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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1 , No. 3

[ Article ]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1, No. 3, pp. 209-236
Abbreviation: jss
ISSN: 1976-2984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Jul 2020
Received 31 May 2020 Revised 07 Jul 2020 Accepted 24 Jul 2020
DOI: https://doi.org/10.16881/jss.2020.07.31.3.209

외손자녀 양육을 통해 워킹맘인 딸을 지원하는 60대 여성에 대한 사례연구
최유나 ; 원해솔 ; 이주영 ; 성지은
연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Qualitative Case Study on 60-year-old Women who Support Their Working Mother Daughters by Raising Grandchildren
Yu-Na Choi ; Hae-Sol Won ; Ju-Young Lee ; Gi-Eun Sung
School of Social Welfare, Yonsei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성지은, 연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석사과정,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E-mail : pucca8503@hanmail.net

Funding Information ▼

초록

본 연구는 워킹맘인 30·40대 딸을 위해 손자녀 양육을 지원하는 60대 친정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손자녀 육아을 담당하게 된 계기와 손자녀 돌봄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심리적 갈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외손자녀 육아를 담당 중인 60대 여성 7명과의 심층면접을 통해 질적 사례연구를 수행하였다. 연구 참여자들의 인터뷰 내용 녹취록을 분석 자료로 활용하여 ‘사례 내 분석’과 ‘사례 간 분석’을 실시하였으며 분석 프로그램으로는 ATLAS TI 8.0을 활용하였다. 사례 내 분석에서는 ‘엄마이기 때문에’ 딸을 도와주고 싶은 친정어머니로서의 마음과, 외손자녀의 육아를 담당하게 된 과정이 드러났다. 사례 간 분석에서는 7개의 범주와 15개의 주제가 도출되었는데, 도출된 범주는 ‘딸을 응원하는 모정(母情)’, ‘딸의 사회활동에 대한 양가감정’, ‘아직도 공고한 전통적인 성역할’, ‘손자녀와의 소중한 만남’, ‘벗어날 수 없는 육아의 굴레’, ‘내 삶의 버팀목’, ‘행복한 육아를 위한 시작’ 이다. 연구참여자들에게 있어 딸의 사회적 성취는 그렇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대리만족이었으며, 가족의 사회적 계층상승으로 이어지는 투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딸의 사회활동을 중시하는 것에 비해 자신의 남편과 사위의 육아참여에 대한 요구 정도, 딸의 시어머니에 대한 인식 등은 여전히 전통적인 가부장적 인식에 머물러 있었다. 이상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손자녀 돌봄을 하고 있는 조모에 대한 지원, 더 나아가서 워킹맘을 위한 사회, 국가차원의 정책과 실천 방안을 제언했다.

Abstract

This study was conducted on women in their 60s to examine the psychological, economic, and relationship conflicts experienced in the process of supporting and caring for their daughters in their 30s or 40s as well as grandchildren. To this end, a case study was conducted through in-depth interviews on seven women in their 60s in charge of raising their grandchildren for more than 6 months. ‘In-case analysis’ and ‘case-to-case analysis’ were performed using transcripts of interviews as analytical data, and ATLAS TI 8.0 was used as the analysis program. In-case analysis revealed the process of being in charge of raising a grandchild and helping her daughter because she is a mother. In the case-to-case analysis, seven categories and 15 themes were drawn, and the categories derived were ‘Mother’s Love to Support Daughter’, ‘Ambivalence for Daughter’s Social Activities’, ‘Traditional Gender Roles still Solidified’, ‘Meeting with Grandchildren’, ‘My Life Changed by Raising Grandchildren’, ‘Support of My Life’, and ‘The First Step of Mother for a Better Life’. Based on these results, our team suggests support for grandparents who take care of their grandchildren, and further, social and national policies and clinical practices for working mothers.


Keywords: Parenting of grandchildren, Maternal Grandmother, Mother, Daughter, Working Mom, Qualitative Research, Case Study
키워드: 손자녀 육아, 워킹맘, 친정어머니, 맞벌이, 여성, 60대, 질적 사례연구

1. 서 론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증가하면서 조부모가 자녀육아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것은 비단 최근의 이야기는 아니다. 2017년 현재 18세 미만 자녀를 둔 기혼 여성 516만 명 중 취업여성은 56.1%인 290만명(김예구, 서정주, 2018)으로 ‘워킹맘’, 즉 자신의 직업과 양육을 병행하는 여성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다. 통계청·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가정일과 관계없이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것은 좋다’는 인식이 남녀 모두 50% 이상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육아는 여전히 워킹맘의 가장 큰 부담이며(통계청, 여성가족부, 2018), 여성들의 사회활동으로 인한 육아의 빈자리는 자녀의 조부모가 채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건복지부의 ‘2015년 전국보육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조부모가 손자녀 양육을 지원하는 비율은 2009년 8%에서 2012년 9.9%, 2015년 20.7%로 점차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보건복지부, 2015). ‘2018년 전국보육실태조사’에서는 ‘비동거 외조부모’가 48.2%로 양육 지원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외조부모 중에서도 여성의 친정어머니, 즉 손자녀의 외할머니가 자신의 딸을 대신하여 양육자 역할을 담당하는 비율이 높았다(김예구, 서정주, 2018).

오늘날의 30·40대 여성은 1970년대·80년대 출생자로, 이 시기는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급격히 줄어드는 시점이다. 70년에는 가임여성 1명당 4명 이상의 자녀를 출산했으나 83년에는 출산자녀가 2.06명까지 감소했다(통계청, 2019). 이는 지금의 30·40대가 성별과 상관없이 동일한 수준의 교육을 받게 된 중요한 원인이 되었으며, 이는 남녀의 동등한 대학 진학률로까지 이어진다. 통계청 자료(2019)에 의하면 여성 대학진학률은 남성 대학진학률에 비해 약 2~4% 정도 꾸준히 낮았으나 2005년을 기점으로 여성 진학률이 73.5%, 남성 진학률이 73.2%로 여성이 앞서기 시작하였고, 2018년에는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73.8%, 남성의 대학진학률은 65.9%로 그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경제활동 참여율 역시 남녀가 거의 동등하다. 2018년 현재, 고졸과 대졸 이상 학력의 취업자 비율을 남녀로 비교해보면 고졸 여성은 37.3%, 고졸 남성은 39.1%, 대졸 여성은 43.1%, 대졸 남성은 48.8%로(통계청, 여성가족부, 2018), 91년의 대졸 이상 학력 취업자 중 여성이 9.6%, 남성이 18.8%였던 것(통계청, 2010)과 비교해보면 남녀의 교육수준과 경제활동 참여율의 간격이 얼마나 큰 폭으로 줄어들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역할로 ‘믿어지고’ 있다. 남성과 동등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현 30·40대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일과 가정의 양립 앞에서 좌절하게 된다. 여성의 연령별 경제활동 참가율 그래프가 2000년부터 2018년에 이르는 약 20년간 여전히 ‘M자’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육아’라는 책임이 여성에게 얼마나 공고한 의무로 인식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통계청, 2007; 2019). 그 20년 간,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대학교육과 취업을 경험했음에도 육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한편 현재의 30·40대 여성을 길러낸 60대 여성은, 1952년에 우리나라의 “교육법 시행령”이 공포된 후 성장기를 보낸 자들로서(한상길 외, 2009), 의무교육 초기 수혜자이자 공식적으로는 남녀의 동등한 교육이 보장된 환경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자녀의 학력이 어머니 노력의 결과물’(문옥표 외, 1999)로 인식되던 1990년대를 ‘어머니’로서 지냈으며, 자신의 성장기와는 달리 딸이 아들과 동등한 학력을 갖추도록 노력한 세대이다.

교육은 오늘날에도 ‘사회적 지위 상승’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권력과 재력을 쥐고 있는 집단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권력과 재력을 쥐고 있는 특별한 집단’에 속하기 위해 필요한 자격을 획득하는 것은 개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중요한 목표이다(조성숙, 2004). 이러한 자격을 얻거나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교육’이다. 교육을 통한 학력의 성취, 이를 기반으로 전문직 종사자가 되는 과정은 가족의 중요한 ‘투자영역’(문옥표, 1999)으로, 자식의 사회적 지위 상승은 부모와 가족 전체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도 이어진다. 또한 ‘가정의 담당자는 여성’이라는 인식은 ‘어머니’인 여성들이 자녀교육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즉, 현 30·40대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이전의 세대에 비해 급격히 증가한 것에는, 고학력과 전문직이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계급상승 도구로 인식된다는 점, 자녀의 학력은 곧 어머니의 능력으로 이어지는 사회 분위기, 그리고 딸이 자신과는 달리 ‘사회적 존재’로 살길 원했던 현 60대 여성들의 바람과 노력이 있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가족 가치’가 가족 공동체성, 가부장성, 동시에 개인화의 특징이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내용이다(백진아, 2013).

이같이 딸을 ‘사회적 존재’로 키워낸 현 60대 여성들은, 딸의 결혼 후에도 우리나라 가족 특유의 정서적 유대감을 유지하면서(Rossi, A. S. & Rossi, P. H., 1990), 자신의 딸이 처한 ‘육아의 부담’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있어 딸의 지속적인 사회활동은 단순히 ‘딸의 직장생활’이 아니라, 딸의 성장 과정 몇 십 년 동안 딸의 교육에 전념한 자신의 노력이 가시화되는 장(場)인 것이다. 이는 친정어머니 자신의 사회적 지위 향상으로도 인식된다. 게다가 자녀의 나이가 어릴수록 혈연관계의 사적 보육체계를 더 선호한다는 점에서(김승용, 정미경, 2006) 60대 여성들은 자신의 손자녀 육아를 당연한 책임감으로 맡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킹맘’인 딸의 육아를 지원하는 친정어머니에 대한 연구는 다소 부족하다. ‘조부모의 손자녀 돌봄’에 대한 국내연구는 2000년대 후반부터 사회복지학, 간호학, 아동 교육학, 심리학 등의 분야에서 양적·질적 연구는 물론, 메타분석에 이르기까지 많은 연구가 발표되고 있다(김미령, 2014; 배진희, 2007; 백경흔, 2009; 이현수, 2007; 조윤주, 2016; 최인희, 2014; 김현우 외, 2019; 김은정, 2015).

