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5 , No. 1

[ Article ]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2, No. 4, pp. 263-282
Abbreviation: jss
ISSN: 1976-2984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Oct 2021
Received 30 Aug 2021 Revised 19 Oct 2021 Accepted 24 Oct 2021
DOI: https://doi.org/10.16881/jss.2021.10.32.4.263

세종대의 사회복지정책 연구: 세종실록을 중심으로
김옥주 ; 장덕희
위덕대학교 사회복지학과

A Study on Social Welfare Policy in the King Sejong Period: Based on The Annals of the Sejong Silok
Ohk-Ju Kim ; Duk-Hee Jang
Uiduk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장덕희, 위덕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동해대로 261, E-mail : dhjang@uu.ac.kr
김옥주, 위덕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제1저자)


초록

본 연구는 세종대의 정책을 현대적 의미의 사회복지정책 관점으로 분석하여 우리나라 사회복지정책의 전통성을 찾는 토대를 제공하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둔다. 상기 목적 달성을 위해 세종실록을 기초로 길버트와 테렐의 분석 틀에 의해 사회복지정책을 재해석한 결과 9개 사회복지분야가 도출되었다. 9개 분야는 공공부조, 아동, 여성, 장애인, 노인, 가족, 다문화, 의료, 교정사회복지로 나타났으며 구체적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급여대상은 빈곤층, 아동, 여성, 장애인, 노인, 범죄자, 귀화인(다문화) 등으로 다양하였다. 둘째, 급여형태는 쌀, 콩, 곡식이나 면포 지급 등의 현물급여 이외에 출산휴가, 관직 제공 등으로 다양하였다. 셋째, 전달체계는 의정부와 6조의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관찰사를 비롯한 지방정부가 책임을 맡고 있었으며 미아나 의료 문제 전담 기구도 있었다. 넷째, 재정은 국고중심이며, 민간부문이 참여한 사례도 소수 분석되었다. 결론적으로 세종대의 국가주도의 선별적 사회복지정책 특성들은 오늘날 사회복지정책 역사에 있어 전통성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aimed to provide a traditional basis for Korea's social welfare policies by analyzing policies from the King Sejong period and understanding them in the modern context. To achieve the above objectives, nine social welfare fields (public assistance, children, women, the disabled, the elderly, families, multicultural, medical and correctional social welfare) based on the annals of Sejong were derived by a reinterpretation of social welfare policies using the Gilbert and Terrell's analysis framework. First, the social service clients were from various strata, including the poor, children, women, the disabled, the elderly, criminal, and the naturalized citizen. Second, the prevalent payment form of allowances were antreal goods such as rice, beans, corn, and cotton, and there were also allowances such as maternity leave, the offer of a government post, etc. Third, the delivery system was handled by the central and local governments, and there was also an organization dedicated to abandoned children and health issues. Fourth, finance was state-funded, and a few cases of private sector participation have been analyzed. In conclusion, it was observed that the characteristics of King Sejong's selective social welfare policies can be the basis for traditionality in the social welfare policy today.


Keywords: King Sejong, Gilbert and Terrell's Analysis Framework, Social Welfare Policies
키워드: 세종, 길버트와 테렐의 분석 틀, 사회복지정책

1. 서 론

사회복지제도에 있어서 우리 역사 속에 이어져 있는 전통성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다. 조상들의 지혜를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데서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홍경준(1999)은 복지국가 유형화 연구에서 개입주의, 자유주의, 유교주의 복지국가로 구분하고, 우리나라의 복지국가 유형은 민족적·문화적 이질성이 적고 집합주의의 가치가 지배적이며 가족을 비롯한 비공식적 결속 혹은 공동체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점에서 일본, 싱가포르와 같이 유교주의 복지국가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우리나라 복지의 현황 논의에 앞서, 복지국가라는 현상에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내부에서조차 동일한 모습을 가지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정책은 삼국시대부터 기록이 확인되고 고려시대에도 여러 가지 정책을 확인할 수 있으나(이민수, 2000), 대부분의 선행연구들은(곽효문, 2000a, 2000b, 2003; 권정호, 2014; 박현주, 2016; 최혜정, 2011) 조선시대에 주목하고 있다.

조선은 고려 말의 정치적인 혼란과 백성들의 극히 어려운 삶의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건국한 나라이다. 따라서 국왕 및 건국에 참여한 세력들은 건국의 명분을 백성들이 실감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실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해, 국태민안은 복지정책의 실현으로 다가왔다. 이로 말미암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조선왕조가 실시한 정책들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 봉건국가 체제에서 왕명에 의해 정책들이 실시되어, 현대적 복지 관점에 비추었을 때 미흡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현대적 복지제도에 뒤떨어지지 않는 정책 실시로 복지 정치를 구현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왕조 전체(곽효문, 2000a, 2000b, 2003; 권정호, 2014; 박현주, 2016; 이은진, 한미영, 2019; 정현정, 2008; 최혜정, 2011)나 특정 시기(박현주, 2018; 최옥채, 2011), 특정 지역(진관훈, 2012)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이 성과를 쌓아 놓았다.

우리나라 복지 역사에서 조선시대 세종대의 복지정책을 비켜갈 수 없다고 본다. 세종대의 정책은 박진훈(2007)의 감옥 개선과 수인(囚人) 구휼, 안상우(2000)의 의방유취에 대한 의사학적 연구, 오기수(2013)의 공법의 민주적 가치, 이민수(1987)의 세종조의 복지정책 연구, 한호현(2017)의 애민사상 연구 등 여러 연구자의 주제로 선택되어 통찰이 이루어졌다. 세종이 왕위 계승자가 되었을 때는 조선이 건국된 지 26년으로, 조선의 건국 명분을 명료화해야 하는 때였다. 이러한 때에 태종은 16년 동안 세자위에 있던 양녕대군과 둘째 아들 효령대군을 제치고 셋째아들 충녕대군을 왕으로 선택함으로써 장자계승이라는 명분 대신 수성(守城)에 무게를 두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태종의 비호 아래 왕위에 오른 세종은 불교사상에 기울어졌던 고려와 달리 통치이념을 철저하게 유학에 둔 조선의 통치에 매우 적합한 인물로, 세종은 왕위에 오를 때 그 시대의 손꼽히는 유학자였기 때문이다. 유학사상 중에서도 공자의 위민사상과 맹자의 민본사상을 기반으로 한 성리학은 조선의 국왕들로 하여금 백성을 굶주리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의 으뜸으로 알고 실천하게 했는데, 애민사상에 투철하며, 역사적으로 대내외 정치를 가장 훌륭하게 수행한 왕으로 알려져 있는 세종대에 마련된 조선의 제도에 위민사상과 민본사상이 융합되었으므로 세종대에 관한 다양한 통찰은 연구자의 관심이 집중된 결과이겠으나, 이들 연구들은 실태 분석에 머무른 경향이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선행 연구들이 구빈정책(박광준, 2019; 박현주, 2016, 2018; 진관훈, 2012; 최옥채, 2011)에 중점을 두거나 여성복지(곽효문, 2003), 노인복지(곽효문, 2000b; 정현정, 2008; 최혜정, 2011), 감옥 개선과 수인 구휼(박진훈, 2007) 등 구빈 중심에서 노인, 여성, 범죄자, 의료 등으로 연구범위가 다양해졌으나 특정 대상과 문제에 국한된 한계가 있기에 특정 문제와 대상 중심의 선행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분야의 세종대 정책을 포괄하여 현대적 의미의 사회복지 관점으로 분석함으로써 우리나라 사회복지정책의 전통성을 찾는 토대를 제공하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둔다.

