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이다.
실제로 자본은 포드주의적 경영을 통해 이윤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였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대규모 재건 수요와 케인스주의에 기반한 국가주도 경제개발 전략이 맞물리면서 전후 자본주의 경제는 ‘황금시대(Golden age)’를 맞기도 하였다. 생산성 증가, 완전고용, 그리고 가계 소득증가에 따른 수요증대가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특히, 대규모로 세력화한 노동계급은 생산성 향상에 따른 보상을 획득하는 대가로 자본과 타협함으로써 이윤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데 일조하였다. 노동계급이 자본에 대한 자발적 종속을 수용하는 대가로 자본과 국가는 노동계급에 복지를 제공하는 상생적 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박제성, 2012; 윤상우, 2014; Boyer, 2004/2013).
2) 포드주의 위기와 신자유주의 전략
1970년대 이후 자본의 이윤율은 다양한 정치·경제적 원인으로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에 대응해 자본과 국가는 신자유주의 전략을 통해 이윤율 하락을 만회하려 하였다. 디지털 혁명에 기초한 정보통신 기술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전략을 실행시키는 물리적 토대가 되었다.
<그림 1>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196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자본의 이윤율은 급속히 하락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의 토대가 되어 왔던 포드주의 축적체제의 위기를 의미하였다. 포드주의 위기의 원인은 포드주의 자체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이른바 ‘성공의 역설’이다. 예를 들어,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딛고 있는 대규모 노동계급은 결국 포드주의 축적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었다. 노동계급의 대규모 세력화는 결과적으로 가파른 임금인상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후 케인스주의의 완전고용과 복지체제는 노동계급의 세력화를 가능하게 한 배경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차별화된 상품을 선호하는 소비 욕구를 따라가지 못해 초래된 과잉생산 및 일본과 독일의 부상에 따른 국제경쟁의 심화 역시 이윤율 저하를 초래하였다(윤상우, 2014). 물론, 마르크스의 설명과 같이 신기술 도입에 따른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도 그 원인의 하나였다(Harman, 2007).
신자유주의는 이윤율 저하에 대한 자본과 국가의 구체적 대응전략이었다. 보다 포괄적인 측면에서 보면, Duménil과 Lévy(2011)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는 자본과 권력이 자신들의 지배권을 되찾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였다. 대처 및 레이건 정권기 출현한 이러한 신자유주의 국가는 규제 약화, 시장역할 강조, 복지축소, 경쟁 극대화, 초국적 자본주의를 추구하였다. 실제로 <그림 1>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전략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1980년대 자본의 이윤율은 상승 반전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전략의 핵심은 노동유연성 강화라는 명목하에 노동계급으로부터 잉여가치 착취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전략은 필연적으로 노동계급의 세력화를 억압하였다. 신자유주의 전략은 결국 19세기 마르크스가 분석한 자본의 대응과 다르지 않다. 자본은 이윤율 저하에 대응해 저임금의 산업예비군을 출현시킨다거나, 노동 강도 및 밀도를 강화해 잉여가치율을 증가시키려 하는 것이다(Marx, 1894/2015).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 전략은 케인스주의 정책에 기반한 노동자들의 안정된 지위를 약화시킨다. 고용부문에서 노동자간 경쟁을 조장하고 이를 통해 노동인력을 중심부와 주변부로 분리한다. 노동에 대한 일종의 분할지배 전략이다. 소수의 중심부 노동자에게는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하는 반면, 다수의 주변부 노동자들은 저임금의 산업예비군으로 전환시킨다. 예를 들어, 포스트 포드주의 시기 출현한 도요타주의(Toyotism)는 중심부 노동자에 대해서는 종신고용을 보장함으로써 그들의 창의성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이윤율을 제고시킨다. 반면 중심부 노동인력의 관리에 소요되는 비용은 주변부 노동인력에게 전가시켜 벌충하려 한다. 신자유주의 시기 보편화된 하청 생산은 그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고비용이 투여되는 중심부 노동인력에 비해 하청 생산지의 노동인력은 분절화되고 저임금이 강요된다(Piore & Sabel, 1993/2010).
