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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 ]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1, No. 2, pp.93-106
ISSN: 1976-2984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0 Apr 2020
Received 29 Feb 2020 Revised 01 Apr 2020 Accepted 20 Apr 2020
DOI: https://doi.org/10.16881/jss.2020.04.31.2.93

유럽통합의 단계성과 좌우 변화에 관한 연구

박기성
충남대학교
Study on the Stages of European Integration and the Changes of Left and Right
Ki-Sung Park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and Diplomacy,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박기성, 충남대학교 강사,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99, E-mail : pol3700@naver.com

초록

2019년 유럽의회 선거는 전통적 좌우정당의 약세가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 수준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1979년 직선제를 도입한 이후 처음으로 좌우 정당 그룹이 과반에 실패하였고 대신 친유럽과 반유럽 성향의 새로운 좌우 정당 그룹 간 대결구도가 강화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의 통합과 연동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즉 유럽이 경제적 통합에서 정치적 통합으로 나아갈수록 회원국내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좌우 균열의 성격 변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은 유럽의 통합과 국내 정치적 균열구조의 연동성을 살펴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유럽통합의 단계성을 살펴보고, 그것이 국내수준에서 균열구조와 어떻게 연동되는지, 그리고 오늘날 난민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의 현재 위치에 대해서도 점검한다. 이를 통해 향후 유럽의 통합을 전망하는 데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Abstract

The results of the 2019 European parliament election have another meaning, given that the weakening of the traditional left and right parties has been evident at both the domestic and European level.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1979 European parliament election introduced a direct election system, left and right party groups failed to win a majority, and instead strengthened the rivalry between new left and right party groups. These changes are linked to European integration, which means that as Europe moves from economic integration to political integration, its impact on policy decisions within the member countries grows, leading to a change in the character of the left and right. The purpose of this paper was to examine the possibility of cultural integration as the next stage with the issue of refugees. The refugee issue, which is now Europe’s biggest issue, is highly likely to stimulate Europe’s cultural identity in that it is the contact between cultures.

Keywords:

European Integration, Political Cleavage Structure, Left and Right

키워드:

유럽통합, 정치적 균열구조, 좌우

1. 서 론

2019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및 녹색당이 약진하면서 기성 좌우정당의 과점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1979년 직선제 도입 이후 주도권을 유지해 온 유럽국민당(EPP)과 사회민주진보동맹(S&D)의 득표율이 21% 및 18.5%로 줄어든 반면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과 극우성향의 정체성과민주주의(ID)는 각각 11%, 10.8%로 상승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별로 들여다 볼 때 더 크게 다가온다. 극우당이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헝가리, 영국 등에서 1위를 차지했고, 녹색당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제2당과 제3당이 되었다. 이외에도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들의 기세가 무섭다. 특히 녹색당의 선전은 환경, 기후변화, 난민 등 사회적 이슈를 품어 안으면서 극우당과의 대결구도가 강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오늘날 유럽의 정당 정치는 좌파와 우파, 극좌와 극우, 포퓰리즘과 반포퓰리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당들이 혼재되어 그 정치성향을 하나의 용어로 담아내기도 어렵다. 이러한 기성정당의 약화와 새로운 정당의 득세는 그것이 변화된 균열구조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시대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1980년대 이후 유럽이 경제적 공동체에서 정치적 공동체로 나아가면서 극우 및 녹색당이 사회적 이슈들을 끌어안으며 새롭게 사회적 좌우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1)

본 논문의 목적은 유럽의 통합이 국내 정치적 균열구조와 어떻게 연동되는지 담론적 수준에서 살펴보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혼란스러워 보이는 오늘날 유럽의 정당 정치를 이해하고, 향후 유럽의 통합 전도를 전망하는 데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먼저 제2장에서 유럽의 통합 과정을 단계별로 구분하여 살펴보고, 제3장에서는 그 단계성과 정치적 균열구조의 변화를 프랑스를 사례로 설명한다. 제4장에서는 유럽의 문화적 통합과 난민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마지막 결론에서 향후 전망을 간단하게 언급한다.