선행연구는 주제에 따라 크게 손자녀 돌봄 지원에 따른 경험과 이해 대한 인식, 손자녀 돌봄으로 인한 신체 및 건강상의 어려움 및 만족도, 손자녀 돌봄으로 인한 가족관계 변화 등의 주제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손자녀 돌봄을 선택하는 과정보다 손자녀 돌봄으로 인한 결과적 경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한계를 보인다. 또한 ‘조손 가정의 손자녀 돌봄’과, ‘부모를 대신한 조부모의 손자녀 돌봄’은 가족과 사회 내에서의 경험적 맥락이 상당히 다름에도, 동일한 연구 대상으로 분석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조부모’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이기는 하나, 그 역할과 위치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같은 ‘할머니’라고 해도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의 가정 내 역할과 위치는 다르다. 또한 ‘돌봄은 여성의 역할’로 믿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할아버지’들의 손자녀 양육 참여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역할이거나 ‘할머니 부재 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경우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부모’에 해당하는 이들을 구분 짓지 않고 동일한 연구참여자로 선정했거나, ‘할머니’라는 범주 안에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포함시킴으로써(김은정, 정순둘, 2011; 김문정, 2007; 안희란, 김선미, 2014; 조윤주, 2012; 정미라, 최혜정, 2017) 우리사회의 가부장적인 맥락을 중요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할 수 있다. 이는 가부장적인 우리사회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위치에 따른 역할, 그리고 이에 따른 역동을 세밀하게 보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드물게 ‘손자녀 양육을 돕는 외조모’(원미라 외, 2012; 전연우 외, 2012; 주은선 외, 2018)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손자녀 육아를 통해 결과적으로 부딪치는 경험과 심리상태에 집중함으로써, 친정어머니가 손자녀 양육을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행위자로서의 주체성’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며, 사회 맥락적인 젠더적 고찰에는 부족함이 있다고 여겨진다.

본 연구에서는 이상의 이유로 워킹맘인 딸을 위해 손자녀의 양육을 지원하고 있는 60대 친정어머니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은 일가정 양립을 위해 애쓰는 30·40대 여성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이며, 이것은 자신의 딸이 처해있는 문제이므로 60대 여성 본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딸을 워킹맘으로 길러낸 당사자이자, 여성에게 있어 사회활동과 육아의 의미, 가정과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육아와 사회활동의 병행에 대해 풍부한 경험과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 추측되었다. 이러한 연구참여자들의 경험을 구체적인 맥락에서 살펴보기 위해서는 질적 사례연구방법(Qualitative case study)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워킹맘의 60대인 친정어머니들은 어떠한 이유와 상황에서 손자녀 육아 지원을 선택하였는가. 둘째, 딸이 사회생활을 지속하는 것은 본인들에게 어떠한 의미이자 가치인가? 셋째, 손자녀 양육을 통한 긍정적인 경험과 부정적인 경험은 어떤 것이 있는가? 넷째, 육아를 위해 어떠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본 연구에서는 ‘워킹맘’을 고등학생 이하의 자녀를 가진 여성으로서 하루 6시간 이상, 4일 이상 경제활동을 하는 자로 정의한다. 그리고 ‘손자녀 육아를 담당하는 외할머니’는, ‘워킹맘’인 딸을 대신하여 등하교를 포함한 손자녀의 일상생활 전반을 돌보는 60대 여성으로 정의한다.

손자녀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60대 여성들은 과거 성(性)으로 인한 역할분담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시대와, 성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오늘날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다. 또한 딸들의 사회생활을 손자녀 육아로써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의 변화에 따른 여성 역할의 변화,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 젠더문제에 대해 예민한 시각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듣는 것은 ‘육아’라는 행위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젠더문제, 우리 사회의 육아 서비스 지원의 한계점을 경험적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보다 합리적인 사회적 육아 서비스와 워킹맘을 위한 다양한 지원체계 구축에 대한 지원 방향을 마련함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 연구방법
1) 연구설계

질적 연구방법은 현상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이 환경, 타인, 사건 등에 대해서 부여하는 의미와 이를 바탕으로 행위하는 의미를 파악하는 연구방법이다(유기웅 외, 2016). 또한, 개개인의 경험에 내재하는 구조를 파악하고 이면의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김인숙, 2016)으로, 사회와 현상에 대한 개개인의 시각과 본인 행위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이 가능한 연구방법이다.

그중에서도 질적 사례연구방법(Qualitative case study)은 하나 혹은 일련의 의사결정이 왜 일어났으며, 그것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탐구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연구방법이다(Schramm, 1971). 사례연구방법은 실제 상황의 맥락 안에서 당시 상황을 연구할 수 있는 실증적, 경험적 접근방법으로(Yin, 2003), 본 연구에서는 60대 여성들이 행위자로서 손자녀 양육 지원을 선택한 과정, 그동안의 경험, 사회와 젠더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파악하는데 질적 사례연구방법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

질적 사례연구방법은 사례분석의 목적에 따라 본질적 사례연구(Intrinsic case)와 도구적 사례연구(Instrumental case study), 집합적 사례연구(Collective case)로 구분된다(Stake, 1995). 본질적 사례연구는 연구자가 구체적인 사례가 갖는 특성과 현상에 대해 흥미를 느끼거나 더 많은 이해를 얻기 위해 시행하고, 도구적 사례연구는 사례연구의 수행이 사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거나, 관련된 이론적 설명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집합적 사례연구는 도구적 사례연구를 여러 사례 포함하는 복수 사례연구의 형태로, 사례 간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추출하여, 현상, 집단, 일반적 상황에 대한 더 많은 이해를 얻기 위해 실시된다(Stake, 1995; 유기웅 외, 2012).

본 연구는 손자녀 돌봄을 통해 워킹맘인 딸을 지원하는 60대 여성에 대한 구체적인 특징과 현상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연구참여자들의 경험을 다루고 있으므로 본질적 사례연구이자 다중 사례연구방법이 될 것이다.

2) 자료수집 및 분석방법

연구자들은 의도적 표집(purposive sampling)과 눈덩이 표집(snowing sampling) 방법을 사용하여 대상을 선정하였다. 본 연구의 목적에 맞는 대상을 찾기 위해 연구자들은 지인들을 통해 연구참여자를 모집했고 그와 동시에, 인터뷰를 마친 연구참여자가 다음 연구참여자를 소개할 수 있도록 진행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은 서울·경기지역에 거주하는 60대 여성이다. 이들은 70·80년대 생인 딸을 두고 있으며, 그 딸의 자녀인, 외손자녀 양육을 담당하고 있다. 연구참여자의 기본정보는 <표 1>과 같다.

<표 1> 
연구참여자의 정보
구분 본인 출생년도 딸 출생년도 손자녀 육아 지원 기간 연구참여자 사회경력 연구참여자 딸의 직업
참여자A 1952년 1980년 14년 학습지 선생님 대기업 근무
참여자B 1955년 1980년 18년 단순 노동직, 경리 회계사, 어린이집 원장
참여자C 1954년 1983년 3년 - 패션기업 근무
참여자D 1957년 1982년 1년 교회 전도사 피아노 강사
참여자E 1950년 1978년 10년 중소기업 근무 은행 근무
참여자F 1953년 1983년 7년 - 교육공무원(유치원 교사)
참여자G 1956년 1981년 8년 - 공기업 근무

심층 인터뷰 기간은 2019년 11월 11일부터 2020년 2월 6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연구참여자 1인당 1회 이상, 1회 인터뷰 시간은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동안 진행하였다. 인터뷰의 시간과 장소는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연구참여자들의 편의에 최대한 맞추어 자신들이 정하도록 했다. 인터뷰 장소는 연구참여자의 집이거나 딸의 집으로서, 외손자녀 돌봄이 실제로 일어나는 돌봄 시간 중에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인터뷰 질문은 ‘손자녀 육아를 하게 된 계기, 손자녀 육아 시 겪게 되는 어려움,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지지나 도움, 손자녀 육아로 인해 느꼈던 보람’ 등을 기본질문으로 하고, 참여자의 응답에 따라 세부질문을 추가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자료 분석을 위해서 ‘사례 내 분석’과 ‘사례 간 분석’을 활용하였다. 사례 내 분석에서는 각 사례에서 연구참여자가 겪은 돌봄 경험이 잘 드러나도록 서술하였으며 사례 간 분석에서는 사례들 간의 비슷한 경험을 도출하여 공통된 범주로 묶어내는 작업을 실시하였다. 한 사례에서 크게 드러나는 문제였음에도 사례 수가 많지 않아 사례 간 분석에 활용될 수 없는 범주들은 사례 내 분석에 포함시켰으며, 사례 간 분석으로 끌어낼 수 있는 시사점 또한 찾아보았다. 자료 분석의 과정은 공동연구자간의 끊임없는 의견교환과 토의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연구 과정 중 질적 연구 세미나를 통해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고찰을 하였다. 분석 프로그램은 ATLAS TI 8.0을 활용하였다.

3) 연구의 엄격성 및 윤리적 고려

본 연구참여자들은 인터뷰 이전에 연구의 목적과 인터뷰 내용에 대한 설명과 안내를 듣고 모두 자발적으로 연구에 참여하였다. 연구자는 참여자들에게 연구의 목적을 알기 쉽게 설명하였으며, 인터뷰 중 연구참여자들의 정서에 민감하게 주목하였다. 인터뷰 내용에 대한 비밀보장과 인터뷰의 사용 용도에 대해 알렸으며, 언제든지 인터뷰를 중단할 수 있음을 참여자들에게 안내하였다. 인터뷰 내용의 녹취와 녹취록 작성은 인터뷰 시작 전에 연구참여자들의 동의를 얻은 후 시행하였고, 녹취록 작성 후 녹음된 파일 원본은 파기할 것을 알렸다. 본 연구에서는 연구 참가자에게 고유 아이디를 부여하여 참여자들의 익명성을 보호하였고, 인터뷰 후에는 사례금과 소정의 기념품을 지급하였다.

