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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 ]
Journal of Social Science - Vol. 32, No. 1, pp.145-174
ISSN: 1976-2984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Jan 2021
Received 25 Nov 2020 Revised 07 Jan 2021 Accepted 18 Jan 2021
DOI: https://doi.org/10.16881/jss.2021.01.32.1.145

여성 노인의 자전적 내러티브에 기반한 ‘집’의 장소성: 노인요양시설 거주자를 중심으로

김서현 ; 박영주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Placeness of ‘Home’ Based on Elderly Women’s Autobiographical Narratives: Focus on Residents at Elderly Care Facilities
Seohyun Kim ; Young-Ju Park
Dept. of Social Welfare, Jeonbuk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ence to: 김서현,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BK21 지역혁신을 위한 미래복지 인력 양성 사업단 연구교수,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567, E-mail : sh_kim@jbnu.ac.kr 김서현,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연구교수(제1․교신저자)박영주,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수료(공동저자)

초록

본 연구의 목적은 여성 노인이 생애과정에서 고유하게 경험한 ‘집’의 장소성에 관한 의미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것이다. 연구질문에 답하고자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여성 노인 4명과 일대일 심층 면담을 수행하였다. 수집한 자료는 Mandelbaum(1973)이 생애사적 접근을 위하여 제시한 바 있는 삶의 영역(dimension), 전환점(turning), 적응(adaptation)의 세 가지 차원에 근거해 분석하였으며, 자전적 내러티브 탐구의 방식으로 연구참여자들이 구술한 바의 심연에 내재한 의미를 도출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연구참여자들의 ‘집’에 관한 ‘삶의 영역’은 5개의 하위주제를 토대로 “‘보살핌으로 엮은 보금자리’ 거쳐 ‘여생 기댈 새 터전’에 닿음”처럼 드러났다. 둘째, ‘집’에 대한 인식 및 경험의 ‘전환점’은 4개의 하위주제를 통해 묘사되었으며, “‘집과의 이별’과 ‘집 안에서의 이별’로 인연이 분절됨”으로 밝혀졌다. 셋째, 연구참여자들은 5개의 하위주제에 바탕을 두어 ‘집’에 관한 ‘적응’을 구술했으며, 이는 “‘집에 대한 그리움’과 ‘집을 채운 보고픔’으로 살아낸 삶”과 같았다. 끝으로, 본 연구에서 새롭게 발견한 점들에 기반하여 몇 가지 논의사항을 제시했다.

Abstract

This study aimed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placeness of ‘home’ that elderly women inherently experienced in their life course. To respond to the research question, one-on-one in-depth interviews were conducted on four elderly women residing in elderly care facilities. The collected data were analyzed based on three parts, ‘dimension’, ‘turning’, and ‘adaptation’ presented by Mandelbaum (1973) for a life history approach, and with the method of an autobiographical narrative inquiry, the meanings implied in the depth of what the research participants told. The research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the ‘dimensions’ of the research participants for ‘home’ appeared like, “A shift from ‘home woven by care’ to ‘a new site they would depend on for the rest of their lives’” based on five sub-topics. Second, the ‘turnings’ of the perception and experience of ‘home’ were described through four sub-topics and appeared like “Relations being broken into ‘parting from home’ and ‘parting in home.’” Third, the research participants told about the ‘adaptations’ of ‘home’ based on five sub-topics, which was like, “A life lived with ‘a longing for home’ and ‘missing full of home.’” In conclusion, some discussion points were proposed based on the things newly found in this study.

Keywords:

Elderly Women, Placeness, Residential Space, Narrative Inquiry, Life History

키워드:

여성 노인, 장소성, 거주 공간, 내러티브 탐구, 생애사

1. 서 론

‘집’은 어떤 이에게는 요람이자 둥지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세계의 중심이며 삶의 핵심적 공간이다(강학순, 2007). Heidegger가 공간 안에 실존하고 거주1)하는 속성, 그리고 그것에 대해 사유하는 일련의 행위를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고 설명한 점은, 이처럼 귀속된 공간 혹은 정주하는 장소2)에 관한 존재의 특징을 반영한다(Heidegger, 1927). 그는 시·공간적 거주 상태에 문제가 생기거나 그곳으로부터 이탈하게 되면 실존적 위기가 발생한다고 했다(변순용, 2010). 단, ‘집’은 단지 건축의 공간 또는 단순한 생활환경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즉, ‘집’이란 개개인에게 있어 삶의 역사이자 가족관계의 긴밀한 변화, 일상의 여러 사건사고 사이의 상호작용 등을 아우르는 장소성(placeness)의 특질을 내포한다. 따라서, 장소성이란 존재자가 특정 공간에 애착을 느끼고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는 개념이라고 할 것이다(정미선, 2016). 특히 인간은 평생 ‘집’에 관한 장소성 인식과 더불어서 내·외적 정체감을 형성하며, 물리적 차원은 물론 심리적으로도 그러한 장소성을 인식 및 경험하면서 세계와 연결된다(강유진, 2017).

‘집’을 중심으로 생존하고 생의 경험치를 넓히는 것은 남녀노소 모두에 해당한다. 하지만, 노인의 생애에 관한 경험을 ‘집’의 장소성을 중심으로 이해하려면 성별에 따른 고유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존재자로서의 보편적 경험을 하면서도, 성별 이데올로기에의 관여나 성 역할 수행, 돌봄의 누적 및 관계적 변화 등의 측면에서 남성과 다른 경험을 축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명선영, 2001; 송다영 외, 2019; 신경아, 2011). 실제로 특정한 행동, 관계, 사물, 장소 등에 관한 인식에서 젠더적 상이성이 발견된다. 예컨대, 한국이라는 사회문화적 환경 아래 오랜 세월에 걸쳐 남성과 다른 생애 과업을 이행해온 여성 노인들은 가족 중심의 공동체적 전통 및 가부장제의 신화에 부합하는 성 역할을 중요한 삶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을 소지가 크다(백진아, 2015). 이러한 점은 일반적으로 ‘집’이 여성에게는 주로 모성을 실천하는 공간이자 편안함, 안락함, 소속감 등을 상징하는 장소로 그려진다는 사실과도 관련 있다. 다시 말해서 ‘집’의 장소성 인식을 바탕으로 여성이자 노년기를 살아가는 특정 인구집단의 고유한 삶의 맥락에 다가가는 것은 단지 이들의 삶 속 다양한 경험을 ‘집’이라는 가정환경이라는 경계에 국한해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니며, 당사자들의 주관적이고 자전적 구술에 관해 젠더적 관점에서 심층 논의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방편으로써 장소성에 관한 인간 경험에 주목하는 경향이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강학순, 2007), 취약하거나 소외된 집단 구성원의 사례를 장소성과 결부해 연구한 경우가 수적으로 미흡하다는 사실이다. 건축학, 주거학, 환경심리학, 생태학, 인간발달학, 사회학, 철학, 문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거주하고 발달하는 장소로서 ‘집’의 의미에 일부 관심을 보였으나(남진숙, 2015; 백옥미, 2016; Canter, 1977), 여성으로서 정체화하며 노년을 보내는 노인의 시선으로 ‘집’의 장소성에 관한 의미를 드러낸 바도 미흡하다. Bachelard, Bollnow, Heidegger, Merleau-Ponty 등 여러 저명 학자들이 거주하는 존재로서 인간에 관한 사유를 시도하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음에 비해(강학순, 2007; 김재철, 2009; 변순용, 2010), ‘집’에 관한 장소성을 노인요양시설 거주자처럼 사회의 중심에서 벗어난 이들의 시각에서 탐구한 바도 부족해 관련 연구 수행이 시급하다.

여성 노인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인식하고 경험한 ‘집’에 대한 장소성의 탐구는 전체 인구집단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의 생애와 특성을 섬세하게 이해할 필요성에 더해, 사회적으로도 성별 이데올로기와 연령, 거주 상태 등으로 배제를 경험하였을 소지가 있는 여성 노인세대에의 지원을 위해서도 수행되어야 한다(송다영 외, 2019).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도입과 노인부양의 사회적 책임 확대로 근래에는 시설에서 노년기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이 크게 급증하였지만(김세영, 2016), 살던 집을 떠나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욕구와 발달, 일상생활 전반에서 ‘집’의 개념을 심층 논의한 예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관련 통계 자료를 살펴보더라도 2019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 중 14.9%를 차지하며, 특히 75세 이상 후기 노인의 비율은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임이 확인된다(통계청, 2019). 또한, 65세 이상 여성의 비중은 전체 노인집단 중 약 57.1%로 남성과 비교해 그 수가 더 많고, 실천현장에서도 사회서비스를 이용하는 여성 노인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실정이다(백종진, 2014). 이러한 현실에 더해, 한국에서 어머니이자 아내로 살면서 전 생애과정에서 경험한 여성의 문화와 젠더적 맥락을 밝혀내는 작업, 그리고 나이 듦으로 인해 타인의 돌봄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우며 다수임에도 사회적 약자로 위치 지어진 이들에 관한 총체적 탐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김서현, 2020). 즉, 본 연구주제에의 고심은 장기간 정주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살아가는 노인요양시설 여성 노인처럼 젠더, 연령, 거주지 등 사회적 배제의 영역이 중첩되었거나 변모한 집단 구성원의 삶을 이해하고 복지 증진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본 연구는 여성 노인이 살아온 생의 궤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면서, 존엄하고 고유한 이들의 인식과 경험에서의 여러 특질을 그간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집’에 대한 장소성 관련 구술에 기반을 두어 다가간다는 의미가 있다. ‘집’과 같이 특정한 환경에 관한 장소성은 신체가 위치하는 물리적 경계에서 나아가 보다 확장된 범위에서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는 개념으로써 중요하기 때문이다(정미선, 2016). 연구의 의의는, ‘집’에 관한 장소성을 총체적인 삶의 요소를 고려하면서 논하여 시설에서 인생의 마무리를 하는 여성 노인집단에의 심도 있는 이해를 도모한다는 점이다. 연구목적은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여성 노인들이 전체 삶의 맥락에서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경험한 ‘집’의 장소성의 의미에 대해 자전적 내러티브 탐구방법을 적용하여 당사자의 언어로 깊이 있게 탐험하는 것이다. 연구질문은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여성 노인이 생애 전체에서 ‘집’에 관해 인식하고 경험하는 바는 어떠하며, 자전적 내러티브에서 주되게 드러나는 ‘집’의 장소성은 어떤 의미인가?”이다.


2. 문헌고찰

1) 거주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삶과 ‘집’의 의미

사전적 의미의 ‘거주’는 “특정한 곳에 일정하게 머물며 산다(국립국어원, 2020)”라는 뜻으로, 오래전부터 인간의 본질적 행위이자 사유의 근원적 토대가 되어왔다(민병호, 2007; Heidegger, 1927). 인간은 누구든 물리적으로 구획되는 어떠한 장소에 정주하는 상태에서 심리적 안정감, 편안함, 친밀함, 또는 장소, 귀속감 등을 느끼게 된다(강학순, 2007). 이러한 이유로 여러 철학자는 인간을 거주의 존재라고 설명하면서, 생애과정 동안 여러 공간을 거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고정된 장소에 연속해서 머물며 심리적 안정감 추구와 함께 일생을 살아간다고 지적했다(강학순, 2007; Bachelard, 1958; Heidegger, 1927). 사람은 특정한 곳에 물리적으로 위치 지어지는 것 이외에도 ‘집’과 같이 특별한 장소에 관해 애착을 갖거나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는 상태로 생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시간 부족 혹은 사회변동으로 ‘집’에 관한 장소성을 점차 인식하지 못하게 된 현대인은 실존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고, 정주환경 변화가 존재의 위협을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김재철, 2009). 즉, 인간에 대한 진실한 이해를 위해 현존재가 공간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체험하는 바의 의미가 어떠한지 탐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민병호, 2007; 변순용, 2010).

인간에게 특별한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집’이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집’이란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국립국어원, 2020)”으로, 친밀하여 폐쇄적인 특성을 보이는 사회체계인 동시에 사적 영역이면서도 바깥 세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확장의 공간이다. ‘집’의 중요성은 주로 건축학과 철학 분야에서 그것의 기능과 역할에 관해 설명한 바를 토대로 살펴볼 수 있다. 일례로, 변순용(2010)은 삶이라는 것이 ‘살다’에서 유래한 단어이지만 그것은 ‘어떠한 공간에 사는 양태’를 이미 내포한 개념으로써, 이때 삶을 유지하는 핵심적 요소가 ‘집’이라고 하였다. 이에 더해, Heidegger의 공간에 관한 이해를 발전시켜 인간학적 공간론을 주창한 Bachelard(1958)는 ‘집’은 인간이 외부환경에서 느끼는 위험을 차단하거나 보호하는 기능을 하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안락함을 제공해 안정의 욕구를 충족하도록 한다고 했다. 또한, Bollnow(1963)는 거주지란 개인에게 세계의 중심을 구축하려는 본성과 열망을 달성하도록 하는 공간이며, 스스로 존립할 근거를 마련하고 정체성을 축적해가는 장소임을 언급하였다.