2. 유럽통합의 단계성

유럽의 통합은 개별 국가들의 항전(恒戰) 상태로부터 유럽기구로의 자발적 주권 이양을 통해 평화를 달성하고자 했던 유럽주의자들과 2차대전시 독일의 점령 경험과 냉전의 양극체제 속에서 안보와 국익을 최우선시하려는 국가주의자들의 마찰 속에 진행되었다. 그 접점은 경제적 통합을 거쳐 정치적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이었고, 후자를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회원국의 확대와 더불어 그 추동력은 강해졌다.

이러한 경제적 통합에서 정치적 통합으로의 진전은 유럽의 통합에 단계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늘날 그것은 난민문제에 직면하면서 문화적 통합에 대한 관심으로 재고되고 있다(윤석준, 2016, 60쪽; 김종법, 2018, 14쪽). 일반적으로 사회는 경제, 정치, 문화 분야로 대별되며 이들은 공시성을 갖고 상호작용하지만, 동시에 선후관계가 존재하는 통시성도 보여준다. 즉,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정치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또 정치적으로 안정된 뒤라야 문화적 연대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유럽의 통합 단계를 매슬로우(Maslow. A.)의 욕구단계설을 차용하여 설명하면 <그림 1>과 같다. 다양한 이해와 고려요소들이 작용하는 국가들의 통합과정을 단순화한 점이 없지 않지만, 국가사회는 개인들의 집합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Maslow, 1943).

<그림 1>

유럽의 통합단계와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먼저 경제적 통합단계는 생리적 및 안전의 욕구에 대응된다. 전후 유럽은 전쟁의 폐허로부터 경제 재건이 불가피했으며, 냉전질서는 그것이 유럽 차원에서 진행되도록 압박했다. 또한 경제적 통합은 안전이 담보되어야 했기에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가 함께 설립된 것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 정치적 통합단계는 소속감, 연대감 등과 같은 사회적 욕구에 대응된다. 냉전이 종식되고 유럽이 정치적 공동체로 나아가면서 국가시민은 이제 유럽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된다. 회원국이 동유럽으로 확장됨에 따라 이들 국가로부터 유입되는 이민자들은 그러한 고민을 가속시켰다. 선거에서 정체성의 정치가 중요해지고, 반이민을 주장하는 극우당이 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Ignazi, 2006, p. 1).

그리고 이러한 국내 갈등은 유럽 수준에서 정치적 합의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통합단계는 국가 수준에서 유럽연합 회원국들 간의 관계에 중점을 둔 것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국내 수준에 적용될 때에는 시민과 국가 또는 시민들 간의 관계가 중점이 되는 ‘사회적’ 통합단계이기도 하다. 유럽 수준과 국내 수준의 정체성이 동조화되는 시기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통합단계는 존중과 자아실현의 욕구에 대응되며, 이는 정신적인 것으로 단순히 국적과 같은 법적인 정체성만으로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정신적 유대감이 중요한데, 이는 세대를 넘어 전수되는 것으로 언어, 종교 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종교는 통합에 있어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일찍이 헌팅턴이 냉전 이후 국제 사회의 분쟁이 종교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단층선을 따라 일어날 것으로 전망한 바와 같다(Huntington, 1996, pp. 201-202).

유럽의 문화적 통합에 대한 논의는 유럽공동체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있어 왔다. 1948년 헤이그 회의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의 정치인들과 정부관료, 지식인 등 800여 명이 모여 유럽의 통합을 정치, 경제/사회, 문화 등 3개 분과로 나누어 논의했으며, 비록 주된 관심은 정치와 경제 분야였지만 문화가 하나의 축으로서 함께 논의된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이후 문화적 통합에 대한 노력은 유럽문화센터, 유럽문화재단, 유럽학연구소, 유럽칼리지 등 유럽문화의 정체성을 구성하기 위한 연구, 교육 분야로 이어지고 있다(윤석준, 2016, 66-68쪽).

