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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0 , No. 4

[ Article ]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0, No. 4, pp. 3-21
Abbreviation: jss
ISSN: 1976-2984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0 Oct 2019
Received 27 Nov 2018 Revised 15 Oct 2019 Accepted 22 Oct 2019
DOI: https://doi.org/10.16881/jss.2019.10.30.4.3

중도지체장애인의 자기수용과 삶의 만족에 대한 질적 연구
김미숙 ; 서수균
부산대학교 심리학과

Self-Acceptance and Life Satisfaction of Persons with Physical Disabilities after an Accident: A Qualitative Study
Mi-Suk Kim ; Su Gyun Seo
Department of Psychology, Graduate School Pusan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서수균, 부산대학교 심리학과,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 산 30번지, E-mail : sgseo@pusan.ac.kr

Funding Information ▼

초록

본 연구의 목적은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중도지체장애인의 생애 분석을 통해 자기수용 과정과 자기수용과 삶의 만족 간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장애 사고 이후 자기수용을 한 중도지체장애인과 자기수용을 하지 못한 중도지체장애인을 선발하여 심층면담을 진행하였다. 슛제의 이야기식 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질적 연구 방법 중 생애사 연구방법을 사용하였다. 각 연구 참여자들은 ‘전신마비 생태주의 시인’, ‘오른 팔을 잃은 명상 지도자’, ‘휠체어 탄 인권활동가’, ‘자기낙인으로 우울한 여성장애인’이라는 주제어가 도출되었다. 장애 사고 후 장애를 입은 자기를 수용해가는 과정은 초기 충격과 분노 단계, 부인과 혼란 단계, 현실인식에 따른 상실 단계, 고통과 절망 단계, 우울과 방어적 은둔 단계, 도전과 깨달음의 단계, 수용과 성장의 단계로 분석되었다. 자기수용과 삶의 만족 간의 관계는 장애 사고 후의 자기수용은 장애 사고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를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점검하고 새로운 경로 창출을 해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장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자기낙인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차단함으로써 삶의 만족에 영향을 미쳤다. 본 연구 결과는 중도지체장애인에게 심리 재활프로그램의 개입에 있어 자기수용 촉진의 필요성과 자기수용 과정 분석에 따른 단계별 치료 개입 방안을 모색하는데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Abstract

The present study aimed to understand the live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aused by an accident. This study investigated the self-acceptance process and the associations between self-acceptance and life satisfaction. As a research tool, Fritz Schützeʼs narrative interview was used as well as biographical research. The individual life stories of the participants were restructured as follows: ‘a friendly ecological poet who is completely paralyzed’, ‘a meditation teacher who has lost her right arm’, ‘an independent human rights activist sitting on her wheelchair all the time’, and ‘a handicapped woman suffering from depression caused by a self-stigma’. Our subject suggested that the self-acceptance process includes initial shock and personal anger, denial and confusion, loss by realization, suffering and despair, depression and retreat, challenge and spiritual enlightenment, and acceptance and growth. After their accidents, they started looking for meaning in life and enjoying plenary satisfaction through creation of a new path. In conclusion, this research gives us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lives of persons with physical disabilities after an accident and provides undertones of how to supply psychotherapy.


Keywords: Persons with Physical Disability After an Accident, Self-acceptance, Life Satisfaction, Posttraumatic Growth, Qualitative Study, Biographical Research
키워드: 중도지체장애인, 자기수용, 삶의 만족, 질적 연구, 생애사 연구

1. 서 론

중도장애는 한 사람의 삶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이며 대표적인 외상이다. 중도지체장애인은 선천적인 장애인과는 달리 장애인이 되기 전까지 비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장애를 수용하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있어 보다 심한 스트레스와 사회·심리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Priestly, 2003). 이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역할의 상실, 대인관계의 변화 등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인생행로와 자기개념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되고 변화된 삶에 직면하여 혼란을 경험한다. 사회적 정체성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신체는 사회적 관계와 다른 사람의 지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장애인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김계화·김옥수, 2005).

낙인은 특정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 차별행동을 포함하는 것으로 장애인이 겪는 고유한 경험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개념이다(이지수, 2011). 낙인은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과 자기낙인(self stigma) 두 가지 차원을 포함한다. 사회적 낙인이 특정 집단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고정관념과 차별적 행동을 의미한다면, 자기낙인은 사회적 낙인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특성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내면화되는 것을 의미한다(Corrigan, 2005). 자기낙인은 정서적으로는 낮은 자기존중감과 행동적으로는 중요한 목표를 시도하지 않는 것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Corrigan et al., 2016). 또한 수치심과 자기비난의 특성을 포함하면서(Simon, Feiring, & Cleland, 2016), 자존감, 삶의 만족도, 그 외 다양한 심리적 부적응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Quinn, D. M., & Chaudoir, S. R., 2015). 타인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거나 이전과는 다르게 대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과 같이 타인의 반응들을 부정적으로 지각하게 될 때 이후 자기 비난 또한 증가하며(Ullman, Townsend, Filipas, & Starzynski, 2007), 낙인을 많이 지각할수록 삶의 만족도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Rosenfield, 1997).

