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적 분화와 사회적 불평등: Luhmann과 Bourdieu의 사회이론 비교
초록
Luhmann과 Bourdieu는 분화된 사회의 구조적 특성을 분석하는데 있어 설득력 있는 이론적 자원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학자들로 간주된다. 본 연구는 사회의 기능적 분화와 불평등의 문제와 관련해서 이들이 제공하고 있는 이론적 자원들을 비교·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두 이론가가 어떻게 현상학적 사유의 성과를 수용하여 기존 구조주의 맹점을 이론적으로 극복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둘째, 복잡하게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관찰과 진단을 위해서 두 이론이 어떤 설득력 있는 개념적 장치를 제공하고 있는지, 셋째, 두 이론이 복잡하게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관찰하고 있는지를 비교·분석한다. 두 이론가는 일견 보이는 학문적 태도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서 오히려 확산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두 이론가는 분화와 불평등 문제에 접근하는 개념적 수단과 관찰가능성에 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분화된 부분체계들(또는 장들)에서 생성되는 구별과 배제의 불평등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과제라는 진단에 의견을 같이 한다. 기능적 부분체계들에 의한 배제의 상호효과를 지적하는 Luhmann의 관찰과 생활양식 연구를 통해서 전인적 배제를 경험적으로 관찰하려는 Bourdieu의 접근은 상호 화해의 접점을 찾는다면 분명 분화된 사회의 불평등 연구를 확장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Abstract
Luhmann and Bourdieu are considered two of the most significant scholars that provide theoretical resources in analyzing the structural properties of differentiated society. The following research attempts to compare the theoretical resources provided by both sources regarding social differentiation and inequality. In order to do this, we must first look at how the two theorists employ the results of phenomenological thinking to overcome the blind spots of structuralism. Second, we must analyze how the two theories provide a persuasive conceptual tool for the observation and diagnosis of differentiated societies. Third, we must compare how the two theories observe inequalities in differentiated societies. The two theorists, despite their different academic attitudes, attribute the spreading problems of inequality in modern society to many reasons. Despite their different opinions on the conceptual methods for the approach on differentiation and problems of inequality, the two theorists agree that problems of inequality, discrimination, and exclusion formed in functional systems(or fields) are a serious social issue. If we can reconcile the observations of Luhmann, who notes the interaction of exclusion by functional systems, with the approach of Bourdieu, who attempts to observe exclusion through the study on lifestyles, then we will be able to use it as a significant theoretical resource in extending our research on social inequality in differentiated societies.
Keywords:
Differentiation, Inequality, Exclusion, Functional System, Field, Luhmann, Bourdieu키워드:
분화, 불평등, 배제, 기능체계, 장, 루만, 부르디외1. 서 론
Luhmann과 Bourdieu는 복잡하게 분화된 오늘날 사회의 구조적 특성을 분석하는데 있어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적 자원을 제공하고 있는 대표적인 두 명의 사회학자로 간주된다. 이들은 단순히 기존의 이론들을 비교하거나 아니면 변형시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새로운 개념들을 개발하고 이론체계에 수용하여 사회의 기능적 분화와 불평등의 문제를 관찰·해명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더 나아가 사회학의 학문적 기초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적 성찰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두 이론가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는 흔히 그 유사성보다는 상이성에 초점이 두어지는 경향이 있다. Luhmann은 모든 관찰의 맹점을 인정하고, 이론적 사고를 정치적 명제로 변환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비판적 참여의 반대편에 서서 멀리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냉정한 관찰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반면에 Bourdieu는 항상 사회학의 이론적 작업을 사람들이 일상적 ‘일루지오’(illusio)를 통찰·자각하는데 기여하는 실천 형식으로 간주하여 비판으로부터 거리를 두지 않는 참여적 지식인으로 등장한다. 일견 이러한 상이한 학문적 태도는 매우 상이한 사회학적 관찰을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되곤 한다(Nassehi & Nollman, 2004).
그러나 Luhmann과 Bourdieu는 일견 보이는 외적인 차이점만큼이나 내적인 유사점을 공유한다. Bourdieu는 사회학의 과제를 ‘사회적 조건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높여서 행위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Bourdieu, 1992, p. 223)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정하지도, 조소하지도, 혐오하지도 말고 단지 이해해야’(Bourdieu, 1997, p. 131)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의 실천이 담지한 필연성을 이해하는 것은 ‘우연적으로 보이는 것’을 어떤 ‘필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학문적 실천이다. 사회학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학문적 작업을 담당해야만 한다. 그것은 사회세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Bourdieu & Waquant, 1996, p. 234; Schroer, 2004, p. 251).
마찬가지로 Luhmann도 사회학자의 어떤 예언적 역할을 부정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적 변화를 따라 잡을 수 있는 서술도구를 발전시켜, 사회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기술하는 것이다. 그는 일상적 사건에 관여하는 것을 완전히 부정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론적 작업이 훨씬 더 중요하고, 개념적으로 철저하게 구성된 사회이론이 훨씬 더 급진적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Luhmann, 1996b). 따라서 그는 결코 이론의 실천적인 적용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며, 단지 이론이 실천에 대해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음을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이론을 통한 사회의 변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학문의 청중은 일차적으로 학자들이며, 학문이 정치·경제 등 다른 기능체계에서 결과들을 처리하는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보았다(Schroer, 2004, p. 260).
Luhmann과 Bourdieu는 공통적으로 기존의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하지만 현상학의 철학적 성과를 수용하여 구조의 내적 동학을 체계화하고, 사건(의사소통 또는 실천)을 통한 그 재귀적 작동을 관찰하였다. 비록 이들은 상이한 개념과 관찰의 도구를 사용하지만 복잡하게 분화된 오늘날 사회의 구조적 특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이론적 자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기능적 분화의 고도화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관찰을 통해 매우 중요한 사회학적 성과를 이루었다. 따라서 이들이 기능적 분화와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이론적으로 다루고 있고, 경험적으로 접근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두 이론가의 관점의 차이나 이론적 도구를 비교 검토하는 차원을 넘어서, 보다 나은 사회학적 진단을 위한 이론적 장치를 발굴하는데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Luhmann과 Bourdieu의 사회이론은 각기 방대한 저술과 연구 성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망라적인 접근은 불가능하며, 본 연구는 이들의 전체 연구 성과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한 유사성을 보여주는 다음의 측면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두 이론이 어떻게 현상학적 사유의 성과를 수용하여 기존 구조주의 맹점을 이론적으로 극복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둘째, 복잡하게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관찰과 진단을 위해서 두 이론이 어떤 설득력 있는 개념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지 살펴본 다음, 셋째, 두 이론이 오늘날 사회의 변화된 사회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여 관찰하고 있으며, 어떤 사회학적 성과를 제공하고 있는지 탐색해 본다.
