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5 , No. 1

[ Article ]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2, No. 2, pp. 221-244
Abbreviation: jss
ISSN: 1976-2984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0 Apr 2021
Received 28 Feb 2021 Revised 29 Mar 2021 Accepted 04 Apr 2021
DOI: https://doi.org/10.16881/jss.2021.04.32.2.221

숙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가능성 그리고 방법론적 개선 방향
임동균 ; 나윤영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The Limitations and Possibilities of Deliberative Democracy, and Directions for Improvement of Deliberative Polling
Dong-Kyun Im ; Yoon Young Na
Department of Sociology, Seoul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 나윤영,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1, E-mail : lodestar12@snu.ac.kr
임동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제1저자)

Funding Information ▼

초록

이 논문에서는 숙의민주주의에 대해 제기된 주요 비판들과 문제들을 정리하고, 숙의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그러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논의한다. 아울러 숙의민주적 방법론들 중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가장 널리 활용된 공론조사 기법의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그 개선방향을 제시한다. 이 논문은 숙의에 참여하는 일반 시민의 역량에 대한 문제, 숙의를 통한 의견변화 가능성의 문제, 책임성의 문제 등 숙의민주주의에 대해 던져진 비판적 의문들에 대해 많은 연구들이 총체적으로 긍정적 답변을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존에 시행된 공론조사들의 경우 향후 발전을 위해, 방법론에 있어서의 다양성, 참여에 있어서의 다양성, 상향·하향식 접근에 있어서의 유연성, 참여의 질에 대한 고려, 숙의토론 조정자의 역할 개선, 감정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 고려, 장기적인 관점 수용 등의 요소가 필요함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대의민주주의의 개선, 참여민주주의의 개선을 위해서는 숙의민주주의가 요청되며, 정책적 딜레마들과 고착화된 정치적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숙의민주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방법론으로 고려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Abstract

This study reviews major criticisms against deliberative democracy, and discusses the possibility of whether deliberative democracy can overcome such criticisms. Furthermore, the problems of deliberative polling, one of the most actively used deliberative democracy techniques in Korean society, are critically examined, and directions for improvement are suggested. This paper shows that extant studies on the effects of deliberative democracy have collectively given positive answers to critical questions about deliberative democracy, such as the issue of the capacity of ordinary citizens to participate in deliberation, the possibility of changing opinions through deliberation, and the issue of accountability. As for deliberative polling, we suggest that the following issues need to be seriously considered in the future: the diversity of the participants, diversity in participation, flexibility concerning top-down and bottom-up approaches, consideration of the quality of participation, improvement in the role of a discussion moderator, consideration of emotion, and the need for a long-term perspective and design. In conclusion, this paper emphasizes that deliberative democracy is required to improve representative democracy and participatory democracy, and that deliberative democracy can be positively considered as a valid methodology to solve the dilemmas in policy decisions and political polarization in Korean society.


Keywords: Deliberative Democracy, Deliberative Polling, Participatory Democracy, Participatory Survey, Communicative Democracy
키워드: 숙의민주주의, 공론조사, 시민참여형조사, 소통 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1. 서 론

참여민주주의 및 숙의민주주의 연구의 대가 중 한 명인 머츠(Mutz)는 이미 2008년 논문에서 숙의에 대한 현재의 열광(enthusiasm)을 과장하기 힘들다고 하였다(Mutz, 2008, 535쪽). 실제로 90년대 말부터 서구 정치이론에서는 숙의민주주의가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로 부각 되었고, 관련 논의에 하버마스, 롤스와 센과 같은 정치철학 대가들의 논의까지 그 바탕을 이루면서 숙의민주주의는 학계에 끊임없는 지적 도전을 주는 연구주제가 되었다. 그러한 논의 속에 항상 부각 되는 핵심 주제는 결국 숙의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 간의 간극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많은 정치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숙의민주주의라는 것은 경험적으로 기각할 수 없는 이상적 명제이다. 현실 민주주의에 한계가 많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듯이, 시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공적이고 이성적이고 성찰적인 토론의 가치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기존의 연구들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관점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옆에서 동료들이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상대방 의견에 대한 이해를 더 잘하게 되고 정치적 관용도가 올라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보여준다(Mutz, 2006; Mutz & Mondak, 2006).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숙의민주주의의 구체적 현실과 방법론에 대해서 끊임없는 도전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성겸, 조은희(2007)는 한국의 상황에서 집단토론이 숙의 방법으로서 효과적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한국과 같은 고맥락 문화에서는(Hall, 1976) 토론을 한다고 하더라도 효과적인 숙의가 유발되기 힘듦을 주장한다. 숙의민주주의를 실제로 실천함에 있어 생길 수 있는 권력과 불평등의 문제, 대표성의 문제, 책임성의 문제 또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숙의민주주의는 이러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 것인가? 숙의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 글에서는 숙의민주주의와 그것의 방법론에 대한 이론적, 경험적 연구와 사례들을 중심으로 숙의민주주의의 이상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해본다. 이를 위해 숙의민주적 방법에 대한 기존의 주요 비판들과 의문들을 소개하고, 그것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 및 극복될 수 있는지를 살핀다. 우리는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기존의 방대한 문헌을 검토한 결과를 바탕으로 숙의민주주의가 자신에 제기되는 핵심적인 비판들을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시에 숙의민주주의가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여러 중요한 과제들이 해결되어야 함을 동시에 강조하고 그것들을 정리하여 제시한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에서 숙의민주적 방법론으로 가장 주요하게 활용되고 있는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 방법론을 개선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을 제안함으로써 숙의민주주의 증진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숙의민주주의의 이론과 현실: 비판적 의문들과 긍정적 가능성

그동안 숙의민주주의와 현실적 사례들에 대한 연구들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상당히 많이 축적되어 왔다. 그러한 연구들은 숙의민주주의가 다양한 잠재적 가능성과 힘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Curato, Dryzek, Ercan, Hendriks, & Niemeyer, 2017).

