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을 통한 자아실현 경험
초록
본 연구에서는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을 통한 자아실현 경험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질적 연구를 수행했다. 선정 기준에 부합하는 4명의 연구참여자를 확보해 2026년 1월부터 2월까지 각각 총 3회에 걸친 일대일 심층면담을 실시하였다. 수집한 현장 텍스트는 Clandinin과 Connelly(2000)가 제안한 내러티브 탐구 방법을 바탕으로 깊이 있게 분석했다. 자료 해석 시에는 내러티브 탐구의 핵심인 시간성, 사회성, 장소성의 세 차원을 분석틀로 활용하였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각 연구참여자의 내러티브에서는 이주 초기의 낯섦과 고립 속에서도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아실현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 나아가, 연구참여자들의 내러티브를 모두 관통하며 전체 경험을 가로지르는 세 가지 공통주제를 찾아냈다. 이는 ‘일상과 돌봄 부담 속에서 발견한 성장의 시간’, ‘낯선 땅을 일궈 나가는 타향인의 손길’, ‘수혜자가 아닌 기여자로서의 연대’였다.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 참여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자아실현을 촉진하기 위한 실천 및 정책 차원의 제언을 하였다.
Abstract
A qualitative approach was used to acquire an in-depth understanding of the meaning of self-actualization experiences that Chinese marriage migrant women in South Korea gained through volunteer activities. Four participants who met the selection criteria were recruited, and each participated in three rounds of one-on-one in-depth interviews conducted from January to February 2026. The collected data were analyzed using the narrative inquiry method of Clandinin and Connelly (2000). The three dimensions central to narrative inquiry - temporality, sociality, and place - served as the analytical framework to interpret the data. Despite the unfamiliarity and isolation experienced in the early stages of migration, participants discovered meaning in their lives and achieved self-actualization in their own ways through volunteer activities. Three overarching themes that cut across all participants’ narratives were also identified. These were ‘A Time of Growth Discovered amid Everyday Life and Caregiving Burdens,’ ‘The Hands of Sojourners Cultivating an Unfamiliar Land,’ and ‘Solidarity as Contributors Rather Than as Recipients.’ Based on these findings, practical and policy implications are presented to promote participation in volunteer activities and facilitate self-actualization among Chinese marriage migrant women in South Korea.
Keywords:
Chinese marriage migrant women, Volunteer activities, Self-actualization, Narrative inquiry키워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 자원봉사활동, 자아실현, 내러티브 탐구1. 서 론
우리의 삶은 단순히 생존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고차원적인 욕구를 지닌 존재로, 자아실현의 추구는 문화와 지역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열망이다(Maslow, 1954). 즉, 자아실현은 단순히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으며, 자신이 속한 사회적 맥락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역할을 수행하며 의미 있는 존재로 인정받는 과정을 포함한다(Paradisi, Matera, & Nerini, 2024; Ryff, 2023). 이러한 점에서 자아실현은 개인의 내면적 성장인 동시에, 사회적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실현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낯선 사회문화 환경에 놓여 이방인으로 새로운 맥락에 적응해야만 하는 결혼이주여성에게 자아실현이란 더욱 절실하고 복합적인 도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전혜경, 2022; Kim & Yu, 2022). 이주라는 것이 단순한 거주지 이동을 넘어 기존의 사회적 관계, 직업적 정체성, 그리고 자아 인식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인생 전환의 대사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Erlinghagen, 2021).
한국의 다문화사회 진입은 이미 심화 궤도에 올랐으며, 통계 수치로도 이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법무부 보고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결혼이민자의 수는 총 181,436명에 달한다. 그중 여성은 145,731명으로 절반을 훨씬 상회한다. 특히 중국 출신 결혼이민자는 전체의 33.4%를 차지해 높은 비율을 보인다(법무부, 2025). 하지만, 이들이 한국사회에 무탈하게 안착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 결혼이주여성들은 이주 초기 언어와 문화적 낯섦으로 인해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고립감을 느끼고(정혜원, 2020; Berry, 2021), 취업 제한과 경제적 의존으로 인한 무력감도 경험한다(애리덴, 안정신, 2021; Lu & Yeung, 2024). 더욱이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은 심리적 위축과 정체성 혼란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임명희, 서재복, 2019; 조숙정, 류은영, 2022; Chang, 2018; Kim & Yu, 2022).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결혼이주여성을 왜곡된 관점에서 부적응하는 존재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들 역시도 전인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발달하며, 자신이 지닌 존재 가치와 사회적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는 심리적 변화를 경험하기 때문이다(김서현, 두지가, 2025; 김유진, 유전양, 2018; 오혜정, 김율하, 2024). 이처럼 중국인 결혼이주여성들은 한국이라는 곳에서 발달과업 수행에 요구되는 여러 어려움을 마주하게 되며, 그 속에서 도전과 성숙, 정체성 확립의 계기인 일상의 맥락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국내외 선행연구에서도 유사한 점이 반복해서 보고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여러 연구에서는 사회참여를 통해 주체성을 회복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는 중국인 결혼이주여성 사례가 재차 확인되었다(임명희, 서재복, 2019; 진소연, 정명희, 2022; Martinez-Damia, Marzana, Paloma, & Marta, 2023). 이에 따르면,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에게 자아실현은 개인 내적 성장일 뿐만 아니라, 이주라는 생애 전환기를 거치며 무너진 자아를 재건하고 앞으로의 삶을 건강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동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김서현, 두지가, 2025; Erlinghagen, 2021; Li, Dou, & Liang, 2021).
그와 같은 점을 토대로, 이 연구에서는 자원봉사활동에 특별히 주목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자원봉사활동은 타인을 위한 이타적 실천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통해 관계 형성하고 학습하는 장에 해당한다. 자원봉사 참여는 개인의 자아존중감 증진과 정체성 확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강대선, 권혁창, 2019; 조지용 외, 2021),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자기 가치를 발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까닭에서다(주정아, 2021; Martinez-Damia et al., 2023). 그에 대해, 학자들은 결혼이주여성도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주체성을 자각하고 심리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김민정, 2017; 김은재, 2018). 나아가 결혼이주여성에게 자원봉사활동은 낯선 이주국에서 사회적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조건일 뿐 아니라, 도움을 받는 수혜자의 위치를 넘어서 기여자로서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고도 알려졌다(김은재, 2018; Ruiz & Ravitch, 2023). 또한, 자원봉사활동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을 형성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중요한 기반일 수 있다(김은영, 박수정, 2022). 실제로 학자들은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심리적·물리적 활동 반경이 확대되는 전환기를 경험한다고 보고하기도 했다(김유진, 유전양, 2018; 이윤정, 김영순, 2023).
전술한 바에 바탕을 두어, 자원봉사활동은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지역사회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됨을 알 수 있다(김은영, 박수정, 2022; 이윤정, 김영순, 2023; Sveen, Anthun, Batt-Rawden, & Tingvold, 2023). 그러나 기존 연구에서는 대체로 결혼이주여성을 주로 한국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존재나 지원이 필요한 수혜자의 위치에서 조망한 경향이 많았다. 다시 말해, 자원봉사활동이 사회적응을 가속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계속해서 보고되었으되(김유진, 유전양, 2018; 애리덴, 안정신, 2021; 정혜원, 2020; Lee, Kim, Jung-Choi, & Kong, 2022; Ruiz & Ravitch, 2023), 지금으로서는 전인적 발달 관점에서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을 둘러싼 총체성에 다가간 연구를 찾기는 어렵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생활하는 중국 출신 결혼이주여성은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사회에 유입되어 비교적 오랫동안 정착 경험을 축적한 이들에 해당한다(정기선, 2008). 이들은 한중 이중언어 능력과 중국 출신 결혼이주여성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으며, 오랜 생활 속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누적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이들을 단순히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대상으로만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여러 연구자는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어려운 환경에 놓이더라도 사회적 관계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경제활동과 자기 계발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보고했다(김윤경, 이부미, 2019). 실제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이중언어 능력과 문화적 매개 경험은 개인의 적응 자원을 넘어선다. 예컨대, 이들은 통번역, 다문화 교육, 생활 지원 등 지역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중요한 사회적 자원을 보유한 구성원이기도 하다(노병호, 이은하, 이동훈, 초심념, 2025; 오혜정, 김율하, 2024). 그러므로, 그 같은 역량을 발휘하는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은 단순히 적응 수단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언어, 문화 자원과 교육 직업 경험, 돌봄과 생활 경험을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뜻깊은 실천의 장일 수 있다. 여러 선행연구를 참고하여, 자원봉사활동에서 이들은 자아실현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가며 삶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 나간다고 사료된다(김은재, 2018; 이윤정, 김영순, 2023; 주정아, 2021).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을 단순한 지원의 대상이 아닌 삶의 주체로 인식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자원봉사활동을 사회적응의 수단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과정 자체로 조명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자원봉사활동의 당사자 관점에서 질적으로 탐색한다는 점에서 선행 연구와 큰 차별성을 지닌다. 이러한 연구의 필요성을 확인하여, 본 연구는 Clandinin과 Connelly(2000)의 내러티브 탐구를 방법으로 채택하여 연구참여자들의 실제 삶의 공간에서 연구주제를 논하려 한다. 내러티브 탐구는 개인의 경험을 시간성, 사회성, 장소의 3차원 공간 속에서 이해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총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복지 실천과 다문화 정책 분야의 지식 확장에 기여할 수 있다(김향화, 남지은, 2024; 도교동, 이윤주, 2023). 그와 더불어, 본 연구는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자원봉사활동을 통한 자아실현 경험을 드러내고, 이들을 위한 실질적 사회참여 지원과 사회복지 개입을 활성화한다는 데에서 그 학술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본고의 연구질문은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을 통한 자아실현 경험의 의미를 내러티브 탐구의 3차원에 기반을 두어 해석한다면 어떠한 의미를 밝힐 수 있겠는가?’이다.