2. 의사소통과 실천
Luhmann과 Bourdieu는 기본적으로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사회학 이론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론가들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론체계는 구조주의적 논의의 유산보다는 오히려 Husserl의 현상학적 사유가 남겨 놓은 철학적 유산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힘입고 있는데, 특히 시간의식의 ‘지향성’에 대한 그의 통찰은 이들이 기존의 구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체계 또는 구조의 작동기제를 설득력 있게 관찰하는데 핵심적인 이론적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시간’과 ‘사건’에 대한 현상학적 사유를 수용하여 그간 구조주의의 이론적 맹점으로 간주되던 체계 또는 구조의 생성적 내적 동학에 대한 설득력 있는 관찰 도구를 마련하였다.1)
우선, 기존 구조주의 사회학과 Luhmann의 대결은 Parsons가 구축한 ‘거대이론’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한다(Luhmann, 1987). Luhmann이 보기에 Parsons 이론의 문제점은 일차적으로 이론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을 미리 전제하고 시작하는 사회적 규범과 통합에 대한 그의 가정에 있다. 예컨대, Parsons는 사회적 행위의 ‘이중의 우연성’(doppelte Kontingenz) 상황이 이미 규범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비대칭 형식을 지시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그것을 사회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Luhmann이 보기에 그때그때 구체적인 상황을 초월해서 행위의 틀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규범적인 통합이 아니며, 따라서 이중의 우연성 상황은 규범적으로 구조화하는 것이 아니다(Nassehi, 2004).
Luhmann이 보기에 사회적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규범의 내화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특히 그러한 구조적인 규범적 제약을 가정하게 되면 체계의 내적 동학의 ‘창발성’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따라서 Luhmann은 이론적으로 구조보다 기능을 앞세워서 체계의 작동을 경험적으로 열린 재귀적 사건으로 관찰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래서 의사소통(행위)은 규범(구조)에 의해 주어진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이 스스로 문제의 지평을 넓히고, 기능적으로 해결·반복·검증·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구조가 작동적으로 생성되는가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Luhmann, 1970). 이는 이중의 우연성 상황에 대한 규범적 설명도 배제되는 것은 아니며 체계적 안정화의 가능한 경우들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Nassehi, 2004).
Luhmann은 구조를 사회적 질서의 필연적인 또는 기능적으로 필요한 전제로 보는 모든 구조주의적 가정을 거부한다. 따라서 그는 어떤 기능들을 사회질서의 선경험적 조건으로 설정하고, 모든 경험적 현상을 여기에 맞춰서 재단하는 Parsons의 이론에 대해서도 거리를 둔다. 그가 보기에 구조란 스스로 작동하여 안정화하는 과정일 뿐이며, 따라서 그는 구체적 기능들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분화되고, 그들이 어떤 체계연관으로 안정화되는가에 관심을 둔다. 그는 사회체계를 시간의 흐름에 기초한 작동으로 개념화하고, 구조는 항상 현재 시점에서 재귀적으로 지시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보았다.2) 그것은 그때그때 구체적인 현재의 ‘사건’ (Ereignisse)이며, 그 안에서 사회체계의 자동 생산적 재귀지시가 실현된다. 이 급진적으로 작동적인 체계이론적 구상은 사회체계의 개별 사건들을 관계적 연관 속에 규정하며, 개별 사건은 (당연히 사건 그 자체에서만 스스로 관찰되는) 이전 사건, 기대, 구조를 지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체계는 자기지시적 체계이며, 그 안에서 모든 의사소통은 의사소통과 연결되고, 체계의 구조가 재귀적 사건으로 재생산된다. 결국, 체계이론은 체계를 안정적인 구조적 관계로 보는 기존의 구조주의로부터 벗어나 관심의 초점을 체계에 의한 구조의 생성 문제로 옮겨 놓는다.
역시 Bourdieu도 구조 모델에 기초해서 사회 현실을 모순 없이 서술하려고 시도했던 Lévi-Strauss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Bourdieu, 1998a; Nassehi, 2004). Bourdieu가 보기에 Lévi-Strauss는 서술의 내용을 오직 논리성의 관점에서만 포착하여, 모든 개별 요소들을 전체의 논리적 구성 부분으로 환원시키고, 가장 작은 세목조차도 모순이 없이 설명될 수 있는 구조주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주의적 접근은 이론적으로 구성된 모델의 특성을 잊고, 그것을 마치 현실 그 자체처럼 물화시켜 바라보는 객관주의적 오류에 묶여있다. 물론 Bourdieu가 보기에 이러한 객관주의적 문제점은 단순히 주관주의를 통해서 극복될 수 있는 어떤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Sartre의 실존주의와 같이 주관주의도 세계의 의미를 매 순간마다 새롭게 창조하는 극단적인 ‘주체’를 상정함으로써 행위를 그 사회적 연관 속에서 파악할 수 없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Bourdieu, 1987, p. 87).
Bourdieu가 보기에 사회학은 단순히 행위자에게 주어진 어떤 객관적 ‘구조’를 탐구하는데 그치거나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반성적인 행위자로서 ‘주체’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보기에 행위자의 실천(Praxis)은 ‘논리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행위자의 상황적 실천형식이며, 그것은 자연스럽게 체화된 형식으로서 선반성적으로 구현된다. 그는 이러한 선반성적인 실천 형식을 ‘아비투스’ (Habitus)라고 명명하면서, 그것은 오랜 기간의 경험과 사회화를 통해서 체화되고, 구조화된 ‘평가·인지·행위의 틀’이라고 정의한다(Bourdieu, 1987). 그는 바로 이 아비투스 개념에 기초해서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의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론(Praxiologie)을 제안한다.3)
Bourdieu의 실천론은 기존의 실존주의와 달리 구조를 개별적인 구체적 실천의 조건으로 전제한다. 다만 그는 구체적 실천을 모순이 없이 역사에 종속시키는 객관주의적 접근 방법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구조는 그때그때 행위자의 구체적인 행위형식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아비투스를 통한 실천 그 자체가 바로 구조를 생성하는 기제라 할 수 있다. 그가 보기에, 일상에서 상급자에 대한 하급자의 행동을 보면, 두 사람이 구체적인 규칙을 지킨다는 것, 즉 구조를 완성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의 사회적 의미는 단순히 ‘하급자가 먼저 인사하고, 상급자는 친절하고 상냥하며, 하급자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하는’ 구조적 관행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다. 그 의미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 사회구조를 바로 이 두 행위자가 실천적으로 재생산한다는 데에 있다(Nassehi, 2004, p. 160).
Bourdieu에게 실천이란 행위자들이 만나서, 관계된 사건 내에서 위치를 점하고, 해당 사건을 재생산하도록 주어지는 바로 그 현장의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구조주의는 개인주의적으로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장의 ‘공식적이지 않은’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실천에서 발견된다. Bourdieu가 보기에 실천은 구조가 아닌 실천으로 논리에 기초해서 해명되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Lévi-Strauss의 구조주의도 역시 ‘사회 질서의 자기안정화 기제’를 관찰하기 위해서 경험적으로 탐색해야하는 ‘공식적이지 않은’ 기술일 뿐이다. 이러한 자기안정화 기제는 이론적으로 포착하려고 하면 빈번히 실천 속에서 모순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사회학은 ‘특수’가 ‘보편의 특수’로 연역되는 헤겔주의적인 객관적 구조 개념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Nassehi, 2004, p. 160).