하지만 여전히 공론조사나 숙의민주적 방법에 의심의 눈길이 던져지는 경우가 많다. 본 논문은 그 다양한 비판들 중 주요한 것들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본다. 그것을 질문 형태로 나타내면, 1) 시민들이 숙의민주적 방법에 참여하여 정책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2) 시민들이 숙의토론으로 자신의 의견을 바꾸는지, 3) 숙의에 의한 의사결정으로 정치적 책임 회피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지라고 할 수 있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 주요 질문들을 중심으로 그러한 비판들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숙의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대중은 숙의민주주의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숙의민주주의, 특히 전문가 집단이 아닌 일반인들을 참여대상으로 하는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치열한 공격들 중 하나는 리처드 포스너(Richard Posner)와 일리야 소민(Ilya Somin)의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에 잘 드러나있다(Posner, 2002, 2003, 2004; Somin, 1998, 2004). 그들은 대중이 정치적 사실 및 이슈들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에 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은 서로 경쟁하는 정책 프로그램 간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어떤 매우 가시적인 정책 결과가 주어졌을 때에도 그것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을 묻거나 누구를 비판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고 주장한다. 소민(Somin, 1998)은 숙의민주주의가 매우 큰 지적 부담을 준다고 주장하며, 숙의민주주의자들이 유권자들의 낮은 정치적 지식 수준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포스너 또한 유사한 관점을 가지고 숙의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조건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포스너와 소민의 이러한 비판은 사실 숙의민주주의 방법론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으로서, 탈리스(Talisse, 2004)는 이를 ‘대중 무지 반대(Public Ignorance Objection)’라는 표현으로 묘사한다. 즉, 대중들이 무지하다는 이유를 근거로 숙의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탈리스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그러한 주장들을 반박한다(Talisse, 2004). 우선, ‘대중 무지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만약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믿음이나 지식이 사실(fact)과 다르다는 이유로 잘못되었거나 무지하다고 하는 것이라면, 대중들은 ‘무지’한 것이라기보다는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misinformed)’이다. 그러한 경우, 대중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주고 그에 대해 이성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 즉 숙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대중들은 얼마든지 올바른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그와 같은 비판은 숙의민주주의를 기각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없다.

만약 대중들이 단순히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사안에 대한 지식을 흡수하여 소화할 수 있는 ‘인지적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애커먼과 피시킨(Ackerman & Fishkin, 2004)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대중들의 무지는 그들에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공적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 이에 따라 선정적인 뉴스 미디어 등에 의해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Talisse, 2004에서 재인용). 그리고 그들은 공론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이슈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끔 뒷받침해주는 좋은 환경이 조성된 경우에는 대중들이 이상적 수준에 도달할 만큼의 좋은 판단 능력을 보여줄 수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방향으로 기존의 시민사회 제도들을(civic institutions) 지속적으로 수정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Talisse, 2004, 459쪽).

탈리스가 제시하는 마지막 시나리오는 대중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무지한 경우인데, 그러한 시나리오는 명백한 문제점을 보인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매우 강한 정치적 의견들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정치적 의견에 따라 사회가 양극화되는 등 현대사회는 매우 정치적으로 뜨거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즉, 일반 대중은 정치적 관심을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고 그러한 맥락에서 숙의민주주의의 역할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면, 숙의민주적 경험과 실천을 통해 그들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것이 오히려 더 민주적 이상을 실현시키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탈리스의 이러한 분석은, 대중들이 무지하므로 민주주의는 엘리트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중들의 의견이 충분한 지식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형성되고, 태도에 있어서 일관성이나 정합성이 낮다는 지적은 정치학에서의 오래된 발견이자 주장이다. 예를 들어, 잘러(Zaller, 1992)의 경우, 대중여론이라는 것은 대체로 사람들이 단순히 뉴스 미디어를 통해, 즉 엘리트들이 발송한 단서(cue)를 통해, 가지게 된 결과물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역시 결과적으로 숙의민주주의가 요청되는데,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근거가 마련된다.

첫째, 엘리트들의 경우에도 정확한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고 합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8년도에 진행되었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사례의 경우에도, ‘교육전문가’로 평가되어 전문가 패널로 초청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놓는 자료들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논란이 있었다. 근거가 불확실한 통계자료나 선정적인 언론보도 등을 근거로 제출된 자료들이 많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혼란이 많았다. 즉, 일반 시민들의 지식수준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자료에 대한 팩트체크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탈리스의 시민들에 대한 변호가 시사하듯이, 시민들이 만약 사안에 대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그것은 그들이 전문가들에 의해 잘못된 정보를 받은 것(misinformed)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시민들 자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둘째,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 통일이 안 되기 때문에, 즉 갈등과 다른 의견이 서로 해소가 안 되기 때문에, 시민들의 의견과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다. 이는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야 하는 부분인데, ‘시민을 위해’ 전문가나 엘리트들이 도움을 주고 자료를 제공하고 이끄는 것이라기보다는, 전문가들이 자체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고 그들 간에 의견 상의 혹은 정치적인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거꾸로 ‘전문가들을 위해’ 시민들의 참여가 요청되는 측면이 있다.

위의 두 번째 근거는, 정책을 놓고 토론하고 경쟁하는 장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음과 관련되어 있다. 전문가나 엘리트들이 토론하는 장은 정치의 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정치적 진공상태에서 벌어지는 장이 아니다.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과의 관련성, 전문가들이 각자 속한 집단의 이해(利害)와의 관련성, 그리고 전문가 집단 내외부에 존재하는 사회적 연결망과 그 속에서의 위계 구조와 갈등 구조, 시민단체와 이익집단, 언론매체들이 각 정책적 입장들과 가지고 있는 관계 등이 그러한 정치적 장을 구성한다. 따라서 정치인들, 정책입안자들, 의사결정권자들, 전문가들, 그리고 시민사회가 그와 같은 정치적 환경에 배태된 채 상황을 개선시키기 어려운 경우, 시민들의 숙의와 공감대 형성은 문제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공론조사들의 경우 그러한 상황에서 사용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일반 시민들의 숙의 토론 참여가 정당화될 수 있는 또 다른 근본적인 이유는, 숙의 토론 참여를 통해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이 향상된다는 경험적 증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데르센과 한센(Andersen & Hansen, 2007)의 덴마크에서의 유로화 사용문제와 관련된 공론조사 사례는 공론조사 과정을 통해 시민들의 정치적 지식과 이성적 추론에 근거한 의견 형성 능력이 상승함과 동시에 참여자들의 상호 이해도 증진됨을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남인도의 그람 사바스(gram sabhas)에 관한 라오와 산얄(Rao & Sanyal, 2010)의 사례 연구는 숙의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집단의 역량 또한 향상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피시킨과 러스킨(Fishkin & Luskin, 2005)의 공론조사 사례도 숙의민주주의에 대해 흔히 이루어지는 많은 비판적 우려들이 사실상 모두 현실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이외의 긍정적인 공론조사 사례 결과들 또한, 시민들의 무지를 근거로 숙의민주적 방법을 부정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근거를 제공해준다(Eggins, Reynolds, Oakes, & Mavor, 2007; Schweigert, 2010). 사실 대중들의 ‘무지’나 편향성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에도 결정적인 결함이 된다. 숙의민주주의는 오히려 기존의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2) 대중의 의견은 변화할 수 있는가

시민들이 숙의민주적 방법에 참여하여 정책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역량이 시민들의 진정한 의견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에 따라 숙의민주적 방법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숙의민주적 방법은 한낱 이상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의견 변화는 보통 숙의 과정으로부터 나타나는 기초적 결과 중 하나로 이야기되어 왔다. 특히 챔버스(Chambers, 2003)는 마음의 변화, 의견의 변화가 숙의민주주의 이론의 중심 원리라고 주장하면서 숙의의 의견 변화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제가 숙의민주적 방법의 현실 사례에서 충족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이론적·경험적 연구를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다.