연구자들은 연구의 타당성 확보를 위해 동료 연구자들 간, 질적 연구방법 전문가와의 의견교환, 상호검토를 반복하였으며, 인터뷰 내용 분석 중 명료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전화 등의 방법을 이용하여 추가인터뷰를 실시하였다.


3. 연구결과

본 연구는 사례 내 분석과 사례 간 분석의 두 단계로 진행되었다. 연구자들은 각 연구참여자들의 인터뷰의 녹취록을 반복해서 읽고, 여러 번의 회의를 통해 연구참여자들의 인터뷰에서 특정적으로 나타나는 내용과 주제를 파악하였다. 사례 내 분석에서는 연구참여자들의 손자녀 돌봄과 관련된 경험과 감정들이 잘 드러나도록 서술하였다. 또한, 사례 간 분석에서는 사례 간의 유사한 내용을 도출하여 해당 사항을 효율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범주와 주제를 부여하였다.

1) 사례 내 분석
(1) 연구참여자 A

연구참여자 A는 52년생으로 여자가 사회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배타적이며, 여성의 대학진학은 성공적인 결혼을 위한 과정으로 여기는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났다. 친정아버지의 뜻에 따라 명문 여대 교육학과 졸업 직후 결혼을 하였고, 두 딸을 출산하였다. 이민과 역이민을 통해 가정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학습지 선생님으로 근무하며 두 딸을 키웠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자라준 두 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80년생인 큰딸이 지속적인 사회활동을 통한 자아실현을 원하였기 때문에, 딸의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한 약 14년 동안 외손자녀를 돌보고 있다.

참여자는 장녀 가정의 육아와 더불어 가사 역시 지원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200만 원의 사례를 장녀로부터 받고 있다. 연구참여자의 친언니 역시 자신의 외손자녀를 돌보고 있기 때문에, 친언니와 자주 만나며 심리적 지지를 서로 주고받고 있다. 참여자가 개인적인 일과나 특별한 상황으로 큰딸 가정의 지원이 어려운 경우는 남편이 외손자 육아에 동참하고 있다.

연구참여자 A와 남편이 장녀 가정 지원이 어려울 경우에는 연구참여자의 차녀도 장녀의 육아와 살림을 지원하였다고 한다. 참여자는 손자녀 육아 지원 중 힘들었던 점으로 큰사위와의 성격 차이로 인한 갈등이라 표현하였으며, 불화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한다고 말하였다.

(2) 연구참여자 B

연구참여자는 B는 55년생으로 3남 2녀 중 차녀이며, 어린 시절 남동생 3명의 육아를 도와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등교였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공장에서 단순노동직으로 근무했다. 결혼 후 쌍둥이인 두 딸을 출산하고 남편이 설립한 회사의 일손을 돕고자 경리로 근무하였다. 연구참여자 B의 장녀는 20대 초반에 겪은 산후우울증으로 인해 친정어머니인 참여자에게 육아 및 살림의 지원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장녀의 우울증이 심각해지자, 장녀 가족과의 동거를 결정하였다.

연구참여자는 현재 장녀의 자녀 3명(18살, 15살, 4살)과 차녀(9살, 6살)의 자녀, 총 5명의 육아와 더불어 장녀 가정의 가사지원을 하고 있다. 참여자 B는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 지속된 육아 경험이, 지금은 ‘습관’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본인이 학창시절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기 때문에 열심히 두 딸을 교육시켰다. 두 딸은 각자의 가정에서 남편보다 경제적으로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으며, 참여자는 ‘사회인’으로서 활발히 제 몫을 하고 있는 두 딸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참여자는 두 딸이 사회생활을 하며 고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손자녀 양육과 가사지원에 대한 경제적 사례를 받지 않고 있다.

연구참여자 B는 손자녀를 양육하는 현재의 생활에 보람을 느끼고 있으나 자신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모습을 딸들에게 보일 경우, 두 딸이 서로를 탓하기 때문에 손자녀 육아에서의 힘든 점은 딸들에게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한다. 참여자 B에게 가장 큰 심리적 의지가 되는 사람은 시누이로, 시누이 역시 외손자녀 양육을 지원하고 있다.

참여자는 18년 동안의 손자녀 육아로 우리 사회의 육아 지원정책의 변화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였다. 그는 우리 사회의 육아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는 상당한 발전을 했으며,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3) 연구참여자 C

연구참여자 C는 54년생으로 83년생인 쌍둥이 딸을 슬하에 두고 있고, 장녀는 패션업계에서 근무하고 있다. 연구참여자 C는 ‘여성이라도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 뒤처진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장녀의 임신 전부터 자신이 외손자녀의 육아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공언했다고 한다. 그 계획대로 장녀가 사회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외손자녀 육아를 지원하고 있다.

연구참여자 C의 장녀가 근무 중인 직장은 장기간의 육아휴직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참여자 C가 손자녀 육아를 지원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다. 참여자 C는 부모들의 육아를 위해 직장 내 야근 감소와 육아휴직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등, 기업 전체의 체계가 변화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차녀는 현재는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차녀에게는 육아 및 가사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연구참여자 C의 장녀는 주중에는 친정어머니인 C의 집에 머물면서, 아이를 친정어머니와 함께 양육하며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 자신의 집으로 아이와 돌아간다. 사위는 평일에 혼자 자신의 집에 거주하며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만 아내와 아이를 만나고 있다. 연구참여자 C는 남성인 사위보다 여성인 자신의 딸이 육아를 더 담당해야 한다고 했으며, 향후 손자녀 양육 지원을 위해 장녀가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주하길 바라고 있었다.

육아 방식에 대해 장녀와 갈등은 없으나,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짧은 손녀가 느낄 불안감에 대해 걱정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이 손자녀의 성장에 올바른 환경인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참여자 C는 손자녀 육아를 통해 개인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으며, 외조부인 참여자의 남편도 아내를 도와 적극적으로 손자녀 육아에 참여하고 있었다. 가사는 가사도우미의 지원을 받고 있어서, 자신은 손자녀 육아에 전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4) 연구참여자 D

연구참여자 D는 57년생으로, 슬하에 81년생 아들, 82년생인 장녀와 83년생인 차녀를 두었다. 참여자는 1988년에 암으로 남편과 사별했다. 현재 미혼인 차녀와 함께 살고 있으며, 장녀는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참여자 D는 장녀의 10개월 된 딸의 육아를 지원하고 있으며, 장녀는 프리랜서 피아노 강사이다. 딸은 평일 오전에 손녀와 친정에 도착하여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점심식사 후 출근하며, 저녁에는 친정으로 퇴근하여 손녀를 데리고 함께 귀가한다.

참여자 D는 딸의 직업을 비교적 편한 업무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갖고 있다. 장녀의 사회활동에 대해서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연구참여자 D 역시 탈북민을 지원하는 선교사로서 사회생활을 최근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사회생활은 개인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기혼여성이 가사 때문에 사회생활을 중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활동에 긍정적인 반면, 남성의 육아 참여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 성 역할에 대한 양가적인 사고를 보였다. 육아와 성 역할에 대해 자신이 모순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으며, 자신과 같은 사고방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라는 의견을 펼치기도 했다.

참여자 D는 손자녀 양육 지원으로 인해 신체적, 사회적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으나, 자신이 젊었던 시절, 친정어머니가 자신의 자녀를 돌봐주셨던 일을 떠올리며 ‘그 때 하지 못했던 자녀 양육을 지금 손자녀 양육으로 대신 하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향후에도 계속 손자녀 양육 지원을 하고 싶어 했으며, 이를 위해 장녀 부부가 친정 근거리로 이사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5) 연구참여자 E

연구참여자 E는 1950년생으로 78년생인 장녀와 94년생인 아들을 두고 있다. 결혼 전부터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까지 약 20년간 중소기업에서 근무하였다. 당시 시누이로부터 육아 지원을 받았고, 1994년에 늦둥이 아들을 낳은 후 퇴직하였다. 연구참여자 E의 딸은 현재 지방은행의 서울지점에서 근무 중이며, E는 2008년생인 손녀, 2014년생인 손자의 양육을 지원하고 있다. 딸은 연구참여자의 양육 지원을 받기 위해 출산 후 친정집과 같은 아파트 단지의 앞 동으로 이사 왔으며, 참여자 E는 딸의 육아휴직 기간인 2년을 제외한 약 10년간, 손자녀의 양육을 담당하였다. 특히 딸이 지방에서 근무했던 1년 반 동안은 딸이 퇴근 후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늦은 밤까지도 손자녀의 육아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연구참여자 E는 이른 아침부터 딸 부부가 퇴근하는 저녁 시간까지 딸 집에 머물며 손자녀를 돌보고 있다. 남편과는 몇 년 전에 사별하였고, 남편은 생전 손주들을 함께 돌봐주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E가 외부활동이나 약속이 있을 때는 연구참여자의 아들이 손자녀, 즉 조카들을 돌보기도 한다. 손자녀 육아로 인한 어려운 점으로 손자녀에게 시간이 묶여 개인적으로 시간 활용을 할 수 없다는 점과 신체적인 어려움을 언급했다. 또한, 손자녀가 학령기에 진입함으로써 자신이 손자녀의 학습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딸의 심적 안정감을 위해 당연히 친정어머니인 자신이 외손자녀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안사돈과 자신이 돌아가며 육아 지원을 할 경우, 오히려 손자녀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딸 역시 시어머니로부터 받는 육아 지원에는 부담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참여자 E는 우리 사회의 육아 지원 시스템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강하게 언급하였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엄마가 육아에 전념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나, 이로 인해 여성의 사회활동이 사실상 중단된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육아휴직 서비스의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탄력근무제와 같은 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6) 연구참여자 F

연구참여자 F는 53년생으로 사회생활 경험은 없으며 결혼 후 바르게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83년생인 딸과 84년생인 아들을 양육하였다. 현재 쌍둥이인 외손자들의 육아를 지원하고 있다. 딸은 교육공무원으로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딸은 출산 전에 연구참여자 F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해왔으며, 연구참여자는 딸의 출산 전부터 딸의 집과 자신의 집을 매일 왕래하며 양육과 살림을 돕고 있다.