사회복지정책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석틀은 길버트와 테렐(2013)의 분석틀로 공공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의 대상, 서비스의 형태, 전달체계, 재원 등 네 가지의 분석 기준을 중심으로 총체적으로 정책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이러한 구성요소를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연구하는 것이 우리나라 사회복지정책의 정통성 근거를 찾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하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고려나 조선시대의 사회복지정책에 관한 탐색을 시도한 선행연구(박현주, 2018)에서도 길버트와 테렐의 분석 틀을 적용하여 연구하였으나 대상이 한정적이고 소수에 불과하다.

이에 본 연구는 세종실록 기사를 중심으로 세종대의 정책들을 길버트와 테렐의 분석 틀을 중심으로 연구하고자 하며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 ∙ 세종실록에 나타난 사회적 할당 기반(서비스 대상)은 어떠한가?
  • ∙ 세종실록에 나타난 사회적 급여(서비스) 형태는 어떠한가?
  • ∙ 세종실록에 나타난 사회적 급여의 전달체계는 어떠한가?
  • ∙ 세종실록에 나타난 사회적 급여의 재원은 어떠한가?

2. 이론적 배경
1) 선행연구 검토

사회복지 연구에서 근대국가 성립 이전의 제도를 사회복지라고 칭하는 것은 인간 존중과 사회정의를 주요 가치로 볼 때 합당하지 않다(최옥채, 2011)는 견해가 일반적이지만(박현주, 2018), 사회복지적 관점으로 조선시대 역사에서 그 예를 탐색한 연구가 성과를 쌓아왔다.

본 연구의 목적에 맞춰 조선시대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전체를 아울러 동양학적으로 사회복지 개념을 구성해 보거나(박희택, 2004), 복지국가의 발전정도,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책임의 개입 정도, 개인주의 지수와 관련하여 조선을 유교주의 복지국가 유형으로 분류하거나(홍경준, 1999), 현대적 사회복지 개념으로 볼 때 조선의 정치가 정치·경제·복지의 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권정호, 2014)는 등 조선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연구들이 상당수에 이른다(곽효문, 2000a; 2006; 김봉화, 2015; 김정화, 2010; 박광준, 2019; 박현주, 2016; 윤석범, 1999; 이정철, 2014; 정현정, 2009; 최혜정, 2010).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빈곤 구제관련 연구가 가장 활발히 수행되었으며, 특히 빈곤과 관련해중종대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거나(최옥채, 2011), 영·정조 시대를 연구하는(박현주, 2018) 등 특정 시기 중심의 연구도 진행되었고, 급여대상자의 자격을 고찰하고 공적부조에 가까운 복지 등에 대한 노인복지를 고찰하거나(곽효문, 2000b; 정현정, 2008; 최혜정, 2010), 세종조의 괄목할 만한 의학적 발전 양상에 관한 연구(김성수, 2015; 안상우, 2000)와 위민정치 차원에서의 감옥 개선과 수인 구혈(박진훈, 2007), 유교적 정치 이념을 표방한 신분사회 조선에서의 여성복지 정책을 연구하는(곽효문, 2003) 등 특정 복지 분야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조선 후기 제주 사회의 빈곤의 원인과 규모 연구(진관훈, 2012)와 같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다.

특히 세종의 인간적 면모를 비롯하여(이숭녕, 1966; 이영경, 2011), 복지와 관련이 깊은 세종대의 구빈, 노인, 의료 등 복지 정책에 관한 연구(이민수, 1987), 세종대의 괄목할 만한 의학적 발전 양상에 관한 연구(김성수, 2015; 안상우, 2000)와 위민정치 차원에서의 감옥 제도 연구(박진훈, 2007) 등의 연구가 있었고, 그 외 공법의 민주적 가치(오기수, 2013), 상왕전 조알 의식(박경지, 2016), 세종의 정치철학(오채원, 2016) 세종의 애민사상(한호현, 2017) 등 세종의 탁월한 정치력을 확인할 수 있는 연구로 성과가 쌓였으나, 세종대의 복지정책들이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탐색한 연구는 찾기 어렵다.

본 연구에서는 세종실록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사회복지 관점으로 분석될 수 있는 실록 기사들을 추출하여 길버트와 테렐의 분석 틀에 적용·분석해 봄으로써, 세종대의 정책을 현대적 복지분야로 재분류하여, 세종대의 정책들이 지닌 현대적 사회복지제도로서의 의미를 찾아, 전통성을 확보하고, 현대적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2) 길버트와 테렐의 복지정책 분석 틀

사회복지정책을 포괄적이고 총체적으로 분석할 때 자주 인용되는 길버트와 테렐의 사회복지정책 분석 틀(Gilbert & Terrell, 2005/2007; 2013)은 사회적 할당의 기반(서비스 대상), 사회적 급여의 형태, 사회적 급여의 전달체계, 사회적 급여의 재원 등 네 가지의 기준을 제시한다.

서비스의 대상을 선정할 때 핵심이 되는 것은 보편주의냐 혹은 선별주의냐 하는 원리 적용이 될 것이다. 길버트와 테렐은 사회적 급여는 여러 조건을 고려하되, 급여대상자가 집단이든 개인이든 하나의 연속체로 보아 대상자 구분을 설명한다. 사회적 서비스 형태는 서비스 대상자에게 현금이나 현물로 제공하느냐, 혹은 기회, 권력, 세금공제 등의 선택권을 보장하느냐 하는 것을 설명한다. 사회적 급여의 전달체계는 정책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공급자와 이용자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것으로, 의사결정에 관련된 권한과 통제권의 위치, 여러 가지 과업의 수행 주체 등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조세와 기부금, 이용료로 마련되는 현대적 의미의 사회적 급여 재원은 공공재원이냐, 민간재원이냐를 구분하는 것으로, 공공재원이라도 어떤 분야의 서비스를 위해 특별히 재정된 재원이냐, 일반적인 예비 재원이냐 등에 따라 서비스 대상자가 달라질 수 있다.