한편 유럽의 통합 과정은 그것이 국가 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성주의적 관점도 매우 유용하다. 즉, 각 단계에서 주어지는 외적 환경에 대해 개별 국가들은 상호 이해(interest)에 따른 정책들을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지식구조를 구성(construct)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국가 구성원의 정체성에 영향을 줌으로써 유럽의 통합은 수평적, 수직적 연동을 하게 되고, 국가 이익(interest)에 영향을 미치는 외적 환경은 통합의 단계를 구분 짓는 중요한 매개요소가 된다. 이번 장에서는 통합의 경제적, 정치적 단계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문화적 단계는 구분하여 제4장에서 살펴본다.

1) 경제적 통합

경제적 통합은 2차 대전 이후부터 단일유럽의정서(SEA)가 발효되는 1980년대 후반까지이다. 1945년 5월 나치가 항복하자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분할 통치에 들어가고, 미국은 독일이 다시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모겐소 계획(Morgenthau plan)에 따라 농업국으로 만들고자 했다. 프랑스도 1870년 보불 전쟁 이후 세 번이나 독일에게 침략을 당한 터여서 독일의 재건에 반대하였고, 1947년 초에는 석탄이 풍부한 자르(Saar)지역을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편입하기도 하였다(박이도, 2009, 108쪽).

하지만 트루먼 독트린 이후 동서독이 냉전의 중심지가 되고, 공산주의 세력을 봉쇄하기 위해 미국은 서독의 재건으로 계획을 수정한다. 그리고 마셜플랜의 체계적 지원을 위해 유럽에게 통합된 계획을 요구하였고, 유럽 국가들은 유럽경제협력기구(OEEC)를 발족하여 이에 호응하였다.

한편 1951년 파리조약에 의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와 1957년 로마조약에 의한 유럽경제공동체(EEC)는 유럽인에 의한 유럽의 경제공동체로 나아가는 초석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는 초국가주의적 협력관계가 아니라 정부간주의의 이해관계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국익을 위한 현실 속에 진행되었다. 따라서 그 과정에 수차례의 위기가 있기도 하였는데, 통합을 주도했던 프랑스가 1963년과 1967년 두 차례에 걸쳐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 가입을 거부한 것이나, 1965년 가중다수결을 도입하려고 하자 프랑스의 결정권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여 공석위기(empty chair crisis)를 부른 것 등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전후의 긴 붐’을 통해 급속한 경제적 성장을 이루며 통합을 진전시켰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브레튼우드 체제의 붕괴, 석유파동 등으로 경제가 침체되자 유럽의 통합도 지체되었다. 회원국들은 유럽이 아닌 국가 차원의 대응을 하였고, 1979년에는 영국의 분담금 문제로 유럽공동체가 거의 5년 동안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임희완, 1998, 119쪽).

1980년대에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물결과 일본 및 신흥공업국의 부상 등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통합의 분위기가 다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유럽의 단일시장화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고,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도 확실해졌다. 이에 따라 경제적 통합의 바탕 위에 정치적 통합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면서 1987년 경제적 통합의 완성이자 정치적 통합으로의 길을 노정하는 단일유럽의정서(SEA)가 발효되기에 이른다(안병억, 2006, 112쪽).

2) 정치적 통합

정치적 통합은 탈냉전 이후 리스본조약이 발효되는 2000년대 말까지이다. 이 시기에 유럽은 경제적 통합의 진전을 정치적 수준으로 발전시킨다. 냉전이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나면서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고, 유럽연합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유럽의 질서를 재구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2년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따라 유럽공동체는 유럽연합으로 대체되고, 정책결정과정은 회원국들의 공동결정으로 제도적 진일보한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은 명실공히 국가 상위의 초국가적 권위체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다.

정치적 통합의 최종 지향점은 유럽헌법이었다. 2004년 회원국들은 유럽헌법조약을 통해 대통령 직위의 신설, 이중다수결방식의 도입 등에 합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 지도자들의 합의는 국가 시민들에 의해 부결되는데, 국가 수준에서 구성된 지식구조가 국민들과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헌법조약은 초국가성을 완화시키는 수정을 거쳐 2009년 리스본조약으로 재탄생한다.