아울러, 신자유주의 전략은 생산기지를 저임금 노동이 풍부한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이윤율 저하를 차단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자본의 재공간화(respailization) 전략의 대표적 대상지역이였다. 선진 산업국 자본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은 이윤율을 제고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가변자본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1978년 덩샤오핑에 의해 천명된 중국의 개혁개방 전략은 전세계적 신자유주의 전략과 맞물리면서 비로소 실제화될 수 있었다. Harvey가 표현하듯이, 중국의 개혁개방은 결국 중국식 신자유주의 전략이었던 것이다(Harvey, 2005/2007).
1980년대 이후 전세계적 범위에서 영향력을 확장한 금융자본 역시 신자유주의 전략의 핵심 영역이다. 산업자본이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은 돈(M)-상품(C)-이윤(M′)이기 때문에 노동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결과 노동계급의 세력화로 인한 임금 인상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면, 금융자본의 이윤창출 과정은 돈(M)-이윤(M′)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노동비용을 그만큼 감소시킬 수 있다(Reynols & Szerszynski, 2012). 실제로 미국에서 금융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4%에 불과하지만, 금융자본의 이윤은 전체 이윤의 25%에 달하고 있다(Buckup, 2017).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전략은 소위 ‘부불노동’을 활용함으로써 이윤율 저하를 역전시키려 한다. 이러한 전략은 소비자를 곧 노동자로 활용함으로써 임금은 획기적으로 줄이는 전략이다. 불변자본에 대한 가변자본의 감소(자본의 유기적 고도화)를 차단함으로써 이윤율을 제고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케아는 가구의 조립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노동임금을 대폭 감소시킨다.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 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등 정보통신 기업은 새로운 프로그램의 수정 및 보완을 ‘베타테스트’라는 형식으로 소비자에게 전가시킨다. 물론, 그러한 노동에 대한 합당한 임금은 제공되지 않는다(Marazzi, 2009/2013). 특히,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포스팅과 네트워킹을 통해 사용자들의 선호를 취득하고 이를 다른 기업에 판매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올린다. 페이스북은 전세계에 산재해 있는 부불노동을 이용해 네트워킹 플랫폼 구축 비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막대한 이윤을 수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2년 현재 페이스북은 4,500여명의 노동자만을 고용하고도 5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Beverungen, Bohm & Land, 2015).
한편, 주목할 만한 점은 자본의 잉여가치 수취가 더이상 육체노동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식이나 예술과 같은 인간의 지적 활동 역시 그 대상이 된다. 이제 “신체가 아니라 영혼이 직접적으로 노동하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식기반경제(Knowledge based economy)론이나 인지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론은 모두 이와 연계된 개념들이다(조정환, 2011, 61쪽; OECD 1996). 사실, 육체노동의 신체적 한계는 그것이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양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 신체의 한계를 벗어나는 노동시간의 연장이나 노동강도의 극대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노동은 이러한 한계를 상대적으로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 ‘창조성’과 같은 인지 노동은 육체 노동이 가지는 공간적, 시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식노동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문제도 해결하는 토대가 된다. 페이스북 사례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소수의 노동자를 고용하면서도 막대한 잉여가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Reynolds, 2012).
이러한 의미에서 인지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육체노동으로부터 잉여가치 착취를 극대화하려는 테일러주의를 넘어 “노동자들 머리 속에 있는 황금”으로부터 이윤을 짜내려는 도요타주의(Piore & Sabel, 1993/2010, p. 102) 전략과 유사하다. 여기서 잉여가치의 착취 대상은 포드주의적 비숙련 대량 노동자가 아니라 창의적인 다수의 부불노동자와 기업에 고용된 소수의 전문 노동자가 된다. 정보 통신 기업의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막대한 급여와 복지체계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들이 생산해내는 잉여가치가 막대하는 것을 반증한다.