장애 상태가 직접적으로 삶의 만족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차별경험과 자기낙인을 매개로 하여 삶의 만족을 저하시킨다(이지수, 2011)는 연구결과는 장애 자체보다는 장애를 입은 자신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후 삶의 만족이 달라진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중도지체장애인이 장애를 입은 자신을 수용하면 상대적으로 장애에 대한 수치심과 낮은 자존감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감소시킬 수 있다(Piastro, 1999). 장애 사고 이후 자신의 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은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고, 정상적인 재활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며 행복감과 정신적 건강의 근본이 된다(김성회, 1999). 이훈진(2009)의 연구에서 수용수준이 높아질수록 반추와 걱정 등 우울, 불안의 취약성 요인이 감소하는 결과를 보인다. 이는 수용 수준을 높임으로써 우울, 불안을 예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Padgett(2008)은 실제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각으로부터 ‘살아 있는 경험’에 대한 이해를 얻음과 동시에 그들의 삶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도출하고자 하는 경우 질적 연구가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장애라는 생의 위기로 변화된 삶 속에서 수많은 외적 사건과 내적인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중도장애인의 삶은 개별적인 특성을 나타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적 분석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 임선영(2013) 또한 양적분석을 실시하여 상실을 통한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인지적 전략들을 조사하였는데, 상실경험의 어떤 측면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한 것인지 정교하게 설명하기 위해 질적 연구를 동시에 진행한 바 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생애사적 접근은 개인의 전 생애 속에 녹아있는 개인의 가치와 철학뿐 아니라 그 개인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조망도 가능하게 한다(이효선, 2011). 살아오면서 직면한 사회적 제약, 삶의 기회와 전환점 등 일련의 생애 사건 등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 그리고 삶의 선택과 의사 결정이 현재 삶에 어떻게 반영되고 삶의 질에 연관되는가하는 질문을 생애사를 통해 탐색할 수 있다. 장애로 인해 초래되는 일상적인 삶의 기능의 제한과 왜곡된 인식으로 인해 많은 장애인들은 낮은 삶의 만족도를 경험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박명숙, 2012) 삶의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중도지체장애인도 있다. 이에 연구 참여자의 생애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삶의 만족의 맥락을 제공할 수 있는 자기수용 과정을 세밀하게 살펴보고자 하였다. Weller와 Miller(1992)가 장애수용과정을 제시한 바 있지만 이는 1990년대 국외에서 진행된 연구결과로 지금 시점에서 국내의 중도장애인들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또한 장애수용보다 포괄적인 개념인 자기수용 과정을 분석하는 데도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장애를 수용하는 단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장애를 입은 자신의 변화된 정체감을 수용하고 이와 함께 성장에 이르는 과정까지 분석의 범위로 설정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심리적 부적응이나 단순한 적응에 초점을 맞췄던 이전의 장애인 연구와는 달리 사회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거나 삶의 만족을 느끼며 살고 있는 장애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는 장애인이 의존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구에 반응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갖게 되는 경험을 이해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자기수용 이후, 삶의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 중도지체장애인들의 생애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삶의 만족에 기여하는 심리적 기제와 긍정적 지표를 파악하고자 한다. 또한 자기수용을 한 중도지체장애인과 자기수용을 하지 못한 중도지체장애인의 삶의 경험을 비교함으로써 실제로 자기수용이 삶의 만족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자기수용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중도지체장애인들의 장애 이후 삶의 경험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심리치료 개입에서의 적절한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2. 방 법
1) 연구 참여자 선정

본 연구의 연구 참여자는 창원과 양산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중도지체장애인으로 자기수용 이후의 삶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중도지체장애인과 아직 자기수용에 이르지 못한 중도지체장애인으로 구성했다. 이력성 장애를 포함한 다차원적인 상실 경험을 살펴보기 위해 사고 당시 연령을 20대 이후로 하였으며, 자기수용 과정을 분석하기 위해 장애 기간은 10년 이상 경과된 중도지체장애인으로 표집하였다. 연구 참여자들의 기본 정보를 살펴보면 장애 정도는 전신마비, 하반신 마비, 오른팔 절단이며, 장애 기간은 15년에서 25년까지 보고되었다. 총 4명의 연구 참여자 중 여성 3명, 남성 1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사고 당시 연구 참여자 A와 D는 결혼을 한 상태였다. 연구 참여자 중 D는 유일하게 자녀가 있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사고 당시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A, B, C는 장애 사고 후, 다른 직업을 갖게 되었다. 연구 참여자들의 기본 정보와 직업적 특성은 <표 1>과 같다.

<표 1> 
연구 참여자의 기본 정보
성별 연령 결혼 여부 장애정도 시기 기간
A 57세 기혼 (전) 전신마비 31세 26년
B 53세 미혼 오른팔 절단 34세 19년
C 49세 기혼 (후) 하반신 마비 22세 27년
D 51세 기혼 (전) 하반신 마비 39세 13년

2) 연구절차 및 자료 분석
(1) 심층면담을 위한 섭외 및 예비조사

심층면담을 하기 전, 연구 참여자의 집을 방문하여 연구목적과 연구 절차에 대한 설명을 한 후 연구동의를 얻었다. 연구 참여자 A, B, C는 자기수용 집단으로 표집되었고 연구 참여자 D는 비자기수용 집단으로 표집되었다. 자기수용 여부는 섭외 및 예비조사 단계에서 면담을 통해 대화형식의 절차를 통해 확인했다. 자기수용 근거로 판단된 연구 참여자 A, B, C의 문장텍스트를 아래와 같다.

A) 이게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된다는 수용의 의식, 그런 게 있었나 봐요. 모든 신체기능이 마비됐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찬양은 할 수 있겠구나, 그런 말을 했대요.

B) 장애를 입은 나를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불교에서는 인과라는 것이 있으니까 내가 이런 불행을, 상실을 겪는다는 것은 어떤 씨를 심었기 때문에 이런 과를 얻은 거라고 생각해요.

C) 장애로 인해 낮아지는 걸 경험했고, 장애를 입기 전에는 굉장히 교만했는데 어느 순간 다른 인생을 사는 거잖아요. 장애를 가지면서 겸손해지고 약하고 어두운 것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고. 지금 생각하면 좀 빨리 받아들일 수도 있었는데⋯

(2) 심층면담을 통한 자료수집

본 연구는 중도지체장애인 4명을 대상으로 슛제의 이야기식 인터뷰를 사용하여 자료를 수집했다. “저는 중도지체장애인의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신 이야기를 해 주시겠습니까?”라는 개방형 질문을 통해 연구 참여자가 선택한 자유로운 형식에 따라 이야기하도록 요청하였다.

본격적인 면담은 2013년 7월부터 11월 말까지 5개월 동안 진행되었다. 1차면담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씩 진행했고 장소는 연구 참여자의 집과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모든 심층면담은 사전 동의를 구하고 녹음되었고, 녹음된 자료는 전사하여 완전 축어록을 작성하였다. 2차면담은 1차면담 자료를 전사한 후, 면담 자료 중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거나 모순되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질문으로 이뤄졌다. 또 연구자가 전체 이야기를 듣고 궁금한 것을 질문함으로써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했다. 심층면담은 사전 섭외를 제외하고 심층면담은 총 8회 진행했으며 총 13시간이었다.

(3) 자료 분석

본 연구는 심층면담을 통해 수집된 녹음자료를 전사한 완전 축어록을 작성한 후 형식적 텍스트 분석을 진행했다. 형식적 텍스트 분석은 축어록의 원자료에서 대화 형식을 제외하고 주제별 문단형식으로 다시 분석한 것이다. 이와 함께 면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관찰되는 참여자의 얼굴 표정, 행동, 반응, 내레이션 패턴 등을 현장에서 메모하여 자료에 포함시켰다. 참여자 A는 시인이라는 특성상 시집과 관련 글들을 수집하여 분석 자료로 사용하였다. 자료 분석은 형식적 텍스트 분석 자료를 작성한 후, Lieblich와 Tuval-Mashiach & Zilber(1998)1)이 제시한 질적 연구 분석 방법 중 통합적 내용분석과 범주적 내용분석을 사용했다. 통합적 내용분석에 따라 개별 생애분석을 하였으며, 이를 통해 중도장애라는 전환점을 계기로 창발된 연구 참여자들의 삶에 대한 태도, 직업의 변화 등 삶의 질적 변환을 분석하였다. 자기수용 과정은 범주적 내용분석에 따라 4명의 연구 참여자들의 생애 분석 결과로부터 공통의 주제를 도출하여 공통적 또는 유사하게 발현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였다. 비자기수용 집단으로 표집된 연구 참여자 D는 자기수용에 이르지 못한 개인적 특성과 삶의 경험에 대해 분석하였다. 모든 자료 분석을 토대로 자기수용과 삶의 만족 간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제시하였다.

