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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0 , No. 1

[ Article ]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0, No. 1, pp. 113-133
Abbreviation: jss
ISSN: 1976-2984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0 Jan 2019
Received 14 Nov 2018 Revised 03 Jan 2019 Accepted 18 Jan 2019
DOI: https://doi.org/10.16881/jss.2019.01.30.1.113

식민지 조선의 신문연재만화의 즐거움과 욕망: <조선일보> 네 칸 만화 「멍텅구리」(1924~1927)를 중심으로
하종원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The Pleasure and Desire of Newspaper Cartoon Strip in the Colonial Joseon: Focusing on Mungtungri (1924-1927) of Chosun Ilbo
Jong-won Ha
Sunmoon University, Department of Media & Communication
Correspondence to : 하종원,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충남 아산시 탕정면 선문로 221-70, E-mail : won@sunmoon.ac.kr

Funding Information ▼

초록

본 연구는 주인공을 가진 한국 최초의 네 칸 신문연재만화인 <조선일보>의 「멍텅구리」를 분석할 목적을 갖는다. 식민지라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근 3년여에 걸쳐 장수연재를 하며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들의 욕망을 발현시켰던 이 연재만화의 흡인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두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첫째는 식민지 조선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신문의 성격 및 신문만화의 관계라는 콘텍스트에 대한 고찰이며, 둘째는 이 만화의 대중적 소구력의 원천인 내용요소와 고유한 표현기법 및 형식적 특성에 대한 텍스트 분석이다. 1920년대 초반 조선어 신문들은 민중에 대한 지도적 역할 및 일제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1920년대 중반으로 가면서 신문의 ‘상품성’을 인정하고 기업화·상업화·자본화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멍텅구리」는 바로 그러한 전환기에 신문사들이 내놓은 가장 대표적인 문화상품이라 할 수 있다. 「멍텅구리」는 근대적 욕망을 구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즐거움과 재미를 담보함으로써 커다란 대중적 소구력을 가질 수 있었으며, 다양한 시각적 기호와 언어적 표현을 활용하고 고유의 표현방식을 구축하여 네 칸 만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극대화하였다. 「멍텅구리」가 탄생한 밑바탕에는 판매부수의 확장이라는 사업적 목적이 있었음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배경에 일제의 강력한 언론통제 하에서 불가피한 대안으로 취해졌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제한적이지만 식민지 지배라는 정치적 현실에 대한 「멍텅구리」식의 발언이 엿보이며, 그 과정에서 조선인의 의식과 태도, 정서와 감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일단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코믹만화를 넘어선 「멍텅구리」에 담겨 있는 시사적 의미와 사회적 국면에 대한 후속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Abstract

This article analyzes Mungtungri (Fathead) of the Chosun Ilbo, Korea’s first four-frame newspaper cartoon strip. In the early 1920s, Korean newspapers functioned in a social atmosphere that demanded a leadership role and a critical take on Japanese imperialism. In the mid-1920s, however, newspapers recognized its function as a commodity and began to pursue commercialization and capitalization. Mungtungri was a representative cultural product of newspapers during such a transition period. It was able to have mass public appeal by providing users with fun and pleasure through stories that could realize modern desires, and by utilizing various visual symbols and verbal expressions. It is clear that the birth of Mungtungri was for the business purpose of expanding sales and profit. Although limited, however, critical remarks about the political reality in the colonial Joseon, and we can read how the consciousness, attitude, and emotion of the Korean people had changed in the process. Therefore, there is the need for a follow-up study on the social implications of Mungtungri beyond simple comics.


Keywords: Colonial Joseon, Newspaper Cartoon Strip, Mungtungri, Chosun Ilbo, Modern City
키워드: 식민지조선, 신문연재만화, 멍텅구리, 조선일보, 근대도시

1. 들어가며: 왜 「멍텅구리」인가

이 글은 식민지 조선의 민간지 <조선일보>의 연재만화 「멍텅구리」를 분석할 목적을 갖는다. 주인공을 가진 한국 최초의 네 칸 신문만화인 「멍텅구리」는 1924년 10월에 시작하여 1927년 8월에 막을 내렸다. 약간의 휴지기가 있었지만 근 3년여에 가까운 이러한 장수 연재는 당시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도중하차 하는 신문만화의 관행으로는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더욱이 이 만화를 원작으로 연극이나 가극이 공연되고 극영화로 상영되어 흥행에 성공했다는 사실도 그 대중적 인기를 말해준다.1) 그만큼 1920년대 중반의 식민지 조선의 사회문화사에서 문화적 텍스트로서 이 만화의 의미와 중요성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만화는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大韓民報)>의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李道榮)의 ‘揷畵’(삽화)이다. 당시 그림보다 글을 중시하는 유교적 풍토 속에서 신문에 만화가 등장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한국만화100주년위원회, 2009). 시사성이 강한 이러한 한 칸 만화는 1년 남짓 유지되었지만 1910년 8월 29일 강제 한일합병(韓日合倂) 이후 근 10년 동안 사라졌다가 1920년대 초반 <조선일보>(1920), <동아일보>(1920), <시대일보>(1924) 등의 조선어신문이 창간되면서 재등장하였다.2) 하지만 이 당시 신문만화의 주류적 성격과는 달리 「멍텅구리」는 주인공을 갖고 있으며 정치색을 가능한 배제하고 일상생활에서 웃음의 소재를 찾아 오락적 즐거움을 주는데 치중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주인공이 있는 연재만화의 등장은 미디어의 발전단계로 볼 때 신문의 성격이 정론지(政論紙)에서 대중지(大衆紙)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을 갖고 연속적으로 독자를 찾는 연재만화는 그 전의 한 칸 만화와는 달리 대리체험과 자기 동일시의 기제가 되고, 수용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1895년 2월 선보인 미국 최초의 신문연재만화인 「노란 꼬마」(The Yellow Kid)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고도의 선정적 상업주의 언론을 지칭하는 ‘황색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의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다.3) 일본에서도 1922년 11월부터 ꡔ夕刊報知新聞ꡕ에 실린 아소 유타카(麻生豊)의 네 칸 연재만화 「논키나토상」(ノンキナトウサン) 역시 신문사의 판매부수를 급격히 향상시킬 정도로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였다.4)

우리나라 역시 1920년대 중반 여러 신문사들이 앞 다투어 네 칸 연재만화를 내놓으면서 자사의 판매부수를 늘리기 위해 경쟁하였다. 한국의 신문 네 칸만화가 다른 나라와 달리 1950년대 중반부터 강한 시사성을 띠며 지금까지 이어져 한국만의 독특한 네 칸 신문만화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지만(하종원, 2009), 사실상 우리나라도 그 출발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재미와 즐거움을 주기 위한 유머만화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1920년대 중반의 네 칸 연재만화 시장에서 「멍텅구리」는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식민지라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들의 욕망을 구현시켰던 이 연재만화의 흡인력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를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는 거시적인 견지에서 상황(context)에 대한 고찰이다. 즉 “당시 식민지 조선의 사회문화적 배경은 신문의 성격 변화 및 신문만화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라는 연구문제이다. 둘째는 미시적인 견지에서 텍스트(text)에 대한 분석이다. 이는 독자들을 끌어들였던 “「멍텅구리」의 대중적 소구력의 원천인 내용요소는 무엇인가?”와 그것을 묘사하는데 활용된 “「멍텅구리」의 고유한 표현기법과 형식적 특성은 무엇인가?”라는 연구문제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연재만화가 갖는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2. 식민지 조선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신문만화

