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재난의 장기적 사회영향: 기름유출사고 발생 11년의 시점에서 본 두 개의 어촌마을
초록
본 연구는 허베이 스피리트(Hebei Spirit)호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11년이 지난 시점에서 ‘피해주민들의 삶은 복원되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다. 이를 위해 서로 다른 생태환경과 사회경제구조를 지닌 두 어촌마을을 종단적·횡단적으로 비교해봤다. 연구결과, 사고의 사회경제적 피해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주민들은 그 피해에 적응 중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재난복원력 변수로 자주 언급되는 사회자본, 경제자본, 인적자본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사회자본은 주민들의 집단적 대응과 협력을 통해서 복원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자본은 생계의 안정적인 경제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속되기 어렵고 불안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경제자본이 개인과 집단, 공동체가 오염피해를 흡수하고 직접적으로 재난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 복원력의 핵심 요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자본의 위축과 축소는 재난피해의 장기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구성원들의 인적자본인 건강 및 고령화의 문제는 대응력과 새로운 변화를 도모할 수 없게 하는 주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Abstract
This study started with the question ‘has the lives of the fishing village residents been restored?’ 11 years after the Hebei Spirit oil spill accident. To that end, the two fishing villages with different ecological environments and socioeconomic structures were compared in a long-term and cross-present research. Studies have shown that the socioeconomic damage of the accident, which has not recovered the lives of the residents, is still ongoing and residents are adjusting to the damage. In particular, the following implications were obtained with respect to social capital, economic capital, and human capital, which are often referred to as disaster-resilience variables. Social capital is an important factor that can enhance the resilience of residents through a collective response and cooperation. On the other hand, such social capital could prove to be difficult and insecure without a stable economic foundation for living foundation. In other words, economic capital is a key factor in resilience that helps individuals, groups, and communities absorb pollution damage and escape disaster situations. Therefore, the contraction and reduction of economic capital have a great impact on the long-term effects of disaster damage. In addition, the problems of health and aging, which are the human capital of the members, were the main obstacles to their responsiveness and inability to seek change.
Keywords:
Environmental Disaster, Environmental Pollution, Social Impact, Resilience, Fishing Village키워드:
환경재난, 환경오염, 사회영향, 복원력, 어촌마을1. 서 론
태안 앞 바다에서 대규모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지 만 11년의 시간이 흘렀다. 주민들의 생활공간인 해안선을 따라 강하게 부착됐던 검은 기름덩어리와 그 기름을 맨손으로 제거하던 대규모 자원봉사자의 물결은 보기 드문 스펙터클한 광경을 연출했고 이는 곧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사고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 바다는 외관상 깨끗해졌고, 주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으며, 동시에 언론의 관심 역시 멀어졌다. 만리포 해안에는 유류피해 극복을 기념하기 위한 ‘유류피해극복 기념관’이 준공(2017년 9월 14일)되어,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에 대한 찬사와 지역주민의 삶도 회복되었음을 알리는 각종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다. 본 연구는 기름유출사고와 관련하여 단순하지만 핵심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는데서 출발한다. 즉 허베이 스피리트(Hebei Spirit)호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1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피해주민들의 삶은 복원되었는가?’이다.1)
사고 직후부터 주민들이 받은 경제적, 사회문화적, 심리적 영향에 대한 연구와 함께 재난의 복구과정을 다룬 사회과학 연구들 수행되었다(이시재, 2008, 2009; 홍덕화·구도완, 2009; 이재열·윤순진, 2008; 김도균·이정림, 2008; 김도균, 2011; 2012; 김교헌·권선중, 2008; 김교헌·김세진·권선중, 2009; 이정림·김도균, 2011; 노진철, 2008; 2009, 2010; 박재묵, 2008; 박순열·홍덕화, 2010; 김도균·박재묵, 2012).2) 양적으로 적지 않은 연구가 수행되었지만, 사고발생 1~3년 이내 수집된 자료에 기초했기 때문에 사고초기 상황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해양환경오염이 바다자원에 대한 삶의 의존도가 높은 지역사회에 장기간에 걸쳐 미친 사회영향을 확인할 수 없다. 이후 사고발생 7년의 시점에서 어촌마을을 연구대상으로 사회영향을 확인하는 연구가 일부 수행되었지만(김도균, 2015; 유보경, 2015), 이 또한 단일 마을 사례만을 다루고 있어, 사고의 영향으로 인한 사회변화의 다양한 양상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사고발생 11년의 시점에서, 서로 다른 사회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두 마을간 비교연구를 통해, 피해주민들의 삶의 변화 또는 복원과정, 그리고 복원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확인해 보고자 했다.
본 연구에서는 주민들의 삶의 복원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연구대상으로 ‘마을’에 주목했다.3) 왜냐하면 한국의 어촌사회에서 마을은 가장 작은 기초 단위로 주민의 생산과 생활, 생각과 감정 등의 일상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삶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즉 환경재난의 사회영향 및 복구정도를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다.
구체적인 연구대상으로 선정한 마을은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A와 B마을이다. 이 두 마을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한 주요 이유는 마을 앞 갯벌 및 갯바위까지 기름이 밀고 들어오는 심각한 오염피해를 입었다는 공통점과 사고초기의 자료가 소상하게 정리되어 있어 현재와 비교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즉 사고 오염피해의 심각성과 현재의 시점과 비교 가능한 연구 자료의 축적 등을 고려한 선택이다.
A마을과 B마을의 생태환경과 경제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마을은 태안반도의 서북쪽 끝단에 위치한다. 마을의 서쪽해안은 암석해변과 모래해변이 발달해 있고 동쪽해안은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 사고 이전 마을주민들은 갯벌을 이용한 굴 양식어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 왔다. 이 마을은 태안군내에서 굴 양식마을이라고 불릴 정도로 굴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았다. 반면에 A마을과는 자동차로 약 25분 거리에 위치한 B마을은 A마을과는 전혀 다른 자연환경과 경제구조를 보유하고 있다. B마을은 태안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다. 과거 동쪽해안에는 넓은 갯벌이 있었지만 간척사업으로 매립되어 현재는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A마을처럼 양식어업을 할 만한 자연조건에 있지 않다. 하지만 태풍에 안전한 항구가 있어 일찍이 어선어업이 발달했다. 여기에 태안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 내 식당 및 숙박 등 관광업이 활발한 편이다. 즉 어업을 기준으로 하면 A마을은 양식어업지대, B마을은 어선어업지대로 구분해 볼 수 있으며, 관광업은 B마을이 A마을보다 규모도 크고 더 전문적이다. 농업은 간척농지가 있는 B마을이 농지규모도 더 클 뿐만 아니라 농업을 주요 생계활동으로 하는 인구비율도 높은 편이다.4) 본 연구는 이처럼 서로 다른 사회경제구조를 갖는 두 마을간 종단적·횡단적 비교연구를 통해 기름유출사고 이후 주민 삶의 변화와 복구과정의 양상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2. 이론적 자원과 연구방법
1) 오염공동체의 사회영향과 복원력
환경오염은 오염노출 혹은 피해의 정체성을 공유한 오염공동체(contaminated community)를 구성해 낸다(Edelstein, 1988, p. 6). 여기서 오염공동체는 “어떤 오염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경계 내에 위치한 거주지”로 정의할 수 있다(Edelstein, 1988, p. 6). 오염공동체는 유사한 정치적, 지리적, 사회환경의 공유 여부와 관계없이 독성위협에 기초하여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한다(Edelstein, 1988, p. 6). 즉 오염공동체는 기존의 생태환경, 행정, 경제 및 사회문화, 생활의 경계와 일치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경계를 넘어 오염피해를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될 수 있다.