질적 연구에서 연구 결과의 타당도를 확보하기 위해 Lincoln과 Guba(1991)는 연구현장에 오래 머무르기, 동료 연구자로부터 검토 및 타당성 확인, 부정적인 사례 검토 등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가능한 다각적인 자료 수집을 위해 사전인터뷰까지 포함하여 총 12번의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연구 참여자들이 활동하는 영역의 정보를 추가로 수집하여 분석에 포함시켰다. 연구 참여자 A의 경우는 초월적인 수용과정이 일반화하기 어려운 점이 동료들로부터 피드백이 있어 배우자 및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도 추가로 진행하였다. 완전 축어록 작성 과정에서 동료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인터뷰 후 추가질문을 구성하여 연구자의 주관성을 배제하려 노력하였다.


3. 결 과
1) 개별 생애 분석

연구 참여자들의 개별 생애는 생애주기별 주요사건을 바탕으로 핵심주제를 선정해 삶의 태도를 분석한 후 개인의 삶의 태도가 갖는 의미를 재분석하였다. 각 연구 참여자들은 ‘전신마비 생태주의 시인’, ‘오른팔을 잃은 명상지도자’, ‘휠체어 탄 인권활동가’, ‘자기낙인으로 우울한 여성장애인’이라는 주제어가 도출되었다.

(1) A의 생애 분석– 전신마비 생태주의 시인

초등학교 교사였던 연구 참여자 A는 31세 때 뺑소니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다. 90일 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다는 것을 인지한 A는 절망보다는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장애 사고 후, 유한한 삶에 대한 깨달음이 깊어지고 작은 것에도 더욱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A는 역경 후 성장의 모습을 보여주며 현재 생태주의 시인으로서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연구 참여자 A의 6가지 핵심주제는 ‘실존지향적인 삶의 태도’, ‘초월적 수용의식’, ‘이타적 삶의 충만함’, ‘긍정적 재평가- 24시간의 자유’, ‘삶의 의미가 된 시’, ‘영성의 성장’이다. A의 ‘실존지향적인 삶의 태도’는 완전하고 정상에 대한 높은 기준보다는 신체기능은 저하되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이타적 삶의 충만함’은 자신의 후원금을 쏟아 결성한 척수장애인모임을 통해 삶의 의미를 체화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상정하면서 장애의 상실감을 상쇄할 수 있었다. ‘긍정적 재평가- 24시간의 자유’는 신체적 자유가 없는 일상을 고립감, 외로움보다는 스트레스 받지 않는 여유로운 일상으로 재평가하였다. 이는 Gillies와 Neimeyer(2006)가 제안한 상실의 충격으로 인한 고통을 감소시키는 의미 재구성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미재구성 과정은 삶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데, 이런 비교가치에서 자산 가치로의 전환은 자신의 특성에서 긍정적인 것에 가치를 두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므로 삶을 더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된다(Wright, 1983).

<표 2> 
연구 참여자 A의 생애분석
실존 지향적인 삶의 태도: 작은 것도 소중히 여김
초월적 수용의식: 혼수상태에서 깬 후 장애 수용
이타적 삶의 충만함: 동료장애인 후원
긍정적 재평가: 상실이 아닌 24시간의 자유
시인으로서의 정체성: 경로창출 및 삶의 의미
영성의 성장: 장애는 신이 준 선물

저는 장애를 신이 저를 한 단계 성장시켜 주기 위해서 내게 준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장애를 입지 않았으면 그냥 평범하게 살아갔을 건데⋯ 잠들기 전까지는 몸이 불에 타는 느낌을 가지고 있어요. 육체가 쇠사슬에 꽁꽁 묶여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도 영혼은 가볍지⋯ <참여자 A-35>

(2) B의 생애 분석- 오른 팔을 잃은 명상지도자

연구 참여자 B는 20대부터 참선을 통해 종교적인 물음과 실존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며 불혹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여기던 찰나에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오른팔의 절단과 함께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도 잃게 된다. 또한 장애는 다양한 도전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하며 차별의 대상이 된다. B는 좌절이 거듭되면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결국 참선의 길을 걸으며 자기수용에 이르게 된다. 자기수용 이후에는 명상 모임을 이끌면서 자신의 깨달음을 함께 나누며 살고 있다. 연구 참여자 B의 핵심주제는 ‘가난이 꺾을 수 없는 자존심’, ‘상실이 던지는 생의 질문’, ‘거듭되는 실패로 밥벌레로 추락함’, ‘역경을 통해 삶을 되돌아봄’, ‘참선을 통한 자기수용’, ‘더불어 명상수행’ 이다. 가난이라는 위기에 대한 대처양식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반영된다. 가난이 주는 불편은 있지만 가난에 굴하지 않았던 것처럼 오른팔 전달이라는 신체적 불편은 있지만 장애로 인해 자신을 가치절하하지 않는 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이는 사회적 낙인은 알지만 차별에 동의하지 않으며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가며 자신의 새로운 경로를 도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B는 장애라는 역경을 통해 자신의 삶을 깊이 돌아보게 되면서 장애를 생의 위기에서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로 재평가한다. “빙벽을 오르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앞만 보며 달려온 삶에 쉼표를 찍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평가했다. 장애라는 역경을 통해 깊은 수행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교만했던 자신을 수용하며 이타적인 삶을 지향하게 된다. 역경, 죽음 등을 마주한 사람들의 명상지도를 하며 장애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삶의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표 3> 
연구 참여자 B의 생애분석
가난으로 자신을 가치절하하지 않음
생애 질문: 장애는 내 교만심을 일깨워준 사건
밥벌레로 추락함: 절망의 늪에서 마주하는 자기
긍정적 재평가: 역경을 통해 삶을 되돌아봄
참선을 통한 자기수용
더불어 명상수행: 경로창출 및 삶의 의미

내 교만심이었구나, 내가 교만한 사람이라는 걸 내 스스로 알고 있으니까. 내가 저 사람한테 어느 생에 어느 순간엔가 내가 슬쩍 비웃고 지나갔겠구나, 무시하고 지나갔겠구나, 낮추어 봤겠구나, 그런 생각 들면서. <참여자 B-139>