이러한 정치적 통합과정은 유럽연합의 정책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유럽의회의 기능을 실질적으로 강화시켰다. 또한 정치적 통합으로 국경이 개방되자 국내 유권자들은 더 이상 유럽의 자유로운 이동원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국내 정치적 균열구조는 유럽연합에 대한 찬반 성향이 새로운 축으로 작용하였고, 집권당에 대한 항의적 성격이 강했던 유럽의회 선거는 극우당이 정치적 세력을 키워가는 공간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반EU를 주장하는 극우당이 유럽의회에서의 의석 비율을 키워가며 국내 총선에서도 지지율을 확대해 나간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유럽의 통합과 좌우 성격


3. 통합단계별 프랑스의 좌우 변화

앞에서 우리는 유럽 수준에서 그 통합단계를 살펴보았다. 이번 장에서는 그것이 국내 수준에서 균열구조의 변화와 어떤 상관성을 갖는지 프랑스를 사례로 살펴본다.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으로 좌우 정치의 본산이 되었듯이 정치적으로 대단히 역동적인 국가이다. 이는 균열구조에도 그대로 드러나서 유럽의 통합 진전과 연동되는 정당정치의 모습을 잘 살펴 볼 수 있다.

한편 키트쉘트(H. Kitschelt)는 유럽 정당체제의 변화에 관한 연구에서 전후 경제적 좌우를 중심으로 분포하던 유권자 정렬이 2000년대에 사회적 좌우로 완전히 재정렬하였음을 보여주었다(<그림 2>, 위). 이에 따라 Space A와 B에 새롭게 균열공간이 개방되고, 이곳은 전통적 좌우와의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새로운 좌파와 우파, 즉 해방주의 정당과 권위주의 정당의 지지기반이 된다.

<그림 2>

유럽의 유권자 분포의 변화(위)와 2019년 프랑스 정당의 정치성향(아래)출처: H.Kitschelt, 2004, p. 7, 1994, p. 32; https://www.fes.de/strategy-debates-global/strategy-debates-social-democratic-parties-in-europe/strategy-debates-european-election-2019에서 재구성

2019년 프랑스 정당들의 정치성향에도 이러한 모습이 잘 나타난다(<그림 2>, 아래). 적색과 파란색으로 표시된 전통적 좌우정당은 경제적 좌우를 중심으로 대(對)를 이루는 반면, 녹색/보라색과 회색으로 표시된 새로운 좌우정당은 사회적 좌우를 중심으로 그러하다.

그리고 녹색당과 르네상스가 같은 사회적 좌파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에 차이가 나는 것은 녹색당은 좌측으로 치우친 상태에서 폭이 좁게 유권자들을 동원한 반면 르네상스는 횡으로 넓게 중도까지 아우르며 폭넓게 유권자들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좌우를 커버하는 종적 길이는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유럽통합에 대한 이슈가 찬반을 중심으로 결정되는 것이어서 중간지대가 형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극우당인 국민연합은 약간 좌로 치우친 중도에서 횡으로 넓게 위치하여 유권자들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우파에 치우쳐 강성 유럽회의주의자들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른 정당들이 전반적으로 사회적 좌파에 위치하여 유럽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반해 극우당의 반동적 성격을 보여준다(박기성, 2016, 181쪽). 아래에서 유럽의 통합단계별 프랑스의 좌우 변화를 살펴본다.

1) 경제적 통합단계: 경제적 좌우

프랑스의 정당체제는 제5공화국 이후 점차 좌우 진영으로 양극화되기 시작한다. 그 변화는 우파 진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차 대전 당시 군인으로서 망명정부를 이끌었던 드골은 1958년 새로운 정부의 수립을 위임받고 개헌에 착수한다. ‘분극화된 다당제’의 전형을 보이며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었던 제4공화국(1946-58)은 군소정당들의 난립으로 12년 동안 정부는 25번, 총리는 15명이나 바뀌었으며, 말기에는 식민지 알제리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나 정부가 독립을 인정할 경우 프랑스군의 쿠데타 가능성까지 있었다(김응운, 2012, 180-181쪽).