3. 연구방법
1) 자료수집

본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세종실록에서 취합했다. 사회복지정책 분석에 의미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기사 취합을 위해, 세종실록을 정독하여 내용분석을 통해 사회복지정책과 관련된 키워드를 도출하였다. 그 결과 ‘구황’을 포함한 47개의 검색어를 도출했다. 세종실록 기사 2,362건을 대상으로, 내용이 중복되거나 본 연구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기사를 제외한 분석 대상 자료기사 798건을 정리한 결과 <표 1>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1)

<표 1> 
세종실록 자료기사 현황
복지분야 검색어 검색 기사 수 자료 기사 수 비고
공공부조(314) 구황 90 62
구휼 300 149
진휼 195 76
진휼사 8 5
환곡 23 6
환과고독 32 15
하장자 2 1 인명
황정 6 0
아동(44) 계집아이 16 5
아이 206 36
제생원 58 2
진휼 1 1
여성(38) 강간 18 8
구휼 1 1
산서(産書) 4 1 도서명
산후 2 2
아이 19 16
의녀 16 7
정업원 10 2
태산요록 1 1 도서명
장애인(32) 맹인 39 20
소경 81 2
아이 1 1
장님 6 2
병신 58 3
판수 7 3
환과고독 1 1
노인(177) 기로소 4 3
노인 108 70
나이70 135 75
양로연 32 22
치사기로소 2 0
피륭 3 3
혜양 7 4
가족(12) 사족(士族) 27 3
목효지 16 2 인명
시정 80 7
다문화(12) 구휼 1 1
아이 1 1
양로연 1 1
은아리 7 2 귀화인인명
의녀 1 1
장영실 14 1 귀화인인명
평도전 18 5 귀화인인명
의료(71) 나병 1 1
독질 6 2 난치병
의방유취 1 0 도서명
잔질 22 4
제생원 58 9
폐질 15 9 불치병
향약집성방 4 0 도서명
혜민국 40 11
활인원 46 35
교정(97) 감옥 27 14
무원록 5 3 도서명
전옥서 22 5
죄수 456 75
합계 47개 2361 797

<표 1>에서 복지분야는 다른데 같은 검색어가 존재하는 것은 기사 내용 분석 결과에 따랐기 때문이다.

추출된 기사 797건은 내용에 따라 현대복지정책에서 역점을 두고 실천하는 사회복지분야 중 공공부조, 아동복지, 여성복지, 장애인복지, 노인복지, 가족복지, 다문화사회복지, 의료사회복지, 교정사회복지 등 9개 사회복지분야로 압축하여 재분류했다.

2) 자료분석

본 연구는 취합된 실록기사를 길버트와 테렐의 분석 틀에 적용하여 서비스 대상(사회적 급여 대상)과 서비스 형태(사회적 급여 형태), 서비스(사회적 급여) 전달체계 및 (사회적 급여) 재원을 분석하되 사회복지분야별로 전통 계승 측면에서의 의미 부여에 초점을 두었다.

세종대가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봉건사회임을 염두에 두고 왕명이 법질서의 정점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사회일지라도 최고통치자의 정치적 목적이 무엇에 중점을 두느냐가 정책 실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임을 전제했다.

서비스 대상의 관점에서는 서비스 욕구가 있는 사회적 급여 대상자에게 사회적 급여가 적절하게 이루어지는지 여부를 살펴보았다. 전달체계는 의사결정에 관련된 권한과 통제권의 위치, 여러 가지 과업의 수행 주체 등을 파악했다. 마지막으로 재원의 의미를 파악했다. 현대적 의미의 재원은 기본적으로 조세와 기부금, 이용료로 마련되는데, 봉건왕조사회인 세종대의 재원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파악했다.

다양한 위기에 처한 서비스 대상자를 위한 세종대의 복지정책을 현대적 분석 틀에 적용한 세종대의 정책 분석을 통해 현대적 사회복지제도로의 전통 계승 규명이 일정 부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4. 세종대(世宗代) 복지정책 분석과 그 현대적 의미
1) 세종대의 공공부조

빈곤층에 대한 복지 정책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체계적이고 상세한 상황을 파악하긴 어려워도 이미 삼국시대부터 기록되어 있다. 이민수는 “세종 원년의 극빈자는 전 국민의 2/3였다”고 주장했으며(1987, 58-59쪽) 윤석범도 “우리의 역사 자체, 최소한 서민의 역사가 바로 빈곤의 역사임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1991, 30-31쪽). 천재지변이나 국가적인 경조사 때 죄수 석방하기까지 하면서 흉작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구제해야 할 극빈자는 항상 다수로 존재했다.

세종대의 공공부조는 <표 2>와 같이 7개의 검색어로 추출된 314건의 기사가 분석 대상이 되었다.

<표 2> 
공공부조 자료기사(314건) 현황
검색어 기사 급여대상 급여형태 전달체계 재원
구황 62 빈곤한
백성
양식, 종자
면세
역 면제
의정부
호조
예조
경차관
진휼사
체찰사
관찰사
감사
각 고을
수령
공공

민간
구휼 149
진휼 76
진휼사 5
환곡 6
환과고독 15
하장자 1 빈곤한 백성 끓인 죽 지급

선행연구에서는 구빈정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박광준, 2019; 박현주, 2016, 2018; 이민수, 1987; 진관훈, 2012; 최옥채, 2011), 국가가 개입하여 극빈자의 비용 부담 없이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으로 보아 본고에서는 공공부조를 사용했다.

세종대의 공공부조 분야에서는 급여대상과 전달체계를 연결해 해석했다. 역사상 최초로 급여대상자(1년 5.28.) 및 발생 지역(5년 10.26.)의 수가 기록되었다. 이는 최고 통치자의 강력한 구제 의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전달체계에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 의사결정에 관련된 권한과 통제권을 가진 왕의 명령에 따라 중앙과 지방의 행정기관은 적극적으로 공공부조행정을 펼쳤는데, 지방행정기관의 인력이 모자라거나 체계적인 공공부조행정이 실시되지 않을 때는 경차관, 행대, 진휼사, 순무사 등 중앙정부에서 지방으로 직접 관리를 파견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공공부조행정의 책임을 맡은 도관찰사를 비롯한 지방행정기관은 적극적인 행정을 수행하려는 의지가 과도하여 기민 수를 허위로 기록하는 사태가 발생하기(6년 2.5)도 했으나, 의사결정에 막강한 권한을 가진 통제권자인 세종은 관리들의 구휼정도를 승진에 반영하기도 했고(18년 11.15.), 전달체계의 부실을 초래한 지방행정의 수장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물었으며(25년 11.19.), 지방행정 수장에게 형벌을 가하는가(5년 1.19.) 하면 행정 수장을 파면(11년 4.26.)하기까지 하면서 급여대상자의 구휼에 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급여의 형태는 대체로 쌀, 콩, 잡곡 등의 양식과 생산을 위한 종자와 같은 현물과 세금이나 부역의 감면 형태인데, 화폐사회가 되기 전의 전형적인 농경사회의 모습을 세종대가 반영하고 있으나, 국가의 중대사업인 도성 축성 부역 동원이 연기되고(11년 8.19.), 하장자기구법2) 실시(21년 3.18.) 홍보에 주력하는 등 의무 감면과 현물을 통한 백성 살리기 정책이 기저를 이루었다.