이처럼, Luhmann과 Bourdieu는 구조의 우선성을 전제하는 구조주의는 구조의 발생과 지속에 대한 경험적 민감성을 잃는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구조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남는’ 행위자의 창조성에 관심을 두는 개인주의적인 이론적 수단을 차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구조를 개별 사건(의사소통·행위·실천)의 구체적인 상황 전개로 관찰하고, 다른 개별 사건(의사소통·행위·실천)들의 관계성을 생성시킴으로써 개인주의와 객관주의의 형식론적 구분을 해체시킨다. Luhmann이 구체적인 재귀적 작동을 통해서 사회체계가 선택·지속되는 점에 주목한 것처럼, Bourdieu는 사회구조를 오로지 행위자의 실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Nassehi, 2004, p. 163). 따라서 구조주의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구조를 과소평가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가 작동을 통해서 재생산되는 사건들의 진행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Luhmann이 사회체계를 언제나 의사소통(사건)의 연속으로 기술했던 것과 유사하게, Bourdieu도 실천이란 본질적으로 지속적인 일련의 사건들임을 환기시킨다(Bourdieu, 1987, p. 152; Luhmann, 1984, p. 388).
Luhmann과 Bourdieu가 ‘작동론적’ 또는 ‘실천론적’ 이론구성을 통해서 기존 구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는 분명 Husserl의 철학적 유산에 크게 힘입고 있다. 내적 시간의식의 흐름에 대한 Husserl의 현상학적 성과는 이들의 체계 또는 구조 개념에 생성적 동학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사건(의사소통) 또는 실천의 흐름 속에서 순수시간적 현재 관점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Luhmann이 채용하고 있는 자동생산체계 개념은 많은 점에서 생물학의 자동생산 모델보다는 Husserl의 내적 시간의식의 현상학을 상기시킨다(Nassehi, 2004, p. 164). 의식의 흐름은 항상 목하 사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발생한다는 의식의 ‘지향성’에 대한 Husserl의 사유는 사회적 사건의 발생을 자동 생산적 연속으로 기술하는 Luhmann의 체계이론에서 변형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4)
Luhmann과 Bourdieu는 작동론적 또는 실천론적 이론 구축을 통해서 ‘주관주의와 객관주의’, ‘구조와 행위’, ‘거시와 미시’ 등과 같은 기존의 이분법적 구분을 극복하고, 어떤 개별적 특성을 항상 보편적 구조의 관점에서 접근했던 구조주의의 족쇄로부터 사회학을 해방시킨다(Nassehi, 2004, p. 158). Bourdieu의 실천은 일종의 적응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장의 구조가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변화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이는 기존의 구조주의와 달리 이론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 곧 구조 그 자체이며, 구조는 일차적으로 실천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Luhmann이 사건으로 기술하는 의사소통도 구성요소들의 관계의 틀이나 사건을 촉발하는 구조가 아니라 단지 그 발생적 동학 속에서 스스로 안정화하는 일련의 재귀적인 연속적 사건들일 뿐이다.5)
이처럼 Luhmann과 Bourdieu의 체계이론과 구조주의는 기존의 전통적인 사회학의 접근방식과는 거리가 있다.6) 사회 또는 구조는 실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구성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체계나 구조는 특별히 고려해야 하는 어떤 객관적인 현실도 그것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사회학에서 중요한 것은 체계와 구조의 작동이며, 그런 의미에서 사건론도 실천론도 모두 작동 이론이다. 이 작동의 과정은 탈출구가 없는 사건의 흐름이다. 의사소통이 없이 의사소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실천적 부정 없이는 실천을 부정할 수 없다. 맹점의 생성이 없이 맹점을 가시화할 수 없고, ‘일루지오’(illusio)를 수반하지 않고는 ‘일루지오’를 반대할 수 없다(Nassehi & Nollmann, 2004, p. 16). Luhmann의 사회학적 자기 노력으로서 2차질서의 관찰은 스스로의 맹점을 가지고 ‘맹점’을 탐색하는 의사소통 행위이고, Bourdieu의 사회학적 작업은 학문적 일루지오에 의존해서 ‘일루지오’를 통찰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학문적 실천이다. Luhmann과 Bourdieu에 있어 체계 또는 장은 생성하는 작동의 결과이며, 그 구조는 단지 관찰자, 즉 학문적 관찰자에게만 접근이 가능하다(Nassehi, 2004, p. 165).7)
3. 기능적 분화와 사회적 장
Luhmann과 Bourdieu는 ‘부분체계’(Teilsysten)와 ‘장’(Feld)의 개념을 도입하여 오늘날 복잡하게 분화된 사회의 구조적 특성을 설득력 있게 관찰·기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8) 또한 이들은 상이한 개념과 이론적 구상에도 불구하고 기능적으로 복잡하게 분화와 사회를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이론구축에 성공하고 있다. 물론 상이한 개념 선택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관심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전체 사회의 변동과 하위 영역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상이한 이해와 설명을 제공한다. Luhmann이 사회의 기능적 분화와 그것이 초래하는 탈중심화와 개인화 현상을 주목한다면, Bourdieu는 사회적 장들의 다기한 수평적 분화에도 불구하고 전체 사회의 공간적 구성이 보여주는 집단적 차이와 관계적 불평등에 관심을 둔다.
우선, Luhmann의 분화 개념은 전적으로 체계분화를 의미한다.9) 사회체계는 스스로 작동·생성하는 자동생산적 통일체이며, 따라서 체계와 작동 개념은 서로를 지시한다. 사회체계는 의사소통적 작동을 통해서 재귀적으로 연결됨으로써 구성되고, 이는 체계와 환경의 차이가 된다. 분화 개념은 바로 ‘체계 내의 체계’ 형성, 전체체계 내의 체계와 환경 차이의 재귀를 의미한다. 따라서 체계지시(Systemreferenz)는 분화하는 전체체계가 아니라 시작하는 체계 내에서 독립적으로 체계와 환경의 분화를 생성하는 하위체계를 의미한다.10) 결국, 체계분화는 체계의 분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 내의 하위체계의 분화를 의미한다.
Bourdieu는 사회적 장의 형성 과정을 분화로 표현한다.11) 그의 장이론은 많은 점에서 Luhmann의 기능적 분화 이론과 유사하며, 정치, 학문, 예술, 종교, 경제, 교육 같은 영역들은 서로 상이한 실천논리를 따르는 한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발전한다(Nassehi, 2004, p. 177). 이러한 분화는 전체사회가 부분적 장들로 분해되는 ‘분해’의 과정이 아니라, Luhmann의 부분체계의 분화와 마찬가지로 실천을 통한 장들의 ‘생성’ 과정이다. 사회적 장은 어떤 구조적 논리를 통해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적 논리가 항상 스스로의 실천에 근거하고,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서 형성된다.12) 따라서 사회적 장은 사회적 전체구조에 의존하지 않는 일종의 ‘자신만의 세상’(소우주)을 생성한다(Bourdieu, 2001a, p. 30).