연구참여자 F는 자신의 딸이 합격하기 힘든 교육공무원 시험을 통과하여 유치원 교사로서 근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여성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 당연히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참여자의 아들은 최근에 결혼했으나, 딸 부부의 육아와 살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과는 달리, 아들 부부의 생활에는 관여할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친정어머니이기 때문에 딸의 살림은 자유롭고 편하게 돌볼 수 있으나, 아들 부부의 살림은 사실상 ‘며느리의 살림’이기 때문에 아들 집을 방문하거나 그들의 생활에 관여하기 어렵다고 했다.

손자녀 육아로 인한 힘든 점은 육체적 피곤함과 시간 부족으로 개인적인 외부활동이 제한된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나 연구참여자는 조부모 양육을 받은 아이가 정서적 안정감이 높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자신이 손자녀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과 손자녀들로 인해 웃을 일이 생겨서 좋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연구참여자는 손자녀들을 타인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아 했고, 당연히 외할머니인 자신이 손자녀 육아를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구참여자의 남편은 가끔 딸의 집에 와서 손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이었다. 사위는 연구참여자가 이른 아침, 딸 집에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출근을 하기 때문에 매일 만나지는 못하지만, 주말에는 자주 만나는 편이다. 교육공무원인 딸은 휴가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아이들을 병원 진료 등의 일은 주로 사위가 휴가를 내고 담당하고 있었다.

(7) 연구참여자 G

연구참여자 G는 56년생으로 사회생활 경험은 없으며 슬하에 81년생인 딸과 82년생인 아들을 두었다. 현재는 언론계 공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딸을 대신해 외손자녀의 육아를 담당하고 있다. 연구참여자는 어렵게 입사한 딸이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손자가 16개월 때부터 본격적으로 육아를 전담해오고 있다. 안사돈은 지방에 거주하고 있으며, 친정어머니인 자기가 손자녀 양육을 담당하는 것이 딸도 편할 것으로 생각하여 손자녀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들 역시 혼인하여 자녀를 두고 있지만, 연구참여자 G는 친손자 양육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자신과 며느리의 양육방식이 다르며, 며느리는 딸처럼 편하게 대할 수 없으므로 친손자녀는 헌신적으로 돌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구참여자는 손자녀의 학원 등원 관리 등 손자녀의 교육도 전담하고 있었으나, 딸 내외가 연구참여자에게 ‘자신의 자녀 돌봄’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에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노화로 인한 체력 저하도 고통스러운 점이었다. 그럼에도 연구참여자는 손자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손자녀를 양육하는 동네 할머니들과 모임을 통해 힘을 얻고 있었다.

한편 연구참여자 G의 남편은 손자녀 육아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다. 만약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같은 남성이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아이들의 올바른 성 역할 정립을 위해서라도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직장 내나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지만 않는다면, 남성들도 육아휴직을 내서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같이 보며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2) 사례 간 분석

연구참여자 7명의 사례를 전체적, 맥락적으로 분석한 후 코드화 작업을 통해 7개의 범주와 15개의 주제를 도출했다. 각각의 범주와 주제는 <표 2>와 같다.

<표 2> 
범주와 주제
범주 주제
(1) 딸을 응원하는 모정(母情) ① 내 딸은 ‘사회인’
② 딸처럼 손자녀를 껴안다
(2) 딸의 사회활동에 대한 양가감정 ① 나의 자부심인 우리딸
② 토닥여주고 싶은 딸의 어깨
(3) 아직도 공고한 전통적 성역할 ① 여전히 남자의 중요한 역할인 경제활동
② 그래도 육아 담당자는 ‘엄마’
③ 어려운 존재, 딸의 ‘시어머니’
(4) 손자녀와의 소중한 만남 ① 성취지위로서의 ‘할머니’
② 사랑스러운 손자녀
(5) 벗어날 수 없는 육아의 굴레 ① 힘에 부치는 아이 돌봄
② 손자녀에게 묶여버린 나의 일상
(6) 내 삶의 버팀목 ① 가족, 든든한 나의 지원군
② 소홀히 할 수 없는 개인 생활
(7) 행복한 육아를 위한 시작 ① 현재의 보육 시스템에 대한 한계
② 육아 친화적인 근로 시스템 변화 필요

(1) 딸을 응원하는 모정(母情)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딸이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무리 없이 지속할 수 있도록 실질적, 심리적 지원을 하고 있다.

① 내 딸은 ‘사회인’

연구참여자들은 본인의 딸들이 과거 자신들과 달리 결혼과 출산 후에도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지속할 수 있길 기대했다.

“엄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 왜 그러냐면 일단 맞벌이를 해야 하고 여자가 너무 집에만 있으면은 뒤떨어지는 것 같아서. (중략) 임신했었을 때부터 그게(출산 후 출근할 직장이) 정해지지 않으면은 불안하고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데, (지금 회사에 딸이) 어느 정도 적응도 했고 하니까 그만두는 게 좀 아까워서 내가 임신하자마자 내가 키워주겠다고 했어. 엄마들 마음은 다 그래.” (연구참여자 C)

연구참여자 C는 “엄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일단 맞벌이를 해야 하고”, “여자가 집에만 있으면 뒤떨어지는 것 같아서”라는 표현을 통해, 딸의 사회활동을 당연한 것으로 언급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자신이 손자녀 육아에 참여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라는 신념을 보이고 있었다.

“젊었는데 아직. 지 할 일은 해야지. (중략) 그만큼 배운 게 있으면 사회에다가 환원을 해 줘야지. 그죠? (웃음) 그런 생각은 들어요. 그냥 집에서 애만 기르면. 물론 애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 중요하지만, 조그만 할 땐 그렇고, 조금 더 커서 엄마, 아버지가 필요하겠지만, 아직은 뭐, 그렇게까지.” (연구참여자 D)

연구참여자 D는 “교육을 받은 만큼의 사회환원을 해야 한다”라는 표현을 통해, 딸이 사회활동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딸이 받았던 교육이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길 원하고 있었다. 자신의 딸이 ‘엄마’로서 자녀를 양육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연구참여자 D에게는 더 중요한 가치였다.

“쟤네들(자녀들)이 열심히 공부를 했잖아. 힘든 공부를 한 것만큼 집에서 썩히기가 좀 아깝더라고. 나는 며느리든 딸이든 사회활동하는 걸 좋아해요. (중략) 다니다 말고 그만두는 엄마들이 참 아깝지. 솔직히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어. 나가서 활동을 해야 사람이 내가 퇴보가 안 돼. 집에서 애만 보고 있으면 몸은 편하겠지. 물론 금전적인 것도 있겠지만. 사람이 발전이 없어.” (연구참여자 F)

연구참여자 F 역시 “나가서 활동을 해야 사람이 퇴보가 안 돼.”라고 말하면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자녀가 10대, 20대에 공부했던 결과물이 사회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추구에 반영되길 원했다. 즉,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딸이 ‘엄마’나 ‘주부’로서 가정에 머무는 것보다 ‘사회인’으로서 활동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딸이 현재 갖고 있는 사회적 역할이나 지위는 노력의 결과물로 여기고 있었으며 사회활동을 통해 ‘사회인’으로서 딸이 발전해가길 바라고 있다. 이같이 딸의 사회활동에 대한 친정어머니의 적극적인 뒷받침의 동력은 딸과 자신이 동성(同性)이라는 점, 혼인과 출산을 통해 딸 역시 ‘엄마’, ‘아내’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부여받게 되었다는 젠더적 동질성에서 출발할 것이다. 그러나 연구참여자들은 외손자녀의 육아로 딸의 사회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동시에, ‘아들 못지 않게 교육 시킨 딸’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참여자들의 딸들은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었으며 대학원을 졸업했거나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경우도 있었다. 또한,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한 시험 준비 기간을 따로 갖는 등, 연구참여자들의 딸들은 우리 사회의 고학력자들이었다. 이는 자녀의 교육과 이로 이어지는 직업 선택 과정에 연구참여자들의 투자와 헌신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들에게 딸의 사회적 성취가 중요한 이유를 나타내고 있다.

② 딸처럼 손자녀를 껴안다

연구참여자들은 딸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손자녀 양육에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손자녀 양육을 누군가 담당해야 한다면, 타인보다 친정어머니인 자신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안정적이며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 달인가 백일까지 휴가 있잖아. 출산휴가 같은 거 그때는 (육아도우미) 사람도 있고, 근데 사람을 백 프로 믿기 어려우니까 나도 있고, 사람은 아침에 왔다가 저녁에 가고, 그래서 아줌마가 계속 오느냐 내가 왔다 갔다 할 거냐 해서 그래도 (친정) 엄마가 하는 게 더 안심이잖아. 그래서 아줌마 안 두고 내가 있게 된 거야. (중략) 나는 아이들 키우는 게 굉장히 귀중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이걸 남한테 대입을 하면(다른 사람들한테 이 애정과 수고를 준다고 생각하면) 계산이 안 나와.” (연구참여자 A)
“결혼해가지고 (손자녀가) 빨리 생기면 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키워줘야지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얘 바로 위에 바로 연년생 또 있어, 위에. 작은딸. 딸 둘인데 걔도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있지 않았지만, 주거를 같이하진 않았지만 거의 같이 양육하다시피 했지, 내가. 그러다가 얘는 완전히 주거를 같이하고 있고.” (연구참여자 C)

연구참여자 A는 ‘친정엄마인 자신이 딸의 자녀를 돌보는 것이 더 안심’이라고 했으며, 연구참여자 C는 손자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당연히 자신이 손자녀 육아를 지원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에게 있어 손자녀 육아 지원은 딸을 위한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연구참여자들에게 있어 딸의 사회활동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또한, 육아를 연구참여자들에게 부탁하는 딸 뿐 아니라, 실제 육아를 담당하는 연구참여자들 역시 ‘혈연관계의 사적 보육체계’를 더욱 선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딸의 사회활동에 대한 양가감정