재원은 구체적으로 나타난 기사가 적어서 전체적인 상황을 유추할 수밖에 없지만, 세종대의 재원은 현대의 조세, 기부금, 이용료의 측면 중 현물공납과 부역노동으로 이루어지는 봉건사회였으므로, 기부금이나 이용료에 관한 기사는 파악되지 않아 조세에 전적으로 의지한 것으로 보인다. 토지가 원칙적으로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국고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할 토지세 징수를 위해 매우 신중하게 세법을 제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토지세로 실시되던 손실답험법 대신 공법을 제정하는 과정에 관해 오기수(2013)는 공법 입법을 위해 왕명을 받은 호조에서 5개월간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한 점, 세계 역사상 최장기 논의에 의한 입법인 점 등이야말로 세계적인 업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마련된 국고와 국가의 위임을 받은 지방정부의 재정인 공공재원이 정책 실현의 중심을 이룬다. 재원에 관한 기사가 적긴 하지만, 재원이 나타나지 않는 타 복지분야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재원을 파악할 수 있는 기사가 많은 편이었다. 공공부조가 국가의 중대한 정책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예비 재원으로 급여가 이루어지는데, 다만 지역에 따라 풍흉의 정도가 달라서 재원의 이동이 일어나기도 하며(5년 3.12.), 공공재원의 힘만으로 구제가 어려울 경우 인근고을에 구휼이 맡겨지기도(19년 1.3.) 하고, 민간재원이 활용되기도 했는데, 이럴 경우 민간재원을 제공한 사람에게 포상(17년 5.25.)을 실시한 것으로 보아 민간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민간재원 활성화를 위한 동기부여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보아, 세종대의 공공부조는 급여대상자가 발생하면 임시방편으로 급여 대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시 제도가 구비되어 굶주린 백성이 없도록 급여가 이루어졌으며, 공공재원을 중심으로 엄격하게 전달체계가 관리된 것으로 파악된다. 빈곤층을 위한 공공부조 차원의 세종대 정책은 현대적 의미의 복지 정책의 관점과도 부합된다고 볼 수 있겠다.

2) 세종대의 아동복지

봉건·농경사회에서는 청소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어른 아니면 아이였으므로, 현대의 청소년이라는 낱말도 아이와 함께 아동으로 포함하여 분석했다. 때로는 아이가 자식, 노비, 어리석은 사람, 신중하지 못한 사람 등을 가리키기도 했는데, 아동복지와 관련이 없는 기사는 제외되었다. 장유유서의 사회였지만, 어려움에 처한 아동을 구제하기 위한 정책이 꾸준히 실시되었다.

세종대의 아동복지는 <표 3>과 같이 4개의 검색어로 추출된 44건의 기사가 분석 대상이 되었다.

<표 3> 
아동복지 자료기사(44건) 현황
검색어 기사 급여대상 급여형태 전달체계 재원
계집아이 5 계집아이 침구술 학습, 쌀, 옷 호조 감사
아이 36 굶주리거나 버려진 아이 쌀, 콩, 보호, 부모 찾아주기 호조 형조
제생원 2 유실아 보호 제생원
진휼 1 총명한 15~25세 20명 북경이나 요동 유학 예조

급여대상은 주로 조실부모한 아이, 버려진 아이, 길을 잃은 아이이다. 세종은 즉위한 지 9일째 한성부와 미아 문제를 진지하게 처결했는데(즉위년 8.19.), 이 기사에 의하면 미아를 노비로 기르는 자가 있으므로 숨겨두고 고하지 않는다면 인근의 다섯 집에도 논죄하도록 했다. 아이를 두고 내 아이다, 아니다라는 문제로 송사가 일어날 경우 공평하고 신중하게 처리하라고 하교했다(13년 6.2.). 10세 이하의 아이를 둔 아버지의 부역을 면제하고(14년 8.29.), 도성의 미아들을 제생원에서 양육하게 했으며(17년 9.2.), 아버지의 병 치료를 위해 자신의 손을 자른 13세 아이를 복호(復戶)3)하게 했다(18년 윤6.12.). 유이인(流移人)이 버리고 간 아이를 일정한 재산이 있고 자상한 사람에게 맡겨 양육하도록 하면서 관청에서 의복과 양식을 지급하기도 했으며(18년 10.10.), 전라도만 풍년이 들어 여러 도의 굶주린 백성들이 모여들었을 때, 아이를 버리고 돌아가는 바람에 32명의 고아가 발생했을 때 전라도에 공문을 보내어 급히 구휼하게 했다(19년 1.13.) 야인을 토벌할 때 당연히 아이들은 죽이지 말게 했으며(19년 7.18.), 기근이 심해지면 아이들은 곧잘 유기되는데 겨울에 알몸으로 발견된 젖먹이를 구혈하기(26년 12.24.)도 했다.

급여대상자가 발견되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우선 구휼 대상이 되어 지체 없이 제생원 등 해당기관으로 하여금 양식과 주거지를 제공하여 보호하고 양육할 수 있도록 전달체계가 갖추어져 있었다. 신분에 구애됨이 없이 총명한 아이에게 국고로 학습을 지원했다는 면도 주목할 만하다. 특별히 재정에 관한 내용이 없는 것은 공공재원일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담당부서가 호조, 예조, 제생원 등의 중앙정부중심이어서 재정은 국고에 의해 지원되었으리라 해석된다.

세종대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사회로 인해 아동사회복지가 후순위로 밀린 것이 아니라, 국가가 아동의 보호·양육에 책임을 지고 개입했다고 사료된다.

3) 세종대의 여성복지

우리나라에서 여성복지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이다(윤철수 외, 2011).

곽효문(2003)은 조선조의 여성복지정책 연구에서 조선조 전기에는 고려의 관습이 남아 있어, 남녀가 합리적인 관념의 형태로 평등에 크게 위배되지 않았으나, 중기 이후부터 여성이 남성의 종속적인 존재가 되었을지라도 열녀로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죽어서 동등하게 조상 대우를 받았다고 연구를 마무리했다.

이로 보아 현대적 복지관점에서 여성이 복지의 대상이 된 역사는 크게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세종대의 여성복지의 대상과 분야는 주로 여성의 신체적 특성으로 나타나는 출산과 관련된 지원에 집중된 경향이 있으나, 청소년, 성폭력 피해여성 등도 주요 대상으로 나타났다.

세종대의 여성복지는 <표 4>와 같이 8개의 검색어로 추출된 38건의 기사가 분석 대상이 되었다.

<표 4> 
여성복지 자료기사(38건) 현황
검색어 기사 급여대상 급여형태 전달체계 재원
강간 7 11세 이하 여아 관비 처녀 성폭행자 교형 형조
1 앳된 부인 성희롱자 80대 장형 사헌부 성균관
구휼 1 빈곤한 해산 부녀자 급료, 소금, 장 호조
산서 1 의료종사자(의원, 의녀) 사맹삭, 고강에 포함 예조
산후 2 사역인 해산 부녀자 휴가 상정소 형조
아이 16 세쌍둥이 출산 부녀자 쌀, 콩, 소금, 장 호조 예조
의녀 7 의녀 쌀, 출입권, 교육 기회 예조
정업원 2 과부 노비 유지 의정부
태산요록 1 임산부 태아교양법, 영아보호육성법 판전의감사

세종대의 여성복지의 급여대상은 11세 이하의 여아나 관비 처녀, 앳된 부인 등의 성폭력피해자, 세 쌍둥이 출산부녀자, 사대부 집안의 과부로 요약된다.

급여형태를 급여대상에 따라 차례로 살펴보면, 먼저 성폭행 피해자 보호에 관한 내용은 없으나 가해자를 교수형으로 매우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성폭행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피해자를 정서적으로 위무하는 효과를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대의 성폭행 정책에 주는 시사도 크다고 사료된다.