맥키(Mackie, 2006)는 이론적 차원에서 비판을 제시하는데, 그의 논의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태도를 믿음의 연결망 구조로 이해한다. 이 구조 안에서 믿음은 몇 가지 다른 믿음과 상호의존하는데, 이에 따라 태도는 복잡한 패턴의 양상으로 구조화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태도 연결망의 특성이 의견 변화를 어렵게 한다. 왜냐하면 설득의 과정에서 전달되는 새로운 정보가 대상에 대한 의견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믿음에 도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다른 믿음에도 같이 도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숙의에서의 설득 효과는 잠재적으로 존재하거나, 간접적이거나, 지연되거나 위장된다(Mackie, 2006).

의견 변화가 나타남은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그 의견 변화가 진정한 의견 변화인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그러한 입장은 보통 두 가지 측면에서 제기된다. 먼저, 숙의가 왜곡된 의견을 만든다는 입장이다. 그러한 입장에서는 숙의가 기존의 입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견 변화와 왜곡을 이끌 수 있다고 지적한다(김주형, 2018). 선스타인(Sunstein, 2002)은 숙의하는 집단의 구성원이 가진 사전 의견 분포 양상에 따라, 참여자의 의견이 숙의 후 극단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집단 극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숙의 과정이 사전 태도를 강화하고(Wojcieszak, 2011; Zhang, 2019), 동기화된 사고(motivated reasoning), 즉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야기함으로써(Mercier & Landemore, 2012) 왜곡된 의견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숙의에서의 경험 강도를 고려할 때 의견 변화의 정도가 크지 않다는 비판(Gilens, 2011)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다음으로, 숙의가 불평등으로 인한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여전히 야기함에 따라 진정한 의미의 의견 변화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입장도 제기된다(Karpowitz, Mendelberg, & Shaker, 2012; Sanders, 1997; Young, 1996). 이에 따라 진정한 의미의 의견 변화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비판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문들을 반박하는 여러 숙의 경험 사례들이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되고 있다(Myers & Mendelberg, 2013). 먼저 맥키의 주장과 관련하여, 숙의 과정의 초일상성이 숙의의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태도 연결망에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밝히는 연구가 보고되고 있다(Ganuza, Francés, Lafuente, & Garrido, 2012). 다음으로 왜곡된 의견 변화 현상의 경우, 제도적 장치 마련과 다양한 이견 노출이 가능한 토의 환경 조성이 집단 극화, 사전 태도 강화, 동기화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제시되고 있다(Esterling, Fung, & Lee, 2015, 2019; Grönlund, Herne, & Setälä, 2015; Strandberg, Himmelroos, & Grönlund, 2017). 나아가 불평등이 야기하는 차별과 배제의 문제도 의사소통 방식 및 의사결정 규칙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음이 여러 연구들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Karpowitz et al., 2012; Polletta & Gardner, 2018).

이외에도 숙의 토의 과정에서의 설득이 의견 변화를 추동할 수 있음을 밝히는 연구(Westwood, 2015), 숙의가 의견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의견 제약의 측면에서도 변화를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Gastil & Dillard, 1999), 그리고 의견 변화가 양극화된 선호 구조가 아닌 단봉선호(single-peaked preference)의 양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Farrar, Fishkin, Green, List, Luskin, & Paluck, 2010)들이 제시되고 있다. 한국 사례의 경우에도 공론화 과정에서 의견 변화가 유의미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연구들이 서서히 제시되고 있다(김혜경, 2019; 나윤영, 2020; 정형안, 이윤석, 2020). 이처럼 많은 경험 연구들이 의견 변화의 가능성을 여러 경험 사례들을 중심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의 의견은 변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숙의민주주의의 기술적·방법론적 측면의 개선 문제로 치환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라이프(Ryfe, 2005)는 기존 사례들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숙의를 위한 다섯가지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한편, 마이어와 멘덜버그(Myer & Mendelberg, 2013)의 주장 또한 주의깊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숙의에 의한 의견 변화 여부 그 자체에 크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부족한 의견 변화 정도가 숙의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고, 숙의민주적 방법이 가져다줄 수 있는 장점이 의견 변화 외에도 매우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우고, 생각하며, 자신의 정책 선호를 비판적으로 형성시켜보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의견 변화 가능성 여부로 숙의민주적 실천에 대해 회의를 하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숙의민주적 방법이 심각하게 분열된 사회에서만큼은 결코 적용될 수 없으리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사회에서의 숙의는 왜곡된 환경(예를 들어, 극화된 강한 사전 태도) 아래에서 고립된(enclave) 방식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Luskin, O'Flynn, Fishkin, & Russell, 2014). 그러한 경우, 참여자 간의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기 어렵고,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의견 변화가 나타나기도 어렵다. 그러나 여러 연구들은 숙의적 실천이 심각하게 분열된 사회에서도 좋은 효과를 만들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Curato et al., 2017). 특히 러스킨 외(Luskin et al., 2014)는 북아일랜드에서의 공론조사 사례를 바탕으로 심각하게 분열된 사회에서도 숙의가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구들은 ‘숙의를 통해 대중의 의견이 변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숙의민주주의가 옳으냐 그르냐라는 질문으로 치환될 성격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즉 그러한 질문은 숙의가 올바른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느냐와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숙의민주주의의 근본적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바람직한 숙의를 향한 올바른 조건의 탐색이다. 이에 대해서는 논문의 후반부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해보고자 한다.

3) 숙의에 의한 의사결정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시민들이 숙의민주적 방법에 참여하여 주어진 사안에 대해 나름의 의사를 표현하였고, 그에 따라 정책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면, 그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또한 숙의민주주의를 향한 의문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는 숙의 결과에 대한 책임성(accountability)과 관련된 두 가지 문제들과 연관되는데, 이는 책임성의 불분명함, 그리고 책임 전가의 문제이다.