Bourdieu는 사회적 장을 ‘위치들’ 사이의 ‘객관적인’ 관계로 이해하며, 이때 위치란 장 내에서 권력 내지는 자본에 대한 접근 또는 소유를 지시한다. 이때 개별 위치는 서로 분리된 별개가 아니라 상호 관련 속에서 규정됨으로써 장이 형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장은 ‘관계적’ 구성을 전제로 한다(Bourdieu & Waquant, 1996, p. 126). 이러한 관계적 구성이 객관적인 이유는 권력과 자본의 분배가 행위자의 의지 또는 의식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장은 일련의 분화(독립화) 과정에서 형성되며, 그런 점에서 장이론은 생성적 관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때 사회적 장들은 분화하는 전체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우주)를 구성하는 부분적인 장들이다(Bourdieu, 1998a, p. 149). 따라서 개별 장은 사회의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되는 독자적인 세계를 뜻하며, 그 하위로 계속해서 내적인 분화가 가능하다. 이는 분화하는 장 내에 하위 장이 구성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Bourdieu, 2001b, p. 30; Kneer, 2004, p. 29).
Luhmann은 분화를 좀 더 Spencer, Durkheim, Parsons 전통에서 ‘사회적’ 분화로 이해하는 반면에 Bourdieu는 보다 더 Weber의 전통에서 분화를 바라본다(Kneer, 2004, p. 30). 하지만 이러한 부분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Spencer, Durkheim, Parsons의 전통에서 나타나는 ‘분해’의 의미보다는 그것을 가치영역의 구성과 독립화로 이해하는 Dilthey, Weber, Simmel의 관점을 더 강하게 수용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분화는 위로부터가 아닌 밑으로부터의 과정적 생성이 강조되는 작동적 분화이론이다.13) 물론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분화의 범위와 정도를 다루는 방식에서는 다음과 같은 차이를 보인다(Kneer, 2004, p. 33).
첫째, 분화에 대한 Luhmann의 연구는 엄격하게 형식론적 접근 방식을 따른다(Luhmann, 1997, p. 609). 그는 분화형식을 전체체계 내의 부분체계의 상관적 관계(relationale Verhältnis)로 규정하고, ‘분절적’, ‘주변·중심’, ‘계층적’, ‘기능적’ 분화라는 4개의 기본 형식으로 구분한다. 이때 사회체계 내에서의 부분체계 형성은 오로지 하나의 형식원리만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다수의 분화형식이 산재하는 상황이 일반적이다(Luhmann, 1997, p. 612). 그리고 여기에서 어떤 하나의 형식이 다른 형식의 투입 영역을 규정한다면, 그 분화형식이 일차적이고 가장 중요한 사회구조가 된다(Luhmann, 1997, p. 611). 따라서 분화 형식은 사회 구성의 비교 관찰과 기술을 위한 분석적인 개념이다. 분화형식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근대사회의 구조적 특성을 겨냥하고 있지만 전근대 사회의 기술에도 적용이 가능하다(Kneer, 2004, p. 34).
Bourdieu의 분화 개념은 역사의 과정을 관찰하기 위한 분석적 개념이 아니다. 그는 사회적 공간의 분화된 장을 관찰하는데 일차적인 관심을 두기 때문에 그것을 분화의 정도에 따라 미분화된, 조금 분화된 사회적 구성물, 고도로 분화된 사회적 통일체 등으로 구분한다(Bourdieu, 1998a, p. 49; Kneer, 2004). 그리고 이에 따라서 장의 분화의 정도를 관찰하고, 그 진행 정도에 따라 근대화의 진행 과정을 기술한다. 이러한 분화 개념은 분화를 연속적인 과정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Luhmann의 불연속적인 분화 개념과 차이를 보인다.14) 두 이론의 이러한 상이한 분화 개념은 오늘날 사회질서에 대한 관찰에 대해서도 상이한 결과를 초래한다.
우선, Luhmann은 근대 사회를 개별적인 하위체계들이 각기 하나의 기능을 독점하면서 전문적으로 사회적 과제를 수행하는 기능적으로 분화된 체계로 본다. 따라서 어떤 하위체계도 다른 하위체계의 기능을 도울 수 없으며, 다루어야하는 그때그때의 기능은 개별 하위체계의 관점에서만 우선순위를 가진다. 따라서 근대의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는 ‘중심이 없는’ 사회이며, 전체 사회체계 수준에서 하위체계들을 구속하는 위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 구조적으로 어떤 특권적 지위에서 광범하게 권위를 가지는 심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체 사회를 경쟁 없이 대변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된다(Kneer, 2004, p. 36).
그러나, Bourdieu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적 사회질서는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소우주’(장)로 분화된 ‘대우주’(공간)로 나타난다. 하나의 소우주로서 개별적인 사회적 장은 어떤 기능 논리를 따르지 않으며, 기능이 사회적 분화 과정의 계기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 분화는 일차적으로 ‘희소성’의 분배와 재분배를 둘러싼 갈등에 의해서 촉발되며, 따라서 ‘특정’ 장의 분화는 ‘특정’ 희소성에 의해서 생성되는 분화를 의미한다. 물론 Bourdieu도 각각의 장들에서 적용되는 다양한 기능적 규칙에 대해서 언급하며, 개별 장들이 통일적인 기능으로 전문화 될 수 있다고 본다(Bourdieu, 1993, p. 107). 하지만 이는 오히려 특정한 갈등이나 경쟁상황의 의도하지 않은 수반현상이며, 실제 사회적 장은 기능에 대한 명백한 설정 없이 수많은 과제를 넘겨받는 것이다(Bourdieu, 2000, p. 20). 그는 기능 개념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지만 매우 소극적으로 사용하며, 자신의 장이론을 기존의 유기체 모델이나 기능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본다(Bourdieu & Waquant, 1996).
사회적 장은 경제적 소유, 학문적 명예, 정치적 영향력, 예술적 가치 등과 같은 이해 대상을 둘러싼 다양한 갈등을 통해서 생성되는 사회적 영역이다. 이 개별 영역은 각기 독립적인 소우주(장)를 형성하고, 일정한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지만, 역시 사회의 구조적 우선성은 대우주(공간)에 주어진다. 따라서 사회적 장은 독자적인 법칙을 가지고 특정한 방식으로 발전하는 질서의 영역이지만, 사회적 공간의 질서 구성에 의해서 구조적으로 겹쳐있고, 사회적 대우주는 사회적 장들 사이의 관계를 조절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적 장들이 위치하고 있는 다차원적인 사회적 공간에는 상대적으로 특권적 지점과 불리한 지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위치는 거시적인 사회적 공간의 질서에 우선성이 주어지는 결과로서 발생한다(Bourdieu & Waquant, 1996, p. 136).