연구참여자들은 딸이 사회생활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과 동시에, 직장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딸의 모습에 안쓰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① 나의 자부심인 우리딸

연구참여자들은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존재로 딸들을 키워냈으며, 성장 후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가며 살고 있는 딸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OO(큰딸 이름)가 OO 외고를 들어가서 막 케익 사고 축하하고 그랬던 기억도 나고. 딸이 지금 외국인 회사 다니는데 OO(외국계 회사)에 구매부에 있고, 상당히 일을 많이 하는데, 다 영어로 해야 한대.” (연구참여자 A)

연구참여자 A는 딸이 외고를 나온 것과 현재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것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사회인’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딸에 대한 자부심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저는 공부를 많이 못 했어요. 사실 공부를 많이 못 해서, 많이 아팠고, 많이 못 해서 그…. 우리(애들은) 80년대(생) 애잖아요. (중략) 양쪽 시댁이나 친정이나 넉넉지도 않고 그래서 힘들었는데, 그래도 애만큼은 내가 못 배웠기 때문에 진짜 힘써(강조) 가르쳤어요. 그리고 또 그만큼 따라줘가지고, 사춘기 같은 거 없이 잘 지내가지고.” (연구참여자 B)

연구참여자 B는 자신이 청소년기에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강조하며 그에 대한 아쉬움으로 자녀교육에 헌신했음을 밝혔다. 또한, 자녀들이 80년대 생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본인이 성장기를 보냈던 과거와 자녀가 성장기를 보낸 시기의 교육수준의 변화와 성 역할에 대한 변화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1년 공부를 해가지고, 결혼하고 1년 공부해가지고 시험이 된 거지. 서울시 같은 경우는 시험 한 달 두고는 안 뽑는다, 몇 명 뽑는다, 그런 게 나와요. 서울시에는 몇 명 안 뽑아요.” (연구참여자 F)
“지금 10년 차 넘었어. 자리를 완전히 잡았어. (중략) 일단 공기업이니까 63세인가 몇 살까지는 자기가 다닐 수 있고, 사표 내지 않는 한 그냥 철밥통이니까.” (연구참여자 G)

연구참여자 F와 G는 자신의 딸이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연구참여자 F는 딸이 1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의 준비를 통해 교육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으며, 연구참여자 G 역시 ‘철밥통’이라 표현을 통해서 딸의 직업이 안정적이라는 점에 만족했다.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딸이 성실하게 성장기를 보내고 그 후에도 본인의 노력을 통해 현재의 직업을 성취해냈다는 점에서 딸에 대한 자부심을 상당히 느끼고 있었다.

② 토닥여주고 싶은 딸의 어깨

앞의 내용처럼 딸의 사회적 역량과 역할은 연구참여자들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딸이 육아와 직장생활 양쪽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녹록지 않은 삶의 현장에 서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런 딸의 모습에 연구참여자들은 안타까워했으며, 딸의 고생을 덜어주고 싶어했다.

“용돈…. 몰라, 며느리면은 내가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아들이 없어서, 둘 다 딸이니까. 너무 아깝고 못 받겠어. (눈물이 고임) 고생하니까 애들이.” (연구참여자 B)
“딸이 더, 자기 일하는 거랑 가사일 하는 거랑 애기랑 막 이렇게 정신없이 하는 것이 안쓰럽고. (중략) 내가 생각하기에는, 딸이 안 힘들게 하는 게 더 좋은 거 같애. 딸이 안 힘들게. 그게 제일 먼저인 거 같아요. 이 애기(손자녀)보다도, 쟤(딸)가 안 힘들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데.” (연구참여자 D)

연구참여자 B는 딸이 자신에게 주는 용돈이 ‘아깝다’라는 말로 딸의 삶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했으며, 연구참여자 D는 딸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에 대해 안쓰러움을 느꼈다. 연구참여자들은 외손자녀에 대한 애정도 물론 갖고 있으나, 그보다도 딸이 힘들지 않게 ‘엄마’인 자신이 딸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손주도 이쁘지마는, 내 자식이 힘드니까 도와주는 거야. 물론 손주도 이뻐. 내 자식이 힘드니까 내가 도와주는 거지. 어떨 때는 (딸이) 많이 기특하죠. 기특하면서도 힘든 건 알아요. 힘들지. 짠하지.” (연구참여자 F)

연구참여자 F 또한 연구참여자 B와 같이 “기특하면서도 짠하다”라는 표현으로 ‘고생하는 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은 과거와 달리 기혼여성도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딸이 직업을 유지하며 사회활동을 하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서 안쓰러움을 느끼고 있었으며, 딸을 도와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존재는 ‘친정어머니’인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연구참여자들이 손자녀 양육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3) 아직도 공고한 전통적인 성 역할

자신의 딸이 사회인으로서 지속적인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한 자부심도 느끼고 있는 연구참여자들임에도, 여전히 전통적인 성 역할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① 여전히 남자의 중요한 역할인 경제활동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딸이 사회생활과 육아, 가사를 병행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딸의 남편’, 다시 말하면 연구참여자들의 사위는 가정에서 어떠한 역할과 위치를 취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친정어머니인 연구참여자들이 육아와 가사를 돕기 위해 자주 방문하는 ‘딸의 집’은 엄밀하게 말하면 ‘딸 부부의 집’이기 때문이다.

“사위가 육아휴직 내는 거는 별로 원치 않아. 사위가 육아휴직 하는 거는 전문직이면 1년 육아 휴직하고서 다시 회사를 가도 되지만 그럴 것 같으면 딸이 해야지. 내 생각에는 그래. 그래도 집안에는 남자가 직장생활이라든지 뭐든지. 치열하잖아. 남자들이. 만약에 한다고 하면 내가 애 봐준다고 그러지. 그런데 전문직이라서 나중에 진급이라든가 이런 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그렇지.” (연구참여자 C)

연구참여자 C는 사위의 육아휴직에 대한 언급을 통해, 남성과 여성 중 전적으로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면 여성이 담당하는 것이 옳다는 인식을 비추고 있었다. 연구참여자 C는 ‘여자도 집안일만 돌볼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의견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육아는 ‘엄마’의 일이며, ‘남자’는 ‘직장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사위가 휴직을 이용하여 육아를 하는 것보다 자신이 육아를 담당하는 것이 연구참여자 C에게는 더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들은 생각이 많이 바뀌어야 해요. 만약에 그렇게 되면 나 같은 경우가 되는 거야. 저 놈(자신의 아들)이 미쳤나, 기껏 공부 가르쳐 놨는데. 아들딸 없이 다 가르쳤잖아요. 가르쳤는데, 내 아들이 육아휴직 한다고 하면 어떤 집에서 좋아하겠어. 결혼하자마자, 금방들 애 낳아서 그러면. 좋아하는 사람들 아무도 없을 것 같애. 그래서 더 남자가 (육아휴직을) 할 수 있어도 못하는 것 아닌가. (중략) 아들이 애(친손자)를 업었는데 얼마나 기분이 안 좋은지! 그니까, 내 마음이, 저 새끼가 미쳤나 막 이런 마음이,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들이 그랬을 때.” (연구참여자 D)

연구참여자 D는 자신의 성 역할 인식이 사회의 변화에 뒤떨어져 있음을 인지함에도, 아들과 사위의 육아휴직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딸의 사회적 활동에 대해 ‘배운 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표현했음에도, 자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들의 모습에 대해서는 속상함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그거(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는 할 수 없이 하겠죠? 그런데 저는 별로인 거 같아, 그거는.” (연구참여자 E)

연구참여자 E 또한 남성이 육아를 전담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남성들이 어쩔 수 없이 육아휴직을 선택할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으나, 긍정적 입장은 결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는 연구참여자들이 여성인 딸에게 투영되는 성역할과, 남성인 아들과 사위에게 투영되는 성역할이 각기 다르게 선택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여성인 딸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성역할보다 현대적 가치인 자아실현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남성인 아들이나 사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성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는 연구참여자들의 ‘코호트적’ 특성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남녀 동등한 수준의 교육 시스템에서 수학(修學)하였고, 성별보다 개인의 의지와 능력을 존중하는 사회적 경험 또한 했다. 그러나 성장기 때 가정에서 학습되고 경험한 성 역할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특징을 보였다. 즉, 이들은 성역할에 대한 양가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② 그래도 육아 담당자는 ‘엄마’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이 딸의 사회활동을 위해 손자녀를 돌보고 있지만, 자신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이며 임시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손자녀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엄마’라는 것이다.