오염공동체가 경험하는 오염피해는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되는 특징을 보인다. 화학폐기물 매립에 의한 미국의 러브커넬 사건처럼 오염의 정도와 피해를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긴 잠복기를 갖기도 하며,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처럼 사고이후 오염피해가 단기간에 회복되지 못하고 장기화할 수도 있다. 환경오염의 오염원을 제거 혹은 완화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심각한 수준의 사회적 피해 및 건강문제가 드러난 이후에서야 오염피해의 실체가 드러난다. 따라서 오염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외면당하기 쉽고 사회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오염공동체가 경험하는 사회적 피해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김도균, 2012, 25-29쪽). 첫째, 오염공동체는 경제적 피해 또는 변화를 경험한다. 경제적 피해는 경제활동의 축소와 변화뿐만 아니라 재산상의 손실까지를 포함한다. 둘째, 오염은 공동체의 혼란과 갈등을 유발시켜 공동체의 연대를 훼손할 수 있다. 즉 자원분배와 손해 배·보상을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두려움, 유언비어 등의 확산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하여 갈등을 부추긴다(Freudenburg, 1997; Picou, 2008; Bruhn, 2004, p. 104). 셋째, 오염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와 심리적·육체적 피로, 사회갈등은 공동체 성원들 간의 일상적인 교류와 친밀성을 감소시킨다(Palinkes et al., 1993; 김도균·이정림, 2008). 특히 면대면 상호작용이 활발한 소규모 공동체일수록 일상적인 주민교류의 감소를 피해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넷째, 오염공동체는 신체적·심리적 건강피해에 노출된다(Bruhn, 2004; Marshall, Picou, & Gill, 2004; 김교헌·권선중, 2008; 김교헌·김세진·권선중, 2009). 독성물질에 의한 오염은 회복할 수 없는 신체적 손상을 가져올 수 있으며 우울, 불안, 적대감, 자살충동,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과 같은 심리적 고통 또한 불러온다. 다섯째, 환경오염 피해는 인간 및 기술실패로 인한 기술재난(technical disaster)이라는 측면에서 복구과정에서 손해 배·보상을 둘러싼 법적 소송이 핵심적인 쟁점으로 등장한다(Picou, Marshall, & Gill, 2004; Freudenburg, 1997; Couch, 1996; 김도균, 2012, 2015). 즉 피해자는 법적 판결을 통해 정당한 배·보상을 받고자 하지만, 가해자는 책임을 최소화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법적 소송이 장기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오염공동체는 다양한 사회적 피해에 노출되지만 단순한 수동적 피해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의 내·외부적 조건이 갖는 복원력(resilience) 또는 취약성(vulnerability)의 정도에 따라 피해양상과 복구과정이 차별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개념은 자연재난, 기술재난 등 각종 재난에 대한 인간 및 사회시스템의 대처역량을 언급할 때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키스 스미스, 2015, 62-67쪽). 복원력이 재난의 부정적 영향으로부터 인간과 사회시스템이 신속하게 회복하는 대처역량이라고 한다면, 취약성은 재난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인간과 사회시스템의 민감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복원력과 취약성은 반비례 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복원력과 취약성은 단순히 긍정과 부정의 반대 개념만은 아니다. 취약성이 낮은 상태의 적응력과 현상 진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복원력은 불리한 상황을 완화하고 극복하는 보호기제(protective factor)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이재열·정지범, 2009, 28쪽).
또한 복원력은 교란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시스템의 역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학습과 적응을 통해 재난이전의 상태보다 사회생태시스템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피드백 과정을 까지를 포함한다(Cutter et al., 2008). 즉 복원력은 공동체가 스스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고, 현재의 교훈을 통해 향후 재난에 강한 사회생태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는 점에서 재난취약성과 구분된다(브라이언와 데이비드, 2015, 68쪽). 따라서 재난복원력 수준이 높은 공동체는 더 짧은 시간 내에 더 높은 복구수준에 이를 수 있다면 복원력의 수준이 낮은 공동체는 복구수준도 낮을 뿐만 아니라 복구과정 또한 지체된다(<그림 1> 참조).
그렇다면 오염공동체의 복원력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자본에 기초한 접근을 참고하면 사회자본(social capital), 경제자본(economic capital), 인적자본 (human capital) 등을 강조할 수 있다(Mayunga, 2007). 여기서 자본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유무형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위의 세 가지 형태의 자본은 취약성을 약화시키고 공동체의 복원력을 강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첫째, 사회자본은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으로 구성되며 공동체의 재난복원력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협력 및 집합행동을 촉진한다. 즉 사회자본을 풍부하게 축적하고 있는 공동체는 재난피해자들이 피해극복을 위한 자원동원을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공동목표를 위한 시민들의 협력을 촉진한다(Mayunga, 2007; 김도균, 2010). 둘째, 경제자본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데 사용하는 재정자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입, 자산 가치, 고용 및 투자 등으로 측정할 수 있다. 경제자본은 보험, 경제적 재기 등 직접적인 방식으로 개인과 집단, 공동체가 오염피해를 흡수하고 신속하게 재난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Mayunga, 2007). 셋째, 인적자본은 교육, 훈련 및 경험 등을 통해 축적된 지식 및 기술 그리고 연령, 건강상태까지를 포함한다. 개인의 풍부한 지식과 기술은 공동체의 복원력을 만들어 내는 핵심적 자본으로 주로 학력, 건강, 인구밀도, 인구증가, 인종 및 민족 등 인구학적 특징, 가구의 특징, 주택의 질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환경오염의 사회영향과 복구과정은 오염에 처한 공동체의 내외부적 조건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 연구방법
본 연구는 심층면접과 설문조사 모두를 사용했다. 심층면접은 학력수준이 낮아 문자문화보다는 구술문화에 익숙한 고령의 어촌주민을 상대로 한 유용한 조사방법이다. 이들은 정형화된 설문지보다는 자유로운 구술 및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과 감정을 더 풍부하게 표현한다. 심층면접은 2018년 12월 18일~20일, 2019년 1월 9일~11일 두 차례 수행했다. 면접대상자로는 이장, 어촌계장 등 마을리더를 포함하여 경제활동의 특성, 성별, 연령 등을 감안하여 폭넓게 접촉하여 질적 자료를 확보했다.