드골은 이러한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이 ‘정당의 지배’에 있다고 보고, 이원집정제를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해 첫 선거에서 78.5%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의 신공화국연합(UNR)은 제1당(576석 중 206석)이 되었다. 제4공화국의 정치적 혼란, 전후 국가 재건의 필요성, 민족주의자 드골의 정치적 성향 등 국내 및 개인적 요인과 미소 냉전체제라는 국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강력한 우파 정치의 실현을 가능케 한 것이다.2)

드골의 ‘위대한 프랑스’의 재건에는 안보와 경제성장이 핵심이었다. 그는 미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0년 핵실험에 성공하여 세계 네 번째의 핵보유국이 되었고, 1964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영국을 능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국가주의적 우파정치는 드골주의를 형성하며 이후에도 드골주의 정당들로 이어진다(이선필, 2010, 131쪽).

좌파 진영이 결집되는 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1965년 대선에서 미테랑이 민주사회좌파연맹을 결성하고 결선투표에서 돌풍을 일으키지만(미테랑 44.8%, 드골 55.2%), 1969년 대선에서는 좌파가 분열하며 미테랑이 후보가 되지 못한 가운데 드골주의자 퐁피두가 정권을 이어받았다. 1974년 결선투표에서도 중도 유럽주의자 데스탱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하였고(미테랑 49.1%, 데스탱 50.8%), 결국 1981년이 되어서야 제5공화국 최초의 좌파 정권 시대를 열게 된다(미테랑 51.8%, 데스탱 48.2%).

이처럼 1960년대 드골, 1970년대 퐁피두와 데스탱, 1980년대 미테랑 정부로 이어지는 우파에서 중도, 다시 좌파로의 집권당 변화는 유럽 통합에 대한 입장이 초기 국가중심에서 후에 유럽에 개방적인 방향으로의 변화하는 모습과 함께 한다. 일반적으로 우파는 국가주의적 성향을 나타내는 반면 좌파는 유럽친화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이는 좌파의 진보적 성향과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나타나는 ‘자유화 효과’(liberalizing effect)에 따라 보다 개방적 정치성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Oesch, 2012, loc.1054.).

2) 정치적 통합단계: 사회적 좌우

1980년대 후반부터 유럽의 통합이 질적으로 심화되면서 국내 정치적 균열구조도 유럽의 영향을 더욱 받게 된다. 유럽연합의 초국가성은 국가 주권의 부분적 이양을 전제하였고, 그 영향력이 국내에 직접적으로 다가오면서 이에 대한 찬반 균열이 확대된 것이다. 이에 따라 균열구조는 성장과 분배가 주된 이슈였던 전통적 좌우 축에 유럽연합에 대한 찬반이 사회적 좌우 축으로 작동하면서 정치적 균열구조는 단선적 일차원에서 평면적 이차원으로 확장되었다.3)

또한 이 시기에 프랑스는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충성도가 약해지면서 좌우 어느 쪽도 절대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동거정부(1986-2002)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2002년 대선에서 극우당의 장 마리 르 펜은 결선까지 진출하며 기성 정당체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국민전선은 1972년 창당 이래 인종주의적 극우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다가 1980년대부터 의석을 얻기 시작하더니 1990년대에 국경폐쇄, 반이민, 반EU 등을 기치로 지지기반을 확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우당은 수권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한정된 정책으로 그 성장이 제한된 가운데 2007년 대선에서 우파인 사르코지가, 2012년 대선에서는 좌파인 올랑드가 한 차례씩 더 당선된 뒤, 2017년 신생 정당의 마크롱의 집권으로 전통적 좌우 정당은 완전히 밀려난다.

2017년 대선에서 보여준 마크롱과 마리 르 펜의 결선 구도, 그리고 2019년 유럽의회 선거는 프랑스 정치에서 전통적 좌우 정당의 몰락과 사회적 좌우 정당의 대결 구도를 확연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서 키트쉘트가 이야기했던 유권자들의 사회적 좌우로의 재정렬을 재확인 해주었다. 균열구조 상 유권자 분포는 이미 변화되었지만 그것이 대안정당의 부재 속에 정당에 대한 충성도의 변화로 이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Friedrich-Ebert-Stiftung, 2020).