인간의 삶에 있어 ‘집’의 의미와 중요성은 다양한 창작물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예를 들어, 남진숙(2015)은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 안에 ‘집’이라는 것의 표상 자체가 인간의 삶 그 자체를 묘사하며 사고체계의 중심이라고 했다. 이현영(2012) 역시 ‘집’은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의 실존을 보여주는 핵심적 공간으로서, 일상적이면서도 사회적 가치관이 끊임없이 침투하는 곳이라고 했다. 이러한 기존 연구자들의 언급을 토대로 보면, 인간은 ‘집’에 거주하면서 세계관을 형성 및 발달하게 되며, 그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살아가고 존재의 의미를 확립하며 그 가치를 내·외적으로 확장한다고 할 것이다. 단, ‘집’은 거주하는 사람들이 사회와 단절된 채 고립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도 상호작용하면서 내적 세계를 구축하도록 촉진한다. 이 점은 아무리 사적인 공간이라고 할지라도 사회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으며, ‘집’이라는 공간에는 그 시대 사회구성원의 인식과 문화적 가치가 끊임없이 투영되게 됨을 시사한다(Lefebvre, 1974). 즉, ‘집’에 관한 인식은 개별 주체가 생애과정을 살아오면서 느끼고 지향해온 것들을 상징하며, 인간에 관한 깊고 근본적인 탐구를 가능하도록 돕는다고 할 수 있다.

2) 여성 노인의 생애와 ‘집’에 관한 장소성

‘집’에 대한 통념적 이미지는 통상 편안함이나 안전함과 관련 있다. 이는 대개 어머니의 품, 따뜻한 둥지, 든든한 울타리 등과 같이 비유된다. 전통적으로도 ‘집’의 특성은 행복, 소유, 안락, 보호 등과 연관되었고, 그 본래적 성격이 모성(母性)을 근간으로 함이 선행연구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다(Bachelard, 1958; Saegert & Winkel, 2019). 다시 말해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는 명예, 출세, 사회활동과 같은 가치가 중시되는 공적 공간과 달리 여성에 의한 가족 돌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여성주의자들은 가부장제를 비판하면서, 역사적으로 ‘집’ 안에서의 책무가 주로 여성에게 주어졌으며 모성 실천의 공간이 곧 여성의 영역을 상징했다고 하였다(김주현, 2016; Beck-Gernsheim, 2006). 근대 산업화 시기 가족 돌봄 의무나 가사 노동 책임이 여성에게 전가되어(Revenson et al., 2016; Ugargol & Bailey, 2018), 그것을 실천하는 적합한 공간이 곧 거주지로서 ‘집’이었다는 주장이다(Madigan, Munro, & Smith, 1990). 여성이라면 응당 딸, 아내, 안사람이라는 소임에 맞게 성별 분업적 발달과업을 수행해야 했고(Morgan et al., 2016), 노년기까지 가족공동체를 위한 ‘집’의 유지와 존속을 감내하였다는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구조로 대변되는 근대화와 산업화 시대를 겪으면서, 한국의 여성 노인세대 역시 오랜 세월을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며 세계관을 구축해왔다(안경주, 2013).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발달과업이 변화하여 생애주기별로 중요하게 느끼는 공간의 특성도 달라졌겠으나, 여러 연구의 보고를 토대로 여성 노인의 경우에는 장소 인식과 관련 경험이 대개 가족생활과 돌봄 노동의 영역에 제한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백진아, 2015; 안경주, 2013; 이현주, 2015; 최선화, 오영란, 2018; Kim, 2018). 선행연구에서 언급되었듯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여성 노인세대에서 평생에 걸친 가사 노동의 실천이나 성별 분업 답습 등의 이데올로기적 행동 양상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명선영, 2001). 성인지적 감수성이 부족했던 시대를 살아오면서, 생애 전반에 걸쳐 가부장제와 결부된 남아선호사상, 남성 우위의 가족공동체적 가치관, 성 역할에 관한 신화 등을 전통이자 세계관으로 받아들인 까닭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현 여성 노인세대가 성별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가부장제를 이행하며 일정 부분 성 역할에 객체화된 삶을 살았던 인구집단이라고 지적한다(김은정, 2008; 송다영 외, 2019; 심귀연, 2010).

다만, ‘집’이 인간의 존재와 사유, 생의 유지와 발달에 있어 큰 의미를 차지함에도, 여성의 삶 전반을 관통하여 드러나는 ‘집’과 관련한 장소성의 의미를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기반을 두어 논한 연구를 찾기는 쉽지 않다. 노년기에 ‘집’ 자체가 표상하는 안정감, 친밀함, 평온감, 정주감 등 장소성의 풍부한 의미가 밝혀지기는 했으나(백옥미, 2016; Lawton, 1985), 여성의 생애를 필두로 ‘집’에 관해 어떻게 장소성을 인식하고 경험하는지 밝혀진 바는 불분명하다. 한국은 ‘집’과 여성이 담당하는 성 역할 또는 돌봄 행위가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문화적 맥락이지만, 기존에는 가부장적 관습을 이어 돌봄을 행한 여성의 생애사를 탐구했거나(신경아, 2011), 노년기에 배우자와 사별한 여성 노인이 그동안 가족과 함께 지내온 거주 공간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현상학적으로 밝혀낸 연구(송지연, 정혜숙, 2019) 등만이 수행되어 관련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상술한 선행연구에 기반하여, 가족공동체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온 여성 노인들에게 ‘집’은 생존과 보호의 기능을 하는 건축물로서의 단순한 의미를 넘어, 돌봄 노동이 이루어지는 일상의 공간이자 생애 과업을 달성하고 정체감을 발현하는 세계로서의 장소성을 함축한다고는 확인할 수 있다.

3) 노인요양시설 여성 노인의 삶과 거주에 관한 선행연구 검토

노인요양시설이란 「보건복지법」에서 규정하는 노인의료복지시설 중 하나로,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 등으로 심신에 상당한 장애가 발생하여 도움이 필요한 노인을 입소시켜 급식·요양 및 그밖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곳(보건복지부, 2020)”을 말한다. 최근에는 후기 고령 인구 비중이 높아지고 핵가족이나 1인 가구 형태로 그 구조가 변화하여, 노인요양시설에서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의 중요성 재고를 비롯해 그 보완책 모색에 관해서도 관심이 높아졌다(전성남, 2014; 최영미, 이병숙, 2019). 또한, 노인 인구 및 노인성 질환자 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여성 노인 중 노인요양시설에서 노후를 보내려는 이가 계속해서 증가하였다(백종진, 2014). 이러한 사실은 다수의 여성이 이행하는 노년기의 삶이 ‘집’이 아닌 그것을 대신하는 공간에서 이어짐을 시사한다. 또한, 이 점은 여성 노인이 인식하는 ‘집’에 관한 상념들을 노인요양시설과 같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이들의 특별한 경험 속에서 되돌아보아야 할 필요성을 방증한다.

노년기의 삶은 저마다 다양한 형태로 펼쳐진다고 하겠으나, 이렇듯 최근 여성 노인들을 포함하여 노인요양시설 입소 인구가 전체적으로 증가한 사실을 토대로 본다면 이러한 장소 역시 노인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간주해야 하리라 판단된다. 이에 근거하여, 그간 여러 연구자는 노년기 거주에 관련한 시설 이용 당사자들의 시각에서 입소 후 어떻게 적응하며 일상생활의 모습은 어떠한지 꾸준히 관심을 보였다. 예컨대, 백종진(2014)은 문화기술지 연구를 통해 시설 노인들이 기존의 거주지를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호소한다는 사실을 보고했고, 입소 초기 적응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 시설 내 프로그램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용석과 동료들(2013)은 근거이론 기반의 연구를 수행하여, 노인들이 시설이라는 곳에 적응할 때 가족으로부터 버려졌다고 느끼지만 이를 체념하거나 반대로 적극적으로 현실을 수용하면서 현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전성남(2014)도 근거이론 방법을 토대로 노인들이 시설에 들어오게 되어 괴롭거나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등 부정적 감정이 심화하는 시기를 거쳐 점차 자신을 다스리며 순응하는 식의 시설적응 과정을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최영미와 이병숙(2019)은 현상학적 연구를 통하여 시설에 사는 노인들이 자신이 현재 거주하는 공간을 의지하면서도 갇혀있고 버려진 상태라고 인식함을 보고했다. 그밖에도, 송병남과 동료들(2012)은 질적 탐구를 수행하여 노인요양시설에 사는 이들이 친구 만들기나 자원봉사 및 종교활동 프로그램 참여 등과 같이 의미 있는 행동으로 시간을 보낼 때 행복과 안녕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러한 선행연구는 비록 성별에 근거해 고유한 인식과 삶의 양상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오랫동안 살던 원래의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나이 드는 상태(aging in place, AIP)가 아닌 노인요양시설이라는 낯선 공간에서의 삶과 적응을 당사자의 시각에서 전반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본 연구주제를 이해하는 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노인의 경우 ‘집’처럼 비공식적 지지체계를 구할 수 있는 공간에서 나이 드는 것이 삶의 만족과 안녕감 증대에 직결되지만, 실상 모두가 그렇게 삶을 마무리 짓는 것은 아니다. 가족 구성원이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질환 악화로 ‘집’을 떠나게 되면, 노인 당사자에게 노인요양시설은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거주 공간이면서도 내키지 않거나 거부하고픈 선택지라는 양면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김세영, 2016). 즉,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노인요양시설과 같은 장소는 돌봄서비스 이용이 필요한 이들이 ‘집’에서와 같이 일상적 시간을 보내며 삶을 마무리하는 등 노년기 인생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나(김서현, 2020; 이은희, 2019), 노인 당사자의 처지에서 볼 때는 전혀 다른 장소성의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예컨대, 노인들이 입소에 대한 수치심이나 위축감을 느끼는 공간(백종진, 2014)이라거나 가족에게 버려져서 무력하게 늙어간다는 편견이 내재한 공간(김세영, 2016) 등 타율적 개체가 되어 죽어가는 공간으로써의 부정성을 내포한 물리적 환경으로도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행연구는 노인요양시설이 ‘집’처럼 의지할 안락한 곳이면서도, 아무리 노인 친화적이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도 ‘집’과 같을 수는 없으며 개인 혹은 사회적 차원의 부정적 장소성을 상쇄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한편, 성별에 따라 비교했거나 주로 여성의 시각에서 노년기 거주 상황을 고찰한 몇몇 선행연구를 기반으로, 남성과는 다른 측면에서 여성 노인의 ‘집’이나 거주지에서의 생활에 대한 고유한 인식과 경험을 이해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병주(2017)는 여성 노인이 어떠한 형태로 거주하고 있는지가 심리적 안정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강정희(2013)는 노인요양시설 여성 노인이 비록 ‘집’은 아니지만 다른 입소 노인 혹은 요양보호사와 긍정적 사회적 관계를 맺게 되면 유대감을 기반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으며, 자녀 관계가 이전과 같이 유지되거나 나아지기를 바라더라도 접촉 빈도가 소원해지면 원망과 불만을 느끼기도 함을 보고했다. 여성 노인이 시설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다른 노인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밝혀졌다(백종진, 2014). 다만, 이 연구들은 주로 여성 노인이 입소 직후부터 시설 생활이 안정기에 든 시점까지 새 거주지에 적응하거나 삶의 만족도를 더 높은 정도로 느끼도록 지원할 방안을 찾기 위한 목적이어서, 분석결과에서 본고의 관심인 여성으로서의 고유한 인식이나 특수한 생애 경험이 깊이 있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3. 연구방법

1) 자전적 내러티브

다양한 질적 연구방법 중에서 내러티브 탐구(narrative inquiry)는 생애사 연구 방식에 토대하며, 개별적이고 고유한 삶의 경험을 역사적 이야기로써 이해하려는 목적의 연구에 적합하다(Clandinin & Connelly, 2000). 여기서 생애사 연구(life history research)는 시간을 중심으로 개인이 살아온 삶에 관해 입체적이고 기술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경험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탐구방법으로(김영천, 한광웅, 2012; Creswell, 1998), 개별적 생애사를 통해 일반성과 보편성을 재구성하여 사회와 상호작용한 바의 의미를 이해하려 한다(박미정, 2015; Lincoln & Guba, 1985). 즉, 생애사 연구의 한 종류로 발전해온 내러티브 탐구는, 기본적으로 복잡하고 미묘하며 다층적인 인간의 생활환경 및 행동의 맥락을 사회·공간·시간이라는 세 축에 근거해 접근하려는 방법이다(김영천, 한광웅, 2012). 이 방법은 특정한 문화 또는 다체계적 사회에 생존하고 행동하는 인간이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시간’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어떠한 ‘공간’에 위치하고 존재하면서 자기 삶의 궤적에 부여하게 되는 총체적 인식의 의미를 드러내기에도 적절하다.