1910년 8월 한일합병조약이 이루어진 후 10년 동안 식민지 조선은 무단 강압정책 하에서 봉건의 어둠과 미몽의 늪에서 정서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찌들려 있었다. 하지만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사상의 유입과 식민지 정책의 전환 등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혼란된 상황 속에서 개화라는 남루한 충격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기 위해 현대를 열어가기 시작하였다(김진송, 2003). 하지만 ‘현대’가 본격적으로 일상 속에서 체험하게 되는 삶의 형태로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결국 1920년대는 1910년대의 ‘봉건’의 시대에서 1930년대 ‘모던’의 시대로 가는 중간 지점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시대 대중들은 식민지라는 역사의 굴레 속에서 또 하나의 질곡을 더하게 되었다. 그것은 식민지라는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요구되는 투쟁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으며, 그런 세태에 떠밀려 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김진송, 2003). 이것은 이 당시 식민지 정서와도 이어진다. 대개 ‘식민지’는 우울과 비애, 슬픔의 감정들로 표상된다. 하지만 ‘슬픔’과 ‘비애’만으로 식민지 조선의 감정을 설명할 수 없다. 이 감정만 보편화, 획일화하게 되면 식민지 감성을 자칫 왜곡하거나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박숙자, 2009).

그러한 식민지 치하의 대중들의 인식과 정서를 달래주는 도구로 등장한 것이 대중문화와 대중매체이다. 오락과 감각으로 넘쳐나는 도시의 문화는 극적 효과를 통해 즉흥적 감각을 개발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게 해주기 때문이다(주훈, 2004). 특히 유머와 웃음은 당대 대중문화 안에서 식민지 시대의 슬픔과 비애가 만들어준 음울한 사회 분위기를 벗어날 감각이었다. 그 역할을 담당한 여러 문화상품 중에서도 인쇄기술이 도입된 1900년대 초반부터 그 기반을 마련한 만화는 그 전달 방법이나 가독성 면에서 다른 매체들보다 우월하였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서은영, 2017).

당시 만화의 가장 중요한 전달매체는 1920년 등장한 조선어 민간지들이었다. 하지만 이 신문들은 일제의 강력한 언론탄압과 민중들의 과도한 기대라는 두 가지 모순적 존재조건에 의해 규정되어 있었다(박용규, 1995). 즉 민족적 현실과 관련된 민간지들의 최소한의 비판적 논조마저 억압하려는 일제의 언론탄압과, 식민지라는 현실에서 비판적 논조를 통해 민간지들이 지도적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민중들의 기대 사이에서 민간지들의 활동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1920년대 초반기에는 민중에 대한 지도적 역할 및 일제에 대한 비판적 기능의 필요성에 대해 강력히 주장되는 사회적 분위기였으며, 신문사 스스로도 그에 대한 자각이 분명하게 정립된 시기였다. 따라서 1920년대 중반까지는 신문의 기업화나 상품화 경향은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신문만화도 그 연장선상에서 존재하여 사회적 저항과 정치적 설득을 기조로 하였다.

1920년대 초반의 한 칸 시사만평들은 내용상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장승태, 2002). 첫째는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내용으로서 일제의 강압과 억압이라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판과,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변모에 따른 민중들의 고통을 지적한 것이다. 둘째는 일제가 가져다준 새로운 문물 및 생활양식과, 전통적인 봉건적 삶의 방식 간의 문화적 충돌에 대한 현실풍자이며, 셋째는 도덕과 윤리를 기초로 한 계몽만화 등이다.

하지만 192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신문은 ‘일종의 상품’이고 따라서 그 경영도 ‘영업본위’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로 필요하다”는 지적(윤홍렬, 1926, 36쪽)이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아울러 식민지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하고 자치권이나 연정론 등을 주장하는 현실타협적인 지도세력이 출현하였다(박찬승, 2000). 이러한 사회이념과 의식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하며 신문독자층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던 사회경제적 엘리트 계층이 점차 식민지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김영희, 2001)도 신문의 성격과 내용을 변화시키는 동인이 되었다. 또한 식민정책의 기조가 문화정책으로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총독부는 여전히 강력한 언론 통제를 시행하여 한 칸 만평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규제가 이루어졌다.5)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멍텅구리」가 등장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서 언급한 대로 1990년대 말 미국의 황색저널리즘의 첨병으로 연재만화가 활용되었으며, 일본도 1921년부터 신문의 판매경쟁에서 연재만화를 활용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6) 그것은 미국의 연재만화를 도입하는 배경이 되어, 일본에서는 맥머너스(George McManus)의 「아버지 기르기」(Bringing Up Father)를 <東京朝日新聞>과 <朝日畵報>(アサヒグラフ)에서 1923년부터 1925년까지 약 2년간 「친부교육(親爺教育)」으로 번안, 게재하여 인기를 얻었다. 이 만화는 칸의 분할이나 말풍선의 활용 등과 같은 근대만화의 표현기법을 일본만화에 이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清水 勲, 1999). 우리나라에서도 <시대일보>가 1924년 3월 31일 창간일 부터 맥머너스의 또 다른 작품인 「신혼부부와 그의 아기」(The newlyweds and their baby)를 「엉석바지」로 번안하여 4월 30일까지 한 달 동안 연재하였다(박인하, 2011).

이렇듯 미국이나 일본에서 네 칸 연재만화가 독자의 인기를 얻는다는 것을 확인한 <조선일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그와 비슷한 연재만화를 직접 게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목적은 무엇보다 독자를 더욱 확보하여 경영난을 해소하려는 사업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창기부터 주식회사 체제로 출발하여 안정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던 <동아일보>에게 뒤쳐져 있던 <조선일보>는 1924년 9월 신석우(申錫雨) 등의 새 경영진이 들어서면서 혁신 발행을 도모하였다. 편집국장 이상협(李相協)은 “민중의 신문이 되기 위해서는 민중의 환심을 사야하며, 그러려면 민중을 즐겁게 해주는 취미와 실익을 겸한 읽을거리가 필요하다”는 편집방침을 세웠다(김을한, 1971, 78-79쪽). 그것을 구현할 대표적인 기획 상품이 바로 「멍텅구리」였다. 그에 따라 「멍텅구리」는 조직적인 분업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공동 창작품으로 운영되었는데7) 이는 장수연재의 한 토대가 되었다.