사역인 출산부녀자에게 산월과 산후 1백일 복무 면제와(12년 10.25.), 남편에게도 30일 휴가 실시(16년 4.26.)는 일·가족 양립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출산 휴가 정책이다.

세쌍둥이를 출산한 산모에게 전례대로 쌀과 콩 10석을 내리(18년 윤6.2.)라고 구체적인 급여 분량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이전의 기사에는 쌀과 콩의 분량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출생한 세 아이 중 두 아이가 죽자 쌀 다섯 섬을 내리라(13년 7.5.)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10석을 하사했음을 알 수 있다. 웅진현 사람 박영실의 아내가 세쌍둥이를 낳자 쌀과 콩 7석을 하사(22년 7.2.)했다. 세쌍둥이를 낳은 세종실록 마지막 기사에는 함길도 경성부 사비인 산모 단지에게 쌀과 콩 7석을 내렸는데(28년 1.10.) 재위 후기에는 하사품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양육에 큰 어려움이 따랐을 세쌍둥이 출산 산모에게 쌀과 콩을 지급한 것은 일종의 출산 수당으로 보인다. 그리고 활인원의 굶주린 출산 부녀에게 급료(給料)하고 소금과 장을 지급했는데(17년 12.13.), 당시 매월 지급일 때 삭료(朔料)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급료는 1회성일 가능성이 있으며 급료 또한 세쌍둥이 출산 부녀에게 쌀과 콩 지급처럼 출산 수당으로 사료된다.

게다가 의료진들이 <산서>와 <태산요록>을 읽어 의료 지식을 갖추게 함으로써 결국은 출산 부녀자(12년 12.5.)와 태아 및 영아의 보호와 양육(16년 3.5.)에 기여하게 한 것도 주목되는 여성복지제도로 보인다.

과부의 급여 형태는 노비를 유지시킴으로써 사대부 집안 과부들의 정업원 주거를 인정해 주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1년 11.28.). 곽효문(2003)은 조선 전기에는 고려의 관습이 남아 있어 여성의 지위가 조선 중·후기만큼 낮지 않았다고 했는데, 세종대가 조선 건국 26년부터여서 조선 전기에 해당하긴 하나, 성리학을 기반으로 새로운 질서를 확립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규범을 내세워야 하는 사대부 신분 여성들이 집을 벗어나 일정한 거주 공간에 기거하고자 하는 의견을 존중했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여성사회복지에서 출산 및 성폭행관련정책은 이와 관련한 현대여성복지 정책이 서구에서 유입된 정책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 복지정책의 계승으로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4) 세종대의 장애인복지

장애인복지는 장애인의 인격을 인정하고 존중하여 완전한 사회참여와 통합을 보장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장애의 개념이 1989년 제정된 장애인복지법에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아, 세종대에서의 장애인복지 분석 시도는 시기상조라고 볼 수도 있으나 정책으로 실현된 장애인복지 정책을 간과할 수는 없다.

세종대의 장애인복지는 <표 5>와 같이 7개의 검색어로 추출된 32건의 기사가 분석 대상이 되었다.

<표 5> 
장애인복지 자료기사(32건) 현황
검색어 기사 급여대상 급여형태 전달체계 재원
맹인 20 시각장애인 쌀, 콩, 관직 제수 호조, 예조
소경 2 시각장애인 옷, 쌀 의정부
아이 1 시각장애인 쌀, 콩 각1석 대언
장님 2 시각장애인 관직 제수 예조
병신 3 장애인 관직 유지, 우선 구휼 병조
판수 3 시각장애인 악공 활약, 관직 유지 예조
환과고독 1 잔폐질자 교환권 의미의 묵은쌀

장애인사회복지 주급여대상은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지체장애인에 관한 기사도 확인되었다. 검색어 중 소경, 장님, 판수는 모두 시각장애인을 가리키는 원문 맹(盲) 혹은 맹인(盲人)을 풀이한 말인데, 시각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어서, 기관이 중심이 된 번역에 나타난 이런 어휘를 통해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의 한 면을 짐작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의 급여형태는 쌀, 콩 등의 지급, 부역이나 세 면제, 관직 제수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맹인 무당의 경우, 세를 전부 면제했으며(5년 12.20.), 국상으로 인해 음악을 정지하는 바람에 살아가기 어렵다고 상언하는 맹인 악공 26명에게 쌀 한 섬씩 지급하는(6년 7.22.) 것을 비롯하여 이후에도 맹인 악공 처우에 관한 기사가 7건 더 취합되었는데, 그때마다 쌀, 콩을 지급하는 급여 내용과 실제 사무는 보지 않고 관직만 부여하는 검직을 제수했다는 급여 형태도 나타나고 있으며(16년 11.24.), 관직에 제수했다가 해임한 후 조부의 과전을 대대로 받게 하기도 했고(20년 3.27.),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맹인 지화의 검교 사옹원 관직을 유지시키기도 했다(18년 10.5.).

충청도에 왜구의 기습이 있었을 때, 도절제사 김상려는 팔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이었지만, 전쟁이 일어난 시점에 지방수장을 교체하기가 불가하다고 조전 병마 도절제사를 파견하면서 김상려의 관직을 유지하게 한(1년 5.7.) 이 기사는 언제부터 김상려가 장애인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지체장애인에게 도절제사 관직을 제수했을 뿐 아니라, 전쟁이 나자 그를 도울 다른 관리를 중앙에서 파견하면서까지 김상려의 관직을 유지하게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귀화야인 가오하는 전라도 임실에 안치되었으나 65세의 오른팔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인데다가 농사를 지을 줄도 몰라 임금이 있는 왕경(王京)에서 살고 싶다고 하여 소원대로 왕경에서 살게 하고 직업도 주었다(7년 5.17.)

세종대 장애인을 위한 일련의 정책들은 시각장애인이 우선 구휼 대상이라는 점에서 김이헌(2017)의 연구와 유사하나, 교육 기회 및 관직 진출 기회 제공 면에서는 다소 상이한 점이 보이는데, 특히 관직 진출에 있어서 급여 대상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주목되었다. 이은진, 한미영(2019)의 논의처럼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지원까지는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장애인을 배제하지 않고 통합사회를 지향했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결론을 얻었다.

5) 세종대의 노인복지

조선, 특히 세종대는 성리학적 통치 이념을 내세운 조선의 건국이념 및 국왕의 애민정치와 신진사대부의 철학을 바탕으로 효와 경로사상이 농경사회와 어우러졌다. 조선시대의 노인은 한혜경의 주장대로 “젊음의 연장으로서가 아닌 노년 그 자체를 인생의 한 과정으로 인정하고 풍요롭게 만들었다(2012, 82쪽)”는 면에서 오늘날 노년 인생 자체가 한 전체((Later Life as A Whole)로서의 가치에 부합되는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세종대의 노인복지는 <표 6>과 같이 6개의 검색어로 추출된 177건의 기사가 분석 대상이 되었다.