본 연구에서는 특히 여성 노인이 구술하는 자료의 자서전(autobiography)적인 특성을 부각하여 ‘자전적 내러티브(autobiographical narrative)’ 방식으로 연구질문을 탐구했다. 그 이유는 첫째, 여성 노인이 살아온 인생의 흐름 안에서 ‘집’에 대한 고유한 장소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기 위해서 당사자의 언어에 기반한 질적 연구를 수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Lanham et al., 2020). 둘째, 여성 노인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구성하며 존재하고 살아온 공간에서의 생의 경험을 평면적 접근이 아닌 입체적이고 다층적 관점에서 자세히 포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셋째, 여성 노인이 경험한 ‘집’에 관한 장소성은 각자 살아온 삶 안에서 형성된 기억의 단편을 조각조각 모으고 결합해 풀어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므로, 연구참여자의 목소리에 각별하게 귀 기울이는 자전적 내러티브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보았다. 그밖에, 본 연구방법은 기본적으로 연구참여자의 삶을 존중하고 개별 존재의 행위와 인식을 고귀하게 받아들이려는 생애사 연구에서의 구성주의적 패러다임에 기반을 두므로(Denzin & Lincoln, 2008), 연구주제를 자전적 내러티브를 통해 탐구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잘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여성 노인의 생애 경험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2) 연구참여자 선정

연구참여자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인요양시설 거주 70∼80대 노인 중에서 여성을 찾았다. 특히 이전에 살던 생활환경을 떠나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한 뒤 생의 마지막 시기를 살아가는 노인과 만나고자 했다. 이는 노인요양시설 이용자를 비롯해 장기요양 수급자 중에서도 여성이 많고 그중에서도 해당 연령대의 비율이 높다는 점을 두루 고려해서 정하였다(강은나 외, 2019; 보건복지부, 2020). 둘째, 시설에 입소한 지 1년 이상 지난 자 중에서 연구참여자를 선택하려고 했다. 이는 노인이 기존에 살던 ‘집’을 떠나 현재 있는 곳에서 익숙함과 안정감을 보이는 시점에 이르러야만 그에 관한 장소성을 혼란스럽거나 극단적인 상태에서 인식하지 않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단, 장기요양 시설수급자 이용실태를 참고해서 2019년 기준 1∼5년 사이 거주자가 약 62.2% 정도에 이른다는 점에 근거해 대략적 입소기간 기준을 수립했다(강은나 외, 2020). 셋째, 인지장애가 없고 회당 60∼90분가량을 대화 가능한 사람 중에서 적합한 사람을 선정하였다. 장기요양 1∼2등급은 소통의 한계로 제외하였고, 가능하면 3∼4등급 중 연구자와 언어적 상호작용이 원만하며 그 정도가 유사한 이들로 구성했다. 마지막으로, 전원 기혼자로 구성하여, ‘집’의 장소성 인식을 토대로 결혼 전후 경험은 물론 배우자나 자녀 관계 등도 풍부하게 이야기하도록 했다.

연구참여자의 일반적 특성을 간략히 살펴보면, 이들은 70대 초반∼80대 후반 여성 노인으로 서로 다른 요양시설에 거주하였다. 입소 기간은 1년 반∼5년이었고, 대부분 자발적으로 입소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움직임에 제약은 있으나 인지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장기요양 3∼4등급에 해당하였고, 연구주제에 관한 이해가 가능하며 연구자에게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연구참여자는 모두 결혼하여 자녀가 있었으며, 배우자와는 사별했다. 이는 <표 1>과 같다.

연구참여자의 일반적 특성

3) 자료수집 방법

일반적으로 노인은 자신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재해석하면서 총체적 연속성 하에서 재구성하는 특성을 보인다(김은정, 2008). 이때 언어에 기반한 회상은 당사자의 시각에서 가장 생생하게 생애를 드러내는 적절한 방법이다. 이에 자료는 주로 심층면담을 통해 2019년 6월부터 8월 사이에 확보했고, 연구자와 연구참여자가 일대일로 만나서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자료수집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체계적으로 이행했다. 우선, 전체 인구 중 노인 비율이 높은 도시를 몇 개 선정한 후 연구자가 수차례 직접 왕래와 면담 가능한 지역 내 6개소 종사자와 연락하여 연구참여자 소개를 의뢰하였으며, 그중 협조 의사를 밝힌 노인요양시설에 찾아가서 심층 면담에 적합한 이를 선정하는 방식의 유의 표집을 수행했다. 다음으로, 소개를 받은 이가 자발적으로 연구에 참여할 의사가 있으며 면담 시 인지능력에 문제가 없는지 노인요양시설 내 복수의 종사자와 사회복지사와 함께 살폈다. 이와 더불어서, 연구참여자가 희망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 연구에 관해 설명하고, 자발적 참여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때에는 연구참여동의서를 천천히 같이 읽으며 연구와 연구자에 관해 소개하고 동의를 획득하였다(이민홍, 2009). 이 과정은 노인요양시설 거주 노인을 연구참여자로 선택해 수행한 기존 연구에서의 기준을 참고한 바로(장수정, 2011; 최영미, 이병숙, 2019), 여러 차례의 면담 참여시에 인지적 측면에서의 문제 발생 가능성이 없도록 하고 응답을 잘할 수 있는 이들을 선정하기 위함이었다. 그밖에, 본 면담에서는 연구참여자들의 구술에 최대한 제약을 가하지 않는 것이 생애사적 연구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하여(김영천, 한광웅, 2012), 대답을 강요하거나 끊지 않고 원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였다. 면담 장소는 시설 내 상담실과 프로그램실이었으며, 이동이 불편한 연구참여자는 생활실에서 만났다. 한편, 시설 종사자들과도 만나서 평소 일상생활이나 적응상황에 대해 듣거나 시설환경에 관하여 궁금한 점을 물어보며 자료를 풍부하게 보완했다. 모든 면담은 녹음한 후 비언어적 표현과 당시 분위기 등을 자세히 기록하기 위해 3일 이내에 녹취록으로 만들었다.

4) 자료 분석과 글쓰기 방법

연구참여자들의 이야기는 삶의 사건들이 전개되는 영역, 경험과 행동이 전환되는 계기나 상황, 변화에 적응하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중심 맥락 등을 주요 구분점으로 삼아 분석했다. 이는 Mandelbaum (1973)이 생애사적 접근을 위해 분석틀로 제시한 ‘삶의 영역(dimension)’, ‘전환점(turning)’, ‘적응(adaptation)’이라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차원의 개념을 활용했음을 뜻한다. 그 이유는, 이 방식이 수집한 자료에 대해 선형적 시간성을 단순히 구분만 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고, 언어로 서술하는 단편적 기억들을 하나의 플롯으로 긴밀하게 연결하여 개인의 총체적 생애를 드러내는 데에 적절하기 때문이다(Bruner, 2009; Cole & Knowles, 2001; Creswell, 1998). 즉, 노년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 과정에 걸쳐 지속적이고 주관적으로 구성되는 삶의 기억은 면담을 통해 당사자의 회고와 구술로써 재구성 및 의미화되는데(강선경, 김헌진, 2016; 김은정, 2008), 이 분석틀에 근거한다면 연구참여자가 살아온 과거와 현재를 ‘집’에 관한 장소성이라는 특정 주제를 토대로 응집하는 동시에 차원별로도 경험의 독특성을 드러내며 유기적으로 탐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테면, 본고에서 ‘삶의 영역’은 여성 노인들이 일상생활을 전개하도록 한 삶의 원동력과 사회적 맥락을 ‘집’을 중심으로 이해하기 위한 차원이며, ‘전환점’은 ‘집’을 중심으로 일상생활 및 관계가 전환되는 생애사적 구분점 혹은 변화를 초래한 주요 사건이나 지표를 제공한다(박미정, 2015). ‘적응’은 생의 궤적이 바뀌었거나 새로운 삶의 맥락에 전이되며 보이는 여성 노인들의 적응 양식을 알아보기에 적합하다.

한편, 글쓰기는 구술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인용해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즉, 연구참여자들이 경험한 바를 집단적 공통성에 기반해 서술하되, 특히 이를 Mandelbaum(1973)이 제안한 순서에 근거해서 ‘삶의 영역’, ‘전환점’, ‘적응’이라는 차원별로 나누어, 각각 어떠한 특징이 드러나는지 하위주제를 세부 기술하면서 ‘집’의 장소성을 풍부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단, ‘삶의 영역’, ‘전환점’, ‘적응’의 구성 내용에 대해 상위주제를 따로 제시하여, 연구참여자들의 생애에서 발견한 고유한 의미가 집약적으로 묘사되도록 했다.

5) 연구의 질 검증과 윤리적 고려

본고에서는 질적 연구에서의 엄격성(rigor) 확보를 위하여 Lincoln과 Guba(1985)의 질적 평가 기준을 활용해서 다음과 같은 노력을 기울였다. 먼저, 연구참여자들과 조건이 유사한 시설입소 여성 노인 2명을 섭외해 심층면담에서 활용할 질문 내용 개발 및 보완의 목적으로 1인당 2회기 총 2시간 정도 예비 조사를 실시했다. 다음으로, 연구참여자들과 라포가 형성된 상태에서 첫 번째 면담을 진행하고자 참여 관찰을 수행했다. 연구자는 1회기 시작 전 여러 번 각 시설에 방문하여 이들과 다과를 나누며 일상적 대화를 하거나 프로그램에 참여해 같이 노래를 부르는 등 친숙해지는 시간을 보냈다. 이를 통해 현재 연구참여자의 건강상태나 인지능력을 파악하는 동시에 생활세계 전반을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또한, 방문 당일 연구참여자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내부 혹은 외부에서 시설을 같이 둘러보며 이들의 현재 거주 공간에 익숙해지고자 했다. 이와 함께, 공동연구자 체제로 연구하여 상호검증 및 분석결과 비교를 통해 왜곡을 방지하고 편향성을 최소화하였다.

전 과정에 걸쳐 윤리적 고려도 하였다. 우선, 모든 연구참여자로부터 자발적 동의를 획득했으며, 동의서를 함께 작성하고 연구주제, 자료획득 및 분석방법, 수집한 자료의 보관방법 등에 관해 설명하며 여러 차례 이를 확인하였다. 이에 더해, 면담 내용은 비밀보장의 원칙에 의해 보호되며, 중단을 원하거나 참여를 철회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이를 알릴 권리가 있음을 고지했다. 또한, 심리적으로 불편감이 초래될 경우 도움을 요청할 방법을 안내했다. 연구자는 면담 참여에 따른 불편함을 최소화하고자 이들이 희망하는 시간과 장소에 맞추어 방문하였고,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황에서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하거나 면담 시간 외에도 시설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친밀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면담 종료 이후에도 기관 종사자나 사회복지사와 지속해서 접촉하여 건강상에 무리가 없는지 혹은 연구참여로 인한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등 연구참여자의 상태를 재점검하기도 했다. 면담 종료 후에는 모든 이들에 면담 참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사례비를 제공했다.


4. 연구결과

연구질문에 답하고자 Mandelbaum(1973)이 생애사 연구의 분석틀로 제안한 방법을 적용하여 탐구했다. 즉, ‘삶의 영역’, ‘전환점’, ‘적응’이라는 세 가지 차원의 측면에서 연구참여자들이 인식하고 경험한 ‘집’의 장소성 관련 공통 개념을 도출하여 구조화했다. 먼저, 연구참여자들과의 대화에서 발견한 유의미한 진술문을 토대로 연구주제와 연관된 총 44개 의미단위를 찾았고, 이것들을 14개 하위주제로 범주화하였다. 다시 이를 세 개의 차원에 바탕을 두어 재분류하면서 연구참여자들의 생애사 분석에서 드러난 언어를 참고해서 개념화하였다. 분석결과는 <표 2>에 정리하였다.

분석결과

이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삶의 영역’ 차원에 관한 범주들은 연구참여자들이 어떠한 삶의 원동력과 일상적 환경 아래서 ‘집’과 관련한 생을 전개해왔는지를 드러낸다. 여성 노인들은 “‘보살핌으로 엮은 보금자리’ 거쳐 ‘여생 기댈 새 터전’에 닿음”과 같이, 생애과정마다 요구되었던 발달과업을 달성하며 ‘집’을 중심으로 삶의 맥락을 만들어왔다. 둘째, ‘전환점’ 차원에 관련된 범주들은 생애에서 전환이나 변화가 나타난 계기 혹은 그것의 구분 지점을 밝혀낸 것이다. 즉, “‘집과의 이별’과 ‘집 안에서의 이별’로 인연이 분절됨”과 같이, 여성 노인들에게는 오랫동안 존재하며 애착을 부여하였던 ‘집’을 떠나거나 소중한 사람들과 작별하는 공간으로서의 ‘집’에 관한 특별한 사건들이 생애사적으로 큰 변곡점인 것을 발견했다. 셋째, ‘적응’ 차원의 범주들은 연구참여자들이 삶에 적응하면서 생을 추동해오는 전략과 양식을 보여준다. 이들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집에 대한 그리움’과 ‘집을 채운 보고픔’으로 살아낸 삶”의 모습으로 관련 경험을 지속했다. 이들에게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그리울 때마다 가보지 못해 먹먹한 노스탤지아였고, 때로는 사랑했던 이들을 떠올리며 고충과 번민을 버티는 장소였다.