(3) C의 생애 분석- 휠체어 탄 인권활동가

연구 참여자 C는 아버지가 부재한 집안에서 맏딸로 성장하며 어머니의 큰 버팀목이었다. 첫 직장을 얻고 첫사랑이 시작된 22살,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C는 오랫동안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집에서만 생활하다 옛 지인을 통해 장애인 모임에 가입한 후 운전면허증을 획득하게 된다. C는 처음으로 맛본 성취감을 동력으로 장애인들과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이후 장애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장애인이 된 자기에 대한 인식 또한 바뀌면서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게 된다. C는 현재 장애인 인권 단체 대표를 맡고 있다. 연구 참여자 C의 생애는 5가지 핵심 주제로 분석하였으며, 핵심주제는 ‘남편 같았던 맏딸’, ‘장애로 여성을 잃다’, ‘도전의 동력, 운전면허증’, ‘독립을 통해 삶에 대한 확신이 생김’, ‘평범한 삶에서 특별한 삶으로’이다. C에게 있어 운전면허증 획득은 무력하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삶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움직일 수 있는 주체적인 삶으로 전환되는 불씨가 된다. 이는 도전과 교류의 기반을 마련하여 상실한 신체적 가치 외의 다른 영역의 가치 발견으로 이어져 삶의 만족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의 토대가 되었다.

<표 4> 
연구 참여자 c의 생애분석
남편 같았던 맏딸: 장애는 가족의 최대 위기사건
장애로 여성을 잃다: 첫사랑과 데이트 중 사고
도전의 동력, 운전면허증
독립을 통해 삶에 대한 확신이 생김
사회적 역할보다는 자기의 욕구와 자립에 집중함
여성장애인인권단체 대표: 경로창출 및 삶의 의미

장애로 인해 낮아지는 걸 경험했고, 한없이 교만하고 이십대 초반의 내 모습은 정말 교만했거든요. 굉장히 교만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또 다른 인생을 사는 거잖아요. 장애를 가지고. 겸손해지는 그런 것들이 있고 약하고 어둡고 이런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들도 됐고, 그래요. <참여자 C-288>

(4) D의 생애 분석- 자기낙인으로 우울한 여성장애인

연구 참여자 D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의 사망으로 17세부터 가장의 역할을 맡게 되고 가난한 남편과 결혼을 함으로써 헌신하는 삶이 이어졌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시기에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된다. 재활초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경과가 좋았지만 자아정체감의 혼란과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병리적 우울증에 걸리게 되면서 결국 걷지 못하게 되었다. 동료 장애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시 안정기를 찾는 듯 했으나 대학원에 진학 후 비장애인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심리적 불편감이 활성화되어 우울증이 재발된 상태다. 연구 참여자 D의 생애는 7가지 핵심 주제로 분석했으며, 핵심주제는 ‘타인의 욕구에 더욱 민감함’, ‘역할 상실에서 오는 좌절감’, ‘역기능적인 분노표현 행동’, ‘욕심 없는 삶을 강조함’, ‘자기낙인, 스스로 입히는 상처’, ‘힘에 대한 갈망’, ‘외롭고 공허한 삶’이다. D는 장애 초기 재활치료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였는데 이 시기의 사회적 지지의 부족은 외상 경험을 처리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했다. 사회적 지지는 외상의 충격을 극복하고 정서를 조절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데(Peterson, Folkman, & Bakerman, 1996), D는 타인의 욕구에 더 민감한 성격구조로 인해 좌절된 욕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어 적절한 사회적지지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D는 관계를 매우 중시하며, 개인의 가치를 돌봄을 받거나 주는 것으로 상정하고 이에 따라 가치 평가가 이루어졌다. 장애 이전의 삶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기를 경험했다면 장애 이후에는 돌봄을 받는 처지로 의존적 존재로서만 자기를 경험함으로써 좌절감과 무력감이 활성화되었다. ‘역기능적인 분노표현 행동’은 부적절감과 외로움을 부추기며 자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방해했다.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대한 자신의 정당한 방어는 삶에 있어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지만 방어에만 집중하다보면 자신의 강점으로 임파워먼트 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D는 자기낙인으로 인한 수치심으로 분노감과 우울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기수용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표 5> 
연구 참여자 D의 생애분석
타인의 욕구에 더 민감한 성격구조
아내, 엄마 역할에서의 좌절감
역기능적인 분노표현 행동
높은 도덕적 기준과 자기처벌적인 인식
자기낙인, 스스로 입히는 상처
비합리적인 신념은 상실감을 더 극대화시킴
고립감으로 외롭고 공허한 삶

근데 나는 이제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다 보니까 상처 받아놓고 결국 내 안에서 내가 상처받아 놓고... 저 사람이 준 건 아닌데 꼭 내가 받은 것처럼 느끼는 거예요. 저 사람이 나한테 상처준 거 같이. 그런 거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막 우울한 시간은 되게 많이 우울했어요. 긴 시간동안. <참여자 D-435>

2) 자기수용 과정 분석

과정분석이란 근거이론의 축코딩의 일부로써 과정과 구조의 상호작용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와 하위과정들이 어떻게 관련이 되고 어떻게 피드백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현상에 대한 반응, 대처, 조절에 관계하는 작용·상호작용의 연속적인 연결을 의미한다(Strauss & corbin, 1998). 연구 참여자들의 개별 생애 분석을 바탕으로 공통된 주제를 범주화하여 자기수용과정을 분석하였다. 이와 함께 자기수용과 삶의 만족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였다.

본 연구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갑작스런 장애를 겪은 직후, 초기 충격과 분노(initial shock and personal anger)의 단계를 시작으로 부인과 혼란(denial and confusion), 현실인식에 따른 상실(loss by realization), 고통과 절망(suffering and despair), 우울과 방어적 은둔(depression and retreat), 도전과 깨달음(challenge and spiritual enlightnment)의 단계를 거쳐서 수용과 성장(acceptance and growth)으로 이어졌다. 이는 Weller와 Miller가 제시한 척수장애인들의 장애 수용 과정을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 추가하고 수정한 내용이다.2) Weller와 Miller의 장애수용과정 분석은 1990년대 국외에서 진행된 연구결과이다. 중도장애인이 경험하게 되는 차별과 낙인은 시대 문화적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특성이 강하므로 지금 시점에서 국내의 중도장애인들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또한 장애수용보다 포괄적인 개념인 자기수용 과정을 분석하는 데도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장애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장애를 입은 자신의 변화된 정체감을 수용하고 이와 함께 성장에 이르는 과정까지 분석의 범위로 설정하였다. 중도지체장애인의 자기수용 과정과 각 단계별 특성을 분석했으며 <그림 1>과 <표 6>에서 제시하였다.