3)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4차 산업혁명론
자본이 구사하는 신자유주의 전략에서 반드시 주목해야할 측면은 신자유주의와 정보통신기술(ICT)과의 밀접한 상보성이다. 정보통신 기술은 “시장거래의 시공간을 압축”함으로써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전략의 필수적인 물리적 토대가 된다(Harvey, 2005/2007, p. 17). 예를 들어, 3D 디자인 및 프린팅 기술은 세계 어느 지역에서라도 제품 발주와 생산을 가능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 공장의 출현은 노동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아울러 전지구적 수요와 공급에 대한 정밀한 계산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 결과 과거 제 3국으로 이전되었던 선진국의 제조업 공장이 다시 자국으로 회귀하는 리쇼어링(reshoring)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Kinkel, 2018). 아울러, 정보통신기술은 금융자본의 초국적 이동을 가능케 하고,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인지자본주의의 필수적인 기술 토대가 되고 있다(Neubauer, 2011).
문제는 정보통신 기술에 기반한 생산은 대부분의 육체 노동자들을 산업예비군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론의 주창자인 슈밥조차도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들은 고직능·고급여의 소수와 저직능·저급여의 다수로 나눠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휴먼클라우드 플랫폼의 활성화로 인해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워짐으로써 개인의 노동권은 법적으로도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마저 커지고 있다(Schwab, 2016/2016).
신자유주의가 과학기술을 활용해 노동을 통제하고 잉여가치를 착취하려는 전략은 마르크스가 분석한 19세기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볼 수 없다. 마르크스는 기계도입을 통해 노동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려는 자본의 전략을 유어(Andrew Ure)의 주장을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드디어 자본가들은 이 참을 수 없는 종속상태(즉 그들로 보아서는 귀찮기 짝이 없는 노동자와의 계약조건들)로부터의 구제책을 과학에서 찾으려 했으며, 그리하여 얼마 안가서 그들은 그들의 정당한 지배, 즉 저급의 구성원들에 대한 우두머리의 지배를 회복했다....(중략)... 자본은 과학을 자기에게 봉사하게 함으로써 불온한 노동자들로 하여금 언제나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다(Marx, 1867/2005, pp. 585-586).
이러한 맥락에서, 신자유주의 국가 및 그와 연계된 유기적 지식인(organic intellectuals)들이 정보통신기술 담론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신기술 담론은 신자유주의의 노동유연성 강화 전략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유용한 담론인 것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와 정보통신기술은 매우 밀접한 상보적 관계이다. 신자유주의의 글로벌 시장화 전략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없었으면 현실적으로 수행될 수 없었다. 반대로 탈규제를 비판하는 사회 저항세력에 대해서 신자유주의는 그러한 주장이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움으로써 분쇄한다(Neubauer, 2011).
예를 들어, 레이건이나 대처 정권 이후 신자유주의 국가 및 자본이 지원하는 연구소, 대학 등은 신기술 담론을 대량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토플러(Alvin Toffler)나 나이스빗(John Naisbett) 같은 유기적 지식인들은 ‘제3의 물결’이나 ‘메가트렌드’와 같은 베스트셀러를 통해 정보통신 기술과 그에 기초한 사회변화를 정당화하였다. 이들은 정보화 담론을 그람시(Antonio Gramsci)가 말한 헤게모니로 가공함으로써 이를 통해 대중의 자발적 동의를 확보하려 하였다(Neubauer, 2011). 푸코에 따르면, 권력의 통치전략은 피통치자들을 통제·관리당하는 ‘지배의 기술(technologies of domination)’과 피통치자들이 스스로 권력의 의도대로 자신을 통제·관리하는 ‘자아의 기술(technologies of self)’로 구분된다(Foucault, 2003b). 대중들이 사회변화가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동의하는 상황은 자아의 기술에 해당된다. 신자유주의 국가는 그만큼 통치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신기술 담론을 이용해 지배이익을 재확보하려는 신자유주의 전략이 반드시 성공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질서의 불안정은 그만큼 사회저항을 격화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자본이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는 이를 보여 준다. 금융자본의 축적은 노동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부동산과 같은 담보에 기초해 이루어짐으로 기본적으로 투기적 속성을 가진다. 따라서 투기에 의한 경기과열(거품)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담보의 안정성이 약화될 때 급속히 붕괴될 수밖에 없다(Kindleberger & Aliber, 1978/2014).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미국에서 비우량주택을 담보로 한 가계대출과 파생상품이 과잉생산되는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자 대출 은행들이 연쇄 파산하고 실물경제의 위기까지 촉발하였다. 정보통신 기술은 이러한 미국발 금융위기를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시켰다. 글로벌 금융자본의 토대가 된 정보통신 기술이 오히려 공황을 확산시키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그림 1>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금융위기는 전세계 이윤율의 급격한 하락을 초래하였다.