2. 문헌 고찰
1)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아실현
자아실현은 자신의 잠재력을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역동적인 과정이다(Compton, 2024).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에게도 자아실현은 단선적이거나 일시적인 심리 및 사회적 욕구 충족을 넘어 사회적 관계 형성과 참여를 통해 점진적으로 실현되는 생애적 과제에 해당한다. 이 과정은 자기 성찰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경험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단순한 개인적 성취에 그치지 않고 전체 삶의 의미를 구성하고 심리적 안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Li et al., 2021; Ryff, 2023). 특히 중년기에 이른 여성은 감정의 변화 속에서 발견과 통찰, 발전을 반복하며 과제를 해결하는 역동적 과정으로 자아실현을 경험하게 된다(김윤정, 한상길, 2018). 우리의 삶은 유한하며, 인생 후반부에 이르러 인간은 그간의 살아온 날 속에서 쌓은 경험을 유의미하게 해석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그간의 경험을 특별한 소명의 울림으로 재해석하게 되기 때문이다(Levinson, 1986; Li et al., 2021; Ryff, 2023).
이를 학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발달 중에서 자아실현의 개념을 논한 이론가들의 설명을 참고하는 것이 유용하다. 대표적으로 Maslow(1954)의 이론을 들 수 있다. 그는 인간 동기가 계층적인 구조를 띤다고 설명하면서,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 존중 욕구가 차례로 충족되어야 자아실현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Gopinath, 2020). 인본주의자였던 Rogers(1995)도 자아실현을 고정된 목표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 과정으로 이해했다. 인간은 자아실현의 목표가 있을 때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일상의 경험을 감사함과 깨달음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영향을 받은 여타 학자들 역시 자아실현을 완성을 향해가는 인간발달의 결정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Deci와 Ryan(1985)은 자기결정이론을 통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의 충족이 개인 내적 성장과 심리적 안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까지도, 학자들은 개인의 성장과 자기 이해가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 참여, 실천 경험을 통해 더욱 깊어질 수 있음을 공통되게 지적했다(Martinez-Damia et al., 2023; Sveen et al., 2023). 상술한 여러 학자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자아실현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되나, 사회적 맥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체화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한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이주민 특유의 상실감과 혼란을 경험한다(김서현, 두지가, 2025; 서원경, 차용진, 2025). 선행연구에서는 대체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언어소통의 어려움, 문화적 이질감, 양육과 가사 노동 부담, 제한적인 취업 기회, 사회적 지지 부족 등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한다고 보고했다(애리덴, 안정신, 2021; 정혜원, 2020). 여성이라는 성별 이데올로기 때문에 남성 이주민과는 다른 역할 기대와 사회적 압박을 경험한다고도 알려졌는데, 가정 내에서는 아내, 어머니, 며느리로서 다중 역할을 수행한다거나 전통적인 가족 역할을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 아래 이행해야 하는 부담감이 상당하다고 파악된다(Lee et al., 2022). 가정 밖에서는 외국인이라는 사회적 위치와 편견, 차별, 좁은 사회적 관계망으로 인해 고립 및 배제의 경험을 자주 겪는다고도 보고되었다(임명희, 서재복, 2019).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은 정체성, 귀속감 및 자기 가치감 측면에서 지속적인 긴장과 갈등을 야기한다(Mendez & Deeb-Sossa, 2020). 다만, 중국인 결혼이주여성 역시도 장소나 관계, 혹은 소속감과 사회적 역할 속에서 긍정적 경험을 누적하게 되고(김서현, 두지가, 2025), 가족 이외의 친구나 이웃 등과 사회적으로 연결되며 본국에서와는 다른 네트워크 확장과 전인적 성숙을 할 수도 있다(Jung, Kwon, & Sohn, 2024). 이러한 여러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아실현은 개인 내부의 의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인정하는 관계와의 울림, 사회적 연결과 역할 확대, 다양한 참여의 기회를 통한 삶의 활력 경험 등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차원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자아실현이란 이렇듯 생애주기의 전환마다 내면의 성찰과 정체성 재구성을 이루며 도달하게 되는 단계의 발달과업이라고 설명된다. 그 같은 점을 구체적으로 피력한 Levinson(1986)의 성인기 발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발달단계마다 자아실현을 향해 부여받은 차별적 과업을 달성하며 총체성을 도모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중 중년기 전후로 자녀 양육이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시기 안팎에 도달하면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 심도 있게 성찰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Mehta와 Arnett(2023)이 제시한 ‘확립된 성인기(established adulthood)’ 개념과도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다. 즉, 중년기에 들어 인간은 단순한 생존 단계를 넘어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하는 심화된 과정을 본격적으로 이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내적 성장의 욕구를 현실에서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가부장적 가족 구조와 이주민에 대한 제도적 불평등은 이들의 사회적 자율성을 제한하며(박지인, 2021; Lu & Yeung, 2024), 가정폭력 경험은 심리적 안정에 큰 위협으로 작용하기도 한다(조숙정, 류은영, 2022; Jo, 2020). 따라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아실현 역시도 단순히 개인의 의지로만 달성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된다. 즉,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전생애적 발달 중에 자아실현을 해내려면 가족 구조, 제도,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지속적인 이타심의 발현과 자기반성, 전체론적 목표 달성 등의 행위를 지속해야 한다고 사료된다.
다만, 통상의 인간발달 이론적 설명으로 볼 때, 자아실현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대개는 심리적 위축이 심화된다거나 삶의 질 전반이 부정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 예컨대, 결혼이주여성의 경우에는 본국을 떠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감당하지 못함으로써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사회통합은커녕 정체감 자체를 유실하거나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Kim & Yu, 2022; Li et al., 2021). 그럼에도, 중국인 결혼이주여성들은 다양한 사회참여 경험을 통해 점차 주체성을 회복하고 자신만의 사회적 가치를 발견해 나가고 있다(김유진, 유전양, 2018; 임명희, 서재복, 2019; 진소연, 정명희, 2022). 이는 자아실현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수동적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주여성이 사회적 관계 형성과 실천을 통해 자기의지로서 능동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과정임을 뜻한다. 나아가, 자아실현은 개인의 내적 각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관계망과 참여 기회라는 외적 조건과의 상호작용으로 가능한 차원의 것임이 확인된다(Martinez-Damia et al., 2023).
2) 결혼이주여성의 한국에서의 자원봉사활동 참여와 자아실현
자원봉사활동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이타적인 행위이며, 동시에 자원봉사자 개인에게도 심리적·사회적 성장의 중요한 기회이다. 즉, 그에 관여하는 사회 구성원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자기 효능감과 내적 통제감을 강화하며,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강대선, 권혁창, 2019; 조지용 외, 2021). 선행연구에 따르면,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삶의 질이 향상되며 일상생활 전반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고 밝혀졌다(이상욱, 이정화, 2023; 이유진, 황선환, 2021; Nichol, Wilson, Rodrigues, & Haighton, 2024). 더 나아가, 장기적인 자원봉사활동은 단순한 보람의 차원을 넘어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확장되는데, 이는 자원봉사활동이 단순한 이타적 행동 이상의 자아실현을 촉진하는 핵심 통로임을 보여준다(주정아, 2021). 즉, 자원봉사활동은 삶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발달의 궁극적 목표와도 맞닿아 있는 행위라는 것이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초기 적응기에서 겪는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무력감을 스스로 극복하며, 지역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 가정 내에서는 인정받는 아내와 어머니로서 자존감을 회복하게 된다(김민정, 2017). 이러한 자원봉사활동 참여는 결혼이주여성이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 공적 영역에 진입할 수 있는 실질적 계기이자 삶의 전환점으로 기능함을 뒷받침한다(김은재, 2018; Ruiz & Ravitch, 2023). 더불어, 현대사회에서 자원봉사활동은 개인의 가치 형성과 역량 강화를 촉진하는 진지한 여가(serious leisure)로 평가되며, 삶의 질 향상과 공동체 의식 증진을 돕는 자기계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김은영, 박수정, 2022). 즉, 자원봉사활동 참여는 결혼이주여성 차원에서는 스스로를 단순한 다문화 정책 수혜자를 넘어서, 지역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주체로서 정체화하는 기회로 연결된다(Martinez-Damia et al., 2023; Ruiz & Ravitch, 2023).
한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은 자아와 타인, 나아가 사회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로도 유의미하다. 즉, 이들의 활동이 개인이나 가족의 경계 너머로 심리적·사회적 활동 반경을 확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김유진, 유전양, 2018; 김은재, 2018). 이 과정에서 결혼이주여성은 언어적 한계와 무력감을 극복하고 새롭게 발견한 자아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는 동시에, 한국사회 내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적 사회 구성원으로 자기 자신을 위치시키게 된다(김민정, 2017; 이윤정, 김영순, 2023). 더욱이, 지역사회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은 생존을 위한 고투(苦鬪)에서 시작해 숨통 트여가기, 시민으로서의 주체적 역량 회복하기,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기, 상생과 나눔을 실천하기 등 인생을 풍부하고 온전하게 살아가는 총체적 과정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김은재, 2018). 다수의 선행연구에 기반을 두어, 이러한 자원봉사활동에 지속해서 참여하는 경우 그 주체는 객체성과 소수자성을 최소화하고 사회 안에 포용되며 자기확신을 크게 강화할 수 있다고 사료된다.