1) 삶의 영역: ‘보살핌으로 엮은 보금자리’ 거쳐 ‘여생 기댈 새 터전’에 닿음

연구참여자들이 생애과정에서 경험한 ‘집’에 관한 장소성은 다섯 가지 ‘삶의 영역’을 필두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일손으로 살았던 친정집’, ‘고된 시집살이 버텼던 남편 집’, ‘뒷바라지로 채운 모성의 집’, ‘이웃 간 잔정이 흐른 젊은 날의 집’, ‘여생 기댄 공동체의 집’이라는 하위주제가 보여주듯, 생애 단계마다 ‘집’을 중심으로 다양한 ‘삶의 영역’에 머물렀다. 원가정 독립 이전까지는 딸에게 부여된 가사 노동에 충실하며 ‘집’의 일손으로 살았고, 결혼 이후에는 대부분 고향을 떠나 남편과 그의 식구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집’에 관한 많은 기억은 고된 시집살이를 버티는 며느리의 역할과 결부되었다. 반면, 결혼 후 ‘집’은 엄마 구실을 했던 날들과 함께 다른 축의 장소성을 드러냈다. 그곳은 연구참여자의 개별 생애마다 차이가 있었기에 시집 식구들과 같이 사는 곳이기도 혹은 분리된 환경이기도 했으나, 공통 되게는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며 모성의 임무에 순응했던 장소성으로서의 의미를 지녔다. 또한, 연구참여자들은 젊은 시절 ‘집’에서 경험한 생애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주변 사람들과 먹을 것을 나누고 소통하면서 즐거웠던 한때를 언급했다. 이렇듯 거주했던 곳 또는 그것이 위치한 지역사회 내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보람을 느끼거나 즐거웠던 기억은, 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주체로서 생동하면서 잔정이 넘치는 ‘집’이라는 공간에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연구참여자들은 현재 이전의 ‘집’과는 다른 곳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생존하고 있었고, 자력으로 일궈가는 ‘집’ 보다는 돌봄서비스 제공자의 도움을 받는 곳이라는 전혀 별개의 ‘삶의 영역’을 인식하였다. 결국, 이들의 생애 분석에 따른 ‘삶의 영역’은 “‘보살핌으로 엮은 보금자리’ 거쳐 ‘여생 기댈 새 터전’에 닿음”과 같은 의미로 압축되었다.

(1) 일손으로 살았던 친정집

연구참여자들의 첫 번째 ‘삶의 영역’은 딸로 살아가던 원 가정에서의 공간이었다. 이들은 결혼 전과 후를 구분하며, 부모와 함께 살던 곳을 ‘친정집’으로 명명했다. 그곳은 노동으로 가득한 곳이었고 욕구 해소보다 가족의 생존과 유지가 앞선 곳이었다. 이들은 ‘집’에 관한 자신만의 정체감을 확립하기 이전에 이미 여성에게 부여된 성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성인기 이전 ‘집’에 대한 여러 경험은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했던 고단함과 이어졌다. 장녀였던 이는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을 양육하거나 집안 살림을 도맡아 음식과 빨래 등을 일상적으로 담당했고, 일부는 논밭 허드렛일을 도우며 ‘집’에 머물렀다. 딸로 ‘집’에 머물렀던 시절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닌 집안 살림을 했던 경험과 결부되었다. 특별히 행복했거나 독특했던 사건보다, 일 잘한다는 칭찬 또는 음식 솜씨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소소한 일상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들은 원 가족과 살던 ‘집’에서 부모로부터 인정받았거나 자기계발을 했던 기억은 대체로 적었고, 집안의 일손을 보태는 딸로 머무르며 ‘집’의 문화에 맞춰 살았음을 주되게 구술했다.

초가집이었지, 나무도 했어요, 내가. 솔가지 따서 밑에다 넣고 갈퀴나무 그것을 가운데에다 넣고, 반드시 넣어서, 세상에…, 그렇게 살았어. 농사지을 데나 많간디? 쬐께지, 두어 마지기. (중략) 여름에는 그냥 밭매느라고, 그냥 밭떼기 조금 있는 거…. (C)
바쁘게 살았죠, 시골이라…. 길쌈하고 누에도 많이 키우고, 내가 베도 잘 짰어. 내가 클 때는, 일을 그렇게 잘한다고 (사람들이) 그랬어. 밭일 힘든 것을, 남들보다 내가 밭일을 잘했는데도, 우리 어머니가 바깥일 안 시키고, 큰 딸이고 그러니까 집안일만 시키고. (D)
(2) 고된 시집살이 버텼던 남편 집

결혼은 인생의 시기를 구분한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모든 연구참여자에게 결혼 이후 살던 시집이라는 곳은 두 번째로 중대한 ‘삶의 영역’이었다. 이들은 시집살이의 고된 기억을 떠올리며, 결혼 직후 ‘집’에서의 경험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결혼 전과 후에 공통되게 주로 ‘집’이라는 공간에서 생을 이어갔으나, 그에 대한 장소성의 인식은 시기별로 다르게 드러났다. 즉, 연구참여자들은 여성에게 대물림되는 전통적 성 역할을 계승하면서도, 딸로 살았던 원 가정을 떠나 남편 집에 거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음을 이야기했다. 시부모가 친절하게 대해주어도 내 부모와 같지 않았고, 남편과의 불화나 시댁 식구들의 하대로 서럽게 지낸 이도 있었다. 또한, 연구참여자들은 ‘결혼’이라는 단어보다 ‘남편 식구들과 살던 집’ 또는 ‘시집’이라는 표현으로 삶의 전환이 이루어진 때를 설명했고, ‘고향 집’ 또는 ‘결혼 전에 살던 집’과 같은 말이 아닌 ‘친정’이라는 지칭으로 오래된 과거의 거주 공간을 회상했다.

우리 시어머니는 아주 소문난 시어머니셨어. 시아버지가 집 나가고 없응게, 그런 식으로 저기하고(괴롭히고), 당신 막 입는 옷 같은 거, 그전에는 다듬이질해서 입었는데, 그 다듬이질해서 해놓은 것도 불에다가 확 이렇게 하시고, 그 집에서 그렇게 시집살이를 시키셨어. 그래서 내가 나중에는, 그래도 안 되게 생겨서, 어머니 내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중략) 집안에, 저기서 이렇게 꼬맸는데, 싹 다 뜯어버리고, 시어머니가, 니가 해준 거 안 입는다고, 그런 소리를 하고…. (A)
시집살이가 심했어. 시집 식구들, 시누, 다 다른 데서 안 살고, 맨날 같은 집에 살았어. 근데 시누가 게을러가지고 자기 덧신 한 짝도 못 신어, 못 꿰매 신고. 여름에는 모시옷 입으면 주름잡아서 다려주면 하루 입고 나면 후줄근해지고. 그럼 또 빨아서 해주고, 그래야 하는 줄만 알고, 철부지라 몰랐지. 시누가 아주 게을러갖고 자기 옷도 안 빨아 입고, 그래서 다 내가 도와줬지. (중략) 하필 우리 집 옆에다 방 얻어갖고, 시누 아들까지 집 옆에 산다니까, 김치 담가 줘야지, 이불 빨래 해줘야지, 옛날에는 그렇게 시집살이를 시켰어. (D)
(3) 뒷바라지로 채운 모성의 집

연구참여자들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던 ‘우리 집’에서 결혼 이후 전개한 삶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모성을 실천하던 ‘집’에서의 기억은 시집살이의 경험과 환경적으로 중첩되었으나, ‘집’에서 수행한 엄마의 역할은 그와 분리하여 이야기했다. 물리적으로 같은 곳이라도 며느리와 엄마 역할이 달라 복합적인 장소성을 인식했으며, 그중 모성 역할을 하던 ‘집’의 장소성은 또 다른 차원에서의 중대한 ‘삶의 영역’이었다. 특히 ‘엄마로 살던 곳’ 또는 ‘자식들을 책임져야 했던 곳’으로서의 모성과 관련된 ‘집’에 대한 장소성을 뚜렷이 언급했다. 혹자는 자신이 직접 꾸미고 다듬은 곳으로의 공간 애착을 말했으나, 대부분 결혼 이후 ‘집’의 장소성 인식은 엄마 역할과 관련되었다. 이전 시기 ‘삶의 영역’에서 주로 조부모나 부모, 혹은 형제자매들과 가족의 규율에 맞는 모습으로 집안일을 하며 지냈다면, 결혼 후 ‘집’에서는 남편에 맞추고 자식을 책임지며 먹고사느라 바빴다고 했다. 독립 후 이들에게 ‘집’은 돌봄의 행위가 시작되는 원천이자 모성의 역할을 유지해야 존재함의 의미를 보장받는 곳이었다. ‘집’은 아이를 키우고, 식구들 음식을 해먹이며, 분주히 지냈던 공간이었다.

지금같이 이런 기저귀가 없고, 면 기저귀야. 우리 엄니가 집에 무명베 그걸로 기저귀 길게 잘라서 보내줬어. 마르지도 않아, 그건. 두꺼워서 빨려면 너무 고생했어. 여름에는 마르지도 않은 걸 그냥 쓰고. 맨날 삶아야 하고 빨래 해줘야 하고, 그게 집에서 힘들더라고. (D)
(4) 이웃 간 잔정이 흐른 젊은 날의 집

젊은 시절 이웃과 나누어 먹을 음식을 준비했던 기억은 또 다른 차원에서 ‘집’에 관한 장소성을 밝혔다. 연구참여자들은 늙어버린 지금과 대조적으로 좀 더 젊었던 날을 회상하면서, 부모나 형제자매, 자식 간의 우애 외에도 먼 친척이나 비혈연 관계인 주변 사람들과 잔정을 주고받았던 ‘집’을 둘러싼 경험을 공통되게 이야기했다. 이 점은 결혼 전과 후의 시점과 관계없이 유사했다. ‘집’ 안에서의 경험은, 여성으로 살던 이들에게 음식을 장만하고 요리하는 행위는 모성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정이자 자존감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이는 연구참여자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주체적인 삶을 이끌어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동네 이웃과 교류하며 활력을 느낀다거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음식 장만과 나누기는 관계성 유지의 윤활유 역할을 했고, ‘집’은 그러한 일상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열의 있게 확보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집’은 가구를 분리하는 경계였지만, 이들이 젊은 시절 경험한 경계는 친밀하거나 왕래가 잦은 타인들에게만큼은 배타적이지 않은 곳이었다. 혹자는 ‘집’으로 동네 사람들이 평소에도 빈번히 찾아와 같이 먹을 것을 해 먹으며 지냈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러한 인식은 ‘집’ 안에서 대소사를 치르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련의 일들을 여성의 고유한 역할로 구획했던 관습의 흔적이기도 했으나, 먹거리 나눔과 소식 교류, 주변 사람들과의 친밀성 유지 등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기대했던 성 역할에 충실한 모습의 아내 또는 안사람으로 살았던 자부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부침개 같은 것 해서 먹고, 무우전 같은 거 부쳐 먹고, 거기서 먹고 놀고, 소주 한 잔씩 먹고 그랬지. 한 잔 먹으면 춤도 추고, 모여서 술 먹고, 동네 할머니들이랑 밥해서 대접하고. 사람들, 할머니들이랑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시고, 내가 밥도 해서 대접하고. (C)
우리 집에서 제사 지내고, 그때는 우리 집이 종갓집이니까, 다 모이고, 그때는 8촌까지 다 모여, 제사 지내면 친척이라고…. 그냥 곤란하게 살고 그러면서도 또 어떻게 찾아와, 먼 데서도. 홀애비된 위 종시아재 딸 둘 데려오고, 꼭 찾아오고, 제사라고 찾아오고, 설이라고 찾아오고. 그러더니 돌아가실 때는 그냥 헛소리하면서, ‘아이고 형수님, 오셨어요’ 하면서 나 찾는 헛소릴 하더래, 돌아가실 때…. (D)

한편, 연구참여자들은 ‘집’ 안에서의 여성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 대해 아쉬움도 표현했다. 요리하기나 명절 준비 등 ‘집’에서 일어났던 일상적인 행위, 그리고 그것을 이어가도록 했던 의미 있는 타자들의 긍정적 반응이 사라진 지금, 연구참여자들은 지난날 가사 노동의 힘겹던 기억이나 피로감마저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회고하였다.