주요 심층면접 대상자는 총 12명으로,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마을에서 맡고 있는 직책, 직업 및 연령에 관한 상세한 내역은 표기하지 않았다([부록 1] 참조). 양식어업, 맨손어업, 어선어업 등은 어업으로, 식당 및 펜션은 관광업으로 표기했으며, 기타는 어업 및 관광업 등에 종사하지 않지만 마을의 사정을 잘 알고 구술해 준 제보자들이다. 또한 무직으로 표기한 이들은 기름유출사고 당시에는 어업에 종사했지만, 현재는 고령으로 일을 그만둔 사람들로 마을의 경제적 사정과 이웃관계 등에 대한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설문조사는 2019년 2월 12일~15일까지 4일간 진행했으며 총 123부의 유효한 설문지를 확보했다. 설문조사는 가구별 방문조사를 원칙으로 했다. 이러한 이유는 설문에 현재 자신의 경제적 상황과 건강, 이웃관계 등 예민한 문항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타인이 옆에 있음으로 해서 나타날 수 있는 암묵적인 압력 및 눈치로 인해 응답이 왜곡될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설문조사는 응답자들이 학력 수준이 낮고 고령인 점을 감안해 문항을 최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사원이 응답자의 옆에서 설문문항을 읽어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설문조사 응답자들의 일반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부록 2] 참조). 먼저 성별분포를 살펴보면, A마을은 남성(49.1%)과 여성(50.9%)의 분포가 비슷한 수준인 반면에 B마을은 여성 응답자(65.7%)의 비율이 남성(34.3%)에 비해 31.4p% 더 많이 조사됐다. 다음으로 연령별 분포는, 두 마을 모두 60대와 70대가 60%이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이들은 2007년 기름유출사고 발생 시에는 경제활동이 활발한 50~60대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가구 규모를 보면 혼자 또는 부부 중심의 가구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응답자들의 거주기간은 평균 50년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즉 조사 대상 마을은 오랜 시간 마을에서 경제와 여가활동을 함께 해온 생활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조사에 대해 주민들은 신경질적 반응과 화를 내며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기도 하고 조사 중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거부감과 감정적 반응은 사고초기 조사과정에서도 관찰된 것이었다. 이러한 반응은 사고 발생 1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고피해가 주민들에게 강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간접적이지만 명확한 증거다. 또한 이는 아래 주민의 구술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연구자와 주민 사이의 정보공유의 부족, 조사의 효용성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기도 했다.
주민들도 (연구자들)오면 좋아하지 않아요. 아무 주민들에게 소득이 되는 것도 아니고 쫒아 다니면서 얘기만 들으니 짜증만 나는 거야. 그것도 혼자만이 아니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이제는 싫다 이거지 주민들은. 이런 자료 만들었으면 갖다 주고 회관에 비치할 수 있는걸 줘야지. 자기들 연구 자료로만 쓰고 주민들은 알지도 못하고 있고…(주민1)
3. 사회영향의 복구과정
1) 인구영역
<그림 2>는 공식통계(주민등록기준)로 확인 가능한 1989년부터 최근까지 A와 B마을의 인구 및 가구의 장기적 변화를 보여준다. 지난 시기 두 마을 모두, 인구는 큰 폭으로 줄었지만 가구 수는 소폭으로 꾸준하게 증가해왔다. 기름유출사고가 일어난 다음 해인 2008년을 기준으로 하여, A마을의 인구는 이전 10년(1998년)동안 99명 줄어들었지만 이후 10년(2018년)동안 38명 감소했다. 반면에 B마을은 이전 10년 동안 81명, 이후 10년 동안 115명 줄어들었다.
공식통계를 기준으로 볼 때, A마을은 사고이후 오히려 인구 감속 폭이 둔화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기름유출사고가 A마을 인구감소에 장기적으로는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에 B마을은 사고이전에 비해 사고이후의 인구감소 폭이 더 컸다. 이는 인구규모가 큰 B마을이 빠져나갈 수 있는 인구여력이 높았거나, 관광업 비중이 높았던 마을의 경제구조의 특성 상 관광업을 위해 유입되었던 인구가 기름유출사고이후에 빠져 나간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든 것과 반대로 두 마을 모두, 소폭이지만 가구는 증가하였다. 이러한 일차적 이유는 은퇴자들의 귀촌 및 도시민들의 주택구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A마을은 이주민을 위한 신규주택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B마을 또한 현지조사과정에서 귀촌한 주민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귀촌으로 인한 새로운 인구유입은 이 지역의 오염 이미지가 그 만큼 약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마을별 연령 및 성별 분포 변화를 보면, 노령화 현상의 심화를 확인할 수 있다(<표 1> 참조). 두 마을 모두 사고발생 10년 전보다 60세 이상 인구비율이 A마을은 15.5%p, B마을은 19.4%p 증가했다. 특히 70세 이상의 인구증가율이 A마을은 12.1%p, B마을은 12.3%p 증가했다. 10대, 20대, 30대는 학업 및 취업 관계로 마을에 실제 거주하지 않고, 주소지만 마을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 체감하는 고령화 수준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2) 경제영역
양식어업 중심인 A마을과 어선어업 중심인 B마을의 어업의 변화를 살펴보면, 근본적 변화는 A마을에서만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A마을의 변화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양식품종의 변화와 양식어업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의 약화’라고 할 수 있다. 사고이전 A마을은 “주민의 90%가 굴 양식을 한다”라고 회자될 정도로 태안군 관내에서 유명한 굴 양식마을이었다(김도균, 2011, 109쪽). 하지만 2014, 15년부터 주민들은 마을 앞 갯벌을 굴 양식장으로 복원하기보다는 바지락 양식장으로의 전환을 시도했고 현재는 이러한 경향이 완전하게 정착했다.
굴 양식 복원을 포기하고 바지락 양식으로 전환한 것은 사회경제적 요인과 생태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연구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바지락 양식에 대한 선호는 높은 자본투자라는 경제자본과 고령화로 인한 인적자본의 약화라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김도균, 2015).