<표 6> 
노인복지 자료기사(177건) 현황
검색어 기사 급여대상 급여형태 전달체계 재원
기로소 3 기로소 해당자 공해전 유지, 술, 안주 의정부
나이70 75 70세 이상인 자 형벌 감형, 궤장, 옷 이, 예, 형조
노인 70 70세 이상 노인 쌀, 의복, 양로연 예조 호조
양로연 22 노인 잔치 예조
피륭 3 노인 진제, 부역 전면 호조
혜양 4 100세 이상 노인 쌀, 술, 고기 예조 감사

노인사회복지의 급여대상은 70세 이상의 노인이다. 세종대의 노인은 단순히 늙음의 뜻이 아니고 존칭이었음이 확인된다. 상왕(태종)을 노인(老人)이라 지칭하기(즉위년 11.15.)도 하고, 노인은 나라의 중요한 정책에 관한 자문역할도 하며(21년 3.19.), 야인들과의 갈등을 노인들이 나서서 무마시키기도 했다(18년 11.26.). 노인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임금에게 항의하는 모습(9년 1.27.)도 보인다.

‘현인(賢人)을 높이고 노인(老人)을 공경하는 것은 제왕의 큰 규범’이라 여긴(18년 1.15.) 세종의 생각이 그대로 정책에 반영된 것은 급여형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70세 이상인 자에게는 양식과 의복, 술, 고기 등 현물이 지급되거나, 부역의 혜택이 있으며, 80세 이상이 되면 산관직이 제수되기도 하고, 90세 이상의 무의탁노인에게는 삭료(朔料)4)를 지급(10년 9.12.)했을 뿐 아니라, 원하는 자에게는 사모 품대를 착용할 수 있게 했다(17년 7.28.) 특히 70세 이상의 치사(致仕)한 전직 관리들의 조직인 기로소에는 기로소 유지를 위한 공해전까지 있어 재정자립도까지 주어졌다.

처자가 없는 곤궁한 사람으로서 70세 이상인 자 수양(收養) 입법을 지시(8년 7.7.)한 것은 그 이전에 이미 실시되었던 급여대상자에 대한 일시적 서비스가 아닌 법제화를 의미하여 이후에 일련의 조치들이 법에 의거하고 있다. 부모 봉양으로 김조을도 형벌 감형(8년 12.15.), 서울의 노인 70명 가을철 옷감 지급(12년 7.6.), 국역 혜택(14년 8.29.), 노비이거나(14년 11.22.) 범죄자(21년 11.1.)여도 예외 없이 급여 혜택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관직에서 물러나는 나이가 70세인데도 불구하고, 궤장을 내리며 사직을 허락하지 않는 기사(2년 2.26.)가 다수이고, 70세 이상인 대신들의 상참(常參) 참예를 금지(21년 7.29.)했다. 병석에 있더라도 사직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정책에 관한 노신(老臣)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으며(21년 12.25.), 노인들을 위해 큰 글자를 주조하게 하여 서책을 인쇄하도록 지시한(16년 7.16.) 것은 현대 도서관에서 큰글자 도서가 비치된 것이 극히 최근의 일인 것과 비교가 된다.

중앙과 지방에서 양로연이 제도로 정착되어 8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실시되었는데, 참석대상자는 귀천을 따지지 않았다(14년 8.17.).

양로연의(養老宴儀)(14년 1.7.), 주·부·군·현의 양로의식(14년 1.16.), 동궁의 양로연의(30년 8.23.)가 법제화되어 가뭄이 극심했을 때를 제외하고 매년 개최되었다. 귀화야인들도 참여했으며(22년 8.20.), 양로연에 참석하는 노인이 출입할 때에 임금이 자리에서 내려서서 기다리고자 하여 신하들이 노인들의 숫자가 많으니 노인들이 섬돌에 오를 때에 그렇게 하라고 건의하였고(14년 8.1.), 노인들로 하여금 임금에게 절하지 말라고 명했으며(15년 윤8.3.), 백성들의 아내에게는 간편복을 허락했고(15년 8.29.), 몸이 불편한 사람은 비자(婢子)의 부축을 받을 수 있게 했다(17년 9.2.). 상호군 배상문의 아비 나이가 88여서 근친할 때 역마를 허락하고, 감사로 하여금 술과 고기를 주어 혜양하게 했다(30년 4.19.)

세종대의 노인복지 정책은 노인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하는 정책으로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기로소에 공해전을 지급함으로써 재정자립도를 높여주었고, 양로연을 법제화하였다. 이처럼 세종대의 노인복지 정책은 노인의 경험에 대한 인정을 기반으로 한 사회참여와 존경에 기반을 둔 정책으로 현대 노인복지정책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볼 수 있겠다.

6) 세종대의 가족복지

가족복지는 가족의 개념과 기능이나 가족복지실천 관련이론에 따라 실천이 다양하겠지만, 본 연구에서는 가족기능 유지를 위한 국가의 지원이라는 면에 주목했다.

세종대의 가족복지는 <표 7>과 같이 3개의 검색어로 추출된 12건의 기사가 분석 대상이 되었다.

<표 7> 
가족복지 자료기사(12건) 현황
검색어 기사 급여대상 급여형태 전달체계 재원
목효지 2 풍수학습이 가능한 천인 면천
사족 2 빈곤사족 딸 쌀, 콩 각1석 각 수령
1 빈곤사족 쌀2석, 면포1필 예조
시정 7 공사천 노인, 노부모 봉양자 군역 면제 형조, 병조

급여대상은 빈곤한 사대부나 일반농민, 학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천민 등이었다.

급여형태는 결혼적령기의 딸이 있는 빈곤한 사족 가구에 친족의 지원을 명령했으며, 친족 지원이 가능하지 않을 때는 각 수령에게 경제적 지원을 실시하게 했고(6년 2.20.), 전염병으로 사망했으나 매장비가 없는 빈곤한 사족 가구에도 관직 유무와 관계없이 예조에서 경제적 지원을 실시했다(17년 9.29.).

본인 혹은 부모가 70세 이상일 경우에 ‘시정(侍丁)’을 통해 가족 기능을 지원했다. 시정에 관해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는 일은 예조(14년 8.29.)에서, 공·사천(賤)의 시정은 상정소(14년 9.18.)에서, 나이 70 이상인 본인이나 부모의 봉양자에 관한 시정은 형조(14년 11.22.)에서, 시정자 관리는 병조(15년 1.16.)에서 담당했다.

천민을 면천하여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목효지는 천민 신분이었으나 풍수학에 능해 세종이 면천함으로써 풍수학 학습이 가능하도록 했는데, 신하들의 반대가 심했을 때, ‘목효지는 연소하여 기회를 주어 학문을 닦을 기회를 주는 것일 뿐’이라고 하여(23년 9.2.) 신하들의 반대를 무마했다.

세종대에 천민에게도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시정으로 연로한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하고, 결혼, 매장 등으로 인한 가족 갈등 해소를 위한 국가의 개입으로 가족의 기능 회복이 확인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7) 세종대의 다문화사회복지

오늘날 노동력 부족에 따른 이주 노동자 유입, 국제결혼의 증가와 해외여행 확산, 해외 투자 및 다국적 기업 유입 등으로 다문화사회에 관심이 높아졌지만, 세종대에도 4군6진 개척과 맞물린 북쪽의 야인(여진족), 왜구 침략 방어를 위한 남쪽의 왜인 문제는 국가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힘든 과제였다. 본고에서는 야인과 왜인을 중심으로 세종대의 다문화정책을 살펴보았다.