그런 세상을 살다가 이렇게 된 게…. 미치겠어요. 그때는 힘들어도 좋았어요. 그때는 밤잠을 안 자고 (이집 저집 서로 도와주고) 댕겼응게. (중략) 새벽에 밥을, 쌀을 담궈서 해갖고, 인자 밥 안쳐주고, 가마솥에, 이렇게 새카만 검은 솥에 돼지고기, 그거 볶을 때 양념을 잘해갖고 볶으면, 인자 그렇게 (내가 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고. 여기 음식은 꽁댕이도 안 차, 하는 거 보면, 내가 우리 집에서 하던 생각하면 눈 꽁댕이도 안 차. (C)
(5) 여생 기댄 공동체의 집

연구참여자들에게 노인요양시설이라는 현재의 새 터전은 이전에 살던 ‘집’과는 다른 차원의 ‘삶의 영역’이었다. 시설은 ‘집’이지만 동시에 온전한 의미의 ‘집’은 아니었다. 살려면 이곳에 기대고 적응해야만 했다. 여럿이 공동생활을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겼다. ‘집’에서 사적이고 은밀하게 이루어지던 대부분의 행동은 시설이라는 공개된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한다든지 부자유스러운 몸으로 섭생을 이루려면, 타인과 삶의 거의 모든 사항을 공유해야 했다. 보여주기 싫은 몸의 변화나 노화 현상마저도 ‘집’이 아닌 ‘집과 같은’ 이 공간 안에서는 노출되거나 누군가의 관리 대상이 되었다.

반면, 시설은 딸이나 아들, 며느리가 해주지 못하는 돌봄서비스를 제공하여 기댈 수 있는 곳이었으며, 이 때문에 현재의 거주지는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지녔다. 여러 시설 종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공동생활을 하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이들은 현 상황이 ‘집’에 살던 이전과는 현격히 다르더라도 생존에 이롭다고 받아들였다. 비슷한 처지의 시설 노인들과 상호작용하거나 의지할 수 있어서 적적하지 않고, 자녀독립 이후의 적막함을 잊게 되었다고도 말했다. 예컨대, 연구참여자들은 ‘요양사나 사회복지사처럼 항상 시설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심이다(B)’라거나 ‘처지가 비슷한 노인들과 함께 사니 언제든 말벗이 있어서 다행이다(A)’라는 식으로 새 터전의 단점보다 장점을 먼저 설명했다. 즉, 이들의 이야기에는 가족을 대신하여 생존을 도와주는 이들에게 감사하려는 의도 또는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시설에 산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심정이 전면에 드러났다. 다만, 새로운 거주 공간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마음 이면에는 도움이 절실하고 수동적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노년기 삶에 대한 자괴감도 깔려있었다.

인자는 여기가 내 집보다 더 좋아. 내 집에는 나 혼자 있으니까. 그냥 먹지도 못하지, 아무것도 하기 싫지, 내 밥그릇 하나 설거지도 못 하고. (중략) 여기 노인네들, 불쌍하죠. 지 정신이 아니라 막 먹으려고만 하지, 싸지, 저번에도 싸가지고 난리 났어. 옆방에 아주 이불 다 버리지, 몸뚱이 다 버리지, 가만히 기저귀 차고 있으면 좋은데, 그걸 뜯어가지고 사방에 바르지. 그거 해결하느라고 선생이 힘들었어. 씻기고 빨고 얼마나 힘들어요. (D)
밖에 거실이 있는데, 거기도 워낙 아픈 사람은 못 나오고, 나와서 먹는 사람도 선생님이 떠먹이고, 혼자 못 먹응게. (중략) 몸뚱이를 맘대로 못한 게, 노인네들, 일어날 수 있는가? 선생이 일으켜줘야 일어나지. (중략) 여기서는 싸도 선생님들이 다 깨끗이 치워주고, 어떻게 잘하는가 몰라, 선생님들이. 내가 받기만 하고, 어서 죽어야 하는디 어떻게 이런 세상을 산다 싶어. (C)

2) 전환점: ‘집과의 이별’과 ‘집 안에서의 이별’로 인연이 분절됨

‘집’을 중심으로 한 연구참여자들의 생애는 인연을 맺고 그로부터 헤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연관되며 전환되었다. 이들의 구술에서 ‘고향과 부모 떠나 출가외인이 됨’, ‘집안에서 귀한 인연을 얻음’, ‘자꾸만 집에서의 이별이 쌓임’, ‘다 놔두고 나마저 집을 떠남’이라는 하위주제가 드러난 것처럼, 대부분은 ‘집’과 관련된 인연 맺기와 그것으로부터의 분절이 얽힌 생애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삶의 변화를 맞이했다. 이들이 ‘집’과 관련해 가장 큰 생의 전환을 이룬 것은 결혼이라는 사건으로, 모든 연구참여자는 부모를 떠나 시집으로 옮겨온 것이 물리적 환경의 변화이자 ‘집’에서 느끼는 정서가 이전과 달라진 이유였다고 인식했다. 식구들 도움으로 아이를 직접 출산하고 오랜 기간 양육하며 ‘집’에서 살았던 삶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고도 회상했다. 결혼 이후 생활환경 자체가 달라졌다면, 출산은 시집살이에 따른 고충이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시댁 어른들의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이었고, ‘집’을 직접 꾸미고 내 의지와 힘으로 살림할 수 있도록 변화를 촉발한 사건의 의미를 지녔다. 한편, 시부모나 남편과 사별하거나 자식을 먼저 잃은 슬픔, 자녀의 독립 등 소중한 이들과 헤어진 경험은 ‘집’에서의 생이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게 했다. 그러한 일들이 누적될수록 이들은 ‘집’을 허전하거나 쓰라린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편, 이들은 살던 ‘집’을 떠났던 사건 역시 커다란 생의 ‘전환점’으로 여겼다. 이처럼 이들의 생애 이야기에서 ‘전환점’은 “‘집과의 이별’과 ‘집 안에서의 이별’로 인연이 분절됨”으로 묘사되었다.

(1) 고향과 부모 떠나 출가외인이 됨

연구참여자들은 결혼으로 부모를 떠나 시집에 살게 되면서 ‘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동네에서 사는 경험도 했다. 대부분은 결혼을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으로 여겼고, 부모와 살던 집을 떠나 남편의 고향이나 일자리와 관련 있는 곳으로 이주한 경험을 특별하게 느꼈다. ‘여자로서 가장 의미 있는 기억은 시집간 것’이라고 한 연구참여자의 말은, 여성 노인의 삶이 이처럼 결혼이라는 분기점을 중심으로 나뉨을 보여준다. 결혼 이후부터 과거에 살았던 ‘집’은 낯선 곳처럼 멀어지게 되었고, 출가외인(出嫁外人)으로서 그곳에 사는 부모와 형제자매에 대한 그리움조차 며느리이자 안사람이라는 새로운 역할 뒤에 숨겨두어야 했다. 부모가 살던 ‘친정집’은 원해도 자유롭게 방문하기 힘든 곳이었고, 결혼한 여자는 부모와 남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원 가정의 식구들보다 남편의 가족들과 더 가까이 산다는 것은 그들이 하던 방식대로 지내야 함을 의미했다. 오랫동안 성장하여 친숙했던 고향 집은 더는 가깝다거나 애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결혼하고 한 일 년인가 지나서 인자 남편 큰 집 쪽으로 이사를 갔어, 거기 갔더니 남편네, 시집 식구들이 그 부근에 다 살더라고. (중략) 시집 식구들도 다 그 부근에 살고, 이 동네 저 동네 그렇게 살았는데, 시집 식구들쪽으로 갔더니, 사람들이 몇이 앉아서 날 보고, 말하자면 시집 식구들이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A)
(2) 집안에서 귀한 인연을 얻음

‘집’에서 아이를 출산했던 사실은 이들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집’은 아이를 직접 낳고 키우는 전 과정이 결부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연구참여자 대부분은 결혼 후 살던 ‘집’에서 자녀를 출산한 경험이 있었다. 이들은 남편의 가족들과 살던 그 ‘집’에서 인정받으려면 아들을 낳아야 했고, 그 시기는 빠를수록 유리했다고 인식하였다. 결혼한 여자가 아이를 출산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적 분위기 아래, 결혼 후 바로 자녀를 갖기 어려웠던 일부 연구참여자는, 엄마가 되지 못한 채 시부모와 공존하던 ‘집’은 자괴감과 책망이 두껍게 깔린 곳이었다고도 표현했다. 아들을 낳지 못해 ‘집’에서의 정신적 고통이 극심했음을 직설적으로 회고하기도 했다. 혹자는 시부모와 같은 ‘집’에 살면서 부딪힐 때마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핀잔을 듣거나 눈칫밥을 먹기도 했다. 다만, 결혼 이후 출가외인으로 남편이 살던 동네와 집에 이주한 후 시집 식구들과 융화되기 힘들다거나 ‘대를 잇지 못한다’라는 불안 속에 시집살이했어도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는 그러한 상황에 변화가 생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집에서 자식을 낳아 키운 것이 삶의 큰 의미였다고 생각했고, 특히 엄마였던 것에 자부심을 보였으며 가부장제의 유산을 이어갈 수 있었음에 안도했다.

아침부터 (몸이) 비틀어갖고, 옆집 할머니 아줌마 데려다가 새벽에 낳았어. 하루 점드락(종일) 밤새드락 비틀어갖고, 그래갖고 낳은 것이 딸이여. 그놈 빠쳐(낳아) 놓고 내가 눈을 딱 감고 봉사처럼 이렇게 앉아있었어. 애기만 빠쳐놓고,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미역국 주더라고. 미역국을 끓여갖고 밥도 안 갖고 오고, 미역국…. 그때는 꽁보리밥이잖여. 미역국을 끓여갖고 떠 준 게, 서너 번 떠먹인 게, 눈이 떠졌어. 내가 미역국 먹고 산 생각하면 징그라…. (중략) 욕도 하고 그랬어요. 시아버님이 고약했어요. 성질이. 자식 못 낳는다고…. (C)
자연분만했지. 다 집에서 낳았어. 아이고, 힘들게 낳았어. 늦게…. 애가 안 생겨서. (중략) 아들 낳을 때가 제일 재밌었어. 24살 때 겨울에 낳았으니까. 그 집에서 그래도 내가 아들을 낳았어. (A)
(3) 자꾸만 집에서의 이별이 쌓임

한 ‘집’에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소중한 이를 어떠한 연유에서든 떠나보냈던 경험은 같은 공간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가족과 헤어지거나 떨어져 살아야 하는 일들이 누적되면서, 연구참여자들은 가족의 생애 과업을 보살피고 뒷바라지하며 유지해온 ‘집’에서의 평온이 점차 사라졌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집’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장소성을 인식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은 헤어짐으로 인한 적적함이자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이도록 한 일대기적 사건이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에, 혹은 나이든 시부모나 급작스럽게 자신에 앞서 세상을 뜬 남편 때문에 ‘집’은 이별의 공간으로 변질했다. 가족과의 이별 자체가 급작스러운 생의 전환을 초래한 적도 있었지만, 자식의 분가나 배우자와의 사별 등 애착이 단절되고 상처가 집적되면서 ‘집’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인식되었음을 확인했다.

영감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집에서 뭣을 안 했어. 한동안 애들만 키웠어. 애들 여의고 키우고, 또 애들이 직장 들어가서 벌고, 그 뒤에는 난 아무것도 안 하고, 헛세상 산 것 같아. (D)

연구참여자들은 특히 시부모나 남편 등과 사별하게 되어 ‘집’에 대한 장소성에서도 커다란 전환을 경험했음을 회고했다. 자녀가 장성하여 독립했을 때는 주말이나 명절에 왕래하며 허전함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죽음으로 이생에서는 가족과 다시 못 만나게 된 경험은 ‘집’에서 겪은 가장 한스럽고 아픈 것이었다. 식구들이 북적북적해서 공존으로 꽉 찼던 ‘집’은 외로움과 벌이는 사투의 공간처럼 변했고, 이별에 따른 두려움을 처절하게도 뇌리에 새겨넣었던 고단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떤 이는 ‘아픈 사람 살려보려고 밤낮으로 수발들었지만, 느닷없이 하늘나라로 떠난 식구들이 떠올라 예전처럼 그 집에 산다는 것이 좋지만은 않았다(A)’라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비록 가족의 죽음으로 이별한 경험이 오래전의 일이더라도, 과거의 ‘집’을 떠올리면 죽어가던 식구의 병시중을 들면서 힘들었던 감정이 가까이에서 느껴진다고 이야기했다.