<그림 1> 
중도지체장애인의 자기수용과정

<표 6> 
자기수용과정에서의 단계별 특성
단계 자기수용과정에서의 단계별 특성
1 자기 가족과 다툼이 잦으며, 자책과 침습적인 반추로 인해 분노가 자주 올라옴.
2 장애인으로서의 정체감에 거부감을 보임.
3 무기력함에 좌절하고 타인들에게 서운함을 자주 폭발적으로 표현함.
4 불면증이 심해지고 신체화 증상, 자살사고도 하게 됨.
5 자기초점화주의가 높아지고, 교류를 끊고 칩거하며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반문함.
6 도전을 통해 통제감과 성취감을 경험함. 자기개념의 정립과 이타성이 발휘됨.
7 낙인과 차별에 의연해짐. 역경 후 성장의 특성을 보임.

(1) 초기충격과 분노의 단계

생의 어느 시점에서 중도장애를 입게 되면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여러 수준에서 한 사람의 전체 인생행로가 방해받는다는 의미에서 Bury는 중도장애의 경험을 인생역정의 혼란(biographical disruption)이라고도 하였다(임난영·한혜숙, 2004). 초기 충격과 분노의 단계에서는 자신이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느끼며, 무력감, 좌절, 이유 없는 불쾌감이 섞인 분노를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이 단계는 중도장애라는 역경에 대한 일차적 과정으로 보여지며, 애도의 정상적인 과정일 수 있다. 반복적으로 교통사고에 대해 떠올리며 장애인이 되었다는 충격에 한동안 사로잡혀 있게 된다.

물리 치료하는 과정에서 침대에 묶어서 세워놓는데 밖에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어쩌다 내가 어쩌다 내가 그 대상이었을까. 어쩌다가 하필이면 내가, 이런 생각하면서 많이 울었던 거 같고. 늘 눈물, 눈물로 보낸 것 같고, 지옥이죠. 한마디로 병원생활은 지옥이었죠. <참여자 C-291>

(2) 부인과 혼란의 단계

연구 참여자들은 초기 충격에서 벗어난 후에도 한동안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갑작스런 장애는 자기개념에 대한 혼동을 불러 오며 대인관계 및 일상영역에서 어려움을 경험했다. 장애로 인한 신체 기능상의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응이 되는 특성이 있는 반면, 정체감 혼란과 장애에 대한 거부감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부인의 단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심리적 존재만을 절대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에 부인된 현실을 자신의 실질적인 현실로 간주하는 것이다.

나는 그냥 ◯◯◯인데, 저 사람들은 나를 장애인 ◯◯◯으로 날 보고 있었구나, 자기들하고 다른 존재로 우리를 보고 있었구나. 그게 편견이구나, 그걸 느꼈었거든요.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좋아하는 거는 일반인들하고는 조금 색깔이 다른 거 같은 뉘앙스를 풍길 때, 나는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상당히 기분이 나쁜 거예요. 거기서 처음 상처를 많이 받기 시작했었거든. <참여자 D-484>

(3) 현실인식에 따른 상실 단계

연구 참여자들은 절단된 신체나 기능을 잃어버린 신체로 인해 이전에 해 오던 역할을 할 수 없는 상실감으로 크게 좌절했다. 상실감이 제대로 수용되지 않으면서 신체적 통증이나 우울증 혹은 무기력, 두려움, 공허감, 비관, 조바심, 울화, 죄책감 등의 심리적인 증상을 경험했다. 신체장애를 입게 되는 상실 시, 개인마다 차이는 있으나 분노, 불안, 공포, 고독 등을 경험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으로 간주되나 이러한 반응이 지속되면 정신불안증적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신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은 상실된 자아에 대해서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비장애인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경험하면서 회피적 대처를 하게 된다.

한 달 간 입원을 했다가 퇴원을 하고 턱 와서 보니까 한 손으로 안 되는 게 너무 많은 거라. 신발 끈 꿰는 이런 것도 안 되고. 그러면서 순간 순간 두 손으로 했던 생활한 것들을 한 손으로 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게 늘상 너무 많다는 걸 이제 막, 늘상 느껴야하는 거가 마음이 침울해지기 시작하는 거라. <참여자 B-108>

(4) 고통과 절망의 단계

고통과 절망의 단계는 참여자들이 심리적으로 가장 괴로움을 겪은 단계로, 자기연민, 분노, 절망의 감정이 거듭 반복되면서 자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장애 사고 전, 내적 성찰이 깊다고 자부했던 참여자 B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겹게 도전한 것들의 결과가 실패로 점철되면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의 절망에 부딪히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사는 삶들이 서른, 여섯, 일곱, 여덟, 아홉 마흔 될 때까지 그 삶들이 뭐 표현하자면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그 발자국마다 피고름이 고이는 듯한 삶이었던 거라. <참여자 B-122>

(5) 우울과 방어적 은둔 단계

이 단계는 이전 단계에서의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갈무리하며 자신의 삶을 심도 깊게 성찰하는 시간이 된다. 연구 참여자들의 사회참여나 활동이 두드러지게 감소하며, 본인의 불확실한 미래와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기인한 우울 증상을 경험한다. 연구 참여자 B, C는 방어적 은둔 시기 동안 절망과 우울의 정서를 경험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재 장애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깊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자신이 경험하는 새로운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앞으로의 삶 속에서 자신이 견지해야 되는 태도에 대해 심도 깊게 탐구하는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참여자 D는 우울 증상으로 스스로 고립되며 그 고립감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과민감성으로 우울증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바깥으로 나가야하는데 우울증이 생기니까 책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자기 세계에 빠지는 거야. 책의 주인공이 내가 되고 가사가 나의 노래가 되고 내 얘기가 되고(웃음), 가슴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참여자 D-487>

(6) 도전과 깨달음의 단계

임난영·한혜숙(2004)의 근거이론에 의한 연구 결과 중 ‘수행 효과에 대한 만족감’이 다음 단계의 재활에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연구 참여자 C 또한 운전면허 획득이 동력으로 작용하여 끊임없이 도전을 시도하고 독립성을 쟁취해 나갔다. 신체이동의 자유를 얻게 되면서 장애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하게 되었는데 이는 장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인식과 성취감은 중도지체장애인의 자기개념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자기수용을 촉진한 것으로 보인다. 참여자 B 또한 한 번의 실패 경험이 있지만 대학원 도전에 성공함으로써 성취감을 얻게 된다. 도전의 긍정적 결과는 관점의 다각화를 가능하게 했으며 내적성찰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도전과 깨달음을 얻은 이 단계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장애사고 이후 변화된 삶을 독립적인 삶으로 지각하면서 통합해 나가게 된다.