세종대의 다문화사회복지는 <표 8>과 같이 7개의 검색어로 추출된 12건의 기사가 분석 대상이 되었다.

<표 8> 
다문화사회복지 자료기사(12건) 현황
검색어 기사 급여대상 급여형태 전달체계 재원
구휼 1 귀화야인 가족 빈집, 쌀, 소금 함길도 관찰사, 도절제사
아이 1 생포야인 174명 옷, 양식 예조
양로연 1 연로 야인 잔치 참석 함길도 관찰사
의녀 1 숙위왜인 처모 의녀 예조
은아리 2 귀화야인 탄핵 무마, 귀순길 개방 함길도 감사, 도절제사
장영실 1 원나라계 천민 호군 관직 제수
평도전 5 귀화왜인 쌀, 소금 등 생필품 병조, 예조

급여대상은 4군6진 정책과 왜구 침략으로부터 백성을 지켜야 하는 정책 실시로 인해 주로 귀화를 하거나 숙위의 형식을 취하여 조선 조정에 속한 야인과 왜인이 대상자였다.

급여형태는 관직 제수, 양식 제공이 두드러지며, 전달체계는 중앙정부에서는 주로 예조와 병조에서 담당했고, 지방정부에서는 관찰사(절제사, 감사)가 그 수행 책임을 맡았다. 조선의 관직을 제수 받은 야인귀화인 은아리였지만 조선 관리들의 은근한 견제가 심하자 세종이 은아리를 감싸거나(15년 윤7.23.), 은아리가 건의하는 야인 귀순길의 편의를 받아들이는 정책(19년 8.7.)을 확인할 수 있다. 귀화왜인 평도전은 조선의 무장으로 전공을 세워 상왕으로부터 하사품을 받았으나(1년 5.24.), 대마도와 내통한 죄로 유배를 가는 바람에 생계가 어려워진 평도전의 처자 생계(3년 4.7.)와 딸의 결혼 비용을 지원받았다(8년 12.3.). 생포된 야인 174명을 경기도와 충청도의 각 고을에 머물게 하여 양식과 옷을 내려주었고(15년 6.4.), 귀화야인도 연로해지면 차별 없이 양로연에 참석할 수 있게 했다(22년 8.20.).

역사적으로 볼 때 이웃나라를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문호를 다른 나라에 완전 개방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세종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문화사회복지가 현대에 와서 갑자기 대두된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국가 차원에서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주목된다.

8) 세종대의 의료사회복지

한국사에서 의료복지는 삼국시대부터 기록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통치자가 적극적으로 펼친 정책의 일환이었다. 조선시대 의료인은 잡직으로 천시되는 경향이 있어서, 인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음(27년 10.20.)에도 세종대 의료분야는 매우 체계적이면서 조선의 특성에 맞게 발전했다.

세종대의 의료사회복지는 <표 9>와 같이 7개의 검색어로 추출된 71건의 기사가 분석 대상이 되었다.

<표 9> 
의료사회복지 자료기사(71건) 현황
검색어 기사 급여대상 급여형태 전달체계 재원
나병 1 나병환자 의생항시치료 병조
독질 2 독질병자(난치병자) 주거지 그대로, 시정 병조, 예조
잔질 4 잔질병자(덜 나은 병자) 사철 미곡 지급 호조, 예조
폐질 9 페질병자(불치병자) 형벌 감형, 관직제수 한성부
제생원 9 빈곤한 병자 및 백성 제생원 구료 제생원, 혜민국,
활인원, 도성축성도감
혜민국 11 혜민국 구료
활인원 35 양식, 약재, 치료

급여대상은 빈곤한 독질, 잔질, 폐질자와 굶주린 백성이다. 급여 형태는 질병과 기아의 구휼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전달체계에 있어서 중앙정부 6부와 지방정부 행정기관 외에 정책 실천 현장에 승려(27년 11.8.)와 무당(11년 4.18.)이 투입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또한 관품 서용에 치료 실적 우수자를 선발한 점(15년 11.24.)도 합리적으로 보인다. 제생원, 혜민국, 활인원은 대민의료기구의 역할 담당인데, 동·서활인원에서 각각 제생원과 혜민국을 운영하고(1년 2.14.), 혜민국과 제생원의 약값은 제용감에서 충당했다(11년 10.3.).

의료사회복지 분야에서도 체계적인 세종실록 기사가 확인되며, 현대의 의료사회복지가 의료사회복지역사의 전통 계승으로 해석되면서. 그 의미의 중요성이 한층 더 부각되었다.

9) 세종대의 교정사회복지

교정사회복지란 범죄인이나 비행자의 교정·개선 및 재활을 중심으로, 범죄인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복지 실천분야이지만, 본 연구에서는 세종대의 감옥 환경 개선과 수인(囚人)의 구휼에 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세종대의 교정사회복지는 <표 10>과 같이 4개의 검색어로 추출된 97건의 기사가 분석 대상이 되었다.

<표 10> 
교정사회복지 자료기사(97건) 현황
검색어 기사 급여대상 급여형태 전달체계 재원
감옥 14 일반 죄수 석방, 감옥 청결 형조, 의금부, 각 수령
무원록 3 일반 죄수 정확한 범죄 기록 형조, 사율원
전옥서 5 해당 죄수 약품 지급 및 진료 형조, 의금부, 전옥서
죄수 75 해당 죄수 감형, 석방 형조

급여대상은 법정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로 갇혀 있는 미결수이거나 이미 판결이 나서 형이 집행되고 있는 죄수이다.

급여형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감옥 관련 기사는 감옥을 청결하게 관리하라는 것으로, ‘감옥 설치는 죄를 징계하고자 함이지, 사람을 죽을 곳에 두고자 함이 아니라’(12년 4.27.)고 형조에 자주 전교한 세종의 의지 발현 결과다. 억울한 죄수를 줄이기 위해 정확하게 범죄를 기록하게 했고(1년 2.23.),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규칙에 관한 내용(24년 2.27.)도 눈에 띈다. 병든 죄수에게는 치료가 우선이었다. 병든 죄수에게 활인원 구료를 받게 하고, 빈곤하고 부호할 사람이 없을 경우(13년 3.9.)의 구료(救療) 제도도 수립했다. 감옥 생활은 하루가 1년 같음(18년 5.26.)에도 불구하고 한번 갇히게 되면 3,4년을 감옥에서 지내는 폐단을 줄일 수 있도록 신속한 옥사 처리를 지시했다(18년 5.25.). 또한 경범죄자와 미결수들은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1년 5.16.) 국가적인 우환이 있을 경우(4년 5.2) 혹은 가뭄(2년 4.8.)이나 혹서(14년 7.7.), 한파(4년 11.7.) 등의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석방이 되었다.