사실 책임성과 책임 전가 문제는 지난 여러 공론화 과정에서 제기된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 이상명(2019)은 국민이 선출 및 권한 위임하지 않은 시민참여단에게 공론화 과정의 책임을 물을 수 없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공론화 과정이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숙의민주적 방법이 야기할 수 있는 책임과 관련된 두 가지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책임성의 불분명함은 민주적 정당성,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와 연관되어 나타난다. 라폰트(Lafont, 2017)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으로 숙의민주적 방법을 도입하는 것은 정치적 시스템의 민주적 정당성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무작위로 선정된, 기술적(descriptive) 의미의 대표라고 할지라도 숙의 대표는 결코 모든 시민들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숙의 대표는 시민들에게 정책적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책임성의 불분명함이 문제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숙의민주적 방법을 활용하는 경우, 정책적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숙의 대표의 책임이 불분명하다면 숙의 대표의 정책적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은 숙의민주적 방법을 제안한 정치적 행위자, 즉 정부의 책임이 되어야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정부가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전략적으로 숙의 대표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문제적 가능성이 있다. 드라이젝(Dryzek, 2015)은 숙의민주적 방법이 실패하는 시스템적 원인 중 하나로 책임 전가를 제시하는데, 그에 따르면 정부가 미리 결정된 정책 입장을 지지받기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해, 또는 상징적인 수단으로 숙의민주적 방법을 활용하는 경우 숙의민주주의는 실패할 수 있다. 세탈라(Setälä, 2017) 또한 숙의민주적 방법이 정책 입안자들의 입장을 강화하거나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정당화하고 실현하기 위한 형식적인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고, 시민사회의 비판적 목소리를 침묵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경우 숙의의 결과는 여전히 논쟁적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게 된다.

숙의민주적 방법에 이와 같은 책임성의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대의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숙의민주적 방법이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책임성의 문제는 정치적 대표성,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유권자와 선출된 대표 사이의 정치적 대표성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 정당성의 체제에서 책임성의 문제는 유권자에 의해 선출된 대표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의 의사를 정책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책임지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유권자와 선출된 대표 사이의 정치적 대표성이 아닌 다른 형태의 선출되지 않은 비공식적 대표성, 즉 기술적 대표성이 숙의민주주의에서 나타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책임성의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Urbinati & Warren, 2008).

결국 책임성의 문제는 대의민주주의 아래에서 숙의민주적 방법과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는 이러한 책임성의 문제도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 숙의민주적 방법을 제도화하느냐에 따라 상당부분 해결 가능한 문제인 것으로 판단한다. 세탈라(Setälä, 2017)는 숙의민주적 방법의 반복적이고도 지속적인 활용이 책임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중이 숙의민주적 방법을 공공 의사결정 과정에서 특수한 역할을 하는 제도로 인지하도록 함으로써, 특정한 유형의 이슈들1)에 대하여 활용 가능하도록 제도화함으로써, 다양한 정치적 행위자에 의해서도 숙의민주적 방법이 사용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리고 다양한 정치적 행위자들이 숙의민주적 방법에 함께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외에도 브라운(Brown, 2018)은 공론조사와 같은 숙의민주적 방법이 대의민주주의 제도와 연결되면 정치 시스템의 민주적 정당성이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맥켄지(MacKenzie, 2018) 또한 상대적으로 견고한 숙의 환경의 형성이 민주적 정당성의 제고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숙의민주적 방법의 제도화는 정책 결정에 있어서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정치적으로 대표되는 이들이 더 바람직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봉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숙의민주주의의 활용은 책임성의 문제로부터 벗어날 뿐 아니라 오히려 책임성 문제를 개선시킬 수 있는 결과를 낳는다.

이 뿐 아니라 숙의민주적 방법의 제도화는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증가시킴으로써 책임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워렌과 가스틸(Warren & Gastil, 2015)은 숙의민주적 방법이 ‘촉진적(facilitative) 신뢰’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판단을 용이하게 하는 대용물(proxy)로 숙의민주적 방법이 기능한 경우, 숙의민주적 방법의 제도화는 촉진적 신뢰의 증가를 만들어내어 숙의하지 않는 시민들로 하여금 숙의하는 시민들을 더 많이 신뢰하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대표성과 책임성 간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이면서도 유연한 성찰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이 궁극적으로 책임을 지는 당사자가 되면서도,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 최대한 많고 다양한 종류의 대표자들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출되지 않은 비공식적 대표성까지 포괄하면서 대표성의 차원을 보다 다차원으로 사유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Urbinati & Warren, 2008). 헨드릭스(Hendriks, 2009)는 네덜란드의 에너지 개혁 사례에서 거버넌스 네트워크(Governance network)의 대표성이 기존의 정치적 대표성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정치적 대표성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책임성의 개념도 훨씬 더 넓은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Hendriks, 2009; Mansbridge, 2004). 대표성의 차원이 확장될 여지가 있다면 이에 따라 책임성의 문제도 다른 차원으로 사유할 가능성이 열린다. 즉, 숙의민주적 방법을 둘러싼 책임성의 문제는 대표성과 책임성 간의 관계에 대한 유연한 확장 속에서 분명 새로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3. 숙의민주 방법론의 현실적 개선 가능성: 공론조사의 사례

지금까지 숙의민주주의에 대해 제기되는 여러 문제제기들 중 핵심적인 것들을 세 가지 질문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현재까지의 숙의민주주의 연구들이 그러한 도전적 문제 제기에 어느 정도 응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숙의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운영될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숙의민주적 방법론은 크고 작은 난관들에 부딪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숙의민주주의가 현실에서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여러 크고 작은 문제들이 해결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부터는 그러한 과제들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숙의민주적 방법론이 개선될 수 있을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숙의민주주의가 시민들의 공적 이성의 발휘를 통해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이상’이라면, 이를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방법론과 기법은 매우 다양하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몇 년간 숙의민주적 방법론으로 가장 각광을 받고 적극적으로 활용된 공론조사 방법론(정형안, 이윤석, 2020)에 초점을 맞추어, 해외의 공론조사 및 숙의민주적 실험들에서 제시된 사례 및 주장들을 바탕으로 향후 우리나라의 공론조사가 고려할 만한 사항 및 앞으로의 개선 방향을 제시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앞서 던진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세 가지 큰 질문을 바탕으로 하면서 8가지의 고려 사항들을 제시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앞서 살펴본 ‘대중은 숙의민주주의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관련해서는 1) 참여자와 참여방식에 있어서의 다양성, 2) 감정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의 문제를 논의한다.

다음으로 ‘대중의 의견은 변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3) 숙의토론 조정 기법 개선, 4) 상향·하향식 접근에 있어서의 유연성의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숙의에 의한 의사결정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와 관련하여 5) 공론조사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탈피, 6) 참여의 질에 대한 고려의 문제를 논의한다.

추가적으로 공론조사 설계 전반과 관련하여 7)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공론조사 과정의 개선, 8) 설문조사 방법에 있어서의 개선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이와 같은 8가지 문제들은, 숙의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여러 사회적, 제도적 환경의 문제들보다는 숙의방법론 그 자체의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1) 참여자와 참여방식에 있어서의 다양성

앞서 우리는 대중이 숙의민주주의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런데 대중이란 무엇인가? 대중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개별 행위자들로 구성된 집합이다. 대중이 숙의민주주의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대중의 다양하고 이질적인 측면이 숙의민주적 방법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여자와 참여방식에 있어서의 다양성이다.