향후 관점 중의 하나는 사회적 좌파(해방주의) 마크롱이 집권에 성공했듯이 사회적 우파(권위주의) 극우당의 집권 가능성이다. 더욱이 극우당이 국내 및 유럽의회에서 의석수를 늘려갈수록 스스로 존속을 유지하려는 조직의 특성상 정당의 정체성이었던 반유럽 정책에 변화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전망들은 전통적(경제적) 좌우가 중도 수렴했듯이 사회적 좌우의 중도 수렴으로 예상해 볼 수 있는 수순들이다.


4. 문화적 통합과 난민문제

문화적 통합에 대한 논의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전후 전쟁에 대한 반성과 평화 정착을 위한 방안으로 유럽의 통합을 논의했던 1948년 헤이그 회의로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경제, 정치, 문화 등 3개 분과로 나뉘어 논의되었던 헤이그 회의는 주된 관심이 경제, 정치 분야에 있었고, 문화 분야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 속에 이후 대학, 연구소 등 교육과 연구 부문에서 활동을 이어갔다(윤석준, 2016).

그런데 유럽의 통합이 어느 정도 진전되고 1990년대부터 역내 자유로운 이동으로 이민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문화적 통합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강해졌다. 유럽은 역사적으로 식민지 출신, 노동인력 등의 이유로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였고, 그에 따라 다문화주의와 동화주의의 논란이 지속되었지만, 유럽의 통합으로 국경이 사라지고 이민자들이 급증하면서 급기야 정부의 수장들은 이민정책의 실패를 선언하기에 이른다(김복래, 2019; 최현아, 2011).

더욱이 2001년 911테러 이후 유럽에서도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이런 상황에서 2015년 유럽의 난민사태는 유럽 시민들의 제노포비아를 자극하여, 선거에서 반이민·반난민을 주장하는 극우당에 대한 지지를 강화시켰다.4) 줄을 지어 길게 국경을 넘어오는 이민자들을 매스컴에서 바라본 유권자들은 수권 능력에 대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극우당에게 표를 주었으며, 이에 따라 유럽의 극우당들은 기성정당들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성장하였다.

2000년대 이전 극우당은 나치즘에 대한 기억 또는 인종주의적 성향에 대한 우려로 유권자들에게 외면을 받아왔다. 그러나 극우당은 병리적 성격의 정당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나치즘과의 경로의존성을 부정하고, 유럽연합의 질서 속에서 적극적인 반EU 정책이 제한되는 기성정당들을 비판하며 선거에서 정책적 이슈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유럽의회 선거는 유권자들이 집권당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강한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심판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극우당이 지지기반을 넓히는 시금석이 되었다(Scott, 2001, p. 6; Taggart, 1998, p. 384).

일반적으로 극우당의 지지기반은 저소득 노동자 계층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유럽연합이 동구권으로 확장되면서 노동 이민자들이 서유럽으로 많이 유입되었고, 또한 2010년을 전후한 경제위기에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이들이 극우당의 반유럽 정책에 호응한 것이다.

그런데 2015년 난민위기 이후 지지층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고소득, 고학력자들도 상당 부분 극우당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동정민, 2019.4.30). 이러한 변화는 난민문제의 근저에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경계심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동구 유럽에서 유입되었던 이민자들은 기독교 문화권이라는 공통분모 내지 친숙한 관계이지만, 지중해와 발칸 및 이베리아 반도를 통해 들어오는 난민들은 이슬람 문화권으로부터의 유입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일찍이 헌팅턴이 냉전 이후 국제사회의 분쟁은 문화적 단층선을 따라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듯이 난민문제는 바로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의 단층선에서 오는 갈등인 것이다(Huntington, 1996, p. 28).5)

난민문제는 오늘날 유럽의 가장 큰 난제이다. 2011년 시리아 내전 이래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유럽연합 내 난민 신청자는 2011년 31만 명에서 2015년 132만 명으로 급증하였다. 국가별 수용 현황을 보면 2017년 기준 독일 97만, 스웨덴 10만, 네덜란드 3만, 덴마크 2만 명 순이다. 이에 따라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했던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심한 정치적 반발로 퇴임 이후 은퇴를 선언한 바 있고, 프랑스의 마크롱도 2018년 난민신청자가 약 12만 3천 명으로 전년 대비 22% 급등하자 난민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에서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Duffin, 2020.1.2; 김용래, 2019).