Luhmann과 Bourdieu의 사회적 분화는 정치, 경제, 학문,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부분 영역들이 서로 상이하게 독립된 영역으로 생성·작동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Luhmann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 사회의 하위체계는 기능적 전문화와 이원적 코드15)에 기초해서 작동하는 진화적 성과를 이루었으며, 이원적 코드는 체계의 자동생산을 보장하고, 동시에 선택을 통한 우연성과 가능성을 허용해 준다. 그에 따라 모든 것은 잠재적 가능성으로 보존되며, 필연적인 것으로도, 불가능한 것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Luhmann, 1986, p. 79). 학문, 법, 경제와 같은 기능체계는 어떤 진리, 정의, 부(富)와 같은 가치가 아니라, 참·거짓, 정당·부당, 지불·비지불의 양가적 구별을 지향한다. 이러한 양가적 코드가치 사이의 구별은 체계의 작동 과정에서 근절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재생산된다(Kneer, 2004, p. 43).
Luhmann의 기본적인 구분으로서 코드는 특정 의미영역과 관련해서 보편적인 준거성(Relevanz)을 요구한다. 그런 한에서 이원적 코드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조합한다. 예컨대, 학문체계는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참·거짓의 구분에 묶여있다. 이원적 코드는 개별 하위체계가 작동되는 틀의 경계를 구분 짓는다. 이때 코드는 두 개의 코드 가치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제시하지 않는다. 이원적 형식의 적용 기준은 코딩의 수준이 아니라 바로 프로그래밍 수준에서 작용한다. 프로그램에서는 귀속규칙이 중요하며, 코드의 어떤 측면이 선택되고 실현되어야 하는가를 확정한다. 따라서 이원적 코드와 프로그램은 보완적인 관계에 있고, 코드와 달리 프로그램은 변형되거나 교체될 수 있으며, 기능체계는 그때그때 하나의 코드를 가지고 프로그램의 다원성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Kneer, 2004, p. 44).
Bourdieu의 사회적 장은 사회의 분화된 특정 영역을 지시하지만, 거기에는 일차적으로 권력 관계의 유지와 변화를 둘러싸고 행위자(또는 집단) 사이의 지속적인 상쟁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쟁은 개별 사회적 장의 고유한 논리와 거기에서 관철되는 규칙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사회적 장의 규칙은 성문화된 형식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일종의 성향(Disposition)으로 존재한다. 사회적 장의 규칙은 게임의 틀 내에서 무엇이 허용되고 금지되는가를 제시하며, 개별 행위자는 계속된 개념 정의를 둘러싼 상쟁에 내던져진다. 승인(인정)을 둘러싼 사회적 장의 내적인 다툼은 상쟁의 게임에 참여하고, 평가를 고려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는 ‘비밀스런 동의’에 기초해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Bourdieu & Waquant, 1996, p. 128).
사회적 장은 지위, 영향력, 권력, 지배, 자원, 이익 등을 두고 상호 경쟁하는 게임의 장을 생성한다. 따라서 사회적 장의 실천에 대한 기능적 설명은 지위를 둘러싼 사회적 투쟁의 조건을 이해하는데 기여한다.16) 예컨대, 학문의 장은 그때그때 교육 자본의 일시적인 분배를 통해서 결정되고, 장은 행위자에게 고유한 지위를 배당한다. 이 배분받은 자본의 크기는 장의 공간에서 그때그때 다른 행위자의 비중에 비례해서 장의 구조를 규정한다(Bourdieu, 1998b, p. 21). 장의 구조는 상쟁에 참여하는 행위자 사이의 권력 관계를 재현하며, 이러한 게임에 참여하는 행위자의 실천은 항상 그 장의 ‘일루지오’(illusio)에 의존한다. 학문의 장의 경우 일루지오는 학문에 대한 믿음이며, 그것은 일종의 이해관계가 없는 이해관계, 무관심성에 대한 관심, 게임을 인정하도록 움직이는, 즉 그것이 가치가 있고, 실현되어야 하는 학문적 게임이라는 믿음이다.17)
기능체계와 사회적 장의 개념은 오늘날 사회의 다기한 분화의 동학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자원을 제공한다. 그러나 수학자를 제압하려면 오직 수학적인 논박으로만 가능하다고 말하는 Bourdieu의 지적이 옳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장에는 그런 제압의 문제만이 아닌 또 다른 관련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다(Bourdieu, 1998b, p. 77). 그런 점에서 자원의 희소성과 관련된 문제와 사회적 실천을 통한 상징적 결핍에만 집중한다면 사회적 장의 이론은 사회적인 것과 관련된 여타의 문제들을 드러내는 데 제한적인 관찰만을 허용하게 된다(Nassehi, 2004, p. 181). 마찬가지로 이원적 코드의 안정성 테제를 가지고 기능체계의 분석을 제공하는 체계이론도 비록 이원적 코딩의 투입을 통해서 기능체계가 자신의 체계요소를 신속하게 확인하도록 해주지만, 부분체계의 내적인 역동성을 성급하게 잠재울 수 있다(Kneer, 2004, p. 44).18) 이러한 기능체계의 이원적 코드화는 이미 예술체계의 코드와 관련해서 확인되는 구유럽적인 ‘아름다움·추함’의 구분이 새롭게 ‘흥미로움·지루함’의 이원적 차이로 변하는 것과 같은 내적 동학에 대해서 제한적인 관찰만을 허용하게 된다(Kneer, 2004; Werber, 1996, p. 175).
기능체계의 이원적 코드 적용은 결코 분명하게 조절되지 않으며 보충적으로 프로그램에 의존해야만 한다(Kneer, 2004, p. 49). 체계요소가 관찰자에 의해서 확인되는 것이라면 수많은 체계 내적인 관점들을 볼 때 체계가 항상 하나의 통일된 목소리로 말한다고 추정할 수 없으며, 그때그때 이원적 코드의 사용에 대해서 서로 상이한 해석에 도달하는 수많은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수용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하위체계가 적용하는 개별적인 이원적 코드는 다양한 정도의 다의성을 가진다는 점이 고려되어야만 한다. 반면에 가치의 ‘정의’(Definition)를 둘러싼 상쟁, 즉 ‘정통’과 ‘이단’의 상징적 투쟁에 의존하는 사회적 장의 개념은 내적 역동성을 보여주는 장점은 있지만, 모든 사회적 실천의 논리를 희소자원과 지위를 둘러싼 투쟁의 계산법으로 환원한다면 애초 비판했던 기존의 구조주의에로 다가가는 모습이 된다(Nassehi, 2004, p. 182).