“엄마이기 때문에 넘어가는데 할머니한테는 안 통하는 게 있어. 내(할머니)가 아무리 해도 애들 엄마가 할 일이 있다는 그 말이 뭐냐면, 애(손주)들이 아침이 엄마(딸) 없이 시작하는 아침…. 애(손주)들이 자는 중이어도 애들 엄마가 OO아 나 간다, OO아 나 간다” 이렇게 하고 가는데 그 말을 안 하고 가면 애들(손주)이 굉장히 싫어해. 애들이 엄마를 보내고 나면 그 허탈함이 아침에 쓱 흘러. 집안에 그걸 내가 커버하려고 애들 눈치도 싹 보고, 어느 날은 안 풀리기도 하고. 엄마 없이 시작하는 그 아침을 내가 책임지는 거지.” (연구참여자 A)

연구참여자 A는 손자녀가 엄마와 떨어졌을 때 갖는 불안한 감정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할머니인 자신이 엄마인 딸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것, 손자녀가 엄마의 부재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은 연구참여자 A의 큰 걱정거리였다. 연구참여자 A는 손자녀가 느끼는 공허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손자녀의 공허한 정서는 엄마만이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내가 관리를 해줄 수가 있는 것 같은데, 애 관리가 사춘기도 있고 그럴 때는 내가 못 해주지. 그때는 엄마가 해야지.” (연구참여자 C)
“자식은 의무니까 내가 교육을 시켜야 하지만, 손주는 사랑만 주면 돼. (중략) 할머니가 아무리 잘한다 해도 엄마가 필요한 역할이 있거든. 할머니가 해줄 수 없는 게 있다고.” (연구참여자 F)

연구참여자 C는 손자녀가 엄마인 자신의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손자녀의 엄마에 대한 인식이나 엄마와의 정서 교감이 부족한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특히 향후 예상되는 손자녀와의 갈등을 걱정하며, 본인이 외할머니로서 현재 담당할 수 있는 부분은 담당하지만 ‘엄마(딸)만이 손자녀에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라며, 자신은 양육에서 보조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손자녀에 대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은 훗날 딸이 담당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위’의 육아에 대한 역할과 책임감에 대해서 연구참여자들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육아’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엄마’이며, ‘아빠’는 그 위치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인 자신의 딸이 사실상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당연히 역시 ‘엄마’인 본인들이 외손자녀의 육아를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구참여자들은 딸의 사회생활 여부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였음에도, 그 외 가정 내 성역할 인식은 과거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③ 어려운 존재, 딸의 ‘시어머니’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자녀 양육과 자신의 사생활을 보이는 것은 부부가 동일하게 경제생활을 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꺼려지는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연구참여자들의 딸들은 친정어머니인 연구참여자들에게 육아를 부탁했고, 이것에 대해서 연구참여자들은 같은 ‘며느리’의 위치로서 지극히 공감하고 있었다.

“언제 힘들 때 애(딸)한테 ‘너네 시어머니는 (손자녀 육아 담당을) 못하신대니?’라고 한 적 있는데 딸이 ‘엄마, 시어머니는 못하셔.’ 그러더라. 자기가 싫대. 시어머니한테 맡긴 사람 보면 평생 죄인이래. 살림도 그래. 애들 집에 가면 속옷 같은 거도 나오는데, ‘얘는 왜 속옷을 이렇게 입어?’ 하는데 시어머니는 못하시겠지.” (연구참여자 A)

연구참여자 A는 ‘죄인’이라는 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딸의 시어머니가 손자녀 양육을 담당하게 될 경우 딸이 겪을 고충에 대한 공감을 나타냈다.

“‘시’잖아, ‘시’! (웃음) 그래서 그런 거 같애, 내가 생각하기에는.(웃음) 얘 엄마(정보제공자의 딸)가 그러더라고. 시어머니가 봐주는 거는 싫다는 거야. 지금 시대가 그런가 봐, 시대가. (웃음, 중략) (안사돈이) 처갓집 근처로 이사하면 안 된대. 처갓집이라고 가까워진다고. 안 된다고 자꾸 그러는 걸, 지금 신랑(사위)이 자꾸 시댁한테 이야기를 해서, 많이 수그러지긴 했는데 아직도 오케이를 안 하시는 거야. 그래서 지금 그냥 그러고 있어요. 가까운 데로 이사를 와야, 나도 편하고 지도 편하고. 저녁에 데리고 다니기도 편하고 그럴 텐데.” (연구참여자 D)

연구참여자들은 딸이 갖고 있는 ‘시어머니’에 대한 부담감을 공감했고, 본인 역시 딸의 시어머니인 안사돈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연구참여자D의 사례에서는 친정어머니인 D가 손자녀 육아를 전담하고 있음에도, 딸의 시어머니는 딸 부부가 친정 근처로 이사하는 것에 특별한 이유 없이 반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연구참여자 D는 ‘아쉬움’을 나타낼 뿐 불만 등의 적극적인 감정은 나타내지 않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도 사위의 중재만 기대하는 등의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감정적 거리를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감정적 거리까지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모녀 관계와는 달리 다양한 맥락의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으로 보인다(이정연, 2002). 즉, 여전히 ‘기혼여성’에게 있어 ‘시집’은 우리 사회 특유의 가부장적 분위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존재였다. 친정어머니들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며느리’라는 공통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딸에게 동료적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4) 손자녀와의 소중한 만남

정보제공자들은 딸의 사회적 활동을 지원하는 ‘친정엄마’의 마음으로 손자녀 육아를 시작했지만, ‘외할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① 성취지위로서의 ‘할머니’

삶에서 당연한 과정이라고 여겨지던 결혼과 출산이 개인의 선택사항으로 인식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연구참여자들은 ‘할머니’라는 지위를 ‘성취지위’로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 된 게 되게 자랑스러운 거야. 그래서 나는 할머니 돼서 나이 먹은 걸 줄이거나 그러지 않고, 할머니 그러면 싫다고 하는 게 아니라 자랑스럽고, 속으로 ‘할머니가 아무나 되는 줄 아니?’라고 생각해.” (연구참여자 A)
“요즘엔 세상이 별나서 결혼하고도 애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애 가지면 좋은 거지. 그렇더라고, 우리 또래들 보니까. 애 안 나도 걱정, 못 낳아도 걱정. 낳아놓고 길러줄망정 낳아라. 그게 더 편한 거야.” (연구참여자 D)

연구참여자 A와 D는 손자녀로 인해 얻게 된 ‘할머니’라는 지위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들에게 있어서 ‘손자녀’는 스스로를 특별하게 인식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이것은 자녀출산을 하지 않거나, 난임 부부가 많은 사회 분위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딸 부부의 출산을 통해 자신이 ‘할머니’의 역할을 취하게 된 것은 딸의 사회적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다른 종류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다.

② 사랑스러운 손자녀

‘할머니’를 ‘성취지위’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연구참여자들은 손자녀 역시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아이들이 얼마나 귀하니. 이 아이들(손자녀)이 사랑을 먹고 자라야 하는데 이걸 누가 하겠니. 다른 사람은 못 해, 이거. (남들은) 그냥 하는 거고, 우리는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 너무나 귀하잖아.” (연구참여자 A)
“물론 상황에 따라 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손자녀 육아에 대한 지원을 안 하는 것을 의미), 웬만한 마음 가지고는 안 봐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이쁘잖아요. (웃음) 이쁜 마음에 더 봐주겠지.” (연구참여자 D)

연구참여자 A는 손자녀를 귀한 존재라고 여겼고, 타인은 느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손자녀 양육 지원을 하고 있었다. 연구참여자 D도 A와 마찬가지로 손자녀 존재의 소중함을 표현하며, 이를 자발적으로 양육을 지원하게 된 이유라고 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은 수월하고 지속적인 딸의 사회생활을 위해 손자녀 육아를 담당하고도 있지만 동시에 손자녀 자체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역시 지니고 있다. 즉, ‘친정어머니’이자 ‘외할머니’인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딸과 외손자녀들을 동시에 돌보는 ‘이중돌봄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5) 벗어날 수 없는 육아의 굴레

딸과 손자녀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 애정으로 시작한 손자녀 육아이지만, 연구참여자들은 손자녀 육아로 인해 신체적, 심리적인 고통을 겪고 있었다.

① 힘에 부치는 아이돌봄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딸과 손자녀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을 느끼고 있음에도 손자녀 육아는 이들에게 신체적, 심리적으로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방학이 좀 힘든 거 같아. 애들. 점심까지 차려야 돼.” (연구참여자 A)
“큰 애(장녀)가 애들 다 길러 놓고 나서 (현재 나이가) 4살짜리를 또 낳았어요. 그리고 이때가 손이 많이 가고, 직장 다니면서 살림도 다 해줘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 근데 애기가 좀 컸다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게 아니에요. 더 많아. 이 사춘기가 더 무서워요. 애 기르는 것보다 훨씬 힘들어. 고2 사춘기도 그렇고, 중2 사춘기도 그렇고, 얘네들 비위 맞추기가. 머리털이 서요.” (연구참여자 B)

연구참여자 B는 손자녀의 연령과는 상관없이 양육 지원의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이가 어린 손자녀는 지속적인 보호와 관심이, 사춘기에 접어든 손자녀는 심리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며, 손자녀가 청소년기가 되었다고 양육이 수월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아줌마(가사도우미)를 쓰면 훨씬 낫지. 요즘만 써. 요즘 일주일에 두세 번. 근데 그 정도만 쓰면, 그냥 이렇게 키워줄 만해. 애기는 내가 전적으로 봐주고. 집안일만 안 해도. 애기 어렸을 때는 우유병 닦는 것도 엄청 그게 일이거든. 이유식 만들고. 한 7개월 지나면은. 그니까 직장맘들은 아줌마를 쓰지 않으면은 혼자는 못해. (중략) 친정엄마가 나이 한 살이라도 젊으실 때 결혼을 하면 좋아. 친정엄마 체력이 자꾸만 떨어지잖아.” (연구참여자 C)
“제가 느낀 거는, (친정엄마 나이가) 60 아래로 자녀들이 결혼을 해서 (엄마가) 젊었을 때, 친정엄마도 젊었을 때 애를 길러줘야지, 60이 넘으니까 힘들어요. 내가 허리 때문에 힘든 것보다도, 하여튼 따라주지를 않아, 체력적으로. 내가 킬로 수(몸무게)가 애 보면서 한 4, 5키로가 그냥 줄은 거야.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얘 저기하고부터는(돌보고부터는) 킬로 수가 정말 많이 빠진 거지. 다른 때에 비해서. 그러니까 내 체력이 못 따라가는 거야.” (연구참여자D)

연구참여자 C와 연구참여자 D는 나이가 들어가며 손자녀 육아에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연구참여자 C는 손자녀 돌봄 시 가사도우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으며, 연구참여자 D는 손자녀 육아로 인해 몸무게가 감소하는 경험을 했다. 두 연구참여자 모두 손자녀 양육 지원에 신체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건강저하를 느끼고 있기도 했다. 이는 손자녀 육아가 조모들의 건강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② 손자녀에게 묶여버린 나의 일상

연구참여자들은 손자녀 양육을 맡게 되면서 자유로운 일상을 포기해야만 했다. 기존의 사회활동이나 친구들과의 만남 등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처럼 손자녀에게 묶여버린 일상은 연구참여자들의 스트레스를 심화시켰다.