시아버지도 집에서 내가 모시다 돌아가셨는데, 보고잡어 죽겄어. 살아계셨으면 괜찮을 것인데…. 남편도 (집에 있다) 폐병으로 돌아가시고, 이 양반도 돌아가시고…. (중략) 다 같이 살았었어. 우리 집에서 살았어. 돌아가셨는데 어떡해, 이제…. 보고 싶어…. (B)
(4) 다 놔두고 나마저 집을 떠남

연구참여자들은 자신 역시 살던 집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하루라도 몸이 성할 때 자식과 함께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괜찮은 요양원이 있는지 살펴보았고, 가족들 몰래 자발적으로 떠나 살 곳과 비용을 알아보기도 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여생을 마무리하겠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집’에 더 오래 머물고도 싶었다. 어떤 이는 건강하지 못한 육체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정든 ‘집’을 떠나야 한다는 내키지 않은 마음을 숨겼고, ‘고생스러운 인생 오래 살 필요가 없다(B)’라고 자식들 앞에 의연한 척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은 생존의 욕구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마다 싫어도 ‘집’을 떠나야만 한다는 당위감이 들었다고 했다. 날이 갈수록 가족 없이 또는 아픈 몸으로 휑한 집에 외로이 버티기 어려워졌다. 결국, 이들은 소유도 인연도 살던 집에 두고 떠나오게 되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회고하였다.

내가 앞으로는 건강하게 산다는 보장 못 한 게, 나 요양원으로 갈라고 마음먹고 있응게, 엄마 맘 꺽지 말고, 엄마 하는 대로 가만있으라고, 내가 애들한테, 미리 선언하고 그러고 왔어. (중략) 내가 미리 알아서, 나 느그 힘들게 안 하고 싶은 게, 나 요양원으로 갈라고 마음 먹었응게, 엄마 말리지 말라고, 내가 선언해놓고. (중략) 우리 며느리가, 자기가 집 비우고 나갔다 오면, 내가 냄비도 태워 놓고 그런다고, 허리 아파서 제대로 못 걷고 그런 게, 앉아있지도 못하고 그런다고…. (A)
전혀 뭣도 못 해 먹고 죽게 생겼으니까, 아이고, 갈란다. 그러고 와갖고, 여리 온 거여. (남편이랑) 둘이 다 살았어도 그랬을텐디(괜찮았을텐데), 그 집에 나 혼자 있으니까, 여리 온 거여. (D)

3) 적응: ‘집에 대한 그리움’과 ‘집을 채운 보고픔’으로 살아낸 삶

연구참여자들은 끊임없이 ‘삶의 영역’이 구획되고, 다양한 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면서도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집’을 중심으로 한 일생을 꾸려왔다. ‘집’을 중심으로 한 이들의 생애 이야기에서 ‘적응’ 관련 차원의 의미는 ‘갈 수 없는 예전 집은 마음에만 새김’, ‘당연했던 집에서의 희생’, ‘집안 곳곳 자식들 생각을 채움’, ‘좁은 방 작은 침상의 위로’, ‘이 집을 이생의 종착지라 여김’과 같은 하위주제를 통해 밝혀졌다. 연구참여자들은 결혼, 이사, 시설입소 등에 따른 물리적인 거주환경 변화에 그리움으로 응대했다. 만나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부모, 사별하였거나 이사하여 그리운 옛 인연들, 혹은 시설에 살면서 예전 집에 갈 수 없다는 착잡함에 우울해질 때면 그저 마음에 새긴 추억들을 되새기며 애절함을 달랬다. 기억 속에서 ‘집’은 마냥 평안하고 즐거운 곳만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마땅히 성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그러한 그리움과 지난날에 대한 회한을 감당했다. 또한, ‘집’을 중심으로 전개해온 생 안 곳곳에 자식에 관한 생각을 채우며 지낸 것으로도 드러났다. 이는 시설입소 전에는 자식에 대한 애착으로 거친 인생을 견뎠던 ‘집’에서의 기억과 관련 있었고, 현재는 자식의 방문을 간절하게 기다리며 삶의 마지막 순간의 당도를 앞둔 ‘시설’에서의 적응과 관계 깊었다. 이에 더해, 연구참여자들은 시설을 ‘집’으로 여기며 살기 위한 ‘적응’적 요소로써, 좁은 침대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거나 이생을 정리하는 종착지로서 시설에 애착을 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1) 갈 수 없는 예전 집은 마음에만 새김

연구참여자들은 이전에 살았던 곳을 반복해서 회상했다. 이들의 생애를 관통하여 ‘집’의 이미지는 과거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는 행복한 안식처이자 그리움의 공간으로 묘사되었다. 결혼 직후 출가외인이 되어 마음대로 가보지 못하는 고향 집을 그리워한 것처럼, 시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현재 이들에게 ‘집’은 방문이 가능하거나 시설 외에 존재하는 실제적 공간이라기보다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관념에 가까웠다. 이은희(2019)가 보고했듯 이들에게 역시 노인요양시설은 일면 ‘집과 같은’ 곳이었으나, ‘집’과 완전히 또는 아주 같을 수는 없었다. 시설 생활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더라도, ‘우리 집’이나 평생에 걸쳐 믿어온 ‘집’에 관한 개념은 노인요양시설의 그것과는 구별되었다. 아직도 대부분은 이전처럼 ‘집’에 관해 이상적이며 보편적인 생각을 유지했다. 신체적으로는 살던 공간을 떠나 시설에 자리하며 ‘적응’하려고 하지만, 근원에서부터 피어나는 향수(鄕愁)로 ‘우리 집’을 그려보며 그리움을 참아냈다. 현재 머무는 시설에 관한 장소성을 ‘네모반듯한 공간’ 또는 ‘현관과 거실이 있어서 집이랑 구조적으로 닮은 곳’ 등 시설의 외면적 측면과 결부해 언급하는 것과 달리, ‘집’이라고 생각하는 곳의 이미지는 주로 내면적 특성이나 주관적 경험처럼 의미 있던 이들과의 추억과 더불어 묘사했다는 점도 그곳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버티려는 ‘적응’에 관한 전략의 일부를 보여준다.

또한, 연구참여자들에게는 ‘집’이 이젠 살아서 가지 못할 곳이기에 그 그리움이 더욱 극에 달하는 듯하였다. 살던 곳과 물리적 거리감이 크지 않은 지역사회 내 시설에 거주하고 있더라도, 원할 때마다 불편하고 부자유스러운 몸을 이끌어서 예전 ‘집’으로 갈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자식이나 며느리처럼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예전과 같이 ‘집’에 살기에는 부담스러운 처지가 되어서,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도 시설에 삶을 맞추려면 그러한 바람은 숨겨두어야 했다. 애착을 느꼈던 ‘집’ 안의 물건이나 고향 집 마당의 꽃과 나무가 눈앞에 보이는 듯 아련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먹먹하게 떠오를 때, 가슴 깊은 곳의 속상한 심정을 느끼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다고 했다. 이들에게 삶의 터전이 바뀔 때마다 ‘집’은 그리움으로만 닿을 수 있는 이상향과 같았다.

집도 못 가고, 인자 다시 집에 가면 대변이랑 내가 싸야 하니까, 자식이 그거 다 치워야 하니까 못가. 애들이 안 좋아혀. 대변 같은 거 싸면…. (중략) 내가 가고 싶으다고 해도, 집에 뭣 하러 가? 속만 상하지, 속만 상해. 내가 지은 집인디…. (중략) 국화꽃 집에다 심은 것도 있는데, 함박꽃 이런 거, 꽃송이가 이렇게, 우리 싸리막에다 개나리 심어갖고, 이만하게 둥그렇게 꽃 피면 그렇게 예뻤어요, 싸리막에다…. 다 소용없어 인자. 소용없지…. 인자, 내 몸이 이렇게 아픈디. 집이 뭔 소용이여…. (C)
(2) 당연했던 집에서의 희생

연구참여자들은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 인생이 고단했다거나 피치 못하니 인내하고 살았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집’에서 살아낸 여자로서의 삶을 당연하게 여겼다. 대부분은 여자가 집안일 하는 것이 의심할 여지 없는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건강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던 시기에 ‘집’에서 보낸 일상의 시간에는 가족 돌봄이나 집안일과 같은 보살핌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결혼하기 전에는 친정집에서 부모를 도와 일손을 거들며 지냈고, 결혼 후에는 낯선 남편 집으로 이동해 고된 시집살이를 버텼다. 내 집이었지만 여유를 즐길 새도 없이 자식들 뒷바라지로 바쁘게 세월을 보내면서도, 이들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딸, 안사람, 며느리, 엄마라는 성 역할에 충실한 것은 ‘집’을 중심으로 생의 깊은 번민과 다양한 고충을 견디게 한 오래되고 익숙한 ‘적응’의 기재이기도 했다. 다만, 이들은 여자로 태어나 좋지 않았다고 하거나 자식을 키우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낀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기뻤던 적이 거의 없었다고 표현하며, 성별 이데올로기에서 요구한 바를 따른 것이 자발적 선택보다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고 인식했다.

시집가서 좋은 시절, 좋았던 거는 없었어요. 그냥 농사짓고, 뙤약볕에서 밭매고, 그런 것만 했지. 시어른 모시고…. 여자로 태어나서 뭣이 좋아, 집에서도 좋게 살았어야 좋지. 세상도 험악하게 살았어. 뭣이 좋아? (C)
(3) 집안 곳곳 자식들 생각을 채움

‘삶의 영역’ 곳곳에서 위기를 만났을 때, 연구참여자들을 버티게 했던 힘은 ‘집’ 안에서의 자녀 양육이라는 보호자의 역할과 관련되었다. 또한, 그들을 그리워하는 감정 역시 ‘집’에서의 상념에서 가장 주된 부분이었다. 이들은 오래전 며느리로서 고된 시집살이를 하면서는 자식만 바라보며 버텼고, 지금은 익숙했던 ‘집’을 떠나 시설에 살면서 ‘적응’하거나 버티기 위해 자식들 보고 싶은 마음을 이어갔다. 특히 결혼 이후 ‘아이들 키우고 하느라 정신없어서 힘든 것도 그냥 넘기며 살았다’라는 한 연구참여자의 경험은 편치 않았던 돌봄 노동의 고단함을 자식에 대한 애착으로 이겨냈음을 보여준다. ‘집’에서 살던 때처럼 식구들과 함께 밥 먹고 부대끼던 시절이 행복했었다는 또 다른 이의 회고에서는 방안 가득 차곤 했던 적적함을 가족 생각과 함께 달래보려는 심정이 드러났다. 대부분은 지난날 ‘집’에서 거칠고 고단한 삶을 살아왔으나, 돌이켜보면 ‘집’은 자식들과의 행복한 순간들로 소중한 곳이었다고 기억했다.

집은 아름다운 곳이지. 좋은 곳에서 살았응게. 우리 막둥이도 있고, 아들도 있고. (애들 어렸을 때가) 좋았지…. 집에 가 살고 싶어, 행복하게. 다른 곳은 가고 싶은데도 없어. 우리 집에 가고 싶어. 그때가 좋았지. (B)

현재도 이들에게 자식이라는 존재는, ‘집’이 아닌 곳에 늙은 몸을 의지하면서 이곳을 ‘집’처럼 여기며 살아야 하는 중에 그 답답함을 참도록 하는 창과 같았다. 대부분이 움직이거나 밖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누구라도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특히 가족의 방문을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고 있었다. 때로는 바쁜 자식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힘들고, 같은 ‘집’에서 살았던 추억에만 기대는 스스로가 지치고 버거워서, ‘나는 젊었을 때 좋은 것 다 경험해봐서 혼자 여기서 지내도 괜찮다’ 혹은 ‘늙은이라 바라는 것이 없다’라고 체념 또는 초월한 듯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반대로 자식들이 지금의 거주 공간에 방문해주는 것이 유일하게 버틸 힘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리라 짐작하면서도, 간절한 그리움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듯 속내를 드러냈다.