난민문제는 기성정당과 친유럽 정당들이 적절한 해법을 내놓기 매우 어려운 이슈이다. 유럽의 난민정책에 반대할 경우 통합을 주도했던 자신들의 결정을 부정해야 하고, 그것은 곧 유럽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6) 이러한 가운데 극우당은 적극적인 반대 정책을 주장하면서 유럽회의주의 유권자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도 점차 다루기 민감한 종교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강해지고 있다.

스페인의 극우정당 복스(Vox)가 대표적이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스페인은 그동안 극우당의 활동이 미약했는데 최근 들어 복스가 반무슬림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며 세를 키우고 있다. 2013년 창당 당시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19년 4월 총선에서 24석(10.2%)으로 돌풍을 일으키더니 같은 해 11월 다시 실시된 총선에서 52석(15.1%)으로 제3당에 올라섰다. 유럽의 난민, 테러 문제 등을 계기로 44년 만에 극우세력의 의회 입성에 성공한 것이다.

복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모스크 폐쇄뿐만 아니라 무슬림의 추방까지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반대하며, 지하드 위협에 대응하여 스페인의 군사적 개입도 주장한다. 복스 대표 산티아고 아바스칼은 2019년 총선 결과를 중세 ‘레콩키스타’(Reconquista)에 비유하며 유권자들의 반이슬람 정서를 자극하기도 한다(동정민, 2019.4.30).

난민문제가 종교문화적 차이 때문이라는 것은 중동 국가들의 난민 수용 현황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시리아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한 국가는 터키로 2017년 기준 342만 명이다. 이는 유럽에서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한 독일의 수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이 외에도 레바논 99만, 요르단 65만, 이라크 25만, 이집트 13만 등 이슬람 국가들의 난민 수용은 유럽의 어느 국가들보다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충격은 유럽에서 더 크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Duffin, 2020.1.2).

이처럼 난민문제는 유럽의 통합에 갈등요인이 되고 있지만, 역으로 문화적 통합을 촉진하는 외적 환경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최진우, 2016, 132쪽). 다시 말해 전통적(경제적) 좌우가 갈등을 통해 중도로 수렴했듯이 사회적 좌우, 나아가 문화적 좌우의 수렴가능성도 열어 놓고 추이를 바라 볼 필요가 있다. 다만 본 논문에서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는 이후 진전에 따라 후속과제로 남겨둔다. 이상의 내용을 그림으로 종합하면 <그림 3>과 같다.

<그림 3>

유럽의 통합단계와 국내 균열구조


5. 결 론

2019년 치러진 40년 역사의 유럽의회 선거는 많은 시사를 담고 있다. 전통적 좌우 정당 그룹이 처음으로 과반에 실패하였고, 녹색당과 극우당은 새로운 좌우로서의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선거에 참여한 유럽시민의 투표율도 20년 이래 최고치인 51%로 급등하여 유권자들이 유럽연합을 정치적 실체로 받아들이는 정도도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오늘날 정당정치의 과도기적 모습과 그 근저의 균열구조의 변화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앞으로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일이다. 키트쉘트의 주장처럼 정치적 균열구조가 경제적 좌우에서 사회적 좌우로 변화되었다면 과연 사회적 좌우에서 문화적 좌우로의 변화도 가능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상위 수준에서 유럽의 통합과 어떻게 연동될 것인가?

유럽의 통합에는 시기별로 중요한 외적 환경이 존재하였다. 2차 대전이후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냉전체제 속에 경제적 통합이 진행되었고, 탈냉전시대에는 유럽연합의 질서 속에 정치적 통합이 그러하였다. 그렇다면 이후의 진행은 어떠한 환경 속에 진행될 것인가? 본 논문은 그것이 난민문제와 같은 유럽의 공동체적 연대감을 자극할 수 있는 외적 충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같은 이유에서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문제나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판데믹(pandemic) 상황 등도 가능하다.