한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에 관한 기존 연구들은 이들이 자원봉사활동 참여로써 자신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나’라는 정체성을 발견하며, 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의미를 형성한다는 점을 유사하게 보고했다(이윤정, 김영순, 2023; Sveen et al., 2023). 또한, 결혼이주여성들이 참여 과정에서 즐거움, 자존감 회복, 사회적 인정, 그리고 전문성 성장과 연계될 수 있음을 비슷하게 제시하였다(오혜정, 김율하, 2024; Greenspan & Walk, 2024). 그러나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이 항상 긍정적인 경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원봉사활동은 사회참여와 자기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으나(김민정, 2017; 김은재, 2018), 자원봉사활동이 항상 순조로운 성장 경험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결혼이주여성은 그 참여 과정에서 가사 및 돌봄 역할의 조정, 가족의 지지 필요성, 자원봉사활동에서 제한된 역할과 낮은 인정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경험할 수도 있다. 즉, 자원봉사활동은 단순한 긍정적 경험이 아니라, 주어진 제약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김이선, 최윤정, 장희영, 김도혜, 박신규, 2021; 이윤정, 김영순, 2023; Wijerathna & Hewapathirana, 2022).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은 단순한 수혜자의 위치를 넘어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복합적이면서도 중요한 경험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김은재, 2018; Ruiz & Ravitch, 2023).
그뿐만 아니라, 선행연구에 따르면 이들의 자원봉사활동 참여는 자기 인식 제고, 기술 및 지식 습득, 사회적 관계망 형성, 의미감 및 소속감 증대로 연결되며(Sveen et al., 2023), 공동체 참여와 자원봉사는 ‘소속 의미감(sense of mattering)’과 ‘심리적 공동체 의식(psychological sense of community)’을 자기 성장과 자아 재구성 경로를 촉진하는 것으로도 이해된다(Martinez-Damia et al., 2023). 또한,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과 시민참여는 고정된 주변적 위치를 넘어 사회적 주체로서 자신의 입지를 재협상하고 확장하는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Ruiz & Ravitch, 2023). 이렇듯 다수의 국내외 선행연구를 종합해보면,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 참여는 단순한 사회적응의 수단에 머무르지 않으며, 오히려 이러한 활동은 이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재발견하고 주체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자아실현 과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이 자명하다.
3. 연구방법
1) 내러티브 탐구
본 연구는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겪는 자아실현 경험의 의미를 탐색하고자 내러티브 탐구(narrative inquiry) 방법을 채택하였다. 내러티브 탐구는 인간의 경험을 시간의 흐름, 사회적 상호작용, 그리고 특정 장소라는 세 차원적 공간 안에서 포착하며, 연구자와 연구참여자가 함께 그 의미를 재구성해가는 협력적 탐색 과정이다(김대성, 김대현, 김필성, 2023; Clandinin & Connelly, 2000). 이는 개인이 실제로 살아낸 경험을 이야기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경험이 지닌 의미를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질적 연구의 한 방법이다. 특히 연구참여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며, 생애 맥락을 심층적으로 반영한다(조재성, 2020). 구체적으로, 본 연구는 시간성(temporality), 사회성(sociality), 장소성(place)이라는 Clandinin과 Connelly(2000)의 내러티브 세 차원적 공간에 기반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연구참여자들이 처한 개별적인 생애 맥락과 자원봉사활동에서 드러나는 실제적인 상황, 그리고 그 안에서 발현되는 자아실현의 양상을 심도 있게 이해하고자 했다(진민희, 김서현, 2023).
참고로, 내러티브 탐구를 따르기 위해서 본고에서는 Clandinin과 Connelly(2000)가 제시한 절차대로 연구를 설계해 분석에 임했다(강미영, 김봉환, 2020; 염지숙, 2003). 첫째, ‘현장에 존재하기’ 단계에서는 연구참여자들과 라포를 형성하고, 연구목적을 사전 논의하였다. 둘째, ‘현장에서 현장 텍스트로’ 단계에서는 개방형 질문을 활용한 반구조화된 면담을 진행하며 사진, 기록물, 문서 등을 수집하였다. 셋째, ‘현장 텍스트에서 연구 텍스트로’ 전환 단계에서는 연구참여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인터뷰를 진행하고 녹음 및 현장 메모를 작성하였으며, 녹취록을 반복 확인하여 보완하였다. 넷째, ‘연구 텍스트 구성하기’ 단계에서는 세 차원적 내러티브 탐구 방법을 적용하여 세 차원의 관점에서 연구참여자들의 경험을 해석하고 의미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2) 연구참여자 선정
본 연구는 선정 기준에 따라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으로서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경험한 연구참여자들을 신중히 선정하였다. 첫째, 한국에서 최소 3년 이상 거주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하였다. 그리고 체류 기간이 3년 이상인 사람 중에서 자원봉사활동 이력이 충분하며 한국의 현실을 충분한 관계나 사건, 사회적 맥락과 결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자 했다(Berry, 2021). 둘째, 현재 자원봉사활동을 지속하는 중인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으로서, 자원봉사활동에 최소 3개월 이상 참여한 자를 선정하였다. 단발성 참여에 그치지 않는 자원봉사활동 경험자로 연구참여자를 구성하여,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을 주체적으로 조율하고 타인과 깊이 있는 상호작용을 나누며(김유진, 유전양, 2018; 김은영, 박지연, 2023), 그 결과로서 자신의 내면적 변화를 성찰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게 된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자 하였다. 셋째, 연구참여자들의 한국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의 유형이나 개인적 참여 동기 등은 최대한 복합적으로 섞이게 구성했다. 이는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자아실현 경험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폭넓게 탐구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여러 배경을 보유한 이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반적 특성은 <표 1>과 같다.
3) 현장 텍스트 수집
현장 텍스트 수집은 2026년 1월부터 2월까지 약 2개월에 걸쳐 유의표집을 활용하여 진행했다. 연구참여자 모집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및 지역 자원봉사센터의 협조를 받아 진행했고, 중국 SNS 플랫폼을 통해서도 모집 공고를 게시하였다. 소개받은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에게 개별 연락하여 자발적 참여 의사를 확인하고, 희망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 연구 목적과 윤리 사항을 설명하였다. 이후 연구 참여 동의서를 작성하여 구두와 서명으로 자발적 참여 의사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내러티브 탐구는 연구자와 연구참여자 간 신뢰 형성이 중요하기에(조재성, 2020), 면담 전에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 힘썼다. 참고로, 중국어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연구자 1인이 심층면담을 주도하였고, 연구참여자들이 언어적 제약 없이 경험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두 언어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특히 공유된 배경은 연구참여자들이 이주 경험과 관련한 복잡한 감정과 내밀한 이야기를 보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자원으로 작용하였다. 동시에 연구자는 이러한 공통 정체성이 해석 과정에서 편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였다. 이에 면담 후 연구자는 성찰 일지를 작성해 연구참여자와의 교류 중에 느낀 감정이나 인식은 물론, 사전 이해와 그에 비교해 달라진 점, 연구참여자의 진술에 대한 즉각적 해석 등을 꼼꼼히 기록하였다. 분석 과정에서는 연구자의 해석이 연구참여자의 실제 발화에 근거하는지 원자료를 반복해서 검토하고 전문가 연구 모임을 통해 이를 지속적으로 점검하였다.
심층면담은 일대일 직접 만남 형식으로, 회당 60∼90분 총 3회기에 걸쳐 진행하였다. 각 회기는 내러티브 탐구의 흐름에 따라 상이한 목적으로 설계하였다. 1회기에서는 연구참여자의 이주 이전 삶과 한국 정착 초기 경험을 중심으로 생애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2회기에서는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활동 과정에서 겪은 구체적인 경험을 깊이 있게 탐구하였다. 3회기에서는 자원봉사활동이 연구참여자의 자아실현 경험 및 앞으로의 삶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도록 하여, 경험의 의미를 통합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또한, 각 면담 회기 사이에는 이전 면담에서 연구참여자가 구술한 주요 내용을 연구자가 정리하여 다음 면담 도입부에 다시 제시하고, 그 의미와 맥락이 연구참여자의 경험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면담 장소는 연구참여자들의 선호와 접근성을 고려하여 조용한 카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상담실, 도서관 세미나실 등 편안함을 느끼고 사생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었다.
모든 심층면담은 반구조화된 형식으로 진행했다. 연구자는 사전에 몇 가지 질문을 준비했는데, 대체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떠합니까?’, ‘자원봉사활동이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등의 개방형 질문을 중심으로 연구참여자의 이야기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다만, 질문지는 연구주제로부터 대화가 이탈하지 않고 여러 연구참여자들의 서로 다른 면담 환경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참고만 하였으며, 대체로 이들의 구술에 제약을 가하지 않고 원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였다(김영천, 한광웅, 2012). 그리고, 필요한 경우 추가 질문을 통해 경험의 맥락과 의미를 구체적으로 탐색하거나, SNS나 전화 통화를 하여 정식 면담 이외에서도 자료를 보완하였다. 면담 내용은 연구참여자의 동의하에 녹음하였고, 면담 중 메모를 작성하여 비언어적 표현과 분위기를 기록하였다. 녹음한 모든 내용은 연구자가 3일 이내에 녹취록으로 직접 전사하였으며, 중국어로 답변한 부분은 한중 번역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번역의 정확성을 확보하였다. 또한, 주요 인용문과 중요한 표현들은 중국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문을 반복해서 대조하였으며, 연구참여자의 확인을 거쳐 번역 과정에서 의미가 왜곡되지 않았는지 점검하였다. 그밖에, 자원봉사활동 사진, 활동 확인서 등의 보조 자료를 수집하여 녹취록 해석 시 참고하였으며, 면담 전후 비공식적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를 참고하면서 연구자 간 분석 자료를 검토하고 해석 내용을 점검하면서 진행하였다.