여기에 자주 먹을 거 사갖고 와요. 자주 와요. 효자다고 혀, 여기서. 일주일에 한 번 그렇게도 오고, 닷새 만에도 오고, 어떨 때는 이틀 만에도 오고. (중략) 여기서 내가 뭣 혀?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데. 아침 8시 반에 밥 먹어요. 여기서는, 그냥 놀지, 누웠지, 누워있어요. 하주점드락(하루종일) 누워있지 뭐. (중략) 걔가 효자라고 소문났어, 여기서도. 근데 안 온 지가 솔찬히 돼. 바쁜가 봐…. (C)
보고 싶어. 아들이 제일 보고 싶어. 며느리도 보고 싶어. 손녀도 보고 싶다. 막내도 보고 싶다. (중략) 애들 여기 오면 같이 놀고 싶어. 여기 좋은 친구들은 별로 없어. 재미 없어. 긍게 사는 것이 재미가 없는가 어쩐가 모르겠어. 아들이 보고 싶어. 갈 데가 없응게. (B)
(4) 좁은 방 작은 침상의 위로

연구참여자들은 좁아도 마음이 편한 방 안, 그리고 몸을 뉠 수 있는 작은 침대를 가장 안락하게 여겼다. 침대는 낡고 병든 몸을 누일 휴식처였으며, 추억을 곱씹고 회한을 토닥이는 위로의 장소였다. 대부분은 침대에서 식사한 후 비좁은 방 안에서 상념에 잠겼다가 잠이 들었다. 마치 “인간 대부분은 침대에서 태어나 침대에서 죽는다(김재철, 2009)”라는 한 철학자의 주장처럼, 이들도 일상의 공간 중에서 몸을 일으켰다 누일 수 있는 좁은 공간에 의지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곳은 집만큼 편하지 않다고 했다. 다수가 공동으로 사는 노인요양시설의 건축 구조상 한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의 너비는 제한적인데(이민아, 2009), 이들에게도 가용 사적 영역은 넓지 않았다. 입소자 1인에게 허용된 물리적 공간마저도 다른 노인과 나누며 지냈고, 생리현상조차 감추기 어려운 적이 많았다. 오직 방안에 가만히 있을 때, 또는 혼자 침대에 누웠을 때만이 오롯이 편안했다. 과거 거칠던 인생의 고통을 피해 ‘집’ 안 방구석에 피곤한 몸을 뉘었듯, 이제는 시설 좁은 방 안 개인 침대에 누워서 작은 위로를 받았다.

올라와서 이제 연속극 보고 그러다 보면 여기서 있는 시간이 많지. (중략) 제일 행복한 곳은 여기지. 자식들 만날 그때는 행복하지. 그렇지만 나 혼자 있고 저기한 공간은 여기지. (A)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더 편하지. 여기 침대가 편하지. 여기서 자는 데가 제일 편해. 쉴 곳은 여기뿐이잖아요. (B)
(5) 이 집을 이생의 종착지라 여김

연구참여자들은 지금 머무는 곳에서 여생이 저문다고 인식했다. 시설을 ‘집’이라고 여기며, 이곳에서 세상을 하직하게 되리라 예견했다. 오래전 가족과 살던 ‘집’과 현 거주 공간을 단순하게 비교한다면 두 장소는 분명 다른 성격을 지녔으나, 생의 마지막으로 머무는 이곳 생활에 자신을 맞춰야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유사하게 이야기했다. 이생의 마지막 종착지에서 같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정을 붙이려 노력한다거나 자주 마주치는 시설 종사자와 한 마디라도 더 나누며 친밀함을 느끼고자 했다. 달리 돌아갈 곳도 거주지를 바꿀 기운도 없다면서, 현재 거주하는 시설을 최대한 ‘집’처럼 느끼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전처럼 이곳을 완전히 ‘집’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생의 마지막 거주지에 대한 이들의 애착은 무한히 확대되지 않았고, 삶의 끝을 향하였으며 어느 공간에 머물더라도 죽을 날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예컨대, 연구참여자들은 이미 마지막으로 살았던 예전 ‘집’을 떠나기로 작심했던 시기에 아끼고 마음에 두었던 대부분과 한 차례 심하게 이별했음에도, 여기에 있으면서 자신에게 허용된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껴 더더욱 조급한 마음으로 세상과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즉, 일반적으로 ‘집’이란 내 사람과의 공존이나 물건의 향유, 혹은 나다움이 적재된 곳으로서의 장소성을 지니지만, 이들에게 현재 거주하는 노인요양시설은 그러한 ‘집’ 본연의 의미보다는 인생 전체를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머무는 종착지와 같았다.

특히 분석결과 살던 ‘집’을 떠나 삶의 끝자락에서 시설에 ‘적응’하고 있는 연구참여자들에게, ‘집’에 대한 장소성은 관념적 차원과 실제 현실이라는 양측에서 입체적으로 그려지며 드러났다. 다시는 가지 못할 그리움의 대상으로서의 ‘집’에 대한 관념이 남은 삶의 전 영역에 근원적으로 드리워져 있다면, 새로운 거주 공간으로서 ‘집과 같은’ 시설은 내키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지내야 하는 곳이었다. 연구참여자들이 담담하면서도 사무치듯 표현한 과거의 ‘집’에 대한 먹먹함은, 그와는 정반대로 ‘자식들 앞에 생리현상도 가리지 못할 정도로 늙고 볼품없는 모양새로 ‘집’에서 죽어가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라는 말로 묘사되었다. 혹자는 끝까지 시설이 아닌 ‘집’에서 살면서 자식들 신세 지다가 죽어간 타인의 사례를 들며, 자신은 지금 ‘집’ 떠나 공동생활을 하고 있으니 혼자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러한 심정은 두려움과 씁쓸함을 숨겨둔 반어적 표현인 것으로도 해석된다. 연구참여자들은 시설에 대해 ‘여기는 죽을 때까지 마지막으로 잠깐 머무는 곳’이라고 여기며, 소유도 인연도 정든 ‘집’에 두고 떠나온 채로 남은 생의 숨을 잇고 있었다.

여기서 너무나 아파서, 내가 그냥, 내 생각에 얼마 못 지나고 갈 것 같아. 여기서 잠깐 살다가, 얼마 안 있다가 하늘나라 갈 것 같아. (A)
여기서는 어서 죽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만 들어요. 자식 있는 거 고생시킨 게, 여기서 죽고 싶어. 살 마음은 없어. 그 전 같이 집에다 갖다 놓으면, 방 떼기 썩어들어가드락 오줌 싸고 똥 싸고 그럴 텐데, 뭐. (중략) 지금은 세상도 좋죠. 시부모들 다 이런 데다 맡겨버리고, 돈만 있으면 좋아졌지. 날 좋을 때, 저녁밥 잘 먹고, 그냥 눈 감고 가면 좋겠어. 그게 원이여. 내 생각에, 여기서 인자 자식 집에도 못 가고, 내 집도 못 가고, 여기서 그럭저럭 있다가, 숨지면 화장터로 가지, 뭐. (C)

5. 결 론

장소는 주관적 개념으로서 인간에게 특별한 애착의 대상이 되거나 인생의 중요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체가 되기도 한다(권선영, 2018). 그중 노년기까지 우리의 생애에 있어 거주지로서의 ‘집’이 상징하는 함의는 더욱 크다. 그것은 ‘집’이 인간의 실존적 인식을 비롯해 삶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개념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본 연구에서는 여성 노인이 경험한 ‘집’에 관한 장소성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연구참여자들의 자전적 내러티브에 기반해 연구주제를 논하였다. 특히 현재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이들 중에서 연구질문에 풍부하게 응답할 수 있는 여성 노인들을 엄선하여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생활세계에 관해 경청하였다. 연구자가 수차례 연구참여자들을 직접 만나 라포에 기반해 심층면담하는 방식으로 자료수집을 한 뒤, 이를 Mandelbaum(1973)이 생애사 연구에서 제시한 ‘삶의 영역’, ‘전환점’, ‘적응’의 분석틀에 적용해 분석하였다. 연구결과를 간단히 정리하고, 그에 기반해서 논의점을 제언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연구결과의 요약이다. 첫째, 연구참여자들이 ‘집’을 중심으로 살아온 ‘삶의 영역’은 “‘보살핌으로 엮은 보금자리’ 거쳐 ‘여생 기댈 새 터전’에 닿음”과 같았다. 이러한 ‘삶의 영역’에 관한 구술은, ‘집’이라는 곳 자체는 시기마다 물리적으로 구별되는 반면 기억 속에서는 ‘집’을 통칭하는 상징체로 장소성이 드러남을 보여준다. 이에 더하여, 그 상징체는 시설입소 전과 후로 크게 나뉘고 있음을 함축하였다. 즉, 입소 전 이들은 여성이면서 동시에 같은 세대로서 가족 돌봄을 책임지며 ‘집’ 안에서 주되게 생활하였고, ‘집’에서의 역할에 충실했음을 유사하게 보고했다. 한편, 현재 연구참여자들에게 시설은 남은 인생을 ‘집’과 같이 기댈 곳이라고 받아들였는데, 이렇듯 새 터전에 정착해서는 ‘집’에 관해 과거와는 다른 장소성 인식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서, 연구참여자들은 지금 머무는 거주 공간인 시설을 ‘집’처럼 의지하고 편안히 여기려 하나, 공동생활을 하기 때문에 ‘집’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고 인식했다.

둘째, 여성 노인들은 “‘집과의 이별’과 ‘집 안에서의 이별’로 인연이 분절됨”처럼 삶의 ‘전환점’을 이야기했다. 그러한 ‘전환점’ 인식은 ‘집’의 장소성이 이별과 상실의 경험과 맞물려서 변화하거나 전환되어왔음을 드러낸다. 즉, ‘집’에서 경험하고 구성되었던 이들의 전 생애는 인연 혹은 소유와의 이별로 균열했다. 가족을 이루고 그 안에서의 애정을 중시했던 삶은, 그들과 떨어져 살게 되거나 부득이 작별하게 된 일련의 사건들로 분절되었다. ‘집’은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감을 공고하게 만드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지녔지만 헤어짐으로 인한 아픔을 느끼게도 했던 곳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셋째, “‘집에 대한 그리움’과 ‘집을 채운 보고픔’으로 살아낸 삶”이 보여주듯, 현재 노인요양시설에 머무는 여성 노인들은 인생 전반에 걸쳐 ‘집’을 그리워하고 ‘집’에 관한 그리움을 채우는 식의 ‘적응’으로 실존하였다. 이 ‘적응’ 차원에 대한 이들의 회고는, 연구참여자들에게 ‘집’이란 실제로 방문하거나 삶을 전개할 수 있는 현실의 구체적 장소를 의미한다기보다 인지 속에만 존재하는 추상적 개념임을 확인하게 한다. 예컨대, 이들은 결혼으로 부모와 떨어져 지내게 된 후에는 원 가족과 모여 살았던 동네나 고향 집을 항상 그리워했으며, 자녀 분가 이후에는 과거 ‘집’을 중심으로 좋은 시절을 떠올렸다. 시설에서는 ‘집’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향수에 젖었다. 결국, 연구참여자들은 ‘집’과 그 안에서 맺었던 인연들에 관한 기억과 더불어서 빈둥지증후군과 같이 적막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혹은 결혼과 자녀독립, 사별 등에 따른 관계 변화로 상실감을 느끼는 시기 등을 버티며 ‘적응’하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음으로 연구결과에 기반해 논의하겠다. 첫째, 노인요양시설 여성 노인들의 복지와 건강 증진을 위해 ‘집’의 장소성의 의미와 젠더 감수성을 결합한 개입 방안에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 본 연구결과는 여성 노인들이 전통적 성별 분업이라는 관습과 의무를 다하는 삶의 궤적을 보인다는 발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 고유의 ‘집’에 관한 장소성 경험과 각종 거주 공간에서의 여성 노인들의 인생 영위에 관한 함의까지도 더욱 분명히 밝혀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근거하여 해당 인구집단에 대해 거주지와 성별 등 생을 구성해온 복합적 요인들을 고려해서 지원의 내실을 다져야 함이 자명하다. 또한, 여성 노인세대는 ‘집’에 관한 애착이 크고 그에 특별한 의미를 두려는 습성을 보이기도 하므로, 서비스 개발과 제공의 전 과정에서 이 여성 집단에 있어 ‘집’이 갖는 비중과 상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즉, 현재 거주하는 시설을 ‘집’처럼 편안하고 안정되게 느끼도록 하는 동시에, 그것의 장소성에 내재한 젠더적 특성을 참작하여 여러 거주지에서 이어온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생을 건강히 이어가게 지원할 방안 모색이 뒤따라야 한다.

실제로 본 연구에서는 그러한 논의에 참고할만한 지점들이 밝혀졌다. 예컨대, 여성 노인들은 ‘집’을 삶과 자기 존재의 중심처럼 인식하며, ‘집’에서 인생의 소명을 다하여 살아왔기에 그곳을 떠난 후로는 줄곧 스스로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낀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집’이라는 장소로부터의 이별은 삶의 격변이자 전환점이었고, 때로는 ‘집’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을 수용해야만 하는 낯선 공간이자 적응을 종용하는 요체(要諦)와 같았다. 자연히 ‘집’을 떠나 시설로 이주한 이후에는 애착 단절, 취향의 철회, 체념의 일상화 등 극단적인 변화나 부정적 심리정서가 뒤따랐다. 물론 시설에서의 또 다른 삶에 긍정적으로 적응하는 여성 노인도 있겠으나, ‘집’을 그리워하거나 공허감을 느끼면서 치유되지 못한 상처와 위로받기 힘든 충격 속에서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발견점은 ‘집’의 장소성과 여성 노인세대가 공유하는 삶의 맥락이 교차함을 드러내며, 그 자체만으로도 ‘집’에 대한 여성 노인의 중요성 부여를 보여준다. 즉, ‘집’의 장소성 인식은 이들의 삶을 추동해온 중추이자 정체성, 그리고 가정 및 사회에서의 역할 수행과도 복합적으로 연관된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모두 노인요양시설 여성 노인을 위한 효과적 개입의 지점을 함축하는 근거로서, ‘집’의 장소성과 젠더 맥락을 같이 고려해 지원해야 할 당위성을 시사한다.