「멍텅구리」를 연재하기 전날(1924년 10월 12일) <조선일보>는 3면에 ‘우숩고 자미잇는 그림리야기’라는 제목으로 주인공 세 사람의 얼굴을 담은 게재공지(<그림 1> 참조)를 내면서 “이 재미있고 우스운 그림 이야기는 서양의 신문에서도 시작된 지가 그리 오래지 않았지만 독자들로부터 매우 환영과 갈채를 받았으며...(중략)... 최근 수년이래 일본에서도 대신문사 사이에 일대 유행이 된 것으로 조선에서 처음 시작하는 것⋯(중략)⋯누구든지 웃고 싶은 이는 조선일보를 보시오”(강조 인용자, 현대어로 전환)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다.


<그림 1> 
「멍텅구리」의 게재 공지 (1924.10.12.)

이후 오락적인 성격이 강한 네 칸 연재만화가 1920년대 중반부터 신문사간의 치열한 독자확보시장에서 주요 상품으로 등장하였다.8) 이러한 만화들은 주인공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자람을 통해 흥미로움을 전달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활극성을 가미한 모험과 기담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을 끌어들이고자 하였다(서은영, 2017). 하지만 「멍텅구리」를 제외한 다른 연재만화들은 독자의 지속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지 못하고 채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단명으로 끝났다. 그만큼 1920년대 중반 조선의 네 칸 연재만화시장에서 「멍텅구리」의 위상은 독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멍텅구리」의 내용적 소구력

「멍텅구리」의 공간적 무대는 근대적 도시의 모습을 막 갖추기 시작한 수도 경성(京城)이다. 주요 인물은 최멍텅(멍텅구리)과 그의 애인이자 아내가 된 신옥매, 그리고 그 두 사람 간의 중개 역할을 하는 멍텅구리의 친구 윤바람 등이다. 「멍텅구리」는 대중성 확보를 위해 당시 유행하던 ‘연애’를 소재로 삼았고, 부부중심의 단란한 가정이라는 서구식 생활을 형상화하였다.9) 그 과정에서 이들이 겪는 다양한 일상적 사건과, 그들이 원하는 욕망의 실현이 구체화되어 풀어진다. 이러한 「멍텅구리」의 의사세계(疑似世界)를 접하는 독자들은 자기 스스로 만든 은유에 의해 설정된 새로운 현실 세계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10) 실제로 처음에는 「멍텅구리」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던 독자들이 점차 장기 연재되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멍텅구리라는 캐릭터에 친근감을 느끼며 공감을 형성하는 독자들이 생겨났다(서은영, 2011). 그 과정에서 독자의 감정이입과 대리체험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한 욕망과 즐거움을 만들어낸 내용적 요소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독자에게 다가간 「멍텅구리」의 첫 번째 즐거움은 탈정치적 웃음과 재미의 유발이다. 이는 주로 주인공 멍텅구리의 기대와 욕망이 좌절 혹은 배반되는 상황이 주는 웃음의 공식에 기대고 있다. 즉 우스꽝스러운 것(the ludicrous)과 어처구니없는 것(the ridiculous)으로 특징지어지는 코믹함이다.11) 이는 종종 채플린 식의 슬랩스틱(slapstick) 코미디의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멍텅구리」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헛물켜기’의 초반 일화에는 대부분 마지막 칸에서 ‘어이쿠’라는 의성어와 함께 옥매를 향한 멍텅구리의 연정(戀情)이 좌절되는 상황이 연출된다. 예를 들면, 옥매의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거나, 요리점에서 옥매를 문틈으로 들여다보다가, 혹은 사진관에서 옥매의 사진을 사고 싶은 욕망이 실패로 돌아가거나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여 봉변당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면서 유머가 발생한다. 이는 초기에 멍텅구리라는 인물의 실없고 엉뚱한 캐릭터를 형상화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단순 유머 유발에 그치기는 했지만 이를 통한 웃음의 제공은 식민지 치하의 대중들의 슬픔과 비애를 달래주는 탈출구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12)

둘째로, 남성중심적 성적 욕망의 구현이다. 「멍텅구리」 시리즈의 주된 독자층은 성인 남성이다. 만화 속에서 ‘미인(美人)에 미친 사람’이라고 지칭될 정도로 여자를 좋아하고 기생에 마음을 빼앗긴 남성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이 만화는 기본적으로 남성의 성적 욕망을 담고 있다. 특히 여주인공 옥매가 기생이었기 때문에 초반부 이 만화의 상당 부분은 요릿집(요정)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요릿집은 술과 여자와 가무(歌舞)가 있는, 남성들의 욕망의 배설공간이며 유흥장소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곳이기에 「멍텅구리」의 그러한 일화들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대리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또한 자유연애를 즐기는 남성적 취향을 자극하고 있다. 신옥매와 가정을 꾸린 후에도 멍텅구리는 뭇 여성에 대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한 여자에게 만족 못하는 남성의 욕망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한다. 아직 유교적 전통이 지배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옥매를 비롯한 여인들의 신체노출 장면이 그려지고, 포옹이나 키스 장면도 스스럼없이 보여줌으로써 일종의 관음증적 욕망을 드러낸다.

셋째로, 「멍텅구리」의 가장 중요한 즐거움은 근대적 삶에 대한 기대와 욕망의 대리충족이다. 1920년대 점차 근대적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경성이라는 공간에는 신식 건물과 현대적 도로, 그 위를 지나는 근대적 교통수단인 전차와 자동차가 등장하며, 그에 걸맞은 모던보이가 활보한다. 이 만화의 주인공 멍텅구리와 윤바람도 하이칼라의 머리에 실크햇을 쓰고 나비넥타이와 슈트를 차려 입고 신식 구두에 단장(短杖)을 든 모던보이로서 최신의 유행을 따르고 선도한다(여주인공 신옥매는 평양 출신의 기생으로 전통적인 의상을 고수하였으나 후반부로 가면서 단발 헤어스타일에 양장도 종종 입는 것으로 바뀐다). 이러한 옷차림의 변화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차별화시키는 의식의 발로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구태’에서 벗어난 ‘신식’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도록 해주며, 또 한편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과시하는 첨단의 유행이었다(김진송, 1999).

또한 서양음식을 먹고 근대식 물품을 사며 여가를 즐기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만들어지는 다양한 소비 공간이 그려진다. 서구적 경험이 이루어지는 레스토랑과 와인상점이 등장하고, 보석상이나 양복점, 만년필상점, 과자점, 사탕점 등의 근대 상점에서 신식 상품이 소개되고, 그러한 공간을 구성하는 양옥건물, 신식간판, 쇼윈도, 회전문 등이 나타남으로써 소비문화의 일단과 근대화된 경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울러 근대의 과학기술을 통한 이미지 생산 공간인 사진관과 극장의 풍경들도 등장하며, 사적공간인 멍텅구리의 집에는 신식 의걸이장, 사진 액자, 테이블과 의자, 피아노, 유성기 등의 서구식 문화물품이 소개된다.

근대 도시의 변화는 전차와 자동차 등 새로운 교통수단의 출현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시민의 일상생활과 도시의 공간변화를 주도함으로써 도시화를 가속화시켰다(정희정, 2005). 이 만화에서도 다양한 교통수단이 등장한다. 전차는 첫 회부터 등장하여 시리즈 내내 자주 나타나며, 하늘의 전선 역시 만화의 배경에 지속적으로 그려졌다. 멍텅구리는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들이를 위해 종종 이용하며, 먼 곳을 여행할 때는 열차를 타고 식당 칸에서 식사도 한다. 때론 여흥을 위해 모터사이클도 타는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 현실적으로 꿈도 못 꾸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한다.