“항상 대기 중이에요. (손자녀가 어린이집에) 갔다고 해서 내 일 끝난 거 아니야. 항상 대기 중이야. 그리고 달린다든가 포대기를 들고 달린다든가 그래야 해요. (중략) 저녁에도 내가 다 데리고 자거든. 그러니까 밤잠을 잘…. 큰 애들 둘은 키울 때 내가 밤잠을 못 자봤어요. 주로 밤에도 업고 있었고. 지금 중2짜리가 굉장히 까다롭고, 진짜 힘들게 컸어요. 의사 선생님이 ‘할머니한테 효도해라’ 할 정도로다가. 하루에 병원을 세 번씩 업고 다녔으니까.” (연구참여자 B)

연구참여자 B는 손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긴 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손자녀를 위해 항시 ‘대기’하고 있으며, 심지어 취침시간에도 손자녀를 업고 있는 등, 하루의 모든 일상생활은 손자녀에게 맞춰져 있었다.

“끝이 없어. 애 한 번 이렇게 봐주기 시작하니까 어느 선에서 끊어야 할지 어려운 거지.” (연구참여자 C)
“사회적 관계가, 완전히 요고, 이 가족관계만 갖고 사는 거니까, 가끔은 내가 왜 사는 건지,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나가서 볼 일이 없으니까. 친구들하고, 그 전에는 돌아다니기도 잘 돌아다녔고, 여행도 많이 다녔고 이제 그러는데, 왔다 갔다를 안 하니까, 그렇더라고. 힘들고, 내 생활이 없잖아. (웃음)” (연구참여자 D)
“내가 몇 년 동안을 바깥을 못 나갔어. 애기 보느라. 주말에는 피곤해서 또 쉬어야 하고, 충전을 해야 하니까.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지.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연구참여자 F)

연구참여자 C와 연구참여자 D, 연구참여자 F는 모두 손자녀 육아로 인해 개인의 일상을 잃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특히 연구참여자 D는 손자녀 양육 지원으로 인해 사회적 활동과 여가시간 향유가 불가능해지면서, 삶의 이유를 자문하게 되는 근본적인 혼란마저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딸과 손자녀를 위해 기꺼이 시작한 양육 지원이라도 오로지 가족관계로만 좁혀진 생활은 ‘외할머니’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6) 내 삶의 버팀목

손자녀 돌봄으로 인한 심리적, 신체적 괴로움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나, 이들은 애정과 책임감을 기반으로 하여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러한 생활을 지속해 오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연구참여자들을 지원해주는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바쁜 중에도 자신의 시간을 갖고자 노력한 덕분이기도 했다.

① 가족, 든든한 나의 지원군

연구참여자들에게 있어 손자녀 양육은 힘이 드는 일이지만 자신을 도와주는 남편과 고마워하는 딸 부부로 인해 지원을 지속해 나갈 수 있었다.

“할아버지도 애들 네 가서 손주들 한 번씩 보고 그런 게, 보고 힘을 얻는 거기도 하고, 날 도와주는 게 자기도 괜찮고 그래서…. 내가 전적으로…. 할아버지가 계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꼼짝 못 하지, 뭐. 14년 전만 해도 그게(남편이 육아에 참여하는 것이) 어색했지. 어색했어.” (연구참여자 A)
“할아버지가 퇴직하고 집에 계시니까 혼자 키우는 것보다는 같이 하니까 훨씬 나아. 내가 아침이면 수영도 갈 수 있게 해 주니까. 한 시간 반 정도 내가 딱 수영을 갔다 오지. 그렇게 하면 (할아버지가) OO(손녀)를 그때 봐주시고 내가 먹을 거를 준비해놓고, 이렇게 갔다 오면은 이제 밥 맥이고 그렇게 생활하고 있어서. (중략) 기쁜 거는 애 자라는 모습 보는 거고, 이렇게 해주면 사위가 고마워하지. 그런 것도 집안의 화목을 위해서 조금 도움이 된다고 할까?” (연구참여자 C)

연구참여자 A와 연구참여자 C는 남편이 손자녀 돌봄에서 보조적인 역할만을 담당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개인적 스케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남편의 도움, 손자녀의 성장 모습, 사위의 반응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듦에도 손자녀 육아를 지속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연구참여자들은 손자녀 육아를 역시 ‘외할머니’인 자신의 역할로 생각하고 있었다. 연구참여자들의 남편들은 이미 직장 은퇴로 시간적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할아버지인 남편은 어디까지나 손자녀 육아에서 보조적인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었다.

② 소홀히 할 수 없는 개인 생활

손자녀 육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연구참여자들은 틈틈이 시간을 내어 종교활동, 친구와의 만남, 운동을 통한 개인 활동을 지속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이 시간은 연구참여자들의 재충전의 기회이기도 했다.

“교회 중심 구역장 하니까 교회 일하고 지금 정도 시간 있으면 기도회 나가고 거기에 나는 만족하고…. 계절적으로 여름, 겨울 만나는 친구 있고. (웃음) 보통 아줌마들처럼 막 친구들끼리 여행가고, 이런 건 나는 하지도 않고, 내가 할 수 없어서 그런 건지 관심도 없어.” (연구참여자 A)
“(딸이) ‘엄마 운동해야 된다’ 그래가지고, 아무리 바빠도 해야 된다, 그래가지고 어린이집 딱 보내놓고, 다섯 살짜리 보내놓고 나서, 지(딸)가 가서 수영장을 끊어놓고 왔더라구. 그래서 시작한 거 쭉 해요.” (연구참여자B)

연구참여자 A는 종교활동, 사교모임을 통해 재충전을 하고 있었고, 이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여행에 대해서는 손자녀 양육으로 얽매인 일상으로 인하여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관심이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연구참여자 B와 같이 운동을 통해 개인 시간을 보내는 연구참여자도 있었다.

(7) 행복한 육아를 위한 시작

연구참여자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14년간 손자녀의 육아를 담당하면서 우리 사회의 육아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갖고 있었다.

① 현재의 사회적 보육 시스템에 대한 보완

연구참여자들은 어린이집의 수용인원의 한계, 엄마들의 짧은 육아휴직 때문에 아주 어린 손자녀도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는 환경 등을 언급하며, 지나치게 어린이집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육아 시스템 한계를 지적했다.

“처음에 시립 어린이집에 신청해놨는데, 안 됐어. 그런데 동생이 태어나니까 점수가 돼서 큰 애(큰 손자녀)가 시립 어린이집에 등록이 된다는 거예요. (딸이) ‘엄마, 얘를 좀 일찍 보내자’ 해가지고 2살인데, 내가 ‘너무 어리다’ 그랬더니, ‘지금 안 보내면 못 보내’ 하더라고. 이번에 안 보내면 내년에 될지 안 될지 모른다는 거지,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보니까 ‘엄마, 그냥 보내자’ 그러더라고. 잠깐 (하루에)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정도 보내자, 이렇게 된 거지. 그래가지고 그 때서부터 걔는 보냈어요.” (연구참여자 B)

위의 내용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것이 사실상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참여자 B는 2살인 손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기에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음에도, 향후 어린이집 입소 가능 시기를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어린이집 자리를 확보’ 하기 위에 어린이집에 손자녀를 등록시켰다.

“출근 시간도 자유자재로 바뀌는 회사도 있고, 애기도 회사에서 맡겨 갖고 하는 회사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니까 지금 어린이집에 맡겨 갖고 사고 나고 그러는 거가, 너무 우리나라 정책상, 우리나라 육아사업이 그게 틀렸다는 거 같애. 그게 틀린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너무 어린이집에만 의존을 해갖고. 어떻게 해서든 정부에서 하나라도 정부에서 더 뜯어먹으라고 그러잖아, 사실.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 더 올려. 그런 생각들이 바뀌지 않는 이상, 어린이집이나 뭐나, 돈 생각만 더 먼저 하는 거 같애. 첫째 아이 생각을 먼저 해야 하잖아. 아이들 생각을 먼저 해갖고 하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 우리나라의 지금 정책상(육아휴직이 길지 않기 때문에) 애들을 네 살 때까지 (부모가) 못 기른다고.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갖다가 맡겨야 할 입장이야, 지금.” (연구참여자 D)

연구참여자 D는 어린이집에서 발생했던 다수의 사고에 대해 걱정과 불안감을 보였다. 그 이유를 직장 내 보육시설 및 탄력적 육아휴직 시스템의 부족으로 인해 어린이집의 절대적 의존에서 찾았다. 또한, 직장 내 탄력근무제, 직장 어린이집 설치, 육아휴직과 같은 육아를 지원하는 시스템 구축을 통해 어린이집의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펼쳤다.

② 육아친화적 근로 시스템 변화 필요

연구참여자들은 사실상 딸 부부를 대신하여 ‘독박 손자녀 육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앞서 살펴봤듯이 이는 연구참여자들의 심리적, 체력적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연구참여자들에게 ‘손자녀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본인들을 위해 어떠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육아 친화적 근로 시스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는 연구참여자들이 생각하는 육아가 ‘누군가가 혼자서 담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해야 하는 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큰애가 OO(외국계 회사)에 있었는데, 그 직장 안에 어린이집이 생겼어. 그래서 첫 혜택자가 중1 된 손주지. 그래서 거기 다녔어. (중략) 딸네가 다 외국계 회사 다니니까, 다른 회사도 그렇겠지만 휴가 같은 거 잘 조정이 되나 봐. 그래서 내가 못 봐주는 날이 있거나 그러면 큰애가 휴가 내거나 자택근무 하면서 애들을 보기도 해. 옛날 말로 하면 ‘유도리’가 좀 있는 편이지.” (연구참여자 A)

연구참여자 A는 먼저 장녀가 근무하는 회사의 사내 어린이집 이용을 통해 손자녀 육아에 도움을 받았고, 휴가 조정이 수월한 직장 내 분위기 덕분에 자신의 상황에 맞춰 장녀가 휴가를 받거나 자택근무를 하며 자녀 돌봄에 함께 했다.