그동안 진행된 공론조사들에서는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대표성에 대한 추구가 기계적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숙의민주주의에 있어서의 대표성을 통계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의 단점들을 지적한 기존의 연구들은 우리의 공론조사들이 기계적인 대표성에 지나치게 집착했음을 시사한다(김정인, 2018a; Goodin & Dryzek, 2006). 비교적 작은 샘플의 크기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공론조사 혹은 숙의민주적 방법들이 통계적 대표성만을 확보하려 한다면 다양한 목소리와 이야기들의 발화는 자연스레 제약될 수밖에 없다. 숙의 토론의 목표가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합하고 경청하여 어떤 제안과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면, 대표성보다 실질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숙의 토론 현장에서 실질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불완전하게나마 숙의 참여자의 통계적 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은 기존의 표본추출 기법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는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통계적 대표성이 아닌 다양성 또는 복수성(plurality) 확보를 목표로 하는 경우, 이를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론적 논의와 학술적 연구는 아직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김정인, 2018a; 최태현, 2018). 하지만 통계적 대표성을 통해 참여자 구성의 표면적,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전략은 결국 숙의의 현장에서 효과적인 숙의를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표성을 다차원적인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논의가 맨스브릿지(Mansbridge), 레이펠드(Rehfeld), 사왈드(Saward) 등의 이론적 논의를 중심으로 등장하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Urbinati & Warren, 2008; Wolkenstein & Wratil, 2020). 대표성에 관한 새로운 이론들은 기존의 대표성 개념을 보다 넓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단초를 제공한다. 이러한 논의를 기반으로 한다면 우리는 다양성 또는 복수성까지 포용할 수 있는 대표성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다차원적 대표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계량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Wolkenstein & Wratil, 2020). 향후 이러한 논의를 기반으로 실질적 다양성과 더 높은 숙의효과 모두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와 같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주안점을 두어야 할 사안은, 참여자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참여방식의 다양성 또한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숙의 토론이라고 하여 지나치게 이성적인 토론과 발언, 증거에 기반한 형식적 합리성만을 기준으로 숙의가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숙의에 반대한다(Against Deliberation)’는 논문에서 샌더스(Lynn Sanders)는 사회의 많은 소수자들이 엘리트들의 합리주의적 담론 형식과 다른 발화 문화(speech culture)를 지니는 경우가 많음을 경고하였다(Sanders, 1997).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Iris Young)은 ‘소통적 민주주의(communicative democracy)’ 개념을 통해 소통에 인사, 수사, 유머, 증언,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양식의 소통 방식들을 조건적으로 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Curato et al., 2017). 이와 같이 소통 형식의 다양성을 열어놓는 것은, 자신의 입장을 어떤 표준화된 형태의 합리주의적이고 이성적이고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형식으로 전달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실질적 욕구를 표출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를 열어놓는 것이다.

미국 남부 농촌 지역의 어려운 형편에 있는 백인들이 왜 그들의 이해득실에 반하는 방식으로 티파티(tea party)나 보수적 정당 및 정치인을 지지하는지를 심층 인터뷰한 사회학자 혹실드(Hochschild, 2016)의 작업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깊은 이야기(deep story)’를 경청하고, 그것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생생히 드러난다. 그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정부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진보적인 정당이나 정치인을 싫어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결과 왜 보수 정당을 택하게 되는지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반박하고 그들의 주장은 비합리적이라고 기각하는 것은 결국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 그들이 인식하는 세계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합리성과 윤리성을 결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공론조사와 같은 숙의 토론에서 사람들의 감정과 열정, 이야기만을 가지고 정책적 의사결정의 방향을 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디자인이나 정치적 방향의 설정은, 정치라는 것이 매우 근본적 수준에서 감정과 분리될 수 없음을 무시하는 것이기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Mouffe, 2000). 숙의 토론의 장은 그 자체적으로 소수자를 배려하게 만들며, 소수자들에게 더 관용적인 정책을 지지하게끔 만드는 효과가 있는데(Kim, Fishkin, & Luskin, 2018), 위와 같은 다양한 소통 방식의 추구를 통한 실질적 다양성 확보는 그러한 효과를 더욱 증진할 수 있을 것이다.

2) 감정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

한편,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의 추구는 자연스레 감정에 대한 추가적인 고려를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의 실질적 욕구를 표출할 수 있는 증언, 스토리텔링 등의 깊은 이야기에서 감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공론조사에는 숙의 과정에서 포착되는 감정에 대한 고려도 추가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숙의민주주의는 합리적 이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경향이 있다(Morrell, 2010). 이에 따라 감정은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차원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감정의 측면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논의들이 재부상하기 시작했다. 감정이 숙의와 설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재발견이 여러 논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논의는 공감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모렐(Morrell, 2010) 등의 논의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간략히 살펴보면, 그란룬드, 헤르네와 세탈라(Grönlund, Herne, & Setälä, 2017)는 다른 이의 관점을 고려하는 숙의자의 능력인 공감에 대한 경험 연구가 많지 않음을 주장하며 역할 수행(role-taking)의 관점에서 공감을 연구할 필요성에 대해 주목한다. 네블로(Neblo, 2020)는 숙의민주주의가 지금까지 감정을 도외시하지는 않았으나, 체계적으로 다뤄 오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네블로는 숙의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12가지 역할들을 제시함으로써 감정에 대한 경험 연구가 보다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김누리(Kim, 2016)도 분노와 같은 감정이 숙의 과정에서 하는 역할이 있음을 경험적으로 입증하며 감정의 중요성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쿠라토 외(Curato et al., 2017)도 숙의는 토론을 넘어서는 것임을 강조하며 감정적 차원을 숙의의 중요한 차원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숙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감정 및 감정의 역할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의 숙의민주 방법론에서는 감정을 하나의 약간 부차적인 고려 사항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특히 위의 네블로가 제시하는 감정의 다양한 역할에서 보듯이, 소통에 있어서 감정은 주변적 위치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숙의의 효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 살펴본 참여자 및 참여방식의 다양성과 복수성의 중요성, 그리고 감정의 역할의 중요성은, 평범한 대중들이 숙의민주주의의 의미있는 주체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제시하였다. 그 이유는 그러한 참여에 있어서의 다양성과 포용성의 문제가 결국 숙의민주주의에 있어서 권력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숙의에 대해 가해지는 비판 중 하나는 숙의를 위해 모인 사람들 간에 존재하는 불평등이나 지위의 차이, 권력의 차이가 토론 과정에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문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지만, 숙의에 대한 연구들은 숙의민주주의가 권력에 대해 더 섬세한 접근(nuanced view)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Curato et al., 2017). 숙의민주주의의 장이야말로 미시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권력의 작동을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하고, 숙의 절차와 제도를 통해 그러한 권력을 제한할 수 있고, 개인들의 역능성을 강화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참여자와 참여양식의 다양화는 이러한 권력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룸으로써 궁극적으로 숙의 주체로서의 일반 시민들의 민주적 주체성을 형성시켜준다고 할 수 있다.