세종은 범죄로 인한 형벌 때문이 아니라, 백성들이 억울하게 죽게 되는 일이 없도록 전달체계가 제때에 작동하는 전달체계의 수행 책임에 각별했는데, 세종대의 교정사회복지는 교정과 재활의 의미는 찾기가 어렵지만, 죄만 징계하고자 노력한 점으로 보아, 인권 존중의 가치가 복지정책에 포함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5. 결 론

본 연구는 기존 연구들이 구빈정책에 치우치거나 실태 분석에 머무른 점을 극복하고, 세종대의 정책들이 현대적 복지 관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으며, 현재 실시되고 있는 복지정책에 세종대의 전통 계승 측면이 존재함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세종실록에서 사회복지제도 분석이 가능한 기사를 ‘구황’을 포함한 47개의 검색어로 취합한 후, 추출된 기사는 길버트와 테렐의 분석 틀에 의해 현대적 의미의 사회복지정책 9가지로 재분류했다. 9가지 복지 영역은 공공부조, 아동복지, 여성복지, 장애인복지, 노인복지, 가족복지, 다문화사회복지, 의료사회복지, 교정사회복지인데 이를 분석한 결과, 현대적 관점으로는 시대적 차이가 나는 면이 있다 할지라도 신분제도가 엄격한 농경사회에서 시행된 정책들이 현대 복지정책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일정 부분 확인했다.

사회복지는 산업화의 진전으로 제도적 성격이 강조되기 이전까지는 잔여적 복지의 측면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 세종대에도 사회복지정책은 잔여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위민·민본정치를 표방한 조선사회는 백성이 굶주림에 시달리게 하지 않는 사회 지향을 으뜸 항목으로 내세워 무엇보다 구빈정책에 역점을 두었는데, 특히 세종대는 구빈정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백성들이 보다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책이 펼쳐졌다.

‘급여대상’의 분석틀에서는, 빈곤층, 아동, 여성, 장애인, 노인 등이 주요 급여대상이었으며, 수인(囚人)들과 귀화인, 천민들도 급여대상이었다. 선행연구에서는 빈곤층(박현주, 2016), 노인(곽효문, 2000; 최혜정, 2010), 수인(囚人)(박진훈, 2007), 의료(곽효문, 2006; 이민수, 1987) 등에 한정해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본 연구에 의하면 세종조의 급여대상은 그 외에 아동, 여성, 장애인 등으로 나타났고, 귀화인도 배제하지 않음(한호현, 2017)으로써 다문화사회복지가 선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세종대의 사회복지 대상자는 대부분 빈곤한 자로 요구호 대상자가 우선되나, 노인의 경우는 노인이라는 용어가 단순히 늙음의 뜻이 아닌 존칭어로 사용된 점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특히 노인을 지혜로운 자로 보는 관점을 발견할 수 있어 현대 노인복지정책의 방향설정에 귀감을 보여주고 있다.

‘급여형태’의 분석틀에서는 화폐경제사회가 아니었던 까닭에 현물 급여 형태가 지배적이었다. 쌀, 콩, 잡곡과 같은 곡식과 면포가 가장 흔한 급여 형태였으며, 장(醬)과 옷 등이 급여 형태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각종 공납이나 부역의 면제 혹은 감면이 있었다. 급여대상에서 아동, 노인, 여성, 가족 등으로 급여 대상층이 다양하나 대부분 빈곤한 자들이 우선이어서 선별적 의미의 사회복지 급여에 중점을 두었다면, 출산수당 지급의 의미로 볼 수 있는 출산 여성에게 쌀, 콩 때로는 급료 지급은 급여 대상이 보편적 대상으로 확대되는 정책이었으며, 특히 관비 여성의 1백일 출산휴가와 남성에게도 출산휴가가 시행된다는 점에서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곽효문(2003)이 여성복지정책을 연구했으나, 열녀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거나 죽은 뒤 동등한 조상으로 대우를 받는다는 측면에 머물렀기에 본 연구와 차별성 있다.

세종대 장애인을 위한 일련의 정책들은 시각장애인이 우선 구휼 대상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김이헌(2017)의 논의와 유사하나, 교육 기회 및 관직 진출 기회 제공 면에서는 다소 상이한 점이 보인다. 이은진, 한미영(2019)의 논의처럼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지원까지는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장애인을 배제하지 않고 통합사회를 지향했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결론을 얻었다. 장애인복지에서는 선행연구의 결론과 마찬가지로 현대적 의미의 장애인복지정책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장애인이나 귀화인의 인권을 존중함으로써 통합사회를 지향한 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외국인과의 통합사회 건설에 근본적인 대안을 제공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전달체계’의 분석 틀에서는, 의사결정에 관련된 권한과 통제권이 국왕에게 집중되어 있어, 왕명에 의해 움직이는 의정부 및 6조의 중앙행정조직을 중심으로 공급자와 이용자가 연결되고 있으며, 지방행정조직으로는 중앙에서 파견되는 경차관이 책임을 지거나 도관찰사, 도감사, 도절제사 등을 비롯한 각 고을 수령이 수행 주체가 되어 전달체계의 책임을 맡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재정’의 분석 틀에서는, 토지가 원칙적으로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토지와 관련된 세금과 공납품을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의 재원 중심으로 운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절대빈곤대상자 구휼에서 민간재원을 확인했는데, 민간부문 재원 등장을 장려하기 위한 포상 실시는 오늘날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으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기로소에 공해전을 지급함으로써 재정자립도를 높인 점도 눈에 띈다.

이상으로 세종실록 기사를 중심으로 현대적 복지관점에서 9가지 사회복지분야를 분석해 보았으나, 연구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못 찾아서 적절한 기사가 제외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논의가 부족한 부분은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적 복지관점으로 분석한 세종실록 기사 검토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시되는 복지정책이 역사적 전통의 계승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본 연구는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의 함의를 바탕으로 복지역사 롤모델로서 세종대의 창조적 복지정책 계승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첫째, 서구에서만 발전해왔다는 사회복지학 개념을 탈피하여 우리나라의 역사 전통에서 이어져 온 복지정책의 세계화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서구중심의 복지실천이론만 무분별하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복지행정의 역사 전통에서 그 독특한 정책 이론을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Notes
1) 자료기사는 고유번호를 붙여 분석했다. ‘117’ 기사는 ‘117, 빈곤, 117, 구휼, 89, 130516, 선군 익사자 구휼’로 관리되는데, ‘전체자료순서, 복지분야, 복지분야순서, 검색어, 기사리스트, 기사연월일, 기사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연월일의 앞 두 자리는 세종 재위연도이고, 실록의 육십갑자 날짜 기록은 숫자로만 제시했다. ‘117’ 기사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지방군, 군역, 휼병’으로 분류했으나, 본고에서는 ‘빈곤’으로 분류했다.
2) ‘293, 공공부조, 293, 하장자, 2, 210318, 죽을 식혀 먹게 하라.’ 의정부에서 기민을 구제할 때 죽을 미리 끓여 식힌 후 주게 할 것을 아뢰다
3) 조선시대에 충신·효자·군인 등 특정한 대상자에게 부역이나 조세 면제
4) 삭료는 오늘날의 월급에 해당하는데, 90세 노인에게 주는 것이니 노인수당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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