4) 현장 텍스트 분석
본 연구의 텍스트 자료 분석을 위해 Clandinin과 Connelly(2000)가 강조한 시간성, 사회성, 장소성이라는 내러티브의 3차원 탐구 공간을 고려하면서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을 통한 자아실현 경험의 개별적 의미와 고유 특성을 여러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하였다(김태희, 김종백, 2016; 김향화, 남지은, 2024). 우선, 연구자는 녹취록을 반복해서 정독하며 연구참여자들이 제공한 내러티브를 면밀히 분석하였다. 분석 과정에서는 내러티브 탐구의 주요 요소인 사회성, 장소성, 시간성을 중심으로 연구참여자들의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자아실현 경험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 단계에서는 주로 연구참여자들의 경험을 자원봉사활동 시작 시점부터 현재까지의 과정으로 재구성하면서, 각 시기에서 중요했던 관계들, 의미 있는 사건들, 그리고 경험이 이루어진 공간적 환경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전체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개인별 경험과 인식에서 나타난 내용을 재구성하여 각각의 범주를 명확히 제시하고자 하였다. 분석 과정에서 연구참여자들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 드러날 경우, 이는 별도의 범주로 구분하여 자아실현의 핵심 요소들로서 인용구와 함께 구분해두었다. 이를 통해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을 통한 자아실현 경험에 의미와 그들만의 성장 과정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자원봉사활동에서 겪는 자아실현의 경험을 생애사적 흐름과 다각적인 생활 맥락 속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하였다(염지숙, 2003).
5) 연구의 엄격성 및 윤리적 고려
질적 연구에서 엄격성은 연구 결과의 신뢰성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Lincoln & Guba, 1985). 내러티브 탐구는 연구참여자의 주관적 경험을 다루므로 해석의 타당성이 우려되기도 한다(조재성, 2020). 따라서 이야기 중심 연구만의 고유한 엄격성 기준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홍영숙, 2015). 이에, 본 연구는 다음 절차로 연구 엄격성을 확보하였다. 첫째, 연구참여자 확인 절차를 진행하였다. 전사된 면담 자료와 분석 결과를 연구참여자에게 제공하여 정확성과 해석 일치를 점검하였다(Padgett, 2016). 중국어 면담의 경우, 연구참여자와 내용을 재검토하여 언어 왜곡을 최소화하였다(Yunus et al., 2022). 둘째, 번역 신뢰도를 위해 중국어와 한국어에 능통한 사회복지학 박사의 검수를 받았으며(Schumann, Dennis, Leduc, & Peters, 2025), 연구참여자와 재확인을 통해 원래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확인하였다. 셋째, 삼각검증법을 적용해 면담 녹취록, 현장 관찰 기록, 활동사진 등 다양한 자료를 병행 분석하였다(Creswell & Poth, 2018). 이를 통해 단일 자료의 한계를 보완하고 연구 주제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였다. 넷째, 인터뷰 이후에도 메신저를 통한 소통 채널을 유지하여 연구참여자의 후속 성찰과 추가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였다(김대성 외, 2023; Clandinin & Connelly, 2000). 면담 후에는 성찰 일지를 작성하고 전문가 연구 모임에서 해석 편향을 줄이려 노력하였으며, 내러티브 탐구 방법론 전문가이자 다수의 학술논문 발표 이력이 있는 교수의 자문을 받아 분석 전 과정을 점검하였다(Lincoln & Guba, 1985).
윤리적 고려를 위해서도 주의했다. 본 연구는 연구 수행 전 과정에서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의 연구윤리 기준을 철저히 준수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연구 시작에 앞서 연구윤리 교육을 이수하였으며, 연구 전 과정에 걸쳐 자발적 동의, 위해 최소화, 그리고 사생활 및 비밀 보장의 원칙을 적용하였다. 먼저, 연구참여자 선정 기준에 따라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을 소개받거나 모집 및 확정했고, 전원에게 연구 목적 및 연구 필요성, 면담 방식, 자료 활용 방법, 참여 이익과 불편함을 충분히 설명한 후 자발적 서면 동의를 받았다. 특히 언어적 오해가 없도록 설명문과 동의서를 연구참여자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제공하였다. 면담 중 참여를 중단하거나 철회할 수 있음을 명확히 안내하였고, 민감한 질문에 답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였다. 모든 녹음과 전사 자료는 비밀번호로 보호된 개인 저장장치에 책임 연구자가 안전하게 보관하였으며, 연구목적 외 사용하지 않고자 유념했고 연구 종료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폐기하기로 하였다. 그와 더불어, 연구참여자의 실명과 개인정보는 초기부터 가명으로 처리하였고, 논문 작성 과정에서는 익명화했다. 면담은 연구참여자가 선호하는 안전하고 독립된 공간에서 진행하였으며, 심리적 안정과 자유로운 대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힘썼다. 면담 종료 후 연구참여자에게 소정의 사례비를 제공하고 참여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달하였다.
4. 이야기 안으로
1) 연구참여자의 개별 이야기
신신은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시(宁波市) 출신의 외동딸로, 중국 대학에서 외국인에게 표준 중국어와 중국 관련 지식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대외한어학과(对外汉语)를 전공하여 대학을 졸업하였다. 신신은 대학에 재학하는 동안 언어 교환 활동을 통해 한국어를 접했고, 3학년 방학 때 만난 한국인 남성과의 인연으로 2010년에 한국으로 이주하였다. 2012년 결혼과 동시에 F-6 비자를 취득한 후, 어학원에서 한국어 실력을 고급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취업하였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경험은 신신에게 단순히 거주의 변화를 넘어, 그녀의 삶 전반을 재구성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결혼 후에는 남편과 함께 조용하고 안정적인 둘만의 생활 방식을 즐기며 딩크족(dink)을 지향하였으나, 2018년 예상치 못한 임신과 딸의 출산은 삶의 방향을 다시 한번 조정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 여가에 가깝게 시작된 신신의 자원봉사활동은 어머니가 되는 시기를 거치면서 점차 가족과 함께 실천하는 활동으로 확대되었고, 일상에서 꾸준히 이어지며 삶의 방향성으로 자리 잡았다. 출산 이후 신신은 번역가이자 다문화 강사로서 자유롭게 활동하며 가정을 중심으로 삶을 선택하였다. 그녀는 한국에서 7년 반에 걸친 육아를 직접 담당하며 자신의 인식에 깊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아이 출생에 대한 감사함을 시작으로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나눔의 필요성을 서서히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결혼과 육아 등으로 다진 시간의 안정성을 근간으로 자원봉사활동에 오래 관여하게 된 흐름을 담담하게 구술하였다.
예쁜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죠. 하지만 아이가 제가 가르쳐 준 말을 처음 따라 했을 때 느끼는 기쁨과는 차원이 달라요. 거울을 보며 느끼는 만족감과, 아이가 처음 한마디 말을 했을 때의 성취감은 비교가 되지 않아요. 저에게는 아이가 주는 그 성취감이 훨씬 커요. (신신, 1회기)
신신은 자녀를 키우는 동안 다문화 단체 활동을 통해 한국의 ‘1365’ 자원봉사 포털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해당 단체가 주관하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자원봉사활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즉, 다문화 단체라는 사회적 관계망이 신신의 자원봉사활동 참여를 가능하게 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016년 첫 농촌 자원봉사활동을 시작으로, 신신은 농촌 일손 돕기, 포도원 작업, 환경 정화, 동물 보호소 자원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해 왔다. 신신의 자원봉사활동은 가족 단위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보인다. 초기에는 부부가 동반하였고, 이후 중국에서 부모님이 방문했을 때는 가족 전체가 자원봉사활동에 함께하기도 하였다. 딸이 만 6세가 된 이후부터는 아이도 자연스럽게 가족과 함께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였다. 남편은 외부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자원봉사활동에 관여하였으며, 딸 또한 어른들을 돕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경험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렇듯 가족 관계가 자원봉사활동을 함께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신신이 처음 경험한 농촌 자원봉사활동의 식사 시간은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을 어르신들께서 이른 아침부터 정성으로 준비한 음식을 자원봉사자들에게 대접하였는데, 이 만남을 통해 신신은 중국과 한국 시골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또한, 자원봉사활동은 신신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 도시에서 자란 신신에게 농촌은 낯선 공간이었지만, 반복적인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농사일에 익숙해졌고, 자신의 뛰어난 지구력도 인지하게 되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는 자원봉사활동 중 땀 흘리는 것을 단순한 노력이 아닌 신체 단련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변화를 보였다.