3) 숙의토론 조정 기법 개선

앞부분에서는 올바른 조건 아래에서 숙의민주적 방법이 활용될 때 숙의에 의한 유의미한 의견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바람직한 숙의를 위한 올바른 조건의 확보는 숙의민주주의의 기술적·방법론적 측면의 개선으로 가능할 수 있다. 우리는 기존 공론조사에 두 가지 조건이 확보되어야 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첫 번째 조건은 숙의 토론 조정자의 역할 개선이다.

공론조사 그리고 다양한 숙의민주적 방법론에서 조정자(facilitator)·모더레이터의 기능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 조정자의 역할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으면, 숙의는 그냥 토론이나 대화에 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셧슨(Schudson, 1997)은 그의 1997년 논문, “왜 대화는 민주주의의 영혼이 아닌가(why conversation is not the soul of democracy)”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화라고 하는 많은 것들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방식의 대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일정 정도 불편함을 느끼면서, 여러 규칙들을 바탕으로 설계된,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공적 대화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대화이다. 하버마스의 심의민주주의론 또한 잘 설계된 토론 ‘절차’에 의존해 공동체를 위한 보편적 이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현아, 2007). 이들이 강조하는 숙의의 모습은 열려있고, 평등하며, 거침없지만 사심없는 의견의 교환이 모습인데 동시에 그러한 소통이 모종의 절차와 규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따라서 토론에 있어서의 조정자의 역할이 자연스레 요구된다.

이러한 조정기법 및 조정자의 역할은 단순히 숙의토론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끔 하는 것을 넘어선다. 예를 들어 그란룬드 외(Grönlund et al., 2015)의 연구에 따르면, 토론 과정에서 의견 양극화는 주로 비구조화된 대화(unstructured conversation)에서 나타난다. 반면 숙의 원칙을 지키게끔 하도록 진행하는 토론에서는 양극화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행한 실험은 핀란드에 이민자를 얼마만큼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숙의였다. 실험 결과, 이민자들에 대해 극도로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이 숙의 토론 후 더 관용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구조화되지 않은 대화를 한 집단에서는 사람들이 더욱 극화된 태도를 가지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숙의 토론에서 조정자의 역할과 그들이 따를 수 있는 숙의 원칙들을 잘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간 모더레이터의 역할에 대한 학술적 지식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던 한국에서 공론조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라 할 수 있다.

험프리스, 마스터스와 샌부(Humphreys, Masters, & Sandbu, 2006)의 경우 공론조사에서 토론 분임조에 토론 리더들을 무작위로 배정하여 살펴본 결과 리더의 효과가 매우 컸음을 보여주고 있고, 시우(Siu, 2017)는 토론 과정에 있어서의 불평등 문제를 토론 과정에서 적절한 조정을 통해 관리해야 할 필요를 보여주고 있다.

참여의 질을 높여 사람들로 하여금 개방적인 태도와 관용적인 자세를 가지고 숙의에 참여하게 하여 정책에 대한 태도가 더 유연하게 바뀔 수 있게 되는 것은 숙의민주주의의 성패를 가름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Barabas, 2004). 숙의 토론 조정자의 역할과 효과에 대한 연구의 축적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숙의 원칙 구축 및 이를 바탕으로 한 숙의 토론 설계는 공론조사와 같은 숙의민주적 방법의 효과를 가장 직접적으로 향상시켜 줄 것이다.

4) 상향·하향식 접근에 있어서의 유연성

다른 한편, 대중의 유의미한 의견 변화를 위해 기존 공론조사에서 확보되어야 하는 두 번째 조건은 상향·하향식 접근에 있어서의 유연성이다. 이는 특히 양극화가 심한 사회에서의 숙의를 하거나 갈등이 심각한 주제에 관한 숙의를 할 때 특히 필요한 조건이다.

숙의 토론이나 공론조사의 주제가 되는 사안들은 그 종류와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 그러한 다양한 주제별로 그것을 다룰 때 얼마나 시민들 위주의 상향식 접근을 택할지, 아니면 전문가들 위주의 하향식 접근을 택할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장한일과 페이사킨(Chang & Peisakhin, 2019)은 전문가 집단이 토론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보여준다. 그들의 연구는 집단 간 분열과 갈등이 심각한 레바논의 시아파 180명과 수니파 180명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연구결과를 보여준다. 이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먼저 레바논의 유명 저널리스트 4명(2명은 시아파, 2명은 수니파)이 레바논의 정치 문제에 대해 15분 동안 토론하는 토크쇼를 실험 참여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토크쇼에서 4명의 유명 저널리스트들은 시아-수니 집단 간 갈등이 왜 큰 문제이고, 어떠한 부정적인 결과들을 낳는지, 왜 집단 간 협력과 화해가 필요하고 갈등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분석 결과, 이 비디오를 본 사람들은 보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분파 간 협력(intersectarian cooperation)에 대해 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냥 상대 분파와 집단 토론을 시킨 집단에서는 그러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전문가들의 호소(expert appeal)가 일반인들에게 유의미한 효과를 줄 수 있음을 나타내고, 특히 분열된 상황에서는 양쪽 분파의 전문가들이 다 같이 협력을 호소하는 경우에 그러함을 나타낸다. 이는 시민들의 협력과 갈등 통합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전문가 수준에서 어느 정도 자체적인 합의와 공감대 형성, 협력의 여지가 만들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공론조사나 숙의 토론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일반 시민들의 경우 합의점을 찾기 보다는 분파적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는 시민들의 숙의도 중요하지만, 전문가들 간의 숙의와 합의점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함을, 또는 전문가들의 숙의가 때로는 일반인들의 숙의에 선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연구에서도 사회적 분열과 집단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때로 하향식 접근이 상향식 접근보다 유용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5) 공론조사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탈피

앞서 우리는 숙의민주주의에 있어서의 책임성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책임성의 문제를 숙의민주적 방법의 제도화를 통해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숙의민주적 방법의 제도화를 현실화하기 전에 몇 가지 개선 지점들이 먼저 고려될 필요가 있다.