넷째로, 「멍텅구리」는 현실세계와의 시간적 동시성을 추구하여 독자와의 공감대를 높이고자 하였다. 이는 한 해 동안 시간적 추이를 따라 이루어지는 선적(線的) 동시성과, 당시 일어난 사건들을 다루는 점적(点的) 동시성을 통해 담보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전자는 정월, 한식, 추석, 김장철, 크리스마스 등 현실세계의 시간적 배경에 맞추어 이야기가 펼쳐진다. 후자의 경우에는 실제 일어난 사건과 만화를 연동시킴으로써 독자와의 유대감을 형성시킨다. 예를 들면, 1925년 4월 15일부터 3일간 <조선일보>가 주관한 전국의 신문기자 700여명이 참가한 신문기자대회에 멍텅구리가 초대받고 기자들에게 만년필을 선물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리거나, 1925년 7월 을축년(乙丑年)의 대홍수 때 <조선일보>가 이천 여 명의 뚝섬 주민을 구조하였던 사실을 배경으로 멍텅구리가 수해구제에 참여하는 소재를 다루는 등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다루어 현실성을 높이는 시도를 하였다.

다섯째로, 「멍텅구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만화의 의사세계를 현실세계로 끌어내어 독자의 공감과 소통을 시도한다. 이를테면, 주인공 멍텅구리가 가공인물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사람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선일보>라는 존재를 만화 속에 직접 등장시켜 이야기를 구상하고 그것을 통해 멍텅구리 자신이 실제 인물인양 독자들에게 소식을 전한다. 예를 들면, 첫 에피소드 ‘헛물켜기’ 연재를 시작한지 2개월 후에 두 번째 에피소드 ‘련애생활’로 바뀌면서 만화의 말미에 ‘멍텅구리의 인사’라는 제목으로 멍텅구리가 직접 독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연재가 계속된다는 것을 알렸다.13) 또한 아예 한 회를 호외 형식으로 멍텅구리의 편지를 소개하거나14) 세계일주 중에 옥매에게 보내는 멍텅구리의 편지로 채우기도 하였다.15)


4. 「멍텅구리」의 표현형식의 특성

「멍텅구리」는 종전의 한 칸 시사만평의 단순성을 벗어나면서도 아울러 그 전범이 되었던 미국이나 일본의 네 칸 연재만화와는 다른 독특한 표현형식을 구축하였다. 첫째, 스토리의 전개 방식이다. 「멍텅구리」는 매일 한 인물이 벌이는 사건을 각각 별도의 제목 하에 네 칸 속에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시리즈(series)와, 그것들이 더 광범위한 제목의 에피소드(episode, 일종의 단원單元) 하에 서로 이어져 이야기가 발전하는 시리얼(serial)을 혼융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 드라마의 시즌 제처럼 10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시간적 변화를 겪으면서 이야기를 확장하고 있다. 즉 주인공 남녀가 처음 만나(‘헛물켜기’) 연애를 하고(‘련애생활’) 결혼을 하고(‘자작자급’)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가뎡생활’) 등 일련의 장편이야기로 발전하는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표 1> 참조). 이런 연속성의 이야기 구조는 좀 더 복잡하고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틀이 되며, 매일 찾아가는 신문의 속성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지속적인 관심과 접촉을 이끌어내는 흡인력을 가졌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에피소드간의 유기적인 구성과 일관성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결국 이는 이 연재만화의 쇠퇴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다.

<표 1> 
「멍텅구리」의 에피소드 목록
에피소드명 연재기간 연재회수
헛물켜기 1924.10.13.~1924.11.30. 48회
련애생활 1924.12.09.~1925.06.13. 181회
자작자급 1925.06.14.~1925.10.22. 87회
가뎡생활 1925.10.23.~1926.02.01. 102회
셰계일주 1926.02.02.~1926.08.04 148회
껏덕대기 1926.08.14.~1926.08.31. 18회
가난사리 1926.10.?. ~1926.12.11. 50회
사회사업 1926.12.12.~1927.02.18. 50회
학창생활 1927.02.21.~1927.03.11 12회
또나왓소 1927.08.09.~1927.08.20. 9회

둘째, 지면의 구성방식이다. 종전의 한 칸 만평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묘사함으로써 풍자삽화와 비슷한 회화의 자장 안에 놓여 있었다면, 「멍텅구리」는 기-승-전-결의 구성 하에 네 칸을 배열하고 그 인과적 관계나 순서 등을 긴밀하게 연결시켜 최종적인 의미를 산출하여 스토리를 전달하였다(장하경, 2005).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칸과 칸 사이의 단층 혹은 홈을 각자의 인지적 활동을 통해 해독하며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칸과 칸을 어떻게 연결하여 그 흐름을 유지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 당시 미국이나 일본의 네 칸 만화, 그리고 한국의 초기 네 칸 만화는 주로 밭 전자(田字) 형식으로 칸을 연결하였으며 칸의 순서도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이렇듯 상하와 좌우가 섞여 있는 전자 형식은 독자의 시선 방향을 자연스럽게 처리하기 힘들고 수용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지 못한다. 반면 「멍텅구리」는 연재 초기부터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눈 목자(目字) 형식을 통해 칸과 칸을 연결하고 있어 시선의 흐름을 유연하게 해주며, ‘칸’의 부드러운 전환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을 무리 없이 시도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칸의 분할과 확장을 통해 인물의 감정과 행동을 보다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예를 들면, 다른 세 칸과 달리 두 번째 칸을 상하로 분할하여 죽은 듯 시치미 떼는 멍텅구리와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겠다는 옥매의 반응을 연계시켜 표현하거나(<그림 2-1> 참조), 수해복구 인력지원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멍텅구리와 경찰서장 간의 통화 장면(두 번째 및 세 번째 칸)을 좌우로 분할하여 속도감 있게 표현하고 상황의 긴장감을 고조시켰으며(<그림 2-2> 참조), 멍텅구리의 으스대고 과격한 행동을 강조하기 위해 세 번째 칸을 다른 칸보다 확장하여 표현하는(<그림 2-3> 참조) 등 전자(田字) 형식에서는 불가능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여 네 칸 만화의 표현을 극대화하였다.


<그림 2> 
「멍텅구리」의 목자(目字)형식의 표현효과

셋째, 다양한 표현요소를 복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멍텅구리」의 표현은 문자적 정보(글)와 화상적 기호(그림)가 결합되어 이루어진다. 문자를 통한 정보는 각 일화에 대한 ‘소제목’과 ‘말풍선’, 그리고 ‘해설’을 통해 전달된다. 한편 화상적 기호는 그림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보여주고 배경을 묘사한다.