전국모임을 다니면서 내가 본 건은 정말 많은 다양한 장애인들이 각기 자기 모습대로 살아가고 있구나,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용기를 가지게 되었어요. 정말 나보다 더 불편한 사람들도 사회활동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봤고요. 그래서 이제 서서히 자립, 독립 이런 걸 준비했어요. <참여자 C-265>

(7) 수용과 성장의 단계

수용과 성장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연구 참여자들은 자신의 장애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가치와 자기정체성을 재확립하며 자신의 장점과 능력을 탐구하고 이를 활용하려고 시도한다(Smart, 2001). 장애라는 역경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영혼의 성장과 지혜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이들은 장애라는 상실 경험에 대해 의미를 재구성함으로써 인생의 목적, 삶의 의미를 새롭게 가지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정체성 또한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게 된다. 연구 참여자 A, B, C의 생애 과정을 살펴보면 장애를 입지 않았으면 결코 알 수 없었던 삶의 의미들을 발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장애를 입게 되어 삶이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막이 오른 것이다. 역경 후 성장의 개념에 부합하는 참여자 A, B, C는 장애라는 역경 후 삶의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면서 우선순위가 바뀌고, 작은 것들에 고마움을 느끼며 삶에 대해 더 겸허한 태도를 지니게 된다. 또한 영적인 성장을 통해 실존적인 물음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아가며,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인정하고,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

저는 죽음을 연구하다 보면 영혼이 성숙하고 커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영혼에 대해서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제 사명이라 생각해요. <참여자 A-42>

내가 수행한 바에 의하면 이런 생각이 들어. 내가 부처님의 법을 벗어나 모르고 듣지 않고 수행하지 않고 황제와 같은 삶을 살겠는가, 앉은뱅이 삶을 살아도 불교의 정법을 벗어나지 않고 수행하는 삶을 살겠는가, 그러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삶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참여자 B-164>

3) 자기수용, 삶의 만족의 관계에 대한 분석

물리적 조건으로 삶의 만족이 개념화된다면 중도지체장애인의 삶의 만족은 매우 빈약하다고 볼 수 있으나, 역경 자체보다는 역경에 대한 태도가 개인의 삶을 결정하듯 삶의 만족 또한 일상 영역에서의 객관적 지표보다는 개인이 자각하는 삶의 의미로써 규정될 수 있다. 자기수용은 중도지체장애인이 경험하는 사회적 낙인이 내면화되는 경로를 차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Corrigan(2006, 2009)은 자기낙인은 자신에 대한 신뢰의 감소로 이어지며 일과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에서의 실패와 연관성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고정관념의 동의와 적용으로 내면화되는 자기낙인은 자기혐오로 이어져 고통 받는다고 하였다. 자기수용을 한 그룹의 연구 참여자들은 자기신뢰감을 바탕으로 신체적 상실에 자신의 역할 한계를 규정 짓지 않고 새로운 경로를 창출하였다. 자기낙인의 해로움은 정서적으로는 낮은 자기 존중감을, 행동적으로는 중요한 목표를 시도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는데(Corrigan, 2009), 자기수용 그룹인 A, B, C는 이런 부정적인 결과보다는 자기신뢰감과 도전을 보였다.

우리도 다쳤는데 (척수장애인들과)똑같은 처지인데 우리가 가졌던 이상이나 이념은 다운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한다, 이 불편한 사람들한테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한 거죠. <참여자 A의 배우자>

본질을 보고 나면 내가 공주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으스댈 것도 아니고 내가 거지 옷을 (장애를) 입었다고 해서 움츠려 들 것도 아니라. 그래서 본질을 보는 게 중요해. <참여자 B>

처음 독립해서 사는 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장애가 있어 힘들지만 그래도 자유가 너무 좋더라고요. 밥도 못 해 먹을 거라고 생각하죠? 시장 봐서 밥 해 먹고 다 했어요. <참여자 C>

이에 반해 자기수용에 이르지 못한 연구 참여자 D는 자기혐오와 무력감에 고통 받고 있다. 자기수용에 아직 이르지 못한 연구 참여자 D의 생애 경험과 자기수용을 한 연구 참여자들의 생애 경험을 6개의 영역으로 비교함으로써 자기수용이 삶의 만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6개 영역은 장애에 대한 인식, 대인관계, 종교를 대하는 태도, 미래에 대한 지각, 생애 내레이션 특징, 삶의 만족이다.

(1) 장애에 대한 인식

자기수용을 한 연구 참여자들은 장애가 주는 불편함과 상실감을 인정하지만 장애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장애와 자기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자기수용에 이르지 못한 참여자 D는 장애를 불완전과 불능으로 바라보며 가치 절하된 장애에 대한 인식을 자기와 동일시한다.

날 불쌍하게 본다거나 나를 불쌍한 존재로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불쾌한 거예요. 그게 너무 불쾌하고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기 싫은 거예요, 죽으면 죽었지. (웃음) 죽으면 죽으리라, 이런 마음으로 도움요청하기가 싫은 거예요. <참여자 D-461>

(2) 대인관계

중도지체장애인은 타인이 그를 수용하기 전에 먼저 그가 자신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비수용적 태도를 남에게 투사하여 폐쇄적인 사회관계를 불러일으키게 된다(우봉순, 1974). 자기수용이 삶의 만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이유는 자기수용의 결과 타인수용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수용의 향상은 타인을 향한 호의적인 태도의 향상과 일치하였다. 자기수용에서 타인수용으로 확장되면 소외와 고립에서 도전과 어울림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다치지 않은 삶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다치고 나서 내가 가장 못하는 건,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거를 털어놓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상처받았던 얘기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그 게 병이 돼가지고. ⋯ 꼭 말로 해야 되나, 내가 힘들다고 얘기를 해야만 도와주나, 이런 서운함이 막 생기니까 거기서 오는 갈등이 상처로 남는 거예요. <참여자 D-462>

(3) 종교를 대하는 태도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종교성은 장애수용을 촉진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이다. 연구 참여자들은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재활 초기, 장애를 수용함에 있어 종교적인 차원에서 도움을 많이 얻었다고 구술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수용을 하지 못한 참여자 D는 종교가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으로 경험되며, 자기검열의 지나친 기준으로 작용했다. D의 생애 내레이션 내용 중 ‘죄’라는 용어가 16번이나 언급된 것은 참여자 D의 도덕적 기준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나는 사랑의 하느님이 아니고 두려움의 하느님인 거예요. 우울증에 걸리니까 모든 게 무서운 거야. 자신이 없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공포심이 생기고. 예를 들어서 죄지은 게 하나도 없는데 마음으로 지은 죄들이 떠오르면서 경찰서 단어만 봐도 가슴이 툭 내려앉고. <참여자 D-488>

(4) 미래에 대한 지각

자기수용을 통한 경로 창출을 이룬 연구 참여자 A, B, C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압도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수용이 되지 않은 D는 자신을 가치 없고 무능한 장애인으로 규정함으로써 현재 어려움이나 고통이 계속될 것으로 판단한다. 이런 부정적인 인지양상은 미래에 대한 과도한 불안을 동반하며 우울증의 형태로 발현될 수 있다.