숙의민주 방법론으로의 공론조사의 발전 방향을 논함에 있어 역설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공론조사에의 지나친 의존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이후로, 그것을 모델로 한 공론조사들이 한국의 중요한 정책적 의사결정을 위한 수단으로 기계적으로 답습되면서 사람들이 공론조사에 대한 피로감을 가지게 되었다.2) 이는 오히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냉소를 불러일으키게 한 측면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냉소는 특히 지난 공론조사들이 지나치게 합의와 다수결 중심적 목표를 가지고 진행된 결과, 공론조사라는 형식적 틀에 얽매였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다른 한편으로는 공론조사가 책임 떠넘기기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니냐는 지적도 수차례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를 없애려면 우선 공론조사가 아닌 다른 형태의 숙의민주주의 도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숙의민주주의의 다양한 방법들이 활용되고, 실험되도록 해야 한다. 숙의민주주의에 다양한 방법론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로, 시나리오 워크숍, 시민자문회의, 합의회의, 시민의회, 타운홀미팅, 시민배심제, 시민포럼 등 다양한 방법들이 우리 사회에서 실험해 볼 수 있는 선택지로 존재한다(박기태, 이명진, 2020). 이와 같이 다양한 숙의민주주의의 방법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제도화하여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기존의 공론조사 기법을 활용함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사회에서 숙의가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민단체, 기업조직, 각종 이익단체들 간 숙의 포럼이 열릴 수 있도록 하고, 의회 체제 및 정부조직 내에서도 공식·비공식 숙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문가 조직이나 책임을 지닌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숙의가 제도적으로 정착되도록, 정부 내외의 공간에 숙의가 열릴 수 있는 구체적 장치와 관례들이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나 의회에 숙의 토론을 관리하고 제도화할 수 있는 상설 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대중들을 포괄하는 보다 폭넓은 수준에서의 숙의 장치를 고안하고자 한다면 브라질의 사례인 국가 공공 정책 회의(National Public Policy Conferences)와 같은 공적 숙의 장치를 고려할 수 있다.

숙의민주주의는 합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성(plurality)을 지향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형태의 숙의민주 방법론들이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수용될 것이다.

6) 참여의 질에 대한 고려

다른 한편으로 공론조사 참여자의 참여의 질 또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숙의민주주의와 관련된 연구나 논의들에서 활발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당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앞선 논의에서 우리는 숙의민주의 제도화가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증가시킴으로써 책임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제안하였다. 특히 숙의 참여단을 향한 촉진적 신뢰의 형성이 민주적 정당성과 대표성의 문제를 극복하도록 함으로써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만약 공론조사 참여자의 참여의 질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설사 제도화가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숙의 참여단이 내놓는 의사결정의 정당성이나 신뢰 가능성은 결코 확보될 수 없을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숙의 결과에 대한 책임성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야기할 수밖에 없다.

2018년에 실시되었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에서 공론조사 후 작성된 검증보고서에서는 참여자들이 숙의의 대상으로 주어진 이슈들에 대해 (숙의토론이 끝날 시점에)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지, 기본지식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4가지 의제에 차별화된 선호를 보이는지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대입제도개편을 위한 시민참여형 조사 검증위원회, 2018). 보고서에서 제시된 몇 가지 분석결과와 그에 근거한 결론은, 공론조사 과정에 끝까지 참여한 시민참여단이라고 해서 그들 모두가 높은 참여의 질을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참여단의 일부는 숙의토론 기간이 끝날 때까지도 주어진 사안에 대해 기대되는 지식을 지니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비중도 무시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공론조사에서는 이와 같이 주어진 주제나 정책적 대안들에 대한 참여자의 이해도, 혹은 참여의 적극성 문제를 어떻게 고려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보다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여러 경쟁하는 사안들에 대한 의견들을 물어보는 경우, 적지 않은 참여자들이 긴 숙의 후에도 어떤 차별적 선호도 보이지 않거나, 기본적인 지식을 숙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 그러한 응답 결과를 분석 시에 얼마나 의미있게 포함시켜 국가적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숙의토론 현장에 기계적으로 참석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의 응답결과가 동일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해석되어야 하는지, 만약 참여의 질에 있어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 이에 대해 충분히 숙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도 되는지 등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의 기본 취지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지역주민이나 전 국민을 대표하여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권리와 의무가 동반되는 책임 윤리를 가져야 함을 생각한다면 고려될 만하다. 탈리스(Talisse, 2004)의 표현을 빌자면 참여의 질이 매우 낮은 참가자들이 있다면 이는 참가자가 무지(ignorant)하다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ignore)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숙의토론의 경우 참여자의 수가 매우 크지가 않기 때문에, 참여자 일부의 참여의 질이 낮은 경우 그것이 곧바로 최종 결론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공론조사나 숙의민주적 방법론에 있어 참여의 질을 향상시키거나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들이 고안된다면, 그것들에 대해 가해지는 비판들 중 일부를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7)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공론조사 과정의 개선

마지막으로 우리는 공론조사 설계 전반과 관련하여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두 가지 개선 사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공론조사 과정의 개선과 설문조사 방법에 있어서의 개선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먼저,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공론조사 과정의 개선 사항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존의 공론조사들의 경우, 몇 개월 안에 대부분의 절차가 진행되는 단기적 속성을 나타내었다. 공론조사와 숙의가 그렇게 시간을 다투면서 진행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정책적 의사결정의 시점에 공론조사가 종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의 청사진을 시민들이 모여 그리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공론조사는 단기간에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 오랜 기간을 두고 다양한 논의를 심도 깊게 다룰 수 있도록 공론조사의 과정 전반이 설계될 필요가 있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시민참여형 공론조사들은 그 속도만큼 효율적인 측면은 있지만, 이에 따라 차분하고 철저한 진행이 필요한 부분들에 있어 아쉬움이 남는 지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공론조사에 있어 의제 설정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의제 및 대안 구성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단기간의 공론조사는 이에 대한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공론조사를 보다 긴 시간을 두고 진행해야 하는 다른 이유 중 하나로, 전문가들의 발표자료나 주장에 대한 근거자료가 시민참여단에게 제시될 때 그 자료들에 대한 사전 팩트체크나 감수가 보다 엄밀하게 이루어져야 함이 있다. 그러한 자료들이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거나, 지나치게 편파적인 주장들로 구성된 경우 숙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자료집 작성과 관련하여 감수위원회가 먼저 설치되었음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숙의의 기간을 무작정 장기화 하는 것이 무조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국가적·지역적 의사결정을 목전에 남겨놓고 급하게 진행하는 숙의는 형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기가 쉽다. 따라서 공적인 문제에 대한 숙의 자체가 일상화 되고, 평상시에 늘 지속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일상적 실천으로 누적된 숙의가 이벤트성으로 이루어지는 공론조사의 모습 이전에 선행해야 한다.