“야근이 없어야지. (중략) 육아휴직만큼은 그걸 쓰면 누가 와서 대체 인턴이 오던지 옆에 직원이 해줘야 되던지. 안 그러면 눈치도 보이고 그러니까. 회사에서 원하는 거는 퇴근 시간이 좀 일렀으면 좋겠는 거지. 그리고 애기 키워주는 것도 1년만 휴직하고 1년, 돌만 지나면 키우기 쉬워. 그러니까 1년은 휴직 주는 게 좋지.” (연구참여자 C)
“일반회사는 휴직 끝나고 가면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잖아. 복직해도. 보통 휴직이 6개월이더라고. 그게 가면 내 자리가 없고 자꾸 밀려나는 것 같고. 또 밀려난대. 나라에서 아무리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연구참여자 F)

연구참여자 C는 야근 감소의 필요성과 육아휴직 기간의 개선을, 연구참여자 F는 휴직 후 복직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1년간의 출산휴가 필요성을 적극 주장했다. 이들은 오랜 기간 손자녀 육아를 지원하는 과정을 통해서 워킹맘인 딸들이 경험하고 있는 직장 분위기, 즉 육아 친화적이지 못한 직장환경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손자녀 육아를 담당한다 하더라도 ‘엄마’인 딸의 육아휴직이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나가서 봐서 그렇고, 교회 가서 봐서 그렇고, 아빠가 육아를 봐주는 세대가 많이 됐더라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딸 집에) 가면 사위가 하루는 어떨 때는 독박육아를 해요. (중략) 최소, 두 돌, 세 돌, 세 살은 되고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는데, 육아휴직 같은 것도 너무 적은 거 같애.” (연구참여자 D)
“할머니는 여자니까 여자가 해서 하는 거랑 할아버지가 그 남성스러움하고 남자로서 그런 거(키우는 것)는 좀 다를 것 같아. 그건 내가 키우면서 느낀 거야. 내가 키우면서 느낀 게 할머니만의 일도 아니지만 (남성인 할아버지나 아빠가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애를 위해서도 괜찮은 것 같아. 성 역할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이게 우리나라도 아빠 육아휴직을 아예 공공연하게 발표가 되고 그런 식으로 일상화되면 애들도 더 잘 자랄 것 같아. 그리고 특히 남자애들 같은 경우는 아빠랑 공유가 많을수록 어긋나는 일이 드물잖아.” (연구참여자 F)

연구참여자 D는 과거에 비해 오늘날의 ‘아빠’들이 육아 참여에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언급했고, 연구참여자 F는 남성인 할아버지와 아빠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남자아이들의 경우 동성인 할아버지나 아빠의 역할이 보다 중요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엄마들뿐 아니라 아빠를 위한 육아휴직도 필요함을 함께 언급했다.


4. 결론 및 논의

본 연구는 워킹맘인 30·40대 딸을 지원하기 위한 방법으로 외손자녀를 돌보고 있는 60대 친정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연구참여자들이 손자녀 양육을 담당하게 된 계기,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직업을 갖고 있는 딸에 대한 생각, 손자녀 양육과정에서 경험한 심리적 갈등과 어려움을 이해하고자 했다. 또한 이들이 느낀 사회적 육아지원 내용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았다.

연구참여자들은 길게는 14년, 짧게는 1년 동안 외손자녀의 주 양육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연구참여자들은 딸을 ‘사회인’으로 키워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으며, 직업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딸에 대한 자부심도 갖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자신들과 달리, 딸이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전념하였고 ‘요즘에는 시대가 바뀌어서 결혼한 여자들도 당연히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딸들의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의 효과적 양립을 위해 이들은 기꺼이 손자녀 양육을 전적으로 맡으며 딸에 대한 끊임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딸의 사회활동은, 자녀를 열심히 키워낸 노력의 가시적인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손자녀 육아로 인한 심리적, 신체적인 어려움은 있었고, 직장과 가정의 양쪽에서 고군분투하는 딸의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또한 ‘사위의 육아휴직’을 반대하거나 딸의 시어머니, 즉 안사돈에 대한 거리감과 어려움을 표하는 등, 전통적 성 역할 관념에 머물러 있는 모습도 함께 보였다.

즉, 연구참여자들은 ‘딸에 대한 교육지원’과 이를 통한 ‘딸의 사회활동 역량’에 대해서는 전통적 성 역할 인식을 극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정’의 범위 안에서는 사위의 육아휴직을 꺼린다거나, 손자녀 양육과정에서 ‘외할아버지’인 남편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지 않는다는 점, 육아에 적극적인 아들과 사위의 모습을 낯설어하는 점 등에서는 전통적인 성 역할 인식에 머물러 있었다. 이는 60대 여성들이 여성의 희생과 헌신에 기초한 가족주의 가치관의 내재화와 실천을 경험한 동시에, 개인을 존중하는 교육과 사회적 경험 또한 했다는 점에서 전통적 성 역할에 대한 수용과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백진아, 2013).

워킹맘은 이미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워킹맘을 대신해서 전적으로 육아를 담당해주는 이들, 다시 말하면 본 연구의 연구참여자들과 같은 존재가 없는 워킹맘들은 가정과 직장생활을 양립하는 일상에서 다양한 한계를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이상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손자녀 돌봄을 하고 있는 조모와 워킹맘에 대한 육아지원정책, 또한 주변의 도움없이 가정과 직장생활을 양립해야 하는 이들을 위해 실천방안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첫째, 손자녀 육아 중인 조부모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맞벌이 부모를 대신하여 조부모가 육아를 담당하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일이며,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로 인해 우리 사회의 조부모 육아 비율이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육아의 주 담당자가 ‘엄마’, 혹은 ‘부모’ 뿐 아니라, 조부모도 중요한 육아의 주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서울시 강남구, 이천시, 부산시 진구, 안성시 등 많은 지자체에서는 손자녀 양육 중인 조부모를 대상으로 다양한 육아 지원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 같은 조부모 대상의 육아 프로그램은 보다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내용으로 열려야 할 것이다.

둘째, 연구참여자들은 손자녀 육아로 인해 사실상 외부와 단절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독박육아’를 하고 있다. 본 연구의 연구참여자 B와 G는 자신과 같은 상황의 시누이나 ‘동네 할머니 모임’에서 힘을 얻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손자녀 양육 중인 조모들의 자조 모임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정애, 송명선, 정익중(2016)에 따르면 손자녀 양육 중인 조모들은 자조 모임에 참여함으로써 구성원 간의 공감과 이를 통한 위로, 자녀 부부와의 관계 개선, 손자녀 양육과 관련된 새로운 내용 습득 등을 경험한다고 보고했다. 따라서 손자녀를 돌보고 있는 조모들의 자조 모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셋째, 조모들의 손자녀 육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직장 내 가정 친화제도의 활성화 역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에는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으며, 육아휴직 신청 가능 근로자의 경우 육아휴직 대신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이미 일반화된 상황에서 육아 친환경적 근로 시스템은 자녀 양육에 필수적인 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대체근무를 위한 사내 부서 시스템 변동의 번거로움 등을 이유로 육아휴직 사용을 환영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기업의 현실이다(김성권, 2016). 법률로 명시되어 있음에도, 출산·육아로 인한 여성 근로자의 불편을 친정어머니의 도움, 베이비시터의 고용 등, 개인의 수준에서 극복해야만 한다는 것은(연합뉴스, 2019.12.17., 2019.12.21.)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직장 내 가정 친화제도가 부족한 우리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과거에 비해 증가한 것은, 다름 아닌 육아의 공백을 메우는 조부모들의 희생 덕분인 것이다.

넷째, 워킹맘들의 다양한 근무조건과 가족 상태에 따라 자신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보육 시스템 역시 필요하다. 서울시는 마을 공동체가 함께 육아를 담당하는 ‘공동육아 활성화 지원사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2017년까지 본 사업에 참여한 자치구 및 공동체는 총 218개이다(서울시, 2018). 공동육아 참여는 워킹맘이나 손자녀 돌봄 중인 조모들이 급하게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경우, 신뢰할 수 있는 이웃들에게 부탁함으로써 안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주 양육자의 ‘독박육아’ 경험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예상 또한 가능하다. 한편 공동육아 사업에 아버지, 혹은 조부들의 참여를 독려할 수도 있는데, 이를 통해 돌봄의 젠더문제에 대한 인식변화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조윤경, 2011).

본 연구는 워킹맘인 딸을 지원하는 60대 여성에 대한 연구로서, 워킹맘의 일가정 양립의 고충과 그런 딸을 위해 손자녀 양육을 담당하고 있는 60대 여성의 어려움을 살펴보았다. 따라서 워킹맘 본인들이 느끼는 일가정 양립, 육아에 대한 고충은 도출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지금까지 연구가 부족했던 ‘코호트의 특성’에 기반하여 손자녀 양육 중인 전기여성노인에 주목했으며, 대상자를 친정어머니로 한정하여 선정함에 따라 딸과 친정어머니의 관계, 각 연령의 성장배경의 차이로 인한 가정과 사회에서 변화하는 젠더적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친정어머니’에게 있어서 ‘딸의 사회적 성공’이 갖는 의미 역시 살펴볼 수 있었다. 한편 60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체감하고 있는 국가의 육아 정책과 서비스의 한계, 여성의 일가정 양립에 대한 인식 등을 보임으로써 워킹맘의 육아 부담은 젊은 부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라는 점을 드러낼 수 있었다.

육아는 개인만의 책임이어서는 안 된다. 초도로우는 50년 전에 이미 ‘아이들은 육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남성과,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역할과 정당한 통제권을 인정받은 여성 곁에서 자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Chodorow, 1974). 그러나 21세기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초도로우의 주장이 요원한 것은 우리사회의 여성, 육아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아직도 너무나 부족함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본 연구가 우리 사회 워킹맘의 육아, 조부모의 손자녀 육아에 대한 논의에 기여하길 바라며, 영유아 자녀를 두고 있는 30·40대의 직장인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후속 연구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Acknowledgments

* 본 논문은 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NRF-2017M3C1B6070667) 및 연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BK21플러스 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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