이에 대응해 각국 정부는 막대한 구제금융을 제공함으로써 금융기관의 연쇄 파산을 막고 경기 부양에 나섰다. 문제는 이러한 국가의 개입이 완전고용이나 소득증대 등과 같은 케인스주의 전략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시간, 복지, 임금이나 연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었다는 것이다. 불건전한 자본을 구제하기 위해 교육, 의료, 사회복지 비용 등을 감축하고 전용하는 신자유주의식 문제해결 방식이었다(Harman, 2009/2012; Patomaki, 2009). 따라서, 이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은 그만큼 더 격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2011년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은 그 극명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월가 점령 운동은 금융자본의 약탈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주장하였다. 동시에 노동유연성 강화를 정당화하고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 전략을 비판하였다. 폴라니가 설명했던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시장경제의 확대로 인해 위협받는 노동계급 등의 사회 세력이 보호입법과 경제규제를 위해 상호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다(Polanyi, 1944/2009).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제조업 혁신을 목표로 한 4차 산업혁명론을 제조업 선도국들이 일제히 주창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자본주의 위기를 신기술 담론을 통해 돌파하려는 신자유주의 국가들의 합리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계획이 2011년 발의된 것을 시점으로 미국의 ‘제조혁신 국가네트워크(NNMI)’ 구축계획은 2012년, 중국의 ‘중국제조 2025’ 및 인도의 ‘디지털 인디아’는 2015년, 그리고 일본의 소사이어티 5.0 계획은 2016년에 수립되었다. 동일한 맥락에서, 한국 역시 2017년 대통령 직속의 ‘4차 산업혁명 위원회’가 출범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주창자였던 세계경제포럼 역시 4차 산업혁명론을 적극적으로 확산시켰다. 최상위 자본계급의 연례회의인 세계경제포럼은 그동안 자유무역, 규제철폐, 노동유연성 확대 등을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 전략의 담지자 역할을 수행해 왔다. 세계경제포럼의 연사들은 사회 빈곤이나 환경문제 해결 등을 논의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러한 문제를 초래한 주체가 자신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해 오기도 했다(강인규, 2017ab).
이러한 맥락에서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세계경제포럼의 보고서가 노동유연성 강화와 규제철폐를 노골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현상이 아니다. 보고서는 “노동유연성과 노동이동성이 중요하며, 만약 중세의 길드처럼 시장의 진입장벽이 높을 경우 신기술에 적응하지 못하고 동시에 타국과의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결국 노동자의 해고가 어려울수록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도태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UBS, 2016, pp. 22-25).
<표 1>에서 나타나듯, 세계경제포럼의 2016년 국가별 4차 산업혁명 경쟁력 순위에서도 노동유연성은 핵심 지표로 간주된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지적재산권 보호나 규제철폐 등 법적 기반이 얼마나 잘 갖추어져 있는가의 수준 역시 핵심 지표로 설정된다. 결국 이러한 지표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 개입에 의한 노동유연성 강화 및 신기술을 위한 법적 기반 필요성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노동유연성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국가는 한국이다. 국가경쟁력 순위 대상인 138개국 중 45개국을 따로 뽑아 평가한 4차 산업혁명 경쟁력 순위중 한국은 25위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지표중 노동유연성 순위와 법적 보호 지수는 다른 지표와 비교해 그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사실, 한국의 노동유연성은 전체 국가경쟁력 순위에서도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6년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총 138개국중 26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노동 관련 순위에 있어서만큼은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 노사간 협력 순위는 135위이며, 정리해고 비용은 112위, 고용과 해고 관행은 113위, 임금결정의 유연성은 73위에 위치하고 있다(Schwab, 2016).