8) 설문조사 방법에 있어서의 개선

다음으로, 설문조사 방법에 있어서의 개선과 관련하여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도 있다. 우선 공론조사 시 활용되는 설문을 설계할 때 응답 순서 효과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김지범, 김솔이, 김춘석, 김영원, 강정한(2019)는 설문지에 나오는 설문 문항들이 어떠한 순서로 나열되는지에 따라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응답순서 효과; response-order effect)을 2016년 한국종합사회조사를 통해 확인하였다. 특히 이들은 초두효과(primacy effect)와 최신효과(recency effect)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반면, 신고리 5·6호기 설문에서는 그와 같은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연구들이 설문 시에 응답 순서 효과가 나타난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향후 공론조사 시에는 그 효과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새로이 고안해야 할 것이다.

공론조사 시 설문 문항에 활용되는 척도들 또한 몇 점 척도로 할지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숙의 토론 후에는 사람들의 의견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높은 해상도를 가지고 형성되기 때문에, 5점보다는 7점, 11점 척도 등이 더 유용할 수 있다. 아울러 주어진 사안과 관련된 여러 이슈나 대안을 평가함에 있어 그것들을 순위(ranking)로 물어보는 방식과, 평가(rating) 척도를 활용하는 방식을 병행하거나 주의깊게 양자택일을 할 필요가 있다. 순위(preference)로 물어보는지, 평가(desirability)로 물어보는지에 따라 응답 결과와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론조사에 있어 이러한 측정의 문제들은 앞으로 경험적 연구가 축적되어야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공론조사 시 설문 문항에 활용될 문항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공론조사에서 토의 과정 및 환경에 대한 문항은 구체적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공론조사의 초점이 참여자의 의견 변화 여부에 맞춰진 나머지, 토의 과정 및 환경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의 과정 및 환경은 숙의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이다(나윤영, 2020). 토의 과정, 경험 및 환경과 관련한 문항이 앞으로의 공론조사에서 추가적으로 고려되면 숙의민주적 방법에 대한 유용한 지식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4. 결 론

숙의민주주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정치학자 이언 샤피로(Ian Shapiro)는 정치적 숙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들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는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즉, 세상의 가장 중대한 문제들은 많은 자원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수 있고, 그것들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정당 간의 경쟁이나 의회에서의 갈등인데, 숙의는 그러한 중대 문제들을 어떻게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중요한 공화주의적 문제로부터 관심을 돌리게끔 한다는 것이다(Shapiro, 2017). 한편, 숙의 과정 자체 또한 온갖 종류의 갈등과 정치적 불평등으로 얼룩져 있어 현대의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에 비해 특별히 더 나은 점이 없을 경우도 많다(Button & Mattson, 1999). 그러므로 숙의민주주의와 공론조사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곧바로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중요한 것은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추상적 예찬과 이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이것을 현실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하면 그 효과를 더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이 논문 또한 숙의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특성을 포착하여,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확인하고, 동시에 그것을 어떻게 더 생산적인 방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제시하고자 하였다. 무엇보다 이 논문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훨씬 더 다양한 형태의 숙의 실험들이 모색되고 실행되어야 함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숙의 과정조차 형식적 정당성에 집착하거나 단기간에 해치우는 것을 넘어서, 여러 다양한 참여방식, 토론방식, 소통 방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참여와 토론 진행에 있어서의 질을 높이며, 일반 시민들의 삶과 공식적인 제도들 모두에 자연스럽게 숙의의 문화와 실천이 스며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심화될수록 전반부에 제시하였던 숙의민주주의의 잠재적 문제점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챔버스(Chambers, 2003)는 이미 2003년에, 이제 숙의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이론적 지식(theoretical knowledge)이 아닌 실천 지식(working knowledge)을 축적해야 할 때라고 말한 바 있다. 즉, 공론조사와 관련된 보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지식들이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머츠(Mutz, 2008)의 주장대로, 검증 가능하고, 반박 가능한 가설들을 수립하고 그것들을 지지 혹은 기각하는 형태의 경험 연구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성공적인 숙의민주적 방법론의 개발과 개선을 위해서는 이론적 탐구뿐 아니라 끊임없는 제도적 실험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삿포로시 제설정책 개선을 위한 공론조사의 경우 이미 지역에 구축되어 있던 제설 파트너십 제도와 같은 숙의형 제도들이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정부와 시민들의 숙의 역량과 동기가 축적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김정인, 2018b). 다른 한편, 이러한 비교적 거시적이고 형식 제도적인 측면뿐 아니라, 소통 및 상호작용 수준에서의 미시적인 숙의 메커니즘을 관리할 수 있는 지식이 많이 축적되어야 한다. 위에서 제시한 공론조사 개선 방향의 방법으로 다양성 확충 및 조정자의 역할 개선 등을 언급하였는데, 양자는 사실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참여자들이 내놓는 스토리에 있어서의 다양성 또한 그것이 숙의 토론 현장에서 참여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Polletta & Lee, 2006). 숙의민주주의의 질을 결정짓는 이와 같은 미시적인 실천 지식들, 구체적인 제도들의 점진적 구축과 보완에 대한 연구들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와 침체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은 대의민주주의의 축소와 더 많은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을 대표하는 자들이 충분히 심의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참여민주주의가 요청된다고 하여 더 많은 참여가 더 나은 민주주의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시민들에게 성숙한 공적 숙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고, 그것을 통해 참여가 유도되도록 하는 것이 참여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더 나은 민주주의로 우리 사회를 이끌 것이다. 즉, 숙의와 참여가 함께 할 때(Curato et al., 2017) 더 나은 민주주의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아직 한국의 숙의민주주의의 역사는 짧지만, 이것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장기적으로 실험될 때, 한국사회의 정치적, 시민사회적 토양은 조금씩 변화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산적한 정책적 딜레마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 현재 뿌리깊이 박혀있는 정치적 양극화의 구조를 바꾸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Notes
1) 예를 들어, 솔로몬과 아벨슨(Solomon & Abelson, 2012)은 언제, 왜 공적 숙의 방법이 사용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하여 정책적 이슈의 종류에 따라 몇 가지 상황을 제시한다. 1) 정책적 의사결정이 공익에 대한 서로 상충하는 가치들을 반영하는 경우, 2) 논쟁적이고 사람들을 갈라놓는 이슈인 경우, 3) 기술적인 지식과 세상에 대한 지식을 결합해야 하는 혼종적(hybrid) 주제인 경우, 4) 신뢰가 낮은 상황인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2) 사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등 최근 몇 년간 시행된 굵직한 전국단위 공론조사들은, 기존의 공론조사의 단점들을 보완한 형태의 ‘시민참여형조사’라는 이름과 계획으로 실시되었고, 양자의 차이점 또한 부각되었다(김춘석, 2018). 하지만 시민참여형 조사를 공론조사의 한 종류로 포함시킬 수 있기에 여기서는 별개로 구분하지 않는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7S1A5A8022914).

이 논문의 초고는 2019년도 교육정치학회 연차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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