먼저 문자적 정보에 있어서 「멍텅구리」는 미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다르게 소제목을 붙이고 있다. 이는 종전의 회화적 형태와 구별되는 영화적인 이미지 재현이나 이야기 구성방식으로 공간성을 드러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공간성은 주로 이야기세계의 풍경묘사로 드러나는데, 바로 소제목을 통해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와 공간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장하경, 2005). 예를 들면, 위락시설로서의 ‘료리집’, 휴양지의 ‘온천’, 기념기록의 ‘사진관’, 오락공간으로의 ‘연극장’, 의료기관인 ‘병원’ 등이다. 때론 연작의 형태(‘옥매의 집 1~4’)를 취하기도 한다. 또한 시간(‘이튿날’)이나 주제(‘자살’, ‘열한 가지 조건’, ‘포도주’ 등)에 대해 사전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본 만화로 이끄는 길잡이로 활용한다.

말풍선은 화자(話者)의 입을 통해 직접 말이 전달됨으로써 무생물인 만화인물을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주는 매우 효과적인 기제이다.16) 대부분의 연재만화처럼 「멍텅구리」도 인물의 대사를 ‘말풍선’(word balloon)을 통해 전달한다. 「멍텅구리」는 등장인물의 독백이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양도 적지 않아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그 대사를 감싸고 있는 말풍선의 역할이 중요하다. 「멍텅구리」는 말풍선을 적절히 사용하여 인물간의 대화를 유연하게 제시하고 사실감을 부여하는데, 특히 말풍선의 위치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조절하고 있다. 이를테면, 두 명 혹은 세 사람이 대화를 할 경우, 그 순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그림 3-1> 참조), 위에서 아래의 순(<그림 3-2> 참조)으로 발화와 응답이 이루어진다. 만일 두 항목이 겹칠 경우에는 왼쪽보다 위가 우선이기 때문에 오른쪽 위의 말풍선이 왼쪽 아래의 것보다 먼저 발생한 것(<그림 3-3> 참조)으로 인식되어 인물들 간의 대화의 흐름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다.


<그림 3> 
「멍텅구리」의 말풍선의 발화 순서

또한 이러한 말풍선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그림의 구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말풍선이 배경이나 대상을 덮지 않고 적절하게 여백을 분할하거나 채우는 것이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장승태, 2003). 예를 들어 <그림 4>는 멍텅구리가 윤바람을 졸라 옥매의 집 앞까지 갔으나 개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뒤로 넘어지면서 봉변을 당하는 일화(1924.10.13.)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칸에서는 배경으로 건물의 윤곽선이 보이는데 이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첫 번째 칸에서 오른쪽에 있던 윤곽선이 두 번째 칸에서는 왼쪽으로 바뀌어 있다. 따라서 말풍선은 배경을 가리지 않도록 인물의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다. 세 번째 칸에서는 배경을 거의 없애고 애가 타는 멍텅구리의 자세를 윤바람과 거의 같은 높이로 낮게 그리고 그 위에 말풍선을 배치하여 애절함을 강조한다. 마지막 칸에서는 옥매 집의 대문과 담, 개천과 다리 등의 배경을 자세히 묘사하고, 멍텅구리의 ‘어이쿠’라는 의성어(위 왼쪽), 밖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프레임 바깥(off the frame)의 윤바람의 “이로 나라(이리 오너라)”라는 말(위 오른쪽), 그리고 멍텅구리를 향해 짖는 개의 “멍멍”이라는 의성어(아래 가운데) 등의 말풍선에 따라 시선이 순차적으로 흐르고 배경과 어우러져 전체 그림의 구도를 균형 있게 맞추어 준다. 이는 말풍선을 인물과 배경을 고려하여 배치함으로써 일종의 미장센(mise-en-scène) 효과를 도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4> 
말풍선의 위치와 그림의 조화

「멍텅구리」가 미국이나 일본의 연재만화와 다른 또 하나의 형식적 특징은 각 칸의 오른 쪽에 해설을 병기(倂記)하고 있다는 점이다.17) 이에 대해 사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 가장 권위적인 이야기방식이었던 소설의 서술기법을 차용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장하경, 2005). 하지만 글자 수를 맞추고 운율을 살리며 리듬감을 도모하는 어투와 화법을 보면 도리어 그 당시 무성영화의 변사의 해설을 연상케 한다. 1920년대 극장의 보급이 늘어나고 영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관객들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의 소개나 장면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필요했으며, 바로 변사가 영화와 관객의 가교 역할을 했다(조희문, 1988). 그와 마찬가지로 「멍텅구리」에 동원된 해설 역시 말풍선으로 전달되는 대사와, 그림으로 표현된 행동 간의 조응을 도모하며 공간의 정보나 행동의 동기 혹은 인물의 심리상태 등을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멍텅구리가 옥매와의 사랑이 잘 맺어지지 않자 비관하여 자살을 도모하는 일화(‘자살’, 1924.10.20.)의 경우, 비관한 멍텅구리가 다리 위에서 울고 있는 첫 번째 장면에서 해설을 통해 “멍텅이가 한강철교로 죽으러 갔다가”라고 구체적인 장소와 의도를 설명한다. 또한 자살에 실패하여 홧김에 술을 먹고 부녀자에게 주정을 하다가 순사에게 혼나는 일화(‘내외술집’, 1924.10.21.)에서 세 번째 칸의 부녀자 희롱과 네 번째 칸의 순사에게 잡혀가는 장면은 대사와 그림만으로는 논리적 비약이 나타나는데, 이를 해설(“지나가는 여자에게 달려들다가”, “순사를 만나서 경을 쳤다”)로 메워 부드럽게 연결한다.

한편 문자적 정보와 더불어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감정의 표현, 상황의 제시는 다양한 ‘화상적 기호’(pictorial code)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것은 단지 회화적 묘사뿐만 아니라 만화적 기호와 영화적 표현이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1920년대 중반의 초기 만화들은 오늘날 유머만화의 2~3등신18)과는 달리 인물을 회화와 비슷하게 6~8등신상으로 그렸다.19) 「멍텅구리」역시 실제의 인물처럼 6~7등신상으로 묘사하였지만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표현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상세한 얼굴 표정을 알 수 있도록 클로즈업(close-up)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또한 「멍텅구리」의 그림체는 이른바 ‘사실체’ 혹은 ‘본화체’ (本畵體, 일본식 용어)로서 선의 표현도 현재의 만화선보다 굵고 회화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멍텅구리」를 그린 이들이 동양화가로서 동양화의 기법을 많이 적용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간주된다(유환석, 2015).

이러한 사실체의 그림은, 인물과 사건에 초점을 두고 배경은 대체로 생략하거나 간단하게 처리하는 일반적인 유머만화와는 달리 배경에 대한 묘사를 상당히 정교하게 해주는 토대가 된다. 예를 들면 멍텅구리의 뒤로 보이는 경성의 종로 시가지를 묘사하면서 건물의 시계탑이나 자동차와 전차 등을 상세히 그리거나(<그림 5-1> 참조), 신의주 기차 역사(驛舍)를 건물양식, 지붕의 모양, 원호형 문 구조, 건물 앞의 가로등 까지 실제와 흡사하게 그려냈다(<그림 5-2> 참조). 이러한 것들은 그 공간에 대한 정보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며 당시의 시대적 풍경을 이해하는데 유효한 사료의 가치를 갖는다.