이처럼 일국의 경제적, 정치적 문제를 넘어서 유럽 수준에서 다가오는 충격은 유럽시민이라는 공동체적 연대감이 그 극복에 매우 중요하다. 또한 그것은 다시 문화적 연대감을 강화시킬 것이다. 반면 이질적 문화권으로부터 들어오는 성원(成員)은 공동체의 연대의식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협요소로 인식될 수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도 경제적 또는 정치적 차원보다 난민 유입에 따른 문화적 차원의 우려에 기인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난민문제는 분명 유럽 사회에 커다란 도전임에 틀림없다. 그 추이에 따라 이에 대한 정리 없이 유럽의 통합은 더 큰 진전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브렉시트를 대하는 데 있어서 보여준 유럽 지도자들의 단합된 모습은 난민문제에 대해서도 동일한 모습을 기대하게 한다. 유럽연합이 초국가 권위체로서 흔들림 없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유럽의 정치적 통합이 성숙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그것을 넘어 문화적 통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에 따라 60여년 역사의 유럽통합 노력이 결실을 맺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될 것이다.

Notes
1) 전통적(경제적) 좌우에서 사회적 좌우로의 변화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조. 박기성 (2018). 정치이념과 균열구조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 <유럽연구>, 36(4).
2)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한국전쟁 이후 나타난 남한의 강한 우파 군사정권과 그에 저항하는 좌파 세력의 대결 구도도 냉전시대 속에 형성된 것이다. 남한은 북한 공산정권과 직접 맞닿아 있었다면 프랑스는 서독을 통해 동구 공산권을 접한 차이가 있다.
3) 여기에는 전후 전쟁의 부재와 물질적 풍요, 교육수준의 향상, 산업구조의 변화와 직업의 다양화 등 탈물질주의 사회로의 진입과 기존 사회의 권위적 질서에 저항했던 68학생운동 등 유권자들의 정치성향의 변화가 배경을 이루고 있다(Inglehart, 1977).
4) 2018년 유로폴(Europol)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에서 테러 공격으로 체포된 사람은 1,056명이며, 그 중 511명이 지하드 테러와 관련되었다(Armstrong, 2019.6.29).
5) 헌팅턴은 문화의 중요 요소로 종교, 언어 등을 들고 있다. 그런데 언어는 문화의 내용을 전달하는 소통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또 언어가 다르더라도 같은 종교를 공유하면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가 다르면서 같은 문화권을 형성하기는 어렵다(Huntington, 1996, pp. 40-42). 따라서 종교는 개인 또는 사회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주어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문화(文化)의 화(化)가 교화(敎化)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과 같다(김세종, 2017, 129쪽).
6) 유럽연합의 난민정책은 더블린협정(Dublin Convention)을 기본축으로 규칙(Regulation), 결정(Decision), 지침(Derective) 등의 형태로 장기간에 걸쳐 발전되어 왔다. 자세한 내용은 박선희, 2016; 심성은, 2019; 박병철, 석인선, 201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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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그림 1>
유럽의 통합단계와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그림 2>

<그림 2>
유럽의 유권자 분포의 변화(위)와 2019년 프랑스 정당의 정치성향(아래)출처: H.Kitschelt, 2004, p. 7, 1994, p. 32; https://www.fes.de/strategy-debates-global/strategy-debates-social-democratic-parties-in-europe/strategy-debates-european-election-2019에서 재구성

<그림 3>

<그림 3>
유럽의 통합단계와 국내 균열구조

<표 1>

유럽의 통합과 좌우 성격

구분 경제적 통합 (냉전시대) 정치적 통합 (탈냉전시대)
역내질서 (국외환경) 냉전체제 EU체제
균열구조 (국내환경) 경제적 좌우 (좌파-우파) 사회적 좌우 (친EU-반EU)
주요조약 1957년 로마조약 1992년 마스트리히트조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