4. 사회적 배제와 불평등
사회 불평등은 Luhmann과 Bourdieu의 사회학에서 가장 대립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주제로 평가된다(Kneer, 2004). 무엇보다 Luhmann은 계급 구성 문제가 과거 사회학에서는 주요 주제였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기능적으로 복잡하게 분화된 사회에서는 더 이상 전체 사회 차원의 계급 또는 계층이 관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는 이질적으로 분화된 다양한 부분영역에서의 위계적 불평등 질서는 존재하며, 어떤 측면에서는 과거보다 더 확산되어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다양한 기능체계의 수준에 다양한 불평등 질서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전체 사회 수준에서 집단적 계급이 형성된다는 데에는 회의적이다. 따라서 그는 오늘날의 사회 불평등이 전통적인 의미의 계급 개념으로 파악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Bourdieu와 의견을 달리한다(Weiß, 2004).
반면에, Bourdieu는 사회 불평등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것이 아직도 사회학의 주요 과제라고 보고, 다양한 장으로 분화된 오늘날 사회의 계급 존재를 논증하는 것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 연구 과제 중 하나로 삼았다(Bourdieu, 1985). 그는 우선 Marx와 Weber 이후 계속해서 계급이론이 사회계급의 경험적 논증에 실패하는 것은 계급의 존재가 부재해서가 아니라 접근 방법의 오류 때문이라고 보고, 이론적으로 구성된 ‘종이 위의 계급’을 곧바로 현실의 사회집단으로 도출하려는 기존 계급이론의 오류를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 실제 행위자로서 계급은 일상적 실천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드러내기 때문에 만일 연구자가 그것을 경험적으로 논증하고자 한다면 불가피하게 실천을 통해서 드러나는 생활양식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Luhmann에 따르면, 오늘날 이질적으로 분화된 다양한 부분체계들 내의 위계적 질서들은 다양한 불평등을 생성하지만, 그것은 개별적인 해당 기능 영역에 제한되고, 그 기능체계와 다른 기능체계 사이에 의존성은 단절되어 있어, 보통의 경우 기능체계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은 다른 기능체계로 이전되지 않고 조만간에 변화될 수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Luhmann, 1995, p. 249). 따라서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는 재화의 분배로부터 발생하는 다양한 불평등이 용인될 수 있고, 과거보다 더 폭 넓게 확산될 수도 있다.19) 오늘날 사회에서는 불평등은 감소했거나 아니면 덜 중요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이전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한 것이 되었다(Schroer, 2004).
체계이론에서 개인은 개별 기능체계에 단지 부분적으로만 포함되고, 불평등은 단지 그때그때 기능체계와 관련된 측면에서 매우 다기한 이유로 발생·경험되기 때문에, 그것은 전체 개인의 불평등한 지위(위치)로 관찰될 수 있도록 응축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불평등은 오히려 기능체계 사이의 의존의 단절을 통해서 더 광범한 범위로 생성될 수 있다(Weiß, 2004, p. 213). 물론 이는 단지 기능적 분화체계 내에서 계층의 차이가 생겨나고, 첨예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기능적으로 의미가 없고, 사회에 부정적인 역효과를 미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계속 작동·생성된다. 왜냐하면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는 이전 작동의 결과로부터 넘겨받은 불평등을 복합성의 축소에 활용하고, 그런 한에서 그것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Luhmann, 1985, p. 145).
체계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분배의 불평등은 부분체계의 최적 작동의 부수적인 결과다. 그것은 부분체계의 일시적 시간성과 부분체계간 상호의존의 단절을 통해서, 그리고 이전의 분화 결과로서의 그 지위(Status)를 통해서 이질적이고 우발적인 것이 된다(Luhmann, 1985, p. 151). 부분체계의 폐쇄적인 분절적 작동으로 인해서 통일적인 계급으로 관찰되지 않으며, 체계이론은 전체 사회의 통일적인 계층화를 포기함으로써 이론적으로 계급구성에 다양한 원인의 작용 가능성을 허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체계이론의 기능적 접근은 어떤 보편적 규범의 수용이나 가치평가를 단념함으로써 개별적인 다양한 계급 속성들의 교차와 조합을 이론적으로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Luhmann, 1985, p. 132; Weiß, 2004, p. 214).
반면에 Bourdieu는 오늘날 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장에서 특정 희소자원의 배분을 두고 다양하게 생성되는 상이한 불평등들을 여전히 계급 개념을 가지고 관찰한다. 물론 그는 상이한 장들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불평등 요소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자본 개념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자본을 ‘물질의 형태로든 아니면 내화된 또는 체화된 형태로든 간에 모두 축적된 노동이며,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구조에 내재하는 힘’으로 규정하여 기존의 자본 개념을 확장하였다(Bourdieu, 1983, p. 183). 그가 보기에 노동의 결과는 화폐와 소유권의 형태로 축적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품행이나 학위 또는 영향력 있는 사회적 연결망의 형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희소자원을 경제자본 이외에 문화자본, 사회자본, 상징자본 등 다양한 자본의 유형으로 범주화하였다.
Bourdieu가 보기에 자율적인 장들로 분화된 사회의 부분영역들은 독자적인 불평등 질서를 생성한다. 그러나 이는 개별 부분영역의 기능적 부수 효과가 아니라 개별 사회적 장 내에서 희소가치(자본)의 극대화를 두고 일어나는 실천적 상쟁에 의해서 초래된다. 경제의 장에서는 경제자본을 둘러싼 상쟁, 학문의 장에서는 문화자본을 두고 일어나는 상쟁이 일차적인 것처럼 각 자본 유형은 각기 하나의 개별 장과 결부되어 있으며, 그것이 통용되는 장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Bourdieu, 2001a, p. 52).
Bourdieu에 따르면 개별 사회적 장의 경계는 그 장의 효과가 끝나는 지점이다. 사회적 장의 내적인 작동 논리는 스스로의 실천에 의존하고, 전체 사회에 의존하지 않는 자신만의 세상(소우주)을 형성한다. 사회적 장은 독자적인 자율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하나의 장에서 다른 장으로 가치의 이전이 가능하며, 개별 장들의 불평등 질서는 유사한 상동성을 보여준다.20) 또한 사회적 장은 독립적인 가치영역으로서 근본적인 자율성을 가지지만, 다양한 개별 장들은 전체적인 관계적 불평등의 공간적 구조에 의해서 함께 규정된다. 전체 사회적 공간은 지배적인 형식으로 생성된 가능성의 틀 내에서 작동하고, 이 가능성을 이용할 기회는 개인과 집단에 따라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다.21) 이러한 불평등은 전체 사회세계의 기초를 이룬다. Bourdieu가 보기에 계급구조는 곧 사회구조이며, 따라서 그가 이론적으로 재구성하는 사회적 공간은 바로 계급구조다(Bourdieu, 2001a).
Bourdieu는 사회적 공간을 사회경제적 위치, 아비투스, 생활양식의 차원으로 세분화하는 계급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여 사회적 공간구조를 재구성하고, 다양한 불평등 요소들을 응축시킨다. 물론 그는 이렇게 재구성한 사회적 공간, 즉 이론적으로 재구성된 ‘종이 위의’ 계급이 몇 개의 사회적 불평등 차원들로 환원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그가 보기에 사회계급은 자본의 크기와 구조 같은 가장 결정적인 특징을 통해서도, 성별, 연령, 사회적 및 민족적 출신배경 등과 같은 특징들의 총합에 의해서도, 생산관계 내에서의 위치 같은 하나의 주요 특징으로부터 인과적으로 도출되는 일련의 특징들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계급은 모든 관련된 특징들 사이의 관계의 구조에 의해서 규정된다(Bourdieu, 1982).