<그림 5> 
「멍텅구리」의 배경의 사실적 묘사

한편 「멍텅구리」는 초창기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만화적 기호를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이러한 기호는 현실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일련의 상징들로서 인물의 행동을 포착하거나 심리적인 상태를 전달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20) 예를 들면, 멍텅구리가 거울에 머리를 부딪치는 황당한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별모양’(☆)을 사용하고(<그림 6-1> 참조), 빚 독촉에 고민하여 머리에서 쥐가 나는 멍텅구리의 모습을 번개그림으로 묘사하며(<그림 6-2> 참조), 오강을 맞고 문 밖으로 내동댕이친 멍텅구리와 지팡이와 모자를 역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실선과 별 모양을 사용하고 그를 바라보는 이의 감정을 문장부호(?!)로 표기하였다(<그림 6-3> 참조).


<그림 6> 
「멍텅구리」의 만화적 기호

또한 「멍텅구리」는 영화적 표현도 차용하여 감정의 강약을 조절하고 리듬감을 부여하였다. 특히 다양한 샷 사이즈를 활용하였는데 이는 회화적 공간을 넘어선 서술을 가능케 해주는 것으로 인물과 사건을 친근하게 중개하려는 노력으로 지적된다(장하경, 2005). 예를 들면, 첫 번째 칸에서 세 번째 칸까지 롱샷으로 멀리 인물들을 잡다가 네 번째 칸에서 옥매의 절교편지를 받고 낙망하여 눈물을 흘리는 멍텅구리의 모습과 편지의 내용을 클로즈업하여 그 애절함을 강조하였다(<그림 7-1> 참조). 또한 두 인물(멍텅구리와 윤바람)의 쫓고 쫓기는 장면에서 세 번째 및 네 번째 칸을 상하로 잘게 분할하여 템포를 빠르게 함으로써 속도감을 부여하고 긴장을 유발하는 영화의 편집(editing) 기법을 활용하였다(<그림 7-2> 참조). 또한 카메라워킹(camera working) 기법을 도입하기도 한다. 세 인물간의 대화 장면에서 화자(話者)의 말 순서에 따라 카메라의 이동을 통해 각 칸 마다 인물의 위치를 전환(첫 번째 칸에서는 가장 왼쪽에 옥매가 있으나 두 번째 칸에서 멍텅구리로 바뀌고 다시 세 번째 칸에서 옥매로, 그리고 네 번째 칸에는 프레임 아웃된 멍텅구리를 따라가는 윤바람이 왼쪽을 향하고 옥매가 오른쪽에 위치)시킴으로써 다양한 화면구성을 시도하였다(<그림 7-3> 참조).


<그림 7> 
「멍텅구리」의 영화적 표현


5. 맺으며: 「멍텅구리」를 어떻게 다시 읽을 것인가

근대사회는 ‘상품’과 ‘자본’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이해되며, 상품의 가치를 높일수록 자본은 축적된다(신영복, 2016). 1920년대 중반 식민지 조선은 근대화의 태동이 이루어졌던 시기였고, 네 칸 연재만화는 기업화·상업화·자본화를 막 추구하기 시작하였던 당시의 신문사들이 내놓은 대표적인 문화상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멍텅구리」는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본격적인 네 칸 연재만화로서 미국과 일본의 연재만화를 전범으로 하여 출발하였다. 특히 맥머너스의 <아버지 기르기>와 아소 유타카의 <논키나토상>의 영향을 받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답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는 시도되지 않았던 여러 가지 독창성을 발휘하였다. 예를 들면, 에피소드를 통한 연속적 이야기의 구성을 시도하고 다양한 언어적 표현과 시각적 기호를 활용함으로써 네 칸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극대화하였다. 또한 그 내용에 있어 단편적인 유머에 그치지 않고 근대적 욕망을 구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이어가 즐거움과 재미를 담보함으로써 커다란 대중적 소구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멍텅구리」의 형식 및 내용의 독창성은 당시 경쟁 신문사들의 연재만화가 단명으로 끝나는 상황에서도 3년여의 장수연재라는 성가를 거둘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물론 이 당시의 독자가 일부 식자층에 국한되었기에 그 대중적 파급력을 지금의 경우와 비교할 수는 없다. 특히 1920년대의 식민지 조선의 주요 신문독자층은 교육수준과 경제적 능력이 있는 소수 남성 엘리트층이었기 때문이다.21) 하지만 문자해독력이 필요한 다른 신문기사와는 달리 만화는 그림만으로도 일정 부분 정보 전달이 가능하고 다른 어떤 기사보다 더 쉽고 빨리 이해할 수 있다는 점22)에서 단순한 독자의 통계치를 넘어선 접근성과 파급력을 가졌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신문의 계도적 기능을 중시했던 일부 지식인들은 이 만화의 통속성과, 그것을 조장한 <조선일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예를 들면, 잡지 <개벽>은 ‘시언-조선일보와 멍텅구리’라는 제호의 비평문을 통해 “장편의 만화 멍텅구리를 연재하여 아무 의미도 없는 단순히 웃음거리의 만화 그것을 가지고 무지한 계급의 까닭 모를 환심을 받아가면서 ... (중략) ... 만화 멍텅구리의 연애생활로는 환영을 받고 걸작인지는 모르되 일반적으로 민중에게 하등의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적확한 일이다...(중략)... 조선일보란 지면이 만화만이 멍텅구리가 아니고 그 지면의 나타나는 기사의 내용도 아무 주의 주장을 발견치 못하겠음은 물론 ...(중략)... 만화의 멍텅구리가 기사에도 멍텅구리화하는 셈인가”라고 지적하였다(일기자, 1926, 55쪽).

오늘날에는 「멍텅구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신문에서 네 칸 만화라는 새로운 형식과 코믹만화라는 새로운 내용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당대의 시대상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장하경, 1995). 즉 형식의 혁신성에 비해, 내용에서는 식민지 사회의 현실을 담지 못하거나, 표피적인 근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한편 최열(1995)은 근대의 서구적 모습, 조선사회의 도시적 삶의 양식을 담아냈고, 자유연애와 부부 중심의 가정생활, 서구적 생활 방식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근대화된 조선을 제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오락, 코믹만화라는 틀에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제시하였다.

반면 「멍텅구리」안에는 시사적 내용이 다수 다루어지면서 당시의 식민지 상황에 대해 완곡적이지만 비판적인 논평을 함으로써 단순한 코믹만화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이 만화를 오늘날의 네 칸 시사만화의 원조이며 당대의 한 칸 시사만평보다 한층 차원이 높은 시사만화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근대화되기 시작한 경성에서 등장인물들이 경험한 구체적인 일상이 반복되어 이미지화됨으로써 1920년대 식민 수도이자 근대적 도시로 변화하는 경성의 일상사에 대한 시각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정희정, 2016).