이러한 지표들은 한국 정부에게 노동유연성 강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명분을 제공한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라 노동시장의 저효율성을 국가경쟁력 약화의 핵심원인으로 인식하였다. 박근혜 정부의 기획재정부는 “상위권 국가들의 공통요소인 노동시장 효율성, 혁신역량 제고를 위해 과감하고 신속한 개혁조치를 시행해 나갈 경우 국가경쟁력의 도약이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노동 4법에 대한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하였다(기획재정부, 2016).
한편, 문재인 정부는 소득중심 경제성장을 표방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친자본적 노동 정책과는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지속성장을 위해서 노동유연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위 ‘한국형 고용 안정-유연 모델’은 이를 반증한다. 이에 따르면, “고용 안전망 확충을 전제로 노동시장 역동성을 강화”해야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기획재정부, 2017). 그러나, 고용 안전망 확충과 노동유연성 강화라는 상호 모순된 목표가 어떻게 동시에 달성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일 수밖에 없다.
4. 결 론
이상과 같이 본 논문은 4차 산업혁명론을 신자유주의 전략의 일환으로 설명하였다. 전후 케인스주의에 기반해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세계 자본주의는 자본간 경쟁 격화나 노동계급의 세력화 등으로 인해 1970년대 이윤율 하락에 직면하였다. 신자유주의 전략은 이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대응이었다. 신자유주의 국가는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에 반대하고 복지 축소나 노동유연성 강화 등을 통해 이윤율 저하를 만회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혁명에 기초한 정보통신 기술은 신자유주의 전략을 작동케 하는 물리적 토대가 되었다. 금융자본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글로벌화를 추구하였으며, 산업자본 역시 생산과 유통의 지리적 제약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 기업은 네트워킹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의 부불노동으로부터 막대한 잉여가치를 확보하였다.
4차 산업혁명론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전략과 밀접하게 결착되어 있는 기술 담론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부의 집중화로 인한 빈부격차를 심화시켰으며 금융자본에 대한 탈규제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회저항 역시 격렬해 지면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가의 개입은 신자유주의의 종결과 케인스주의로의 복귀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본을 구제하기 위한 국가 개입 비용은 노동유연성 강화라는 명목으로 노동계급에 전가되었다. 4차 산업혁명론은 이러한 변형된 형태의 신자유주의 전략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론이 노동세력의 억압을 목표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의 일환이라면, 향후 그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식론적 러다이트주의(Epistemological Luddism)’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기술은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저항의 대상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잉여가치착취를 정당화하려는 신자유주의 국가의 기술 ‘담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식론적 러다이트주의는 신기술 담론을 활용해 지배 이익을 강화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전략을 폭로하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려는 태도이다(TheLuddbrarian, 2013).
한편, ‘기본소득론’ 역시 4차 산업혁명론 비판의 기반이 될 수 있다(강남훈, 2016). 자본은 소위 지식기반경제라는 명목하에 막대한 부불노동을 착취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다. 향후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실제화된다면, 이러한 추세는 보다 공고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창의성을 생산해 내는 극소수 인지 노동 이외의 일상적 노동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부불노동에 대한 합당한 임금(기본소득)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부를 장악하는 극소수와 그 이외 다수의 ‘잉여인간’으로 구성될 위험성도 있다. 기본소득은 이러한 상황을 차단하고 4차 산업혁명론이 주장하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술 유토피아를 실제화하는 최소한의 기반이 될 수 있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7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7S1A3A2066696).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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