그 때는 심각했어요. 정신적으로 헛것이 보이고 헛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러다가 병원에 갔어요. 상담을 하면서 그 때 제가 여러 가지 우울의 원인이 있지만 그 원인 중에 하나는 미래의 나를 생각해 볼 때거든요. 노인이 된 나를 생각하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는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거 생각하면 당장 죽었으면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의 공포감이 오는 거예요. <참여자 D-493>

(5) 생애 내레이션 특징

참여자 A, B, C는 생애 내레이터를 통해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치유적인 경험을 했던 반면, D는 연구자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장애 사고 당시에 대한 언급은 다른 참여자들에게 비해 내레이터하기 주저하거나 짧게 언급하였다. 죽음에 준하는 트라우마 경험인 장애 사고 당시를 회상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보다 웃음을 짓는 내레이션 패턴도 주목할 만 했다. 이는 정서적 경험 회피로 보이며, 내레이션 내용과 표현에 있어 부적절한 면, 부자연스러운 면, 일치하지 않는 면이 관찰됐다. 참여자 A, B, C에 비해 아직 자기수용을 하지 못한 참여자 D는 생애 내레이터가 힘든 작업이었고, 장애 사고를 다시 회상하는 것이 고통의 경험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

장애인이나 소외된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하지 않는 마음으로 공부하러 왔다는 게 너무 불쾌한 거야.(웃음) <참여자 D-428>

⋯ ⋯ 가슴에 못이 한 개 씩, 한 개 씩 박히더라고. (웃음) <참여자 D-433>

(6) 삶의 만족

상실감이 삶의 전경이 되면 중도지체장애인의 현재 삶은 초라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가지지 못하거나 잃어버린 것이 삶을 장악하는 형태가 된다. 똑같은 중도장애라는 역경을 겪었지만 연구 참여자 A, B, C는 역경 후 성장의 모습을 보이며 새로운 경로 창출로 사회적인 존재감과 개인적인 만족감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중도장애라는 상실감에 압도되기보다는 중도지체장애인이라는 자기를 수용하고 주어진 한계 내에서 새로운 자기를 발견하고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A, B, C는 공통적으로 장애를 입지 않았으면 결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가치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삶의 만족을 느끼며 살고 있다. 이에 반해 연구 참여자 D는 장애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 내면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가치의 전환을 갖게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장애로 인한 상실감에 압도되어 우울증이 재발했다. 내면화된 자기낙인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왜곡이 있으며 가족을 포함한 비장애인들에 대한 분노로 삶을 고통스럽게 경험하고 있다.

죽음의 고통이라는 게 이런 걸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고 지금도 가능한 한 오래 살지 않고 빨리 하늘나라 갔으면 할 정도예요. 생활이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으니까 아직은. <참여자 D-476>


4. 논 의

본 연구에서는 심리적 부적응이나 단순한 적응에 초점을 맞췄던 이전의 장애인 연구와는 달리 사회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거나 삶의 만족을 느끼며 살고 있는 장애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는 장애인이 의존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구에 반응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갖게 되는 경험을 이해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도지체장애인들의 실제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로 그들이 부여하는 주관적 의미를 밝혀내야 한다고 여겨 질적 연구 방법의 하나인 생애사 연구방법을 선택했다. 생애사 연구방법을 통해 중도지체장애인이 장애라는 역경을 딛고 자기를 수용해 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대처양식을 생애라는 전체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

생애 분석을 통해 연구 참여자 A의 주제어는 ‘전신마비 생태주의 시인’이며, 6가지 핵심주제는 ‘실존지향적인 삶의 태도’, ‘초월적 수용의식’, ‘이타적 삶의 충만함’, ‘긍정적 재평가- 24시간의 자유’, ‘삶의 의미가 된 시’, ‘영성의 성장’이다. A의 ‘실존지향적인 삶의 태도’는 완전하고 정상에 대한 높은 기준보다는 신체기능은 저하되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이타적 삶의 충만함’은 자신의 후원금을 쏟아 결성한 척수장애인모임을 통해 삶의 의미를 체화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상정하면서 장애의 상실감을 상쇄할 수 있었다. ‘긍정적 재평가- 24시간의 자유’는 신체적 자유가 없는 일상을 고립감, 외로움보다는 스트레스 받지 않는 여유로운 일상으로 재평가하였다. 연구 참여자 B의 주제어는 ‘오른 팔을 잃은 명상 지도자’이며, 핵심주제는 ‘가난이 꺾을 수 없는 자존심’, ‘상실이 던지는 생의 질문’, ‘거듭되는 실패로 밥벌레로 추락함’, ‘역경을 통해 삶을 되돌아봄’, ‘참선을 통한 자기수용’, ‘더불어 명상수행’이다. 가난이라는 위기에 대한 대처양식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반영된다. 가난이 주는 불편은 있지만 가난에 굴하지 않았던 것처럼 오른팔 전달이라는 신체적 불편은 있지만 장애로 인해 자신을 가치절하하지 않는 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이는 사회적 낙인은 알지만 차별에 동의하지 않으며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가며 자신의 새로운 경로를 도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연구 참여자 C의 주제어는 ‘휠체어 탄 인권활동가’이며, 핵심주제는 ‘남편 같았던 맏딸’, ‘장애로 여성을 잃다’, ‘도전의 동력, 운전면허증’, ‘독립을 통해 삶에 대한 확신이 생김’, ‘평범한 삶에서 특별한 삶으로’이다. C에게 있어 운전면허증 획득은 무력하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삶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움직일 수 있는 주체적인 삶으로 전환되는 불씨가 된다. 이는 도전과 교류의 기반을 마련하여 상실한 신체적 가치 외의 다른 영역의 가치 발견으로 이어져 삶의 만족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의 토대가 되었다. 연구 참여자 D의 주제어는 ‘자기낙인으로 우울한 여성장애인’ 이었으며, 핵심주제는 ‘타인의 욕구에 더욱 민감함’, ‘역할 상실에서 오는 좌절감’, ‘역기능적인 분노표현 행동’, ‘욕심 없는 삶을 강조함’, ‘자기낙인, 스스로 입히는 상처’, ‘힘에 대한 갈망’, ‘외롭고 공허한 삶’이다. D는 장애 이전의 삶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기를 경험했다면 장애 이후에는 돌봄을 받는 처지로 의존적 존재로서만 자기를 경험함으로써 좌절감과 무력감이 활성화되었다. ‘역기능적인 분노표현 행동’은 부적절감과 외로움을 부추기며 자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방해했다. 또한 자기낙인으로 인한 수치심으로 분노감과 우울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기수용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본 연구를 통한 자기수용과정은 갑작스런 장애를 겪고 초기 충격과 분노의 단계를 거쳐 부인과 혼란, 현실인식에 따른 상실, 고통과 절망, 우울과 방어적 은둔, 도전과 깨달음의 단계를 거쳐서 수용과 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이는 Weller와 Miller가 제시한 척수장애인들의 장애 수용 과정을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 추가하고 수정한 내용이다. Weller와 Miller가 제시한 척수장애인들의 장애 수용 과정은 충격, 부정, 분노, 우울, 적응 또는 수용의 5단계이다. 본 연구는 장애 사고 초기에 겪는 공통적인 과정인 충격과 부인, 분노의 과정은 기존의 3단계에서 2단계로 줄어들었고 장애가 주는 다차원적인 상실과 상실감을 애도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구분하였다. 마지막 단계 또한 두 단계로 구체화시키고 단순한 적응과 장애수용을 넘어선 전체적인 자기수용을 기준으로 삼았다. Weller와 Miller(1992)의 장애수용 과정은 1990년대 국외에서 진행된 연구결과로 지금 시점에서 국내의 중도장애인들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또한 장애수용보다 포괄적인 개념인 자기수용 과정을 분석하는 데도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장애를 수용하는 단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장애를 입은 자신의 변화된 정체감을 수용하고 이와 함께 성장에 이르는 과정까지 분석의 범위로 설정하였다.