기름오염으로 철거된 굴 양식 시설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초기 높은 자본투자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농업처럼 경작 성격이 강한 굴 양식과정에는 고용노동과 높은 노동 강도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고령화된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전의 굴 양식에 비해 소득이 낮더라도 별도의 투자비용이 없고 상대적으로 노동 강도가 약한 바지락 양식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5)
이러한 사회경제적 요인 이외에도 생태환경적 요인 또한 굴 양식 복원을 가로 막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과거 굴 양식장으로 이용하던 마을 앞 갯벌이 환경적으로 완전하게 복원되었는가에 대해 주민들은 불안감을 갖고 있다. 조사과정에서 지금도 갯벌 깊숙한 곳에서 기름이 나온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즉 오염문제가 다시 불거질 경우 투자비용에 대한 손실을 전적으로 개별 어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 현재 굴 양식장으로 복원되고 있는 지역이 주민들이 보기엔 굴 양식장으로 적합한 생태환경인지 의문을 드러냈다. 즉 마을 앞 갯벌보다 입지 조건이 열악한 곳에서 적정한 수준의 굴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촌계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현재 20가구만이 굴 양식장 복원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상황에서 바지락 양식은 굴 양식을 대신하여 갯벌이라는 공유자원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다. 하지만 바지락 양식은 주민들에게 굴 양식을 대체할만한 현금소득을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 어촌계 관계자의 구술에 따르면 개인 간 편차는 있으나 바지락 채취로 벌어들 일수 있는 소득은 연평균 6~7백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현재 바지락 채취의 소득이 낮은 이유는 충분치 못한 바지락 생산량과 판매의 어려움 때문이다. 바지락 양식을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A마을의 갯벌은 바지락양식장으로는 최적의 생태적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즉 오랫동안 바지락 양식장으로 관리해온 주변의 다른 갯벌(마을)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인지도 부족으로 인해 판매에 있어서도 문제를 안고 있다. 과거 굴의 경우에는 외부에 굴 마을로 알려질 정도로 A마을 굴의 인지도가 높았다. 따라서 굴 수확시기에는 도·소매 판매뿐만 아니라 개인 판매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바지락은 주변 마을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관계로 자본력이 높은 판매상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는 실정이다.
지난 10년간 A마을은 어선어업 또한 축소된 것으로 나타나, 어선어업을 주요 어업으로 하는 B마을과 대조를 보였다(<표 2> 참조). 2014년 52척이던 A마을의 어선은 2019년 23척으로 크게 줄어든 반면에 B마을은 지난 10년간 큰 변화 없다. 이러한 이유는 어선 규모(톤)의 차이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A마을은 3톤 미만의 작은 배들이 전체의 60.9%를 차지한 반면에 B마을은 5톤 이상의 배들이 전체의 68.6%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B마을이 서해와 직접 맞닿아 있어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작은 배로는 조업을 할 수 없다는 지리적 조건뿐 아니라, A마을처럼 양식어업을 할 수 있는 생태환경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일찍이 규모 있는 어선어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A마을은 갯벌을 이용한 양식어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어선 규모를 키우는 것에 대한 동기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즉 동원할 수 있는 자본과 노동의 한계 속에서 양식어업에 투자하는 것이 더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사고이후 기름오염에 영향을 많이 받은 마을 인근에서 조업하던 작은 배들이 일찍이 조업을 포기한 반면에 영향을 덜 받는 먼 바다에서 조업할 수 있는 큰 배들은 지속적으로 유지해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B마을의 어선어업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해서 B마을의 어업의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고이전 B마을 주민들은 농업과 맨손어업을 겸하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김도균, 2011, 110-112쪽). 하지만 사고의 직접적 영향이라고 말 할 수 없지만 맨손어업에 대한 의존도가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이러한 이유는 고령화와 마을의 지형적 조건이 중첩 된 결과로 보인다. A마을은 상대적으로 몸의 움직임이 편한 갯벌에서 맨손어업이 이루어지는 반면에 B마을은 경사가 급해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갯바위에서 주로 맨손어업이 이루어진다. 즉 신체적 불편함을 안고 있는 고령의 주민들이 참여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노동이다. 따라서 B마을은 주민들이 고령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맨손어업에 대한 의존도가 축소되었다.
기후온난화, 남획, 해양오염, 무분별한 연안개발 등으로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관광업이 어촌마을의 새로운 경제 활성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어촌개발정책의 흐름과 맞물려 사고 직후 어업의 쇠퇴를 관광 활성화를 통해 보완해 보려는 주민의 요구와 정부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정부차원의 다양한 지원이 있었다.
A마을의 경우에는 둘레길 및 해양낚시공원 조성, ○○○ 해안사구와 마을 항구를 연결하는 다리 건설 등이 진행되거나 논의 중이다. A마을은 삼면이 둘러싸인 반도지형과 마을의 서쪽에 위치한 산과 암석해안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이용하여 트레킹 코스를 개발하였다. 또한 배를 타고 나아가지 않고도 숙박과 함께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는 해양낚시공원을 새롭게 조성했다. 현재 태안군으로부터 마을어촌계가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2천 3백만 원(년)이라는 높은 임대료와 홍보부족 등으로 인해 운영 첫 해인 2018년에는 적자가 발생했다. 따라서 관계 주민은 흑자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임대료 인하와 홍보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사고초기 복구과정에서 A마을 주민들이 마을경제 활성화를 위해 건의했던 주요 사업 중 하나는 우리나라 최대 해안사구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 해안사구와 마을 항구 사이의 바다를 가로질러 다리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당시 A마을 주민들은 ○○○ 사구의 경관은 좋지만 항구가 없어 수산물이 풍부하지 않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다리가 놓이면 사구를 방문한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을 거라 주장했다. 현재 지방정부에서는 차량통행은 불가능한 보행자 전용 다리를 추진하고 있는 반면에 주민들이 차량 통행이 가능한 다리를 건설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이 차량통행이 가능한 다리를 주장하는 이유는 우선 마을의 둘레길 사례를 놓고 볼 때 걷기 중심의 관광객 방문이 마을의 경제 활성화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한 A마을에서 구매한 수산물을 들고 도보로 ○○○ 사구의 펜션단지로 돌아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차량 통행이 가능해야만 신선한 수산물 판매라는 자신들의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차량 통행 증가가 오히려 시골마을의 어메니티(amenity)를 훼손할 수 있음을 우려하는 소수의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A마을 주민들은 다리 건설을 통해 도로확장, 주차장 확대 등 마을의 기반시설이 확충되기를 바라고 있다.