처음에는 자원봉사활동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러다 다문화 단체 담당자가 ‘1365’ 자원봉사 포털을 알려주셔서 알게 되었고, 마침 단체에서도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한다고 해서 ‘좋은 일인 것 같아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신청했어요. 처음에는 부담 없이, 사람도 만나고 농촌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신신, 1회기)
저희가 별일 한 것도 아닌데 어르신들이 손님처럼 잘 챙겨주셨어요. 일하는 동안 아침부터 전을 부치셨는데, 저는 처음에 무슨 행사가 있다고 생각했죠. 점심에 보니 그게 다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음식이었더라고요. 뜻밖이면서도 고마웠고, 중국이나 한국 시골 모두 따뜻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신, 2회기)
자원봉사자들이 하루 동안 수행한 일이 지원 대상자에게는 며칠이 걸리는 작업임을 깨닫고, 자신의 도움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신신은 자원봉사활동을 삶에 비유하여 ‘조미료’와 같다고 표현하였다. 조미료가 없어도 생명 유지가 가능하지만, 조미료가 더해지면 생활에 풍미와 기쁨이 더해지는 것과 같이, 자원봉사활동 또한 삶에 특별한 의미와 즐거움을 부여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15년간 거주했음에도 한국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소속감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소속감의 부재와 연결에 대한 열망이 공존하는 가운데, 공동의 자원봉사활동 참여는 한국 주민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이러한 농촌 공간에서 한국인 어르신들과의 자연스러운 사회적 상호작용은 상호 이해와 교감을 형성하는 경험으로, 신신이 의미 있는 사회적 연결망을 구축하고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데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였다.
외국인도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여기가 고향은 아니지만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니까, 더 나아지길 바라죠. 이런 선의를 한국사회에 전달하고 싶어요. (신신, 3회기)
안안은 베이징 출신이며, 중국 대학교에서 교육관리를 전공하던 중 같은 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남성과 약 5년간 교제한 후 2011년에 결혼하여 한국으로 이주하였다. 당시 안안은 몇 년간 한국에서 공부하고 일한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전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녀는 한국에 도착한 후에는 어학당에서 1년 반 동안 한국어를 배우며 6급 과정을 마쳤다. 이후 취업하여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다. 서른 살에 딸을 출산하였으나, 예상보다 일찍 아이가 찾아오면서 원래 계획했던 학업은 잠시 미루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주, 결혼, 출산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안안의 삶은 처음 구상한 것과는 다르게 전개되었다. 학업과 경력 계획이 미뤄진 자리에서, 안안은 이후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육아도 힘들고 몸도 마음도 지쳐서, 계획했던 만큼 공부를 꾸준히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봉사활동을 하면서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요. (안안, 1회기)
안안은 처음으로 참여한 자원봉사활동에서 외국인이 밀집한 상가 지역을 대상으로 치안 순찰 업무를 맡았다. 이 활동에서 그녀는 경찰과 함께 거리를 꼼꼼하게 순찰하며 외국인 상인들에게 치안 관련 정보를 전달하고, 그들이 겪는 여러 가지의 어려움이 있는지 파악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안안은 중국어 통역을 주로 담당하였으며, 약 2년 동안 지속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를 통해 안안은 많은 외국인 상인들이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여 경찰에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언어 능력이 실제로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안안은 병원에서 외국인 환자를 위한 의료 통역 자원봉사활동에도 참여하였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부상을 당한 중국인 노년 환자를 도운 경험은 그녀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안안은 언어 장벽과 제도의 사각지대가 동시에 존재함으로써 외국인이 얼마나 취약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안안은 해당 환자가 정부에 지원금을 신청하도록 돕는 한편, 환자의 중국 내 가족과도 연락을 취하려 노력하였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한계를 자주 절감했다. 게다가, 병원 내에서 통역 자원봉사자에게 청소나 정리 같은 부수적인 업무까지 맡겨지는 상황을 직접 경험하면서, 자원봉사자의 역할 범위와 권한에 대한 문제의식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은 안안으로 하여금 자원봉사활동이 단순한 봉사 행위를 넘어 한국사회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일상과 다른 공간에서 발휘하는 언어능력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취약한 위치에 놓인 외국인과 한국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관계적 자원과 같았다.
원래 가게를 하는 분들이시라, 당연히 한국어가 되실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전혀 못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신고하는 방법도 모르고, 작은 일이라도 경찰이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분들이 많았어요. (안안, 1회기)
그분을 정말 돕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있어요.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해서 어디에 가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고, 자신이 받아야 할 권리가 뭔지도 잘 몰라요.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키기 힘들고, 주변 사람들 중에는 책임을 피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상황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무거워요. (안안, 2회기)
안안이 자원봉사활동으로 체감한 가장 큰 변화는 개인적 가치감 회복과 자아실현의 과정이었다. 아이를 양육하며 전업주부로 지내던 시기에 그녀는 가정이라는 공간에 갇혀 자신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매일 아이와만 대화하며 사회적 관계가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사고력과 언어 능력마저 쇠퇴하는 듯한 경험을 하였다. 안안에게 가정은 어머니로서의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이 축소되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가정에서 벗어나 타인을 돕고, 한국어와 중국어를 활용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다. 안안이 이전에는 관공서에 전화하는 것조차 두려워했으나, 이제는 부당한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전업주부에서 자원봉사자를 거쳐 다시 직업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이국땅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차근차근 실현해 나간 여정이었다.
가정 밖에서 자기 가치를 다시 발견한 거예요. 작은 일이라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제가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어요. 귀속감까지는 아니지만, 가치감은 확실히 느꼈어요. (안안, 2회기)
안안은 ‘한국이라는 장소에서의 귀속감’에 대해 솔직하게 ‘강한 귀속감은 없다’라고 토로하였다. 20대 시절 여행자의 마음으로 한국에 왔던 시기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아이를 출산한 이후 한국사회에 융합하려는 마음이 일기도 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융합 여부보다 자신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미래와 가정 전체를 위해 한국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는 뚜렷하게 피력했다. 타국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탐색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 자체가 안안의 독특한 자아실현 방식과 더불어 삶의 태도로서 구성되고 있었다. 또한, 안안은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에 대해 외부의 편견을 인지하긴 했으되, 이를 숨기기보다는 당당히 수용하며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태도를 견지했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해 복지만 받고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는 당당하게 나서서 ‘우리도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안, 3회기)
란란은 중국 허베이성에서 외동딸로 태어나고, 중국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교직 진로를 희망하였다. 2016년 가족의 권유로 교환학생 자격으로 처음 한국에 방문하였으며, 2017년에는 같은 대학 중국어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석사과정 재학 중 같은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에 있던 한국인 남성을 만났다. 2018년 초, 두 사람의 관계에 결정적인 변화를 초래한 심각한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 당시 연락을 시도한 중국인 친구들은 응답하지 않았으나, 당시 한국인 남성은 신속히 현장에 도착하여 보험 처리와 경제적 부담을 단독으로 감당하였다. 그 이후 두 사람은 관계를 확정하고, 같은 해 결혼하였다. 이후 2018년 첫아들을 출산하였고, 2020년에는 둘째 아들을 출산하였다. 이와 같이 교환학생으로 입국한 이후 단기간에 석사 입학, 결혼, 출산을 경험하면서 삶의 전반적 전환을 겪었다. 란란의 자원봉사활동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시작되었으며, 심리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중국인 선배의 사회적 연대가 전환점으로 작용하였다. 선배의 추천으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2021년경 해당 기관을 통해 노인요양병원 미용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는 란란이 새로운 영역에 첫발을 내딛는 계기와 같았다.
할머니들이 저를 보시고, 외국인인 제가 미용 봉사를 한다고 하시면서 신기해하시고 정말 감동하셨어요. 저는 단순히 손톱을 칠해 드리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들이 그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 일이 생각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란란, 1회기)
란란은 네일아트 자원봉사활동을 경험한 이후 미용 분야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갖게 되었다. 또한,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선배와의 꾸준한 소통은 란란이 다른 전문대학교 미용디자인과에 진학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교에서 만난 지도 교수는 란란의 자원봉사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멘토였다. 그 교수는 한 달에 한두 차례 농촌 마을을 방문하여 어르신들에게 직접 헤어 자원봉사활동을 실시하였고, 후원을 받아 염색약과 두피 보호제까지 준비하는 세심한 배려를 보였다. 교수는 ‘행동하는 선행이 말보다 강력하다’는 신념을 실천으로 옮겼으며, 이러한 멘토의 가치관과 행동과 헌신은 란란이 자원봉사활동의 본질과 진정한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란란은 2024년부터 정기적으로 농촌 마을을 방문하여 월 1∼2회의 헤어 자원봉사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란란의 자원봉사활동은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으로 편견과 맞서는 지속적인 과정이었다. 초기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회피하여 자원봉사활동에서도 말을 아끼는 태도를 보였으며, 교수에게 자신을 단지 ‘학생’으로만 소개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역량이 의심받을 것을 두려워하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려 했던 란란에게 자원봉사활동은 역설적으로 그 정체성이 드러나고 오히려 긍정되는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자원봉사활동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어르신들과 맺은 관계를 통해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반응을 경험하였다. 한 할머니가 란란의 발음이 다르다고 지적하며 출신을 물었을 때, 란란이 중국에서 왔다고 답하자 오히려 감동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란란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점차 받아들이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할머니가 ‘아이고, 좋은 사람이네. 외국인이지만 한국 사람하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한국에서 배운 기술로 한국 사람한테 봉사한다’고 하시면서 정말 감동하셨어요. (란란, 2회기)
란란의 자원봉사활동 참여의 궤적은 결혼이주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중요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재해석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사회 내에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다양한 편견을 자주 경험하며 혼란스럽기도 했다. 예를 들어, 대학 입학 면접 과정에서 ‘결혼이주여성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느냐? 남편이 학교 다니는 것을 허락했냐?’라는 질문을 받았고, 자녀의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저 이모는 다른 나라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자원봉사활동 중 직면한 사건들은 결혼이주여성으로서 사회적 편견과 인식을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사례로, 란란이 겪은 현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란란은 지속적인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대신,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필두로 란란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재정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은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으로서의 역할과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제는 이런 자원봉사활동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결혼이주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가난한 나라에서 와서 한국 남자 만나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려는 것만은 아니에요. 저도 학력도 있고 기술과 능력도 있어요. 결혼이주여성이라고 해서 못할 게 뭐 있겠어요? 저도 잘할 수 있어요. (란란, 3회기)
란란의 자원봉사활동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기반 중 하나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지지였다. 남편은 자원봉사활동 시간에 맞추어 자녀들을 유치원과 학교에 안전하게 데려다주었고, 시어머니 또한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란란에게 자원봉사활동은 단순한 참여를 넘어 자아실현의 과정이었다.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려 했던 시기를 지나,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오히려 그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으며, 한국에서 습득한 기술을 활용하여 사회에 이바지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자원봉사활동은 한국사회에 대한 완전한 귀속감을 제공하지는 못하였으나, 자신의 역량과 기술을 통해 사회에 의미 있게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저한테 이 자원봉사는 인연 같아요. 기회가 되면 계속하고, 아니면 쉬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여러 인연들이 이어져서 지금까지 온 것 같고, 만약 못 하게 돼도 또 다른 인연이 찾아올 거라 믿어요. (란란, 3회기)
닝닝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여 중국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영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중국으로 돌아와서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특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미술 봉사활동도 경험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한국과 중국의 혼혈로, 두 사람은 중국에서 만나 2018년에 결혼하였고 2019년에 딸을 출산하였다. 2022년 남편이 한국으로 귀국함에 따라 닝닝은 딸과 한국으로 이주하였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닝닝은 심각한 적응 장애를 겪었고 일상 대화에 어려움이 있었고, 식습관 조절 또한 쉽지 않았다. 더불어 남편의 가족과의 관계에서 존댓말과 반말 사용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긴장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당시 아직 취업하지 않은 닝닝은 주로 딸과 집에 머무르며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에 갇힌 듯한 심리적 정체성 고착 현상을 경험하였다.