Bourdieu는 이론적으로 재구성된 계급이 필연적으로 사회적 계급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기존의 계급론적 요구를 폐기한다. 그가 보기에 실재하는 불평등 집단으로서 계급은 단지 생활양식의 차이를 통해서 경험적으로 관찰될 수 있을 뿐이다. 생활양식은 아비투스를 매개로 해서 생성되는 행위의 실천적 차이를 드러내며, 실천적 구별을 통해서 사회적 장의 불평등 질서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한다. 그런 점에서 생활양식은 모든 개별적 요인들의 영향이 중층적으로 결정되고 구체화되어 불평등을 실천적으로 경험하는 실질적인 계급의 실천양식이다. 그러므로 실재하는 계급을 경험적으로 관찰하기 위해서는 바로 실천 속에서 차이가 드러나는 생활양식을 탐구해야만 한다.
문제는 불평등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계급’으로 관찰되는가이다. 불평등이 다양한 이질적인 원인들에 의해서 생성되지만 개별 체계들 사이의 의존 단절 때문에 통일된 사회계급으로 관찰될 수 없는 것인가? 그것이 단지 개별 체계의 재귀적 작동을 통해서 해소될 수 있는 일시적인 문제로 관찰됨으로써 계급으로 체험될 수 없는 것인가? Luhmann이 보기에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불평등은 다양한 차원으로 동시에 기술될 수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기회의 평등 문제가 아니다. 더 많은 또는 더 안전한 수입을 가진 사람이 더 나은 경제적 신용을 얻는다는, 학교교육은 더 많이 배운 학생들을 더 잘 지원할 수 있다는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경향들이 상호작용적으로 강화되어 불평등을 더욱 증강한다는데 있다.22)
Luhmann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불평등은 배제(Exklusion)를 통해서 부정적으로 강화되고, 상호작용적으로 첨예화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어떤 하나의 기능체계로부터 배제는 다른 체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것까지 제한하며,23) 그런 점에서 배제는 포함(Inklusion)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게 격차를 강화한다(Luhmann, 1997, p. 630). 따라서 배제 개념은 지금까지 불평등 연구가 소홀히 했던 격차의 구분에 대한 관찰을 허용한다. 분배의 불평등은 분배되는 영역에 접근할 수 있다면 생성될 수 있으며, 포함·배제 변수가 메타 차이의 구별 기능을 작동시켜 기능체계의 코드를 매개하도록 만든다. 예컨대, 법체계의 경우 이전의 포함·배제를 통한 필터링에 의존해서 옳고 그름의 구분이 법체계의 내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다루어진다(Luhmann, 1997, p. 632).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배제’는 이전 사회에 존재했던 ‘배제’와는 크게 다르다. 왜냐하면 다중적으로 다양한 기능체계에 의존함으로써 배제의 효과가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Luhmann, 1997, p. 631). 이는 견딜 수 있거나 아니면 다른 기능체계에 포함됨으로써 상쇄될 수 있는 그런 배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의 배제가 다른 배제를 초래하는 연쇄반응을 초래한다. 일자리도 없고, 돈도 없고, 신분증도 없고, 권리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하고, 의료혜택도 충분하게 받지 못한다. 이로 인해서 다시 일자리에 대한 접근도 못하고, 경제에 진입도 못하며, 경찰에 대항하거나 재판의 권리를 얻을 전망도 없게 된다(Luhmann, 2000, p. 242; Schroer, 2004, p. 237). 상호 강화되는 배제, 거의 모든 의사소통에서 분리되어, 신체적인 것 이상으로 하루하루 견디는데 몰두하는 한에서 ‘제외된 사람들’을 더욱 빗나가게 하는 ‘다중적인 배제’라 할 수 있다(Luhmann, 2000, p. 303).
기능체계는 원칙적으로 배제를 허용하지 않는다.24) 하지만 배제의 부정적인 상호의존성은 기능체계의 참여를 ‘다소 효과적으로 배제하는 어떤 것’이다(Luhmann, 2000, p. 303). Luhmann은 이러한 배제 현상을 종래의 불평등 연구의 범주로 다루기를 거부한다. 그는 그것이 실제 상황을 과소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가 보기에 계급지배, 사회적 억압, 압제, 착취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착취당하거나 억압당하는 어떤 것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22Luhmann, 1996a, p. 227).
기능체계의 코드들은 동일한 사회에서도 통용되고 그리고 통용되지 않는다. 예컨대, 이는 일부는 법체계에 접근할 수 있지만 여타 부분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관료, 경찰, 군대가 법을 준수할 것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Luhmann, 1997, p. 632). 항상 부분적으로만 접근이 가능한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불평등은 기능체계 내의 문제, 즉 관제 수행을 위한 불가피한 결과로 관찰되기 때문에 전인적인 불평등이나 사회계급으로 관찰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시’와 ‘하찮음’ 같은 상징적 구별은 그러한 부분적 배제와 상이하다. 그것은 사회구조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노동시장으로부터의 배제, 경제자본의 결핍과 물질적 빈곤뿐만 아니라,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존재, 현존할 수 없음을 체험하는 ‘전인적’ 배제와 관련되어 있다. 체계이론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이러한 격차증강(Abweichungsverstärkung) 효과를 다룰 수 있어야만 한다(Weiß, 2004, p. 219).
Luhmann의 관찰은 일견 보이는 것보다 Bourdieu의 불평등 연구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Bourdieu의 생활양식 연구는 분화된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 요소를 전인적으로 관찰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다. 그것은 일상의 실천에서 생성되는 구별에 의해서 초래되는 차별과 인정의 문제를 통일적으로 관찰하려는 접근방법이다. 그는 ‘세계의 비참’에서 불평등의 문제를 물질적인 범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점차 누적된 의사소통의 단절과 개인화의 관점에서 관찰한다. 그는 이러한 부재를 단순히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배제 영역들에 대한 경험적 파악을 시도함으로써 가지지 못한 배제된 사람들을 묘사하려고 시도한다. 물론 그는 이 지점에서 종래의 사회학적 연구의 수단을 가지고는 더 진전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문제를 더 잘 다룰 수 있는 독자적인 경험적 접근법을 발전시켰다(Schultheiss, 1997).
문제는 Luhmann과 Bourdieu가 인정하는 것처럼, 만일 불평등 개념이 부분체계나 장들과 관련해서 볼 때 내용적으로 분화된다면, 어떻게 다양한 불평등들 사이의 그리고 부분체계들 또는 장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한 ‘격차증강’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가이다. Luhmann은 배제들 사이의 반응관계가 나타나는 곳에 강한 통합이 나타난다고 보지만 내부(포함)보다 주변부(배제)에서 더 일관된 계급위치가 형성되는가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하다(Kneer, 2004). 배제 영역 개념은 아직도 불명료하게 남아있으며, 부분체계들 사이의 서비스 의존성을 더 엄밀하게 연구해야만 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특정 기능체계의 긍정적인 성과는 다른 장들의 성공을 위한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 이러한 관찰은 분명 Bourdieu의 계급론적 관찰과 화해가 가능하다.