사고이후 관광업 활성화를 위해 추진된 B마을의 주요 사업은 해삼축제와 수산물직판장 설치이다. B마을이 위치한 일대 바다는 해녀들에 의한 해삼 채취가 유명한 지역으로, 이러한 지역적 특색을 살려 2012년부터 해삼축제를 개최했다. 2014년에는 대한민국축체콘테스트(해양수산부)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2019년에는 축제를 열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는 그간 예산을 지원했던 해양수산부의 지원이 올해로 끝나면서 축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해양수산부가 지원한 금액만큼을 마을에서 부담해야하기 때문이다. 즉 해양수산부와 태안군의 예산지원 중 해양수산부의 몫만큼을 마을에서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그간 마을에서 축제위원회를 꾸려 7년간 축제를 진행해왔지만 자부담할 만큼의 내부기금을 축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B마을의 관광업 활성화를 위한 또 다른 주요 지원 정책은 관광객들에게 각종 수산물 및 생선회를 떠서 직접 팔 수 있는 수산물 직판장 설치다. 수산물 직판장 설치는 사고 직후부터 어촌계를 중심으로 요구했던 대표적인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이다. 현재 24칸(매장) 규모로 14칸을 B마을 어촌계에서 나머지 10칸을 옆 마을 어촌계에서 운영하고 있다. 초기 직판장이 건설 당시에만 해도 주민들의 기대가 높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근에 태안군 북부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이 있어 많은 관광객 방문을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의 기대와는 다르게 판매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현재 전세 2,800만 원, 1년 월세로는 200만원 수준으로 임대료가 높지 않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4~5칸 정도의 매장이 비어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사고이후 지역경제 활성화로 추진된 관광 관련 사업들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의 말처럼 경기침체도 영향을 주고 있지만 시설의 노후화 및 마을 내부 관광자원이 태안의 다른 지역과 대비해서 뚜렷한 비교우위를 갖고 있지 못한 것 또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숙박 시설인 펜션은 지속적인 개선과 관리가 필요한데 사고로 인해 수익이 줄어 재투자를 하지 못하면서 시설의 노후화가 심화되었다. 또한 사고이후 관광업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투자는 우수한 자연경관을 갖고 있던 지역과 위의 두 마을 사이의 관광 매력의 차이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실제로 관광객이 유입된다 하더라도 관광업이 주로 식당 및 펜션 등 사적 재산에 기초하기 때문에 주민 전체로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관광업 활성화 정책이 마을을 외부에 알리는 것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결국 A마을 주민들의 차량통행이 가능한 다리 건설 요구는 마을의 관광업 활성화 보다는 인근 유명 관광지와의 연계성을 높여 부동산 가치 상승을 기대하는 심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차분석을 통해 A마을과 B마을간 경제활동 및 소득수준의 회복정도를 비교해 해보면, A마을의 경제활동과 소득의 회복 수준이 양쪽 모두에서 다소 앞선 것으로 나타난다(<표 3> 참조). 경제활동의 회복정도에서는 14.0%p, 소득수준의 회복정도에서는 12.2%p A마을이 더 높게 나타났으며 이러한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그렇다면 B마을에 비해 어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A마을이 기름유출사고 11년 후 회복 정도가 더 높게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기름오염에 취약한 양식어업지대인 A마을의 회복 정도가 높게 나타난 것이 상식에 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마을 앞 갯벌생태계가 회복되면서, 품종변화는 있었지만 갯벌에 의존하던 양식어업이 역시 지속적으로 회복되고 있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반면에 식당, 펜션 및 민박, 판매 등 어업 이외의 종사자들의 많이 거주하는 B마을의 경제적 회복정도가 오히려 더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어업 종사자 주민과 어업 이외의 종사자 주민을 구분하여 비교분석하며 이러한 경향을 보다 분명하게 확인된다(<표 4> 참조). 경제활동과 소득수준 회복정도에서 ‘회복된 편이다’라는 응답률은 어업 종사자 주민이 어업이외 종사자 주민 보다 각각 5.8%p, 13.0%p 더 높게 나타났다. 어업 이외의 주민들은 식당 및 펜션, 수산물판매 등 관광업에 종사하거나 농업에만 종사하는 주민들이다. 지속적인 경기약화, 관광시설의 노후화, 주변 관광지와의 경쟁 등으로 인해 사고 직후 침체된 관광업(혹은 상업)이 현재에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어업 이외의 주민들의 응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즉 장기적으로 보면, 외부의 경제상황에 의존하는 관광업 및 상업 등의 경제활동보다는 내부의 자연자원에 토대를 둔 경제활동이 복원력이 높을 뿐만 아니라 안정적이며 지속가능한 어촌사회의 경제활동임을 확인할 수 있다.
3) 사회관계영역
재난은 피해자들 사이에 갈등과 협력 모두를 유발한다. 갈등은 재난에 대한 집단적 대응 및 복구과정을 더디게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피해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반면에 협력은 사고이전 수준으로 공동체를 복원시키는 주요한 사회자본이다. 따라서 재난이후 피해자들 사이의 갈등과 협력을 확인하는 작업은 재난피해의 복원수준 뿐만 아니라 집단적 대응을 위한 사회적 자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력한 척도다.
A마을은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이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이 격화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고발생 1년 후인 2009년 2월 조사 자료를 보면,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매우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응답 비율은 2009년 2월(40.0%) 2015년 4월(27.1%), 2019년 2월(26.4%)로 갈수록 더 낮게 나타났다. 반면에 갈등의 강도가 강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에 대한 응답비율이 2009년 2월(5.2%), 2015년 4월(33.3%), 2019년 2월(35.8%)로 올수록 큰 폭으로 상승했다(<표 5> 참조).
지난 11년 동안 A마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처럼 갈등이 크게 증가한 것인가? 사고초기 마을단위에서의 갈등은 재난이후 정부에 의해 지급된 생계안정 자금의 분배를 두고 벌어졌는데 상대적으로 차등분배보다 균등분배를 한 마을의 내부 갈등이 적었다(김도균, 2010). A마을은 주민들 사이의 높은 직업적 동질성(어업)으로 생계안정자금을 균등분배하고 어촌계를 공동으로 운영해 오면서 축적한 높은 사회자본 등으로 사고초기 갈등을 잘 조정했었다. 하지만 2015년 어촌계의 어업권으로 나온 피해배상금을 둘러싸고 주민간 민사소송이 발생하면서 갈등이 크게 격화되었다. 재난이후 손해 배·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법적 소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A마을에서는 주민들 간에 소송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반면에 사고초기 B마을은 A마을에 비하면 갈등의 수준이 높게 조사되었다(<표 6> 참조). 이러한 주된 이유는 높은 직업적 이질성으로 인해 생계안정자금의 차등분배가 이루어지고 직업별로 일종의 분파적 결합관계가 나타나면서 갈등이 격하게 표출되었기 때문이다(김도균, 2010).
하지만 2009년 2월 조사와 2019년 2월 조사를 비교해면,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매우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응답이 29.9%p 늘어난 반면에 ‘갈등이 있다’(매우 심각한 수준이다+심각한 수준이다)는 응답은 25.9%p 크게 줄었다. 마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주민은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이 자연스럽게 해소된 측면이 있음을 강조했는데, 이는 다르게 표현하면 지난 11년간 갈등을 유발할 만한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2019년 2월 조사 자료를 교차 분석해 보면, 주민협력에 있어 B마을(54.0%)이 A마을(26.4%)보다 협력수준이 27.6%p 더 높았으며, 갈등수준은 A마을(60.4%)이 B마을(23.1%) 보다 37.3%p 더 높은 것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표 7> 참조).