근 100년 가깝게 오래된 만화를 지금 다시 왜 거론해야 할까. 우리의 사회문화적 텍스트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멍텅구리」는 당시의 신문이 기업화, 상업화되기 시작한 언론현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되며, 시사만화가 실종하고 다양한 오락만화가 융성하는 1930년대로 이어가는 전환점의 시기에 나타난 문화적 텍스트로 존재한다. 그 안에는 1920년대를 지나면서 근대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수도 경성의 모습과 사회기득권층에 의해 주도되었던 근대적인 소비문화가 반영된 경성의 일상사에 대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담겨 있다.

본 연구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그 고유의 형식적 특성과 내용적 요소를 중심으로 한국 최초의 신문연재만화로서의 「멍텅구리」의 존재 의미를 조망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좀 더 고찰해야 할 논제들이 존재하며 이에 대한 후속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이 만화의 가장 중요한 특성의 하나인 공동창작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다. 작가의 실명제가 이루어졌던 일본과는 달리 작가가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멍텅구리」의 경우, 김을한(1971)의 증언대로 이상협과 안재홍이 전적으로‘스토리 작가’를 담당했는지, 또한 동양화가였던 노수현과 이상범이 그림 외에 만화적 및 영화적 표현기법을 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만화의 창작이나 관습이 정착되지 않았던 1920년대 중반, 약 3년간의 장수연재를 할 수 있는 토대가 한 두 명의 ‘스토리작가’와 ‘화가’에 의해 견인될 수 있는지에 대해 차후 정밀하게 탐색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이 만화의 성격에 대한 자리매김이 좀 더 정교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혁신적인 형식을 시도하였지만 식민지 사회의 현실을 담지 못하고 표피적인 근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쳤다는 오락, 코믹만화로서의 평가만이 아닌, 당대의 한 칸 만평과는 다른 시사성을 담보하고 있는지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멍텅구리」의 출발의 기저에 판매부수의 확장이라는 사업적 목적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성격을 갖게 된 배경에는 일제의 강력한 언론통제 하에서 불가피한 대안으로 취해졌다는 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손상익, 2005). 제한적이지만 실제로 식민지 지배라는 정치적 현실에 대한 「멍텅구리」식의 발언을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23) 이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멍텅구리」의 대중적 인기는 멍텅구리와 옥매 간의 사랑의 줄타기가 주는 즐거움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다. 즉 1924년 출범부터 1925년 초까지의 에피소드가 두 사람 간의 사랑에 초점을 두면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가졌다면, ‘세계일주’(1926.2.2.~1926.8.4.) 이후부터는 다분히 가정을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특히 ‘사회사업’(1926.8.14.~1926.8.31.)에서는 기생조합의 고문이나 종교단체의 총령, 혹은 신문사의 총장 등 식민지 조선 사회 속에서 부딪치는 멍텅구리의 좌충우돌의 모습과 행동에 보다 비중이 주어졌다. 이런 점에서 본 연구에서 상세하게 다루지 못했던 후반부의 특성, 즉 이 만화의 사회사적 의미에 대해 또 다른 분석이 요청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신문만화의 지형에서 한 칸 만평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시사성을 강하게 드러내지만, 네 칸 연재만화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주로 서민의 생활공간(가정, 회사, 상점, 식당 등)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소재로 삶의 일상성이나 현대인의 위축성을 재미있게 표현하는 접근법을 택하는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경우는 오히려 강한 시사성을 띠며 한국만의 독특하고 예외적인 전통을 이어 왔다(하종원, 2009). 그런 점에서 만화의 상품적 가치를 처음으로 확인한 현실적 체험이라 할 수 있는 네 칸 연재만화 「멍텅구리」의 의미와 의의는 저널리즘의 견지에서나 만화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추후 관련된 논제에 대한 후속연구를 통해 좀 더 이 만화의 사회적 및 문화적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Notes
1) 1925년 1월과 4월 신의주와 공주에서 연극 공연을 하였으며(서은영, 2011), 1925년 12월 ‘반도(半島)키네마’가 제작한 영화가 1926년 1월부터 인사동 조선극장과 우미관(優美館)에서 상영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윤영옥, 1995). 또한 만화 「멍텅구리」가 게재된 이후 신문이나 잡지에서 ‘어리석은 사람’에 관한 사건 기사나 희극 영화를 언급할 때 ‘멍텅구리’라는 용어를 관례적으로 붙일 정도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서은영, 2017).
2) 1910년부터 1919년까지 무단정치 시기의 유일한 조선어신문인 <매일신보(每日申報)>에서 고정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기사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재현하는데 만화식 표현법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는 총독부의 기관지로서 만화를 통해 조선인을 통제하고 식민지 권력의 담론을 전파할 목적을 가졌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서은영, 2013).
3) 19세기 후반 뉴욕이라는 근대 소비도시의 빈민가 뒷골목을 배회하며 속어를 쓰고 껄렁거리는 청소년들을 상징화한 주인공(노란 꼬마)을 등장시킨 이 연재만화는 미국에서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안식일’(Sabbath)의 전통을 깨뜨리고 일요판 신문이 발간되면서 새로운 상품으로 등장했다. 1895년 2월 퓰리처(Joseph Pulitzer)의 New York World에 처음 등장했으나, 1896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의 New York Journal로 작가가 스카우트되면서 이 작품의 소유권을 놓고 법정 공방이 일어났다. 결국 법원은 두 신문 모두 ‘Yellow Kid’를 주인공으로 하는 연재만화를 게재할 수 있도록 절충안을 제시했고, 이는 오락물을 통한 독자확보경쟁의 상업적 언론을 지칭하는 ‘Yellow Journalism’(황색저널리즘)이라는 용어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Harrison, 1981/2008).
4) 실업자인 주인공이 경찰, 배우, 아나운서 등 다양한 직장에 취직해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이 연재만화 역시 단편애니메이션(1925년 8월)과 실사 극영화(1925년 9월)로 제작되었으며, 의뭉스러운 분위기(とぼけた雰囲気)의 남자를 ‘논토’(ノントウ)라 부르는 유행어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毎日新聞社, 1981).