체계이론이 기능체계들 사이의 서비스 의존성을 체계적으로 다룬다면 그것은 불평등 사회학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체계이론의 문제의식은 불평등의 시간성과 다차원성을 관찰하기 때문에 Bourdieu의 불평등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그가 다양한 불평등 사이의 ‘격차증강’에 대한 체계이론의 질문을 숙고해 본다면 다양한 장들 사이의 관계를 더 정밀하게 기술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교육과 같은 불평등은 광범한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에, ‘예술적 표현가능성’ 같은 불평등은 특정 장에 제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Schwinn, 2000, p. 476). 그런 점에서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에 대한 Bourdieu의 강조를 단순히 경제의 우선성으로 매도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의사소통 매체인 화폐와 언어가 사회적 접촉이나 명성보다 더 넓게 그리고 더 보편적으로 접속할 수 있다는 사실로 관찰되어야 한다.
5. 결 론
Luhmann은 항상 대안 없는 부정에 대한 거부감을 표명하였고, 사회학이 ‘훈계의 칼’을 잡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였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더 나은 지식의 태도를 엄격하게 거부하고, 냉정한 관찰자로 남기를 기꺼이 자처하였다. 반면에 Bourdieu는 사회적 참여에 거리를 두지 않는 실천적 지식인이었으며, 세계화에 대한 비판의 대변자임을 공공연히 자처하였다. 그는 오히려 비판적 참여가 지식인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책무 중 하나임을 분명히 하면서 활발한 참여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Luhmann과 Bourdieu는 흔히 외적으로 대비되는 실천적 태도와는 달리 이론적으로는 적지 않은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 첫째, 두 이론가는 시간의식의 흐름에 대한 현상학의 성과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이론에 적용함으로써 기존의 구조주의가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이들에게 의사소통과 실천은 끊임없이 재귀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이며, 체계 또는 구조는 의사소통과 실천을 통해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작동의 과정이다. 이 재귀적 작동과정에는 탈출구가 없다. 의사소통은 의사소통을 통해서, 실천은 단지 실천을 통해서만 끝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두 이론은 기존의 구조주의 사회학에서 간극으로 남아있던 구조와 행위의 이원적 구분을 설득력 있게 극복하고 있다.
둘째, Luhmann과 Bourdieu는 부분체계 또는 장 개념을 통해서 복잡하게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작동논리와 내적 동학을 분석할 수 있는 이론적 자원을 제공한다. 이들 이론에서 분화된 부분영역들은 독자적인 기능 또는 게임논리에 기초해서 생성·작동하며, 또한 상호 분리되어 자율성을 가지고 작동한다는 점에서 상호 독립적이다. 물론 이 부분영역에 대한 두 사람의 이해는 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Luhmann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부분체계가 특정 과제와 관련해서 분절적으로 독립되어 있고, 상호의존성이 단절되어 있다고 보지만, Bourdieu의 개별 장들은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가지고 ‘소우주’로서 독립되어 있고, 개별 장들이 기초하고 있는 희소자원으로서의 특정 가치(자본)는 장의 경계를 가로질러 상호 전이가 가능하다.
셋째, Luhmann은 오늘날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불평등이 개별 기능체계들의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서 발생하고, 그것은 각각의 기능체계들 내에서 수직적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사회 전체 차원에서 그러한 불평등은 기능체계들 사이의 의존 단절을 통해서 다양한 ‘지위불일치’가 허용되고, 그것을 조종할 메타코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계급 같은 수직적 불평등의 기술은 이론적으로 설득력을 잃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에 반해서 Bourdieu는 오늘날 다양하게 분화된 개별 장들의 위치는 전체 사회의 관계적 공간에 의해서 제약을 받기 때문에, 개별 장들도 그 영향을 받고, 그 장의 희소가치, 즉 자본의 유형도 개별 장들의 경계를 넘어서 전이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어떤 장에서의 지위(위치)는 다른 사회적 장에서도 유사한 상동성을 보이며, 이러한 관계적 위치는 전체 사회적 공간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넷째, Luhmann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불평등 문제는 더 이상 전통적인 계급 또는 계층 개념으로 포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오늘날 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해소되거나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는 개별 부분체계들 사이의 의존단절로 인해서 각 기능체계들이 과제를 수행하면서 생성하는 불평등들이 전체 사회 차원의 계급이나 계층으로는 관찰되지 않고, 해당 부분 체계들 내에서 단기적이고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관찰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불평등은 더욱 광범하게 확산될 수 있다. Bourdieu도 자율적인 다양한 장들로 분화된 오늘날 사회의 불평등은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서 발생하고, 이는 전통적인 기존의 접근방식으로 관찰될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Luhmann의 주장처럼 전체 사회 차원에서 관찰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전체 사회적 공간에서의 수직적 위치의 차이로 재구성될 수 있으며, ‘경험적으로’ 일상적 실천을 통해서 드러나는 계급적 생활양식의 차이로 관찰될 수 있다고 본다.
다섯째, 계급 또는 계층의 관찰을 두고 상이한 이론적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Luhmann과 Bourdieu는 오늘날 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단순히 물질적 부의 소유여부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으며, 오히려 일상적인 의사소통 또는 실천에서 작동하는 ‘포함’과 ‘배제’의 구분을 통해서 생성된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한다. Luhmann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 특정 기능체계의 배제가 상호작용적으로 강화되는 배제의 ‘격차증강’ 현상을 지적하며, Bourdieu는 일상적 실천에서 자신을 대변하지 못하고, 그래서 관찰되지 않는 배제된 사람들의 다양한 불평등 문제를 사회학의 중요한 과제로 설정한다.
흔히 오해되는 것과 달리 Luhmann은 사회학적 비판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는 1차질서와 2차질서의 관찰을 구분함으로써 이론적으로 비판의 가능성을 개방하고, 기존의 사회비판이라는 익숙한 방식의 비판보다 더 급진적일 수 있는 이론적 비판을 기대한다. 체계이론에서 모든 관찰은 맹점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상이한 심리체계들(개인들)이 의사소통 과정에서 스스로의 맹점으로 인해 체계적인 ‘창발성’을 생성하고, 그로 인해 체계적인 성찰이 재귀적으로 작동한다. 물론 Bourdieu는 이러한 사회학적 실천으로서 2차질서의 관찰이 단순하게 재귀적으로 상호 교정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개념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징적 상쟁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성취되는 것임을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사회학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사회에 대해서 더 알고 있다는 특권으로 인해서 그런 지식을 다른 사람들도 역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을 가진다.
Acknowledgments
이 연구는 충남대학교 학술연구비에 의해 지원되었음.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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