이러한 갈등의 양상은 이웃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을 확인하는 문항에서도 재확인되었다(<표 8> 참조). ‘기름유출사고이후 자신만을 생각하는 편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 비율이 A마을(94.0%)이 B마을(65.1%)보다 28.9%p 높았다. 또한 ‘마을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신경이 쓰이거나 조심스러운가’라는 질문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A마을(73.6%)이 B마을(54.3%) 보다 19.3%p 더 높게 응답하였다. 이러한 심리적 거리감은 뚜렷한 갈등으로 표면화되지 않을 지라도 이웃간 일상적 교류를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지난 11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A마을의 갈등은 이렇게 격화된 것일까? 이는 어촌계의 어업권 피해배상금을 둘러싸고 벌어진 주민 간 민사소송이 갈등의 핵심 원인이다. 즉 굴 양식장으로 이용하던 ‘공동어장’에 대한 피해배상금 분배가 마을 내 갈등을 심화시켰다. 사적 재산에 기반을 둔 어선어업 및 관광업 관련 피해보상인 아닌 공동체적 총유(總有)에 기반을 둔 어촌계의 공동어장(혹은 어촌계 어업권)에 대한 피해보상금 분배를 둘러싸고 벌어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총유라는 소유형태는 어느 집단이 소유대상물(토지·어장)을 집단적으로 점취(占取)·관리하여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균등하게 이용하지만, 개별구성원의 지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은 그 이용권을 양도하거나 처분할 수 없으며 성원의 자격을 상실하면 이용권이 집단으로 귀속된다(박광순, 1998, 93쪽). 즉 총유에 기반을 둔 어촌계의 공동어장은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으며 매매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양한 변질형태가 존재하며 이러한 관행들이 어촌주민(마을)의 생산 및 소유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박광순, 1998, 102쪽; 김준, 2004, 53쪽; 김도균, 2011, 31쪽).
사고이전, A마을은 굴 양식지대로 주로 시설 설치가 필요한 ‘지주식’과 ‘부유식’으로 굴 양식을 했다. 지주식은 공동어장(갯벌)에 지주목을 박고, 패각에 포자를 붙여 양식하는 방법이라면 부유식은 스티로폼을 부표로 이용하여 양식한다(충남대학교 마을연구단, 2006, 66쪽). 즉 이러한 굴 양식방법은 고정된 장소에 자본과 노동을 투자한 시설 설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설 설치와 관리, 채취가 모두 개별 가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A마을에서는 총유어장이 일정 면적을 개별(어촌계회원)적으로 분할하는 ‘공동어장지분화’(公同漁場 持分化)라는 개별점유(또는 사적점유)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6) 물론 공동어장을 분할 할 때 호당 균일한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공동체적 평등원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형식적 평등일 뿐 실제로는 개별 가구가 동원할 수 있는 자본과 노동력이 부족할 경우 타인에게 시설 및 권리금을 받고 유사 매매를 할 수 있다(김준, 2004, 53쪽; 김도균, 2011, 31쪽). 따라서 계층분화가 발생하고 공동체적 규제 또한 약화된다. 특히 이러한 변질형태는 A마을처럼 시설을 이용한 굴 양식지대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기름유출사고로 인한 피해배상금은 개별가구의 굴 양식장 규모에 따라 개별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피해배상금은 어촌계의 공동어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한 쪽에서는 개인의 피해 정도에 따라 사정재판의 결과대로 개인에게 나온 배상금을 가져가는 것이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한편,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공동어장(어촌계의 공동어업권)으로 나온 것이니 어촌계원 모두가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날카롭게 대립하였다(김도균, 2015). 그리고 이러한 대립은 어장 규모와 연령에 따라 분파적 나타났다. 즉 사고 이전 상대적으로 어장규모가 컸던 젊은 연령층 주민들은 피해규모를 내세워 사정금액대로 분배할 것을 주장한 반면에 어장규모가 작고 노동능력이 약한 노년층에서는 공동분배를 주장했다.
주민들 사이에 이를 중재하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해결하지 못했으며 어촌계로 일괄 지급된 피해배상금 40억 원을 두고 주민간 민사소송으로 까지 확장되었다.7) 원고 측은 ‘배상금 채권의 귀속자는 사고 당시 기름의 유입으로 인해 양식하던 굴 및 시설물 등의 손해를 입은 각 양식장 행사자, 즉 ’개인’임을 들어, 어촌계(피고)에 피해배상금을 각자에게 배분해 줄 것으로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반면에 피고 측인 어촌계는 ‘배상금의 법적 성격이 어촌계에서 허가·관리하고 있는 어업권에 대한 배상금’임을 주장했다. 즉 배상금의 채권은 어촌계의 총유물에 해당하기 때문에 분배방식의 결정 또한 어촌계에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촌계는 피해배상금의 50%는 각 양식장 행사자인 개인들에게 피해비율에 따라 지급하고, 나머지 50%는 어촌계원 98명에게 균등하게 배분할 것을 제안했다.
민사 소송이 발생한 이면에는 실질적인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과 함께 어촌계의 공동어장을 ‘총유’ 개념으로 인식하는 주민과 현실적으로 ‘사적점유’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주민들 간의 가치 충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혹은 그간 잊고 있었던 총유개념을 피해배상금 분배를 앞에 두고 호명된 것일 수 도 있다. 여하튼 이러한 가치 충돌은 어장의 시설과 관리, 개발생산, 개발판매가 이루어지는 경작적 성격이 강한 굴 양식으로 마을의 공동어장을 이용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즉 오히려 현재처럼 공동생산과 공동노동 형태의 바지락 양식을 중심으로 했다면, 총유의 본질적 형태가 강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A마을의 갈등은 양식어업의 특성과 그에 따른 공동어장의 운영방식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관할법원(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은 배상금의 법적 성격이 각 양식장 행사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금이므로 어촌계는 사정재판 결과에 따라 개인에 지급할 것을 판결하였다(2016년 3월 24일). 즉 원고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재는 분배가 다 이루어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어촌계 입장을 옹호했던 주민들의 불만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마을의 한 주민의 구술에 따르면, 판결을 불만을 보인 노인들 중에서는 가까운 마을경로당이 아니라 주민들을 피해 태안읍 경로당을 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B마을은 어촌계 공동어장의 경제적 가치가 낮을 뿐만 아니라 해삼 및 전복 채취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A마을처럼 변질된 형태의 사적(개별) 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어선어업 및 관광업에 대한 배상은 사적 피해에 기초하여 사정하고 그에 따라 개인에게 배상금이 직접 지불되었기 때문에 갈등의 소지 자체가 낮다. 즉 B마을은 새로운 갈등의 사안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갈등이 완화된 측면이 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마을축제라는 공동사업을 통해 주민협력이 증진된 측면 또한 있다. 축제를 거듭할수록 마을 내부에서 축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도 있었지만 마을축제가 지난 7년간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마을주민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주민은 초기에는 주민들의 협조가 잘 이루어졌다고 구술하였다. 마을주민들이 축제 후원금도 내고 어업과 직접 관계없는 농사짓는 주민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필요한 자원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7년간 지속되어 온 축제가 2019년에는 무산되었다. 정부지원이 끊기면서 축제에 필요한 비용을 마을에서 부담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그간 진행된 축제가 그 만큼 내실 있게 운영되지 못한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축제는 B마을주민을 하나로 묶고 짧은 기간이지만 마을의 활력을 불어넣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4) 주민건강영역
건강문제는 어촌주민들의 경제적·사회적 활동을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현금지출을 증가시켜 가계경제를 위축 시키는 주요한 요인이다. 이번 기름유출사고의 장기적 건강영향을 조사하고 있는 태안환경보건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피해지역의 남성 전립선암 발병률이 사고이전과 비교해서 사고이후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같은 기간 여성의 백혈병 발생률도 2배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경제적 피해가 많은 어업 종사 주민들의 정신적 불안과 우울 증세 등에 있어 여전히 회복이 더딘 것으로 조사되었다.8) 현재 수준에서 암 발생율과 기름유출사고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확정짓기 어렵지만 개연성은 충분히 의심된다.