5) 일제는 1920년대 초반의 한 칸 만평에 대해 삭제와 압수처분 등 강력한 언론탄압을 가하였다. 예를 들면, <동아일보>의 ‘동아만화’는 1924년에 두 번, 1925년에 두 번 압수처분을 당했고, <시대일보>의 ‘지방만화’는 1924년에 한 번 압수처분을 당했다(정진석, 1998).
6) 당시 상위 클래스의 <東京日日新聞>이나 <國民新聞>은 만화를 판매확대의 전략으로 고려하지 않았으나, 중위 급의 <東京朝日新聞>, <東京每夕新聞>, <時事新報> 등은 독자서비스를 위해 만화난이나 연재만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였다(淸水 勲, 1981).
7) 이야기와 그림을 나누어 운영하였는데, 이야기는 처음에 편집국장인 이상협이 하다가 나중에 안재홍(安在鴻)이 맡았으며, 그림은 동양화가 노수현(盧壽鉉)이 그리다가 후에 이상범(李象範)이 이어 맡은 것으로 전한다(김을한, 1971).
8) <동아일보>는 「멍텅구리」에 맞서 1925년 1월 23일 「허풍선이 모험기담(冒險奇譚)」(4월 4일 「허풍선이」로 제목 변경)을 연재하였으나 5월 23일까지 총 41회에 그쳤다. 그 후 「바보의 하로일」(1925.8.1.~8.4.), 「엉터리」(1925.8.17.~11.6.), 「허생뎐」(1927.1.1.~4.25.) 등 일련의 네 칸 연재만화를 게재하였다. 한편 <시대일보>도 「구리귀신」(1925.6.30.~9월), 「마리아의 반생」(1925.10.20.~1925.12월말)을 게재했으며, <시대일보>의 후신인 <중외일보>도 「련애경쟁」(1926.11.24.~12.31.)을 게재하였다(윤영옥, 1995).
9) 1919년 3.1운동 이후 ‘연애’라는 신상품은 무서운 기세로 팔려나갔다(권보드래, 2003). 이러한 상황 하에서 「멍텅구리」는 ‘연애’라는 번역어를 에피소드의 제목의 하나(‘련애생활’)로 전면에 내세울 만큼 당시 시류를 포착하여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서은영, 2011).
10) 만화가들은 고정적인 등장인물들을 통해 일종의 ‘의사세계’를 만들어낸다. 이를 위해 만화가는 등장인물의 시각적인 특성과 독특한 개성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한다. 이렇듯 등장인물의 창조와 그 주변의 환경유지를 통해 만화가는 독자와 공모하여 오락, 교제, 즐거움을 위해 지속적으로 찾을 수 있는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Harrison, 1981/2008).
11) 우스꽝스러운 것과 어처구니없는 것은 정신적(무지, 경솔함, 실수나 잘못을 범하는 등의 형태)일 수도 있고 육체적(추함, 기형, 맞지 않거나 적절하지 않은 복장 등의 형태)일 수도 있다. 행위자가 잘못하였다면 그 행위는 어처구니없는 것이며, 만일 행위자가 비난 받을 상황이 아니라면(즉 상황에 대한 무지나 운이 나쁜 것이 원인일 경우) 그 행위는 우스꽝스러운 것이 된다(Neale & Krutnik, 1990/1996).
12) 일본에서도 「논키나토상」을 비롯한 신문의 네 칸 연재만화들이 1923년 9월의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 이후 불안정한 사회에서 좌절과 비애를 겪는 일본인들에게 위안과 원기를 주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한편 역으로 이 재해는 신문연재만화를 성장케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徐園, 2013).
13) “독자여러분께, 독자여러분의 사랑과 성원 덕분에 두 달 동안 헛물켜기를 우수하게 마치고 오늘부터 간신히 소원이 성취되어 신옥매와 두 사람이 련애생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후략)” 멍텅구리 고백 (1924.12.9.).
14) 오늘 멍텅구리에게서 이러한 편지가 왔기로 잠깐 소개하기로 합니다. “기자 선생님! 남의 헛물켜는 꼴을 모조리 깡그리 신문에 내어서 촐촐한 망신을 시킬 바에는 그 대신 이 편지나 좀 내어 주시오...(후략)” 성공한 멍텅구리로부터(1924.11.28.).
15) “그립고 그리운 옥매에게, 구름 아래 그대를 두고 그리운 한양성을 작별한 지 어느덧 두 달이 되었나이다. 길지 않은 동안에 그지없는 풍상을 겪고~(후략)” 3월 22일 홍콩에서 멍텅(1926.3.23.).
16) 미국의 만화가인 하비(Harvey, 1979)는 말풍선에 대해 “나는 지금껏 여러 자세를 취하고 이리저리 날뛰는 수많은 인물들의 그림을 그려 왔다. 하지만 아무리 그 그림들을 활기차고 생생하게 그리더라도 그 인물들에게 말풍선을 달아 말을 하도록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말풍선의 의미와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Harrison, 1981/2008).
17) 일본에서도 초기의 네 칸 연재만화에서 해설을 붙인 경우가 있지만, 이는 말풍선이 없는 상태에서 등장인물의 대화를 하단에 표현한 초창기 만화의 형태로서 「멍텅구리」 처럼 말풍선과 해설을 동반적으로 사용한 경우는 드물었다.
18) 이러한 비정상적인 신체비율은 두 가지 효과를 낳는다. 첫째, 만화캐릭터를 어린아이처럼 귀엽고 순진하게 보이도록 해준다. 둘째, 과장된 머리의 크기는 얼굴의 특징을 묘사하는데 도움을 주어 등장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도록 해준다(Harrison, 1981/2008).
19) 초창기의 6~8등신상이었던 우리 신문만화 캐릭터의 등신비는 1927년부터 5등신으로 점차 작아지더니 1950년대를 넘어서면서 3등신,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2등신의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유환석, 2015).
20) 예를 들면, 얼굴에 사선(斜線)이 그려진 모습은 인물이 상기되어 있다는 것을 표현하며, 움직이는 인물의 발걸음 뒤에 먼지구름을 그려놓는 것은 황급한 상태라는 것을 알려준다. 미국의 만화가 워커(Walker, 1978)는 이러한 만화적 기호를 ‘the lexicon of comicana’라고 명명하였다.
21) Merrill & Lowenstein(1971)은 매체발달단계를 엘리트-대중화-전문화 곡선(Elite-Popular-Specialized Curve)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인 엘리트 시기에는 경제적인 빈곤과 문맹이 일반화되어 있고 미디어 소비비용도 상대적으로 높다. 일제 식민지시기는 바로 전형적인 엘리트단계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주체는 성인 남성계층이다(김영희, 2001).
22) 19세기 중엽 자신을 공격하는 시사만화가 네스트(T. Nast)에 대해 부패 정치인 튀드(William M. Tweed)는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그 망할 놈의 그림을 어떻게 해봐! 신문쟁이들이 뭐라고 써갈겨대든 관심없어. 사람들은 읽을 줄 모르니까. 근데 제길, 그 놈의 그림은 볼 줄 안단 말이야!”라고 분통을 터뜨렸다(Fischer, 1996, p. 2). 이러한 사례는 바로 만화의 막강한 대중적 접근성과 파급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3) 예를 들면, 총독부에서 담배장사를 하고 경찰서에서 게장을 팔며 일본인과 조선인을 차별한다는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이나(1924.11.4.; 11.6; 11.11.) 경찰이 홍수대책 인력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질타(1925.7.15.), 혹은 물건을 구매할 때는 일인 상점이 아닌 조선상점을 이용해야 한다는 발언(1925.4.17.) 등 총독부와 식민정치에 대한 직간접적인 비판의 모습을 보인 일화도 등장하고 있다.

Acknowledgments

이 연구는 2017년도 선문대학교 교내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이루어졌음.

이 연구는 일본의 다이쇼이미저리(大正イマジュリィ)학회의 제7회 국제심포지움(일본 도시샤대학, 2018.3.10.)에 발표한 논문을 기초로 수정·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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