2024년 탈북 주민 지원 자원봉사활동 참여는 바로 이렇게 고착된 정체성에 균열을 내는 시간적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 정부 공식 홈페이지와 민간단체의 게시판을 통해 탈북 주민 정착 지원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접하게 되었다. 자신도 ‘이향인(异乡人)’1)으로서 탈북민을 향해 깊은 사회적 공감을 경험했으며, 자신의 디자인 역량과 문서 정리 능력이 봉사에 분명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하였다. 그에 더해, 남편의 한반도 문화에 대한 이해와 지지는 자원봉사활동 참여를 결심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였다.
저는 마트에서 아이 분유를 살 때 알레르기 체질인지 물었지만, 점원이 전혀 알아듣지 못했어요. 수도가 고장 났을 때 수리기사에게 30분 동안 설명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매우 막막했던 경험도 있어요. (닝닝, 1회기)
저도 이향인이라서 탈북 주민분들과 통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낯선 곳에서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함께 공감하다 보니 더 마음이 갔고, 제 디자인 기술도 쓸 수 있고 남편도 도와주니까, 이 활동에서 저도 제 가치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닝닝, 2회기)
닝닝의 자원봉사활동 내용은 정책 설명회 진행, 현장 설치 및 정리, 수기 제작, 탈북 주민과의 1대1 관계 형성 등 매우 다양하며, 매회 약 4시간씩 월평균 10회 정도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녀는 지정된 탈북 주민의 은행 계좌 개설 지원, 대중교통 경로 안내부터 직업 소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역할을 맡았다. 무엇보다도 한 탈북 자수 예인의 작품을 정리하여 판매로 연결한 경험으로, 닝닝은 자신의 전문 역량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닝닝이 1대1로 지원하는 탈북 여성은 경계심이 매우 강하여 처음 만났을 때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으며, 닝닝이 건넨 차도 거절하는 등 거리감이 컸다. 신뢰를 쌓기 위해 닝닝은 약 3주간의 시간을 들여 딸의 그림으로 대화를 시작하고, 함께 채소를 고르며, 북한 민요를 들려주는 등 세심하고 인내심 있는 방법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그 여성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고향 노래를 불렀던 순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 3주 동안은 완전히 거절당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저는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생각하고 어떻게든 다가가려고 했어요. 딸이 그린 그림을 (탈북 주민에게) 보여드리고, 같이 채소를 다듬으면서 조선 노래를 틀어드렸어요. 그렇게 3주가 지나서야 그분께서 먼저 말을 꺼내셨어요. (닝닝, 2회기)
닝닝이 경험한 가장 큰 어려움은 탈북 주민의 직업 자격증 제도 추진 과정이었다. 그녀는 팀 동료인 ‘김 언니’와 함께 여러 곳의 직업학교를 방문하며 두 달이 넘도록 설득 활동을 펼쳤으나,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더욱이 일부 시민들의 반대 목소리까지 마주하며, 때로는 집에 돌아와 눈물을 참지 못하기도 하였다. 이때 남편의 위로와 격려가 닝닝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힘이 되었다. 남편은 닝닝의 자원봉사활동 참여가 충만한 삶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정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 주었다. 이러한 응원 덕분에 닝닝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으며, 끝내 제안을 시범 운영 단계까지 진척시킬 수 있었다. 그녀와 자원봉사활동의 전 과정에서 함께한 김 언니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관계로서 위치한다.
김 언니는 이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학교 한국어 교사이다. 젊은 시절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경험이 있으며 중국어도 구사한다. 닝닝이 긴장할 때마다 중국어로 안심시키고, 전문 용어를 해석하거나 현장 소통을 조율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아울러 자기 인맥을 활용해 닝닝을 지역 주민과 연결해 주기도 하였다. 닝닝이 가장 기억하는 부분은 김 언니가 닝닝을 소개할 때 ‘중국 이민자’라는 말 대신 언제나 ‘내 파트너’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이민자’가 아니라 ‘파트너’라는 호명은 닝닝이 지역사회 안에서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동등한 실천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김 언니의 매개적 관계는 닝닝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다리인 동시에, 그녀의 사회적 위치를 새롭게 규정하는 관계였다고도 분석된다.
같은 이향인분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어요. 하지만 편견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직업학교를 여러 번 찾아가서 설명했는데도 계속 거절당했어요. 일부 시민들은 왜 그런 사람들을 돕느냐고 항의하기도 했어요. 그날 집에 돌아와서 억울함과 슬픔에 한참 동안 울기도 했어요. (닝닝, 2회기)
닝닝에게 자원봉사활동은 자아실현의 중요한 과정이었다. 탈북 여성과의 신뢰 관계를 시간이 지나면서 형성한 경험을 통해 닝닝은 자신의 공감 능력과 인내심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또한, 자원봉사 제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실행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에 국한되어 있던 정체성에서 벗어나, ‘중국인 시각디자이너이자 이민자의 아내, 평화 자원봉사자’라는 다층적인 정체성을 강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국이라는 장소는 닝닝에게 한때 ‘내 집이 아닌’ 낯선 공간이었으나, 진심을 쏟은 만큼 되돌려받는 공간으로 새로이 경험되었다. 한국에서 쌓아온 시간은 닝닝이 이 도시와 맺는 감정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예전에는 여기 거리를 걸을 때마다 중국이 많이 그리웠어요. ‘여긴 내 집이 아니다’라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여기도 내 집이에요. 진심으로 마음을 쏟으면 이 땅이 되돌려주는 느낌이 있어요. (닝닝, 3회기)
닝닝은 자원봉사활동 전체를 ‘열쇠’이자 ‘다리’에 비유하였다. 그녀는 자원봉사활동이 한국사회에 귀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문’을 여는 열쇠였으며, 탈북 주민과 현지 주민, 그리고 자신의 관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사회적 연결고리인 다리와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닝닝은 자신만의 사회적 위치를 확립했고, 이를 자아실현의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앞으로도 김 언니와 함께 이와 관련된 활동에 다시 참여할 계획이며, 딸과 함께 해양 환경 보호 자원봉사활동에도 참여하리라고 의지를 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닝닝의 삶에 긍정적인 깊이를 더하였다.