두 마을을 조사하면서 신체적 건강악화에 대한 주민들의 호소를 빈번하게 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름유출사고의 피해를 이야기 하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심리적 반응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주민들은 방제작업에 참여하면서, 특별한 안전장비 없이 장시간 독성물질에 노출되었으며, 이후 지속된 경제적 피해와 법적 소송, 주민갈등 등이 강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했을 것으로 합리적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현재의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 ‘건강하지 못해 걱정스럽다’에 대한 긍정응답이 A마을(51.9%)과 B마을(51.4%) 모두에서 50%이상의 높은 수준을 보였으며, ‘대체로 건강한 편이다’는 긍정응답은 A마을(23.1%)과 B마을(21.4%), 모두 20%정도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하지만 현재의 건강상태에서 있어 마을간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반면에 ‘기름유출사고가 현재의 귀하의 건강상태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에 대한 마을간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나타냈다.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에 대한 응답은 A마을(48.1%)이 B마을(20.9%)보다 27.2%p 더 높았으며,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에 대한 응답은 B마을(37.3%)이 A마을(23.1%)보다 14.2%p 더 높았다. 즉 A마을 주민들이 B마을 주민들보다 기름유출사고와 현재 건강사이의 영향관계에 대해 더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이러한 이유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B마을보다 극적인 A마을의 경제적 피해와 민사소송으로 까지 확장된 주민갈등이 주민들의 건강에 대한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는 기름유출사고의 다양한 사회적 피해에 더 장기간 노출된 주민들이 건강과 기름유출사고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더 높은 주관적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4. 종합 및 결론
본 연구는 기름유출사고 발생 11년이 지난 시점에서 피해주민들의 삶은 복원되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서로 다른 생태환경과 사회경제구조를 지닌 두 마을을 종단적·횡단적으로 비교해봤다. 연구결과, 주민들의 삶은 회복된 것이 아닌 환경오염의 사회경제적 피해가 아직 진행 중이며 주민들은 그 피해에 적응 중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사고 발생 11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염공동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연구는 사고피해의 사회영향 및 복원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즉 오염공동체의 복원력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를 사회자본, 경제자본, 인적자본으로 봤을 때 이들의 영향력과 한계를 살펴봤다.
첫째,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신뢰, 협력, 연대 등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사회자본의 경우에 사고이전 A마을은 B마을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자본을 형성하고 있었다(김도균, 2010). 이러한 이유는 A마을은 주민 다수가 마을어장을 중심으로 한 양식어업에 종사하는 동일한 생업구조 안에 있었고 또한 이를 협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어촌계의 리더십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름사고 이후에 기존의 높은 사회자본을 바탕으로 오염원 제거 및 균등한 생계안정자금 분배 등을 통해서 빠른 회복력을 보였다. 하지만 2015년 공유자원인 어촌계의 어업권으로 나온 피해배상금 분배문제가 주민간 민사소송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주민갈등이 증폭되었다. 즉 장기적으로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에서는 사회자본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큰 경제적 자원을 둘러싼 조정자로서의 사회자본의 역할이 한계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A마을의 이러한 현상과는 다르게 B마을의 경우에는 사고이후 심각한 갈등상황 없이 주민관계가 복원되어 갔다. B마을의 피해배상은 개인의 사적 재산이 기초한 어선어업과 관광업 중심이었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A마을처럼 공유자원에 대한 피해배상금을 둘러싼 격렬한 갈등이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주민관계가 회복된 측면이 있다. 여기에 사고 이후에 주민들은 관광업 활성화를 위해 해삼축제를 협력적으로 7년여 동안 추진해왔고, 수산물 직판장을 설치해서 마을의 활력을 도모했다. A마을과 같은 주민간 법적 갈등 없이 공동사업을 통해서 주민협력을 축적시켜왔다.
둘째, 경제자본은 사고이전 어선어업과 관광업의 규모가 큰 B마을이 A마을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편이었다. A마을 또한 굴양식어업을 통해서 안정적인 경제자본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름유출사고 이후 두 마을 모두 경제자본이 위축되었다. 특히 A마을의 경우에는 지난 11년 동안 어선 수가 1/3수준으로 축소되고, 마을 앞 갯벌을 이용한 굴양식어업은 경제성이 낮은 바지락양식어업으로 생업활동이 전환된다.
B마을은 5톤 이상의 어선어업과 관광업이 주된 생업활동으로 사고이후에도 먼 거리 조업활동을 할 수 있는 어선어업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관광업의 경우에는 사고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이유는 관광업의 특성상 외부의 경제적 상황에 의존해야 하고, 다른 관광지와 경쟁해야 하는 조건에 있다. 또한 펜션 및 민박 등 시설의 노후화는 관광의 매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지속적인 자본투자가 요구된다. 하지만 사고이후 B마을의 관광업은 경제자본의 축소로 시설에 재투자할 수 없었고 이는 곧 관광업의 위축으로 악순환 됐다.
셋째, 인적자본은 개인이 보유한 경험과 능력으로 재난피해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다. 하지만 A마을과 B마을 모두 주민의 고령화와 건강문제가 발생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령화는 사고피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력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피해대응에 대한 체념과 무력감을 보인다. 건강문제 역시 인적자본을 약화시켰다. 사고 이후 다수의 주민들은 모두 신체적 건강악화를 경험했고 심리적으로 불안과 우울증세 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주민들의 사회적 활동을 축소시키고 병원비 등으로 가계경제에 부담을 준다. 즉 사고이후의 계속되는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은 사고이전의 일상으로의 회복을 더디게 하고 마을의 활력과 변화를 도모하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 요인이다.