본 연구의 자기수용과정의 단계별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초기충격과 분노 단계에서는 자신이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느끼며, 무력감, 좌절, 이유 없는 불쾌감이 섞인 분노를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표출했다. 부인과 혼란 단계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자신의 장애를 부인하고 싶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세 번째 단계는 현실인식에 따른 상실 단계로 절단된 신체나 기능을 잃어버린 신체로 인해 이전에 해 오던 역할을 할 수 없는 상실감으로 좌절하는 시기이다. 네 번 째 고통과 절망의 단계에서는 연구 참여자들이 심리적으로 가장 괴로움을 겪은 단계로 자기연민, 분노, 절망의 감정이 거듭 반복되면서 자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음 단계인 우울과 방어적 은둔 단계는 그들이 겪은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갈무리하며 자신의 삶을 심도 깊게 성찰하는 시간으로 분석된다. 이 단계에서는 연구 참여자들의 사회참여나 활동이 두드러지게 감소하며, 본인의 불확실한 미래와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기인한 우울 증상을 경험한다. 다섯 번째 도전·깨달음을 얻은 단계에서 연구 참여자들은 변화된 삶을 통합하면서 조화를 이뤄가게 된다. 참여자들에 의해 선택된 행위 수행에 대한 통제력도 증가되고, 변화된 생활 속에서 자유로움과 평온함, 질서, 재미 등을 경험한다(임난영, 한혜숙, 2004). 또 자신의 현재 상태를 넘어 미래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마지막 단계인 수용·성장의 단계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에 부딪히고 계획에 없었던 힘겨운 시기를 보내는 동안 축적된 영혼의 성장과 지혜가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본 연구에서 자기수용 과정은 생의 중도에 장애인이 된 충격과 좌절로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상태에서 내적 성찰과 사회적 교류·도전을 통해 장애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자아를 재구조화하며 자기 확신을 갖는 것이었다.

본 연구의 제한점과 후속연구에 대한 제안은 다음과 같다.

자기수용 과정에 대해 분석을 하기에 4명의 연구 참여자들의 생애 자료는 한계가 있다. 더 많은 연구 참여자들의 생애 자료를 통한 분석이 요구되며, 본 연구에서는 장애의 정도가 다양했으나 비슷한 장애 유형별로 구분하여 연구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질적 연구의 분석은 주관성이 배제될 수 없는 특성상 연구자 혼자 연구결과를 검증했다는 한계가 있다. 다각적인 방법을 통해 분석의 결과에 대한 검증 절차를 거치고 분석 자료에 대한 신뢰성을 더욱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겠다. 또 질적 연구의 타당성과 적합성을 위해 연구자의 주관성을 배제해야 하지만 “중도지체장애인의 자기수용이 삶의 만족에 선행한다”는 연구가설을 설정하고 진행했다는 질적 연구 패러다임에 적합하지 않은 출발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역경 후 성장을 장애 이후 삶의 발달목표로 설정하고 연구자의 주관성이 배제되지 못한 한계 또한 관찰된다. 자기수용 집단의 연구 참여자 선정과정에서 자기수용 여부를 척도가 아닌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선정하여 객관성 확보가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 결과는 중도지체장애인의 자기수용이 장애 이후의 자아정체감 확립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며 중도장애라는 역경에서 경험하게 되는 심리적 불편감을 완화하고 삶의 만족을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이는 중도지체장애인의 빠른 사회 복귀와 삶의 만족에 있어 자기수용을 촉진하는 심리치료 개입이 꼭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때 중도지체장애인들을 개별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심리치료 계획을 세워야 하는 중요성을 본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중도지체장애인 가족들에 대한 심리치료 개입 또한 절실해 보이며, 가족들에 대한 심리치료 개입 후 중도지체장애인들의 자기수용 정도를 분석하여 자기수용에 있어서 개인 내적 특징과 함께 사회적 지지의 효과성도 검증하면 의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Notes
1) Lieblich와 Tuval-Mashiach & Zilber(1998)는 생애사 자료 분석방법을 크게 4가지로 범주화하였다. 첫째, 통합적 내용분석(holistic-content approach) 접근으로, 개별 생애사 분석을 초점으로 하여 각 생애사의 중요한 테마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둘째, 범주적 내용분석(categorical content approach) 방법은 여러 개의 생애사로부터 공통의 주제를 도출하는 방식이다. 셋째, 통합적 형태분석(holistic-form approach)은 생애과정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점과 불행했던 시점의 위치를 중심으로 하여 삶의 질의 변화를 표시하게 하는 생애도표 구성방식이나 생애전이가 가장 빈번하게 경험되는 생애단계의 위치를 탐색해 보는 작업 등이 이에 속한다. 넷째, 담론분석(discourse analysis)은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가?’하는 이야기의 조직 원리에 초점을 맞추어 생애사 서술의 서사구조를 탐색하는 접근이다(한경혜, 2004 재인용).
2) Weller와 Miller가 제시한 척수장애인들의 장애 수용 과정은 5단계로 충격(shock), 부정(denial), 분노(anger), 우울(depression), 적응 또는 수용(adaptation or acceptance)이다(Gething, 1992; 이경희, 1996 재인용).

Acknowledgments

본 연구는 김미숙의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중도지체장애인의 자기수용과 삶의 만족에 대한 질적 연구’(2014년 8월, 지도교수 서수균)를 일부 발췌·수정한 것임.

이 논문은 한국연구재단의 BK 21 플러스 [고령사회 대비 웰에이징 행복심리디자이너 양성 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F17HR31D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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