2) 자원봉사활동을 통한 자아실현에 관한 공통의 내러티브
중국인 결혼이주여성들은 자원봉사활동을 단순한 여가나 일시적 선행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 활동을 일상의 돌봄 부담 속에서 발견한 성장의 시간으로 경험했다. 결혼 이후 낯선 언어와 문화 환경 속에서 출산, 육아, 직업 단절, 제한된 사회관계 등 무거운 부담을 지며 반복되고 단조로운 날들을 견뎠다(Jo, 2020). 이런 경험은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문화 적응 스트레스와 양육 스트레스, 사회적 지지 부족이 정신적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여러 선행연구의 보고와도 비슷하다(남지혜, 홍달아기, 2022; 신예지, 강영신, 2023). 더욱이 자녀 출산 이후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이 점점 줄어든다’라는 느낌이 강해졌다. 연구참여자들은 계획하였던 학업을 중단했거나 사회적 고립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관계망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들은 잦은 불안과 혼란을 경험했다(정희원, 김윤태, 2024). 그러나 이러한 전환이 순탄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연구참여자들은 자원봉사활동 초기에는 돌봄 노동 소진, 언어적 제약, 그리고 주변의 시선과 같은 현실적인 조건과 마주해야 했다. 자원봉사활동이 성장의 시간으로 경험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연구참여자들에게 자원봉사활동은 멈춘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기회였다. 자원봉사활동은 가정을 떠나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신체를 움직이며, 이전에 몰랐던 감각과 능력을 새롭게 발견하는 공간이었다. 즉, 자원봉사활동은 반복되는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건임과 동시에, 이주와 돌봄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던 ‘나’ 자신을 다시 불러내는 시간적 전환점 역할을 했다. 이는 자원봉사활동이 단순한 기분 전환을 넘어, 성인기 발달 과정에서 위축되었던 자아를 재인식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하는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Sgaramella, Zammitti, & Magnano, 2024). 이와 같은 변화의 시간을 토대로,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이 여전히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존재이며, 앞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사람임을 점차 깨달았다(Martinez-Damia et al., 2023; Sveen et al., 2023). 다시 말하자면, 자원봉사활동은 연구참여자들에게 일상의 돌봄 부담 속에서 자아실현의 발달적 전환점이 되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처음에는 그냥 누군가를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도움을 주면 뭐가 돌아올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해보니, 돈도 받지 않고 누가 대신 해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도와주는 그 과정 자체가 정말 즐거웠어요. (신신, 2회기)
연구참여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자원봉사활동은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에게 타인을 위한 실천인 동시에,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생기와 의미를 더하며 자신을 다시 느끼게 하는 성장의 계기로 작용함을 뜻한다(김은영, 박수정, 2022; 김은재, 2018; Martinez-Damia et al., 2023). 일상 곳곳에서 변화가 이어졌다. 성장은 단순한 기분 전환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가정 안에 머물며 육아와 가사를 반복해온 이들에게 자원봉사활동을 통한 능력의 회복은 사소한 변화가 아니라 나는 여전히 외부 세계와 연결될 수 있고,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임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일례로, 전업주부로 지내며 위축되었던 안안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소통 능력이 점차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다시 소통하는 힘이 생겼어요. 집에 있을 땐 매일 같은 말만 하다 보니 말과 생각이 단순해졌거든요. 그런데 여러 사람을 만나서 한국어로 대화하다 보니 말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지고 한국어 실력도 많이 늘었어요. (안안, 2회기)
한국에 온 지 3년이 넘으면서, 처음처럼 낯설고 버거운 상태에서는 벗어나 이 사회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고 느껴요. (닝닝, 3회기)
연구참여자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잠재된 언어적 및 사회적 역량과 새로운 흥미를 발견하였다(Nichol, Wilson, Rodrigues, & Haighton, 2024; Ramachandran & Vathi, 2023).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의 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즉, 이들의 경험은 단순히 이주 적응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성인기 인간발달의 관점에서 축소되었던 자아를 회복하며 삶의 방향을 재설계해 나가는 성장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Compton, 2024; Levinson, 1986). 시간의 재구성은 이후 살펴볼 공간의 확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중국인 결혼이주여성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가정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한국사회의 공적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김유진, 유전양, 2018; 이윤정, 김영순, 2023). 초기에는 언어와 문화의 낯섦으로 인해 사회의 주변부에 머무르며 남편이나 가족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주로 보였다. 자신만의 명확한 사회적 위치도 뚜렷하게 찾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자원봉사라는 새로운 공간에 참여하며 기존에 타인에 의해 제한되었던 경계를 넘어 능동적인 타향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오혜정, 김율하, 2024). 이 변화는 무엇보다 한국사회와 맺는 관계 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주 초기에는 남편과 자녀, 가족에 의존하여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으나,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실제 행동으로 주변 사회와 직접 연결되기 시작했다. 농촌에서 농사 돕기, 병원에서 외국인 환자 통역, 요양병원에서 미용 봉사, 지역 환경 보호 활동 참여 등의 경험은 이들을 가정 내에만 머무르는 이민자가 아니라, 사회 현장에 적극 참여하며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책임 있는 존재로 변화시켰다(김민정, 2017; 김은재, 2018).
저는 이 활동이 한국사회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해요. 활동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여러 모습을 보고, 선의도 느끼며, 무력한 현실도 봤어요. (안안, 3회기)
물론 이 과정이 항상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안안이 언급한 바와 같이, 자원봉사활동에서 통역 자원봉사자에게 청소나 잡무까지 맡겨지는 상황이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역량을 의심받는 경험은 이들이 공적 공간에서 여전히 주변적 위치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연구참여자들이 자원봉사활동을 지속하며 관계를 형성해 나간 것은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구조적 조건에 맞서 자신의 자리를 능동적으로 만들어간 실천이었다. 생활 반경의 확장은 곧 관계망의 재구성을 의미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남편과 자녀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경험하였다. 이들은 어르신, 환자, 외국인 상인, 지역 주민, 탈북 주민, 그리고 동료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가족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넓혀가며 사회적 유대를 강화해 나갔다. 이들은 단순히 도움 받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지지와 선의를 제공하며 책임 있는 주체로 자리매김하였다. 이와 같이 한국사회는 이들에게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배경이 아니라, 스스로 연결을 만들고 참여할 수 있는 현실적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남편과 아이들만 돌보면서 지내는 것도 생활이지만, 한국과 연결된 느낌은 잘 안 들어요. 저도 밖에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지역사회에서 제 관계를 만들고 싶어요. (닝닝, 1회기)
중국인 결혼이주여성들은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고 다양한 대상을 만나며 초기 경계감을 허물고, 삶의 범위를 가정 내부에서 사회 전반으로 점차 확장해 나갔다. 따라서 자원봉사활동은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에게 활동 범위의 확장을 넘어, 이들의 사회 이해와 참여, 그리고 자기 위치 정립의 방식을 확장시키는 경험으로 작용하였다(김유진, 유전양, 2018; 이윤정, 김영순, 2023). 개인의 사적 공간인 가정에서 공적 사회 공간으로 나아가면서, 타인과 연결성을 형성하고 사회를 이해하는 경험을 꾸준히 쌓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원봉사활동은 단순히 생활 반경을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낯선 땅에서 자신만의 사회적 위치를 구축하도록 이끄는 적극적인 실천의 장이었다(김은재, 2018; Ruiz & Ravitch, 2023). 타향인으로서 낯선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이 과정은 단순한 적응을 넘어, 자신의 손길로 삶의 터전을 직접 일구어 나가는 자아실현의 여정이었다. 확장된 사회적 관계망은 다음 절의 공간적 전환과 맞물려 이어진다.
연구참여자들에게 자원봉사활동은 단순히 공익에 참여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것은 ‘도움을 받는 사람’이나 ‘복지 수혜자’라는 한정된 위치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실제로 영향을 주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한국사회에서 결혼이주여성은 ‘적응이 필요한 사람’, ‘돌봄이 필요한 사람’, ‘지원받는 사람’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아, 이들이 가진 능력과 경험, 자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박지인, 2021; 이윤정, 김영순, 2023). 결혼 이주, 언어 적응, 가정 돌봄이라는 복합적인 현실 속에서, 이들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먼저 인식되기 쉽다. 수혜자로만 규정되는 이러한 사회적 위치는 개인의 내재적 동기와 심리적 성장에 제약을 가하는 환경으로 작용한다(Deci & Ryan, 1985). 이러한 기여자 정체성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란란이 입학 면접에서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이유로 편견 질문을 받은 경험, 그리고 닝닝이 탈북 주민 직업학교 연결 과정에서 반복해서 거절당하며 눈물을 흘린 경험은, 이들이 기여자로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장벽을 넘어야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원봉사활동을 통한 주체성 회복은 이러한 구조적 저항을 딛고 이루어진 결과였다(Ruiz & Ravitch, 2023). 그러므로, 자원봉사활동의 의미는 단순한 사회참여가 아니라, ‘나는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언어 능력과 문화 경험, 노동과 행동으로 타인과 지역사회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연구참여자들이 경험한 전환은 단순한 마음의 위안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을 통해 서서히 자신만의 주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농촌에서 노동을 돕고, 지역사회 기관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선의를 나누고 책임을 지는 가운데,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이 단지 ‘그곳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됨을 몸소 느꼈다. 다시 한번 타인의 소중함도 절감했다. 즉, 자원봉사활동의 의미는 단지 ‘집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반복된 행동 속에서 사회적 관계 안에서 자신이 필요한 존재이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임을 점차 확인하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연구참여자들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사람’에서 ‘타인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변화하였고,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자기 이해를 크게 함양해갔다(Weidinger, Spenger, & Kordel, 2024).
내가 하는 일이 진짜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우리가 와서 일이 빨리 끝나니 그분들도 마음이 편해졌다는 걸 알면 저도 정말 기뻐요. (신신, 2회기)
연구참여자들은 ‘기여’를 추상적인 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 경험으로 이해하였다. 즉, 거듭되는 자원봉사활동으로 자신의 행동이 실제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직접적인 자각을 쌓았다. 오랜 기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위치에 머물던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에게 이러한 경험은 주체적 위치 변화 의미를 내포한다. 이들은 더는 수동적으로 지원받거나 적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통해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적극적인 행위자가 되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변화가 한 번의 참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 참여와 행동으로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실제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내재화와 확신으로 점차 삶의 완전성이 극명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체성 형성은 순간적 인식 변화가 아니라 지속적인 실천 속에서 한 걸음씩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이 연구참여자들의 보고를 집약해 확인했다(김은재, 2018; 이윤정, 김영순, 2023; Ruiz & Ravitch, 2023).