이처럼 환경오염의 사회영향과 복구과정은 오염에 처한 공동체의 내외부적 조건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를 오염공동체의 취약성과 복원력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사회자본은 주민들의 집단적 대응과 협력을 통해서 복원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자본은 생계의 안정적인 물적토대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연구결과 알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경제자본은 개인과 집단, 공동체가 오염피해를 흡수하고 직접적으로 재난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다는 측면에서 복원력의 핵심 요인이다. 따라서 경제자본의 위축과 축소는 재난피해의 장기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구성원들의 인적자본인 건강 및 고령화의 문제는 대응력과 변화를 도모할 수 없게 하는 주된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재난에 대한 복원력은 교란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시스템의 역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학습과 적응을 통해 재난이전의 상태보다 사회생태시스템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피드백 과정까지를 포함한다. 다시 말하면 복원력은 재난이후 학습을 통해서 재난에 강한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11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피해공동체는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8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8S1A5A8028481).
References
- 김교헌·권선중 (2008).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가 태안주민들의 심리적 건강에 미친 영향. <환경사회학연구>, 12(1), 81-107.
- 김교헌·김세진·권선중 (2009). 태안 주민들의 재난 후 스트레스 반응: 사고 후 2개월과 8개월 시점의 지역별 비교를 중심으로. <환경사회학연구>, 13(1), 89-125.
- 김도균 (2010). 환경재난에 의한 어촌마을의 주민갈등과 사회자본: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를 중심으로. <환경사회학연구>, 14(1), 125-165.
- 김도균 (2011). 환경재난과 지역사회의 변화: 허베이스피리호 기름유출사고의 사회재난. 한울아카데미.
- 김도균 (2012). 기름유출사고가 해녀공동체 미친 사회영향: 태안 구포리 해녀공동체를 중심으로. <도서문화>, 30, 191-230.
- 김도균 (2015). 환경재난의 장기적 사회영향: 허베이스피리호 기름유출사고 이후 7년의 시점에서 본 어촌마을. <환경사회학연구>, 19(1), 97-130.
- 김도균·박재묵 (2012). 허베이스프리트호 기름유출사고 이후 재난관리 거버넌스 구축 실패와 재난복원력의 약화: 관련 행위자들 간의 이해와 대응을 중심으로. <환경사회학연구>, 16(1), 7-43.
- 김도균·이정림 (2008).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에 의한 섬 주민들의 삶의 변화: 태안군 가의도를 중심으로. <환경사회학연구>, 12(2), 119-152.
- 김준 (2004). <어촌사회의 변동과 해양생태>. 민속원.
- 노진철 (2008).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의 초기대응과 재난관리의 한계. <환경사회학연구>, 12(1), 43-82.
- 노진철 (2009). 고도 불확실성의 재난상황에서 삶의 질 저하에 대한 인지와 소통: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를 중심으로. <환경사회학연구>, 13(1), 49-87.
- 노진철 (2010). 대규모 해양재난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불확실성. <환경사회학연구>, 14(1), 99-124.
- 류현숙·정재기·정지범 (2009). 복원력과 사회자본. 정지범·이재열(편), <재난에 강한 사회시스템 구축: 복원력과 사회자본> 파주: 법문사.
- 박광순 (1998). <바다와 어촌의 사회경제론: 한·일 비교분석>. 전남대학교 출판부.
- 박순열·홍덕화 (2010).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로 인한 태안지역의 사회경제적 변동: 사회적 재난의 파편화와 사사화. <공간과 사회>, 34, 142-180.
- 박재묵 (2008). 환경재난으로부터 사회재난으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에 대한 사회적 대응 분석. <환경사회학연구>, 12(1), 7-42.
- 브라이언 워커와 데이비드 솔트(Brian Walker and David Salt), <리질리언스 사고>. 고려대학교 오정에코리질리언스연구원. 지옥북.
- 유보경 (2015). 환경재난과 어촌공동체의 지속성: 태안군 소원면 의항 2리를 중심으로. <농촌사회>, 25(1), 171-212.
- 이시재 (2008).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의 사회영향연구. <환경사회학연구>, 12(1), 110-144.
- 이시재 (2009).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의 생태적, 경제적, 사회적 영향 연구. <환경사회학연구>, 13(1), 127-170.
- 이재열·윤순진 (2008).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의 사회·경제적 영향연구: 태안군 석포리 사례연구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환경대학원.
- 이재열·정지범 (2009). 종합위기연구에서 사회학적 접근의 의의: 복원력과 사회적 자본. 정지범·이재열 편. <재난에 강한 사회시스템 구축>. 법문사.
- 이정림·김도균 (2011).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에 의한 피해주민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취약성 변수: 사고 후 2008년 9월과 2010년 10월 시점의 패널자료 분석. <환경사회학연구>, 15(1), 53-84.
- 충남대학교 마을연구단 (2006). <태안 개미목마을: 어촌생활의 파노마라>. 대원사.
- 키스 스미스(Keith Smith) (2015). <환경재해: 위기평가와 재난저감>. 이승호·장동호·조창현·허인혜 옮김. 푸른길.
- 홍덕화·구도완 (2009).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로 인한 사회갈등: 갈등의 제도화와 공동체의 해체. <환경사회학연구>, 13(1), 7-47.
- Bruhn, John (2004). The Sociology of Community Connections. Spring
- Couch, Stephen R. (1996). Environmental contamination, community Transformation and the Centra mine fire. James K. Mitchell(eds). The Long Load to Recovery: Community respones to disaster. United Nations University Press.
- Edelstein, M. R. (1988). Contaminated Communities: The Social and Psychological Impact of Residental Toxic Exposure. Westview Press.
- Freudenburg, W. R. (1997). Contamination, corrosion and the cocial order: An overview. Current Sociology, 45, 19-40. [https://doi.org/10.1177/001139297045003002]
- Marshall, Brent K., Picou, J. Steven, & Gill, Duane A. (2004). Terrprism as Disaster: selected commonalities and long-term recovery for 9/11 survivors. Research in Social Problems and Public Policy, 11, 73-96. [https://doi.org/10.1016/S0196-1152(03)11006-X]
- Mayunga, Joseph (2007). Understanding and Applying the Concept of Community DisasterResilience: A capital-based approach, 1-16, the summer academy for social vulnerability and resilience building, 22-28 July 2007, Munich, Germany.
- Palinkes et al., 1993.
- Picou, J, Steven (2008). Disaster Recovery as Translational Applied Sociology: Transforming Chronic Community Distress. Humboldt Journal of Social Relations, 32(1), 12-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