둘째,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여성 노인들이 ‘집’을 중심으로 대인관계 측면에서 여러 욕구를 호소한다는 점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거주 공간에서 친밀한 사람들과 안정적으로 살아가도록 지원할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본 여성 노인들은 전반적 생애에서 ‘집’과 ‘관계’가 혼연일체된 공간적 유대감을 일상생활의 중요 요소로 간주했다. ‘집’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주요 토대였고, 삶의 만족은 ‘집’에서의 관계가 어떠한가와 연관되었다. ‘집’을 중심으로 구축되어온 생애는 가족과의 분리나 이별 등의 사건으로 극적인 분절을 드러냈으며, 그 때문에 남편이나 자식, 친척이나 친구 등 친밀한 이들과 떨어져 시설에 살게 된 처지를 외상처럼 인식했다. 관계 변화가 발생하면 같은 공간은 전혀 다른 곳이 되었다. 단, ‘집’의 장소성을 부정적이고 고된 일상처럼 묘사하면서도, 동일한 공간에 대해 역할을 인정받으며 주체적 실존을 했다고 긍정적 의미 부여를 하는 양면성도 보였다.

시설이 ‘집’이 된 상황에서 본 연구참여자들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식의 관계상의 외연을 확장하지는 않더라도,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길 희망했다. 기관 종사자나 주위 노인과 관계가 좋으면 새로운 ‘집’이기도 한 시설에 더욱 잘 적응했다. 이 점은 이들의 인생 전반을 ‘집’과 관련된 관계성에 결부해 이해하면서 맞춤형 지원책을 고안할 필요성을 내포한다. 특히 ‘집’이라는 물리적 환경 자체에 애착을 보이고 소유의 대상으로서 장소적 의미를 중시하는 서구 노인과 다르게, 우리 사회에서는 친구처럼 여생을 친밀하게 함께 보낼 사람이 있을 때 삶의 만족이 증가한다는 백옥미(2016)의 연구결과, 그리고 시설에 거주하는 여성 노인들이 관계적 안녕을 중시한다는 강정희(2013)의 지적과도 결부하여 생각해보아야 한다. 본 연구참여자들의 경우 개인적 성취나 자아실현의 욕구보다 관계적 안정과 가족과의 애착 등이 더욱 두드러지게 보인 이유는, 이들의 생애를 구성하는 중요 환경으로서 ‘집’이 갖는 장소성에 의미 있는 타자와의 관계성이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다만 시설에서 맺는 대인관계에 불만족하거나 공허한 심정을 토로한 예도 일부 확인하여, 다른 시설 노인이나 종사자들과의 관계 만족을 향상하도록 개입 환경 조성 및 프로그램 개선이 시급하다고 사료된다. 예컨대, 가족 방문프로그램 활성화나 가족과 함께하는 시설 내 프로그램 확대 제공을 비롯해 입소 노인들 간의 친밀성 재고나 정서적 유대감 향상을 위한 개입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고심할 필요가 있으리라 판단된다.

셋째, 본 여성 노인들의 구술을 토대로 삶을 마무리하는 노년기 거주 공간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범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더 있어야 한다. 이 점은 지역사회 통합돌봄에 관한 관심 증가와 더불어 시설 노인의 삶 역시 제도적, 비용적, 물리적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심리적이면서도 정서적인 차원까지를 관통해 ‘집’처럼 느끼도록 제반 여건들을 개선해야 한다는 시급성과도 관련 있다. 권선영(2018)이 모든 장소는 주관적 특질을 지님을 지적하였듯, 본 여성 노인에게도 ‘집’은 공간을 인식하고 그 안에 머무는 존재가 재구성해가는 곳이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비록 그 안에서의 관계가 애증(愛憎)으로 엮였었더라도, 분명 정을 주고받으며 오랫동안 정착하던 곳이었다. 또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동시에 자신의 취향과 정체감을 형성해갔던 가장 유의미한 생활환경이었다. 반면, 이은희(2019)가 언급한 것처럼 이들 역시 시설을 ‘집과 같이’ 여기려 하면서도 거주지를 떠나온 지금은 과거 ‘집’에서 영위했던 일상생활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는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노인들의 사고체계 특성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공동생활공간에 거주하면서 이전의 ‘집’에서와 같은 기대감이나 욕구를 크게 가지지 못하게 된 안타까운 여건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결과는, 다수의 노인이 ‘집’을 떠나 새로운 도전과 적응을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을 밝힘과 동시에, 이들이 시설입소 전후로 거주하는 공간을 대별되게 인식하며 그로 인해 삶의 질 자체에도 큰 차이가 발생함을 보여준다. 본 연구참여자들은 이전의 ‘집’을 회상하면서 다양한 관계에 대한 기억은 물론 문화의 향유나 공동체적 정서의 지향, 지역사회의 자연환경과 거주 공간의 물리적 조건 등에 대해서도 구술했지만, 시설에 대해서는 장소 애착이나 욕구를 크게 표현하지 않았다. 시설 내 작은 침상에 기대어 쉬거나 생존을 도와주는 돌봄 서비스에 기대는 것이 안도감의 전부이기도 했다. 최근 내 집에서 나이 들어감을 지향하는 AIP 개념 적용의 돌봄 서비스 구축 노력이 확대되고 있으나, 여전히 노인요양시설은 노년기 삶을 의지하는 중요한 환경으로서 자리하는 것이 사실이다. 본 결과를 토대로, 여성의 생애에 있어 ‘집’이 지니는 장소성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 노년기에 거주지가 아닌 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삶의 질 증대를 위해 필요한 환경 조건이 어떠한지에 관한 논의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후속 연구를 위해 제언하겠다. 본 연구는 노인요양시설 여성 노인들의 삶의 자전적 내러티브를 통해 ‘집’의 장소성을 탐구했는데, 다음에는 ‘집’의 장소성을 중심으로 집단을 더욱 다양한 비교 분석 연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노인요양시설을 비롯해 거주지를 바꾼 여러 사례와 그렇지 않은 여성 재가노인 등 집단을 세부화해서 ‘집’과 관련한 의미 부여와 생의 과업 이행이 어떠하였는지 심도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와 더불어 노년기까지 남녀가 서로 같거나 다른 삶의 양태와 장소적 환경을 경험해왔을 가능성을 숙지해서 젠더적 시각에 기반을 두면서 논의하려는 시도도 요구된다. 이는 노인집단별 고유성에 주목하여 거주지 및 지역사회 돌봄체계의 내실을 강화하고, 인간의 전 생애적 발달에 관한 이해를 토대로 성별 민감성을 고양한 서비스 개입과 정책 개선을 돕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4단계 BK21 사업에서 지원한 연구로(4199990314436), 2020년 한국정신건강 사회복지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것을 수정 및 보완하였음.

Notes

1)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거주(居住)’와 ‘주거(住居)’는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삶, 또는 그런 집’을 의미하는 동 의어로 그 뜻이나 실제 사용에 큰 차이가 있지 않다(국립국어원, 2020). 따라서, 본고에서는 해당 개념에 관해 ‘거주’로 통칭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2) ‘공간(空間)’과 ‘장소(場所)’에 대한 개념 규정 혹은 그것의 차이점을 찾으려는 논쟁은 오래전부터 건축학 등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학자들의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나, 사회 통념상 ‘공간’과 ‘장소’는 유사하면서도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 의미를 지닌다(김명식, 2014; 민병호, 2007). ‘공간’과 ‘장소’라는 용어에 위계를 정해 지칭하는 것은 물론 본 논의의 핵심에서는 벗어난다. 다만, 이 글에서는 통상적으로 인식되는 바를 참고해서 두 개념을 혼용하되, ‘집’과 같이 거주하는 곳이나 생활영역을 뜻할 때는 주로 ‘공간’을, 그러한 공간에 대해 인간이 개별적으로 사유하고 고유하게 인식하는 특별한 감정을 설명할 때는 가능하면 ‘장소’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특히 ‘집’에 대한 ‘장소’ 인식이나 애착이 그러한 ‘공간’과 관련한 사고와 감정 등도 포함하므로, ‘장소성’을 보다 상위개념으로 설정한 후 연구참여자들의 경험에 관해 구체적으로 탐구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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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연구참여자의 일반적 특성

no. 성별 나이 학력 건강상태 및 장기요양 등급 입소기간 가족관계
A 80대 중반 초교 졸업 대화 원활, 이동 어려움, 4등급 3년 반 정도 남편 사별, 자녀 있음
B 70대 초반 초교 졸업 대화 가능, 최근 건강 악화, 3등급 1년 반 정도 남편 사별, 자녀 있음
C 80대 초반 초교 중퇴 대화 원활, 이동 어려움, 3등급 5년 정도 남편 사별, 자녀 있음
D 80대 후반 초교 중퇴 대화 원활, 이동 어려움, 4등급 4년 정도 남편 사별, 자녀 있음

<표 2>

분석결과

차원 하위주제 의미단위
삶의 영역: ‘보살핌으로 엮은 보금자리’ 거쳐 ‘여생 기댈 새 터전’에 닿음 일손으로 살았던 친정집 집안일로 가득 찼던 곳, 논밭 매며 늘 분주했던 곳, 어린 내 욕구보다 부모 돕는 일이 중요했던 곳
고된 시집살이 버텼던 남편 집 시집살이 눈치 보였던 곳, 오로지 아들 낳기만을 바라면서 산 곳, 시집 식구 시중들며 몸이 고됐던 곳
뒷바라지로 채운 모성의 집 식구들을 위해 내가 직접 분주히 가꿔나간 곳, 자식과 먹고살기 바빴던 곳
이웃 간 잔정이 흐른 젊은 날의 집 먹을 것 나누며 정겨웠던 곳, 동네 사람들과 잔정 나누며 활력 느꼈던 곳, 음식 장만으로 실력 발휘하며 보람을 느낀 곳
여생 기댄 공동체의 집 비슷한 노인들과 같이 사는 곳, 여럿이 사는 생활에 적응해가는 곳, 감추고픈 생리현상마저 해결해주는 곳, 때 되면 식사를 챙겨주는 곳, 선생님들 도움이 고마운 곳
전환점: ‘집과의 이별’과 ‘집 안에서의 이별’로 인연이 분절됨 고향과 부모 떠나 출가외인이 됨 결혼하여 내 부모와 멀어지게 된 곳, 살던 곳 아닌 낯선 동네에 있던 곳, 예기치 않게 시댁 식구들과 모여 살게 된 곳, 시집 풍속에 맞춘 낯선 삶이 전개되었 던 곳
집안에서 귀한 인연을 얻음 내 아이를 가족과 직접 출산한 곳, 자식이라는 소중한 인연을 만난 곳, 대를 잇게 되어 자부심을 느꼈던 곳
자꾸만 집에서의 이별이 쌓임 자식들을 분가시켜 마음이 허전해진 곳, 병든 식구 시중들며 몸과 마음 지쳤던 곳, 가족과의 이별이 쌓여가던 곳, 늙은 몸 자식에게 의지하기 면목 없던 곳
다 놔두고 나마저 집을 떠남 병들어 내 방조차 편치 않았던 곳, 나 역시 살던 터전 떠나야겠다고 결정한 곳
적응: ‘집에 대한 그리움’과 ‘집을 채운 보고픔’으로 살아낸 삶 갈 수 없는 예전 집은 마음에만 새김 부모와 함께 고향에서 머물렀던 그리운 곳, 행복한 기억과 함께 자주 떠올리는 먼 옛날 나 살던 곳, 예전 내 집이었지만 지금은 마음에만 담은 곳
당연했던 집에서의 희생 여자라서 억울해도 참고 살았던 곳, 남자로 머물렀다면 더 재밌게 지냈을 곳, 여자들이 집안일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믿었던 곳
집안 곳곳 자식들 생각을 채움 자식들 생각으로 거친 삶을 견디며 살았던 곳, 곳곳에 자식들 보고픈 마음과 그리운 심정이 담겨 있는 곳, 지금 시설에서도 자식들 보기만을 기다리는 곳
좁은 방 작은 침상의 위로 좁지만 남 눈치 보지 않는 곳, 혼자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곳, 협소해도 하루 중 가장 편안히 지내는 곳
이 집을 이생의 종착지라 여김 길었던 내 인생 마무리하는 곳, 이제는 내 집이라고 여겨야 하는 곳, 삶의 마지막 정리를 해야 하는 곳