연구참여자들이 ‘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 경험은 한국사회와의 관계 변화로 이어졌다. 과거에는 제도에 적응하고 언어를 배우며 가정 내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자신을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러나 오랜 자원봉사활동 이력을 보유한 연구참여자들은 도움을 주는 쪽으로 존재의 위치를 이동하였을뿐더러 일상의 축을 옮겨 사회 현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였다. 이들의 노동과 돌봄, 소통과 동행은 일면 거창한 기여로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각자의 인생사에서 재해석하면 그러한 경험은 매우 구체적인 자기 발견이고 성장이자 실감 나는 지속적 사회참여였다. 실제로 이렇듯 작지만 진솔한 실천 속에서 연구참여자들은 ‘수혜자’라는 고정된 위치에서 벗어나 ‘나도 줄 수 있다’라는 의식을 실천하며 주체적인 삶의 태도를 확산해갔다. 이 같은 변화는 그들을 수동적 적응자에서 사회의 능동적 참여자로 자리매김하게 한 계기로 분석할 수 있다(오혜정, 김율하, 2024; Ambrosini & Artero, 2023). 연구참여자들에게 자원봉사활동은 자기 가치감을 회복하는 중요한 경로였던 것이다. 더불어, 자원봉사활동은 ‘수혜자’라는 고정된 위치를 넘어 사회적 주체 의식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들은 지속적인 참여와 행동을 통해 수동적 적응자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능동적으로 응답하고 책임을 지며 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주체로 변화하였다. 결국, 자원봉사활동은 사회와 연결되는 방식을 확장하였을 뿐 아니라, 낯선 사회에서 ‘나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자리를 한 걸음씩 확립하도록 만드는 기회였다고 분석된다(Sveen et al., 2023; Weidinger et al., 2024).
5. 결 론
본 연구는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을 통한 자아실현 경험의 의미에 관해 당사자들의 실제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에서 내러티브 탐구로써 심층 분석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은 선정 기준에 맞춰 확보했으며, 총 3차례에 걸쳐 일대일 심층면담을 진행하였다. 수집한 현장 텍스트는 Clandinin과 Connelly(2000)의 시간성, 사회성, 장소성이라는 세 차원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를 통해 각 연구참여자들의 자원봉사활동의 구체적 경험과 자아실현 경험을 개별적으로 탐구하고, 더 나아가 연구참여자들의 핵심적 경험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이로써, 연구참여자들의 자아실현 경험이 ‘일상과 돌봄 부담 속에서 발견한 성장의 시간’, ‘낯선 땅을 일궈 나가는 타향인의 손길’, ‘수혜자가 아닌 기여자로서의 연대’라는 주제로서 재구성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요약하고, 그에 바탕해 몇 가지 논의점을 제시하도록 한다.
첫 번째로 확인된 연구참여자들의 경험의 의미는 공통주제인 ‘일상과 돌봄 부담 속에서 발견한 성장의 시간’과 더불어 밝혀졌다.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에게 자원봉사활동은 단순한 사회적 역할 수행을 넘어서, 타자로 위치 지어진 이주 초기부터 경험한 상실감과 무력감을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연구참여자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이 타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경험을 반복하며, 가정이라는 제한적인 공간 속에서 점차 희미해졌던 자기 존재감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자원봉사활동이 자아존중감 향상과 정체성 확립에 기여한다는 선행 연구들(강대선, 권혁창, 2019; 조지용 외, 2021)의 지적을 결혼이주여성의 맥락으로 확장한 결과로 해석된다. 더 나아가 중국인 관점에서 자원봉사활동이 전인적 발달과 연결됨도 반영한다. 아울러, 연구참여자들이 돌봄과 반복되는 일상의 무게 속에서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되찾은 경험은 자아실현이 특별한 성취 순간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며 일상의 작은 실천들이 쌓이는 과정에서 점차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두 번째 공통주제인 ‘낯선 땅을 일궈 나가는 타향인의 손길’처럼,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경험 속에서 자원봉사활동이 가정이라는 사적인 공간을 넘어 한국사회라는 공적 영역으로 삶의 반경을 확장하는 전환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참여자들은 처음에는 언어적·문화적 낯섦으로 인해 주변부에 위치하였으나,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직접적인 관계 경험을 쌓으며 점차 능동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였다. 이는 자원봉사활동이 결혼이주여성에게 사회적 연결망과 주체성 회복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기존 연구들(김민정, 2017; 김은영, 박수정, 2022)과도 관련성이 있다. 즉, 자원봉사활동으로 이들은 한국을 더는 낯설게 느끼지 않게 되었고, 자신이 손길을 뻗고 관계를 쌓아가는 삶의 터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세 번째 공통주제인 ‘수혜자가 아닌 기여자로서의 연대’와 결부해서,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신의 가치를 행동으로 입증해 나갔음이 밝혀졌다. 이들은 여느 결혼이주여성들과 같이 초기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부담을 느끼거나 역량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할까 염려하여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자원봉사활동에서 타인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사회의 기여자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더 나아가 자신이 가진 언어적·문화적 역량이 지역사회에 필수적인 자원임을 깨닫고,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자원봉사 참여가 단순한 수혜자 역할을 넘어 사회적 기여자로서의 주체적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전환점임을 함축한다(Martinez-Damia et al., 2023). 또한, 이들의 자원봉사활동은 개인적 자아실현의 범위를 넘어, 이주민과 사회 간 상호 연결과 연대를 실천하는 장으로 확장되었는데, 이 같은 발견점은 자원봉사활동이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사회통합을 촉진하는 능동적 경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Ruiz & Ravitch, 2023).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몇 가지 제언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생애주기별 특성을 반영한 자원봉사활동 참여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본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은 대부분 자녀 양육이 안정되는 시기를 전후하여 가정 밖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와 역할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연구참여자들 역시도 그 같은 시기에 자원봉사활동이 자아실현을 촉진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음을 보고했다. 이러한 현실을 참작하여, 여성가족부 산하 가족센터 등 전달체계를 기반으로 이들의 입국 초기와 자녀의 입학 등 생애주기 주요 전환 시점에 ‘참여 설계 상담’이라는 통합적인 상담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이주 초기에는 중한 이중언어와 양국 문화에 능통한 상담 인력을 우선 배치하여, 언어 장벽으로 인한 어려움을 줄이고 이들이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초기 적응 지원에 초점을 둔 기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상담과 달리, 이들이 이미 지닌 언어·직업 경험을 사회참여의 경로로 연결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러한 상담서비스 운영 시에는 개인의 전문 역량, 언어 자원, 관심 분야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맞춤형 참여 방향을 설계해야 한다.
둘째,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을 지역사회 구성원이자 기여할 수 있는 실천 주체로 포용하는 강점 관점 기반 개입 사업의 확대가 필요하다. 이는 이들을 단순한 시혜의 대상이 아닌, 고유한 잠재력을 지닌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본 연구참여자들이 위축된 자기 인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사회의 기여자로 재정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강점 관점은 이들이 가진 구체적 역량을 지역사회 자원과 연결할 때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연구참여자들은 중한 이중언어 능력과 양국 문화 이해를 바탕으로 의료 통역, 치안 순찰 통역, 미용·네일아트 봉사, 농촌 일손 돕기, 탈북 주민 정착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사회에 실질적 기여를 했음을 보고했다. 이와 같은 발견점은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지닌 이중언어 및 이중문화 역량이 단순한 개인 능력을 넘어 지역사회 복지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으로 재인식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를 참고하여, 가족센터를 위시한 지역 기반 종합사회복지관 등을 바탕으로 중국어 통역 지원, 중국인 이주민 생활 상담, 한중 문화 교류 프로그램 운영 그리고 먼저 정착한 이가 신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을 돕는 동포 멘토링 등 전문적 기술을 활용하는 자원봉사 영역을 적극 발굴하고, 이를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역량과 매칭해야 한다. 특히 참여 초기에는 중국인 자원봉사자나 지역 활동가와 연결하는 ‘멘토-동행형 참여 모델’을 도입하여 이들이 지역사회 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실질적인 공동체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의 실천으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개인적 만족이나 성취를 넘어 소명과 역량, 시간과 재능을 사회 발전과 통합, 연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 참여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온오프라인 기반 초기 진입과 관리 시스템 보완이 시급하다. 자원봉사활동 소개와 지역 기반 인프라로의 포섭 절차는 물론, 이들이 서로 연결되고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통합 프로그램, 지역 가족센터, 자원봉사센터 그리고 1365 자원봉사 포털 간 제도적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중국 SNS 플랫폼(위챗, 샤오훙수 등)을 자원봉사활동 채널로 활용하여, 한국어 기반 플랫폼이 포착하지 못하는 정보 접근 경로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러한 전략은 기존 자원봉사 모집 방식에서 소외되었던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참여 경로를 제도적으로 보완한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더불어 이들의 참여가 지속 가능하도록 사회적 인정과 체계적인 사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자원봉사 참여 기록 관리, 우수 사례 공유, 그리고 역량 인증 체계 확장을 통해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이 사회적으로 가시화되고 제도적으로 인정받도록 지원함으로써, 이들이 한국 다문화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자 사회적 기여자로 받아들여지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자원봉사활동을 통한 자아실현 경험을 연구참여자의 실제 구술자료를 확보해 현실감 있게 구체적으로 탐구했다는 학술적 의미가 있다. 또한, 재한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을 단지 소수자 내지는 정책적 지원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이끄는 주체로 포용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에도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그에 더해, 자원봉사활동이 이들의 자아실현에 큰 의미로 자리하며,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의 사회적 통합에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이들을 기여자로 인정하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다만 본 연구는 중국인 결혼이주여성만 대상으로 하였으므로, 다른 국적 결혼이주여성들의 자아실현 맥락에 대한 추가적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차후에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이나 연령대, 가족 배경과 결부해 결혼이주여성의 경험을 재해석하거나, 혹은 자원봉사활동에 관한 여러 경험을 종단적으로 풀어내는 연구도 요청된다.
Acknowledgments
본 연구는 2026년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 논문을 수정 및 보완한 것임.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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